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화폐인 달러·엔화 강세 보일 것
⊙ 국내 은행권에 미치는 영향 크지 않을 것, 금융개혁 관련해 국제공조 이루어지면 영향
崔聖煥
⊙ 1956년 대구 출생.
⊙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美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석·박사.
⊙ 한국은행 조사부·워싱턴사무소 과장, 조선일보 경제전문기자 역임.
⊙ 現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최성환의 지청구경제학> <얼굴 없는 대통령> <직장인을 위한 생존경제학>.
⊙ 국내 은행권에 미치는 영향 크지 않을 것, 금융개혁 관련해 국제공조 이루어지면 영향
崔聖煥
⊙ 1956년 대구 출생.
⊙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美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석·박사.
⊙ 한국은행 조사부·워싱턴사무소 과장, 조선일보 경제전문기자 역임.
⊙ 現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최성환의 지청구경제학> <얼굴 없는 대통령> <직장인을 위한 생존경제학>.
- 뉴욕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황소상 앞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돌아온 장고’.
웬 서부영화의 제목이냐고 하겠지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금융개혁안을 내놓으면서 전면에 내세운 폴 볼커 전(前)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개혁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볼커를 가리키면서 이번 개혁안을 ‘볼커 룰(Volcker Rule)’로 정했다고 소개했다. 2008년 11월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경제회생자문위원회(ERAB) 위원장으로 임명된 볼커지만 그간 눈에 띄는 활동이 없다가 금융개혁의 선봉장으로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간 금융개혁을 이끌던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의 입지가 크게 축소되고 볼커 전 의장이 뜨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볼커는 1979년 8월 카터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FRB 의장에 취임했지만 카터 대통령의 재선(再選)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었던 인물이다. 취임하자마자 볼커는 두 자릿수에 달하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통화공급을 급격하게 줄이고 기준금리를 급속히 인상했다. 취임 당시 11%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1980년 말에는 20%까지 끌어올렸다. 이 바람에 5%대이던 실업률은 7%대로 뛰어올랐고 성장률은 1978년 5.6%에서 1979년 3.1%, 1980년 -0.3%로 추락했다.
이런 와중인 1980년 11월에 치러진 선거에서 카터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에게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 카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거를 통해 취임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첫 번째 케이스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볼커, 1980년대 美 인플레 잡아
당시 볼커는 목표를 세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하고야 마는 과감하면서도 저돌적인 캐릭터의 전형(典型)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들어선 이후에도 높은 금리는 이어졌고 1981년 2.5%로 호전되는 듯하던 성장률은 1982년에 다시 -1.9%로 내려앉으면서 실업률은 10%를 넘어섰다. 실업률이 두 자릿수로 치솟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건설노조와 농민들이 FRB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자동차딜러들이 팔리지 않고 있는 새 차의 키를 관(棺)에 담아 볼커에게 보냈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981년 중반부터 한 자릿수로 떨어진 데 이어 1982년 하반기에는 3~4%대로 안정됐다.
경제학자들은 이때부터 미국 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1987년 FRB 의장직을 물려받은 앨런 그린스펀이 장수하면서 미국 경제를 한 단계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도 볼커가 어렵게 다져놓은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서두(序頭)가 좀 길어졌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금융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이런 볼커를 내세운 이유가 무엇일까? 금융개혁안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관철시키겠다는 강한 의지와 중간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좋은 결과를 확신하는 신뢰를 국민들에게 내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평생 동안 금융인으로 살아온 올해 82세인 볼커가 내놓은 개혁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과연 오바마 대통령의 말대로 ‘국민들이 더 이상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인 동시에 ‘미국 경제와 납세자를 보호하고 제2의 금융위기를 막기 위한 상식적인 개혁’일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이번에 내놓은 개혁안이 단순히 ‘상식적인 수준’이 아니라 미국은 물론 전(全) 세계 금융시스템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매우 근본적이면서도 개혁적인 수준이라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개혁안은 한마디로 금융기관들의 ‘업무 범위(scope)와 규모(size)’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은행 업무범위와 규모 제한
먼저 업무 범위에서는 은행 또는 은행을 소유하고 있는 금융그룹이 과도한 위험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은행들은 자기자본으로 주식이나 채권, 파생금융상품 등에 직접 투자하는 자기매매, 즉 ‘프랍 트레이딩(Propriety Trading)’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한 걸음 더 나가 은행이 헤지펀드를 소유 또는 투자하거나 PEF(Private Equity Fund·私募펀드)에 대한 투자 또는 자문을 금지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PEF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점에서는 헤지펀드와 비슷하나 만기가 상대적으로 길고 주식이나 채권 또는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투자보다는 구조조정 또는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를 말한다.
