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농업국을 찾아서] 낙농업 강국, 뉴질랜드 르포 : 월간조선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여학생은 연방 입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를 2학년 때 자퇴한 그는 뉴질랜드의 시골 마을로 유학을 떠나는 길이었다. 배낭여행을 다녀온 친오빠 추천으로 뉴질랜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지만,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단다.

10대(代)에 먼 나라에서 혼자 지낸다고 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오늘날 뉴질랜드를 찾는 사람의 절반 이상은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이란다.

뉴질랜드 대사관 관계자는 “교민 3만명 중 절반 이상은 영어를 배우러 온 유학생”이라고 했다. 이 나라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12시간 만에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에 착륙했다. 뉴질랜드는 남서태평양에 있는 섬나라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이 나라는 1907년에 독립했고, 영국 연방의 일원으로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입헌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 북섬과 남섬 2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북섬에는 최대 도시인 오클랜드와 수도 웰링턴, 남섬에는 크라이스트처치 등이 있다.

지난 6월 19~ 26일 뉴질랜드를 방문했다. 이 나라 농업산업의 경쟁력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뉴질랜드는 남극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인 고로 이 시기가 겨울철이다. 한국에서 올해 때이른 불볕 더위를 경험해서인지, 창밖으로 내리는 부슬비가 유난히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까다로운 보안 절차 거쳐 뉴질랜드 입국

해밀턴의 농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젖소들.

오클랜드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 꽤 오래 걸렸다. 입국장의 줄이 길어서가 아니라, 까다로운 짐 검사 때문이었다. 개들이 가방 하나하나에 대해 냄새를 맡았고, 승객의 절반 이상은 공항 보안대에서 짐을 풀어야 했다. 기자는 단출한 가방 하나를 가져갔던지라 가방을 열지는 않았지만, 별도의 X레이 보안대를 통과해야 했다. 거의 미국 입국 때의 수준이었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뉴질랜드 농림부 직원 1400여 명 중 100명 이상이 검역관계 직원이라고 했다. 농림부의 주요 임무가 자국(自國) 환경 보호 및 생물안전성 등의 검역 관리여서, 외국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이 외부에서 문제가 되는 동식물을 소지하지 않았는지를 일일이 살펴본단다.

6박7일 동안 뉴질랜드를 두루 둘러보고 난 뒤 느낀 점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연의 축복을 받은 나라’다.

빙설로 뒤덮인 산악지대며 빠른 흐름의 강, 탁 트인 해안선, 맑은 호수, 한가로이 놀고 있는 소와 양, 사슴들…. 그러고 보니 뉴질랜드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국토가 우리나라의 두 배(26만8680㎢)인 뉴질랜드의 인구는 400만명뿐이다. 그 넓은 땅에 서울 인구의 5분의 1이 산다. 그런데 양이 3200만 마리, 소가 420만 마리, 사슴이 170만 마리가 넘는다. 사람보다 동물을 만나기가 훨씬 쉬운 곳이 바로 뉴질랜드다. 뉴질랜드가 낙농업 대국이 된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을 거다.

일요일 오전에 도착해서인지, 오클랜드 다운타운은 무척 한가로웠다. 특이한 점이라면 게르만족으로 보이는 유럽인들, 가무잡잡한 아프리카인들부터 동양인들까지, 도심에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다는 점이다. 뉴질랜드가 이민자를 받아들여 세운 국가이다 보니 다양한 인종이 공동생활을 한다.

오후 4시가 되자 시내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 있었다. 우리와 같은 화려한 밤문화는 일절 없는 곳이다.

농가당 평균 250마리 젖소 사육

폰테라에 우유를 납품하는 목장 청년.

뉴질랜드에는 몇 개의 산업이 있다.

유가공 낙농산업과 동부 해안 지역에 성업 중인 키위와 꿀, 남섬 지역의 사슴산업 등이다.

오클랜드에서 동쪽으로 두 시간을 달려 내륙지역 해밀턴에 도착했다. 젖소 농장 주인은 으레 구레나룻을 기른 풍체 좋은 할아버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핸섬한 30대의 청년이 기자 일행을 맞았다. 뉴질랜드에서는 농장을 운영하는 20, 30대의 젊은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목장 주인은 총 62㏊ 면적의 지역에 총 210마리의 젖소를 키우고 있다. 뉴질랜드의 농가는 평균 250마리의 젖소를 키운다. 목장이라고 해서 별도의 장치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들판과 젖소들의 우유를 짜는 착유실이 전부다. 쌀쌀한 겨울 바람이 부는 와중에, 젖소들이 한가롭게 들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목장 주인의 설명에 따르면, 우유를 생산할 수 있는 젖소는 통상 2~10년차다. 한 마리가 생산하는 우유는 하루에 보통 25리터. 용기로 치면 100~150개 정도다. 개중에는 20년 넘어서까지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도 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뉴질랜드의 젖소들은 정해 놓은 울타리를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는다. 농장 주인이 사료를 먹이는 일은 절대 없다. 100% 자연방목. 이것이 뉴질랜드 젖소들의 생활원칙이다.

