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6년 ‘각 그랜저’ 출시… 단일 차종으로 117만8000대 판매
⊙ 1, 2세대 일본과 공동 개발… ‘그랜저TG’로 세계적 인정받아
⊙ 1, 2세대 일본과 공동 개발… ‘그랜저TG’로 세계적 인정받아
- 지난 1월 13일, 현대차가 새로운 그랜저를 발표했다.
‘다섯 번째이자 첫 번째 그랜저.’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이 5세대 신형 그랜저를 출시하면서 내놓은 광고 카피다.
이 문구를 보면서 ‘벌써 다섯 번째인가’하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현대차의 대표 차종인 그랜저가 탄생한 지 어느덧 스물다섯 해가 지났다.
그랜저가 어떤 차인가. ‘성공한 사장님의 차’였고 이젠 ‘성공한 샐러리맨의 차’다. 이 자동차의 탄생과 소멸은 현대차의 살아 있는 역사(歷史)이고, 국내 대형차가 걸어온 길이다. 성인(成人)이 된 그랜저를 통해 현대 대형차의 역사를 짚어봤다.
지난 1월 1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신형 그랜저 ‘5G’(프로젝트명 HG)의 신차 발표회가 열렸다. 자동차 위에 덮여 있던 베일을 벗기자, 다소 둥글둥글했던 이전 그랜저의 외관이 날렵한 스포츠카처럼 바뀐 ‘5G 그랜저’의 모습이 드러났다.
현대차 측은 웅장한 활공(滑空·하늘을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모양)을 뜻하는 ‘그랜드 글라이드’를 콘셉트로 개발한 신형 자동차라고 설명했다. 외관이 주는 느낌은 적어도 이름에 걸맞았다. 2400cc와 3000cc 두 개 차종으로 판매되고, 현대차의 럭셔리 프리미엄 세단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최첨단 사양이 탑재됐다는 것이 현대차 측의 설명이다. 지난 3년6개월 동안 4500억원을 투입해 완성했다. 차량 가격은 3100만~3900만원 선.
그런데 현대차가 이 차종에 대해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올해 국내 시장에서의 판매 목표대수가 무려 8만 대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준대형 시장 규모가 8만 대였다. 준대형차 시장을 싹쓸이하거나, 이 시장 자체를 늘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지 않고서야 이런 목표를 잡을 수가 없다.
현대차 국내마케팅의 조래수(趙來秀) 부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신차가 나오면 그 시장 자체의 규모가 좀 느는 경향이 있어서 준대형 시장의 규모 자체가 늘 것으로 보입니다. 무리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들이 있는데 과거 ‘TG그랜저’로 한 해에 8만 대 이상을 판 적이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목표치가 아니죠. 더구나 수입차 고객 중에서 ‘5G’ 그랜저에 큰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50대보다 30대가 그랜저 더 많이 타
―애국심에 호소해 국산차를 파는 때는 지났는데 어떻게 수입차 고객을 뺏어올 생각입니까.
“조사 결과 수입차 고객 중에서 15%가 ‘5G 그랜저가 미리 출시됐다면 이 차를 구매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런 잠재 고객을 우리의 현실 고객으로 유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번에 출시한 신형 그랜저는 국내에서는 경쟁 차종이 없습니다. 엔진성능, 연비를 숫자로 비교해 봐도 경쟁 자체가 되지 않죠. 도요타 렉서스의 ‘ES350’이나 BMW의 ‘5시리즈’가 경쟁상대입니다.”
―차 값이 1억원에 달하는 BMW 5시리즈가 경쟁상대라는 것은 좀 과하지 않습니까.
“맞는 말씀인데 이런 차를 타는 분들 중에는 감성적인 면에서 만족감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작정 차 값이 비싸서 과시용으로 타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만족도 때문에 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고객들에게 성능이 외제차에 떨어지지 않으면서 감성적인 만족감까지 느낄 수 있는 차를 선사하려 합니다. ‘홈컴서비스’, 찾아가는 시승 서비스 등을 연구 중입니다. 또 통괄서비스시스템이라고 해서 서비스 센터에 가면 ‘어떻게 오셨어요? 뭐가 고장이세요?’가 아니라, 서비스 매니저 한 명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급 수입차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서비스를 그랜저 고객들에게 제공하면서 감성 만족감을 올리는 전략입니다.”
올 판매 목표치를 달성할지는 알 수 없지만, 여태까지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예약받은 첫날에만 7000명 이상이 그랜저를 예약하고 갔다.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사전 예약대수는 3만 대.
현대차 관계자는 “출고까지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했다.
그랜저의 고객은 여성보다 남성이 많다. 남성 대(對) 여성 비율은 65대 35 정도다. 타깃 고객층은 해를 거듭할수록 젊어지고 있다. 그랜저의 역사에 빗대어 국내 자동차 시장의 변모를 엿볼 수 있는 측면이다.
조래수 부장의 설명이다.
“1, 2세대 그랜저는 성공한 사장님이 주요 공략층이었는데 4세대에 들어오면서 추세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장님보다는 성공한 대중, 또 고급차종을 원하는 대중이 찾기 시작했습니다. 준대형차 규모가 기존의 5만 대에서 두 배까지 늘어난 부분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예전에 40~50대(代)가 주요 고객이었는데, 이제는 30대가 중요한 타깃입니다. 여전히 40대 고객이 가장 많고, 50대보다는 30대가 그랜저를 더 많이 탑니다.”
―광고 콘셉트를 ‘다섯 번째이면서 첫 번째’로 잡은 이유는 뭡니까.
“1세대에서 5세대로까지 그랜저의 전통을 이으면서 최첨단 기술을 넣은 우월한 차종이라는 이미지를 담았습니다. 전통성의 바탕 위에 최첨단을 탑재해 또 처음 만나는 것 같은 그런 자동차의 이미지라고 보면 됩니다. 역사와 미래의 신기술 혼합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값어치 하네’가 아닌 ‘값어치 이상을 하네’가 목표
현대차 측은 이번에 신차를 출시하면서 2400cc보다는 3000cc에 더 많은 고객이 쏠릴 것으로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의외로 2400cc의 인기가 좋단다. 예약 고객을 기준으로 볼 때 3000cc대 2400cc의 비율은 65대 35 정도다.
류주하 현대차 국내상품팀 부장의 얘기다.
“여태까지는 ‘착하게 가격이 책정돼 있다’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엔진의 기본 파워가 상당히 올라가 있기 때문에 2400cc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고객들이 많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차량을 출시하기 전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포지셔닝’입니다. 기존의 그랜저가 모던한 프리미엄이었다면 이번 신형은 럭셔리 프리미엄으로 설정했습니다. 고객들이 3000만원을 지불하면서 그 가격보다 비싼 가격의 차량을 소유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달까요. ‘값어치 하네’ 정도가 아니라 ‘값어치 이상을 하네’를 느끼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차량의 안전과 관련해서는 소비자들이 준대형급의 차량에 기대하는 기본에 플러스 알파까지 모두 넣었습니다.”
현대차 내에서 ‘상품팀’은 신차가 개발될 때, 앞장서는 부서 중의 하나다. 신차가 나온 지 1, 2년이 지나면 벌써 후속 모델을 논의할 정도로 ‘선발부대’다.
류 부장은 “그랜저가 가진 상징적 이미지 때문에 개발 초기부터 색다르면서도 전통을 따르는 현대차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혼신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트렁크에 골프백 4개, 보스턴백 4개 충분히 들어가
이번에 출시된 그랜저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단순한 판매 구성이다.
과거에 자동차 영업대리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 하나. 고객이 1500만원대의 자동차를 선택했다고 치자. 배기량, 차량 색상을 정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에어컨, 선루프를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 시트는 가죽으로 바꿀 것인지 그냥 천 시트로 둘 것인지…. 영업사원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1500만원이었던 차 가격은 1800만원, 2000만원이 된다. 거기에다 차량 등록비, 세금이 얹혀진다. 이번에 출시된 신형 그랜저를 살 때는 이럴 필요가 없다.
조성균 국내상품팀 차장의 얘기다.
“지점에 나갔을 때 경험한 일입니다. 환갑 정도로 보이는 고객이 차량 가격표를 보고 계약을 하려는데, 여기에 이 정도는 플러스를 시켜야 하고 라는 둥 영업사원이 설명을 하자 가격표를 집어던지더니 나가더군요. 선택의 기회를 많이 주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기본 사양에 넣지 않는 것이 고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본에 옵션의 옵션을 달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고객을 기만하는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G’ 그랜저는 더 이상 옵션을 선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패키지 구성을 했습니다.”
벤츠, BMW에만 들어가는 최첨단 컨트롤 탑재
현장에서 들리는 고객들의 애로사항에도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가령 트렁크에 골프백 4개와 보스턴백 4개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것 등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트렁크 공간이 넓어지면 그만큼 실내공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반비례 관계지만, 고객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며 “고민 끝에 우리가 놀랄 정도로 실내공간을 줄이지 않으면서 트렁크를 넓히는 방법을 적용했 다”고 말했다.
현대차에서 ‘5G’ 그랜저에 적용한 신기술 중 가장 자랑하는 것은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dvanced Smart Cruise Control)’이라는 장치다. 말 그대로 ‘진화된 똑똑한 크루즈 기능 장치’다.
조성균 차장의 설명이다.
“주행 편의성을 위한 장치입니다. 이 컨트롤 장치를 이용하면 운전자가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도 앞차와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해 줍니다. 앞차가 빨리 이동하면 운전자가 정해 놓은 속도 내에서 빨리 속력을 내 뒤쫓아갑니다. 가령 운전자가 100km를 설정하면, 앞차가 빨리 갈 때 100km의 속도를 내 앞차와의 거리를 줄입니다. 앞차와의 거리가 아무리 벌어져도 100km 이상으로는 주행하지 않습니다. 옆 차선의 차량이 끼어들 경우에는 자동차가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다시 앞차와의 거리를 일정 수준으로 벌려놓습니다. 벤츠와 BMW 두 개 차종에만 적용되는 최첨단 시스템입니다. 앞차의 속도가 줄어들면 덩달아 속도가 줄고, 10km 이하가 되면 꺼지면서 정지합니다. 앞차가 출발하면 알아서 다시 출발하는 똑똑한 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 도로 상황에서 애용할 수 있나요.
“도로 정체가 심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명절 때 꽉 막힌 고속도로에 갇혀 있어야 할 때에 안성맞춤입니다. 앞차와의 거리, 최고 속도를 설정한 채 운전자가 가만히 있으면 차량이 알아서 운전을 해줍니다. 물론 이 시스템은 안전 사항이 아니고, 운전자의 편의를 돕기 위한 것이므로 전적으로 시스템에만 의존하면 안 됩니다.”
1, 2세대 그랜저는 일본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
오늘날 글로벌 카메이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한 현대자동차에도 우울했던 시절이 있었다.
첫 번째 그랜저는 1986년에 탄생했다. ‘모래시계 그랜저’, 통칭 ‘각(角) 그랜저’라고 불리는 1세대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리기 2년 전인 1986년 7월, 현대는 이 차를 출시했다. ‘그라나다’가 단종(斷種)된 이후에 비어 있던 현대 대형차의 빈자리를 메우고자 만든 자동차였다.
프로젝트명은 ‘L프로젝트’. 웅장, 장엄, 위대하다는 뜻을 담아 ‘그랜저(GRANDEUR)’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 차종은 엄밀히 따지면 일제차에 가깝다. 현대와 일본의 미쓰비시가 공동개발을 했는데, 디자인은 현대가 맡았지만 설계는 미쓰비시가 도맡았다. 이 두 회사는 88올림픽의 공식 스폰서였다.
출시 초기에는 수동변속기만 있었고, 나중에 자동변속기(오토)를 장착한 모델이 추가됐다. 어찌되었건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국내에서만 총 12만2074대(국내 대형시장의 80% 점유)가 팔렸다. 전두환(全斗煥) 전(前) 대통령이 이 차를 탔다. 인기드라마였던 <모래시계>에 이 차종이 대거 등장하면서 ‘모래시계 그랜저’라는 별명도 얻었다.
2세대 그랜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현대와 일본의 공동 개발로 1세대 그랜저가 나온 지 6년 만에 2세대 그랜저인 ‘뉴그랜저’가 나왔다. 외관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각이 졌던 외관은 곡선미로 뒤덮였다.
현대차 관계자는 “당시 시판된 국내 차종 중에서 차체가 가장 크고 실내공간이 가장 넓었다”고 말했다. 국산차로서는 최초로 에어백을 장착했고, 차가운 음료를 넣어둘 수 있는 냉장 쿨 박스를 자동차에 넣었다. 이 차는 총 13만5424대가 팔렸다.
4세대 그랜저 출시로 세계 수준의 경쟁력 갖춰
그랜저가 한 단계 도약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후반 들어서였다.
현대차는 1998년 9월에 3세대 그랜저인 ‘그랜저XG’를 내놨다. 미쓰비시의 영향을 벗어나 독자 개발로 출시한 모델로, 기존의 뉴그랜저와 ‘마르샤’의 통합 후속 모델이었다.
이 차종이 첫선을 보였던 1998년 12월, 정몽구(鄭夢九) 현대차 회장은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된 현대자동차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등극한다. 이때부터 현대차의 ‘품질 전쟁’은 시작됐고,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랜저XG’는 국내에서 총 31만1485대를 팔고 해외에 11만5083대를 수출했다.
현대차는 6년마다 그랜저의 후속모델을 내놓으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의 입지를 다져갔다. 평균 개발기간보다 1년 늦어진 지난 2005년, 현대차는 ‘그랜저TG’를 내놓으며 호평을 받았다. 4세대 그랜저다. 이 차종에는 현대차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3300cc의 ‘람다엔진’이 탑재됐다. 미국을 비롯한 북미(北美) 지역에서 ‘아제라(AZERA)’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했고, 총 12만9000대를 수출했다. 국내에서는 무려 37만2000대를 팔았다. 현대차는 이 차종을 개발하면서, 세계 수준의 품질과 상품 경쟁력을 갖췄다는 시장의 평가를 받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랜저TG’는 공급자가 아닌 철저하게 소비자의 입장에서 개발한 자동차”라며 “종전의 그랜저가 운전석 위주의 오너드라이빙이었다면 ‘TG’는 뒷좌석에 앉은 사람의 편의성까지 증대시킨 차량이다”고 설명했다.
또 6년이 지난 올 초, 현대차는 5세대 그랜저를 내놨다. 단일 차종으로 총 117만8000대 이상이 팔린 밀리언셀러 차량인 그랜저가 어떤 기록을 세울지 주목된다.⊙
이 문구를 보면서 ‘벌써 다섯 번째인가’하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현대차의 대표 차종인 그랜저가 탄생한 지 어느덧 스물다섯 해가 지났다.
그랜저가 어떤 차인가. ‘성공한 사장님의 차’였고 이젠 ‘성공한 샐러리맨의 차’다. 이 자동차의 탄생과 소멸은 현대차의 살아 있는 역사(歷史)이고, 국내 대형차가 걸어온 길이다. 성인(成人)이 된 그랜저를 통해 현대 대형차의 역사를 짚어봤다.
지난 1월 1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신형 그랜저 ‘5G’(프로젝트명 HG)의 신차 발표회가 열렸다. 자동차 위에 덮여 있던 베일을 벗기자, 다소 둥글둥글했던 이전 그랜저의 외관이 날렵한 스포츠카처럼 바뀐 ‘5G 그랜저’의 모습이 드러났다.
현대차 측은 웅장한 활공(滑空·하늘을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모양)을 뜻하는 ‘그랜드 글라이드’를 콘셉트로 개발한 신형 자동차라고 설명했다. 외관이 주는 느낌은 적어도 이름에 걸맞았다. 2400cc와 3000cc 두 개 차종으로 판매되고, 현대차의 럭셔리 프리미엄 세단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최첨단 사양이 탑재됐다는 것이 현대차 측의 설명이다. 지난 3년6개월 동안 4500억원을 투입해 완성했다. 차량 가격은 3100만~3900만원 선.
그런데 현대차가 이 차종에 대해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올해 국내 시장에서의 판매 목표대수가 무려 8만 대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준대형 시장 규모가 8만 대였다. 준대형차 시장을 싹쓸이하거나, 이 시장 자체를 늘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지 않고서야 이런 목표를 잡을 수가 없다.
현대차 국내마케팅의 조래수(趙來秀) 부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신차가 나오면 그 시장 자체의 규모가 좀 느는 경향이 있어서 준대형 시장의 규모 자체가 늘 것으로 보입니다. 무리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들이 있는데 과거 ‘TG그랜저’로 한 해에 8만 대 이상을 판 적이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목표치가 아니죠. 더구나 수입차 고객 중에서 ‘5G’ 그랜저에 큰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50대보다 30대가 그랜저 더 많이 타
―애국심에 호소해 국산차를 파는 때는 지났는데 어떻게 수입차 고객을 뺏어올 생각입니까.
“조사 결과 수입차 고객 중에서 15%가 ‘5G 그랜저가 미리 출시됐다면 이 차를 구매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런 잠재 고객을 우리의 현실 고객으로 유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번에 출시한 신형 그랜저는 국내에서는 경쟁 차종이 없습니다. 엔진성능, 연비를 숫자로 비교해 봐도 경쟁 자체가 되지 않죠. 도요타 렉서스의 ‘ES350’이나 BMW의 ‘5시리즈’가 경쟁상대입니다.”
―차 값이 1억원에 달하는 BMW 5시리즈가 경쟁상대라는 것은 좀 과하지 않습니까.
“맞는 말씀인데 이런 차를 타는 분들 중에는 감성적인 면에서 만족감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작정 차 값이 비싸서 과시용으로 타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만족도 때문에 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고객들에게 성능이 외제차에 떨어지지 않으면서 감성적인 만족감까지 느낄 수 있는 차를 선사하려 합니다. ‘홈컴서비스’, 찾아가는 시승 서비스 등을 연구 중입니다. 또 통괄서비스시스템이라고 해서 서비스 센터에 가면 ‘어떻게 오셨어요? 뭐가 고장이세요?’가 아니라, 서비스 매니저 한 명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급 수입차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서비스를 그랜저 고객들에게 제공하면서 감성 만족감을 올리는 전략입니다.”
올 판매 목표치를 달성할지는 알 수 없지만, 여태까지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예약받은 첫날에만 7000명 이상이 그랜저를 예약하고 갔다.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사전 예약대수는 3만 대.
현대차 관계자는 “출고까지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했다.
그랜저의 고객은 여성보다 남성이 많다. 남성 대(對) 여성 비율은 65대 35 정도다. 타깃 고객층은 해를 거듭할수록 젊어지고 있다. 그랜저의 역사에 빗대어 국내 자동차 시장의 변모를 엿볼 수 있는 측면이다.
조래수 부장의 설명이다.
“1, 2세대 그랜저는 성공한 사장님이 주요 공략층이었는데 4세대에 들어오면서 추세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장님보다는 성공한 대중, 또 고급차종을 원하는 대중이 찾기 시작했습니다. 준대형차 규모가 기존의 5만 대에서 두 배까지 늘어난 부분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예전에 40~50대(代)가 주요 고객이었는데, 이제는 30대가 중요한 타깃입니다. 여전히 40대 고객이 가장 많고, 50대보다는 30대가 그랜저를 더 많이 탑니다.”
