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글로벌 금융위기와 新자유주의 : 월간조선

역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총칼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한다. 다른 어떤 사람은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움직인다고 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역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총칼도, 카리스마도 아니다. 그것은 ‘생각’이다. 사람이 가진 생각이 역사를 움직인다.

생각해 보라! 100여 년 전 대원군이라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던 몇 가지 생각이 100년 한국 역사를 상당부분 규정짓지 않았나? 인류가 야만인에서 이렇게 발전된 문명을 갖게 된 것도 사실 몽테스키외, 존 로크 같은 몇몇 사람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떠올렸고 그 생각, 즉 ‘인권 존중’이라는 생각이 세상에 퍼지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신자유주의를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

인류의 삶을 움직이는 큰 생각을 우리는 ‘이념’이라고 부른다. 되돌아보면 인류의 역사는 항상 이념이 요동치면서 거대한 변화를 겪어 왔고 동시에 큰 사건은 항상 이념의 변화를 몰고 왔다. 20세기 들어와서 이렇게 이념이 요동친 사건이 세 번 있었다.

첫째, 1917년 일어난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은 역사적으로 이념이 만들어 낸 가장 큰 사건이었다. 이것은 몇천 년 계속된 사유(私有)재산제라는 제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면서 지구상 가장 크고 급격한 정치적·사회적 변혁을 가져왔다.

두 번째는 1929년의 대공황(大恐慌)이었다. 이것은 애덤 스미스 이래 300여 년 지속된 ‘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이념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래로 정부가 더 이상 도둑이나 잡는 야경적(夜警的) 역할에 머물지 않고 사회·경제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소위 ‘큰 정부(Big Government)’의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사건이었다. 이것은 그때까지 세계를 풍미하던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뿌리째 뽑아 버렸을 뿐 아니라, 1929년 대공황 발발 이후 역사의 뒤안길을 헤매고 있던 ‘자유주의’라는 이념을 화려하게 부활시키는 대변화를 가져왔다.

이렇게 부활한 자유주의는 미국이라는 초(超)강대국의 강력한 지원하에 ‘신(新)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20여 년 동안 세계의 정치적·경제적 구조를 그 근저(根底)에서 변환시켰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는 세계화(世界化)라는 역사적 흐름을 가속화시키면서 기업활동의 자유 확대를 통한 부(富)의 증가를 주도하는 이념으로 맹활약을 했다. 이 신자유주의는 오랫동안, 앞으로 적어도 수십 년 동안 세계를 주도할 듯이 보였다.

하지만 2008년 가을, 이렇게 위세 높던 신자유주의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온 것이다. 그러면서 신자유주의는 뿌리가 흔들리는 타격을 받는 듯했다. 금융위기는 미국 월스트리트의 방종과 탐욕 때문에 왔고 그 탐욕과 방종을 야기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로 지목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너도 나도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예고하기 시작했고 또 새로운 이념의 도래를 노래했다. 과연 신자유주의는 끝이 났는가?

지난 1년 반 동안 세계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세계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의 가닥을 잡고 있는 이 시점에서 세계의 지성(知性)들은 커다란 하나의 숙제를 안게 되었다. 그것은 과연 이 신자유주의, 경제 위기의 주범(主犯)으로 지목되는 이 이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는 숙제이다. 이 이념을 송두리째 내던져 버리고 새로운 이념을 모색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일부 수정(修正)만 하고 그 근간을 가져가야 할 것인가? 수정을 한다면 얼마나 해야 할 것인가?

진보주의자 중에는 신자유주의를 송두리째 던져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이념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왜일까? 반면 신자유주의를 신봉해 왔던 보수주의자들 역시 ‘이것이 그 죄과(罪過)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계속 세계를 지배하는 이념이 되어야 한다’고 떳떳이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또 왜일까?

과연 우리는 이 이념을 어떻게 재정비해야 할까. 역사적 숙제이다. 신자유주의를 새롭게 정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것의 정체와 또 그것의 공(功)과 과(過)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가 세운 큰 공로는 떡을 키운 것

정부의 시장개입을 반대했던 애덤 스미스.

신자유주의란 도대체 어떤 생각인가? 그것은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最小化)하고 시민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줄 때 떡이 가장 커진다는 생각이다. 즉 시장(市場)의 원리를 중시하는 생각이다. 자유가 바로 ‘시장’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애덤 스미스가 제창한 ‘자유주의’와 다른 점은 후자(後者)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부의 개입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았지만 (‘정부는 도둑이나 잡으며 뒤에 비켜서 있으라’: 야경국가론), ‘신’자유주의는 정부가 보통 때는 뒤에 비켜서 있어야 하지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데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는 시장에 개입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지난 20~30년 동안 어떤 공을 세웠는가?

한마디로 신자유주의는 세계의 떡을 엄청나게 키웠다. 신자유주의가 이루어 준 가장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업적은 한마디로 ‘세계화’이다. 신자유주의가 자유를 세계 전체로 확대시켜 놓으면서 세계는 더 가까워지고, 더 하나가 되었고, 무엇보다 더 자유로워졌다. 이것이 떡을 엄청나게 키운 것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경쟁을 격화시켰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신자유주의 이전까지는 대체로 자국(自國) 내 몇몇 기업과 경쟁하면서 소위 골목대장에 만족하며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기업들은 해외에서는 물론 자기 안방에서도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해야 되는 상황을 맞게 되면서 경쟁의 강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세졌다.

貧富격차의 심화

특히 중국에서 쏟아져 나온 싼 물건들은 전(全) 세계 모든 기업에 엄청난 가격압력을 가했다. 기업들은 죽을 맛이었지만, 세계 시민들에게는 크나큰 축복이었다. 왜냐하면 경쟁이 계속 값을 낮추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값이 낮아짐으로 해서 소비자들의 주머니는 더 두둑해졌고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기업들에 새로운 사업기회와 더 많은 매출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혜택은 바로 그렇게 낮아진 값 덕분에 인플레가 잡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플레가 잡히니 이자율이 낮아졌다. 즉 돈의 값이 싸진 것이다. 돈 값이 싸진다는 것은 기업들이 투자하기가 그만큼 더 쉬워졌다는 것이고, 월부(月賦) 인생인 선진국의 소비자들은 월 납입액이 줄어들면서 더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투자와 소비가 같이 늘어났고 이러한 선(善)순환이 전 세계의 떡을 엄청나게 키워 주었던 것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지난 20년 동안 세계 빈민층을 구제한 비율이 그 이전 100년 동안의 그것보다 훨씬 더 컸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떡을 잘 키우는 것을 본 세계의 많은 나라 지도자들, 그리고 지성들이 신자유주의의 신봉자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이러한 공은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 그랬기 때문에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신자유주의를 지목하면서도 단칼에 그것을 폐기하자는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과(過)는 무엇일까? 그것은 공의 그늘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떡이 클 때는 빈부(貧富)의 격차가 심해진다.

왜냐하면 떡을 키울 때 사람들이 그것을 똑같은 몫으로 나눠서 키우지 않기 때문이다. 100명이 사는 한 마을이 떡을 100에서 200으로 키웠다고 하자. 그러나 그 추가된 100은 100명이 똑같이 1씩 키우는 것이 아니다. 몇 명이 키우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병철, 정주영 같은 몇 사람이 떡을 크게 키운 것과 같은 것이다. 자연히 떡이 크는 초창기에는 빈부의 격차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또 시민과 기업에 자유를 많이 주면 돈에 욕심이 난 사람들이 떡을 키우기 위해 무리한 짓을 하기가 쉽다. 예를 들어 환경파괴를 자행하면서까지 떡을 키우려고 하는 경향이 심해지는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은 다국적 기업들이 세계를 휩쓸면서 공익(公益)을 무시하고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대한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금융위기를 불렀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수많은 세계화 반대론자들이 생기는 것이고 이들이 세계화 관련 정상(頂上)회의가 열릴 때마다 수만 명씩 모여서 격렬한 반대운동을 펼치는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화가 중단없이 계속된 이유는 그것이 그 명백한 폐해에도 불구하고 떡을 키우는 데 있어 너무나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과는 바로 그것이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원천(源泉)이었다는 데 있다.

도대체 신자유주의의 무엇이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것일까?

