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고병원성 H5N1 바이러스 등이 토착화돼 있는 동남아 및 아프리카
일부 국가로 유입될 경우 변종이 나타나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 국제수역사무국에 따르면, 사람의 전염병 1415종 중에서 人獸공통 전염병이 868종으로서
61%에 이른다. 신·변종 전염병의 종류만 해도 175종인 데다 인수공통 전염병이 132종으로서
무려 75%를 차지하고 있다.
⊙ 밀림이나 사람과의 접촉이 없는 깊숙한 자연환경에서 ‘평화롭게’ 존재하던 병원체가 인류의
환경과 밀접한 곳으로 끌려나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새로운 전염병을
유발하며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金載弘 서울大 수의과대학 조류질병학교실 교수
⊙ 1955년 경남 진주 출생.
⊙ 서울大 수의학과 졸업, 同 대학원 수의학 박사.
⊙ 농촌진흥청 수의과학연구소 가축위생관, 미국 농무부 ARS 객원연구원,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질병연구부장 역임.
⊙ 現 수의과학검역원 자문위원, 한국가금학회 수석부회장, 대한인수공통전염병학회 부회장.
일부 국가로 유입될 경우 변종이 나타나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 국제수역사무국에 따르면, 사람의 전염병 1415종 중에서 人獸공통 전염병이 868종으로서
61%에 이른다. 신·변종 전염병의 종류만 해도 175종인 데다 인수공통 전염병이 132종으로서
무려 75%를 차지하고 있다.
⊙ 밀림이나 사람과의 접촉이 없는 깊숙한 자연환경에서 ‘평화롭게’ 존재하던 병원체가 인류의
환경과 밀접한 곳으로 끌려나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새로운 전염병을
유발하며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金載弘 서울大 수의과대학 조류질병학교실 교수
⊙ 1955년 경남 진주 출생.
⊙ 서울大 수의학과 졸업, 同 대학원 수의학 박사.
⊙ 농촌진흥청 수의과학연구소 가축위생관, 미국 농무부 ARS 객원연구원,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질병연구부장 역임.
⊙ 現 수의과학검역원 자문위원, 한국가금학회 수석부회장, 대한인수공통전염병학회 부회장.
- 1918년 전 세계에 창궐한 스페인독감에 감염된 미국인 환자들이 캔자스州 응급병원에 수용돼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신종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명 돼지 인플루엔자·SI)의 출현과 확산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돼지를 비롯한 바이러스 유래 동물에 대한 논란, 스페인독감과 같은 대유행을 초래할 위험성에 대한 문제 제기, 바이러스 변이 특성 등 다양한 의문과 견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매우 복잡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그 실체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는 긴 여정이 필요하다.
사람에게 감기 증세를 일으키는 원인체는 200여 종에 이른다. 세균도 있고 바이러스도 있다. 그중에서 라이노 바이러스(rhinovirus), 코로나 바이러스(coronavirus), 인플루엔자 바이러스(influenza virus)가 대략 60%를 차지한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사람에게 독감을 유발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일반 감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기에 특별히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구분한다. 고열·오한·근육통·기침·재채기·콧물 등이 독감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 증세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생존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한다. 바이러스의 복제 과정에서 변이가 쉽게 일어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매우 불안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복제 과정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잘못된 복제를 교정하는 능력도 없으며, 서로 다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특정한 유전자끼리 통째로 치환되는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수시로 진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종류는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혈청형으로 구분하며 현재까지는 A형, B형, C형이 있다. 사람으로 치면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식이다. 그중 주로 문제가 되는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황인종이 국적에 따라 한국인, 중국인 등으로 구분되듯 다시 144종의 아형(subtype)으로 구분된다. 바이러스 표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16종의 HA 단백질과 9종의 NA 단백질을 조합하면 144종이 나타난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H1N1과 H5N1 바이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HA는 세포 감염 초기단계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선호하는 생체세포의 수용체에 달라붙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NA는 감염세포에서 바이러스가 자손을 대량으로 증식한 후 감염확산을 위해 세포를 빠져나올 때 세포수용체에 붙어 있는 HA 단백질을 끊어 주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매년 20만~50만명이 사망한다는 보고도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수시로 변화하며 때로는 인류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로 변이된 바이러스가 출현해 엄청난 인명 피해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팬데믹(pandemic) 인플루엔자’라고 부르는데, 범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인플루엔자라는 뜻이다.