“우리는 곡식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소에게 먹일 사료를 별도로 재배하지 않습니다. 소를 방목해서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게 하는 것이 우리의 최대 경쟁력입니다.”

―소들이 먹을 풀은 충분한가요.

“뉴질랜드 농가의 매년 가장 큰 걱정거리는 ‘올해 비가 충분히 와서, 풀이 풍성하게 자랄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인근 국가인 호주는 한동안 낙농업이 번성했지만, 비가 오지 않아서 오늘날 쇠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농가는 일기예보를 무척 주의 깊게 봅니다. 민간에서 관리하는 기상정보를 농가에서 돈을 지불해 가면서 매일 체크합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풍부한 강수량과 목초를 갖고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여러 조치를 취합니다.”

큰 고민거리는 강수량

―어떤 조치입니까.

“‘라이글라스’와 ‘클로버’ 풀이 주로 자라는데 하절기인 12~ 2월에는 풀이 풍부하고, 6~8월의 동절기에는 부족한 편입니다. 목초가 풍부한 봄에 풀을 뜯어 겨울용으로 대비합니다. 또 매년 10월경에 모든 소에 대해 인공 수정에 들어가서 이듬해 7월경에 일괄적으로 분만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통상 풀이 부족한 동절기에는 소들이 착유를 하지 않고 쉽니다. 착유는 8월 말부터나 이뤄지죠. 계절별 강우량에 대한 정보를 통해 소의 개체 수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농장 주인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 뉴질랜드의 젖소들은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간을 자유롭게 목장을 돌아다닌다. 이들은 젖이 차면 착유실을 찾는다. 보통 새벽 4~5시에 한 번, 오후 3~4시에 한 번 착유가 이뤄진다. 목장 주인들이 본격적으로 바빠지는 때가 이때다.

“목장 주인들은 소의 젖에 착유기를 꽂고 우유를 짜는데, 한 번에 40마리의 젖을 짤 수 있습니다. 우유는 파이프를 통해 저장고로 이동되고, 이 과정에서 불순물이 걸러집니다. 저장 탱크로 자동 이동된 뒤 온도를 낮추는 쿨링 작용을 거치게 됩니다. 처음에 추출된 우유는 소의 체온과 같은데, 두 번의 과정을 거쳐 섭씨 3~ 5도로 낮춰져 보관됩니다.”

하루에 두 번씩 우유를 저장 탱크에 저장하면, 낙농조합인 ‘폰테라’라는 회사에서 하루에 한 번씩 이것들을 수거해 간다.

이 농가는 지난해 총 7만4000kg의 유고형분(밀크솔리드, Milk Solid)을 생산했다. 1kg당 6달러(이하 뉴질랜드달러로 환산, NSD)를 받아 총 44만4000달러(약 3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뉴질랜드 농장 주인들의 대부분은 연 매출 수억원대의 소득 최상위 계층이다.

농장 주인은 “방목 위주의 낙농을 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써야 할 것은 없지만, 매일 정해진 시간에 똑같은 착유 작업을 해야 하는 일은 수고롭다”며 웃었다.

뉴질랜드 최대기업, 폰테라

폰테라 홍보담당 닉 스트라이드 씨.

하지만 뉴질랜드의 낙농산업이 단지 풍족한 강수량과 목초지, 그리고 400만 마리가 넘는 젖소 덕분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의 진정한 경쟁력은 농장 주인들이 모여 만든 ‘폰테라’라는 회사에 있다.

‘폰테라’는 우리나라의 ‘서울우유’와 같은 낙농업 조합이다. 우리에게 그다지 친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뉴질랜드에선 가장 큰 회사다. 우리나라 ‘삼성’ 같은 회사다.

오클랜드에 위치한 폰테라 본사에서 홍보담당 닉 스트라이드 씨를 만나 설명을 들었다.

“뉴질랜드는 1950년대 초반 영국에서 독립을 했을 때에는 유럽의 목장 역할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대다수의 낙농제품을 영국으로 수출했죠. 수출의 판로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고, 그동안 해 왔듯이 양질의 제품만을 생산하면 됐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영국이 1973년에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하면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낙농 제품을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오일쇼크 등으로 인해 뉴질랜드의 낙농업체 대다수가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됐습니다. 뉴질랜드 정부는 농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전체 예산의 4% 가량을 농가에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가중되자, 뉴질랜드 정부는 농가에 지원했던 보조금을 완전히 철폐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1984년입니다.”

