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현대차에 필요한 각종 핵심부품 60만대분 공급
● 중국 당국의 기술 공유 요구와 ‘짝퉁’ 범람으로 시련 겪기도
● 중국 로컬업체에도 에어백, 헤드램프 납품
● 중국 당국의 기술 공유 요구와 ‘짝퉁’ 범람으로 시련 겪기도
● 중국 로컬업체에도 에어백, 헤드램프 납품
- 현대모비스 베이징변속기 2공장 내부.
현대자동차 베이징 본사 건물은 베이징 공항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본사 1층에는 현대차에서 생산하는 쏘나타, 아반떼XD가 전시돼 있었다. 현대모비스의 중국 현지 법인인 ‘베이징모비스’는 2002년에 세워졌다.
이 회사는 중국 진출 6년 만인 지난 4월, 연간 30만대의 각종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제2 공장을 오픈했다. 중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다. 현대모비스의 본격적인 중국 시장 공략은 올 초부터 시작됐다. 정석수 현대모비스 사장은 지난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유럽, 중국에 새롭게 공장을 증설해 공격 경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베이징모비스는 베이징 한복판에 자리잡은 현대차 소유의 건물 중 한 층을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다. 김태동 현대모비스 전무를 비롯해 40여명의 직원이 이곳에 상주한다.
중국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에서 베이징모비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전재덕 현대모비스 차장의 말에 따르면 현재 현대모비스는 베이징에 4개, 상하이에 3개 등 총 7개의 중국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베이징 지역에는 ‘베이징모비스’ ‘베이징변속기’ ‘베이징모비스중차’ ‘베이징모비스배건’ 등 4개의 회사가 있다. ‘베이징모비스’는 현재 운전석모듈·섀시모듈·범퍼 등을 생산하고 있고, ‘베이징변속기’는 베타·중형 변속기 등을 만들고 있다. ‘베이징모비스 중차’는 캐리어 등 44개의 플라스틱 자동차 부품을, ‘배건’은 A/S 용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부품들은 베이징현대차에 주로 납품되고 일부는 중국의 로컬회사에 공급되기도 한다.
베이징모비스 모듈 공장은 본사에서 50km 정도 떨어진 ‘순의구’라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베이징의 거리 계산법은 독특하다. 베이징모비스 관계자의 얘기에 따르면, 베이징은 시내를 중심으로 원을 그려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표시한다고 한다. 가령 시내 부근의 동그란 원 안에 들어오는 지역은 1환선, 1환선 외곽의 동그란 원은 2환선, 2환선 밖의 동그란 원은 3환선 등이다. 1환선은 베이징 시내에서 무척 가까운 지역이라는 뜻이고, 숫자가 높아질수록 먼 지역이라는 뜻이다.
현대차 도시, 베이징 ‘순의구’
베이징모비스가 있는 곳은 6환선 지역이다. 시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베이징에 상주하는 직원들이 출퇴근하기에는 다소 먼 거리다. 다행히 도로가 막히지 않아 출퇴근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 현지 직원의 설명이다.
베이징 시내를 벗어나 3환선, 4환선 지역으로 들어서자, 허허벌판 시골이 눈에 들어왔다. 모랫바람이 물안개처럼 땅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끝없는 벌판이었다. 중국의 수도에서 자동차로 불과 30분 떨어진 곳이 이 정도이니, 중국에 개발할 수 있는 땅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여분을 달려 도착한 순의구는 ‘현대’라는 글자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베이징모비스 모듈 공장은 베이징현대차 공장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위치에 있다. 현대차 아산 국내공장과 모비스 공장은 서로 12km 떨어져 있지만 이곳은 계획된 도시이다 보니 두 회사가 지근거리에 있다. 물류비용이 적게 들고, 다급한 순간에 물건을 빠르게 납품할 수 있다고 한다.
베이징모비스의 모듈 공장은 3만350m2(9500평) 규모의 모듈 제1공장, 1만2900m2(3900평)의 제2공장, 사출 및 도장 공장(4500평), 부품 창고(8700평) 등으로 나뉘어 있다. 공장 1층에는 베이징모비스에서 생산하는 모듈이 전시돼 있었다.
오흥섭 차장으로부터 모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과거에는 완성차 업체들이 자동차에 들어가는 2만여개의 부품을 하도급업체로부터 일일이 납품 받아 조립했습니다. 요즘은 자동차의 운전석, 자동차 뒷부분 등을 큰 덩어리 형태로 공급받는데, 이것이 모듈입니다.
모듈은 크게 ‘섀시 모듈’ ‘운전석 모듈’ ‘프론트엔드 모듈’로 나뉩니다. ‘섀시 모듈’은 자동차 하부에 장착되는 모듈로, 지면의 진동과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을 하는 부품입니다. ‘운전석 모듈’은 계기판·에어백·오디오·글로버박스·와이어링 하네스 등 70여개의 부품이 합쳐져 생산되는 모듈이고요. ‘프론트엔드 모듈’은 헤드램프·쿨링시스템·캐리어 등이 합쳐진 자동차 앞부분 보디라고 보시면 됩니다.
현대차는 모비스로부터 자동차 부품을 모듈 형태로 납품 받아서 자동차에 장착시키게 됩니다. 이 공정을 ‘매리지(결혼)공정’이라고 부릅니다.”
부품을 일일이 조립하는 것보다 시간이 적게 들고, 작업이 간편한 것이 모듈의 장점이다. 오 차장은 일본 도요타와 현대모비스 사이에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도요타는 모비스의 모듈 제작을 흥미롭게 관찰하다가 어느 날 한국 모비스 공장 견학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에게 모듈작업 과정을 보여줄 이유가 없어 거절했어요. 그러자 도요타는 ‘우리들의 공장 핵심부분을 보여줄 테니 모비스 모듈공장 견학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도요타는 자기들의 공장 핵심부분은 어지간해서는 외부에 오픈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공장 문을 열어주면서까지 도요타의 공장을 볼 필요가 없다’고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베이징모비스 모듈 1공장에서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파란색 작업복을 걸친 직원들은 생산라인에서 직접 부품을 조립하는 일을, 붉은색 작업복은 조립 공정이 끝난 상품을 확인하는 일을 한다. 중국 직원들이 입은 조끼 뒷면에는 ‘品質管理(품질관리)’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베이징모비스의 제1 모듈 공장은 한 해에 총 30만대의 완성품을 생산할 수 있다. 현재 이 곳에서는 총 5개의 차종에 장착되는 모듈을 생산하고 있다. 출범 첫해인 2002년 ‘EF 쏘나타’에 들어가는 섀시와 운전석 모듈을 베이징현대차에 납품했다. 2003년에는 ‘XD아반떼’의 섀시·운전석 모듈을, 2005년에는 ‘JM(한국명 투싼)’의 섀시·운전석·프론트엔드 모듈을 생산했다. 이후 ‘NF쏘나타’, ‘MC(한국명 엑센트)’ 등에 차례로 모듈을 납품했다.
납품 차종이 늘수록 베이징모비스의 매출이 늘고 있다. 2003년에 총 5만4800여대를 생산했던 베이징모비스의 실적은 15만대(2004년), 23만대(2005년), 29만대(2006년), 23만1800여대(2007년)로 늘었다. 베이징모비스는 지난 4월 제2 모듈 공장 증설을 계기로, 올해 총 38만대의 제품을 생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2공장 건설로 인해 베이징모비스의 연간 생산능력은 60만대로 늘었다. 2007년을 기준으로 가장 많이 납품한 차종은 아반떼, JM, MC 順(순)이었다.
공장 내부의 컨베이어 벨트에는 직원들이 조립해야 할 자동차 부품들이 순서대로 들어오고 있었다. 자동차 의장 라인의 직서열 정보가 베이징현대차로부터 날아온다. 직원들은 컴퓨터에 뜨는 순서에 맞춰 부품을 조립한다.
중국 직원이 컴퓨터 모니터에 나온 부품을 꺼내 장착하자, OK 사인이 떨어졌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이 국내 생산품보다 월등히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메이드 인 차이나’는 값은 싸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하고 베이징모비스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전혀 그렇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베이징모비스를 설립하면서 공장 세팅이며 특수공구, 장비를 국내와 동일하게 적용했기 때문이란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일 뿐, 품질은 국내와 똑같다는 것이 오 차장의 설명이다.
그는 “공장의 기본적인 인프라는 국내와 동일하고, 중국 직원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애로사항이 있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우리나라 사람 못지않다”며 “중국 노동자들이 시키는 일은 정확히 잘하는 편”이라고 했다.
중국 로컬업체에 에어백과 헤드램프 납품
이 공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23세. 종업원들은 1년, 2년씩 단기 계약제로 일을 하고, 근무 성과에 따라 재계약을 하는 식으로 고용한다. 급여가 時級(시급)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잔업이 늘어나는 날은 당연히 이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진다. 중국이라고 해서 노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공회’라는 명칭의 노조 설립을 허가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의 경영에 간섭하거나, 정책에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한 노조는 아니다. 오 차장의 얘기다.
“한국 노조 간부들이 우리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노동자들이 기존에 해왔던 일 이외에 새로운 공정에 배치될 경우 회사와 협의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노조에서 ‘회사에서 계획을 세우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지 무슨 협의를 하느냐’고 되물어 한국 노조 관계자들을 머쓱하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중국 정부 지침으로 ‘공회’를 세우지만 회사의 경영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베이징모비스 모듈 변속기 공장에 근무하는 장국환 이사를 만났다. 현대차 울산공장 엔진변속기 담당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현대차 인도 공장에서 근무한 후 2003년부터 베이징 현대모비스 변속기 부문 이사를 맡고 있다.
장 이사는 “현대모비스의 전체적인 글로벌 순위가 아직 20위권에 머물러 있고, 중국에서 보쉬, 델파이 등의 부품 업체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제2 공장 증설을 계기로 경쟁자들의 시장을 본격적으로 빼앗아 올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다는 것이 확인되면 우리의 제품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이미 글로벌 부품 시스템 체계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기준에 맞는 품질을 요구하고 있고, 자신과 오랫동안 거래를 했다고 해서 특정 회사들에게만 납품을 받지는 않습니다. 가격, 품질을 고려해서 철저하게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합니다. 베이징모비스 연구소에서 중국의 특성에 맞는 제품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고, 현대차 이외에 납품처를 뚫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국 현지업체에 직접 납품하는 부품이 있습니까.
“중국의 로컬 업체에 우리가 상하이에서 생산하는 에어백과 헤드램프가 납품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의 한 업체와 ABS브레이크 시스템 납품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요. 베이징모비스에서 생산하는 부품의 품질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자부하고, 마케팅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베이징모비스와 상하이모비스에 한국어가 능통한 중국 직원들로 영업팀이 꾸려져 있습니다. 모기업인 현대차에 적기에 좋은 모듈 부품을 납품하는 것이 우리의 일차적인 목적이지만,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모색 중입니다. ‘현대차가 잘돼야 현대모비스가 잘된다’는 공식을 스스로 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차츰 가시적인 효과를 거둘 겁니다.”
그는 베이징모비스가 향후 전 세계 시장의 납품 기지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모비스에서 생산하는 변속기는 슬로바키아에, 베이징모비스중차의 일부 생산 부품은 터키 공장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모듈 사업부는 완성차와 동반자적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으나, 우리의 단일 부품은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를 납품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생산한 현대모비스 모듈을 美(미) 다임러크라이슬러에 납품해서 화제가 됐었습니다. 자체적으로 납품처를 뚫는 것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도면 한 장이 넘어가는 순간 우리의 기술이 넘어간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고민 중 하나는 기술 유출 문제다. 외자 기업을 유치하려고 열을 올렸던 중국 정부가 우리 기술력을 살금살금 빼내가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현대모비스도 예외는 아니다.
직원들의 개인 컴퓨터에 보안 장치를 하고, UBS로 다운로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각종 서류에 암호 코드를 넣고 있다.
장 이사는 “‘도면 한 장이 넘어가는 순간 우리의 기술이 넘어간다’고 직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업체에 기술을 뺏기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국내에서 핵심 부품을 곧장 들여오는 경우다. 하지만 운송료, 세금 등을 합하면 비용이 20% 이상 높아진다고 한다. 현지에서 원자재를 조달하고, 현지인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베이징모비스의 종이 한 장이 유출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을 통한 기술 유출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기술을 현지화하면서 핵심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 어려운 과제라는 게 장 이사의 얘기다.
더구나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나서서 자신들과 기술을 공유할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의지를 알 수 있는 사건이 지난해 있었다. 중국 정부가 그동안 무관세로 취급했던 수동변속기에 지난해부터 세금을 매기고 나선 것이다. 장 이사의 얘기다.
“중국 정부에서 노골적일 정도로 우리의 기술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손님을 끌어들이려고 온갖 호객행위를 해놓고, 이제는 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서서히 옥죄고 나섰다고 하면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우리가 생산한 수동변속기에 관세를 매기지 않았습니다. 무관세 혜택을 줬는데, 지난해 법을 개정하면서 ‘더이상 관세 면제 혜택을 줄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갑자기 말이 바뀌니 당황스러웠습니다. 우리의 생산제품 중에 자동변속기, 자동차 엔진은 여전히 무관세로 통과됩니다. 결국 수동변속기 같은 일반적인 기술은 다 알았으니 됐고, 모비스의 핵심인 자동변속기, 엔진 기술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이런 식의 압박이 들어올 때마다 암담한 기분이 듭니다.”
―법을 개정하면 우리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중국 정부, 중국 상공회의소 등에 하소연하는 것뿐입니다. ‘들어올 때는 甘言利說(감언이설)로 끌어들여 놓고 너무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항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핵심 부품의 기술력을 더욱 심하게 요구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중국 시장 내에서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사업 여건은 갈수록 안 좋아지는 2중고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중국정부의 전방위 압력
중국 정부의 이런 압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노골적이고, 거세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기술력 교류뿐 아니라, 얼마 전부터는 100% 현대모비스에서 출자한 베이징모비스의 지분 구조가 중국과 합작 법인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고 한다. 베이징모비스는 이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절대 불가’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중국의 압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장 이사의 말이다.
“중국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국 독자 모델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겁니다. 빠른 시간 내에 세계 5위권의 자동차 메이커로 발돋움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겁니다. 베이징 시내에는 GM대우의 카피 자동차인 ‘짝퉁 마티즈’가 많이 돌아다닙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들이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우리도 과거에 포드, 미쓰비시 등으로부터 여러 생산 노하우를 배워, 자체적으로 엔진과 변속기를 우리 손으로 생산할 수 있는 수준에 올랐습니다. 우리 스스로 개척한 노하우를 중국 정부가 압박한다고 해서 쉽사리 내줄 수는 없죠.”
그는 과거 현대차 인도 공장에서 근무했던 당시에도 이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가 인도에 진출했던 1980년대 후반은 인도의 경제개발기였다고 한다.
현대차에서 처음에 인도를 둘러보고 공장 설립을 위해 여러 조건들을 내세웠을 때, 인도 정부는 무척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땅은 무상으로 제공되고, 노동력은 넘쳐 흐른다고 했다.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데려가서 일을 시키고 밥만 먹이면 된다’는 식이었다고 한다. ‘전기는 어디서 끌어서 써야 하느냐’고 물으면, ‘정부에서 발전소 지어서 지원해 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도 정부의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도 공장 근로자들의 처우 문제에 대해 꼬투리를 잡더니, 지나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등의 태도를 보인 것이다.