규모면에서는 일부 대형 금융기관의 시장점유율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규모를 사전에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금융기관의 크기를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토록 함으로써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과정에서 발생한 대마불사의 구제책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20세기 이후 은행의 업무범위는 시기에 따라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이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 구분과 역사적 흐름을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상업은행은 예금을 자금원으로 단기대출을 기본업무로 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은행을 말한다. 반면 투자은행은 이름 그대로 자기자본과 차입자본을 이용해 주식과 채권을 발행하거나 인수 또는 판매하는 등의 장기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은행을 말한다.
이때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상업은행은 고객에게 정해진 금리를 지급하는 반면 투자은행은 투자성과에 따라 고객에게 돌아가는 수익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투자은행이 상업은행에 비해 보다 공격적으로 영업(투자)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상업은행은 금융감독당국의 규제와 감독을 엄격하게 받는 반면 투자은행은 거의 받지 않고 있다는 점도 투자은행의 공격적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위험 낮은 전통적 투자은행 업무만 가능
1929년 대공황 이전에는 한 은행이 상업은행 업무와 투자은행 업무를 겸영(兼營)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였다. 하지만 대공황으로 투자은행 업무에서 대규모 손실이 나면서 은행들이 대거 도산(倒産)하자 이 같은 겸영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1933년에 제정된 것이 상업은행 업무와 투자은행 업무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이다.
이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전업주의(專業主義)가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은행들의 치열한 로비에 힘입어 1999년 ‘그램-리치-브라일리법(Gramm-Leach-Bliley Act)’이 제정되면서 겸업에 대한 제한이 대폭 완화되었다. 여전히 상업은행이 투자은행 업무를 사내(社內)에서 겸영할 수는 없지만, 상업은행과 투자은행과의 계열관계 구축 및 임원 겸직(兼職)이 가능해진 것이다. 즉 금융그룹 또는 지주(持株)회사 형태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한 우산 밑에서 경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개혁안은 은행, 특히 상업은행만 놓고 본다면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은행을 소유하고 있는 금융그룹(은행지주회사)의 경우, 계열관계에 있는 투자은행도 프랍 트레이딩은 물론 헤지펀드, PEF 관련업무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은행지주회사에 속해 있는 투자은행은 유가증권 인수, 주식위탁매매, M&A 자문과 같은 위험이 낮은 전통적인 투자은행 업무만 할 수 있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개혁안이 ‘글래스-스티걸법의 부활’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금융기관은 물론 어떤 기업에도 업무 범위와 규모를 제한한다는 것은 일종의 족쇄와도 같다. 업무범위도 줄어들고 규모도 키울 수 없다면 손발이 잘리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금융개혁안이 시행될 경우 골드만삭스처럼 투자은행 업무 비중이 높은 은행들은 상업은행 업무를 잘라내야 할 것이다. 반면 씨티그룹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BoA)처럼 상업은행 업무 비중이 높은 은행들은 수익성이 높은 투자은행 업무를 대폭 줄여야 할 것이다. 업무범위의 축소로 규모를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줄여야 하는 처지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반발
이에 따라 월스트리트의 대형은행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라는 비난에서부터 “미국 은행들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이 직접 선거유세에 나섰던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예상외로 패배한 이후 내놓고 있는 인기 영합성 정책 중의 하나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취임 초기 60%를 웃돌던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에는 48%대까지 떨어져 있다. 또한 상당수 공화당 상원의원은 개혁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를 등에 업고 월스트리트는 개혁안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로비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에 내놓은 금융개혁안이 미국의 대형은행들이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主犯)임에도 여전히 돈놀이에 열중하고 있다는 인식과 여론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대형은행들의 과도한 위험투자 및 마구잡이로 만들어 낸 파생상품이 주택시장 거품을 만들어 냈다는 데는 큰 이의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거품이 붕괴되면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발생했고 이는 곧 금융위기를 넘어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로까지 사태가 악화됐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정부가 국민들의 혈세(血稅)로 이들 대형은행에 구제자금을 쏟아부은 이후의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에 힘입어 금융시장 상황이 호전되면서 대형은행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 대형은행이 중소기업 대출 등 경제 살리기에는 나서지 않고 또다시 위험투자 등으로 고(高)수익을 노리는가 하면 대규모 보너스 잔치 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이맛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2007년 12월 이후 새로 생겨난 실업자만 800만명을 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실업률은 10%를 오르내리고 있을 정도이다. 