―정부와 농가의 마찰이 심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만.

“몇 년에 걸쳐 농가의 피켓 시위가 이어졌지만, 정부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입장에서 농가에 추가 지원을 할 경우 국가가 부도 상태에 내몰리는 상황이어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 농민들은 현명했습니다. 당시 뉴질랜드 농가에는 10여 개의 낙농조합이 있었는데, 합병을 통해 두 개가 남았습니다. 낙농제품의 판매기능을 수행하는 뉴질랜드 데어리보드(NZDB)와 키위(KIWI)조합이 대승적으로 화합해, 결국 폰테라(FONTERRA)라고 하는 거대 낙농기업이 탄생됐습니다.”

―폰테라의 주요 기능은 뭡니까.

“뉴질랜드 원유의 95% 이상을 집유해 원유 수요자에게 공급하는 거대 집유 주체입니다. 또 내수용, 수출용 유제품을 제조하는 업체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폰테라는 지난 2009년을 기준으로 그룹 자산 110억 달러, 매출 160억 달러를 기록했다. 순익만 10억 달러다. 140여 개국과 거래하며 총 1만70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낙농산업의 미래는 밝다”

폰테라 본사 입구에는 이 조합의 주주인 농장주 1만724명의 이름이 깨알 같은 글씨로 모두 적혀있다.

앤드루 페리어 씨는 7년 전 폰테라 이사회에 의해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농장주 1만명 이상이 대주주인 폰테라의 이사회는 총 13명의 이사들로 구성돼 있다. 9명은 농장 주인 대표자들이고, 4명은 외부에서 선임된 비즈니스 관련 사람들이다. 농장주 대표자 9명은 농장 주인들의 투표로 선출되는데, 3년 임기에 연임이 가능하다. 이들 13명은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물론이고, 회사의 대표이사 선출권을 갖고 있다. 페리어 씨는 뉴질랜드 낙농업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봤다.

“낙농산업은 미래 가치가 큰 산업입니다. 2006년 110억 달러였던 매출은 2008년 190억 달러에서 2009년 16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2008년에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다소 매출이 줄었지만, 2012년에는 다시 180억 달러로 올라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폰테라에서 수집하는 원유는 국내외 시장 수급에 의해 자유롭게 결정됩니다. 한동안 1kg에 5달러 내외였는데, 2009년에 6달러 이상에 거래됐습니다. 그만큼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얘기이고, 전 세계적인 웰빙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여 유제품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주요 경쟁자는 누군가요.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을 기준으로 볼 때 스위스의 ‘네슬레’, 프랑스의 ‘다농’, ‘락탈리스’ 등입니다. 폰테라는 세계 5위의 점유율이지만 시사하는 의미는 큽니다. 다른 제품들이 내수 판매를 하고 나서 수출 시장에 물량을 공급하지만, 우리는 제품의 95%를 수출합니다. 뉴질랜드의 인구가 400만명뿐이다 보니, 우리 출시 제품의 거의 전부를 해외 시장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가 수출지향형 낙농 국가가 될 수 있는 근간을 제공하는 곳이 폰테라입니다. 폰테라는 뉴질랜드 전체 수출의 25%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앤드루 페리어 폰테라 대표이사.

―주요 타깃은 어디입니까.

“최근 아시아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릅니다. 중국에서 질이 떨어지는 분유 문제 등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비싼 폰테라 제품이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아시아 국가에서 자국의 낙농업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자급자족이 되지 않는 국가가 많습니다. 그런 시장을 뚫는 것이 우리의 주요 목표입니다.”

―뉴질랜드 낙농 제품의 경쟁력은 무엇입니까.

“천혜의 자연조건을 이용해서 100% 자연방목을 해서 효율적으로 젖소를 관리합니다. 젖소에서 발생하는 질병 등이 생길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고, 세계에서 최고 품질의 우유를 생산한다고 자부합니다. 또 우유 생산과 유가공 제품의 개발 및 마케팅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유가공업을 규모화하고 세계 시장의 판로를 뚫는 것은 조합인 폰테라의 몫입니다. 폰테라는 농장주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주기 위해 매년 R&D, 소비자 마케팅 등에 10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붓습니다. 결국 농장은 최고 품질의 우유 생산에만 몰두하고, 폰테라는 회사의 마케팅 기법으로 이를 판매하며, 높은 부가가치의 제품 생산에 치중하면 됩니다. 이것이 뉴질랜드 낙농 제품의 경쟁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폰테라가 유명한 브랜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소비자들보다는 식품 원료업체들에 납품을 해서일 겁니다. 매출 중 직접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은 30%뿐입니다. 앞으로는 폰테라를 본격적으로 브랜드화해서, 일반 소비자들을 위한 다양한 제품을 출시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키위 연간 수출 10억 달러

제스프리에 키위를 납품하는 크로스만 씨.

