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기축통화국, 일본은 국가자산 많고 국채의 90%를 국내에서 소화
⊙ ‘그리스의 다음은 어디냐?(Next Greece?)’는 식의 마녀사냥으로 환율·금리·주가 요동칠 가능성
崔聖煥
⊙ 1956년 대구 출생.
⊙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美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석·박사.
⊙ 한국은행 조사부·워싱턴사무소 과장, 조선일보 경제전문기자 역임.
⊙ 現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최성환의 지청구경제학> <얼굴 없는 대통령> <직장인을 위한 생존경제학>.
⊙ ‘그리스의 다음은 어디냐?(Next Greece?)’는 식의 마녀사냥으로 환율·금리·주가 요동칠 가능성
崔聖煥
⊙ 1956년 대구 출생.
⊙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美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석·박사.
⊙ 한국은행 조사부·워싱턴사무소 과장, 조선일보 경제전문기자 역임.
⊙ 現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최성환의 지청구경제학> <얼굴 없는 대통령> <직장인을 위한 생존경제학>.
“그리스가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때까지 유럽의회로부터 매년 받는 연금(年金) 1만4700파운드(2500만원)를 정부에 헌납하겠다.”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가수 나나 무스쿠리가 그리스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1997년 말 외환(外換)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금(金) 모으기와 구한말(舊韓末)의 국채(國債)보상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무스쿠리는 1994~99년 사이에 그리스를 대표해 유럽의회 의원을 지냈기 때문에 유럽의회로부터 매년 연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무스쿠리의 애국심과 돈이 그리스가 위기를 벗어날 계기를 만들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부정적이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정부가 쓰는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훨씬 더 많아서 발생한 위기인데, 정부의 과도한 지출도 지출이지만, 무스쿠리의 경우만 보더라도 세금이 잘 걷히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무스쿠리는 스위스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무스쿠리가 그리스에 내는 세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아마도 다른 상당수 부자도 그리스 국내에 세금을 내기보다는 세금이 적은 외국에 주소지를 두고 있지 않을까? 여기다 경제가 좋은 상황에서도 세금 내기는 싫은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세금을 더 내라면 좋아할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그리스 사람들이라고 세금을 낼 능력이 있을까?
PIIGS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는 일부 유럽 국가의 재정위기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 국가의 누적된 재정적자(赤字)가 국가부채(國家負債·정부부채라고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국가부채로 통일)로 쌓이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재정을 지출하면서 그간의 허약한 체질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1999년 1월 유럽 11개국이 유로화를 공동통화로 사용하는 유로존(Eurozone·공식용어는 Euroarea)을 발족시킬 때만 해도 회원국들은 재정건전성 기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재정건전성 기준은 재정적자비율(GDP 대비) 3% 이내, 국가부채비율(GDP 대비) 60% 이내이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재정상황이 나빠지면서 유로 16개국의 재정적자비율(이하 2009년 기준)이 평균 6.4%, 국가부채비율이 평균 78.2%로 높아졌다. EU 27개국의 재정적자비율은 평균 6.9%, 국가부채비율은 평균 73.0%에 달하고 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었다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감안하면 평균적으로는 건전성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개별국가별로 차이가 심하게 나고 있다는 점이다. 유로존 16개국 중에서 재정건전성 기준을 맞추고 있는 나라는 2개국(룩셈부르크·핀란드)뿐이고, 유럽연합(EU) 27개국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나라 6개국(룩셈부르크·핀란드·덴마크·스웨덴·불가리아·에스토니아)에 불과하다. 또한 재정적자비율이 10%를 넘는 나라가 4개국(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영국)에 달하고 국가부채비율이 100%를 넘는 나라가 2개국(그리스·이탈리아)이나 된다.
이 중에서도 상황이 가장 나쁠 뿐 아니라 단기간에 호전될 가능성이 작은 나라들이 이른바 ‘PIIGS’라고 불리는 5개국이다. 원래는 실업률과 재정적자비율이 높은 남유럽의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영어 첫 글자를 따서 ‘PIGS’라고 불렀다. 욕심 많은 ‘돼지 같은 나라들’이라는 비하적인 뉘앙스를 가진 조어(造語)였다. 그러다 작년 후반부터는 엇비슷한 상황에 있는 아일랜드를 포함시켜 ‘PIIGS’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정적자를 일으켜 돈을 퍼부었지만 경기가 되살아나지 않으면서 적자만 커진 나라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경기가 나쁠 때 정부가 재정적자를 통해 돈을 퍼붓는 것은 펌프에 물이 빠졌을 때 붓는 ‘마중물’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통상적인 경우에는 마중물을 부어 넣으면서 펌프질을 열심히 하면 마중물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물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아직까지 경기부진이 이어지면서 세수(稅收)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나라가 적극적인 긴축재정 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국내적으로 노조(勞組)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데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를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면 나타나는 저승사자들이 바로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다. 작년 12월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 등 3대 국제신용평가회사는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동시에 하향(下向) 조정했다. 신용등급 전망도 모두 ‘부정적(negative)’으로 매김으로써 여차하면 신용등급을 또 낮추겠다고 경고했다. S&P는 스페인에 대해서도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사태가 확산될 경우 포르투갈 등 PIIGS 국가는 물론 대외(對外)채무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 등 동(東)유럽국가, 우크라이나 등 구(舊)소련국가,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등 남미(南美)국가들도 신용평가회사들의 도마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리스, 국가부채비율 112.6%
올해 들어서는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다른 PIIGS 국가들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들 나라의 CDS 프리미엄이 급등세를 이어 가고 있다. CDS는 ‘신용부도 스와프(Credit Default Swaps)’를 말하는데 기업 또는 국가의 부도위험에 따라 프리미엄이 달라지는 일종의 보험상품이다. 자동차보험에서 사고위험이 높을수록 보험료(프리미엄)가 높아지는 것처럼 기업이나 국가의 부도위험이 높아질수록 CDS 프리미엄도 높아지는 것이다. 재정위기가 결국 ‘국가부도 위기(Sovereign risk)’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CDS 프리미엄(이하 5년 만기)은 작년 8월 1% 수준에서 2월 초 4.28%까지 치솟았다가 3월 초 현재 3%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브라질과 멕시코 등 신흥시장국들의 CDS 프리미엄이 1% 초반대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국제투자자들이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험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CDS 프리미엄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2월 초 1.25%까지 높아졌다가 최근에는 0.8~0.9%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의 재정상황이 어느 정도기에 거의 2개월 이상 국제금융시장의 몰매를 맞고 있는가?
2009년 그리스의 재정적자비율은 12.7%, 국가부채비율은 112.6%에 달하고 있다. 이번에 EU의 요청으로 긴축안(案)을 내놓기는 했지만, 추가긴축이 없다면 2011년 재정적자비율은 12.8%, 국가부채비율은 135%까지 급등할 것이라는 게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다.
그리스가 이 같은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배경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과도한 재정지출, 재정지출 및 재정수입의 비효율성, 과도한 사회보장비 지출 등을 들 수 있다.
그리스는 1999년 유로존 발족 당시에도 재정건전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2년 후인 2001년에야 가입할 수 있을 정도로 재정상황이 좋지 못했다. 2004년에는 EU로부터 과도한 재정적자에 대한 시정조치를 받아 2006년에 재정적자비율을 간신히 2.7%로 줄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곧바로 2007년부터 재정적자비율이 3%를 넘어서면서 2009년에는 다시 EU로부터 시정조치를 권고받았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그리스의 GDP 대비 재정지출비율은 2006년 29%에서 2009년에는 35%로 급등한 반면 GDP 대비 재정수입비율은 2006년 25%에서 2009년 22%로 급락했다. 정부가 돈을 많이 풀었지만, 세금은 오히려 줄어드는 바람에 2009년 재정적자비율이 12.7%까지 치솟은 것이다.
그리스 사회보장지출 OECD평균 웃돌아
그간에도 그리스는 지하경제비율이 선진국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인 20% 중반대를 기록하는 등 세수기반이 취약한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리스 정부는 2004년 이후 법인세율 등 각종 세율(稅率)을 인하함으로써 재정수입을 더 악화시켰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또한 그리스의 사회보장관련 지출비중이 GDP 대비 18.0%로 OECD 회원국 평균인 15.2%를 크게 웃돌고 있다는 점도 높은 국가부채의 이자부담과 함께 재정지출의 경직성을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쓸 곳은 정해져 있는 데다 세금은 들어오지 않는 구조가 장기간 지속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는 자력(自力)으로 재정위기를 벗어날 가능성이 작은 데다 장기적인 전망도 매우 부정적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외부의 지원을 받거나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감수하고서라도 돈을 대거 찍어내는 두 가지밖에는 없다.
그런데 그리스중앙은행은 중앙은행이기는 해도 통화(通貨)발행은 물론 금리(金利)조정 권한이 없다. 그리스가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하면서 유로화를 공동통화로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현재 유로화의 공급과 금리조정 권한은 유럽중앙은행(ECB·European Central Bank)이 쥐고 있다. 하지만 ECB가 유로를 찍어내 그리스를 지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스만을 위한 중앙은행이 아닐 뿐 아니라 유로를 찍어낼 경우 유로화 가치가 급락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은 한 가지는 외부의 지원, 즉 EU 또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 지원을 둘러싼 갈등
그러나 그리스가 지원을 이끌어내기까지는 험난한 일정이 예상되고 있다. 3월 초 그리스는 공무원 보너스 30% 삭감과 연금 동결, 부가가치세율의 인상(19% → 21%) 등이 포함된 48억 유로의 추가감축안을 통과시켰다. 48억 유로는 그리스 GDP의 2%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그리스의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총리는 “우리 측에서 해야 하는 최선의 모든 것을 실행했다”면서 “EU가 이번에도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지막 선택은 IMF뿐”이라면서 EU의 금융지원을 촉구했다.
하지만 1999년 유로존이 출범한 이후 개별 국가에 대한 금융지원은 그리스가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지원여부와 지원주체를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우선 EU의 2대 경제국인 독일과 프랑스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 독일은 그리스 지원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반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유로존 회원국이 실패한다면 유로화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면서 지원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지원주체에서는 EU와 IMF가 대립하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ECB의 장 클로드 트리셰 총재는 EU 스스로 그리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IMF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총재는 IMF가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U의 지원을 촉구하는 쪽은 “유로화와 유로존의 신뢰성은 물론 EU의 독립성을 위해서라도 IMF가 개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은 프랑스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IMF의 칸 총재에 대한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치적 견제도 이 같은 갈등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하고 갈등이 있기는 해도 조만간 어떤 식으로건 결론이 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외부 지원 없이는 사태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독일과 프랑스가 개별국가 차원에서 그리스 국채를 매입하는 동시에 EU와 IMF도 공동으로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만, 최종 지원안은 지켜볼 일이다.
일본, 국가부도 가능성 작아
PIIGS에 속하는 5개국 외에도 최근 들어 재정위기 가능성이 거론되는 나라로는 영국과 일본을 들 수 있다. 심지어 미국도 재정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먼저 미국의 경우 작년 재정적자비율이 -5.9%에서 올해는 -12.4%로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국가부채비율이 작년 말 현재 84.7%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또 미국은 기축(基軸)통화국으로 필요하면 언제든지 달러를 찍어내면 된다는 점에서 위기 대상국에서 제외시켜야 할 것이다. 영국의 경우에도 작년 재정적자비율이 -11.6%에 달하고 올해 이후 수년 동안 -10%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국가부채비율은 작년 말 현재 68.7%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낮은 편이다.
