[이슈분석] 고용노동부와 산업계가 정면 충돌한 週 ‘52시간 이하 근무’ : 월간조선

“법을 개정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고용노동부) vs. “이론적인 얘기일 뿐이다. 법 개정해도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재계)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두고 정부와 재계가 정면 충돌할 조짐이다.

고용노동부는 올 초 “연장근로 시간에 휴일근로를 포함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 얘기를 쉽게 풀어 내면 이렇다.

현행법상 근로자의 근무시간은 주당 40시간에 추가 12시간(연장근무)을 포함, 총 52시간이다. 여기에 회사의 사정에 따라 토·일요일 혹은 공휴일에 휴일근무를 할 수 있다. 물론 연장근무나 휴일근무는 기본근무보다 보수가 1.5~3.5배 정도 높다. 결국 근로자는 주당 52시간(기본근무와 연장근무)에 ＋α(휴일근무)를 한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연장근로 시간에 휴일근로 포함안(案)’에 따르면, 근로자의 주당 근무시간은 주중이든 휴일이든 상관없이 주당 52시간으로 제한된다.

국내의 제조업체 중에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곳은 이 안건과 크게 상관이 없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물량이 근로자들의 주중 업무만으로 충당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사가 잘되는 제조업체에는 치명적이다. 현재 이들 회사의 근로자들은 주중 52시간 이외에 휴일근무를 자주 하고 있다.

“근로시간 줄이면 1석5조 효과”(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 관계자의 얘기는 이렇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노동시간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자는 것이 기본 취지이고, 1석5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산재(産災)가 줄어들고 일과 가정에 모두 충실할 수 있으며, 근로자의 삶의 질이 향상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성이 향상되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런 효과 있는 일을 시행해야 합니다. 기업들 역시 장시간 근로하는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고용노동부의 결정이 갑작스런 조치가 아닌가 하는 것 때문에 반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어떻게 일자리가 늘어납니까.

“주말에 근로자들을 자주 특별근무 시키는 회사로서는 새로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노동력을 더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노동력을 채용해야 하는 겁니다. 장시간 근로를 줄여서 새로 사람을 뽑은 사업장이 여럿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안이 법제화할 경우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주말에 쉬고 싶지만, 정부가 임금 보전해 줄 건가?”(현대차 노조원)

고용노동부의 얘기처럼 일부 근로자들이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현대자동차노조 울산지부 권오일 대외협력실장의 얘기다.

“공장 근로자들도 주말에 일하지 않고 쉬고 싶죠. 울산공장 근로자 중 일부는 지난해 토요일 오후 5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일하는 휴일근무를 포함, 주당 70시간을 일한 적이 있습니다. 노동부가 법으로 제한해서 주말에 쉬게 해 준다고 하면 반갑죠. 그런데 돈이 문제예요.”

―왜요.

“공장 근로자들의 임금은 시급제로 계산되는데 주말에 특별근무를 통해 벌어들이는 금액이 꽤 되거든요. 주말근무를 하지 않으면 임금이 현재보다 많이 줄어듭니다. 주말에 쉬고 싶기는 하지만 임금이 줄어들면 마음 편하게 쉬겠습니까. 저희가 사측에 월급제를 주장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저희는 대기업이지만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 주말 특근을 하지 말라고 하면, 생계유지가 힘들 겁니다. 노동부에서 법으로 근무시간을 주당 52시간으로 묶으면, 정부가 임금을 보전해 줍니까?”

현대중공업이 기아자동차 슬로바키아 공장에 설치한 자동차 조립용 로봇. 무리하게 주 52시간 이하 근무를 강제하는 것은 자동화율을 높여 일자리를 오히려 줄일 가능성이 있다.

“휴일근무 없애도 신규직원 뽑을 수가 없다”(중소기업체 대표)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중소기업의 김모 대표는 “걱정스럽다”고 했다. 연매출 1000억원대, 사무직 80명, 생산직 300여명을 둔 이 회사는 자동차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근로자 일부는 토요일에 4~8시간 정도 특근을 한다.

김 대표의 얘기다.

“고용노동부의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근로자의 삶의 질에 관심이 높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들어오면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주말근무를 없앤다고 고용이 늘어날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휴일근무는 자투리 근무입니다. 10시간 이상씩 해야 하는 경우보다 하루 4~6시간씩 잠시 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주중 일을 보완하기 위한 버퍼이지, 붙박이 일이 아닙니다. 토요일에 몇 시간 하면 될 일 때문에 직원을 새로 뽑을 경영자가 있겠습니까? 만일 사람을 신규 채용했다 치죠. 이들을 데려다 놓을 곳이 없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한 조립라인에 평균 5명이 근무하고, 총 10개의 조립라인이 있다고 치죠. 주말에 근무하는 이유는 주중에 이 라인을 풀가동하고서도 더 생산해야 할 물량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말근무가 막혀서 사람을 신규 채용하면 어떤 라인에 투입할 겁니까? 이미 10개의 라인에서 50명의 근로자가 작업 중이잖습니까. 결국 회사로서는 공장 라인을 증설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장 라인 하나 증설하는 일은 3~6개월 걸리는 일이고, 만만찮은 비용이 소요됩니다. 중소기업들이 쉽게 결정할 사항이 아닙니다. 자동차 회사의 1차 벤더업체인 저희가 이 정도일 때, 2·3차 업계의 부담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해 보세요.”

