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경제위기의 심리학 - 한국인들의 大勢추종이 위기를 키우고 있다 : 월간조선

2008년 10월, 11월 그리고 12월, 대한민국은 혼란과 불안에 빠져 있다.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선택한 대통령이 있건만, 경제는 위기라고 한다. 위기의 진원지는 미국이다. 이름도 생소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이 자랑하던 투자은행들이 줄倒産(도산)하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한국에까지 금융위기의 寒波(한파)가 몰아친 것이다.

경제위기라 하니 많은 사람들은 1997년 外換(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의 惡夢(악몽)을 연상하기 시작했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 영문도 모른 채 당하는 뜬금없는 위기이기에 그 성격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이야기가 난무하게 된다.

분명 현재의 경제위기는 10년 전 외환위기 때와는 다른 것 같다. 그때는 우리 국민들이 경제난국을 야기한 죄인임을 자처했다. 모두 ‘샴페인을 일찍 터트린 죄’를 저지른 것처럼 행동했다. ‘國難(국난)극복’이라는 말에 모두 공감했고, 장롱 속의 金(금)을 꺼내 들고 위기극복에 동참했다. 그런데, 현재의 위기는 ‘우리가 책임을 느끼고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위기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작년부터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제는 펀더멘털(기초여건)이 튼튼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현재의 외환보유고로 충분히 외부 위기 상황에 견딜 수 있다”는 상투적인 말잔치는 계속되어 왔다.

그러다 대한민국의 경제위기가 시작됐다. 도대체 이 위기는 어디서부터, 누구에 의해 시작된 것일까?

작년 여름방학이 끝난 후였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브릭스(BRIC’s) 펀드를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더니, 그는 “지난달에 브릭스 펀드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몇 개월 동안 열심히 공부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는 “펀드에 약간의 여유자금을 투자했다”며 필요하면 자기에게 자문을 구해도 된다고 했다.

케네디 아버지의 일화

주식에 대해 논하는 구두닦이를 보고 주식을 팔아 치운 조지프 케네디(가운데). 오른쪽이 후일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펀드 열풍이 불고 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후배의 즉석 펀드투자 강의였다.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읽었던 전문가들의 의견과 비슷했다. 아니, 너무 똑같았다.

“브릭스 국가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 있다. 모두 수익률이 높은 국가지만 각 국가의 강점이 다르니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과거 높은 수익률이 나왔으니 투자가치가 있다.”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은 주식에 투자한 펀드에 투자해야 한다. 이런 경우 개인이 직접 하기보다는 전문가가 운영하는 펀드가 좋다.”

지금 후배의 펀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1929년 미국 대공황 직전이었다. 후일 미국 대통령이 되는 존 F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는 당시 뉴욕의 한 은행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20대에 은행장이 된 立志傳的(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어느 날 그는 구두를 닦았다. 그가 구두를 닦으면서 신문 경제면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본 구두닦이가 물었다.

“아저씨는 어떤 주식을 사셨나요?”

구두닦이는 자신도 주식을 샀으며, 그것이 얼마나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이야기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케네디의 아버지는 즉시 자신이 가진 주식 대부분을 팔았다. ‘거리의 구두닦이까지 주식에 대해 이야기할 상황이라면 破局(파국)이 멀지 않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이 거리의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는 투자행위라면 그것은 바로 복권 구입과 다름없다. 기업의 內在(내재)가치나 성장 가능성 등과 전혀 관계없는 ‘돈 놓고 돈 먹는’ 투기행위가 되는 것이다. 복권에서는 돈을 버는 사람보다 돈을 잃는 사람이 더 많기 마련이다. 문제는 누가 돈을 벌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케네디의 아버지는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아무 것도 모르는 일에 그냥 참여할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케네디 아버지의 사례는 ‘대중 사이에 주식 狂風(광풍)이 불 때가 위험하다’는 사례로 곧잘 언급된다.

위기는 우리가 만들었다

이상의 이야기를 뜬금없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현재의 경제위기가 미국發(발) 서브프라임 때문에 생겨난 어쩔 수 없는 재앙’이라고 믿는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쓰나미처럼 몰아닥친 이 금융위기는 어쩔 수 없는 재앙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위기다. 그것은 바로 大勢(대세)를 찾고, 대세를 따르는 대한민국 사람이 만든 일이다. 이 사회에서 대중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대세가 붕괴된다고 느낄 때 혼란에 빠지며, 위기를 또 다른 대세로 추종한다. 이런 형태의 경제위기를 언론에서는 이렇게 묘사한다.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위기를 유발하고 있다.”

“한국 증시 과도한 공포가 문제다.”

“최근의 증시급락 상황은 한국경제의 특수한 문제라기보다 글로벌 증시 움직임에 따른 것이다.”

“경제의 펀더멘털보다는 공포심리가 지수를 끌어내리고 있다.”

“신용위기, 실물경기 둔화 등 악재가 다 나왔기에 더 이상 나빠질 것은 없을 것이다. 유동성 공급으로 신용경색이 풀리면 반등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과거 지난 몇 년 동안 대한민국 사람들이 느껴 왔던 심리상태가 더 구체화된 것에 불과하다. 지난 정권 내내 경제가 좋았던 적은 별로 없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수출이 史上(사상) 최고의 黑字(흑자)를 달성했을 때에도 경제가 나쁘다고 믿었다. 해외여행이 사상 최고 수준이고, 인천국제공항 이용객이 최고 수준이었을 때도 사람들은 ‘경제가 어렵다’고 했다. 심지어, 주식시장의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었을 때에도 ‘경제가 어렵다’면서 ‘경제를 살릴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나라에서 株價(주가)지수가 半(반)토막이 되고, 달러당 환율 변동이 40% 이상 일어났을 때 느끼는 위기는, 과거에 그렇게 계속 이야기했던 막연한 위기가 현실화된 것일 뿐이다.

五里霧中(오리무중)의 와중에 공무원이나 경제 전문가들은 스스로 믿고 싶은, 또는 보고 싶은 희망 사항들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 시장이나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 전문가나 언론 보도도 다르지 않다. 때로 惡意的(악의적)인 내용이 전달된다. 그에 따라 국내의 전문가와 언론은 또 다시 위기를 증폭시켜 나간다.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했기에 우리는 위기에 처해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투자등급 국가로는 가장 위험하다’는 인식을 투자자들이 갖고 있다.”

“(한국경제는) 근본적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유동성 부족, 글로벌 경기 침체 등 경제 전반에 악재가 도사리고 있지만 이미 다 알려진 惡材(악재)라는 점에서 새로운 하락 원인은 아니다.”

“국제 금융위기의 소용돌이가 커지는 가운데 진짜 충격인 것은 한국과 러시아, 브라질 같은 신흥시장으로 위기가 확산되는 방식이다. 계속되는 금융시스템의 어려움과 헤지펀드 및 신흥시장의 곤경은 서로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大勢를 상실한 시대

이런 외신에 울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남을 통해 알게 되는’ 우리의 삶의 한 단면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현재가 불분명하거나 미래가 불확실할 때, 대중은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대세’가 무엇인지 찾는다. 이는 ‘남들은 어떻게 사나’,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미국에서 일어난 금융위기가 바로 한국 사회에 쓰나미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경제를 ‘세계의 대세’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미국 경제의 붕괴’를 알리는 현상은 ‘대세의 상실’을 의미한다.

인간은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때, 그 나름의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나름으로 열심히 이유나 원인이 될 만한 것을 찾는다.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불안심리’까지 찾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대세의 변화’는 한국인에게 ‘삶의 방향의 상실’이자, 삶의 방식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혼란의 시작이다.

자신에게 가용한 여러 가지 단서들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것을 그 상황이 발생하게 된 원인으로 삼는 歸因(귀인·attribution)현상은 인간의 습관적인 행동의 일종이다. 이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상황이 무엇인지, 또 어떤 일이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을 때, 나름대로 처절하게 기울이는 노력이다.

이 경우, 뚜렷한 무엇이 눈에 띄지 않을 때, 인간은 쉽사리 그럴듯한 원인으로 ‘심리적 요인’을 언급한다. 이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변화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전문가가 느끼는 좌절감과 불안감의 표현일 뿐이다. 이 경우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대중의 행동과 전문가의 행동은 그리 다르지 않다.

변화 상황에서 대세를 따르는 것은 대중이 알고 있는 삶의 지혜이자, 생존의 秘法(비법)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대세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아니 누구도 뚜렷한 대세를 추종하는 행동을 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은 불안이다.

爲政者(위정자)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대세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현재의 경제위기가 가진 문제의 핵심은 무엇이 대세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 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 상황이다.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된다면, 대세를 찾을 수 없는 대중의 불안은 증가할 뿐이다. 위정자들은 “문제없다”고, “위기가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는 상황에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대세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대세가 명확지 않은 것이 불안의 원인

지금 분명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대중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이 대세인가’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행동방향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세’가 무엇인지 분명하다면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은 줄어든다.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대세의 변화는 바로 미국 중심의 시장경제 붕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붕괴였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대세의 변화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대세의 변화에 따른 대중의 혼란 때문에,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투자은행의 파산과 큰 관계가 없는 한국 경제가 이토록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