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경제 바닥 지나 상승국면. 내년 4% 성장 예상
⊙ 세계 경제는 내년 하반기, 혹은 2011년에 회복될 것
⊙ “노동시장 유연화, 법질서 확립, 규제완화 이뤄야 글로벌 국가 도약 가능”
⊙ 위안화가 기축통화 되기는 어렵다
玄旿錫
⊙ 1950년 청주 출생.
⊙ 경기고·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同 대학원 행정학 석사·美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 경제기획원장관 비서관,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대통령비서실 경제국장,
재경부 경제정책국장·국고국장, 세무대학장, ASEM준비기획단장,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역임.
⊙ 저서: <경제정책결정론> <새로운 성장동력과 균형발전>.
취재지원 : 姜振圭 月刊朝鮮 인턴기자
⊙ 세계 경제는 내년 하반기, 혹은 2011년에 회복될 것
⊙ “노동시장 유연화, 법질서 확립, 규제완화 이뤄야 글로벌 국가 도약 가능”
⊙ 위안화가 기축통화 되기는 어렵다
玄旿錫
⊙ 1950년 청주 출생.
⊙ 경기고·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同 대학원 행정학 석사·美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 경제기획원장관 비서관,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대통령비서실 경제국장,
재경부 경제정책국장·국고국장, 세무대학장, ASEM준비기획단장,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역임.
⊙ 저서: <경제정책결정론> <새로운 성장동력과 균형발전>.
취재지원 : 姜振圭 月刊朝鮮 인턴기자
“올해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나아질 것 같아요. 여러 지표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어요.”
지난 9월 4일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에서 만난 玄旿錫(현오석·59) 원장은 하반기 한국경제 전망 수정치 발표를 앞두고 관련 자료를 최종 점검하고 있었다. 지난 5월, 올해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2.3%, 내년 경제성장률을 3.7%로 예상했던 KDI는 최근 경기 호전 상황을 반영해 올해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1%, 내년 경제성장률을 4%대로 상향조정했다. 이는 정부의 예상 경제성장률(-1.5%)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현오석 원장은 “수출 감소세가 완화되고 소비를 중심으로 한 내수 여건이 나아지고 있다”며 “대내외 경제여건이 예상보다 빠르게 호전돼 경제성장률을 당초 전망보다 높게 잡았다”고 했다.
―내년 성장률을 4%로 낙관적 전망을 내놓은 근거는 뭡니까.
“먼저, 정부 주도의 확장정책이 민간시장에 확산돼 소비와 투자가 늘고 있습니다. 둘째, 세계경제 회복 여파로 수출이 올해에 비해 늘 것으로 봅니다. 셋째, 금융시장의 여건이 개선돼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있어요. 이를 종합해 내년 경제성장률을 4%대로 예상한 겁니다.”
―세계적 신용평가회사인 ‘피치’가 최근 한국 경제를 부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조정했고, OECD도 한국의 경제 회복 속도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다고 평가했더군요.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2007년 말부터 시작됐다고 보고 있어요. 작년 우리 경제는 단기외채 부문에서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 정부가 적절한 시기에 재정과 금융정책 분야의 조치를 잘했어요. OECD 국가 중 1분기에 한국과 호주만 플러스 성장을 했는데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회복 기미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른바 ‘더블딥’ 가능성은 없습니까.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 경제가 바닥을 지나 상승국면에 있다는 점입니다. 산업생산지수나 공장 가동률을 봐도 그래요. 재고도 거의 바닥상태입니다. 이런 신호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불안한 것은 세계경제가 아직 회복기에 접어들지 못했기 때문이죠. 동유럽의 경우 위험성이 여전하고 미국 등 주요국가의 경제도 회복되지 않아 돌발변수가 존재하는 셈입니다.”
미국 시장 소비 회복 아직 멀어
현 원장은 우리 경제의 회복추세를 ‘스몰(small) v’자 형태로 예상했다.
