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柄淏의 경제 레이더] ‘사회적 기업’은 시민단체들이 정부예산 타내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 월간조선

어떤 명사 앞에다 ‘사회적(social)’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보라. 그 명사는 금방 근사한 단어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들 가운데 ‘사회적 민주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적 책임’ 등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이번에는 기업이란 단어 앞에 ‘사회적’이란 형용사를 붙여 보자.’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란 단어가 등장하게 된다. “기업이면 기업이지 ‘사회적 기업’은 또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私(사)기업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公(공)기업이란 단어가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사회적 기업’이란 말은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노동부가 주도하는 ‘사회적 일자리’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적 일자리’ 사업은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수익성 등으로 인하여 시장에서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보건, 사회복지, 교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비영리단체 등에 의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을 말한다. 이 사업은 서비스 이용자가 이용요금의 일부를 부담하여 수익을 창출하거나, 민간기업과의 파트너십 등을 통해 자립을 지향한다고 한다.

노동부는 2003년 추경예산 73억원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노동부를 포함해 6개 부처가 참가하면서 예산 규모는 949억원으로 늘어났다. 2005년에는 7개 부처 1691억원, 2006년에는 8개 부처 6782억원, 작년에는 11개 부처 1조2945억원이 투입되었다.

시행된 지 4년 만에 투입 예산이 무려 177배나 증가한 사업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정말 대단한 일이다. 올해는 10개 부처가 참가해서 1조5729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시행 첫해인 2003년에 비해서 5년 만에 215배나 예산이 증가한 셈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일자리가 몇개나 될까.

2007년에는 1조2945억원을 들여 20만1059개, 올해는 1조5729억원을 투입에 22만8000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2008년에는 일자리 한개를 만들기 위해 689만원, 2007년에는 643만원, 2006년에는 606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2005년에는 243만원, 2004년에는 199만원에 불과했다. 초기 연도인 2003년에는 365만원의 보조금이 주어졌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렇게 가파르게 지원액수가 늘어나게 되는가, 그리고 1인당 보조금의 액수가 2005년과 2006년 사이에 왜 거의 2.5배나 증가했는가라는 점이다.

물론 어떤 단체들이 그 돈을 받아서 어떤 용도에 사용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단정적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사회적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를 실시했던 유럽 국가들의 경험을 보면, 이 사업이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예산낭비로 끝났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거짓말 경제학>의 저자인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은 통일 이후 동독지역의 실업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독일 정부가 1992년부터 대대적으로 실시했던 ‘사회적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인 MEGA-ABM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992년 첫해에 46만6000명을 이 프로젝트에 참가시켰고, 다음해인 1993년에는 28만8000명을 참여시키는 등 2000년까지 거의 10년 동안 매년 20만명 이상의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 다르게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1991년에 7%였던 실업률이 1992년에는 두 자리 수를 기록하게 된다. 그 뒤에는 모처럼 한 자리 수로 떨어져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다가 2003년부터 다시 10%를 넘기고 말았다. 한마디로, 독일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은 실업률을 떨어뜨리기는커녕 오히려 상승시켰고, 성장력마저 좀먹었다고 단언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회적 일자리’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처음부터 ‘사회적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시회적 일자리’ 사업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 것이 이른바 ‘사회적 기업’이란 것이다.

노동부는 종래의 ‘사회적 일자리’가 지속 가능한 안정적인 일자리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기업 육성을 위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2005년부터 관련법 제정을 추진했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이 법을 의원입법 형식으로 추진하기로 했고, 2006년 11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사회적 기업 육성법안’이 통과됐다. 우원식 열린우리당 의원의 ‘사회적 기업 지원법안’과 한나라당 진영 의원의 ‘사회적 기업 설립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을 통합한 이 법안은 2006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작년 1월 공포됐다. 진영 한나라당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사회적 기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양극화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먼저 국민의 20% 이상으로 추정되는 취업취약 계층에 대해 단순한 施惠的(시혜적) 차원의 일자리 제공에서 벗어나 직업훈련 등을 통해 스스로 일할 수 있는 자활능력을 갖추도록 해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지역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함에도 看病(간병), 보육, 급식, 재활용 등 수익성이 낮아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 사회적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여 국민의 복지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사회적 기업’은 일자리 창출과 간병 등과 같은 사회적 서비스 등 사회적 목적의 효과적인 달성을 위해 비영리단체의 성격을 지니면서도 영리 활동을 부분적으로 추구하는 단체들을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진영 의원은 성공 조건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기업의 성공 여부는 ▲스스로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서 성공할 수 있느냐 ▲훌륭한 경영지도자들을 배출할 수 있는가 ▲시민사회의 역할 등을 들고 있다.