공식 기록에 의하면, 인류 최초의 팬데믹 인플루엔자(PI)는 1580년에 나타났다. 아시아에서 유럽, 아프리카, 북미로 전파돼 로마에서 80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 후 독감과 PI의 발생은 계속됐고 20세기 이후에 발생한 PI만 해도 총 세 차례다. 실험실에서 특정 바이러스가 유출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독감은 과거에 비해 피해가 덜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PI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1918년 스페인독감의 피해는 민간인뿐만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러시아 내전이 벌어지자 공산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러시아로 진격한 프랑스 군대로까지 확산돼 약 3000만명 사망이라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왔다.
1919년 스페인독감으로 조선인 약 14만명 사망
우리나라도 스페인독감 유행 時(시) 심각한 피해를 본 것으로 기록돼 있다. 미국 의학협회지(JAMA) 1919년 4월호와 매일신보에 의하면, 1918년 10월부터 한반도에 유행하기 시작한 소위 ‘서반아감기(현재 스페인독감)’는 경성 인천 대구 평양 원산 개성 등에 만연했고, 이로 인해 관공서의 업무가 마비되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독감이 유행한 때가 가을 추수기여서 들판에 익은 벼를 수확하기는커녕 초상을 치르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로 인해 민심까지 흉흉했다고 한다. 경무총감부 조사에 따르면, 이 감기로 인해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환자는 15만9916명이며 이 중 1297명이 사망했다. 조선인은 742만2113명의 환자가 발생해 13만9128명이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PI는 일정한 주기로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발생 간격이 10~40년까지 일정하지가 않다. 다만 1918년 스페인독감 이후 40년만인 1957년에 2차 PI인 아시아독감이 발생했고, 1968년의 3차 PI인 홍콩독감 이후 40년을 더하면 지금쯤이 새로운 PI가 출현할 시기라고 예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단순한 예측보다 현재의 상황이 새로운 PI가 출현할 수 있는 잠재적 요인을 다양하게 내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현재 잠재적 PI 후보 바이러스는 조류인플루엔자(AI)인 H5N1 바이러스다. 인체 감염시 60% 이상의 치명적 피해를 초래하는 고병원성 바이러스다. 현재까지 본격적으로 인체 간 감염을 일으킨 사례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변이를 거쳐야 그런 우려가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심한 변이는 바이러스의 생존성 유지에 치명적인 역작용을 하므로 쉬운 일이 아니다. H5N1 이외에도 H7형이나 H9N2형의 AI 바이러스도 인체 간 감염이 가능한 유전자를 획득하는 변이를 거칠 경우 PI 바이러스로 변화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 외에 H2형의 바이러스도 PI를 유발할 위험성이 있다고 예상되고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기원은 야생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기원은 조류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야생조류 중 오리, 기러기, 갈매기 등의 물새류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AIV)의 보유숙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종류의 병원체이든 감염숙주의 ‘種間(종간) 장벽(species barrier)’을 뛰어넘어 새로운 종류의 숙주에 감염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람이나 돼지가 AIV에 노출되더라도 그것에 쉽게 감염되지 않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자연숙주가 아니라도 다량의 바이러스에 자주 접촉할 기회가 있다면 종간 장벽이 깨지고 바이러스는 신천지를 개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광우병의 발생 역사만 해도 그렇다. 광우병은 방목하던 면양에서 발생한 ‘스크래피’라는 프리온 질병에서 비롯됐다. 영국에서 스크래피에 걸려 죽은 양의 사체를 소에게 공급하는 단백질원으로 개발해 사료에 섞어 사용했는데 자연에 역행하는 인위적인 행위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프리온 질병은 소의 광우병으로 진화했다.
광우병을 유발하는 변형 프리온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와 내장 등을 먹은 사람에게 감염되어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이라는 신종 질병을 일으킴으로써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병원체의 변이를 논할 때 전형적인 사례가 AIV다. AIV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메커니즘을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조류는 144종의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민감하고 새로운 변이가 일어나는 각축장이다. 게다가 숙주의 종류가 바뀌면 AIV에는 진화의 과정으로서 급격한 변이가 일어나게 되는데, 광우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변이는 자연계에서 흔한 일
변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감염된 세포 내에서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복제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생기는 복제 오류에 의한 유전자의 점변이(point mutation)다. 이러한 점변이가 누적되면 새로운 특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주로 이 과정에 의해 변이가 일어난다.
둘째는 한 개체, 또는 한 세포에 두 종류 이상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동시 감염될 경우 나타나는 유전자 재편성(genetic reassortment)에 의한 변이다. 8개의 독립적 토막(분절)으로 구성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RNA 유전자가 통째로 치환돼 재조합이 일어남으로써 전혀 새로운 변종으로 나타나는 경우다. 조류에서는 이 두 가지 변이가 상대적으로 쉽게 일어난다.