“올해 초 많은 전문가들은 경기회복 형태를 L자형으로 비유했어요. 회복이 상당 기간 어려울 것이라 했는데 경기가 호전되자 V자 형태로 전망했다가 다시 U자형이 될 것이라 하더군요. 저는 스몰(small) v자 형태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회복은 빨리 되는데 그 다음부터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된다는 거죠. 경기가 바닥을 쳤지만 이것이 얼마만큼 지속되느냐는 앞으로 세계경제와 민간기업의 성과에 달려 있어요.”
―정부는 물론 민간부문의 역할이 중요하겠군요.
“민간기업이 잘해야 해요. 기업은 지금처럼 금융비용이 저렴할 때 R&D와 사람에 대해 적극 투자해야 합니다. 더블딥의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는 성장 잠재력과 인플레이션을 고려해 정책을 펴야 해요. 특히 법질서를 확립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규제완화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가의 경기는 언제쯤 회복될까요.
“미국의 경제위기는 과거 대공황에 버금가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경기 하락폭이 기록적이고 침체기간도 2년 이상 계속되고 있어요. 두 번째 특징으로는 과거에는 미국과 아시아는 따로 움직였는데 지금은 같이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아시아의 경기불황이 미국에 악영향을 주고 있어요. 세 번째는 과소비·과투자로 미국 경제에 버블현상이 심각하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모든 경제주체가 현금만 선호하고 있어요. 과거 저축률이 50% 정도였는데 지금은 5%에 불과해요. 소비가 높아지려면 아직 멀었어요.”
―오바마 정부가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는데도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입니까.
“우리의 경우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정부가 정책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면 효과가 금방 나타나요. 그러나 경제규모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미국은 재정정책의 효과가 시간을 두고 서서히 나옵니다.”
현 원장은 세계 주요 국가의 경기회복 상태를 두 부류로 나눴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독일 등은 바닥을 쳤고, 미국과 영국 등은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 원장은 현재 대부분의 국가가 재정확대 정책을 펴는 상황이라 내년 하반기나 2011년부터 글로벌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우리 경제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작년과 비교하면 마이너스 2%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번 경제위기를 통해 한국경제는 글로벌 경제 속에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어요. 국내 경제문제를 우리 스스로 풀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한국이 G20에 참여하게 된 것은 좋은 신호입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체질강화입니다. 평소 경제체질을 얼마만큼 강화하느냐에 따라 위기상황에서 달라질 수 있어요.”
확장적 재정정책 계속 펴야
―우리는 정부의 예산 조기집행으로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데 이에 따른 부작용은 없을까요.
“혹자는 ‘하반기에 사용할 실탄이 없지 않으냐’라고 하는데 실탄을 쏘는 시점이 중요해요. 정부의 조기 예산집행은 마른 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아요. 민간경제가 뒤따라오며 물을 계속 부어줘야 땅에서 식물이 자라지요. 그런 의미에서 예산을 앞당겨 쓸 필요가 있지요.”
―우리 정부의 재정건전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재정적자는 5% 정도이고 국가채무는 약 300조원입니다. 채무비율은 자산 대비 30% 정도인데, OECD 국가의 평균 채무비율이 70%대입니다.”
―얼마 전 IMF는 한국 정부에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 것을 권유했습니다.
“정책집행자는 어떤 시점에 어떤 정책을 펼 것인가를 항상 고민합니다. 현재 우리 정부는 더블딥과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모두 상정해 놓고 어느 것이 더 위험한지를 판단하고 있어요. 지금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에 의한 피해보다 실업에 의한 피해가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확장적 재정정책을 계속 펴야 합니다.”
―다른 국가도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고 있습니까.
“대부분이 유사한 정책을 펴고 있는데 나라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어요. 미국은 대공황이란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실업에 대한 공포가 크고, 독일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더 크죠. 확장적 재정정책에 있어 독일이 미국보다 소극적입니다. 과거 비스마르크 시대에 2000%에 가까운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 경제가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제1 교역국인 중국의 경기가 살아나야 할 텐데요. 중국 사정은 어떻습니까.
“중국은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고용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중국은 작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경기가 침체되자 재정지출 규모를 GDP의 20% 정도로 늘렸고 감세정책도 내놓았습니다. 고용을 늘려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겁니다. 현재 중국경제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주요 경제석학들은 적어도 7~8%의 성장을 계속할 것이라고 예상해요.