앞서 지적한 대로 신자유주의는 정부로 하여금 가능한 한 민간의 활동에서 손을 떼게 하고 기업과 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 자유주의가 제조업에 적용될 때와 금융업에 적용될 때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제조업에 적용될 때는 대부분의 경우 아무런 부작용 없이 기업 간의 경쟁을 부추기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왜냐하면 제조업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결국 피땀 흘려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주의가 금융업에 적용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금융업은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불로(不勞)소득’을 노리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일단 돈을 빌려주면 자기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게 되어 있다. 물론 돈을 떼일 수 있는 리스크는 있지만 또 그 리스크 때문에 사실 마음고생을 많이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여튼 돈을 떼이는 리스크만 잘 관리하면 사실 금융업만큼 돈 벌기 쉬운 일이 없다. 그래서 이슬람권(圈)에서는 금융업을 죄악시해 금지하기까지 했다.

이런 특성을 가진 금융업에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지니까 제조업과 달리 무시무시한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즉 금융업에 주어진 자유는 탐욕과 방종을 낳게 되었고 그 방종이 전 세계 금융을 거대한 도박장으로 만드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가 주도한 그 거대한 도박장이 잘못된 방향으로 터지면서 세계가 금융위기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 것이었을까? 어떤 사건을 막론하고 그것이 터지게 되는 요인에는 주역과 조역이 있다. 그 주역과 조역에 모두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이 크게 작용했다.

먼저 주역(主役)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자.

은행들의 과도한 경쟁: 서브 프라임 모기지

자유가 확대되면 반드시 경쟁이 격화되기 마련이다. 은행의 전문경영인들은 은행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하게 되었다.

전 세계 어느 은행이든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부동산이다. 부동산 담보(擔保)가 있으면 그래도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주택이었다. 마침 미국은 10여 년 계속된 역사상 최장기 호황의 와중에 있었다. 자연히 집값은 20년간 계속 올랐다. 만일 집값이 계속 오른다면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로 돈 버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가 된다. 설혹 돈을 빌려간 집주인이 대출금을 못 갚더라도 집을 팔면 대출금은 충분히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 간에 주택담보대출 경쟁이 심해지면서 돈 빌릴 사람이 부족하게 되자 이들은 신용불량자에게까지도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서브 프라임 모기지이다. 집값이 계속 오른다고 생각하는 한, 빌리는 사람의 신용은 별문제가 안된다. 이들이 빚을 안 갚아도 집을 팔면 되는데 무슨 걱정인가? 더욱이 이들 신용 불량자에게 빌려주는 돈은 이자가 훨씬 더 높다. 그러니 수익률도 더 높다. 한마디로 ‘꿩 먹고 알 먹는’ 상황인 것이다.

수많은 은행이 너도 나도 여기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미국 주택담보대출 총액(總額)에서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까지만 해도 고작 2~3% 선에 그쳤지만, 은행들의 대출경쟁이 심해지면서 이 비중은 급상승하게 됐다.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직전인 2008년 당시 미국 주택담보대출의 총계는 약 12조~13조 달러였는데 그중 약 15 % 정도가 바로 이 신용불량자에 대한 대출이었다. 거의 2조 달러에 육박하는 돈이 바로 파산자, 상습적인 부도수표 남발자 등 신용불량자에게 대출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1년 GDP가 1조 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니 이것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은행들이 모두 집값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환상에만 의지해서 이렇게 무모하게 고위험 대출을 했을까? 그렇지 않다. 이들 은행은 나름 다 리스크 관리라는 것이 있고 감사를 받기 때문에 단순히 집값 전망에만 의존해서 함부로 대출을 늘릴 수는 없다. 한마디로 이들에게는 그들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파생상품이라는 것이다. 만약 파생상품이라는 괴물이 없었더라면 서브 프라임 대출이라는 것도 결코 그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토록 큰 금융위기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파생상품이란 무엇인가

금융위기를 가져온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파생(派生)상품의 광적(狂的)인 범람이었다. 파생상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쉽게 이야기해서 사람들 간에 맺어지는 계약이다. 어떤 계약이냐 하면 어떤 특정 사건이 발생하면 그에 따라 자동적으로 계약 당사자 간에 이익이나 손해가 발생하도록 짜인 계약이다.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예를 든다면, 친구끼리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할 수 있다. ‘내일 비가 오면 내가 너에게 만원을 주고 안 오면 네가 나에게 만원을 준다.’ 내일 비가 오느냐 안 오느냐 하는 독립적인 변수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파생적으로’ 두 친구 중 하나가 돈을 벌거나 잃거나 하는 계약인 것이다. 이를 좀 더 확대하면 환율 헤지 같은 것이 있다. 환율이 나에게 불리하게 움직이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돈을 물어 주는 계약이 바로 그것이다.

이 파생상품은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편리한 상품이다. 바로 리스크를 어느 정도 감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억 달러어치의 상품을 연불로 수출하려고 하는데 환율 걱정 때문에 망설인다면 환율 헤지 상품은 너무 반가운 상품이다.

금융 분야에 신자유주의가 몰아치면서 이 파생상품의 종류와 양(量)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환율뿐 아니라 주가(株價), 집값, 석유를 포함한 온갖 천연자원 등 이 세상 거의 모든 가치 있는 것의 가격 움직임에 대한 파생상품이 만들어졌다. 그 총계는 현재 거의 200조 달러에 이른다. 우리나라 GDP의 200배, 전 세계 GDP의 3배가 넘는 파생상품이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이 파생상품은 물론 초기에는 이렇게 유익한 사업적 목적으로 활용되었지만, 자유가 범람하면서 그 정도가 지나쳐 2008년 금융위기가 올 즈음 해서는 소위 가진 자들의 도박상품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가 망할 것 같으면 그것을 겨냥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일종의 베팅을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온갖 종류에 소위 베팅을 하게 되니 월스트리트가 거대한 도박판으로 변질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수많은 파생상품 중에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범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주범이 바로 CDS(credit default swap)라는 파생상품이다. 이 파생상품은 주로 빚쟁이가 돈을 갚지 않을 때를 겨냥해 만든 상품이다.

금융위기의 주범, CDS

예컨대, 만약 당신이 현대자동차의 사채(社債)를 사고 싶다고 하자. 이율도 좋고 다 좋은데 혹시나 현대차가 부도 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에 사채 구입을 망설이고 있을 때, 누군가 돈 많은 사람이 와서 ‘걱정하지 마라, 나한테 한 달에 얼마씩만 주면, 혹시 현대차가 부도가 나더라도 내가 대신 전액 물어 주겠다’고 한다면 너무 좋지 않겠나? 아마도 안심하고 당장 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대신 물어 주는’ 계약, 즉 일종의 보험 역할을 하는 이것이 바로 CDS라고 불리는 파생상품인 것이다.

1997년 JP모건이 개발한 이 파생상품은 시장에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정말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2000년에 1000억 달러에 불과하던 CDS 규모는 2003년에 3조7000억 달러, 2007년에 62조2000억 달러까지 치솟았고,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무려 56조 달러어치의 CDS가 시장에 유통되고 있었다. 거의 전 세계 총 GDP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왜 이렇게 CDS가 광적인 팽창을 했냐 하면 그것은 그것을 사는 사람(채권자)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상품이었지만 그것을 파는 사람에게도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기가 막힌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걱정되는 사태-현대자동차가 부도 나는 사태-는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CDS는 그것을 판 사람으로 하여금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큰 돈을 벌게 해 준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은퇴연금펀드가 현대자동차의 사채 10억 달러어치를 사려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AIG 보험회사로부터 CDS를 구입하는데 만약 현대차의 CDS 프리미엄이 연(年) 0.5%라고 하면, 이 펀드는 1년에 500만 달러를 AIG에 지불하게 된다. AIG는 현대차가 망하지 않는 한 매년 500만 달러를 벌게 되며, 이 사채의 상환기한이 10년이라고 하면 5000만 달러를 손도 까딱하지 않고 벌게 되는 것이다. 계약서에 사인 한 번 하고 가만히 앉아 이렇게 큰돈을 벌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금융기관, 보험회사, 상업은행, 투자은행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 CDS를 파는 세일즈맨들은 커미션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너무 쉽게 돈을 버니 커미션이 후했던 것이다.

자, 그렇다면 서브 프라임 대출, 즉 신용불량자들에게 무모할 정도로 대출을 감행한 은행들을 보자. 이들에게 이 CDS라는 것이 얼마나 요긴했을 것인가?

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이 빚을 못 갚는다고 하자. 그래서 집을 압류해 경매에 부쳐 팔았는데, 그 사이에 집값이 떨어져 손에 들어온 돈이 대출금에 못 미친다고 하자. 그러면 손해를 볼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은행들은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 바로 이 대출금 상환이 안되는 상황을 겨냥한 CDS를 사 놓았기 때문이다. 즉 CDS를 판 사람들이 물어 줄 테니까.

그리고 CDS를 사는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금융기관이 너도 나도 팔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금융기관들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와 관련해 사 놓은 CDS가 금융위기가 발발할 즈음에 와서는 조 단위에 달했다.

첫 번째 희생자 베어스턴스

그런데 문제는 2008년 금융위기 발발 당시 이렇게 CDS가 창궐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심지어는 전문가들까지도 그 실체를 잘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CDS는 개인 간의 계약이었기 때문에 외부로 공표될 필요가 없었다. 회사의 재무제표(財務諸表)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무려 56조 달러어치나 유통되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

2008년 여름,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는 그런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약 1년 전부터 미국 부동산의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었고, 그러면서 서브 프라임 대출에 대한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 부동산 대출을 많이 했던 은행들이 부실(不實)해질 것이고 그러면 은행들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이 필요해질 것이라는 예상들은 했다.

사실 그것은 그렇게 큰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 즉 부실 부동산 대출 때문에 은행들이 멍드는 일은 그 이전에도 몇 번 있었는데, 다 정부가 나서서 잘 처리했었기 때문이었다. 즉 살릴 은행은 살리고 죽일 은행은 죽이면서 구조조정을 해서 모두 다소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잘 해결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몇몇 극소수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것이 미국 금융 시스템의 붕괴로까지 연결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CDS라는 괴물이 미국 금융의 심저(深底)에 그렇게 큰 규모로 자리 잡고 있는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2008년 3월 서브 프라임 모기지에 연동된 CDS가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첫 번째 희생자가 나타났다. 바로 베어스턴스라는 월스트리트의 가장 오래되고 존경받는 투자금융 회사 중의 하나가 자신들이 판 서브 프라임 모기지 관련 CDS가 한꺼번에 돌아오면서 지급불능 상태가 되고 결국 부도가 난 것이다. 이것을 미국 정부가 나서서 JP모건 체이스로 하여금 인수하도록 함으로써 일단 불은 껐다.

뇌관이 터지다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본산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황소상.

그러나 여름이 지나고 9월이 되면서 대폭발이 일어나게 되었다. 바로 부동산 담보 관련 CDS가 천문학적인 규모로 한꺼번에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크고 대단한 은행이라 하더라도 한꺼번에 수백억, 수천억 달러를 지불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월스트리트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 한국으로 치면 삼성생명에 해당하는 AIG, 미국 IB의 상징 중의 하나인 가장 오래되고 가장 부자 중의 하나인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미국 주택담보의 거성 프레디 맥, 패니 메이 등이 돌아오는 CDS를 막지 못해 사실상 파산 상태에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안전한 은행이라고 그 위용을 수십 년간 자랑해 온 시티뱅크, UBS 등 대형 은행들도 파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모두 그동안 무모할 정도로 CDS를, 그것도 부동산 담보대출 관련 CDS를 사놓은 금융기관이었다. CDS로부터 안전한 대형 금융기관은 골드만 삭스와 BOA, JP모건 정도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삼성생명이 부도가 나고 연이어 국민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 등 가장 큰 은행들과 대우증권, 대신증권 등 가장 크고 존경받는 증권회사들이 다 한꺼번에 파산하는 상황에 필적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 금융 시스템 전체가 붕괴하는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다 궁금하게 생각한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금융·부동산에 관련된 상식과 근본적으로 어긋나는 현상들이 이번 위기에서는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와 관련된 부실채권과 그에 연동된 CDS라는 파생상품이었다. 그러나 조역(助役)들도 있었다. 이 조역들 역시 대부분 신자유주의와 관련이 있다. 즉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무제한 자유의 바람이 이런 조역들을 배출한 면이 다분히 있다는 것이다. 이 조역들의 역할을 이해함으로써 금융위기에 대한 의문들에 답을 얻을 수 있다.

시장의 힘 과신

1.어떻게 되었기에 그렇게 큰 은행들, 세계 최대의 은행인 시티뱅크 같은 곳이 파산까지 갈 수 있었는가? 시티뱅크는 운용자산만 1조1613억6100만 달러, 자본금만 해도 1165억9900만 달러(2009년 기준)인 초거대 은행이 아닌가? 이런 은행들은 소시민의 예금을 포함한 막대한 예금을 맡아서 운용하는 곳으로, 이런 곳이 파산하면 수많은 시민이 손해를 본다. 그런데 왜 정부가, 이런 은행들이 파산 위기까지 몰고 오는 고위험 사업을 못하도록 막게 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답) 이 문제는 금융구조에 관한 근본적인 이슈이다. 한마디로 이번에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금융 시스템 전체의 문제로 확산된 이유는 금융의 두 가지 부문, 즉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의 방호벽이 제거되어 투자은행의 리스크가 상업은행까지 삼켜 버렸기 때문이었다.

상업은행은 일반 시민의 코 묻은 돈까지 예금으로 받아 굴려서 이자를 주는 사업이다. 당연히 보수적(保守的)이다.

반면에 투자은행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돈 놓고 돈 먹는 본격적인 머니게임을 하는 사업이다. 즉 하이 리스크(high risk), 하이 리턴(high return) 사업이다. 당연히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는 이런 하이 리스크 사업이다.

1999년 11월 이전에는 이 두 은행업 간에 방호벽이 쳐져 있어서 상업은행은 투자은행업을 못하게 되어 있었다(Glass-Steagall법). 그러나 신자유주의에서 시작된 규제완화의 바람이 여기에까지 몰아쳐 이 방호벽이 제거되어 버렸다. 그래서 멀쩡한 상업은행들이 CDS 등의 파생상품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다 파산지경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기름을 부은 것이 은행들의 자기자본 축소 바람이었다. 자기자본이 줄어들수록 투자수익률은 올라간다. 투자수익률이 올라가면 성과급이 올라가니 은행 경영진이 앞다투어 자기자본을 줄였고 그러다 보니 파산의 위험이 더 커져 버렸던 것이다.

2. 부실 부동산 담보대출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보통 은행이 망하는데 왜 보험회사, 그것도 대형 보험회사, 투자은행 등이 망했는가?

답) 그에 대한 답이 바로 CDS이다. CDS는 실질적으로는 보험이기 때문이다. 다만, 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는 사적(私的) 보험일 뿐이었다. 은행들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을 보험회사와 투자은행, 그리고 대형 은행들이 발행하는 CDS로 커버하고 있었고 그 위험이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규모로 현실화되면서 그 CDS를 발행한 보험회사와 투자은행이 부도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3. 도대체 그러면 금융 당국자들은 이렇게 심각한 시한폭탄이 잠복하고 있었는데 무엇 하고 있었나?

답) 바로 신자유주의의 바람이었다. 정부가 민간기업 활동에 끼어드는 것을 심각하게 백안시하는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고, 그 때문에 정부는 우려가 있어도 민간 금융기관의 사업활동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고 주저하게 된 것이었다.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시장의 힘을 믿는 생각이다. 다소 문제가 있어도 시장이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교정(矯正)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그렇게 팽창하는데도 시장이 저절로 이를 교정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심각해지는데도 개입을 자제(自制)했던 것이었다.

또 한 가지, CDS에 관해서는 그것이 그렇게 광범위하게, 또 대규모로 확산되어 있는 것을 규제 당국이 잘 몰랐었다. CDS는 본질적으로 보험이지만 형식은 기업 간의 계약이었다. 따라서 그 계약을 일일이 공시할 필요가 없었고 재무제표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 바람에 규제 당국이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몰랐던 것이다.

4. 신용평가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나? 신용평가사란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을 사전에 알려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엄청난 위험을 이런 금융기관들이 안고 있었는데도 이들에 대한 전문기관들의 신용평가는 대부분 AAA 급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답) 월스트리트의 파생상품을 기반으로 한 도박판은 엄청나게 복잡한 도박판이었다. 영리한 월스트리트의 인재들은 이 파생상품을 2차, 3차, 4차 이런 식으로 끝없이 확대해 나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당신과 내가 ‘만일 내일 비가 오면 내가 만원을 주고 안 오면 당신이 만원을 준다’는 파생상품 계약을 했다고 치자.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또 ‘내가 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에 대한 파생상품 계약을 하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이 그것에 대해 또 다른 파생상품 계약을 하는 식이다.

이렇게 몇 차례 돌리고 나면 보통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나게 복잡한 다단계 파생상품이 생기고 그것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그 똑똑하다는 S&P나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기관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기괴한 파생상품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그 누구도 자기가 사는 금융상품의 리스크가 얼마인지,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사는 그런 해괴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파생상품의 발달을 신용평가기관이 쫓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 정부, 발 빠르고 현명하게 대응

2008년 9월 갑자기 난공불락으로 보이던 세계 최고 최대의 금융기관들이 한꺼번에 파산상태에 빠지는 것을 본 전 세계의 모든 금융기관은 한마디로 대경실색했다. 그들이 망할 수 있다면 자기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이들은 모두 단 1달러의 현금이라도 움켜쥐고자 발버둥쳤다. 모두가 돈을 움켜쥐고자 하니 모든 금융거래가 사실상 정지했다. 심지어는 수출을 위한 L/C(신용장) 개설마저도 불가능해졌다.

금융은 돈을 돌리는 심장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금융이 정지했다는 것은 사람의 몸으로 치면 심장마비가 와서 피가 돌지 않게 된 것이다.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뉴욕증시를 포함한 전 세계의 증시가 폭락하였고 이제 금융기관뿐 아니라 기업들도 현금을 더 움켜쥐고자 발버둥쳤다. 패닉 상태에 들어간 소비자도 지갑을 닫았다. 투자와 소비가 전면적으로 폭락하면서 세계경제는 거대한 붕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붕괴에 직면해 천만다행인 것은 미국 정부가 현명하게 그리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진단과 처방을 정확하게 했다. 이것이 1929년 대공황과 가장 다른 점이다.

대공황 때는 경제학이 공황이 왜 왔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경제학이 요즈음같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공황은 처음부터 대공황이 아니었다. 당시 공황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한마디로 경제가 확대된 만큼 화폐가 공급되지 않았던 데 있었다. 그것을 잘 알지 못한 정부, 즉 진단을 제대로 못한 정부가 도리어 돈줄을 더 죄고 세율(稅率)을 올리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을 했다. 비유하자면 독감 환자에게 냉수욕을 시킨 셈이었다. 그러면서 은행들의 줄도산이 이어졌고 그래서 공황이 대공황으로 확대된 것이었다.

오바마,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 마련

80년이 지난 2008년의 미국 정부와 각국 정부의 대응은 달랐다. 놀랍도록 발전한 경제학 지식을 바탕으로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했고 그리고 바른 처방을 내렸다.

부시 정부가 선도(先導)하고 각국 정부가 동조해 취한 가장 긴급한 조치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破産) 이후 대형 금융기관의 파산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과격한 조치들을 취했다. 미국의 경우 심지어는 은행 간 대출에 자동적으로 거의 무제한 연방정부의 보증이 붙도록 해 은행 간 자금의 유통이 원활하게 했다. 초대형 주택담보대출 회사인 프레디 맥, 패니 메이 등을 사실상 국유화함으로써 금융기관 안정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과시했다. 그러면서 미국 의회로부터 거의 900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펀드(TARP)를 받아 내어 이를 가지고 도산 위기에 빠진 금융기관들을 일부는 국유화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구제해 나갔다.

오바마가 취임하고는 시장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결정적인 두 가지 조치를 취했다.

하나는 금융기관들의 부실자산을 시장의 원리에 의해 민간이 매입하도록 하고 정부가 이를 도와주는 구조를 가진 민관(民官)합동 투자 프로그램(Public-Private Investment Program)을 실시한 것이다. 이것으로 부실자산 때문에 신음하는 금융기관들의 정상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부실자산 정리를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주도(부실자산의 가격을 경매가 결정)하도록 했다는 면에서 월스트리트의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냈고 이런 것들이 공황심리를 해소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위기에 대처한 미국의 이런 조치는 일본의 경우와 크게 대조를 이룬다. 거품이 꺼지면서 1990년대 초 심각한 불경기에 빠진 일본이 금융구조조정을 실천하는 데 무려 10년이나 걸림으로써 ‘잃어버린 10년’을 낳았고 그것이 다시 20년으로 연결되지 않았는가.

아울러 오바마는 무려 7870억 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에 대해 의회의 승인을 이끌어냈다.

고용사정은 계속 지지부진했지만, 그래도 오바마 정부는 일단 공황심리를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힘입어 경제는 서서히 회복의 궤도에 들어서고, 현재는 낙관적인 전망이 비관적인 전망을 압도하고 있다.