일련의 변이는 자연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인위적인 과정에 의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AIV가 가금류로 전염되어 왔을 때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될 수 있다.
인류가 경험한 최초의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다. 2005년 세계적인 과학잡지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스페인독감을 유발한 H1N1 바이러스는 순전히 조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1918년 당시에는 바이러스 배양기술이 없던 시절이라 스페인독감 바이러스가 지구상에 남아 있지 않았다. 2005년 미국의 질병관리통제센터(CDC) 소속의 튬페이 박사 연구팀이 알래스카에서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해 냉동 상태로 매장된 한 알래스카인의 폐조직에서 H1N1 바이러스 유전자를 발견했고, 역유전학 기술을 이용해 당시의 바이러스를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스페인독감 이후 H1N1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1977년 러시아에서 다시 나타났다. 그 이후 현재까지 사람의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주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람 간에 2차 감염이 문제
현재 멕시코를 시발점으로 확산되고 있는 H1N1 바이러스는 스페인독감 H1N1 바이러스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다. 같은 한국인이라 해도 姓(성)이 틀리면 족보가 다르듯이 최근의 신종 H1N1 바이러스는 사람이 아닌 돼지 인플루엔자(swine influenza·SI) 바이러스에서 유래된 것이다.
최근에 북미지역에서 유행하는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SIV)와 유럽·아시아지역에서 유행하는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서로 결합해 새로운 변종이 출현한 것이다. 새로운 변종이 기존의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다른 점은 인체 감염 후 사람 간 2차 감염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북미지역의 SIV는 1998년과 1999년 사이에 이미 사람과 돼지, 조류의 인플루엔자 유전자가 혼합돼 탄생한 ‘변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지금의 신종 H1N1 바이러스는 당연히 북미지역의 사람과 돼지·조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자를 가지면서 유럽·아시아 돼지 바이러스 유전자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신종이다. 신종 H1N1에는 기존의 SI 바이러스 H1N1 2종과 H1N2 그리고 H3N2 2종의 유전자가 혼합되어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최근의 신종 H1N1의 기원이 멕시코인지 미국인지 두 국가 간에 논란이 있다. 2009년 5월호 발표에 따르면, 미국에서 2009년 3월 28일부터 신종 H1N1 바이러스와 관련된 임상환자가 나타났다. 이후 4월 15일 새로운 환자로부터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분리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멕시코보다 미국에서 먼저 시작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동물위생기구인 국제수역사무국(OIE)은 최초 바이러스 원인제공 농장으로 지목된 멕시코 농장(미국 식품회사 소유)에서 사육 중인 돼지는 신종 H1N1 바이러스에 감염된 흔적이 없다고 발표했다. 오히려 캐나다에서 멕시코를 방문하고 돌아온 양돈장 관리인으로부터 돼지가 신종 H1N1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됐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돼지의 위험성은 실체가 없고 인체 간 2차 감염 위험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돼지 인플루엔자, 현재는 위험성 적어
돼지 인플루엔자(SI)는 돼지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돼 나타나는 질병으로, 1931년 세계 최초의 발생보고가 있었다. 감염시 콧물, 기침, 재채기, 열을 수반한다. 세균의 2차 감염에 의한 합병증이 없다면 대개 1주일 정도 지나면 회복되는, 양돈업계에서는 그다지 큰 문제로 삼고 있지 않은 돼지 전염병이다. 이 질병을 특별히 위험한 전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국가는 없다.
돼지는 호흡기 점막 상피세포에 사람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HIV) 수용체와 AIV 수용체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돼지가 HIV와 AIV에 동시에 감염되면 돼지 체내에서 유전자 재편성으로 인한 변종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독감과 홍콩독감도 조류에서 돼지로 감염된 후 인체로 감염됐다는 학설이 있다. 물론 이를 뒷받침해 줄 결정적 증거는 없는 상태지만 AIV와 HIV가 결합된 형태인 것만은 분명하다. 최근에는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인 H5N1과 같은 고병원성 AIV가 조류에서 사람에게 직접 감염되는 사례가 많이 밝혀짐으로써 돼지의 위험성이 현실과 다르게 과장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돼지에 감염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대개 H1·H2·H3형이며 특히 H1N1·H1N2·H3N2가 주로 유행하고 있다. 사람에게 유행하는 독감 바이러스도 돼지에게 유행하는 종류와 중복되지만, 이것이 곧 사람과 돼지 간에 수시로 교차 감염이 일어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종 H1N1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SIV의 인체 감염 위험성이 갑자기 부각되고 있지만 기존의 SIV는 현재로서는 위험성이 적다. 1986년부터 2007년 현재까지 보고된 SIV의 인체 감염 기록은 모두 14건이며 미국 8건, 네덜란드 3건, 스위스 2건, 홍콩 1건의 순이다.
