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분석] 韓·인도 CEPA 체결의 의미와 전망 : 월간조선

우리 역사와 문화에서 인도의 영향은 지대하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불교가 인도에서 비롯됐다. 요즘 식으로 따지자면 석가의 국적이 네팔이긴 하지만 당시는 그런 구분이 없었을 터이다.

얼마만큼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신라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였다고도 한다. 김해 김씨인 필자도 그의 피를 나누어 가진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교류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과의 물자교류는 거의 없었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인도가 해외 교역을 적극적으로 하던 나라가 아니었던 데다가 조선 역시 철저히 나라 문을 닫아 걸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는 조금 나아서 1960년대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 때부터 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인도는 1993년에 와서야 개방을 시작했다.

그러던 인도가 우리나라와의 교역을 위한 문을 더 넓게 열겠다고 나섰다. 물론 우리 역시 인도에 대한 문을 열겠다고 약속했다. 8월 7일에 양국 정부가 서명한 한-인도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Korea-India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이하 한·인도 CEPA)이 그것이다. CEPA라는 이름이 낯설기는 하지만, 우리가 칠레·미국·EU와 체결한 FTA와 유사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번 한·인도 CEPA협정이 국회의 비준을 얻어 발효될 경우 인도는 한국의 수출 품목 중 85%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거나 인하해야 한다. 72%는 관세가 철폐되고 13%는 감축된다. 가장 큰 관심사인 자동차 부품의 경우 평균 관세가 12.5%인데 8년 내 1~5%로 인하된다. 그밖에 철강·기계·화학·전자제품 등의 분야가 관세 인하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한편 한국은 인도로부터의 수입 품목 중 93%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거나 감축하기로 약속했다. 수입액 기준으로는 90%에 해당한다. 인도보다 더 많은 시장을 내준 셈이다.

그러나 인도 측이 민감하게 여기는 섬유, 완성품 자동차는 讓許(양허)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농수산물의 경우 어느 나라도 자유무역을 택하지 않았다.

한미 FTA나 한·EU FTA에 비해 한·인도 CEPA를 ‘낮은 단계’의 협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처럼 상품 분야에서의 개방 폭이 그다지 넓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 인도인 진출 문호 활짝 열려

상품 개방의 정도가 그리 높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서비스와 투자개방은 비교적 큰 폭으로 이루어졌다. 인도는 외국과의 협상에서 자신들이 약한 제조업 시장의 개방은 최소화하면서 자신들이 강점을 가진 인력 교류와 외국으로부터의 투자 문호 개방은 최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래서 이번 협정에서도 서비스와 투자 분야의 개방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요구하는 것 이상의 수준이라는 평이다.

1990년대 초반 인도가 개혁 개방을 한 이후 우리나라의 인도에 대한 수출과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작년 對(대)인도 수출과 수입 합계는 156억 달러, 투자는 2억8000만 달러였다.

한·인도 CEPA협정이 발효되어 무역과 투자의 장벽이 낮아지면 매년 20%씩 증가해 오던 수출입 규모의 증가세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특히 디젤 엔진, 철도용 기관차, 엘리베이터 등의 수출이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협정은 다른 경쟁국에 앞서 구매력 기준 세계 4위인 인도 시장을 先占(선점)하는 효과를 가진다. 지금 인도는 일본이나 EU 등 많은 나라와 다양한 형태의 무역자유화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중국산의 약진으로 인도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 하락을 경험하던 한국 기업들로서는 좋은 전기를 마련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큰 효과는 인도 서비스 인력의 한국 유입이 될 것이다. 이번 협정은 상품의 교역보다는 서비스와 투자의 개방에 더 큰 무게가 실려 있다.