현대모비스가 중국 현지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베이징모비스는 요즘 짝퉁 부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짝퉁을 만드는 수법이 교묘해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장 이사의 말이다.
“베이징모비스는 모듈 부품 이외에 A/S용 부품을 생산하고 있는데 중국산 짝퉁 부품으로 인한 폐해가 정말 심각한 상황입니다. 얼마나 정교한지, 짝퉁 단속을 나간 사람이 중국산 짝퉁을 보고 우리 정품이 아니냐고 말할 정도예요. 중국인들의 손재주가 이렇게 뛰어났나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단순히 짝퉁 범퍼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기술력이 요구되는 연료필터, 핸들을 이미테이션으로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생산한 제품이라고 순정 부품까지 떡하니 붙여서 내보냅니다. 중국 공안과 합동 단속을 하고 있는데 특정 지역을 표적수사하지 않는 한 단속할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중국산 짝퉁 부품, 러시아로 수출되기도
―중국 정부에서 알고도 눈감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중국은 아직 ‘지적재산권’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내가 만들면 내 것이라는 식입니다. 문제는 중국에서 자생적으로 커지는 이런 업체들 때문에 베이징모비스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짝퉁 제품이 정상 제품의 3분의 1 가격이다 보니, 일차적으로는 대리점들이 이런 제품을 납품받아 우리의 매출이 떨어집니다. 이들로부터 물건을 사들이는 중간 대리점들은 제품의 짝퉁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거든요. 더욱 큰 문제는 내구성이 약한 짝퉁 제품을 우리 것으로 오인해 이미지에 손상을 입힌다는 점입니다. A/S 용 부품은 운전자의 안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잖습니까. 소비자들의 피해가 우리 탓인 양 될 수 있는 겁니다. 짝퉁 A/S 부품들이 러시아로 수출되고 있어 심각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결국 원 생산자인 모비스가 철저히 단속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모듈 공장 옆에 위치한 사출·도장 공장으로 이동했다. 사출·도장 공장은 모듈 1공장에서 2.3km 떨어져 있다. 베이징모비스의 각 공장은 베이징현대차를 중심으로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담당자인 박동환 부장의 안내를 받았다.
베이징에서 생산되는 완성차와 A/S용 부품은 이곳에서 색을 입힌다. 차체 외부 클리어 작업 3번, 도장 2번, 광택 2번 등 총 7번을 작업해야 도장 과정이 끝난다. 도장이 끝날 때까지의 소요시간은 평균 2시간 반에서 3시간이다.
7번 색깔 입혀 자동차 완성
범퍼의 경우, 스물세 가지의 색상이 생산된다. 연간 출하량은 약 40만대. 중국인들이 붉은 색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지만, 의외로 붉은색 자동차의 매출은 높지 않다고 한다. 베이징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량 색은 검은색, 은색 순이다.
도장 공장의 내부는 모듈 1, 2공장보다 훨씬 더웠다. 후끈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박 부장은 “7번의 도장 작업이 끝난 후, 90도의 온도에서 40분간 굽기 때문에 내부 온도가 높다”며 “차체의 색이 변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인데, 완성품 중에서 가로 세로 30cm에 작은 점이 두개 이상이면 불량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
불량품은 바코드를 붙여 불량처리 장소로 보낸다. 불량률은 사무실에 실시간으로 보고된다. A/S 부품 중에는 범퍼와 라이트가 가장 많이 나간다. 이들 부품은 다른 부품보다 10~15% 많이 생산을 한다. 지난해 중국 남부 지역에 폭설이 내렸을 때, 베이징모비스는 평소 생산량의 20%를 웃도는 A/S 용 부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현대모비스의 핵심인 베이징변속기 공장은 베이징 순의구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다. 일행은 베이징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통주구에 있는 베이징모비스 변속기 공장을 찾았다.
베이징모비스 변속기 공장은 2003년 3월, 총 20만m2(6만평)의 부지에 현대차가 60%, 현대모비스가 40%를 출자해 설립했다. 제1공장에서는 베타와 중형 변속기를, 제2공장에서는 신소형 변속기를 생산한다. 생산 능력은 각각 20만대씩 총 40만대. 이곳에서 생산된 변속기는 총 11개 차종에 탑재된다. 2004년부터 쏘나타, 엘란트라, 옵티마, 천리마 등에 얹었고, 투싼, 쎄라토, 스포티지, 뉴엑센트, 뉴프라이드 등에도 실렸다. 올해부터는 뉴아반떼와 NF쏘나타에 납품할 수동 변속기를 생산할 예정이다.
박현수 현대모비스 변속기담당 부장의 말이다.
“중국에서 운행 중인 차량의 대부분은 수동 변속기 차량입니다. 전체의 80%에 달했던 수동 변속기 차량이 최근 70%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세는 수동 변속기입니다. 수동 변속기는 운전자의 성격에 따라 선호도가 극명하게 나뉩니다. 기어를 움직일 때 부드러운 느낌을 선호하는 운전자와 딱딱한 느낌을 바라는 운전자 등 차이가 큽니다. 수동 변속기를 만드는 업체의 입장에서 어떤 유의 제품을 생산할 것이냐 하는 것은 큰 고민거리입니다.”
짝퉁 중국車들의 질주
박 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베이징변속기 공장은 변속기 원가를 절감하고 완성차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국산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알루미늄 합금과 특수강 등은 지난 2007년 1월부터 중국업체인 동북특수강 등에서 납품 받고 있다. 변속기 부품인 싱크로링 베어링 클러치실린더 부분도 청도영진의 N나-C위방대철에서 납품 받고 있으며, 이를 통해 5년 동안 약 800억원을 절감할 예정이라고 한다.
베이징모비스의 공장 투어를 끝마치고 나니,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공장 투어를 위해 아침에 출발했을 때에는 눈에 띄지 않던 중국산 짝퉁 차들이 베이징 시내를 활보하고 있었다. 중국 정부의 기술 공유 요구와 짝퉁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고충이 가슴에 와 닿았다.⊙
본사 1층에는 현대차에서 생산하는 쏘나타, 아반떼XD가 전시돼 있었다. 현대모비스의 중국 현지 법인인 ‘베이징모비스’는 2002년에 세워졌다.
이 회사는 중국 진출 6년 만인 지난 4월, 연간 30만대의 각종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제2 공장을 오픈했다. 중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다. 현대모비스의 본격적인 중국 시장 공략은 올 초부터 시작됐다. 정석수 현대모비스 사장은 지난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유럽, 중국에 새롭게 공장을 증설해 공격 경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베이징모비스는 베이징 한복판에 자리잡은 현대차 소유의 건물 중 한 층을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다. 김태동 현대모비스 전무를 비롯해 40여명의 직원이 이곳에 상주한다.
중국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에서 베이징모비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전재덕 현대모비스 차장의 말에 따르면 현재 현대모비스는 베이징에 4개, 상하이에 3개 등 총 7개의 중국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베이징 지역에는 ‘베이징모비스’ ‘베이징변속기’ ‘베이징모비스중차’ ‘베이징모비스배건’ 등 4개의 회사가 있다. ‘베이징모비스’는 현재 운전석모듈·섀시모듈·범퍼 등을 생산하고 있고, ‘베이징변속기’는 베타·중형 변속기 등을 만들고 있다. ‘베이징모비스 중차’는 캐리어 등 44개의 플라스틱 자동차 부품을, ‘배건’은 A/S 용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부품들은 베이징현대차에 주로 납품되고 일부는 중국의 로컬회사에 공급되기도 한다.
베이징모비스 모듈 공장은 본사에서 50km 정도 떨어진 ‘순의구’라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베이징의 거리 계산법은 독특하다. 베이징모비스 관계자의 얘기에 따르면, 베이징은 시내를 중심으로 원을 그려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표시한다고 한다. 가령 시내 부근의 동그란 원 안에 들어오는 지역은 1환선, 1환선 외곽의 동그란 원은 2환선, 2환선 밖의 동그란 원은 3환선 등이다. 1환선은 베이징 시내에서 무척 가까운 지역이라는 뜻이고, 숫자가 높아질수록 먼 지역이라는 뜻이다.
현대차 도시, 베이징 ‘순의구’
베이징모비스가 있는 곳은 6환선 지역이다. 시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베이징에 상주하는 직원들이 출퇴근하기에는 다소 먼 거리다. 다행히 도로가 막히지 않아 출퇴근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 현지 직원의 설명이다.베이징 시내를 벗어나 3환선, 4환선 지역으로 들어서자, 허허벌판 시골이 눈에 들어왔다. 모랫바람이 물안개처럼 땅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끝없는 벌판이었다. 중국의 수도에서 자동차로 불과 30분 떨어진 곳이 이 정도이니, 중국에 개발할 수 있는 땅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여분을 달려 도착한 순의구는 ‘현대’라는 글자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베이징모비스 모듈 공장은 베이징현대차 공장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위치에 있다. 현대차 아산 국내공장과 모비스 공장은 서로 12km 떨어져 있지만 이곳은 계획된 도시이다 보니 두 회사가 지근거리에 있다. 물류비용이 적게 들고, 다급한 순간에 물건을 빠르게 납품할 수 있다고 한다.
베이징모비스의 모듈 공장은 3만350m2(9500평) 규모의 모듈 제1공장, 1만2900m2(3900평)의 제2공장, 사출 및 도장 공장(4500평), 부품 창고(8700평) 등으로 나뉘어 있다. 공장 1층에는 베이징모비스에서 생산하는 모듈이 전시돼 있었다.
오흥섭 차장으로부터 모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과거에는 완성차 업체들이 자동차에 들어가는 2만여개의 부품을 하도급업체로부터 일일이 납품 받아 조립했습니다. 요즘은 자동차의 운전석, 자동차 뒷부분 등을 큰 덩어리 형태로 공급받는데, 이것이 모듈입니다.