뉴질랜드에서 ‘키위’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는 유의하는 것이 좋다. 세 가지 용도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낮에는 나무 구멍이나 땅속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나와서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인 키위새가 있다. 뉴질랜드의 토종 새 다. 수컷이 ‘키위키위’ 하고 울어서, 토착 민족인 마오리족이 지은 이름이다. 뉴질랜드의 국조(國鳥)이기도 하다. ‘산다래’로 알려진 과일인 키위도 뉴질랜드에서 많이 생산된다. 따뜻한 날씨 덕에 세계 최고의 당도를 자랑한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두 가지가 모두 같은 명칭을 가져서인지, 뉴질랜드 사람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키위’라고 부른다.

오클랜드에서 비행기로 45분 거리 떨어진 타우랑가를 찾았다. 키위 농장인 ‘키위360’을 방문해 그램 크로스만 씨와 얘기를 나눴다.

그의 얘기에 따르면, 키위는 매년 4~6월 첫째 주까지 수확을 한다. 이렇게 딴 키위는 6~8개월 동안 서늘한 저장고에 저장하고, 60~70여 개국으로 수출을 한다. 총 2만5000여 가구가 키위 농장을 하고 있다. 키위는 큰 쟁반(그들은 트레이라고 불렀다) 하나에 보통 30여 개가 들어가는데, 이 지역에서는 일 년에 4만 쟁반을 생산한다고 한다.

“전세계 키위의 25%를 이곳에서 생산합니다. 타우랑가는 키위를 재배하는 데 세계에서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뜨거운 햇살과 풍부한 강수, 따뜻한 기온은 키위의 당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키위 농장주들 중에는 과거에 낙농업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정부에서 보조해 줬던 지원금이 끊기고 나서 새로운 활로를 찾다가 키위로 업종을 전환했습니다. 농장주들이 키위를 생산하면, 조합인 ‘제스프리’에서 키위를 수집해 전 세계 각국에 판매하는 역할을 합니다. 농장은 자신들이 생산한 키위의 양에 따라 이익금을 배분받습니다.”

―키위 종류가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약 70 종류의 키위가 생산됩니다.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늦은 5월경에 추수하는 ‘골드키위’입니다. 기존의 녹색 키위에 비해 신맛보다는 단맛이 강하고, 텁텁한 맛이 줄어들어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품목이죠. 키위 농장주들은 농장을 시작할 때부터 종의 다양화에 관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키위를 1년에 한 번밖에 수확하지 못하다 보니, 종류를 다양하게 해서 최대한 오랫동안 키위를 수확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키위는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따야 하는데, 키위 수확철이 되면 값싼 노동력들이 해외에서 이곳을 찾습니다. 정부는 ‘임시비자’를 이들에게 발급해 키위 농가를 돕고 있습니다.”

크로스만 씨의 말에 따르면, 뉴질랜드 키위 농가는 최근에 ‘빨간 키위’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마누카 꿀

콤비타의 웨인 베이커 수퍼바이저.

타우랑가의 또 다른 명물은 ‘꿀’이다. 뉴질랜드에는 ‘마누카’라고 하는 조그만 자생 나무가 있다. 언덕, 해안, 숲 언저리에서 집단으로 자라는 나무인데, 초여름에 꽃이 만발한다. 이 꽃에 꿀벌들이 모여드는데, 이들이 만들어 내는 ‘마누카 꿀’은 뉴질랜드의 대표 상품이다. 뉴질랜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좋은 기념품이다.

이 꿀을 생산하는 콤비타(COMVITA)를 방문했다. 본사에 들어서자마자, 분홍색의 자잘한 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는 꽃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뉴질랜드에서만 자생한다는 ‘마누카 나무’다. 옅은 핑크색의 매화나무처럼 생긴 것인데, 이곳에서 효능이 좋은 벌꿀이 나온다고 생각하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본사의 웨인 베이커 수퍼바이저로부터 회사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양봉업자였던 클라우드 스트레트포드 씨가 1974년에 회사를 설립한 것이 시작입니다. 작은 가내수공업 형태로 시작했는데, 프로폴리스를 비롯해 양봉 산물인 로열젤리, 벌꿀, 자연건강식품을 생산하면서 회사의 규모를 키웠습니다. 현재에는 미국, 영국, 스위스, 일본, 홍콩, 한국 등의 시장으로 수출하고 있고, 뉴질랜드 전체 꿀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연 매출액은 5000만 달러로, 뉴질랜드에 1000여 개의 대리점망을 갖고 있습니다.”