미국의 실업률이 10%를 넘어서기는 앞서 언급한 대로 볼커가 FRB의장으로 있던 1983년 중반 이후 26년 만에 처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같은 미국인들의 반감(反感)을 앞으로도 잘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대형은행들이 투자은행 업무의 실패로 부실화되고 파산할 경우 국민세금으로 구제해야 하는 대마불사 신화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투자은행의 자기자본 투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여론이 합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혁안에서 예금과 대출업무를 위주로 하는 상업은행에 대해서는 정부의 계속적인 보호와 지원 정도에 변화가 없다. 그러나 위험성이 큰 자기자본투자에 치중하는 투자은행에 대해서는 보호막을 제거함으로써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구분과 지원 정도를 보다 명확히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당장 국내 은행권에 미치는 영향 작을 듯
이번 금융개혁안이 가져올 파장은 발표 이후 금융시장 동향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다우지수가 이틀에 걸쳐 4% 가까이 급락하면서 작년 11월 초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외환시장에서는 금융개혁안의 불확실성 등으로 안전자산(통화) 선호 현상이 강화되면서 달러화와 엔화가 동반강세를 보였다. 유럽과 아시아의 증시(證市)도 일제히 급락세를 보였다. 국내 금융시장 또한 외국인투자자들이 매도(賣渡)에 나서면서 3% 정도 하락했고 환율은 달러당 14원이나 급등하면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지형을 바꿀 정도의 개혁안이 미국 의회를 쉽사리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의회의 심의과정에서 대형은행들과 보수 진영으로부터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글래스-스티걸법도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한 이후 거의 4년이나 지난 1933년에 통과·시행되었다. 또한 앞으로의 논의 및 심의 과정에서 법안의 내용도 상당히 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계 은행들의 투자은행업무가 어떤 식으로건 제약을 받게 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당분간 글로벌 증시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안전통화인 달러화와 엔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다. 은행들의 위험투자를 제한할 경우 상품시장은 물론 주식시장에서도 돈이 빠져나와 안전자산인 달러화 또는 엔화 표시 자산으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미국의 금융개혁이 당장 국내 은행권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은행들도 모양새는 미국처럼 은행지주회사 형태로 계열사(증권사)가 투자은행 업무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범위와 규모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금융개혁 글로벌 공조 쉽지 않을 것
그러나 미국이 이번 금융개혁을 글로벌 공조(共助)로 몰고 갈 경우 우리나라 또한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특히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기들만 규제를 강화하면서 은행들의 업무를 제한할 경우 미국 은행들의 경쟁력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2월의 다보스포럼에서도 금융규제와 개혁이 주요의제 중의 하나로 다뤄지기도 했다. 앞으로 G7 또는 G20에서도 미국의 주도하에 글로벌 금융규제와 개혁이 계속 주요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글로벌 공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은행들의 업무범위는 물론 경영상태와 경쟁력 등에서 나라마다 차이가 크게 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의 경우 대다수 은행이 상업은행 업무와 투자은행 업무를 한 회사 내에서 겸영하고 있어서 미국의 개혁안을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다. 업무를 엄격히 제한할 경우 서로 다른 회사로 분리해야 할 것이고 그에 따라 은행들의 경쟁력이 급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영국과 프랑스는 금융개혁의 필요성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