다만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초반 이후 지속적으로 재정적자비율이 높았던 데다 최근에도 -7~-8%대를 유지하면서 국가부채비율이 작년에 218%에 달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일본이 그리스 다음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국가자산이 많아 국가부채에서 국가자산을 뺀 순(純)국가부채의 GDP 대비 비율은 작년 말 현재 104.6%로 낮아지고 있다. 여기다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일본 국채의 90% 이상을 일본 국민(일본의 기관투자가 포함)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국가부도 가능성을 크게 낮추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3월 7일 자 보도에서 일본의 재정악화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계속되면 국가부도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상당히 작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견해이다.
이상에서 G7국가 중 재정이 상대적으로 튼튼한 나라는 독일과 프랑스, 캐나다뿐인 셈이다. 이에 따라 IMF는 향후 주요선진국 정부들이 재정건전화를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경기회복이 본격화되지 않는다면 각국 정부로서도 재정지출을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잘못 재정지출을 줄였다가는 경기가 다시 나빠지는 이른바 ‘더블딥(double-dip)’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美, 出口전략의 글로벌共助 강조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불거진 주요 선진국들의 재정위기가 다시 글로벌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금융위기는 정부가 돈(재정지출)을 풀어 막을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정부가 재정위기를 겪을 경우 마땅한 경제적 정책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재정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늘려야 하지만, 정황상 그 같은 기본 원칙이 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이 앞에 나서서 출구(出口)전략의 글로벌 공조(共助)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국이 출구전략을 가급적 뒤로 미룸으로써 우선 글로벌 경제를 살려놓고 보자는 뜻이다. 글로벌 경제가 살아나야 국내적으로는 세금이 늘어나면서 재정적자를 메울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도로 글로벌 공조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주요국의 재정위기는 당분간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글로벌 경제가 정상수준을 회복하기까지는 아직도 2~3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유럽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은 작지만 주요국 재정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중장기적으로 불안의 불씨를 안고 갈 것이다. 특히 ‘그리스의 다음은 어디냐?(Next Greece?)’는 식의 마녀 사냥으로 위기가 전염 또는 확산될 조짐이 보일 때마다 주요국 환율과 금리는 물론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경제의 회복세도 주춤거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같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의 경우, 주요국의 재정 동향과 위기 가능성은 물론 그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선 국내 금융회사들의 PIIGS에 대한 채권 등 금융자산의 투자규모와 비율(총 해외투자의 1%대)이 낮기 때문에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재정위기 확산 과정에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면 국내로 유입되는 해외직접투자(FDI) 및 증권투자의 감소, 국내 외국인투자자금의 이탈로 인해 외환시장(환율)과 주식시장이 불안해질 소지를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지속될 경우 신흥시장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차입금리 상승은 물론 외화유동성 확보에도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 수출의 경우 재정위기가 확산되지 않는다면 큰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글로벌 경기회복세가 지연된다면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우리나라도 재정건전성 제고(提高)에 배전(倍前)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재정이 상대적으로 건전한 편이다. 작년 재정적자비율은 -5.0%로 비교적 낮았을 뿐 아니라, 국가부채비율도 30%대로 낮았다.
문제는 국가부채비율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년여 동안 매우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만 하더라도 12.3%에 불과하던 국가부채비율이 2008년에는 30.1%로 높아졌다. 외환위기를 예상외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우리나라의 재정이 튼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투입한 재정과 정부보증이 국가부채로 잡히기 시작하면서 국가부채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다 작년에는 다른 나라들처럼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재정적자가 급증하면서 국가부채비율이 35.6%까지 치솟았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국가부채비율은 1997년 71.1%에서 2008년 78.7%로 7.6%포인트 높아지는 데 그치고 있다. 작년의 경우 OECD 회원국들의 국가부채비율도 평균 80%대로 높아졌겠지만 증가속도는 우리나라에 비해 현저히 안정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재정건전성 제고 노력해야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우 주요선진국들에 비해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을 뿐 아니라, 사회복지분야 지출비중도 낮다는 점에서 보면 지금 현재 국가부채비율이 낮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앞으로 소득수준이 올라갈수록 사회복지분야 지출이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高齡化)되고 있다는 점도 우리나라에는 매우 불리한 부분이다. 고령화는 사회복지분야의 지출이 늘어나는 동시에 세금 수입 증가율 또한 둔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재정지출은 늘어나고 세입 증가는 부진할 경우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인해 국가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단기는 물론 중장기적인 재정건전성을 위해 정부와 국회, 국민 모두가 중지(衆智)를 모아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세입(稅入)기반의 확충은 물론 복지지출 및 지방재정의 합리화 등 세출구조조정, 재정지출의 성과관리 등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재정관련 통계의 투명성 제고, 정부보증채무 및 공적연금 책임준비금 등에 대한 중장기적, 체계적 관리 등을 통해 재정통계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가수 나나 무스쿠리가 그리스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1997년 말 외환(外換)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금(金) 모으기와 구한말(舊韓末)의 국채(國債)보상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무스쿠리는 1994~99년 사이에 그리스를 대표해 유럽의회 의원을 지냈기 때문에 유럽의회로부터 매년 연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무스쿠리의 애국심과 돈이 그리스가 위기를 벗어날 계기를 만들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부정적이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정부가 쓰는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훨씬 더 많아서 발생한 위기인데, 정부의 과도한 지출도 지출이지만, 무스쿠리의 경우만 보더라도 세금이 잘 걷히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무스쿠리는 스위스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무스쿠리가 그리스에 내는 세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아마도 다른 상당수 부자도 그리스 국내에 세금을 내기보다는 세금이 적은 외국에 주소지를 두고 있지 않을까? 여기다 경제가 좋은 상황에서도 세금 내기는 싫은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세금을 더 내라면 좋아할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그리스 사람들이라고 세금을 낼 능력이 있을까?
PII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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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러존 국가들의 통화와 금리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유럽중앙은행(ECB). |
1999년 1월 유럽 11개국이 유로화를 공동통화로 사용하는 유로존(Eurozone·공식용어는 Euroarea)을 발족시킬 때만 해도 회원국들은 재정건전성 기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재정건전성 기준은 재정적자비율(GDP 대비) 3% 이내, 국가부채비율(GDP 대비) 60% 이내이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재정상황이 나빠지면서 유로 16개국의 재정적자비율(이하 2009년 기준)이 평균 6.4%, 국가부채비율이 평균 78.2%로 높아졌다. EU 27개국의 재정적자비율은 평균 6.9%, 국가부채비율은 평균 73.0%에 달하고 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었다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감안하면 평균적으로는 건전성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개별국가별로 차이가 심하게 나고 있다는 점이다. 유로존 16개국 중에서 재정건전성 기준을 맞추고 있는 나라는 2개국(룩셈부르크·핀란드)뿐이고, 유럽연합(EU) 27개국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나라 6개국(룩셈부르크·핀란드·덴마크·스웨덴·불가리아·에스토니아)에 불과하다. 또한 재정적자비율이 10%를 넘는 나라가 4개국(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영국)에 달하고 국가부채비율이 100%를 넘는 나라가 2개국(그리스·이탈리아)이나 된다.
이 중에서도 상황이 가장 나쁠 뿐 아니라 단기간에 호전될 가능성이 작은 나라들이 이른바 ‘PIIGS’라고 불리는 5개국이다. 원래는 실업률과 재정적자비율이 높은 남유럽의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영어 첫 글자를 따서 ‘PIGS’라고 불렀다. 욕심 많은 ‘돼지 같은 나라들’이라는 비하적인 뉘앙스를 가진 조어(造語)였다. 그러다 작년 후반부터는 엇비슷한 상황에 있는 아일랜드를 포함시켜 ‘PIIGS’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정적자를 일으켜 돈을 퍼부었지만 경기가 되살아나지 않으면서 적자만 커진 나라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경기가 나쁠 때 정부가 재정적자를 통해 돈을 퍼붓는 것은 펌프에 물이 빠졌을 때 붓는 ‘마중물’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통상적인 경우에는 마중물을 부어 넣으면서 펌프질을 열심히 하면 마중물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물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아직까지 경기부진이 이어지면서 세수(稅收)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나라가 적극적인 긴축재정 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국내적으로 노조(勞組)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데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를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면 나타나는 저승사자들이 바로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다. 작년 12월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 등 3대 국제신용평가회사는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동시에 하향(下向) 조정했다. 신용등급 전망도 모두 ‘부정적(negative)’으로 매김으로써 여차하면 신용등급을 또 낮추겠다고 경고했다. S&P는 스페인에 대해서도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사태가 확산될 경우 포르투갈 등 PIIGS 국가는 물론 대외(對外)채무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 등 동(東)유럽국가, 우크라이나 등 구(舊)소련국가,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등 남미(南美)국가들도 신용평가회사들의 도마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리스, 국가부채비율 112.6%
올해 들어서는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다른 PIIGS 국가들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들 나라의 CDS 프리미엄이 급등세를 이어 가고 있다. CDS는 ‘신용부도 스와프(Credit Default Swaps)’를 말하는데 기업 또는 국가의 부도위험에 따라 프리미엄이 달라지는 일종의 보험상품이다. 자동차보험에서 사고위험이 높을수록 보험료(프리미엄)가 높아지는 것처럼 기업이나 국가의 부도위험이 높아질수록 CDS 프리미엄도 높아지는 것이다. 재정위기가 결국 ‘국가부도 위기(Sovereign risk)’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CDS 프리미엄(이하 5년 만기)은 작년 8월 1% 수준에서 2월 초 4.28%까지 치솟았다가 3월 초 현재 3%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브라질과 멕시코 등 신흥시장국들의 CDS 프리미엄이 1% 초반대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국제투자자들이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험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CDS 프리미엄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2월 초 1.25%까지 높아졌다가 최근에는 0.8~0.9%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의 재정상황이 어느 정도기에 거의 2개월 이상 국제금융시장의 몰매를 맞고 있는가?
2009년 그리스의 재정적자비율은 12.7%, 국가부채비율은 112.6%에 달하고 있다. 이번에 EU의 요청으로 긴축안(案)을 내놓기는 했지만, 추가긴축이 없다면 2011년 재정적자비율은 12.8%, 국가부채비율은 135%까지 급등할 것이라는 게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다.
그리스가 이 같은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배경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과도한 재정지출, 재정지출 및 재정수입의 비효율성, 과도한 사회보장비 지출 등을 들 수 있다.
그리스는 1999년 유로존 발족 당시에도 재정건전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2년 후인 2001년에야 가입할 수 있을 정도로 재정상황이 좋지 못했다. 2004년에는 EU로부터 과도한 재정적자에 대한 시정조치를 받아 2006년에 재정적자비율을 간신히 2.7%로 줄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곧바로 2007년부터 재정적자비율이 3%를 넘어서면서 2009년에는 다시 EU로부터 시정조치를 권고받았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그리스의 GDP 대비 재정지출비율은 2006년 29%에서 2009년에는 35%로 급등한 반면 GDP 대비 재정수입비율은 2006년 25%에서 2009년 22%로 급락했다. 정부가 돈을 많이 풀었지만, 세금은 오히려 줄어드는 바람에 2009년 재정적자비율이 12.7%까지 치솟은 것이다.
그리스 사회보장지출 OECD평균 웃돌아
그간에도 그리스는 지하경제비율이 선진국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인 20% 중반대를 기록하는 등 세수기반이 취약한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리스 정부는 2004년 이후 법인세율 등 각종 세율(稅率)을 인하함으로써 재정수입을 더 악화시켰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또한 그리스의 사회보장관련 지출비중이 GDP 대비 18.0%로 OECD 회원국 평균인 15.2%를 크게 웃돌고 있다는 점도 높은 국가부채의 이자부담과 함께 재정지출의 경직성을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쓸 곳은 정해져 있는 데다 세금은 들어오지 않는 구조가 장기간 지속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는 자력(自力)으로 재정위기를 벗어날 가능성이 작은 데다 장기적인 전망도 매우 부정적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외부의 지원을 받거나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감수하고서라도 돈을 대거 찍어내는 두 가지밖에는 없다.