대개의 경우 서비스 개방은 사람의 이동을 수반한다. 영어 교육이라는 서비스를 받으려 해도 직접 영어 교사가 한국으로 와야 할 경우가 많다. 소프트웨어 기술을 전수받으려 해도 사람이 오가야 한다. 이번 협상으로 서비스 인력이 왕래할 문이 크게 넓어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문 인력들이 인도에 진출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영어도 쉽지 않은 데다가 인도보다 인건비도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결국 서비스 개방은 인도의 인력이 한국으로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인도인 컴퓨터전문가, 엔지니어, 영어교사 등은 기술수준도 높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임금이 싸다. 당연히 그들을 영입하려는 수요가 많을 것이다. 앞으로는 한국의 거리에서 많은 인도인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우리는 93%, 인도는 85% 시장 개방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도인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 한·인도 CEPA 체결로 인도인 서비스인력의 국내 유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도에 대한 투자도 많이 늘 것으로 기대된다. 자동차와 전자제품 공장을 짓고 확장하기 위한 투자들이 많을 것이다. 철강 분야에서의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인간에게는 무역을 重商主義的(중상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습성이 있다. 무역을 일종의 전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시각에 의하면 수출은 많이 할수록 좋고, 수입은 가급적 적을수록 좋다. 노동력도 외국으로 많이 진출시키는 것은 좋지만, 외국 인력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쁘다. 투자는 받아들이는 것이 좋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중상주의적 사고가 편협하긴 하지만, 인간은 이런 시각으로 자유무역협정을 바라보곤 했다. 그래서 한미 FTA에 대해서도 그것으로 인해 수출이 느는 것은 좋지만 수입이 느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관점에서 한·인도 CEPA를 평가한다면 한국은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다. 상품 교역에 있어 우리는 전체 품목의 93%를 열었는데, 인도는 85%만을 열었다. 그 차이인 8%포인트만큼 우리가 손해를 본 것이다.

서비스 협상에서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제조업과 건설업은 강력하지만 금융이나 교육 등 서비스 분야가 약하다. 그러니 서비스 시장의 문호가 열릴 경우 한국인이 인도에 진출할 가능성보다 인도인이 한국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가장 먼저 벤처 기업들이 인도의 유능하지만 임금은 저렴한 인도인 프로그래머들을 초청하려고 할 것이다. 또 인도인 영어 선생님도 많아질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유능하고 임금이 싼 인도인을 고용하려는 수요가 많아질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이 인도로 나갈 가능성은 적은데, 인도인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지니, 이번 협상은 손해 보는 게임이라는 것이 중상주의적 시각에서의 평가가 될 것이다.

투자 분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인도로부터 기대할 투자는 그리 많지 않다. 투자는 우리에게서 인도로 일방적으로 흐를 것이다. 자동차 공장과 전자제품 공장을 확장하기 위한 투자가 더욱 늘 것이다. 정확히 어떤 업종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우리의 생산기지를 인도로 옮기기 위한 투자는 늘어나도, 인도가 한국을 생산기지로 삼으려고 투자를 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 자본은 흘러나가는데 인도의 자본은 들어오지 않는다. 중상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 역시 손해다.

더 많이 문을 열수록 이익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손해를 보기 위해 이런 협상을 벌였던 것일까. 자유주의적 관점, 즉 제대로 된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오히려 더 큰 이익을 봤다.

자유주의적 시각에서는 수입이든 수출이든 자발적 거래는 좋다고 본다. 수출은 수출이어서 좋고, 수입은 수입이어서 좋다. 이것이 WTO를 하는 이유이고, 정통경제학이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이유다.

모든 거래는 쌍방 모두에게 이익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외국으로 물건을 파는 것은 파는 한국 상인이나 그것을 사는 인도 상인이 모두 이익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상품을 수입할 때도 마찬가지다. 인도의 카레를 수입하는 것은 수입하는 것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파는 인도 상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스스로 문을 여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다. 自國(자국)의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즉 인도의 수입에 대해 더 많이 개방한 우리가 더 큰 이익을 보게 된다.

인도는 섬유제품 시장을 개방하지 않았다. 그만큼 인도의 소비자들은 품질 좋고 값싼 한국산 제품의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된다. 자동차 시장을 열지 않음으로 인해 값싸고 좋은 한국산 자동차의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됐다.