최근에 만난 중국의 고위 경제 관계자들을 보면, 중국이 산업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섬유산업처럼 가공무역 형태로 경제발전을 해 왔는데 이제 중화학 기술에 눈을 돌리고 있어요.”
현 원장은 얼마 전 중국 광둥성(廣東省) 정부 소속 공무원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강의 주제는 ‘산업구조 이동에 따른 고용문제’였다.
“한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를 배우기 위한 자리였어요. 중국 공무원들의 열의가 대단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중국경제를 전망하자면 중국의 내수시장 잠재력이 뛰어나 앞으로 건실한 상황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 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 사람들은 미국과 더불어 이른바 G2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경제규모는 크지만 한국에 비해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이 한참 떨어진다는 말도 해요. 아마도 세계경제에 대한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노동시장 유연성이 경쟁력 확보의 전제조건
―일본 경제는 어떻습니까.
“잃어버린 10년을 거쳤지만 구조조정을 제대로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경쟁력을 높이는 데 다소 미흡했다고 봐요. 과거 1970~80년대만 해도 미국은 일본을 배우겠다며 난리였어요. 1990년대 들어 일본은 침체기에 빠졌는데, 최근 일본 자민당 정권이 참패한 것도 경기침체와 무관하지 않아요. 일본은 IT 등 최첨단 산업에서 기술개발을 하지 않았고, 산업현장의 인력도 제대로 조정하지 못했어요. 노동 유연성이 많이 부족합니다.”
―노동문제를 놓고 보면 한국의 강성노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외국인 투자자 10명 중 9명이 對(대)한국 투자의 걸림돌로 노사문제를 듭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해요. 노동시장의 유연성 없이는 산업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요. 노동시장을 왜곡하는 규제도 풀어야 해요. 물론 실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차원의 사회보장 프로그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만 경제위기에 얼마만큼 잘 대응하느냐는 경제 시스템의 유연성에 달려 있어요. 장기적으로 미국경제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이유도 다른 국가에 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강하기 때문이죠.”
―한국의 勞使(노사)문제는 주요 정치현안으로 부상하곤 합니다.
“정치권이 나서면 문제가 꼭 발생해요.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 정치권은 노동문제를 정치논리로 처리했는데 이게 빌미가 돼 외환위기가 온 측면이 있습니다.”
―과거 외환위기와 비교했을 때 작년부터 시작된 금융위기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1997년 외환위기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체감 정도가 깊었지요. 대기업이 무너지고 금융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충격이 컸어요. 그런 위기과정을 거쳐서인지 지금의 위기는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수치로 보면 결코 간단한 상황이 아닙니다. 결코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현재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됐는데 우리가 위기를 탈출한 결정적 요인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정부의 정확한 상황판단입니다.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해 선제적으로 대응했어요. 둘째,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들과의 정책공조가 적절했습니다. 특히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는 금융시장에 결정적 안정을 가져왔어요. 셋째, 정부나 민간기관이 10년 전 외환위기 때 체득한 경험을 이번 위기상황에 적극 활용했어요. 과거의 경험이 없었다면 피해가 상당했을 거예요.”
위안화, 기축통화 되기 어려울 것
―정부당국의 환율정책은 어떻습니까.
“환율은 그 나라의 신용을 말해주는 겁니다. 환율이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신용이 떨어진다는 뜻이죠. 그래서 환율안정이 중요합니다. 환율은 원칙적으로 시장에 맡겨야 해요. 정부가 환율시장에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조만간 원화가 절상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수출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고 중국의 위안화는 상대적으로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달러 가치가 떨어진다 해도 현재 국제시장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건 역시 달러입니다. 기축통화가 바뀌기는 어려울 겁니다.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려면 위안화가 세계시장에 충분히 공급되어야 하고 인플레이션 없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해요. 그런 점에서 위안화는 아직 멀었어요.”
―위기상황에서도 우리 기업은 해외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수출시장 전체의 파이는 줄었지만 자동차, 전자제품 분야에서 점유율이 반대로 늘고 있습니다. 중국시장의 구매력이 여전하기 때문이죠. 우리의 경쟁국가들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요인을 찾으라면 환율효과를 들 수 있겠지요. 환율이 올라 금융시장이 불안해졌지만 수출기업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우리 기업들이 기술개발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환율효과는 일시적일 텐데 수출이 계속 늘까요.