애당초 세계경제는 실물(實物) 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금융이 파생상품 때문에 붕괴되는 바람에 실물경제가 타격을 받은 것이었다. 금융이 정상화되면서 본래 큰 문제가 없던 실물경제가 더 힘을 얻으며 세계경제는 회복기로 착실히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유럽의 일부 국가들에 금융불안이 있지만, 세계경제는 아마도 회복의 곡선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고 많은 전문가의 의견인 것 같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수당 승리

그러면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세계가 얻은 교훈은 명료하다. ‘자유가 제조업이나 기타 서비스 산업에 주어질 때는 그것은 생산성을 올리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금융업에 주어질 때는 상상을 초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는 이 교훈을 받아들이고, 그 교훈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가고 있다.

우선, 신자유주의의 근간은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세계의 대체적인 컨센서스이다. 아무도 신자유주의에 대해 본질적인 이의는 제기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를 통해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의 떡이 엄청나게 커졌다는 사실을 도저히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살아남는다는 가장 큰 증거는 유럽 각국의 정치판에서 볼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왔을 때 많은 사람이 이제 ‘보수의 시대’는 갔고 ‘진보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난 1년 반 동안 영국을 포함해 독일·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덴마크·스웨덴 등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수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컨센서스는 신자유주의의 근간은 살리지만 금융에 대해서만은 자유를 주는 데 신중하고 조심해야 하며, 주었던 자유도 일부 거둬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금융에 대해서는 규제가 정당화되며 또 강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에 대해서는 오바마가 제일 먼저 개혁의 칼을 빼 들었다.

오바마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개혁의 골격은 한마디로 다시는 2008년의 금융위기가 재발되지 않도록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폴 볼커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져 일명 ‘볼커 룰’이라고 불리는 이 개혁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오바마의 금융개혁

금융개혁안 마련을 주도한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2008년 금융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1999년 11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의 방호벽이 제거됨으로써 은행들이 고객의 예금을 고위험 파생상품에 무리하게 투자하고 손실을 봄으로써 은행의 생존 자체를 위험에 빠뜨렸고, 그런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엄청난 세금이 쓰였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예금은행과 투자은행 간의 방호벽을 다시 설치하고 상업은행은 일정한 상황하에서만 파생상품을 거래할 수 있게 하자.

▲파생상품이 장외(場外)에서 거래됨으로써 그것의 현황파악이 불가능했던 것도 위기의 큰 원인이었다. 따라서 파생상품 거래소를 두고 모든 파생상품의 거래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

▲고도로 숙련된 신용평가기관들까지도 평가가 어려운, 고도로 난해한 파생상품의 개발에 대해 일정한 규제를 가하고 아주 예측이 어려운 파생상품을 개발할 때는 그것이 낳을 부작용에 대한 준비금을 예치하도록 해야 한다.

▲금융기관이 너무 커짐으로써 사실상 망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기관 간의 M&A에 대해 일정한 제한을 둬야 한다. (예: 시장점유율 10% 이상의 금융기관 간 합병 금지 등)

▲금융상품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금융기관의 실수로 또다시 2008년 금융위기 같은 것이 올 때 이를 구제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펀드를 조성하고, 이것은 평소 은행들에 대한 추가 과세(課稅)로 충당하자.

이러한 ‘볼커 룰’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반(反)시장적이라는 비판도 꼬리를 물고 있다. 이 규제안이 한국을 비롯한 금융산업 후발(後發)주자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 역할을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공화당은 “규제를 강화하면 금융기관의 자율성이 떨어지고, 미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질 우려가 높다. 미국 금융시장의 자금이 규제가 덜한 다른 나라로 대거 유출돼 주가폭락 등의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더 높이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았다

이러한 반대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여론몰이라는 의심을 받으며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골드만 삭스에 대해 사기 혐의로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반월스트리트적인 여론의 물결이 점증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이든 금융시장에 대한 개혁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 엄청난 파문과 후유증을 낳았던 금융위기에 대한 재발방지책이 어떤 형태로든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 엄청난 피해를 낳았던 금융위기 책임론이 신자유주의 자체보다는 금융분야에 한정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것은 금융을 제외한 다른 모든 분야에서는 신자유주의의 기치가 계속 휘날릴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추세는 1929년 대공황 때와는 사뭇 다르다. 당시에는 그때까지 세계를 풍미하던 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不信)풍조가 만연하게 되었고 ‘큰 정부’, 정부가 앞장서 사회의 모든 악(惡)을 척결하고 예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세계로부터 압도적인 공감을 얻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결론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은 것 같다.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 중심적인 이념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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