그중 1976년에 일어난 미국 뉴저지州(주) 포트딕스에서 발생한 H1N1 SIV 감염에 의한 인체 감염 사례는 특이했다. 당시 주로 군대 훈련병들에게 발생하여 5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폐렴을 수반한 군인 1명이 죽자 미국 정부는 비상사태 선포와 함께 긴급히 백신을 개발해 약 4000만명에게 백신을 접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긴급 제조한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에게서 10만명당 1명꼴로 급성 다발성 신경염을 나타내는 길리안-바레 증후군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또 당시의 H1N1 바이러스 감염 시 실제로는 대부분 증상이 없거나 미약해 굳이 백신을 접종할 필요가 없음이 판명됐으며, 환자로부터의 2차 감염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백신 접종은 중단됐다.
그 후 바이러스 자체도 자연 소멸됐다. 아직까지도 그때의 H1N1 바이러스가 정확히 돼지에게서 직접적으로 유래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아마 실체와는 다르게 현재의 신종 H1N1이 주는 공포감과 유사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인체감염 사례
조류 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AI)는 조류에게서 나타나는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감염 또는 감염으로 인한 질병을 총칭한다. AI 바이러스의 병원성에 따라 非(비)병원성 또는 低(저)병원성과 高(고)병원성 AI로 구분된다.
최근의 고병원성 H5N1 바이러스는 2005년 중국 칭하이 호수의 야생조류에 감염하여 역사상 최초로 야생조류의 떼죽음을 유발했다. 국내 양계산업에 만연돼 있는 H9N2 AI바이러스는 저병원성이며, 2003년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조류와 사람에게 많은 피해를 일으킨 H5N1 AIV는 고병원성이다.
고병원성 바이러스는 닭이 감염될 때 75% 이상 폐사하는 질병이며 사람이 감염될 경우 콧물, 기침, 재채기, 고열 등의 호흡기 증상뿐만 아니라 실질장기(오장육부)의 출혈, 괴사, 설사 등의 전신성 질병으로 나타나는 무서운 질병이다. 현재 국내에는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의 H5N1 AIV는 1996년 중국 광둥(廣東) 지방의 거위에게서 발생한 저병원성 H5N1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H5N1 바이러스는 다른 두 종의 야생조류 유래 바이러스(H6N1 및 H9N2)와 유전자가 서로 치환되어 변이됨으로써 이전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니게 됐다. 그 이후 변이를 거쳐 1997년 홍콩에서 18명이 감염돼 6명이 사망하면서 1968년에 발생한 ‘홍콩 조류독감’의 형태로 발전했다.
H5N1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해 2003년 이후 동남아 지역을 강타했으며,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해 유럽, 아프리카까지 확산됐다.
H5N1 변종은 여러 종류의 유전자형으로 구분된다. 세계보건기구의 분류법에 따르면, I형(clade I)과 II형으로 나뉜다. II형은 다시 II-1(subclade I)·II-2·II-3의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그림1>은 H5N1 AIV의 세계적 확산을 나타내며, 모든 H5N1 AIV의 기원이 중국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잦아지는 人獸공통전염병
세계보건기구(WHO)는 새로운 PI가 출현해 유행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첫째,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따라서 전혀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새로운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출현해야 하고, 둘째 신종 변이주가 사람에게 감염하여 사망 등의 심한 병증을 발현할 수 있어야 하며, 셋째 독감처럼 사람 간의 전염이 쉽게 일어나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발생할 새로운 PI는 다음의 과정을 거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돼지를 통해 사람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자와 혼합되어 위의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신종으로 태어나거나 ▲조류에서 사람으로 직접 감염되어 사람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자와 재편성됨으로써 신종이 나타날 때, 또는 ▲조류에서 변이를 거듭해 인체 간 감염력이 있는 바이러스가 태어날 때 등이다.
국제수역사무국에 따르면, 사람의 전염병 1415종 중에서 人獸(인수) 공통 전염병이 868종으로서 61%에 이른다. 신·변종 전염병의 종류만 해도 무려 175종인 데다 인수공통 전염병이 132종으로서 무려 75%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환경 파괴, 자연 생태계 교란, 야생동물의 강제적 포획 등을 통해 밀림이나 사람과의 접촉이 없는 깊숙한 자연환경에서 ‘평화스럽게’ 존재하던 병원체가 인류의 환경과 밀접한 곳으로 끌려 나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새로운 전염병을 유발하며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 사례는 다음과 같다.