“환율효과가 사라지더라도 세계경제가 회복되면 수출은 나아질 겁니다. 현재 1일 평균 수출액이 약 10억 달러입니다. 경상수지가 작년의 경우 700억 달러 적자였는데 올해는 300억 달러 흑자입니다. 내년에 경기가 회복되면 수입이 늘어 흑자 폭이 다소 줄 것으로 보입니다.”
―민간기업의 수출을 늘리기 위해 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요.
“기업들은 여전히 경제상황을 불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불확실성이 투자를 가로막고 있지요.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규제를 큰 걸림돌로 여기고 있습니다. 의료나 교육과 같은 서비스업 분야에서 투자 전망이 좋은데 규제가 여전해요. 경제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많이 풀어야 합니다.”
지식형 서비스업 발전시켜야
―‘친기업적’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조치가 여전히 미약하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분야처럼 ‘덩어리 규제’가 적지 않아요. 정부가 규제완화 조치를 취하려 해도 이해당사자들이 많아 개혁을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지난번에 KDI 주최로 규제완화 관련 공청회를 하려고 했는데 이해당사자가 몰려와서 행사를 열지도 못했어요. 안경사업의 경우, 현재 안경사만이 할 수 있어요. 미용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식당업을 요리사 자격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의료분야도 일반 사업자가 의사를 고용해 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정치권이 각종 규제를 풀어줘야 하는데 표를 의식해 못하고 있어요.”
―최근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가 서민 중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실물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실업률도 줄지 않는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입니다. 고용증가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 나타나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1년 후에 위기를 극복했지만 실업률은 그보다 더 늦은 1999년 4월에 가장 높았어요.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실업문제는 곧바로 풀리지 않습니다. 시장이 위기를 맞으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게 영세사업자들입니다. 서민대책은 그런 바탕에서 나온 겁니다.”
―현 정부는 녹색성장을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녹색성장은 잠재력이 큰 분야입니다. 우리가 IT분야에서 성장동력을 찾았듯이 녹색성장 분야를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해요. 향후 수출시장에서 녹색성장에 부합되지 않는 제품은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많아요. 전체 산업구조가 그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이미 선진국은 오래전부터 이를 준비해 왔어요.”
―대한민국이 세계 7大(대)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본·기술·노동 등 각 분야의 성장 잠재력을 키우고 신성장 동력 같은 분야에 자본을 투입해야 합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도 만들어 내야 하고 R&D 투자도 확대해 나가야 하겠지요.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서비스업 비율이 제일 낮아요. 전통적인 도소매, 음식업이 아닌 금융·의료·디자인 등 지식형 서비스업을 발전시켜야 해요.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풀고 인식의 전환도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서비스를 ‘공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바꿔야 해요.”
―KDI는 국내 대표적인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경제정책 수립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해 왔습니다. 정부에 비판적인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고 보는데.
“정책을 수립하기 전에 충분한 근거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죠. 최근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정부를 비판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사실과 달라요.”
정부와 KDI는 상호 보완관계
―출구전략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언론이 ‘출구전략’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데 이는 적절한 용어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어떻게 명예롭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단어입니다. 우리는 위기를 이용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그 ‘출구전략’을 언제 쓸 것인가는 경기가 회복되는 과정을 고려해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실물경제의 회복을 체감하려면 내년 하반기까지 가 봐야 하는데 그때 가서 판단해도 늦지 않아요.”
―경제 전문가인 鄭雲燦(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총리에 내정됐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다소 비판적인데 정부 내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은 없을까요.
“학자가 아닌 총리의 입장에서 국정 전반을 바라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지요.”
―지난 3월 KDI 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과거 KDI와의 인연이 있었습니까.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하면서 KDI와 접촉을 많이 했어요. 1970~80년대 정부는 경제, 사회개발 정책을 많이 폈는데 그때 KDI가 중추역할을 했습니다.”
―KDI 설립 초기와 비교할 때 국내외 여건이 많이 변했습니다. KDI의 역할도 달라져야 할 텐데요.
