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은행들이 일본계 은행들로부터 빌려온 자금은 2007년 10월 말 현재 107억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전체 외채 1166억 달러의 10%에도 채 못 미치는데다 만기도 결산시기인 3월에만 집중돼 있는 것은 아니다.
崔聖煥
⊙ 1956년 대구 출생.
⊙ 고려大 경제학과 졸업, 美 펜실베이니아大 경제학 석·박사.
⊙ 한국은행 조사부·워싱턴사무소 과장, 조선일보 경제전문기자 역임.
現 고려大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얼굴 없는 대통령> <직장인을 위한 생존경제학>.
이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전체 외채 1166억 달러의 10%에도 채 못 미치는데다 만기도 결산시기인 3월에만 집중돼 있는 것은 아니다.
崔聖煥
⊙ 1956년 대구 출생.
⊙ 고려大 경제학과 졸업, 美 펜실베이니아大 경제학 석·박사.
⊙ 한국은행 조사부·워싱턴사무소 과장, 조선일보 경제전문기자 역임.
現 고려大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얼굴 없는 대통령> <직장인을 위한 생존경제학>.
- 건설업·중소조선업 분야의 부실이 경제 전반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전쟁과 경기불황은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예측이 어려울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전쟁이나 불황이 닥치면 많은 사람들이 물적·심리적 피해를 입는다. 또 전쟁이 임박하거나 경기가 불황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면 선동적인 발언이나 비관적 예측이 득세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요즘처럼 국내외 경제 및 금융환경이 급속하게 악화될 경우 비관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일반국민들이 정부의 말 또는 낙관론에 신뢰를 보내기보다는 비관론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세간의 관심을 폭증시킨 것도 이 같은 時流(시류)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3~4년 동안 툭하면 위기설이 터져 나왔다. 특히 ‘제2의 외환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왔다. 2000년 6월 현대그룹의 일부 계열사가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시중에서 자금경색 현상이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제2의 외환위기설’이 제기된 가운데 필자는 “외환위기 가능성은 낮지만, 신용위기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용위기는 ‘차입자의 신용도가 낮아지면서 은행들이 대출을 급격히 줄이는 자금경색 현상이 일어나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하는 위기’를 말한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프레드릭 미시킨 교수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신용위기를 제때 잘 통제하지 못하면 기업倒産(도산)과 株價(주가)하락이 외환위기와 은행위기로 이어진다. 그로 인해 성장률이 급락하고 물가가 급등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빠져든다”고 주장한다.
해프닝으로 끝난 9월 위기설
최근에 거론되고 있는 ‘2009년 3월 위기설’은 여러 가지 면에서 2000년 6월의 상황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건설회사 및 중소 造船(조선)회사의 부실이 도마에 올라 있는 가운데 신용위기와 외환위기 가능성이 한꺼번에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7년 이후 위기설이 제기될 때는 대우사태, LG카드사태, 현대그룹사태와 같은 국내적 사건이 원인제공자였다면, 이번에는 건설 및 중소 조선사의 부실이나 부동산 가격 하락과 같은 국내적 사건에 더해 미국發(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세하고 있다. 아울러 엄청난 규모의 流動性(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급등했던 原油(원유) 등 原資材(원자재) 가격의 급락과 수요부족이 맞물리면서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상황은 2000년 6월보다 더 어렵고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대우나 LG카드 또는 현대그룹사태의 경우 덩치 큰 몇몇 그룹이나 회사를 잘 요리하기만 하면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지 봉합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건설업 또는 중소 조선업처럼 하나의 산업 또는 부문 전체가 부실덩어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하이닉스와 같은 대형기업도 赤字(적자) 누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리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이 1998년 外換(외환)위기 때에 못지않다고 볼 수 있다. 외환위기 때는 소방서 격인 미국 경제와 금융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소방서에 불이 난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고 있어 은행들이 원화는 물론 달러화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번에 터져 나온 ‘3월 위기설’은 2008년 5~6월경부터 나오기 시작해 8월 말과 9월 초까지 기승을 부린 ‘9월 위기설’의 後身(후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해프닝으로 끝난 9월 위기설이지만 다시 한번 짚어 보기로 하자. 9월 초순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67억 달러어치의 國債(국채) 만기가 집중되어 있었다. 만약 외국인 투자자들이 만기가 도래한 국채를 再(재)투자하지 않고 전액을 달러로 바꿔 나갈 경우 환율과 금리가 급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당시 외환보유액은 2400억 달러가 넘고 있었고, 67억 달러도 서울 외환시장에서의 하루 외환거래 규모 600억 달러의 10%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위기설이 그럴듯하게 퍼져 나갔던 것은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계속되던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가 적자로 돌아서고 자본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면서 불안감이 한꺼번에 증폭됐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수출입 의존도가 70%를 웃도는 방앗간 경제의 애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계부채 부실 심각