▲박쥐로부터 사향고양이를 거쳐 사람에게 최초로 발생한 사스 ▲박쥐의 서식환경 파괴로 인근 양돈장으로 날아온 박쥐에 의해 돼지와 사람에게 발생한 말레이시아의 니파바이러스 감염증 ▲밀림에서 감염되어 죽은 침팬지를 잡아먹고 사람에게 발생한 콩고의 에볼라 바이러스 ▲H5N1 AIV에 의한 가금과 인체에서의 감염 피해 확산 등.
인수공통 전염병은 동물에서의 발생이 감소되지 않는 한 사람의 예방대책 논의는 무의미하다. 앞으로 인수공통 전염병의 발생 감소와 예방을 위한 집중적 조사 연구와 과감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플루엔자와 인류의 대응책
이번에 문제가 된 신종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현재로서는 위험성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향후 예상치 못할 정도의 가공할 위력을 가진 바이러스로 변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고병원성 H5N1 바이러스 등이 토착화돼 있는 동남아 및 아프리카 일부 국가로 유입될 경우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나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변이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험요인을 최대한 조기에 검색하여 제거하는 질병예찰 및 감시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악성 질병 발생 후 투입되는 거대한 예산의 일부만이라도 사전 예방 시스템 구축에 투입한다면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매우 복잡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그 실체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는 긴 여정이 필요하다.
사람에게 감기 증세를 일으키는 원인체는 200여 종에 이른다. 세균도 있고 바이러스도 있다. 그중에서 라이노 바이러스(rhinovirus), 코로나 바이러스(coronavirus), 인플루엔자 바이러스(influenza virus)가 대략 60%를 차지한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사람에게 독감을 유발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일반 감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기에 특별히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구분한다. 고열·오한·근육통·기침·재채기·콧물 등이 독감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 증세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생존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한다. 바이러스의 복제 과정에서 변이가 쉽게 일어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매우 불안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복제 과정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잘못된 복제를 교정하는 능력도 없으며, 서로 다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특정한 유전자끼리 통째로 치환되는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수시로 진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종류는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혈청형으로 구분하며 현재까지는 A형, B형, C형이 있다. 사람으로 치면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식이다. 그중 주로 문제가 되는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황인종이 국적에 따라 한국인, 중국인 등으로 구분되듯 다시 144종의 아형(subtype)으로 구분된다. 바이러스 표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16종의 HA 단백질과 9종의 NA 단백질을 조합하면 144종이 나타난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H1N1과 H5N1 바이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HA는 세포 감염 초기단계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선호하는 생체세포의 수용체에 달라붙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NA는 감염세포에서 바이러스가 자손을 대량으로 증식한 후 감염확산을 위해 세포를 빠져나올 때 세포수용체에 붙어 있는 HA 단백질을 끊어 주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매년 20만~50만명이 사망한다는 보고도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수시로 변화하며 때로는 인류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로 변이된 바이러스가 출현해 엄청난 인명 피해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팬데믹(pandemic) 인플루엔자’라고 부르는데, 범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인플루엔자라는 뜻이다.
공식 기록에 의하면, 인류 최초의 팬데믹 인플루엔자(PI)는 1580년에 나타났다. 아시아에서 유럽, 아프리카, 북미로 전파돼 로마에서 80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 후 독감과 PI의 발생은 계속됐고 20세기 이후에 발생한 PI만 해도 총 세 차례다. 실험실에서 특정 바이러스가 유출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독감은 과거에 비해 피해가 덜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PI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1918년 스페인독감의 피해는 민간인뿐만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러시아 내전이 벌어지자 공산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러시아로 진격한 프랑스 군대로까지 확산돼 약 3000만명 사망이라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왔다.