―마누카라는 것이 뉴질랜드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이라고 들었습니다.

“뉴질랜드는 지리적으로 200만년 이상을 대륙으로부터 고립돼 있었는데, 그로 인해 많은 토속 식물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세계 어떤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죠. 마누카 나무도 그중 하나입니다. 원래 마누카꿀은 원주민인 마오리 부족이 병 치료에 활용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잎과 껍질을 달인 따뜻한 용액은 류머티즘 등 관절 부위에 사용했고, 이뇨제, 진정제, 진통제로 쓰였다고 합니다. 부족들의 상처 치료제로 사용됐던 마누카에 대한 여러 의학적 효능이 1980년대 들어 입증됐죠.”

―콤비타 마누카꿀의 특징이라면 어떤 것인가요.

“뉴질랜드의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에서 채취된 꿀은 1차 품질 테스트를 거쳐 합격된 것들만 원료로 사용합니다. 최고 품질의 꿀을 저온처리해서 꿀의 풍부한 영양 성분과 향을 자연 그대로 보존시킵니다. 유전자 조작이나, 가열처리 등이 이뤄지지 않아 자연에 가장 가까운 형태가 보존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벌꿀은 매년 9~1월에 채취되는데, 일 년에 약 2000톤의 마누카 허니가 수집됩니다. 이 중 콤비타가 취급하는 것이 절반 이상인 1200톤입니다. 원료 선정에서부터 가공단계, 완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품질 최우선 주의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작은 패밀리 비즈니스에서 글로벌 비즈니스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2004년 2700만 달러였던 회사의 매출이 불과 5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2009년에 7100만 달러를 넘어섰죠. 사업군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벌꿀 식품사업이 전체의 46%, 헬스케어 43%, 의학제품 4% 선입니다. 헬스케어는 프로폴리스, 로열젤리 등을 말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마누카가 전세계적으로 그 효능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회사가 작은 양봉업체에서 벗어나 제품의 다각화를 통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날 채비를 마쳤습니다. 매년 매출의 5%를 R&D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습니다. 또 회사 순익의 20%를 자선사업에 헌납해 국가에 이바지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설립자인 스트레트포드 씨는 오는 8월에 100세를 맞는데,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회사의 본사 입구에는 콤비타 마누카꿀을 이용한 다양한 상품이 전시돼 있었다. ‘마누카 허니’, ‘멀티플로라 허니’, ‘프로폴리스 알약’, ‘오메가3’에서 화장품, 치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들이었다.

녹용은 10~40단계까지 등급 매겨 팔아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사슴목장.

뉴질랜드의 수도인 웰링턴에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날아, 남섬의 중심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했다. 공항에 내리는 순간, 뼛속으로 스며드는 한기 때문에 여러 번 옷깃을 여며야 했다. 뉴질랜드는 북섬에서 남섬까지 길게 뻗어져 있어, 같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기온차가 크다고 했다.

공항에서 내려 다시 렌터카를 타고 교외로 두 시간 정도 달렸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뉴질랜드에서 올로케로 촬영했다고 했는데, 영화에서 봤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흰 눈이 가득 덮인 산, 주위를 둘러봐도 사람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광경이 이어졌다. 가장 흔한 것은 사슴과 양, 소였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참 어렵다.

뉴질랜드 양록업위원회의 리스 그리피스 씨, 토니 피어스 씨와 함께 한참을 달려, 사슴 농장을 하고 있는 농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녹용을 생산한다.

녹용은 ‘사슴의 뿔’인데, 부드러운 벨벳 같은 것이 머리를 덮고 있어 영어로는 ‘벨벳’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은 녹용을 전통 한의학에서 가장 강력한 동물성 치료약으로 생각했고, 우리나라에서도 한약 재료로 많이 유통되고 있다.

토니 피어스 씨의 설명이다.

“뉴질랜드에는 북미산 큰 사슴인 ‘엘크’와 붉은 사슴인 ‘레드디어’ 두 종류의 사슴이 주로 방목되고 있습니다. 보통 2~10년생의 사슴이 녹용을 생산하는데, 한 마리당 평균 5kg의 녹용을 생산하죠. 엘크족의 큰 사슴 중에는 20kg짜리 녹용을 생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녹용이 무조건 사이즈가 크다고 해서 좋은 제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닙니다. 굵기, 길이, 색깔의 선명도 등에 따라 크게는 10단계에서 작게는 40단계까지로 등급이 매겨집니다. 녹용은 1년에 한 번 얻을 수 있는데, 매년 10~1월 사이에 채취합니다.”