결국 9월 위기설은 별일 없이 넘어갔지만 당시에 위기의 방아쇠 역할을 할 것으로 제기됐던 과도한 家計(가계)부채의 부실, 부동산 시장의 급락 가능성, 급속한 경기침체는 일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가계부채는 어느 날 갑자기 줄일 수도 없는 데다 최근에는 대출금리까지 올라가고 있어 가계의 금융부담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실적이 많은 국민·우리·신한·하나·SC제일·농협 등 6개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가계의 元利金(원리금) 상환부담률(DSR)은 올 상반기 20.7%로 집계됐다. 2005년 말 15.3%에서 거의 수직 상승하고 있다. 月(월) 可處分(가처분)소득이 300만원인 가계라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으로만 62만원을 따로 떼어내야 한다는 뜻이므로 소비여력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富(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큰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는 점도 소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강남 등 이른바 버블 세븐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이미 高點(고점) 대비 20~25% 정도 떨어졌고, 미분양이 많은 지방은 물론 일부 수도권에서는 더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기관련 지표들이 대부분 前年同期(전년동기) 대비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있다. 10월 광공업생산(-2.4%), 10월 소매판매액(-3.7%), 10월 설비투자추계(-7.7%), 10월 국내기계수주(-36.7%), 10월 국내건설수주(-23.9%), 11월 수출(-18.3%) 등 10월 들면서 대다수 지표들이 急轉直下(급전직하)하는 모습이다. 마치 절벽을 타고 내리는 것과 같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경기종합지수의 흐름도 나빠질 수밖에 없는데 경기先行(선행)지수와 同行(동행)지수는 9개월 연속 동반하락하고 있다. 1981년 경기종합지수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최장기간의 동반하락이다. 선행지수와 동행지수가 3~4개월 만 동반하락해도 이곳 저곳에서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무려 9개월이나 동반하락하고 있으니 이제 경제위기는 초입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3월 위기설’의 의미
이들 경기관련 지표들의 추락은 곧 2009년 상반기 성장률이 전년동기 대비 마이너스권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 신호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2분기 정도 선행하는 주가가 최근 급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점도 2009년 상반기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보면 ‘3월 위기설’은 1997년 말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가 2009년 3월에 발생하리라는 주장이라기보다는 2009년 3월경이 금융이나 실물 모두 가장 어려운 상황을 맞을 것이라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다 정부와 청와대 고위관리들이 2009년 상반기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3월 위기설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위기가 2009년 3월경에 발생하리라고 주장하는 배경 중에서 가장 전면에 대두되고 있는 것이 일본 등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자금을 우리나라에서 대거 회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은행들이 일본계 은행들로부터 빌려온 자금은 2008년 10월 말 현재 107억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전체 외채 1166억 달러의 10%에도 채 못 미치는 데다 만기도 결산시기인 3월에만 집중돼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외국계 금융회사들의 경우 2009년 3월에 우리나라로부터 자금을 회수할 특별한 유인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설사 일부 외국계 자금이 빠져나간다 해도 외환보유액 2000억 달러와 韓美(한미) 통화 스와프 300억 달러가 버티고 있을 뿐 아니라 韓·中·日(한·중·일) 통화 스와프가 현재의 170억 달러 규모에서 대폭 확대될 경우 지렛대로 사용될 수 있어 외환공급에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경기관련 지표들이 2009년 1분기(1~3월)에도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가운데 외환시장은 불안한 모습을 이어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2009년 3월까지 외환시장이 불안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에도 외환시장이 안정을 되찾기까지는 다음해인 1998년 6월 중순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한번 요동을 치면서 오버슈팅(over-shooting)을 한 환율이 다시 내려오기는 해도 쉽사리 안정되기까지는 상당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오버슈팅은 환율이나 주가, 아파트가격, 금리, 유가와 같은 가격변수가 통상적인 흐름을 벗어나 큰 폭으로 오르거나 내리는 경우를 말한다.
환율 달러당 1600~1700원까지 올라갈 듯
외환위기 당시 환율은 1997년 12월 23일 달러당 1962원(이하 종가 기준)으로 고점을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500억 달러가 넘는 사상 최대규모의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외환시장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미국 재무부는 12월 24일 밤(현지시각) 일본 등과 함께 80억 달러를 추가적으로 마련, 필요할 경우 ‘제2의 방어선(the second line of defence)’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환율이 급락하면서 12월 29일에는 달러당 1395원까지 내려앉았다. 당시 한국은행 워싱턴사무소에 근무하면서 미국 재무부로부터 ‘제2의 방어선 마련’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 듣고 한국에 전달한 필자는 “이제 환율이 계속 떨어져 적어도 1000원대까지는 내려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환율은 이후에도 1800원대까지 올라가는 등 급변동을 하는 가운데 예상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안정되어 갔다. 달러당 1300원대로 들어선 것이 3월 하순이었고 안정적인 1300원대를 보기까지는 6월 중순까지 기다려야 했다. 필자가 당초 생각했던 달러당 1000원대는 무려 7년이나 걸린 2005년 1월이 되어서야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은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다. 국내적인 요인보다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충격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외환보유액과 경상수지 등도 훨씬 더 양호한 상황이다.
따라서 외환위기 때처럼 환율이 달러당 1900원대까지 폭등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최악의 경우 달러당 1600~1700원대를 찍고 내려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 와중에 주가가 1000선이 무너지기도 할 것이고 800선을 위협받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얼마나 더 갈지, 더 악화될지 아니면 수습수순으로 들어설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9년 3월경까지는 미국의 금융위기가 안정되고, 국내적으로는 3월 위기설이 가라앉으면서 환율이 달러당1200~1300원대로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2009년으로 가면 일단 경상수지가 안정적인 흑자를 보일 뿐 아니라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의 유출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자본수지도 균형 또는 소폭 흑자를 보이는 등 달러공급 환경이 크게 호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부와 한국은행 차원에서는 앞서 언급한 한·중·일 통화 스와프 규모확대 외에도 한미 통화 스와프 만기연장 및 규모확대, 은행들의 외화차입금 만기연장 및 신규차입 시 정부보증, 은행의 외화유동성 비율의 완화 등 다각적인 조치가 병행돼야 할 것이다.⊙
요즘처럼 국내외 경제 및 금융환경이 급속하게 악화될 경우 비관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일반국민들이 정부의 말 또는 낙관론에 신뢰를 보내기보다는 비관론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세간의 관심을 폭증시킨 것도 이 같은 時流(시류)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3~4년 동안 툭하면 위기설이 터져 나왔다. 특히 ‘제2의 외환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왔다. 2000년 6월 현대그룹의 일부 계열사가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시중에서 자금경색 현상이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제2의 외환위기설’이 제기된 가운데 필자는 “외환위기 가능성은 낮지만, 신용위기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용위기는 ‘차입자의 신용도가 낮아지면서 은행들이 대출을 급격히 줄이는 자금경색 현상이 일어나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하는 위기’를 말한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프레드릭 미시킨 교수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신용위기를 제때 잘 통제하지 못하면 기업倒産(도산)과 株價(주가)하락이 외환위기와 은행위기로 이어진다. 그로 인해 성장률이 급락하고 물가가 급등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빠져든다”고 주장한다.
해프닝으로 끝난 9월 위기설
최근에 거론되고 있는 ‘2009년 3월 위기설’은 여러 가지 면에서 2000년 6월의 상황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건설회사 및 중소 造船(조선)회사의 부실이 도마에 올라 있는 가운데 신용위기와 외환위기 가능성이 한꺼번에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7년 이후 위기설이 제기될 때는 대우사태, LG카드사태, 현대그룹사태와 같은 국내적 사건이 원인제공자였다면, 이번에는 건설 및 중소 조선사의 부실이나 부동산 가격 하락과 같은 국내적 사건에 더해 미국發(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세하고 있다. 아울러 엄청난 규모의 流動性(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급등했던 原油(원유) 등 原資材(원자재) 가격의 급락과 수요부족이 맞물리면서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상황은 2000년 6월보다 더 어렵고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대우나 LG카드 또는 현대그룹사태의 경우 덩치 큰 몇몇 그룹이나 회사를 잘 요리하기만 하면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지 봉합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건설업 또는 중소 조선업처럼 하나의 산업 또는 부문 전체가 부실덩어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하이닉스와 같은 대형기업도 赤字(적자) 누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리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이 1998년 外換(외환)위기 때에 못지않다고 볼 수 있다. 외환위기 때는 소방서 격인 미국 경제와 금융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소방서에 불이 난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고 있어 은행들이 원화는 물론 달러화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번에 터져 나온 ‘3월 위기설’은 2008년 5~6월경부터 나오기 시작해 8월 말과 9월 초까지 기승을 부린 ‘9월 위기설’의 後身(후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해프닝으로 끝난 9월 위기설이지만 다시 한번 짚어 보기로 하자. 9월 초순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67억 달러어치의 國債(국채) 만기가 집중되어 있었다. 만약 외국인 투자자들이 만기가 도래한 국채를 再(재)투자하지 않고 전액을 달러로 바꿔 나갈 경우 환율과 금리가 급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당시 외환보유액은 2400억 달러가 넘고 있었고, 67억 달러도 서울 외환시장에서의 하루 외환거래 규모 600억 달러의 10%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위기설이 그럴듯하게 퍼져 나갔던 것은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계속되던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가 적자로 돌아서고 자본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면서 불안감이 한꺼번에 증폭됐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수출입 의존도가 70%를 웃도는 방앗간 경제의 애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계부채 부실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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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2월 11일 코스피와 환율이 등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의 전광판이 코스피와 환율의 종가를 나타내고 있다. |
가계부채는 어느 날 갑자기 줄일 수도 없는 데다 최근에는 대출금리까지 올라가고 있어 가계의 금융부담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실적이 많은 국민·우리·신한·하나·SC제일·농협 등 6개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가계의 元利金(원리금) 상환부담률(DSR)은 올 상반기 20.7%로 집계됐다. 2005년 말 15.3%에서 거의 수직 상승하고 있다. 月(월) 可處分(가처분)소득이 300만원인 가계라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으로만 62만원을 따로 떼어내야 한다는 뜻이므로 소비여력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富(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큰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는 점도 소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강남 등 이른바 버블 세븐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이미 高點(고점) 대비 20~25% 정도 떨어졌고, 미분양이 많은 지방은 물론 일부 수도권에서는 더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기관련 지표들이 대부분 前年同期(전년동기) 대비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있다. 10월 광공업생산(-2.4%), 10월 소매판매액(-3.7%), 10월 설비투자추계(-7.7%), 10월 국내기계수주(-36.7%), 10월 국내건설수주(-23.9%), 11월 수출(-18.3%) 등 10월 들면서 대다수 지표들이 急轉直下(급전직하)하는 모습이다. 마치 절벽을 타고 내리는 것과 같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경기종합지수의 흐름도 나빠질 수밖에 없는데 경기先行(선행)지수와 同行(동행)지수는 9개월 연속 동반하락하고 있다. 1981년 경기종합지수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최장기간의 동반하락이다. 선행지수와 동행지수가 3~4개월 만 동반하락해도 이곳 저곳에서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무려 9개월이나 동반하락하고 있으니 이제 경제위기는 초입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3월 위기설’의 의미