이런 식의 시장보호를 주장할 때는 유치산업보호론을 들고 나오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인도의 섬유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인도는 이 산업을 70년도 넘게 유치산업으로 보고 보호를 해 왔다.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가 1930년대에 인도인들에게 ‘영국산 면직물을 쓰지 말고 집에서 직접 물레를 돌려서 옷감을 짜 입자’고 했다.

그것으로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는 했지만 전통 섬유산업에 대한 인도 정부의 보호 때문에 아직도 인도의 섬유산업은 개방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의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농업과 수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EU와의 FTA 협상에서와는 달리 인도와의 협상에서 갈등이 별로 없었던 것은 농업과 수산업 분야에서 양국 모두 개방을 안 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서로 농업시장을 개방하면 양국 농민들이 모두 파산을 면치 못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벤처산업 발전의 계기 될 수도

이것은 이상한 논리다. 그런데도 농업은 개방의 예외로 취급을 받았다. 보호가 지속되는 한 인도의 섬유산업이 유치한 수준을 벗어날 수 없듯이 양국 모두 농업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에 低(저)임금의 유능한 인도인이 들어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 한국 벤처산업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소프트웨어 관련 직종을 3D 업종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월급은 적은데 툭하면 밤을 새워야 하는 등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벤처산업은 사람을 구할 수 없어 발전의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도에는 그 월급 받고도 일하겠다는 젊은이들이 줄을 서 있고, 실력도 우리의 젊은이 못지않다. 그들을 고용해서 잘 쓰면 우리 벤처산업이 再(재)도약의 계기를 잡을 수도 있다.

인도에 대한 투자의 기회가 느는 것도 한국에 이롭다. 우리 각자는 어떤 형태로든 자본을 만들어서 투자를 해오고 있다. 은행에 저축을 하는 것이든, 주식에 투자를 하는 것이든 펀드에 가입을 하는 것이든 모두 투자다.

새로운 투자 기회가 열림으로써 한국 자본의 수익률이 높아지면,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투자한 펀드의 수익이나 주가가 오를 것이다. 당장의 효과만 놓고 보면 투자의 유출로 인해 우리의 일자리 창출 규모가 줄어들 수 있지만, 길게 보면 결국 더 큰 이익이 우리에게 돌아온다.

자유주의적 시각, 또는 정통 경제학의 시각으로 보면 많이 여는 쪽이 더 많은 이익을 취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본다면 더 많이 개방한 우리가 인도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중상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한-인도 CEPA로 더 많은 것을 얻어낸 쪽은 인도다. 자기들이 열고 싶어 하지 않은 섬유도, 자동차도, 농수산물 시장도 모두 닫아 놓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학적 시각,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한국이 더 많은 것을 얻었다. 더 많이 여는 쪽이 더 많은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셋 중 하나의 태도를 취한다. 심기일전해서 경쟁자보다 더 잘하려고 노력하거나, 경쟁을 포기하거나, 또는 정부에 기대어 경쟁자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진정한 FTA로 발전하기를…

첫 번째를 택하는 사람은 큰 성공을 거둔다. 두 번째를 택하는 사람은 새로운 길을 찾아서 뭔가를 하게 된다. 세 번째 길을 택하는 사람은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 생존을 계속한다. 정부를 등에 업고 소비자들에게 값만 비싼 형편없는 품질의 제품을 계속 강요할 테니까 말이다.

한-인도 CEPA를 통해 개방의 폭이 넓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양국 모두에 여전히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게 눈을 감아 주는 어리석음이 상당 부분 지속되고 있다. 이번 협정을 낮은 단계의 자유무역 협정으로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다행히 자유무역협정은 영원불변이 아니다. 양국이 모두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높은 단계의 협정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번 협정이 양국 경제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해서 더 높은 단계의 협정, 즉 관세를 비롯한 모든 장벽이 허물어지는 진정한 자유무역협정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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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분석] 韓·인도 CEPA 체결의 의미와 전망

서비스·투자 개방에 중점 둔 ‘낮은 단계의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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