특수교육 받은 사람만 녹용 채취 가능

뉴질랜드 양록업위원회의 토니 피어스(왼쪽) 씨와 함께 포즈를 취한 사슴 목장 주인.

기자는 목장 주인과 함께 직접 농장을 돌아보기로 했다. 질척거리는 농장을 돌아보기 위해서, 주인에게서 무릎까지 오는 고무장화를 빌려 신었다. 지프를 타고 10분 정도 울퉁불퉁한 산길을 달려 사슴이 방목되고 있는 현장에 도착했다. 가까이서 본 사슴은 생각보다 굉장히 컸다. 사슴의 뿔은 모두 제거된 상태였는데, 사슴의 귀에는 일련번호가 적힌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목장 주인은 “어떤 녹용이 어떤 사슴에게서 나왔는지를 일일이 바코드로 찍는다. 소비자들이 지금 사용하는 녹용이 어떤 사슴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추적할 수 있다”고 했다.

뉴질랜드의 사슴은 젖소와 마찬가지로 100% 방목한다.

“뉴질랜드의 사슴은 푸른 목초지로부터 눈 덮인 산악지대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에서 자유롭게 생활합니다. 사슴이 다른 동물에 비해서 질병 등에 잘 전염되지 않는 동물이기는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그럴 확률이 더욱 떨어집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환경에서, 가장 자유롭게 방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녹용을 20년 동안 채취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떨 때 수확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까.

“부드러운 조직이 최대한 많을 때 수확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뿔심이 석회화하는데, 진행 정도가 최소일 때가 좋죠. 레드디어의 경우는 뿔의 성장이 시작된 후 55~60일 사이에 녹용을 채취합니다. 엘크족은 이보다 조금 늦게 채취합니다. 사슴의 뿔은 매일 2cm씩 자랍니다. 언제 채취를 해야 하는가는 경험상의 노하우인데, 빠른 성장 속도 때문에 하루라도 지체없이 채취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채취합니까.

“뿔은 연결 부위 바로 윗부분을 골절기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절단합니다. 뿔의 짧은 부분은 그대로 남깁니다. 사슴에게 스트레스가 없도록 하기 위해 교육을 받은 사육사들이 마취제로 사슴을 마취한 이후에 신속하게 뿔을 제거합니다. 수의사나 특별한 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농부는 녹용을 채취할 수 없습니다.”

―녹용을 채취하고 난 이후에는 어떤 과정이 이어집니까.

“바코드를 부착해 어떤 사슴에게서 어떤 제품이 나왔는지를 기록합니다. 사슴의 상태에 따라 얼마나 양질의 녹용이 생산되는지가 결정됩니다. 녹용은 이후 녹용 가공 공장으로 이송됩니다.”

뉴질랜드의 사슴 농장 사업 일으킨 한국인

뉴질랜드 사슴 농장 사업을 일으킨 이성방씨 부부.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교민은 3만명이 고작인데, 그중에서도 1만5000명이 유학생인 뉴질랜드에서 한국인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녹용 가공업이다. 오늘날 뉴질랜드 녹용산업을 활성화한 사람이 한국인 이성방 감마내추럴프러덕트 대표이사다. 이 대표는 이 공을 인정받아, 영국 여왕으로부터 공로 훈장을 받았다.

뉴질랜드의 현대적인 사슴 사육 기술과 녹용 가공 기술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뉴질랜드의 녹용 가공 기술은 세계 최고다.

교직에 몸담았다가 무역업을 시작한 이 대표가 사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0년대 초였다. 당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뉴질랜드와 젖소 합작 사업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외무부에 근무했던 이 대표의 친구는 “뉴질랜드에 젖소 이외에 사슴이 많다”는 정보를 줬다.

“뉴질랜드 정부에서 사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더군요. 사슴이 농작물을 많이 해쳐서, 사슴을 잡으면 나라에서 보상을 해 주고 있었습니다. ‘사슴 농장’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뉴질랜드에 가서 헬리콥터 40대를 가진 팀 모리스라는 친구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슴을 죽이지 말고, 마취제를 써서 농장에 넣으라고 가르쳤습니다. 사슴 목장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는데, 뉴질랜드 사람들이 사슴의 뿔을 그냥 막 버리고 있는 겁니다. 사슴은 일 년에 한 번씩 뿔이 새로 나기 때문에, 자르지 않아도 수놈들끼리 다툼을 벌여서 뿔이 떨어지는데, 이것을 버리고 있더군요.”