그런데 그리스중앙은행은 중앙은행이기는 해도 통화(通貨)발행은 물론 금리(金利)조정 권한이 없다. 그리스가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하면서 유로화를 공동통화로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현재 유로화의 공급과 금리조정 권한은 유럽중앙은행(ECB·European Central Bank)이 쥐고 있다. 하지만 ECB가 유로를 찍어내 그리스를 지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스만을 위한 중앙은행이 아닐 뿐 아니라 유로를 찍어낼 경우 유로화 가치가 급락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은 한 가지는 외부의 지원, 즉 EU 또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 지원을 둘러싼 갈등
그러나 그리스가 지원을 이끌어내기까지는 험난한 일정이 예상되고 있다. 3월 초 그리스는 공무원 보너스 30% 삭감과 연금 동결, 부가가치세율의 인상(19% → 21%) 등이 포함된 48억 유로의 추가감축안을 통과시켰다. 48억 유로는 그리스 GDP의 2%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그리스의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총리는 “우리 측에서 해야 하는 최선의 모든 것을 실행했다”면서 “EU가 이번에도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지막 선택은 IMF뿐”이라면서 EU의 금융지원을 촉구했다.
하지만 1999년 유로존이 출범한 이후 개별 국가에 대한 금융지원은 그리스가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지원여부와 지원주체를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우선 EU의 2대 경제국인 독일과 프랑스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 독일은 그리스 지원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반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유로존 회원국이 실패한다면 유로화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면서 지원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지원주체에서는 EU와 IMF가 대립하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ECB의 장 클로드 트리셰 총재는 EU 스스로 그리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IMF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총재는 IMF가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U의 지원을 촉구하는 쪽은 “유로화와 유로존의 신뢰성은 물론 EU의 독립성을 위해서라도 IMF가 개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은 프랑스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IMF의 칸 총재에 대한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치적 견제도 이 같은 갈등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하고 갈등이 있기는 해도 조만간 어떤 식으로건 결론이 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외부 지원 없이는 사태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독일과 프랑스가 개별국가 차원에서 그리스 국채를 매입하는 동시에 EU와 IMF도 공동으로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만, 최종 지원안은 지켜볼 일이다.
일본, 국가부도 가능성 작아
PIIGS에 속하는 5개국 외에도 최근 들어 재정위기 가능성이 거론되는 나라로는 영국과 일본을 들 수 있다. 심지어 미국도 재정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먼저 미국의 경우 작년 재정적자비율이 -5.9%에서 올해는 -12.4%로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국가부채비율이 작년 말 현재 84.7%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또 미국은 기축(基軸)통화국으로 필요하면 언제든지 달러를 찍어내면 된다는 점에서 위기 대상국에서 제외시켜야 할 것이다. 영국의 경우에도 작년 재정적자비율이 -11.6%에 달하고 올해 이후 수년 동안 -10%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국가부채비율은 작년 말 현재 68.7%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낮은 편이다.
다만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초반 이후 지속적으로 재정적자비율이 높았던 데다 최근에도 -7~-8%대를 유지하면서 국가부채비율이 작년에 218%에 달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일본이 그리스 다음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국가자산이 많아 국가부채에서 국가자산을 뺀 순(純)국가부채의 GDP 대비 비율은 작년 말 현재 104.6%로 낮아지고 있다. 여기다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일본 국채의 90% 이상을 일본 국민(일본의 기관투자가 포함)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국가부도 가능성을 크게 낮추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3월 7일 자 보도에서 일본의 재정악화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계속되면 국가부도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상당히 작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견해이다.