‘사회적 기업’의 理想(이상)은 좋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세 가지 과제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만만치 않다.

노동부가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사이트(www.socialenterprise.go.kr)에 의하면 ‘사회적 기업’은 ▲NGO단독형(비영리단체가 단독으로 사회적 일자리 창출) ▲기업연계형 사업(비영리단체·기업·지자체 등이 인적·물적 자원의 출연 및 분담을 통해 사회적 일자리 창출) ▲광역형 사업(지부를 가진 비영리단체 또는 비영리단체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2개 이상의 市道(시도)에서 동일한 사업을 수행하면서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이다.

노동부는 중ㆍ장기적으로 현재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상당 부분을 ‘사회적 기업’으로 대체할 것임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기업’을 육성한다고 해서 현재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再(재)분배 성격의 예산은 일단 한번 만들어지면 없애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납세자들은 별 의미 없는 프로젝트에 계속 돈을 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기 돈이라면 그렇게 사용하지 않았을 일도 나랏돈이라면 ‘먼저 쓰는 사람이 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다.

NGO에게 정부 돈을 대주는 방편?

노동부는 ‘사회적 기업’을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수익창출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개념을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동부가 제시하는 ‘사회적 기업’의 세 가지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의 일자리, 사회서비스 제공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한다. 둘째, ‘사회적 기업’의 영업 활동 과정에서 창출된 이익은 지역공동체에 再(재)투자하여 사회적 목적에 사용한다. 셋째, ‘사회적 기업’은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사회적 기업’의 의사결정은 근로자, 서비스 수혜자, 지역 사회 인사 및 주주 등 이해관계자 참여로 민주적으로 결정한다.

위의 세 가지 가운데 둘째와 셋째는 장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핵심은 첫째 부분이다. 아무리 근사한 단어로 포장해도 필자가 ‘사회적 기업’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본 끝에 내린 결론은 “시민사회단체(NGO)가 사회적 목적, 즉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경우 일정한 요건을 만족하면 정부가 상응하는 보조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매년 상당 액수의 예산을 확보해서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 기업’에 투입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아무리 善意(선의)를 가진 활동이라 하더라도 담당 정부 부처가 일일이 보조금을 지급 받는 사람들의 적격 여부나 단체 활동의 투명성 등을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당한 액수의 돈이 배분되는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조금이란 늘 사업보다는 그 돈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벌떼처럼 모여들도록 만드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른바 경제적 논리로 합리화될 수 없는 렌트(rent)가 존재하는 경우 이를 얻기 위해 새로운 단체가 만들어지거나, 별로 필요하지 않은 새로운 사업들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존재하게 된다.

‘사회적 기업’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에 대한 노동부의 설명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노동부는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민간부문의 고용창출 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高齡化(고령화) 및 가족구조의 변화에 따라 사회서비스 수요가 증가하게 된다. 때문에 이처럼 부족한 사회서비스 공급 확대를 통해 고용창출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노동부는 “2003년부터 시행해 오던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이 재정지원에만 의존하고 단기간에 低(저)임금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데 그치기 때문에 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수익을 창출하여 이를 사회적 목적에 재투자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육성하기로 했다”고 주장한다.

歐美의 ‘사회적 기업’은 스스로 수익 창출

하지만 보조금을 받아서 제대로 운영해서 수익을 거두고 이를 재투자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는 ‘사회적 기업’이 과연 몇개나 될지, 그리고 현실적으로 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비영리단체를 경영 주체로 하면서 지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이 과연 등장할 수 있을까? ‘이익’이라는 동기가 없는 상태에서 사명감만으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제대로 된 경영자들이 배출될 수 있을까?

‘일자리 창출’은 경제 성장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유독 일자리 그 자체를 만들어 내는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회적 일자리’사업이나 ‘사회적 기업’처럼 예산을 사용해 ‘일자리 창출’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젝트들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歐美(구미)에도 ‘사회적 기업’은 존재한다. 미국·캐나다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들의 연합체인 ‘사회적 기업 연합(Social Enterprise Alliance)’은 ‘사회적 기업’을 “기업가적 활동으로 얻은 수익으로 사회적 목적 혹은 사명을 수행하는 조직 혹은 벤처”로 정의한다. ