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론] 대통령의 ‘대기업 때리기’ : 월간조선

<키다리 아저씨>는 마크 트웨인의 조카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진 웹스터가 집필한 소설이다. 비록 고아원에서 지내지만 씩씩하게 자신의 앞날을 개척하던 주인공 주디는 만나 보지도 못한 채 자신의 대학교육을 후원하는 독지가에게 ‘키다리 아저씨’(daddy-long-legs)라는 별명을 붙이고는 그에게 자신이 겪는 일상들을 자세하게 편지에 적어 보낸다.

이 소설은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적어 보내는 편지들을 모은 형식을 띠고 있다. 주디가 처음에는 힘들었던 대학생활에 잘 적응해 가는 모습을 담은 편지들도 재미있고, 그러다가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내용을 담은 편지들도 흥미롭다. 그런데 친구의 삼촌 저비스 씨에게서 청혼을 받고 키다리 아저씨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편지들에 가면 내용이 심각해진다. 그리고 결국 저비스 씨가 키다리 아저씨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는 사랑과 감사가 얽혀 어쩔 줄 몰라하는 아름다운 편지로 막을 내리는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고 따뜻하다. 편지의 내용과 기술(記述)에서 배어 나오는 주디라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키다리 아저씨’라는 단어 자체가 그 이후로 익명(匿名)의 독지가 혹은 지원자 내지는 후원자를 일컫는 말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최근 이명박(李明博) 정부가 친(親)서민 중도실용을 다시 표방하고 나서면서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발단은 6·2 지방선거의 충격적 패배였다.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하면서 소위 ‘어닝 서프라이즈’가 보도되고 있는 와중에 서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이로 인한 상실감까지 겹치며 야당을 지지하는 투표를 했다고 분석되면서 친서민 정책이 다시 한번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통령의 ‘재벌 때리기’

게다가 이번에는 강도가 남달랐다. 대통령이 직접 재래시장을 찾아서 서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소위 캐피털사(社)의 금리(金利)가 엄청난 고(高)금리임이 밝혀지자 이를 즉시 질책했다.

“큰 재벌에서 일수 이자 받듯 하는 것은 사회정의상 안 맞지 않느냐. 대기업이 하는 캐피털이 이렇게 이자를 많이 받으면 나쁘다.” (7월 22일, 서울 강서구 미소금융 포스코지점 방문에서)

흥미로운 것은 재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질책을 한꺼번에 했다는 부분이다. 다음 날 대통령은 후속회의에서 “대기업을 쥐어짜는 게 아니라 공정하게 하라는 얘기다. 대기업은 현금 보유량이 많다. 투자를 안 하니 서민이 더 힘들다”고 지적했다. 대기업들이 긴장할 만한 내용이다. 단순히 이자가 높다는 문제만이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상황에 대해 언급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곧이어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기업이 수십조 원 갖고 있으면서 중소기업에 어음 결제하는 건 탐욕”이라는 발언까지 하면서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뿌리 깊은 관계로까지 발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캐피털사 여신(與信)과 관련한 대기업과 소비자의 관계가 지적되더니 곧바로 납품(納品) 및 하청(下請)과 관련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까지 논의가 확장되면서 친서민 정책이 친중소기업 정책 내지는 반(反)대기업 정책인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전선이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이후 반발이 계속되자 대통령은 직접 7월 29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중요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오히려 중소기업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므로 현실적이지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정부가 인위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자칫 포퓰리즘으로 보일 수도 있다.” “정부의 강제규정보다는 대기업이 스스로 상생(相生)문화, 기업윤리를 갖추고 시정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발적 상생이 중요하며, 강제 상생은 의미 없다.”

이를 해석해 보면 시장원리에 입각해 투자는 물론 중소기업과의 상생문제를 법이나 제도적으로 강제하진 않을 테니 대기업들 스스로 사회적 소임을 다해달라는 것이다. 정부는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과도한 개입을 자제하겠다는 것이며 대기업들의 자율성과 자발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內需와 外需의 괴리

이는 상당히 현실적인 접근이다. 할 일이 많은 정부가 이 문제에 개입할 수는 있으나 지속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무리한 개입은 정책의 연속성을 떨어뜨리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친서민 정책이 최근 일각에서 나온 포퓰리즘 아니냐는 비판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공방 자체는 일단락되어 가는 느낌이지만 캐피털 회사들이 일제히 금리를 내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납품단가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는 등 이번 논란의 파장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이번 논란은 우리 경제 내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 사실이다. 우리 경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리고 그 뿌리는 경제성장의 초기단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수출주도형 불균형 성장전략이다. 내수(內需)시장이 없으니 세계시장에 생산품을 팔자는 것이고, 일부 잘될 만한 분야를 골라서 집중 육성을 하고 이들이 잘되면 전방(前方)효과와 후방(後方)효과가 나타나면서 모두가 잘될 수 있다는 전략이 제시됐던 것이다. 이 결과 한국경제의 기적 같은 성장신화가 가시화됐다. 반도체 철강 조선 석유화학 가전 자동차로 대표되는 기업들이 커 가면서 우리의 소득도 놀랄 만한 수준으로 신장했다. 1960년 1인당 소득 79달러에서 2008년에 2만 달러가 넘기까지 한국경제의 성장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문제는 경제가 외수(外需)중심의 수출주도형으로 가면서 내수와의 괴리가 엄청나게 증가한 데에 있다. 좋은 예가 자영업자(自營業者)의 지속적 증가 현상이다. 우리 경제의 내수부문은 사실상 소위 ‘레드오션’이 되어 버렸다. 식당업이 그 예이다. 미국의 식당은 인구 600명당 하나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인구 85명당 하나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물경기가 조금만 안 좋아져도 당장 타격이 온다. 내수산업이 심화되지 못한 벌을 받는 셈이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실물경제가 타격을 받자 자영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실제로 자영업자 수는 2008년 2분기 600여만명에 달했다가 2010년 1분기에는 550만명 수준으로까지 감소했다. 무려 50여만명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이렇다 보니 상황이 너무 안 좋아져 버린 자영업자들 및 관련된 인력들은 수출업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들이 엄청난 이윤을 올린 부분을 보며 괴리감을 상당 부분 느꼈을 법하다.

제조업·수출산업의 고용창출 효과 저하

사실 우리 경제에서 제조업과 수출산업의 고용창출 능력은 날로 떨어지고 있다. 반면 서비스업의 고용창출 능력은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다.

고도화된 서비스업 내지는 내수산업을 일으켜서 인력을 고용하는 등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소홀했다. 투자개방형 병원(소위 영리병원)만 해도 그렇다. 의료산업에서 부가가치 10억원당 고용효과는 20명이 넘는다. 전(全) 산업 평균은 13명 정도이다. 참고로 우리가 자랑하는 IT 산업은 10억원당 고용효과가 5.7명이다. 우리가 이루어 낸 경제성장의 결과를 향유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거꾸로 고용창출 능력이 약한 부문이 우리의 주력산업이 되면서 고용에 심각한 위기가 오고 있다.

더구나 기업들이 글로벌화(化) 다국적화(多國籍化)하면서 국내가 아닌 해외에 투자를 하고 또한 투자를 하더라도 인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투자를 하는 자동화(自動化) 투자를 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온 문제라는 점에 주목을 해야 하며 단칼에 해결될 수는 없다는 부분을 직시해야 한다. 게다가 대기업들은 위기를 당한 후 투자마인드가 위축되면서 현금을 쌓아 놓고 있다는 비판에도 직면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대기업들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최근 실적 부진에 빠진 도요타는 비용절감 계획을 발표했다. 핵심은 2012년부터 생산되는 신차(新車) 부품가격을 30% 하락시키는 것이다. 지나친 원가(原價)절감 탓에 리콜사태가 벌어졌다는 비판을 무릅쓰면서도 도요타는 또 원가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입장인 것이다.

물론 납품기업들은 죽을 지경이다. 일본 닛산은 최근 소형차 마치를 기존 가격보다 10만엔 저렴한 99만9600엔에 내놓았다. 이러한 가격인하는 임금이 저렴한 태국에서 제품을 생산하여 역(逆)수입하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국내판매용은 국내에서, 해외판매용은 해외에서 생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런데 제조업 공동화(空洞化)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닛산은 이 원칙을 저버렸다.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닛산은 한발 더 나아가 원가절감을 위해 우리나라 업체로부터 부품을 납품받는 방안까지 추진 중이라 한다.

美·日 기업들도 현금 움켜쥐기는 마찬가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 22일 오전 서울 화곡동 포스코 미소금융지점을 방문, 시장상인들과 대출의 어려움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현금은 어떤가. 현재 자타(自他)가 공인하는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연결재무제표 기준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10조8000억원 정도로 국내 1위다. 그런데 삼성전자보다 매출이 적은 일본의 소니는 3월말 현재 약 16조원(1조1916억 엔)을 쌓아 놓고 있다. 삼성전자보다 50%가량 더 많은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매출규모가 비슷한 독일의 지멘스도 2009년 9월 말 현재 15조7000억원(101억5900만 유로)의 현금성 자산을 쌓아 놓고 있다. 그런데 소니보다 이익을 훨씬 많이 내는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이 소니보다 오히려 적다는 것은 삼성전자가 그만큼 투자를 활발하게 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결 기준 10조2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지만 소니는 408억 엔의 손실을 기록한 부분을 감안하면 답이 나온다.

미국기업들은 어떤가. 최근 보도에 따르면 요즘 돌풍을 일으키는 애플이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팟, 맥컴퓨터 등을 판매해 그동안 누적한 현금성 자산과 각종 장·단기 투자증권은 지난 6월 말 현재 약 55조원(458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애플 시가총액의 약 5분의 1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44조원(370억 달러), 인텔은 21조원(180억 달러)을 쌓아 놓고 있다.

일부 분석에 따르면 애플의 보유 현금은 내년 회계연도 말, 즉 2011년 9월 말에 78조원(65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애플의 현금성 자산에서의 수익률은 2008년 3.44%, 2009년 1.43%, 지난 6월 0.76%로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끄떡도 않고 계속 쌓고 있다. 애플은 1995년 이후부터는 배당금 지급을 중단한 상태이다. 또한 자사주(自社株)를 매입한 것은 2001년이 마지막이었다. 타(他)기업을 인수·합병한 실적도 거의 없고, 다른 기업에 비해 연구·개발(R&D) 비중이 높거나 임직원들에게 거액 연봉을 주지도 않는다. 작년 3분기 애플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은 3%였는데 마이크로소프트는 9% 수준이었다. 애플에서 근무하는 소프트웨어 개발담당 기술자의 연봉은 약 10만 달러로 구글 직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걱정을 좀 할지는 모르지만 당장 투자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쌓아 놓은 현금이 해당 기업에 잘 쌓여 있다가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크고 과감한 투자로 연결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으면 조바심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채찍보다 당근 필요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공산품(工産品)의 경우 제품가격이 계속 하락한다는 점이다. 주요 공산품은 초기 단계에는 가격이 비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격이 인하되는 것이 보통이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가 가장 그 추세가 심하다.

그런데 최종재(最終財) 가격은 떨어지고 있는데도 부품의 납품가격은 그대로 있다면 이 제품을 만드는 회사는 적자(赤字)에 허덕이다가 도산할 수도 있다. 납품가를 둘러싼 어려운 점이 바로 이런 부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조사한 자료나 실제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종합해 보면 대기업 중에서 중소기업과의 관계에서 대단히 문제가 많은 행태를 보이는 기업이 존재하고 대기업끼리도 어느 기업이 이와 같이 ‘폭력배’ 같은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부분은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해 관계당국이 나서서 해결을 해 주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1차 협력기업을 중심으로 업체들을 키우면서 이들 업체가 세계적인 부품기업으로 성장하는 식의 성공사례들은 다 빼 버리고 오로지 안 좋은 사례들만을 모아서 압박하듯 문제 삼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오히려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모범규준 내지는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만들어 전파하고 대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하며 권고하는 것이 낫다.

또한 중소기업을 우대하고 잘 키워서 발전시키는 대기업에 대해 적절한 ‘당근’, 곧 유인체계를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국가가 주도하는 R&D 사업에서 중소기업에 유리한 안(案)을 제시한 컨소시엄이 채택된 부분 등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처럼 친서민 친중소기업 정책이 좀 더 합리적이고 유인부합적으로 가야만 반짝 효과로 가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동시에 원하는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법인세(法人稅) 세수(稅收)는 37조원 정도이다. 현재 책정 중인 2011년 예산안에 있어서 보건복지부가 신청한 예산안 약 34조원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이다. 그런데 이 법인세 중에서 60% 정도를 이윤규모 기준 상위(上位) 300여 개의 기업이 내고 있고 상위 3000개 기업이 전체 법인세의 80% 정도를 납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뿐인가. 이들이 고용하고 있는 수많은 직원들은 근로소득세도 내고 있다.

親서민 정책이 反대기업 정책 되면 안 돼

우리나라에서는 상위소득자 약 10%가 80% 이상의 소득세를 내고 있다. 기업들이 돈을 벌어 직원들 월급을 주면 이 월급에서 개인소득세가 납부되고, 기업은 임금을 주고 남은 이익에 대해서 따로 법인세를 낸다. 기업이 돈을 잘 벌어 높은 임금을 주면 개인소득세율은 8800만원 이상에 대해 35% 정도까지 걷는다. 법인세율은 2억원 이상에 대해 25%까지 걷고 있다.

법인세와 소득세 합쳐서 약 73조원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정부가 거두어 들여 사용하는 250조원 정도의 세수 중에 상당 부분이 대기업과 관련된 부분이라는 사실이 고려되어야 한다. 정부가 서민을 위해 벌이는 수많은 사업이 바로 이들이 버는 소득 덕분에 가능해진다는 부분이 잘 감안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대기업들은 소득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벌어 오고 있다. 국내에서 남의 돈을 빼앗아 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친서민 정책이 결코 반(反)대기업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친서민 정책은 궁극적으로 돈이 엄청나게 드는 정책이다. 그런데 정부는 돈을 버는 조직이 아니라 돈을 걷어서 쓰는 조직이다.

친서민을 위해 써야 할 돈을 어떻게 거둘 것인지는 분명하다. 버는 쪽에서 거두어서 나누어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왜 그리 적게 거두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지금은 법인세를 낮추는 추세이다. 대만이 17%, 싱가포르는 16.5%이다. 우리는 과표(課標) 2억원 이상에 대해 20%로 낮추려다가 이를 유보한 채 25%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기업들은 다국적화하고 있다. 어느새 복수(複數)국적을 가지고 국적을 여기저기 옮겨 다닐 수도 있게 되어 버린 셈이다. 법인은 개인과는 다른 존재이다. 유혹하는 나라도 많다. 그럴수록 대한민국에 본적(本籍)을 두고 못 움직이게 잘 달래야 한다.

사실 현(現) 정부 초기에 내세운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도 그렇다. 이 정책이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이나 기업가만을 위한 정책은 아니었다. 비즈니스 잘되면 회사도 좋고 경영자도 좋고 종업원도 좋아진다. 회사가 돈을 잘 벌어 직원들이 거하게 회식이라도 하게 되면 음식점도 잘되고 노래방도 잘되고 그 옆에서 장사를 하는 치킨집도 잘되고 라면집도 잘된다. 결국 돈은 돌고 돈다. 모두가 잘 벌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왜 그런 부분을 제대로 국민들에게 홍보를 못한 것인가. 하기야 진정한 본의를 왜곡하고 비틀어 대는 극성스런 세력들에 의해 조롱당한 셈이 됐지만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궁극적으로 ‘경제 프렌들리’, ‘라면집 프렌들리’, ‘포장마차 프렌들리’를 거쳐 ‘서민 프렌들리’를 추구하는 정책이었다는 것은 제대로 홍보되지 못했다. 1차 효과가 2차·3차 효과로 이어지는 부분을 왜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는지, 일단 비즈니스가 잘되어야 서민들도 행복하고 좋은 일이 많다는 것이 왜 분명하게 전달되지 못했는지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대기업 때리기는 경기 회복에 마이너스

‘기업 때리기’가 계속되면 대기업들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해외로 나갈 수도 있다. 지난 7월 15일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시에서 열린 LG화학 전기자동차용 배터리공장 기공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구본부 LG회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물론 돈이 도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조금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지적이 됐어야 했다. 북한이 못사는 것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좋은 기업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닌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들이 황금알을 계속 낳을 수 있도록 관리해 주고 도와주고 뒷받침을 해 주어야지 배를 가르려 하면 큰일이다. 복지를 부르짖던 참여정부에서 양극화(兩極化)는 엄청나게 심화됐다는 부분도 강조할 만하다.

사실 최근의 분위기를 보며 걱정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적으로는 편가르기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많다. 친서민이 반기업이 아닌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기업 때리기 식의 분위기가 나오면 이는 경제 전체로 볼 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겨우 되살아나는 경제의 회복을 더디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가진 자’가 더 베풀라는 식으로 분배 위주의 분위기가 형성되면 기업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문제를 세심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기업들의 성과에 대한 인정과 기(氣)살리기가 이루어질수록 긍정적 분위기 속에서 국내투자가 활성화된다는 점도 무시하기 힘들다. 기업은 자신이 영업을 하는 데에 있어서 긍정적인 환경을 찾아 움직인다. 소위 ‘발로 하는 투자’가 일어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 기업이라고 그냥 국내만 바라보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서민의 개념도 좀 정확히 해야 한다. 그냥 못사는 사람, 여유가 없는 계층 정도로 막연하게 이해하기보다는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해 이미 혜택을 받는 계층 혹은 그 이상의 차(次)상위 계층 등 방향을 분명히 하고 정밀 유도탄을 쏘듯이 이들 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경우 예산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근 얘기되는 복지의 전달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예산집행이 중복되기도 하고 제대로 집행이 안되는 부분에 대한 개선만으로도 이들 계층에 대한 수혜(受惠)의 체감도(體感度)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한 복지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힘들지 않은 계층이 어디 있겠는가. 이 부분에 있어서 정책의 방향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엄청나게 쏟아지는 요구들을 채 수렴도 못하고 파산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나눔’과 ‘키움’ 병행되어야

우리 경제의 규모는 1000조원 정도이다. 이 중 250조원 정도를 정부가 걷어서 쓰고 있다. 1인당 평균소득 약 2만 달러 정도로 볼 때 아직은 좀 부족한 분위기이다. 어쩌면 747공약에 나타난 4만 달러 정도는 되어야 좀 더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의 실행이 가능해질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나눔’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열심히 ‘키움’ 프로젝트가 진행되어야 한다. 지난 기간 동안 소홀히 했던 키움의 프로젝트가 이명박 정부에 남아 있는 과제이다.

이명박 정부는 진정으로 서민을 위하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야 한다. 너무 소리를 높일 필요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진정으로 서민을 위하는 길은 우리 기업과 서민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대립각을 세우면서 반대기업 정서를 부추긴다면 정책은 더욱 힘들어진다. 잘되는 기업에 대한 분노가 쌓이면 더 많은 분배의 요구가 나타나고 결국 세금이 오르고 부담이 커지면 기업들의 성과에 지장이 올 수도 있다. 성과가 나빠지기 시작하면 기업들은 도요타처럼 납품단가를 더 낮추려 들 수도 있고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들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그래도 안되면 우리 기업들이 닛산처럼 글로벌 아웃소싱에 나설 수도 있고 이렇게 되면 수많은 중소기업들은 납품기회를 아예 놓친 채 도산(倒産)의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뒤에서 보일듯 안 보일듯 경제를 살리면서 계속 국민들에게 기업의 중요성과 역할을 부각시키고 기업과 국민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개선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서민을 위하는 길이다. 동시에 금융 의료 관광 회계 법률 컨설팅 등 내수형 고급 서비스 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서 일자리를 되도록 많이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남은 2년반 현 정부가 키다리 아저씨처럼 묵묵히 국민을 위해, 경제를 위해, 서민을 위해 일하고 큰 성과를 내는 정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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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론] 대통령의 ‘대기업 때리기’

정치권이 기업 때리면, 기업은 외국으로 나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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