1919년 스페인독감으로 조선인 약 14만명 사망
우리나라도 스페인독감 유행 時(시) 심각한 피해를 본 것으로 기록돼 있다. 미국 의학협회지(JAMA) 1919년 4월호와 매일신보에 의하면, 1918년 10월부터 한반도에 유행하기 시작한 소위 ‘서반아감기(현재 스페인독감)’는 경성 인천 대구 평양 원산 개성 등에 만연했고, 이로 인해 관공서의 업무가 마비되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독감이 유행한 때가 가을 추수기여서 들판에 익은 벼를 수확하기는커녕 초상을 치르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로 인해 민심까지 흉흉했다고 한다. 경무총감부 조사에 따르면, 이 감기로 인해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환자는 15만9916명이며 이 중 1297명이 사망했다. 조선인은 742만2113명의 환자가 발생해 13만9128명이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PI는 일정한 주기로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발생 간격이 10~40년까지 일정하지가 않다. 다만 1918년 스페인독감 이후 40년만인 1957년에 2차 PI인 아시아독감이 발생했고, 1968년의 3차 PI인 홍콩독감 이후 40년을 더하면 지금쯤이 새로운 PI가 출현할 시기라고 예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단순한 예측보다 현재의 상황이 새로운 PI가 출현할 수 있는 잠재적 요인을 다양하게 내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현재 잠재적 PI 후보 바이러스는 조류인플루엔자(AI)인 H5N1 바이러스다. 인체 감염시 60% 이상의 치명적 피해를 초래하는 고병원성 바이러스다. 현재까지 본격적으로 인체 간 감염을 일으킨 사례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변이를 거쳐야 그런 우려가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심한 변이는 바이러스의 생존성 유지에 치명적인 역작용을 하므로 쉬운 일이 아니다. H5N1 이외에도 H7형이나 H9N2형의 AI 바이러스도 인체 간 감염이 가능한 유전자를 획득하는 변이를 거칠 경우 PI 바이러스로 변화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 외에 H2형의 바이러스도 PI를 유발할 위험성이 있다고 예상되고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기원은 야생 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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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공항 검역소 직원들이 2009년 5월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게이트 앞에서 미국 댈러스發 여객기 승객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
어떤 종류의 병원체이든 감염숙주의 ‘種間(종간) 장벽(species barrier)’을 뛰어넘어 새로운 종류의 숙주에 감염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람이나 돼지가 AIV에 노출되더라도 그것에 쉽게 감염되지 않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자연숙주가 아니라도 다량의 바이러스에 자주 접촉할 기회가 있다면 종간 장벽이 깨지고 바이러스는 신천지를 개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광우병의 발생 역사만 해도 그렇다. 광우병은 방목하던 면양에서 발생한 ‘스크래피’라는 프리온 질병에서 비롯됐다. 영국에서 스크래피에 걸려 죽은 양의 사체를 소에게 공급하는 단백질원으로 개발해 사료에 섞어 사용했는데 자연에 역행하는 인위적인 행위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프리온 질병은 소의 광우병으로 진화했다.
광우병을 유발하는 변형 프리온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와 내장 등을 먹은 사람에게 감염되어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이라는 신종 질병을 일으킴으로써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병원체의 변이를 논할 때 전형적인 사례가 AIV다. AIV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메커니즘을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조류는 144종의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민감하고 새로운 변이가 일어나는 각축장이다. 게다가 숙주의 종류가 바뀌면 AIV에는 진화의 과정으로서 급격한 변이가 일어나게 되는데, 광우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변이는 자연계에서 흔한 일
변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감염된 세포 내에서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복제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생기는 복제 오류에 의한 유전자의 점변이(point mutation)다. 이러한 점변이가 누적되면 새로운 특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주로 이 과정에 의해 변이가 일어난다.
둘째는 한 개체, 또는 한 세포에 두 종류 이상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동시 감염될 경우 나타나는 유전자 재편성(genetic reassortment)에 의한 변이다. 8개의 독립적 토막(분절)으로 구성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RNA 유전자가 통째로 치환돼 재조합이 일어남으로써 전혀 새로운 변종으로 나타나는 경우다. 조류에서는 이 두 가지 변이가 상대적으로 쉽게 일어난다.
일련의 변이는 자연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인위적인 과정에 의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AIV가 가금류로 전염되어 왔을 때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될 수 있다.
인류가 경험한 최초의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다. 2005년 세계적인 과학잡지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스페인독감을 유발한 H1N1 바이러스는 순전히 조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1918년 당시에는 바이러스 배양기술이 없던 시절이라 스페인독감 바이러스가 지구상에 남아 있지 않았다. 2005년 미국의 질병관리통제센터(CDC) 소속의 튬페이 박사 연구팀이 알래스카에서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해 냉동 상태로 매장된 한 알래스카인의 폐조직에서 H1N1 바이러스 유전자를 발견했고, 역유전학 기술을 이용해 당시의 바이러스를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스페인독감 이후 H1N1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1977년 러시아에서 다시 나타났다. 그 이후 현재까지 사람의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주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람 간에 2차 감염이 문제
현재 멕시코를 시발점으로 확산되고 있는 H1N1 바이러스는 스페인독감 H1N1 바이러스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다. 같은 한국인이라 해도 姓(성)이 틀리면 족보가 다르듯이 최근의 신종 H1N1 바이러스는 사람이 아닌 돼지 인플루엔자(swine influenza·SI) 바이러스에서 유래된 것이다.