“KDI는 선제적으로 정책을 제시하기 위해 예측 기능을 강화해 정부 당국에 적절한 정책을 내놓아야 해요. 두 번째로 경제 분야에 머물지 말고 정치·사회 전 분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현 가능성이 있는 정책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세 번째로 과거 권위주의적 정부 시대처럼 일방적인 방향이 아닌 이해당사자들까지 참여하는 투웨이 방식을 통해 정책을 생산해야 합니다.
정부와 KDI의 관계는 서로 협조관계에 있습니다. 정책에 관한 기본정보는 정부가 훨씬 많아요. 기초정보에 대한 협조를 받지 않으면 좋은 정책을 내놓을 수 없어요. 정부와 KDI는 대척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지난 9월 4일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에서 만난 玄旿錫(현오석·59) 원장은 하반기 한국경제 전망 수정치 발표를 앞두고 관련 자료를 최종 점검하고 있었다. 지난 5월, 올해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2.3%, 내년 경제성장률을 3.7%로 예상했던 KDI는 최근 경기 호전 상황을 반영해 올해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1%, 내년 경제성장률을 4%대로 상향조정했다. 이는 정부의 예상 경제성장률(-1.5%)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현오석 원장은 “수출 감소세가 완화되고 소비를 중심으로 한 내수 여건이 나아지고 있다”며 “대내외 경제여건이 예상보다 빠르게 호전돼 경제성장률을 당초 전망보다 높게 잡았다”고 했다.
―내년 성장률을 4%로 낙관적 전망을 내놓은 근거는 뭡니까.
“먼저, 정부 주도의 확장정책이 민간시장에 확산돼 소비와 투자가 늘고 있습니다. 둘째, 세계경제 회복 여파로 수출이 올해에 비해 늘 것으로 봅니다. 셋째, 금융시장의 여건이 개선돼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있어요. 이를 종합해 내년 경제성장률을 4%대로 예상한 겁니다.”
―세계적 신용평가회사인 ‘피치’가 최근 한국 경제를 부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조정했고, OECD도 한국의 경제 회복 속도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다고 평가했더군요.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2007년 말부터 시작됐다고 보고 있어요. 작년 우리 경제는 단기외채 부문에서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 정부가 적절한 시기에 재정과 금융정책 분야의 조치를 잘했어요. OECD 국가 중 1분기에 한국과 호주만 플러스 성장을 했는데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회복 기미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른바 ‘더블딥’ 가능성은 없습니까.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 경제가 바닥을 지나 상승국면에 있다는 점입니다. 산업생산지수나 공장 가동률을 봐도 그래요. 재고도 거의 바닥상태입니다. 이런 신호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불안한 것은 세계경제가 아직 회복기에 접어들지 못했기 때문이죠. 동유럽의 경우 위험성이 여전하고 미국 등 주요국가의 경제도 회복되지 않아 돌발변수가 존재하는 셈입니다.”
미국 시장 소비 회복 아직 멀어
현 원장은 우리 경제의 회복추세를 ‘스몰(small) v’자 형태로 예상했다.
“올해 초 많은 전문가들은 경기회복 형태를 L자형으로 비유했어요. 회복이 상당 기간 어려울 것이라 했는데 경기가 호전되자 V자 형태로 전망했다가 다시 U자형이 될 것이라 하더군요. 저는 스몰(small) v자 형태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회복은 빨리 되는데 그 다음부터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된다는 거죠. 경기가 바닥을 쳤지만 이것이 얼마만큼 지속되느냐는 앞으로 세계경제와 민간기업의 성과에 달려 있어요.”
―정부는 물론 민간부문의 역할이 중요하겠군요.
“민간기업이 잘해야 해요. 기업은 지금처럼 금융비용이 저렴할 때 R&D와 사람에 대해 적극 투자해야 합니다. 더블딥의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는 성장 잠재력과 인플레이션을 고려해 정책을 펴야 해요. 특히 법질서를 확립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규제완화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가의 경기는 언제쯤 회복될까요.
“미국의 경제위기는 과거 대공황에 버금가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경기 하락폭이 기록적이고 침체기간도 2년 이상 계속되고 있어요. 두 번째 특징으로는 과거에는 미국과 아시아는 따로 움직였는데 지금은 같이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아시아의 경기불황이 미국에 악영향을 주고 있어요. 세 번째는 과소비·과투자로 미국 경제에 버블현상이 심각하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모든 경제주체가 현금만 선호하고 있어요. 과거 저축률이 50% 정도였는데 지금은 5%에 불과해요. 소비가 높아지려면 아직 멀었어요.”
―오바마 정부가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는데도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입니까.
“우리의 경우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정부가 정책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면 효과가 금방 나타나요. 그러나 경제규모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미국은 재정정책의 효과가 시간을 두고 서서히 나옵니다.”
현 원장은 세계 주요 국가의 경기회복 상태를 두 부류로 나눴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독일 등은 바닥을 쳤고, 미국과 영국 등은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 원장은 현재 대부분의 국가가 재정확대 정책을 펴는 상황이라 내년 하반기나 2011년부터 글로벌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우리 경제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작년과 비교하면 마이너스 2%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번 경제위기를 통해 한국경제는 글로벌 경제 속에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어요. 국내 경제문제를 우리 스스로 풀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한국이 G20에 참여하게 된 것은 좋은 신호입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체질강화입니다. 평소 경제체질을 얼마만큼 강화하느냐에 따라 위기상황에서 달라질 수 있어요.”
확장적 재정정책 계속 펴야
―우리는 정부의 예산 조기집행으로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데 이에 따른 부작용은 없을까요.“혹자는 ‘하반기에 사용할 실탄이 없지 않으냐’라고 하는데 실탄을 쏘는 시점이 중요해요. 정부의 조기 예산집행은 마른 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아요. 민간경제가 뒤따라오며 물을 계속 부어줘야 땅에서 식물이 자라지요. 그런 의미에서 예산을 앞당겨 쓸 필요가 있지요.”
―우리 정부의 재정건전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재정적자는 5% 정도이고 국가채무는 약 300조원입니다. 채무비율은 자산 대비 30% 정도인데, OECD 국가의 평균 채무비율이 70%대입니다.”
―얼마 전 IMF는 한국 정부에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 것을 권유했습니다.
“정책집행자는 어떤 시점에 어떤 정책을 펼 것인가를 항상 고민합니다. 현재 우리 정부는 더블딥과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모두 상정해 놓고 어느 것이 더 위험한지를 판단하고 있어요. 지금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에 의한 피해보다 실업에 의한 피해가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확장적 재정정책을 계속 펴야 합니다.”
―다른 국가도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고 있습니까.
“대부분이 유사한 정책을 펴고 있는데 나라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어요. 미국은 대공황이란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실업에 대한 공포가 크고, 독일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더 크죠. 확장적 재정정책에 있어 독일이 미국보다 소극적입니다. 과거 비스마르크 시대에 2000%에 가까운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 경제가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제1 교역국인 중국의 경기가 살아나야 할 텐데요. 중국 사정은 어떻습니까.
“중국은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고용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중국은 작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경기가 침체되자 재정지출 규모를 GDP의 20% 정도로 늘렸고 감세정책도 내놓았습니다. 고용을 늘려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겁니다. 현재 중국경제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주요 경제석학들은 적어도 7~8%의 성장을 계속할 것이라고 예상해요.
최근에 만난 중국의 고위 경제 관계자들을 보면, 중국이 산업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섬유산업처럼 가공무역 형태로 경제발전을 해 왔는데 이제 중화학 기술에 눈을 돌리고 있어요.”
현 원장은 얼마 전 중국 광둥성(廣東省) 정부 소속 공무원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강의 주제는 ‘산업구조 이동에 따른 고용문제’였다.