모듈은 크게 ‘섀시 모듈’ ‘운전석 모듈’ ‘프론트엔드 모듈’로 나뉩니다. ‘섀시 모듈’은 자동차 하부에 장착되는 모듈로, 지면의 진동과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을 하는 부품입니다. ‘운전석 모듈’은 계기판·에어백·오디오·글로버박스·와이어링 하네스 등 70여개의 부품이 합쳐져 생산되는 모듈이고요. ‘프론트엔드 모듈’은 헤드램프·쿨링시스템·캐리어 등이 합쳐진 자동차 앞부분 보디라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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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모비스 제1모듈 공장에서 중국 현지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부품을 일일이 조립하는 것보다 시간이 적게 들고, 작업이 간편한 것이 모듈의 장점이다. 오 차장은 일본 도요타와 현대모비스 사이에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도요타는 모비스의 모듈 제작을 흥미롭게 관찰하다가 어느 날 한국 모비스 공장 견학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에게 모듈작업 과정을 보여줄 이유가 없어 거절했어요. 그러자 도요타는 ‘우리들의 공장 핵심부분을 보여줄 테니 모비스 모듈공장 견학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도요타는 자기들의 공장 핵심부분은 어지간해서는 외부에 오픈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공장 문을 열어주면서까지 도요타의 공장을 볼 필요가 없다’고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베이징모비스 모듈 1공장에서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파란색 작업복을 걸친 직원들은 생산라인에서 직접 부품을 조립하는 일을, 붉은색 작업복은 조립 공정이 끝난 상품을 확인하는 일을 한다. 중국 직원들이 입은 조끼 뒷면에는 ‘品質管理(품질관리)’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베이징모비스의 제1 모듈 공장은 한 해에 총 30만대의 완성품을 생산할 수 있다. 현재 이 곳에서는 총 5개의 차종에 장착되는 모듈을 생산하고 있다. 출범 첫해인 2002년 ‘EF 쏘나타’에 들어가는 섀시와 운전석 모듈을 베이징현대차에 납품했다. 2003년에는 ‘XD아반떼’의 섀시·운전석 모듈을, 2005년에는 ‘JM(한국명 투싼)’의 섀시·운전석·프론트엔드 모듈을 생산했다. 이후 ‘NF쏘나타’, ‘MC(한국명 엑센트)’ 등에 차례로 모듈을 납품했다.
납품 차종이 늘수록 베이징모비스의 매출이 늘고 있다. 2003년에 총 5만4800여대를 생산했던 베이징모비스의 실적은 15만대(2004년), 23만대(2005년), 29만대(2006년), 23만1800여대(2007년)로 늘었다. 베이징모비스는 지난 4월 제2 모듈 공장 증설을 계기로, 올해 총 38만대의 제품을 생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2공장 건설로 인해 베이징모비스의 연간 생산능력은 60만대로 늘었다. 2007년을 기준으로 가장 많이 납품한 차종은 아반떼, JM, MC 順(순)이었다.
공장 내부의 컨베이어 벨트에는 직원들이 조립해야 할 자동차 부품들이 순서대로 들어오고 있었다. 자동차 의장 라인의 직서열 정보가 베이징현대차로부터 날아온다. 직원들은 컴퓨터에 뜨는 순서에 맞춰 부품을 조립한다.
중국 직원이 컴퓨터 모니터에 나온 부품을 꺼내 장착하자, OK 사인이 떨어졌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이 국내 생산품보다 월등히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메이드 인 차이나’는 값은 싸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하고 베이징모비스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전혀 그렇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베이징모비스를 설립하면서 공장 세팅이며 특수공구, 장비를 국내와 동일하게 적용했기 때문이란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일 뿐, 품질은 국내와 똑같다는 것이 오 차장의 설명이다.
그는 “공장의 기본적인 인프라는 국내와 동일하고, 중국 직원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애로사항이 있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우리나라 사람 못지않다”며 “중국 노동자들이 시키는 일은 정확히 잘하는 편”이라고 했다.
중국 로컬업체에 에어백과 헤드램프 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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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국환 베이징모비스 이사가 회사의 향후 매출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한국 노조 간부들이 우리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노동자들이 기존에 해왔던 일 이외에 새로운 공정에 배치될 경우 회사와 협의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노조에서 ‘회사에서 계획을 세우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지 무슨 협의를 하느냐’고 되물어 한국 노조 관계자들을 머쓱하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중국 정부 지침으로 ‘공회’를 세우지만 회사의 경영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베이징모비스 모듈 변속기 공장에 근무하는 장국환 이사를 만났다. 현대차 울산공장 엔진변속기 담당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현대차 인도 공장에서 근무한 후 2003년부터 베이징 현대모비스 변속기 부문 이사를 맡고 있다.
장 이사는 “현대모비스의 전체적인 글로벌 순위가 아직 20위권에 머물러 있고, 중국에서 보쉬, 델파이 등의 부품 업체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제2 공장 증설을 계기로 경쟁자들의 시장을 본격적으로 빼앗아 올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다는 것이 확인되면 우리의 제품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이미 글로벌 부품 시스템 체계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기준에 맞는 품질을 요구하고 있고, 자신과 오랫동안 거래를 했다고 해서 특정 회사들에게만 납품을 받지는 않습니다. 가격, 품질을 고려해서 철저하게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합니다. 베이징모비스 연구소에서 중국의 특성에 맞는 제품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고, 현대차 이외에 납품처를 뚫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국 현지업체에 직접 납품하는 부품이 있습니까.
“중국의 로컬 업체에 우리가 상하이에서 생산하는 에어백과 헤드램프가 납품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의 한 업체와 ABS브레이크 시스템 납품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요. 베이징모비스에서 생산하는 부품의 품질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자부하고, 마케팅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베이징모비스와 상하이모비스에 한국어가 능통한 중국 직원들로 영업팀이 꾸려져 있습니다. 모기업인 현대차에 적기에 좋은 모듈 부품을 납품하는 것이 우리의 일차적인 목적이지만,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모색 중입니다. ‘현대차가 잘돼야 현대모비스가 잘된다’는 공식을 스스로 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차츰 가시적인 효과를 거둘 겁니다.”
그는 베이징모비스가 향후 전 세계 시장의 납품 기지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모비스에서 생산하는 변속기는 슬로바키아에, 베이징모비스중차의 일부 생산 부품은 터키 공장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모듈 사업부는 완성차와 동반자적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으나, 우리의 단일 부품은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를 납품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생산한 현대모비스 모듈을 美(미) 다임러크라이슬러에 납품해서 화제가 됐었습니다. 자체적으로 납품처를 뚫는 것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도면 한 장이 넘어가는 순간 우리의 기술이 넘어간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고민 중 하나는 기술 유출 문제다. 외자 기업을 유치하려고 열을 올렸던 중국 정부가 우리 기술력을 살금살금 빼내가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현대모비스도 예외는 아니다.
직원들의 개인 컴퓨터에 보안 장치를 하고, UBS로 다운로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각종 서류에 암호 코드를 넣고 있다.
장 이사는 “‘도면 한 장이 넘어가는 순간 우리의 기술이 넘어간다’고 직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업체에 기술을 뺏기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국내에서 핵심 부품을 곧장 들여오는 경우다. 하지만 운송료, 세금 등을 합하면 비용이 20% 이상 높아진다고 한다. 현지에서 원자재를 조달하고, 현지인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베이징모비스의 종이 한 장이 유출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을 통한 기술 유출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기술을 현지화하면서 핵심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 어려운 과제라는 게 장 이사의 얘기다.
더구나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나서서 자신들과 기술을 공유할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의지를 알 수 있는 사건이 지난해 있었다. 중국 정부가 그동안 무관세로 취급했던 수동변속기에 지난해부터 세금을 매기고 나선 것이다. 장 이사의 얘기다.
“중국 정부에서 노골적일 정도로 우리의 기술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손님을 끌어들이려고 온갖 호객행위를 해놓고, 이제는 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서서히 옥죄고 나섰다고 하면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우리가 생산한 수동변속기에 관세를 매기지 않았습니다. 무관세 혜택을 줬는데, 지난해 법을 개정하면서 ‘더이상 관세 면제 혜택을 줄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갑자기 말이 바뀌니 당황스러웠습니다. 우리의 생산제품 중에 자동변속기, 자동차 엔진은 여전히 무관세로 통과됩니다. 결국 수동변속기 같은 일반적인 기술은 다 알았으니 됐고, 모비스의 핵심인 자동변속기, 엔진 기술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이런 식의 압박이 들어올 때마다 암담한 기분이 듭니다.”
―법을 개정하면 우리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중국 정부, 중국 상공회의소 등에 하소연하는 것뿐입니다. ‘들어올 때는 甘言利說(감언이설)로 끌어들여 놓고 너무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항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핵심 부품의 기술력을 더욱 심하게 요구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중국 시장 내에서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사업 여건은 갈수록 안 좋아지는 2중고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중국정부의 전방위 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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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모비스 도장사출공장 라인 2부문에서 담당 직원이 범퍼의 도장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
“중국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국 독자 모델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겁니다. 빠른 시간 내에 세계 5위권의 자동차 메이커로 발돋움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겁니다. 베이징 시내에는 GM대우의 카피 자동차인 ‘짝퉁 마티즈’가 많이 돌아다닙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들이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우리도 과거에 포드, 미쓰비시 등으로부터 여러 생산 노하우를 배워, 자체적으로 엔진과 변속기를 우리 손으로 생산할 수 있는 수준에 올랐습니다. 우리 스스로 개척한 노하우를 중국 정부가 압박한다고 해서 쉽사리 내줄 수는 없죠.”
그는 과거 현대차 인도 공장에서 근무했던 당시에도 이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가 인도에 진출했던 1980년대 후반은 인도의 경제개발기였다고 한다.
현대차에서 처음에 인도를 둘러보고 공장 설립을 위해 여러 조건들을 내세웠을 때, 인도 정부는 무척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땅은 무상으로 제공되고, 노동력은 넘쳐 흐른다고 했다.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데려가서 일을 시키고 밥만 먹이면 된다’는 식이었다고 한다. ‘전기는 어디서 끌어서 써야 하느냐’고 물으면, ‘정부에서 발전소 지어서 지원해 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도 정부의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도 공장 근로자들의 처우 문제에 대해 꼬투리를 잡더니, 지나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등의 태도를 보인 것이다.
현대모비스가 중국 현지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베이징모비스는 요즘 짝퉁 부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짝퉁을 만드는 수법이 교묘해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장 이사의 말이다.