최근에 북미지역에서 유행하는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SIV)와 유럽·아시아지역에서 유행하는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서로 결합해 새로운 변종이 출현한 것이다. 새로운 변종이 기존의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다른 점은 인체 감염 후 사람 간 2차 감염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북미지역의 SIV는 1998년과 1999년 사이에 이미 사람과 돼지, 조류의 인플루엔자 유전자가 혼합돼 탄생한 ‘변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지금의 신종 H1N1 바이러스는 당연히 북미지역의 사람과 돼지·조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자를 가지면서 유럽·아시아 돼지 바이러스 유전자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신종이다. 신종 H1N1에는 기존의 SI 바이러스 H1N1 2종과 H1N2 그리고 H3N2 2종의 유전자가 혼합되어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최근의 신종 H1N1의 기원이 멕시코인지 미국인지 두 국가 간에 논란이 있다.
세계동물위생기구인 국제수역사무국(OIE)은 최초 바이러스 원인제공 농장으로 지목된 멕시코 농장(미국 식품회사 소유)에서 사육 중인 돼지는 신종 H1N1 바이러스에 감염된 흔적이 없다고 발표했다. 오히려 캐나다에서 멕시코를 방문하고 돌아온 양돈장 관리인으로부터 돼지가 신종 H1N1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됐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돼지의 위험성은 실체가 없고 인체 간 2차 감염 위험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돼지 인플루엔자, 현재는 위험성 적어
돼지 인플루엔자(SI)는 돼지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돼 나타나는 질병으로, 1931년 세계 최초의 발생보고가 있었다. 감염시 콧물, 기침, 재채기, 열을 수반한다. 세균의 2차 감염에 의한 합병증이 없다면 대개 1주일 정도 지나면 회복되는, 양돈업계에서는 그다지 큰 문제로 삼고 있지 않은 돼지 전염병이다. 이 질병을 특별히 위험한 전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국가는 없다.
돼지는 호흡기 점막 상피세포에 사람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HIV) 수용체와 AIV 수용체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돼지가 HIV와 AIV에 동시에 감염되면 돼지 체내에서 유전자 재편성으로 인한 변종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독감과 홍콩독감도 조류에서 돼지로 감염된 후 인체로 감염됐다는 학설이 있다. 물론 이를 뒷받침해 줄 결정적 증거는 없는 상태지만 AIV와 HIV가 결합된 형태인 것만은 분명하다. 최근에는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인 H5N1과 같은 고병원성 AIV가 조류에서 사람에게 직접 감염되는 사례가 많이 밝혀짐으로써 돼지의 위험성이 현실과 다르게 과장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돼지에 감염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대개 H1·H2·H3형이며 특히 H1N1·H1N2·H3N2가 주로 유행하고 있다. 사람에게 유행하는 독감 바이러스도 돼지에게 유행하는 종류와 중복되지만, 이것이 곧 사람과 돼지 간에 수시로 교차 감염이 일어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종 H1N1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SIV의 인체 감염 위험성이 갑자기 부각되고 있지만 기존의 SIV는 현재로서는 위험성이 적다. 1986년부터 2007년 현재까지 보고된 SIV의 인체 감염 기록은 모두 14건이며 미국 8건, 네덜란드 3건, 스위스 2건, 홍콩 1건의 순이다.
그중 1976년에 일어난 미국 뉴저지州(주) 포트딕스에서 발생한 H1N1 SIV 감염에 의한 인체 감염 사례는 특이했다. 당시 주로 군대 훈련병들에게 발생하여 5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폐렴을 수반한 군인 1명이 죽자 미국 정부는 비상사태 선포와 함께 긴급히 백신을 개발해 약 4000만명에게 백신을 접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긴급 제조한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에게서 10만명당 1명꼴로 급성 다발성 신경염을 나타내는 길리안-바레 증후군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또 당시의 H1N1 바이러스 감염 시 실제로는 대부분 증상이 없거나 미약해 굳이 백신을 접종할 필요가 없음이 판명됐으며, 환자로부터의 2차 감염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백신 접종은 중단됐다.
그 후 바이러스 자체도 자연 소멸됐다. 아직까지도 그때의 H1N1 바이러스가 정확히 돼지에게서 직접적으로 유래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아마 실체와는 다르게 현재의 신종 H1N1이 주는 공포감과 유사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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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크를 착용한 멕시코 군인들이 신종 인플루엔자 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구호품이 보관돼 있는 멕시코국제공항 화물 창고를 지키고 있다. |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인체감염 사례
조류 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AI)는 조류에게서 나타나는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감염 또는 감염으로 인한 질병을 총칭한다. AI 바이러스의 병원성에 따라 非(비)병원성 또는 低(저)병원성과 高(고)병원성 AI로 구분된다.