―광고 콘셉트를 ‘다섯 번째이면서 첫 번째’로 잡은 이유는 뭡니까.
“1세대에서 5세대로까지 그랜저의 전통을 이으면서 최첨단 기술을 넣은 우월한 차종이라는 이미지를 담았습니다. 전통성의 바탕 위에 최첨단을 탑재해 또 처음 만나는 것 같은 그런 자동차의 이미지라고 보면 됩니다. 역사와 미래의 신기술 혼합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값어치 하네’가 아닌 ‘값어치 이상을 하네’가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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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부터 1세대 각 그랜저, 2세대 뉴그랜저, 3세대 그랜저 XG, 4세대 그랜저 TG. |
류주하 현대차 국내상품팀 부장의 얘기다.
“여태까지는 ‘착하게 가격이 책정돼 있다’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엔진의 기본 파워가 상당히 올라가 있기 때문에 2400cc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고객들이 많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차량을 출시하기 전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포지셔닝’입니다. 기존의 그랜저가 모던한 프리미엄이었다면 이번 신형은 럭셔리 프리미엄으로 설정했습니다. 고객들이 3000만원을 지불하면서 그 가격보다 비싼 가격의 차량을 소유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달까요. ‘값어치 하네’ 정도가 아니라 ‘값어치 이상을 하네’를 느끼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차량의 안전과 관련해서는 소비자들이 준대형급의 차량에 기대하는 기본에 플러스 알파까지 모두 넣었습니다.”
현대차 내에서 ‘상품팀’은 신차가 개발될 때, 앞장서는 부서 중의 하나다. 신차가 나온 지 1, 2년이 지나면 벌써 후속 모델을 논의할 정도로 ‘선발부대’다.
류 부장은 “그랜저가 가진 상징적 이미지 때문에 개발 초기부터 색다르면서도 전통을 따르는 현대차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혼신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트렁크에 골프백 4개, 보스턴백 4개 충분히 들어가
이번에 출시된 그랜저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단순한 판매 구성이다.
과거에 자동차 영업대리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 하나. 고객이 1500만원대의 자동차를 선택했다고 치자. 배기량, 차량 색상을 정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에어컨, 선루프를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 시트는 가죽으로 바꿀 것인지 그냥 천 시트로 둘 것인지…. 영업사원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1500만원이었던 차 가격은 1800만원, 2000만원이 된다. 거기에다 차량 등록비, 세금이 얹혀진다. 이번에 출시된 신형 그랜저를 살 때는 이럴 필요가 없다.
조성균 국내상품팀 차장의 얘기다.
“지점에 나갔을 때 경험한 일입니다. 환갑 정도로 보이는 고객이 차량 가격표를 보고 계약을 하려는데, 여기에 이 정도는 플러스를 시켜야 하고 라는 둥 영업사원이 설명을 하자 가격표를 집어던지더니 나가더군요. 선택의 기회를 많이 주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기본 사양에 넣지 않는 것이 고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본에 옵션의 옵션을 달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고객을 기만하는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G’ 그랜저는 더 이상 옵션을 선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패키지 구성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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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창순 전 국무총리,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박태영 산업자원부 장관, 이정무 건설교통부 장관(오른쪽에서 네 번째부터 왼쪽으로) 등이 1998년 10월 열린 그랜저 XG 신차발표회에 참석했다. |
벤츠, BMW에만 들어가는 최첨단 컨트롤 탑재
현장에서 들리는 고객들의 애로사항에도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가령 트렁크에 골프백 4개와 보스턴백 4개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것 등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트렁크 공간이 넓어지면 그만큼 실내공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반비례 관계지만, 고객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며 “고민 끝에 우리가 놀랄 정도로 실내공간을 줄이지 않으면서 트렁크를 넓히는 방법을 적용했 다”고 말했다.