이들 경기관련 지표들의 추락은 곧 2009년 상반기 성장률이 전년동기 대비 마이너스권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 신호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2분기 정도 선행하는 주가가 최근 급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점도 2009년 상반기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보면 ‘3월 위기설’은 1997년 말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가 2009년 3월에 발생하리라는 주장이라기보다는 2009년 3월경이 금융이나 실물 모두 가장 어려운 상황을 맞을 것이라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다 정부와 청와대 고위관리들이 2009년 상반기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3월 위기설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위기가 2009년 3월경에 발생하리라고 주장하는 배경 중에서 가장 전면에 대두되고 있는 것이 일본 등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자금을 우리나라에서 대거 회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은행들이 일본계 은행들로부터 빌려온 자금은 2008년 10월 말 현재 107억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전체 외채 1166억 달러의 10%에도 채 못 미치는 데다 만기도 결산시기인 3월에만 집중돼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외국계 금융회사들의 경우 2009년 3월에 우리나라로부터 자금을 회수할 특별한 유인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설사 일부 외국계 자금이 빠져나간다 해도 외환보유액 2000억 달러와 韓美(한미) 통화 스와프 300억 달러가 버티고 있을 뿐 아니라 韓·中·日(한·중·일) 통화 스와프가 현재의 170억 달러 규모에서 대폭 확대될 경우 지렛대로 사용될 수 있어 외환공급에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경기관련 지표들이 2009년 1분기(1~3월)에도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가운데 외환시장은 불안한 모습을 이어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2009년 3월까지 외환시장이 불안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에도 외환시장이 안정을 되찾기까지는 다음해인 1998년 6월 중순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한번 요동을 치면서 오버슈팅(over-shooting)을 한 환율이 다시 내려오기는 해도 쉽사리 안정되기까지는 상당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오버슈팅은 환율이나 주가, 아파트가격, 금리, 유가와 같은 가격변수가 통상적인 흐름을 벗어나 큰 폭으로 오르거나 내리는 경우를 말한다.
환율 달러당 1600~1700원까지 올라갈 듯
외환위기 당시 환율은 1997년 12월 23일 달러당 1962원(이하 종가 기준)으로 고점을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500억 달러가 넘는 사상 최대규모의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외환시장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미국 재무부는 12월 24일 밤(현지시각) 일본 등과 함께 80억 달러를 추가적으로 마련, 필요할 경우 ‘제2의 방어선(the second line of defence)’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환율이 급락하면서 12월 29일에는 달러당 1395원까지 내려앉았다. 당시 한국은행 워싱턴사무소에 근무하면서 미국 재무부로부터 ‘제2의 방어선 마련’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 듣고 한국에 전달한 필자는 “이제 환율이 계속 떨어져 적어도 1000원대까지는 내려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환율은 이후에도 1800원대까지 올라가는 등 급변동을 하는 가운데 예상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안정되어 갔다. 달러당 1300원대로 들어선 것이 3월 하순이었고 안정적인 1300원대를 보기까지는 6월 중순까지 기다려야 했다. 필자가 당초 생각했던 달러당 1000원대는 무려 7년이나 걸린 2005년 1월이 되어서야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은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다. 국내적인 요인보다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충격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외환보유액과 경상수지 등도 훨씬 더 양호한 상황이다.
따라서 외환위기 때처럼 환율이 달러당 1900원대까지 폭등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최악의 경우 달러당 1600~1700원대를 찍고 내려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 와중에 주가가 1000선이 무너지기도 할 것이고 800선을 위협받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얼마나 더 갈지, 더 악화될지 아니면 수습수순으로 들어설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9년 3월경까지는 미국의 금융위기가 안정되고, 국내적으로는 3월 위기설이 가라앉으면서 환율이 달러당1200~1300원대로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2009년으로 가면 일단 경상수지가 안정적인 흑자를 보일 뿐 아니라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의 유출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자본수지도 균형 또는 소폭 흑자를 보이는 등 달러공급 환경이 크게 호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부와 한국은행 차원에서는 앞서 언급한 한·중·일 통화 스와프 규모확대 외에도 한미 통화 스와프 만기연장 및 규모확대, 은행들의 외화차입금 만기연장 및 신규차입 시 정부보증, 은행의 외화유동성 비율의 완화 등 다각적인 조치가 병행돼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