“한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를 배우기 위한 자리였어요. 중국 공무원들의 열의가 대단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중국경제를 전망하자면 중국의 내수시장 잠재력이 뛰어나 앞으로 건실한 상황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 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 사람들은 미국과 더불어 이른바 G2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경제규모는 크지만 한국에 비해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이 한참 떨어진다는 말도 해요. 아마도 세계경제에 대한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노동시장 유연성이 경쟁력 확보의 전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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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한국은 해외 수출 분야에서 선전하고 있다. 컨테이너가 가득 찬 인천항. |
“잃어버린 10년을 거쳤지만 구조조정을 제대로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경쟁력을 높이는 데 다소 미흡했다고 봐요. 과거 1970~80년대만 해도 미국은 일본을 배우겠다며 난리였어요. 1990년대 들어 일본은 침체기에 빠졌는데, 최근 일본 자민당 정권이 참패한 것도 경기침체와 무관하지 않아요. 일본은 IT 등 최첨단 산업에서 기술개발을 하지 않았고, 산업현장의 인력도 제대로 조정하지 못했어요. 노동 유연성이 많이 부족합니다.”
―노동문제를 놓고 보면 한국의 강성노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외국인 투자자 10명 중 9명이 對(대)한국 투자의 걸림돌로 노사문제를 듭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해요. 노동시장의 유연성 없이는 산업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요. 노동시장을 왜곡하는 규제도 풀어야 해요. 물론 실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차원의 사회보장 프로그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만 경제위기에 얼마만큼 잘 대응하느냐는 경제 시스템의 유연성에 달려 있어요. 장기적으로 미국경제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이유도 다른 국가에 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강하기 때문이죠.”
―한국의 勞使(노사)문제는 주요 정치현안으로 부상하곤 합니다.
“정치권이 나서면 문제가 꼭 발생해요.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 정치권은 노동문제를 정치논리로 처리했는데 이게 빌미가 돼 외환위기가 온 측면이 있습니다.”
―과거 외환위기와 비교했을 때 작년부터 시작된 금융위기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1997년 외환위기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체감 정도가 깊었지요. 대기업이 무너지고 금융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충격이 컸어요. 그런 위기과정을 거쳐서인지 지금의 위기는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수치로 보면 결코 간단한 상황이 아닙니다. 결코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현재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됐는데 우리가 위기를 탈출한 결정적 요인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정부의 정확한 상황판단입니다.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해 선제적으로 대응했어요. 둘째,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들과의 정책공조가 적절했습니다. 특히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는 금융시장에 결정적 안정을 가져왔어요. 셋째, 정부나 민간기관이 10년 전 외환위기 때 체득한 경험을 이번 위기상황에 적극 활용했어요. 과거의 경험이 없었다면 피해가 상당했을 거예요.”
위안화, 기축통화 되기 어려울 것
―정부당국의 환율정책은 어떻습니까.
“환율은 그 나라의 신용을 말해주는 겁니다. 환율이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신용이 떨어진다는 뜻이죠. 그래서 환율안정이 중요합니다. 환율은 원칙적으로 시장에 맡겨야 해요. 정부가 환율시장에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조만간 원화가 절상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수출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고 중국의 위안화는 상대적으로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달러 가치가 떨어진다 해도 현재 국제시장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건 역시 달러입니다. 기축통화가 바뀌기는 어려울 겁니다.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려면 위안화가 세계시장에 충분히 공급되어야 하고 인플레이션 없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해요. 그런 점에서 위안화는 아직 멀었어요.”
―위기상황에서도 우리 기업은 해외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수출시장 전체의 파이는 줄었지만 자동차, 전자제품 분야에서 점유율이 반대로 늘고 있습니다. 중국시장의 구매력이 여전하기 때문이죠. 우리의 경쟁국가들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요인을 찾으라면 환율효과를 들 수 있겠지요. 환율이 올라 금융시장이 불안해졌지만 수출기업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우리 기업들이 기술개발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환율효과는 일시적일 텐데 수출이 계속 늘까요.
“환율효과가 사라지더라도 세계경제가 회복되면 수출은 나아질 겁니다. 현재 1일 평균 수출액이 약 10억 달러입니다. 경상수지가 작년의 경우 700억 달러 적자였는데 올해는 300억 달러 흑자입니다. 내년에 경기가 회복되면 수입이 늘어 흑자 폭이 다소 줄 것으로 보입니다.”
―민간기업의 수출을 늘리기 위해 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요.