이때까지만 해도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사슴 뿔’은 무용지물이었다. 이성방 대표가 목장을 돌아다니며 사슴뿔을 가져가겠다고 하니, 뉴질랜드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냥 버리던 물건인데 제가 가져가겠다고 하니까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10kg에 15달러 정도를 내고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사람들이 눈치가 빤하니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거저 가져가게 두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작은 공장을 하나 차려 놓고, 생녹용 말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당시 뉴질랜드 농수산부에서 검역하는 사람이 5명 있었는데, ‘녹용을 말려서 수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했더니 전부 다르게 답했습니다. ‘너희는 왜 전부 말이 다르냐’고 따져물었더니, 사슴 산업에 대한 원칙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초창기였습니다. 생녹용 중 일부를 겨우 말려서 한국 시장에 팔았습니다. 경동시장을 비롯해, 한국의 약재시장에서는 녹용이 고가(高價)로 거래되고 있었거든요. 1년에 1톤 정도를 넘겼습니다.”

―녹용 건조 기술을 완벽하게 습득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한 7~8년이 걸렸습니다. 사슴 목장을 할 요량으로 뉴질랜드에 갔지만, 녹용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 별다른 노하우가 없었습니다. 컨테이너 박스 하나에 진공 드라이어로 말리는 데서부터 시작했죠. 녹용에서 피가 다 빠져서 버리는 물량이 더 많았습니다.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습니다. 제가 소대장 출신인데, 그 자존심 하나로 버텼어요(웃음). 경험이 실력을 양성하는 절대적 조건입니다. 수차례 한 끝에 1980년대에 들어서야 생녹용 중에서 상한 것이 단 한 개도 없이 완벽하게 말릴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부터, 이성방 대표의 녹용 사업은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두 가지 악재가 겹쳤다.

정부의 철저한 관리하에 녹용 출하

당시 한국은 소련과 중국에서 녹용을 납품받고 있었다. 난데없이 수출입협회장이 “뉴질랜드산 녹용은 못 받겠다”고 했다. 기존 납품 업체들의 ‘텃세’가 분명했다.

이 대표는 한국으로 들어와 협회 사람들을 앉혀 놓고, 소련제, 중국제, 뉴질랜드산 녹용을 꺼내 단면을 칼로 서걱서걱 썰었다. ‘제품에는 차이가 없다’며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한국에서의 난관은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두 번째 문제는 뉴질랜드 내부에서 생겼다. 동양인이 무엇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자꾸 녹용을 사 가지고 가자, 뉴질랜드 사슴 농장에서 녹용 산업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10kg을 15달러에 사 가라던 사슴 농장주들이 갑자기 50달러를 내놓으라고 했다.

“터무니없이 가격을 올려서 더 이상 사업을 하지 못하겠다”고 뉴질랜드 농장주들에게 엄포를 놨다. 뉴질랜드 사람들이 이 대표를 붙잡았다. “갑자기 가격을 올리지는 않겠다. 그런데 당신의 나라라는 한국은 어디냐. 아프리카 인근에 붙어 있느냐”며 노골적으로 그의 신경을 긁었다. 생녹용을 뉴질랜드 목장 주인에게 구입해서 가공, 판매를 혼자 다 하는 세월이 이어졌다.

서울의 경동시장에 판매를 해 놓고 돈을 떼이는 일도 잦았다.

1980년대 중반에 돼지피를 녹용에 주입시켜, 중량을 늘리는 이른바 ‘돼지피 녹용 사건’이 있었을 때다. 이 대표가 거래했던 업자 몇 명이 구속되면서 그는 결제대금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녹용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뉴질랜드 사람들이 그에게서 노하우를 뺏으려고 했던 적도 여러 번이다.

이 대표는 “뉴질랜드 직원들에게 기술을 뺏기지 않기 위해 낮에는 엉뚱한 일을 시키고, 정작 해야 하는 녹용 말리는 일은 직원들이 퇴근한 이후에 혼자 밤새워 하곤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1984년에는 뉴질랜드에 양록업협회가 정부 규정에 의해 설립됐다. 사슴 제품의 거래는 직접 하지 않고 생산업자, 가공업자 및 마케팅 회사와 긴밀하게 협조해서 각종 사슴 제품을 홍보하는 일을 담당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양록업계와 정부는 연평균 미화 21만 달러를 녹용의 여러 연구를 위해 투자하고 있다. 양록업협회는 매년 443톤(한화 300억원 정도)의 녹용을 수출하고 있다. 전세계 시장의 70% 정도다. 대다수는 한국의 약재 시장으로 들어온다.