―정부에서 이 방안을 법으로 정할 경우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업체 사장들끼리 종종 식사를 하는데 노동부의 예상처럼 사람을 새로 뽑겠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결국 경영자들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공백을 메울 겁니다. 지금 있는 체제를 그대로 놔두고, 줄어든 시간을 위해 생산성을 높이겠죠. 묘수가 없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 내에서 낭비 요소를 줄여 물량을 맞추려고 할 겁니다. 저희 역시 그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비관적으로 말하자면,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결국 경영자들이 공장의 자동화율을 높이는 방향을 연구할 테니까요. 절대 일자리가 늘어날 일은 없을 겁니다.”

근로자들이 무작정 임금인상 요구할 수도

김 대표는 이런 설명을 하면서 “보다 큰 문제는 노동자들의 집단행동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공장 라인 근로자 중 주부들은 잔업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지만, 혼자 살거나 부양가족이 많은 분은 앞장서서 잔업을 하려고 합니다. 잔업이 정규 시간보다 급여가 1.5배 높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이 정규 시간에만 일을 해서는 한 달 생활을 맞추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김 대표의 옆에 앉은 관리팀의 류모 임원의 얘기가 이어졌다.

“우리 회사 근로자들이 월 평균 130만~145만원을 받아 갑니다. 그런데 그 임금 중 28% 정도가 토요일 특근을 통해 받아 가는 비용입니다. 고용노동부의 방침처럼 이들에게 휴일근무를 하지 못하도록 하면 임금의 28%가 날아갑니다. 물론 연말 인센티브를 합하면 이들의 월급이 늘겠지만요.”

우리나라의 2012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4580원이다. 정규 시간 근무 40시간을 하면 주당 18만3200원, 여기에 잔업(주당 12시간·8만2440원)을 더할 경우, 월급은 고작 106만원 정도다.

김 대표의 얘기가 이어졌다.

“하위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근로자들이 상위의 욕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생활의 질, 여가가 중요해지지요. 하지만 노동부가 말한 대로 하면 하위 욕구가 충족될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중소기업 공장 근로자 대부분이 임계점(臨界點)에 놓여 있습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임금이 높은 곳을 찾을 텐데, 법으로 묶여 있어 일주일에 52시간 이상을 일할 수 없다고 칩시다. 이 회사나 저 회사나 사정이 비슷한 겁니다. 그러면 근로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무작정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열악한 중소업체들의 경영에 심각한 혼란이 올 겁니다. 더구나 뽑고 싶어도 지원하는 인력이 없습니다.”

그는 “자동차 부품업체는 특성상 부품을 미리 만들어서 쌓아 놓을 수도 없는 구조”라며 “완성차와 똑같이 잔업하고 특근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막막할 뿐이다”고 말했다.

“생산기지 옮기라는 얘기 아니냐”(중소기업 대표)

현대기아차 역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는 불과 6개월 전에 “2012년에 1400여명의 근로자를 채용한다”는 계획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터다.

현대기아차 관계자의 얘기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근로시간 실태 점검에서 나온 위반사항을 시정하기 위한 계획안을 제출한 상태였습니다. 신규 채용, 시설 투자 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담긴 계획서입니다. 지난 1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았는데, 그로부터 20일 뒤에 ‘휴일근무’ 논란이 일어서 당혹스럽습니다.”

고용노동부의 방침에 제조업체가 반발하자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가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나섰다. 경총은 “노동부가 너무 갑작스럽게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경총의 한 본부장의 얘기다.

“‘휴일근무’는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이래 60년 동안 줄곧 이어 왔습니다. 올해 안에 법제화하겠다는 고용노동부의 태도는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휴일근로는 우리나라처럼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기업들이 거의 유일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근무가 없으면 물량을 채우지 못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갑자기 법으로 막겠다는 것은 기업들의 생존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경총에 가입한 제조업체들이 비슷한 입장입니까.

“전체적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너무 갑작스럽다고 합니다. 몇몇 사업주는 ‘사실상 생산기지를 옮기라는 얘기 아니냐’고 합니다.”

기자는 고용노동부에 장기 근무시간을 줄여 고용을 늘린 사업장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시행 초기라 아직 많지 않다”며 소개를 하지 않았다.

“문제 풀이법이 틀렸다”(조동근 교수)

조동근 명지대 교수.

조동근(趙東根) 명지대 사회과학대 교수는 이에 대해 “공무원들의 아이디어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고용창출이 되지 않습니다. 지난 2003년에 주 5일제를 실시하면서 토요일 근무를 없앴을 때 신규 고용이 창출됐습니까? 레저업계, 렌터카 등 몇몇 업종의 고용은 늘겠지만요. 전혀 난센스예요, 이런 방식으로 고용을 늘린다는 것은요.”

―그럼, 어떤 방식을 추천합니까.

“우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기준이 모호할 정도로 노동시장 유연성이 생기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들이 사람을 쉽게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일자리는 자연스럽게 늘어납니다. 사람을 채용하고 해고하기가 쉽지 않은 경직된 노동환경에서 근로시간 줄인다고 기업들이 사람을 더 충원하겠습니까? 고용노동부는 원칙만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문제풀이를 할 경우에 기업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