“베이징모비스는 모듈 부품 이외에 A/S용 부품을 생산하고 있는데 중국산 짝퉁 부품으로 인한 폐해가 정말 심각한 상황입니다. 얼마나 정교한지, 짝퉁 단속을 나간 사람이 중국산 짝퉁을 보고 우리 정품이 아니냐고 말할 정도예요. 중국인들의 손재주가 이렇게 뛰어났나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단순히 짝퉁 범퍼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기술력이 요구되는 연료필터, 핸들을 이미테이션으로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생산한 제품이라고 순정 부품까지 떡하니 붙여서 내보냅니다. 중국 공안과 합동 단속을 하고 있는데 특정 지역을 표적수사하지 않는 한 단속할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중국산 짝퉁 부품, 러시아로 수출되기도
―중국 정부에서 알고도 눈감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중국은 아직 ‘지적재산권’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내가 만들면 내 것이라는 식입니다. 문제는 중국에서 자생적으로 커지는 이런 업체들 때문에 베이징모비스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짝퉁 제품이 정상 제품의 3분의 1 가격이다 보니, 일차적으로는 대리점들이 이런 제품을 납품받아 우리의 매출이 떨어집니다. 이들로부터 물건을 사들이는 중간 대리점들은 제품의 짝퉁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거든요. 더욱 큰 문제는 내구성이 약한 짝퉁 제품을 우리 것으로 오인해 이미지에 손상을 입힌다는 점입니다. A/S 용 부품은 운전자의 안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잖습니까. 소비자들의 피해가 우리 탓인 양 될 수 있는 겁니다. 짝퉁 A/S 부품들이 러시아로 수출되고 있어 심각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결국 원 생산자인 모비스가 철저히 단속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모듈 공장 옆에 위치한 사출·도장 공장으로 이동했다. 사출·도장 공장은 모듈 1공장에서 2.3km 떨어져 있다. 베이징모비스의 각 공장은 베이징현대차를 중심으로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담당자인 박동환 부장의 안내를 받았다.
베이징에서 생산되는 완성차와 A/S용 부품은 이곳에서 색을 입힌다. 차체 외부 클리어 작업 3번, 도장 2번, 광택 2번 등 총 7번을 작업해야 도장 과정이 끝난다. 도장이 끝날 때까지의 소요시간은 평균 2시간 반에서 3시간이다.
7번 색깔 입혀 자동차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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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모비스 수동변속기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박현수 부장. |
도장 공장의 내부는 모듈 1, 2공장보다 훨씬 더웠다. 후끈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박 부장은 “7번의 도장 작업이 끝난 후, 90도의 온도에서 40분간 굽기 때문에 내부 온도가 높다”며 “차체의 색이 변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인데, 완성품 중에서 가로 세로 30cm에 작은 점이 두개 이상이면 불량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
불량품은 바코드를 붙여 불량처리 장소로 보낸다. 불량률은 사무실에 실시간으로 보고된다. A/S 부품 중에는 범퍼와 라이트가 가장 많이 나간다. 이들 부품은 다른 부품보다 10~15% 많이 생산을 한다. 지난해 중국 남부 지역에 폭설이 내렸을 때, 베이징모비스는 평소 생산량의 20%를 웃도는 A/S 용 부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현대모비스의 핵심인 베이징변속기 공장은 베이징 순의구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다. 일행은 베이징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통주구에 있는 베이징모비스 변속기 공장을 찾았다.
베이징모비스 변속기 공장은 2003년 3월, 총 20만m2(6만평)의 부지에 현대차가 60%, 현대모비스가 40%를 출자해 설립했다. 제1공장에서는 베타와 중형 변속기를, 제2공장에서는 신소형 변속기를 생산한다. 생산 능력은 각각 20만대씩 총 40만대. 이곳에서 생산된 변속기는 총 11개 차종에 탑재된다. 2004년부터 쏘나타, 엘란트라, 옵티마, 천리마 등에 얹었고, 투싼, 쎄라토, 스포티지, 뉴엑센트, 뉴프라이드 등에도 실렸다. 올해부터는 뉴아반떼와 NF쏘나타에 납품할 수동 변속기를 생산할 예정이다.
박현수 현대모비스 변속기담당 부장의 말이다.
“중국에서 운행 중인 차량의 대부분은 수동 변속기 차량입니다. 전체의 80%에 달했던 수동 변속기 차량이 최근 70%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세는 수동 변속기입니다. 수동 변속기는 운전자의 성격에 따라 선호도가 극명하게 나뉩니다. 기어를 움직일 때 부드러운 느낌을 선호하는 운전자와 딱딱한 느낌을 바라는 운전자 등 차이가 큽니다. 수동 변속기를 만드는 업체의 입장에서 어떤 유의 제품을 생산할 것이냐 하는 것은 큰 고민거리입니다.”
짝퉁 중국車들의 질주
박 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베이징변속기 공장은 변속기 원가를 절감하고 완성차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국산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알루미늄 합금과 특수강 등은 지난 2007년 1월부터 중국업체인 동북특수강 등에서 납품 받고 있다. 변속기 부품인 싱크로링 베어링 클러치실린더 부분도 청도영진의 N나-C위방대철에서 납품 받고 있으며, 이를 통해 5년 동안 약 800억원을 절감할 예정이라고 한다.
베이징모비스의 공장 투어를 끝마치고 나니,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공장 투어를 위해 아침에 출발했을 때에는 눈에 띄지 않던 중국산 짝퉁 차들이 베이징 시내를 활보하고 있었다. 중국 정부의 기술 공유 요구와 짝퉁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고충이 가슴에 와 닿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