그가 녹용 사업으로 꽤 많은 이문을 남겼다는 소문이 퍼지자, 한국인, 중국인들이 우후죽순으로 뉴질랜드에 녹용 가공업체를 세운 적도 있다. 1990년대 후반에 뉴질랜드에는 30여 개의 녹용 가공업체가 있었다. 지금은 7~8군데밖에 남지 않았다. 경쟁력이 없는 업체는 자연적으로 도태됐다. 요즈음에도 녹용 가공 공장은 뉴질랜드 정부의 허가를 받아 운영한다.

이 대표는 “녹용을 채취한 다음에 농장에서 동결시킨 후 농림부와 뉴질랜드 식품안전청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 위생적으로 가공해야 한다. 최소 3개월에 한 번씩 시설 성능 검사를 받고, 기준에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매주 정부 관리가 공장을 오는 등 정부 차원에서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역할은 최소한

뉴질랜드 농식품부 칼슨 씨.

뉴질랜드 낙농업과 키위, 양록 사업을 취재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정부가 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농장 주인들이 스스로 합심(合心)해 폰테라와 제스프리를 키워 냈고, 민간인이 사슴 사업에 뛰어든 이후에야 정부가 뒤늦게 이를 위한 지원대책을 마련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뉴질랜드 농식품부(MAF)의 크리스 칼슨 씨를 만나서 설명을 들었다. 관청은 수도 웰링턴에 모여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원래 1960년대 이전까지는 정부의 개입이 전혀 없다가, 1970년대에 주요 수출국이던 영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농가에 지원을 했습니다. 하지만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1984년부터 농가에 대한 지원이 완전하게 끊겼죠. 농장 주인들이 몇 년 동안 정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했고, 갈등 관계가 이어졌습니다. 정부는 모든 것을 시장 경제에 맡겨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낙농업이 완전히 몰락할 것으로 생각됐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농민들 스스로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낙농업에서 키위 산업으로 바꾼 사람도 있었고, 소규모의 목장들은 서로서로 합병했습니다. 농민들이 서로 뭉쳐서 조합을 만들고, 다시 조합이 조합들과 합쳐지면서 중소기업 수준의 규모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를 통해 거대한 힘을 가진 폰테라가 생겼고, 이들은 농가에 최대한의 이윤을 남겨 줄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농가 자체에서 정부의 지원을 거부할 겁니다. 농민들의 사회적인 지위가 올라갔고, 수익이 늘었습니다. 자유경쟁 체제하에서도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어느 나라에 못지않게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럼 뉴질랜드 농식품부의 주요 기능은 뭡니까.

“뉴질랜드에서 정부란 낙농업자들이, 양록업자들이, 과일 재배업자들이 사업을 하기 좋도록 제도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주로 연구를 하고, 위생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합니다. 또 공항을 통과할 때 봤듯이 외부의 동식물에 대한 검역조치, 방역질병 관리 등을 주로 합니다. 뉴질랜드 산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강수량에 대한 예측과 댐 개발 기술, 물의 효율적인 저장법 개발 등 거시적인 것을 주로 합니다. 정부에서 직접적으로 지원을 하는 경우는 지극히 한정돼 있습니다.”

원주민 마오리족과 사업 파트너 맺은 한솔홈데코

한솔그룹의 계열사인 한솔홈데코는 1996년부터 목재를 자체 공급하고 원재료를 다각화할 목적으로 뉴질랜드 동해안 지역에 진출했다. 토착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조인트 벤처를 설립했다. 오는 2017년부터 이곳 뉴질랜드 땅에서 목재를 벌채해서 해외에 판매할 예정이다.

박승수 지사장의 ‘영업 파트너’는 원주민이다.

박 지사장은 “뉴질랜드의 소나무류는 성장이 한국보다 6배 정도 빠르고, 양호한 목재를 생산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기후조건을 갖고 있다”며 “향후 이곳에서 생산되는 나무를 중국, 인도 시장에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7년부터 약 7억2000만 달러의 현금 수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 지사장은 “뉴질랜드 토착 원주민을 상대로 사업을 하다 보니 애로사항이 많다. 발음이 생소한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하고, 외부인과의 친화력이 높지 않아 애를 먹지만 직장인들이 흔히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며 웃었다.

빡빡한 도심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적응하는 데 꽤 애를 먹을 것 같은 곳이 뉴질랜드였다. 청명한 하늘과 풍부한 바람, 깨끗한 물까지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한껏 간직하고 있는 나라, 뉴질랜드. 하지만 뉴질랜드가 오늘날 낙농업 대국이 되고, 세계 시장에서 이름을 떨치는 여러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 단지 하늘의 뜻만은 아닌 듯싶다. 한때 세계 최고의 부유한 국가였다가 국가 부도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하나가 된 농민들의 현명함이, 강국(强國)을 만든 요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