또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전적을 가지고 있는 폴 볼커가 이번 ‘월스트리트와의 전쟁’에서 호락호락하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볼커 룰’이라고 오바마 대통령이 명명할 정도라면 그에 부응하는 추진력도 부여받았을 것이다. 물론 FRB 독자적으로 금리를 올릴 수 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관련법안이 의회를 통과해야 하므로 저돌적인 추진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내 여론과 오바마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등을 업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건 은행권의 판도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경우 우리나라 은행산업도 글로벌 금융개혁의 영향권에 들게 될 것이므로 앞으로도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웬 서부영화의 제목이냐고 하겠지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금융개혁안을 내놓으면서 전면에 내세운 폴 볼커 전(前)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개혁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볼커를 가리키면서 이번 개혁안을 ‘볼커 룰(Volcker Rule)’로 정했다고 소개했다. 2008년 11월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경제회생자문위원회(ERAB) 위원장으로 임명된 볼커지만 그간 눈에 띄는 활동이 없다가 금융개혁의 선봉장으로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간 금융개혁을 이끌던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의 입지가 크게 축소되고 볼커 전 의장이 뜨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볼커는 1979년 8월 카터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FRB 의장에 취임했지만 카터 대통령의 재선(再選)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었던 인물이다. 취임하자마자 볼커는 두 자릿수에 달하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통화공급을 급격하게 줄이고 기준금리를 급속히 인상했다. 취임 당시 11%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1980년 말에는 20%까지 끌어올렸다. 이 바람에 5%대이던 실업률은 7%대로 뛰어올랐고 성장률은 1978년 5.6%에서 1979년 3.1%, 1980년 -0.3%로 추락했다.
이런 와중인 1980년 11월에 치러진 선거에서 카터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에게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 카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거를 통해 취임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첫 번째 케이스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볼커, 1980년대 美 인플레 잡아
당시 볼커는 목표를 세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하고야 마는 과감하면서도 저돌적인 캐릭터의 전형(典型)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들어선 이후에도 높은 금리는 이어졌고 1981년 2.5%로 호전되는 듯하던 성장률은 1982년에 다시 -1.9%로 내려앉으면서 실업률은 10%를 넘어섰다. 실업률이 두 자릿수로 치솟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건설노조와 농민들이 FRB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자동차딜러들이 팔리지 않고 있는 새 차의 키를 관(棺)에 담아 볼커에게 보냈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981년 중반부터 한 자릿수로 떨어진 데 이어 1982년 하반기에는 3~4%대로 안정됐다.
경제학자들은 이때부터 미국 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1987년 FRB 의장직을 물려받은 앨런 그린스펀이 장수하면서 미국 경제를 한 단계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도 볼커가 어렵게 다져놓은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서두(序頭)가 좀 길어졌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금융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이런 볼커를 내세운 이유가 무엇일까? 금융개혁안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관철시키겠다는 강한 의지와 중간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좋은 결과를 확신하는 신뢰를 국민들에게 내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평생 동안 금융인으로 살아온 올해 82세인 볼커가 내놓은 개혁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과연 오바마 대통령의 말대로 ‘국민들이 더 이상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인 동시에 ‘미국 경제와 납세자를 보호하고 제2의 금융위기를 막기 위한 상식적인 개혁’일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이번에 내놓은 개혁안이 단순히 ‘상식적인 수준’이 아니라 미국은 물론 전(全) 세계 금융시스템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매우 근본적이면서도 개혁적인 수준이라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개혁안은 한마디로 금융기관들의 ‘업무 범위(scope)와 규모(size)’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은행 업무범위와 규모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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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바마 미(美)대통령의 개혁안에 의하면 골드만삭스처럼 투자업무 비중이 높은 은행들은 상업은행 업무를 잘라내야 한다. 뉴욕 월스트리트에 있는 골드만삭스 본사. |
한 걸음 더 나가 은행이 헤지펀드를 소유 또는 투자하거나 PEF(Private Equity Fund·私募펀드)에 대한 투자 또는 자문을 금지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PEF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점에서는 헤지펀드와 비슷하나 만기가 상대적으로 길고 주식이나 채권 또는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투자보다는 구조조정 또는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를 말한다.
규모면에서는 일부 대형 금융기관의 시장점유율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규모를 사전에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금융기관의 크기를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토록 함으로써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과정에서 발생한 대마불사의 구제책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20세기 이후 은행의 업무범위는 시기에 따라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이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 구분과 역사적 흐름을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상업은행은 예금을 자금원으로 단기대출을 기본업무로 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은행을 말한다. 반면 투자은행은 이름 그대로 자기자본과 차입자본을 이용해 주식과 채권을 발행하거나 인수 또는 판매하는 등의 장기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은행을 말한다.
이때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상업은행은 고객에게 정해진 금리를 지급하는 반면 투자은행은 투자성과에 따라 고객에게 돌아가는 수익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투자은행이 상업은행에 비해 보다 공격적으로 영업(투자)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상업은행은 금융감독당국의 규제와 감독을 엄격하게 받는 반면 투자은행은 거의 받지 않고 있다는 점도 투자은행의 공격적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위험 낮은 전통적 투자은행 업무만 가능
1929년 대공황 이전에는 한 은행이 상업은행 업무와 투자은행 업무를 겸영(兼營)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였다. 하지만 대공황으로 투자은행 업무에서 대규모 손실이 나면서 은행들이 대거 도산(倒産)하자 이 같은 겸영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1933년에 제정된 것이 상업은행 업무와 투자은행 업무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이다.
이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전업주의(專業主義)가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은행들의 치열한 로비에 힘입어 1999년 ‘그램-리치-브라일리법(Gramm-Leach-Bliley Act)’이 제정되면서 겸업에 대한 제한이 대폭 완화되었다. 여전히 상업은행이 투자은행 업무를 사내(社內)에서 겸영할 수는 없지만, 상업은행과 투자은행과의 계열관계 구축 및 임원 겸직(兼職)이 가능해진 것이다. 즉 금융그룹 또는 지주(持株)회사 형태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한 우산 밑에서 경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개혁안은 은행, 특히 상업은행만 놓고 본다면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은행을 소유하고 있는 금융그룹(은행지주회사)의 경우, 계열관계에 있는 투자은행도 프랍 트레이딩은 물론 헤지펀드, PEF 관련업무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은행지주회사에 속해 있는 투자은행은 유가증권 인수, 주식위탁매매, M&A 자문과 같은 위험이 낮은 전통적인 투자은행 업무만 할 수 있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개혁안이 ‘글래스-스티걸법의 부활’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금융기관은 물론 어떤 기업에도 업무 범위와 규모를 제한한다는 것은 일종의 족쇄와도 같다. 업무범위도 줄어들고 규모도 키울 수 없다면 손발이 잘리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금융개혁안이 시행될 경우 골드만삭스처럼 투자은행 업무 비중이 높은 은행들은 상업은행 업무를 잘라내야 할 것이다. 반면 씨티그룹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BoA)처럼 상업은행 업무 비중이 높은 은행들은 수익성이 높은 투자은행 업무를 대폭 줄여야 할 것이다. 업무범위의 축소로 규모를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줄여야 하는 처지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반발
이에 따라 월스트리트의 대형은행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라는 비난에서부터 “미국 은행들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이 직접 선거유세에 나섰던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예상외로 패배한 이후 내놓고 있는 인기 영합성 정책 중의 하나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취임 초기 60%를 웃돌던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에는 48%대까지 떨어져 있다. 또한 상당수 공화당 상원의원은 개혁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를 등에 업고 월스트리트는 개혁안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로비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에 내놓은 금융개혁안이 미국의 대형은행들이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主犯)임에도 여전히 돈놀이에 열중하고 있다는 인식과 여론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대형은행들의 과도한 위험투자 및 마구잡이로 만들어 낸 파생상품이 주택시장 거품을 만들어 냈다는 데는 큰 이의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거품이 붕괴되면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발생했고 이는 곧 금융위기를 넘어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로까지 사태가 악화됐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정부가 국민들의 혈세(血稅)로 이들 대형은행에 구제자금을 쏟아부은 이후의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에 힘입어 금융시장 상황이 호전되면서 대형은행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 대형은행이 중소기업 대출 등 경제 살리기에는 나서지 않고 또다시 위험투자 등으로 고(高)수익을 노리는가 하면 대규모 보너스 잔치 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이맛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2007년 12월 이후 새로 생겨난 실업자만 800만명을 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실업률은 10%를 오르내리고 있을 정도이다. 