이상에서 G7국가 중 재정이 상대적으로 튼튼한 나라는 독일과 프랑스, 캐나다뿐인 셈이다. 이에 따라 IMF는 향후 주요선진국 정부들이 재정건전화를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경기회복이 본격화되지 않는다면 각국 정부로서도 재정지출을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잘못 재정지출을 줄였다가는 경기가 다시 나빠지는 이른바 ‘더블딥(double-dip)’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美, 出口전략의 글로벌共助 강조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불거진 주요 선진국들의 재정위기가 다시 글로벌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금융위기는 정부가 돈(재정지출)을 풀어 막을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정부가 재정위기를 겪을 경우 마땅한 경제적 정책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재정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늘려야 하지만, 정황상 그 같은 기본 원칙이 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이 앞에 나서서 출구(出口)전략의 글로벌 공조(共助)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국이 출구전략을 가급적 뒤로 미룸으로써 우선 글로벌 경제를 살려놓고 보자는 뜻이다. 글로벌 경제가 살아나야 국내적으로는 세금이 늘어나면서 재정적자를 메울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도로 글로벌 공조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주요국의 재정위기는 당분간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글로벌 경제가 정상수준을 회복하기까지는 아직도 2~3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유럽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은 작지만 주요국 재정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중장기적으로 불안의 불씨를 안고 갈 것이다. 특히 ‘그리스의 다음은 어디냐?(Next Greece?)’는 식의 마녀 사냥으로 위기가 전염 또는 확산될 조짐이 보일 때마다 주요국 환율과 금리는 물론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경제의 회복세도 주춤거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같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의 경우, 주요국의 재정 동향과 위기 가능성은 물론 그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선 국내 금융회사들의 PIIGS에 대한 채권 등 금융자산의 투자규모와 비율(총 해외투자의 1%대)이 낮기 때문에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재정위기 확산 과정에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면 국내로 유입되는 해외직접투자(FDI) 및 증권투자의 감소, 국내 외국인투자자금의 이탈로 인해 외환시장(환율)과 주식시장이 불안해질 소지를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지속될 경우 신흥시장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차입금리 상승은 물론 외화유동성 확보에도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 수출의 경우 재정위기가 확산되지 않는다면 큰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글로벌 경기회복세가 지연된다면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우리나라도 재정건전성 제고(提高)에 배전(倍前)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재정이 상대적으로 건전한 편이다. 작년 재정적자비율은 -5.0%로 비교적 낮았을 뿐 아니라, 국가부채비율도 30%대로 낮았다.
문제는 국가부채비율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년여 동안 매우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만 하더라도 12.3%에 불과하던 국가부채비율이 2008년에는 30.1%로 높아졌다. 외환위기를 예상외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우리나라의 재정이 튼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투입한 재정과 정부보증이 국가부채로 잡히기 시작하면서 국가부채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다 작년에는 다른 나라들처럼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재정적자가 급증하면서 국가부채비율이 35.6%까지 치솟았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국가부채비율은 1997년 71.1%에서 2008년 78.7%로 7.6%포인트 높아지는 데 그치고 있다. 작년의 경우 OECD 회원국들의 국가부채비율도 평균 80%대로 높아졌겠지만 증가속도는 우리나라에 비해 현저히 안정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재정건전성 제고 노력해야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우 주요선진국들에 비해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을 뿐 아니라, 사회복지분야 지출비중도 낮다는 점에서 보면 지금 현재 국가부채비율이 낮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앞으로 소득수준이 올라갈수록 사회복지분야 지출이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高齡化)되고 있다는 점도 우리나라에는 매우 불리한 부분이다. 고령화는 사회복지분야의 지출이 늘어나는 동시에 세금 수입 증가율 또한 둔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재정지출은 늘어나고 세입 증가는 부진할 경우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인해 국가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단기는 물론 중장기적인 재정건전성을 위해 정부와 국회, 국민 모두가 중지(衆智)를 모아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세입(稅入)기반의 확충은 물론 복지지출 및 지방재정의 합리화 등 세출구조조정, 재정지출의 성과관리 등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재정관련 통계의 투명성 제고, 정부보증채무 및 공적연금 책임준비금 등에 대한 중장기적, 체계적 관리 등을 통해 재정통계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