현대차에서 ‘5G’ 그랜저에 적용한 신기술 중 가장 자랑하는 것은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dvanced Smart Cruise Control)’이라는 장치다. 말 그대로 ‘진화된 똑똑한 크루즈 기능 장치’다.
조성균 차장의 설명이다.
“주행 편의성을 위한 장치입니다. 이 컨트롤 장치를 이용하면 운전자가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도 앞차와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해 줍니다. 앞차가 빨리 이동하면 운전자가 정해 놓은 속도 내에서 빨리 속력을 내 뒤쫓아갑니다. 가령 운전자가 100km를 설정하면, 앞차가 빨리 갈 때 100km의 속도를 내 앞차와의 거리를 줄입니다. 앞차와의 거리가 아무리 벌어져도 100km 이상으로는 주행하지 않습니다. 옆 차선의 차량이 끼어들 경우에는 자동차가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다시 앞차와의 거리를 일정 수준으로 벌려놓습니다. 벤츠와 BMW 두 개 차종에만 적용되는 최첨단 시스템입니다. 앞차의 속도가 줄어들면 덩달아 속도가 줄고, 10km 이하가 되면 꺼지면서 정지합니다. 앞차가 출발하면 알아서 다시 출발하는 똑똑한 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 도로 상황에서 애용할 수 있나요.
“도로 정체가 심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명절 때 꽉 막힌 고속도로에 갇혀 있어야 할 때에 안성맞춤입니다. 앞차와의 거리, 최고 속도를 설정한 채 운전자가 가만히 있으면 차량이 알아서 운전을 해줍니다. 물론 이 시스템은 안전 사항이 아니고, 운전자의 편의를 돕기 위한 것이므로 전적으로 시스템에만 의존하면 안 됩니다.”
1, 2세대 그랜저는 일본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
오늘날 글로벌 카메이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한 현대자동차에도 우울했던 시절이 있었다.
첫 번째 그랜저는 1986년에 탄생했다. ‘모래시계 그랜저’, 통칭 ‘각(角) 그랜저’라고 불리는 1세대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리기 2년 전인 1986년 7월, 현대는 이 차를 출시했다. ‘그라나다’가 단종(斷種)된 이후에 비어 있던 현대 대형차의 빈자리를 메우고자 만든 자동차였다.
프로젝트명은 ‘L프로젝트’. 웅장, 장엄, 위대하다는 뜻을 담아 ‘그랜저(GRANDEUR)’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 차종은 엄밀히 따지면 일제차에 가깝다. 현대와 일본의 미쓰비시가 공동개발을 했는데, 디자인은 현대가 맡았지만 설계는 미쓰비시가 도맡았다. 이 두 회사는 88올림픽의 공식 스폰서였다.
출시 초기에는 수동변속기만 있었고, 나중에 자동변속기(오토)를 장착한 모델이 추가됐다. 어찌되었건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국내에서만 총 12만2074대(국내 대형시장의 80% 점유)가 팔렸다. 전두환(全斗煥) 전(前) 대통령이 이 차를 탔다. 인기드라마였던 <모래시계>에 이 차종이 대거 등장하면서 ‘모래시계 그랜저’라는 별명도 얻었다.
2세대 그랜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현대와 일본의 공동 개발로 1세대 그랜저가 나온 지 6년 만에 2세대 그랜저인 ‘뉴그랜저’가 나왔다. 외관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각이 졌던 외관은 곡선미로 뒤덮였다.
현대차 관계자는 “당시 시판된 국내 차종 중에서 차체가 가장 크고 실내공간이 가장 넓었다”고 말했다. 국산차로서는 최초로 에어백을 장착했고, 차가운 음료를 넣어둘 수 있는 냉장 쿨 박스를 자동차에 넣었다. 이 차는 총 13만5424대가 팔렸다.
4세대 그랜저 출시로 세계 수준의 경쟁력 갖춰
그랜저가 한 단계 도약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후반 들어서였다.