미국의 실업률이 10%를 넘어서기는 앞서 언급한 대로 볼커가 FRB의장으로 있던 1983년 중반 이후 26년 만에 처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같은 미국인들의 반감(反感)을 앞으로도 잘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대형은행들이 투자은행 업무의 실패로 부실화되고 파산할 경우 국민세금으로 구제해야 하는 대마불사 신화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투자은행의 자기자본 투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여론이 합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혁안에서 예금과 대출업무를 위주로 하는 상업은행에 대해서는 정부의 계속적인 보호와 지원 정도에 변화가 없다. 그러나 위험성이 큰 자기자본투자에 치중하는 투자은행에 대해서는 보호막을 제거함으로써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구분과 지원 정도를 보다 명확히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당장 국내 은행권에 미치는 영향 작을 듯
이번 금융개혁안이 가져올 파장은 발표 이후 금융시장 동향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다우지수가 이틀에 걸쳐 4% 가까이 급락하면서 작년 11월 초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외환시장에서는 금융개혁안의 불확실성 등으로 안전자산(통화) 선호 현상이 강화되면서 달러화와 엔화가 동반강세를 보였다. 유럽과 아시아의 증시(證市)도 일제히 급락세를 보였다. 국내 금융시장 또한 외국인투자자들이 매도(賣渡)에 나서면서 3% 정도 하락했고 환율은 달러당 14원이나 급등하면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지형을 바꿀 정도의 개혁안이 미국 의회를 쉽사리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의회의 심의과정에서 대형은행들과 보수 진영으로부터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글래스-스티걸법도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한 이후 거의 4년이나 지난 1933년에 통과·시행되었다. 또한 앞으로의 논의 및 심의 과정에서 법안의 내용도 상당히 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계 은행들의 투자은행업무가 어떤 식으로건 제약을 받게 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당분간 글로벌 증시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안전통화인 달러화와 엔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다. 은행들의 위험투자를 제한할 경우 상품시장은 물론 주식시장에서도 돈이 빠져나와 안전자산인 달러화 또는 엔화 표시 자산으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미국의 금융개혁이 당장 국내 은행권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은행들도 모양새는 미국처럼 은행지주회사 형태로 계열사(증권사)가 투자은행 업무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범위와 규모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금융개혁 글로벌 공조 쉽지 않을 것
그러나 미국이 이번 금융개혁을 글로벌 공조(共助)로 몰고 갈 경우 우리나라 또한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특히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기들만 규제를 강화하면서 은행들의 업무를 제한할 경우 미국 은행들의 경쟁력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2월의 다보스포럼에서도 금융규제와 개혁이 주요의제 중의 하나로 다뤄지기도 했다. 앞으로 G7 또는 G20에서도 미국의 주도하에 글로벌 금융규제와 개혁이 계속 주요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글로벌 공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은행들의 업무범위는 물론 경영상태와 경쟁력 등에서 나라마다 차이가 크게 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의 경우 대다수 은행이 상업은행 업무와 투자은행 업무를 한 회사 내에서 겸영하고 있어서 미국의 개혁안을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다. 업무를 엄격히 제한할 경우 서로 다른 회사로 분리해야 할 것이고 그에 따라 은행들의 경쟁력이 급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영국과 프랑스는 금융개혁의 필요성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
또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전적을 가지고 있는 폴 볼커가 이번 ‘월스트리트와의 전쟁’에서 호락호락하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볼커 룰’이라고 오바마 대통령이 명명할 정도라면 그에 부응하는 추진력도 부여받았을 것이다. 물론 FRB 독자적으로 금리를 올릴 수 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관련법안이 의회를 통과해야 하므로 저돌적인 추진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내 여론과 오바마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등을 업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건 은행권의 판도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경우 우리나라 은행산업도 글로벌 금융개혁의 영향권에 들게 될 것이므로 앞으로도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