최근의 고병원성 H5N1 바이러스는 2005년 중국 칭하이 호수의 야생조류에 감염하여 역사상 최초로 야생조류의 떼죽음을 유발했다. 국내 양계산업에 만연돼 있는 H9N2 AI바이러스는 저병원성이며, 2003년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조류와 사람에게 많은 피해를 일으킨 H5N1 AIV는 고병원성이다.
고병원성 바이러스는 닭이 감염될 때 75% 이상 폐사하는 질병이며 사람이 감염될 경우 콧물, 기침, 재채기, 고열 등의 호흡기 증상뿐만 아니라 실질장기(오장육부)의 출혈, 괴사, 설사 등의 전신성 질병으로 나타나는 무서운 질병이다. 현재 국내에는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의 H5N1 AIV는 1996년 중국 광둥(廣東) 지방의 거위에게서 발생한 저병원성 H5N1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H5N1 바이러스는 다른 두 종의 야생조류 유래 바이러스(H6N1 및 H9N2)와 유전자가 서로 치환되어 변이됨으로써 이전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니게 됐다. 그 이후 변이를 거쳐 1997년 홍콩에서 18명이 감염돼 6명이 사망하면서 1968년에 발생한 ‘홍콩 조류독감’의 형태로 발전했다.
H5N1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해 2003년 이후 동남아 지역을 강타했으며,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해 유럽, 아프리카까지 확산됐다.
H5N1 변종은 여러 종류의 유전자형으로 구분된다. 세계보건기구의 분류법에 따르면, I형(clade I)과 II형으로 나뉜다. II형은 다시 II-1(subclade I)·II-2·II-3의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그림1>은 H5N1 AIV의 세계적 확산을 나타내며, 모든 H5N1 AIV의 기원이 중국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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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 H5N1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이동경로 |
잦아지는 人獸공통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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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인플루엔자 자문위원회가 2009년 5월 질병관리본부에서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첫째,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따라서 전혀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새로운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출현해야 하고, 둘째 신종 변이주가 사람에게 감염하여 사망 등의 심한 병증을 발현할 수 있어야 하며, 셋째 독감처럼 사람 간의 전염이 쉽게 일어나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발생할 새로운 PI는 다음의 과정을 거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돼지를 통해 사람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자와 혼합되어 위의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신종으로 태어나거나 ▲조류에서 사람으로 직접 감염되어 사람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자와 재편성됨으로써 신종이 나타날 때, 또는 ▲조류에서 변이를 거듭해 인체 간 감염력이 있는 바이러스가 태어날 때 등이다.
국제수역사무국에 따르면, 사람의 전염병 1415종 중에서 人獸(인수) 공통 전염병이 868종으로서 61%에 이른다. 신·변종 전염병의 종류만 해도 무려 175종인 데다 인수공통 전염병이 132종으로서 무려 75%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환경 파괴, 자연 생태계 교란, 야생동물의 강제적 포획 등을 통해 밀림이나 사람과의 접촉이 없는 깊숙한 자연환경에서 ‘평화스럽게’ 존재하던 병원체가 인류의 환경과 밀접한 곳으로 끌려 나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새로운 전염병을 유발하며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 사례는 다음과 같다.
▲박쥐로부터 사향고양이를 거쳐 사람에게 최초로 발생한 사스 ▲박쥐의 서식환경 파괴로 인근 양돈장으로 날아온 박쥐에 의해 돼지와 사람에게 발생한 말레이시아의 니파바이러스 감염증 ▲밀림에서 감염되어 죽은 침팬지를 잡아먹고 사람에게 발생한 콩고의 에볼라 바이러스 ▲H5N1 AIV에 의한 가금과 인체에서의 감염 피해 확산 등.
인수공통 전염병은 동물에서의 발생이 감소되지 않는 한 사람의 예방대책 논의는 무의미하다. 앞으로 인수공통 전염병의 발생 감소와 예방을 위한 집중적 조사 연구와 과감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플루엔자와 인류의 대응책
이번에 문제가 된 신종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현재로서는 위험성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향후 예상치 못할 정도의 가공할 위력을 가진 바이러스로 변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고병원성 H5N1 바이러스 등이 토착화돼 있는 동남아 및 아프리카 일부 국가로 유입될 경우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나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변이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험요인을 최대한 조기에 검색하여 제거하는 질병예찰 및 감시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악성 질병 발생 후 투입되는 거대한 예산의 일부만이라도 사전 예방 시스템 구축에 투입한다면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