“기업들은 여전히 경제상황을 불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불확실성이 투자를 가로막고 있지요.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규제를 큰 걸림돌로 여기고 있습니다. 의료나 교육과 같은 서비스업 분야에서 투자 전망이 좋은데 규제가 여전해요. 경제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많이 풀어야 합니다.”
지식형 서비스업 발전시켜야
―‘친기업적’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조치가 여전히 미약하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분야처럼 ‘덩어리 규제’가 적지 않아요. 정부가 규제완화 조치를 취하려 해도 이해당사자들이 많아 개혁을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지난번에 KDI 주최로 규제완화 관련 공청회를 하려고 했는데 이해당사자가 몰려와서 행사를 열지도 못했어요. 안경사업의 경우, 현재 안경사만이 할 수 있어요. 미용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식당업을 요리사 자격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의료분야도 일반 사업자가 의사를 고용해 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정치권이 각종 규제를 풀어줘야 하는데 표를 의식해 못하고 있어요.”
―최근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가 서민 중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실물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실업률도 줄지 않는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입니다. 고용증가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 나타나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1년 후에 위기를 극복했지만 실업률은 그보다 더 늦은 1999년 4월에 가장 높았어요.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실업문제는 곧바로 풀리지 않습니다. 시장이 위기를 맞으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게 영세사업자들입니다. 서민대책은 그런 바탕에서 나온 겁니다.”
―현 정부는 녹색성장을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녹색성장은 잠재력이 큰 분야입니다. 우리가 IT분야에서 성장동력을 찾았듯이 녹색성장 분야를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해요. 향후 수출시장에서 녹색성장에 부합되지 않는 제품은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많아요. 전체 산업구조가 그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이미 선진국은 오래전부터 이를 준비해 왔어요.”
―대한민국이 세계 7大(대)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본·기술·노동 등 각 분야의 성장 잠재력을 키우고 신성장 동력 같은 분야에 자본을 투입해야 합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도 만들어 내야 하고 R&D 투자도 확대해 나가야 하겠지요.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서비스업 비율이 제일 낮아요. 전통적인 도소매, 음식업이 아닌 금융·의료·디자인 등 지식형 서비스업을 발전시켜야 해요.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풀고 인식의 전환도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서비스를 ‘공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바꿔야 해요.”
―KDI는 국내 대표적인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경제정책 수립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해 왔습니다. 정부에 비판적인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고 보는데.
“정책을 수립하기 전에 충분한 근거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죠. 최근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정부를 비판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사실과 달라요.”
정부와 KDI는 상호 보완관계
―출구전략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언론이 ‘출구전략’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데 이는 적절한 용어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어떻게 명예롭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단어입니다. 우리는 위기를 이용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그 ‘출구전략’을 언제 쓸 것인가는 경기가 회복되는 과정을 고려해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실물경제의 회복을 체감하려면 내년 하반기까지 가 봐야 하는데 그때 가서 판단해도 늦지 않아요.”
―경제 전문가인 鄭雲燦(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총리에 내정됐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다소 비판적인데 정부 내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은 없을까요.
“학자가 아닌 총리의 입장에서 국정 전반을 바라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지요.”
―지난 3월 KDI 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과거 KDI와의 인연이 있었습니까.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하면서 KDI와 접촉을 많이 했어요. 1970~80년대 정부는 경제, 사회개발 정책을 많이 폈는데 그때 KDI가 중추역할을 했습니다.”
―KDI 설립 초기와 비교할 때 국내외 여건이 많이 변했습니다. KDI의 역할도 달라져야 할 텐데요.
“KDI는 선제적으로 정책을 제시하기 위해 예측 기능을 강화해 정부 당국에 적절한 정책을 내놓아야 해요. 두 번째로 경제 분야에 머물지 말고 정치·사회 전 분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현 가능성이 있는 정책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세 번째로 과거 권위주의적 정부 시대처럼 일방적인 방향이 아닌 이해당사자들까지 참여하는 투웨이 방식을 통해 정책을 생산해야 합니다.
정부와 KDI의 관계는 서로 협조관계에 있습니다. 정책에 관한 기본정보는 정부가 훨씬 많아요. 기초정보에 대한 협조를 받지 않으면 좋은 정책을 내놓을 수 없어요. 정부와 KDI는 대척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