현대차는 1998년 9월에 3세대 그랜저인 ‘그랜저XG’를 내놨다. 미쓰비시의 영향을 벗어나 독자 개발로 출시한 모델로, 기존의 뉴그랜저와 ‘마르샤’의 통합 후속 모델이었다.
이 차종이 첫선을 보였던 1998년 12월, 정몽구(鄭夢九) 현대차 회장은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된 현대자동차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등극한다. 이때부터 현대차의 ‘품질 전쟁’은 시작됐고,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랜저XG’는 국내에서 총 31만1485대를 팔고 해외에 11만5083대를 수출했다.
현대차는 6년마다 그랜저의 후속모델을 내놓으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의 입지를 다져갔다. 평균 개발기간보다 1년 늦어진 지난 2005년, 현대차는 ‘그랜저TG’를 내놓으며 호평을 받았다. 4세대 그랜저다. 이 차종에는 현대차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3300cc의 ‘람다엔진’이 탑재됐다. 미국을 비롯한 북미(北美) 지역에서 ‘아제라(AZERA)’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했고, 총 12만9000대를 수출했다. 국내에서는 무려 37만2000대를 팔았다. 현대차는 이 차종을 개발하면서, 세계 수준의 품질과 상품 경쟁력을 갖췄다는 시장의 평가를 받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랜저TG’는 공급자가 아닌 철저하게 소비자의 입장에서 개발한 자동차”라며 “종전의 그랜저가 운전석 위주의 오너드라이빙이었다면 ‘TG’는 뒷좌석에 앉은 사람의 편의성까지 증대시킨 차량이다”고 설명했다.
또 6년이 지난 올 초, 현대차는 5세대 그랜저를 내놨다. 단일 차종으로 총 117만8000대 이상이 팔린 밀리언셀러 차량인 그랜저가 어떤 기록을 세울지 주목된다.⊙
| ▣ 그랜저 직접 타보니… ‘5G 그랜저’를 타본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소비자에게 신경 쓴 기색을 역력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내에서며 고속도로에서 편하게 운전을 할 수 있게끔 애쓴 것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5G’의 자랑이라는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은 생각보다 꽤 쓸모가 많은 장치였다. 기자는 고속도로에서 ‘시속 90km’에 크루즈를 맞춰놓고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봤다. 조금 불안한 느낌은 들었지만, 현대차의 ‘자랑거리’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랜저는 앞차와의 거리를 일정수준 유지하면서 혼자서 주행을 했다. 그랬다가 앞차가 옆 차선으로 빠지면서, 앞차의 앞에 있던 차량과 거리가 멀어지자 순간적으로 가속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가속속도가 조금 무서웠다. 기자가 탄 차는 앞차를 따라잡자(앞차와의 거리가 일정해지자가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차츰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에는 자신도 덩달아 브레이크를 밟아 앞차와의 거리를 맞췄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시내에서도 느낌은 비슷했다. 꼬불꼬불한 산길이나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비포장도로가 아니고서는 대다수의 구간에서 크루즈 컨트롤을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운전하느라 바짝 긴장하는 긴장도가 한결 덜했다. 기자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급제동을 하거나 코너링을 할 때 차량의 쏠림현상으로 불안하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언덕에서 뒤로 미끄러지는 느낌도 거의 없었다. 차량 디자인에서도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기자는 평소 조수석에 취재수첩, 볼펜 등을 던져놓곤 한다. 기어와 컵홀더 쪽에 딱히 놓을 공간이 없어서다. 그런데 이번에 출시된 그랜저에는 내비게이션 밑의 뒤쪽에 움푹 빠진 공간이 있다. 여러 소지품을 넣어둘 수 있는 곳이다. 자동차의 시동을 끄면 백미러가 자동으로 접히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앉은 키가 작은 편인 기자의 입장에서는 차량의 앞 부분이 높아 운전을 할 때 시야 확보가 조금 덜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5G 그랜저’에 관심 있는 고객이라면 굳이 ‘사장님 색’인 검은색을 선택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짙은 회색, 붉은색이 돌지 않는 진보라색은 수입차와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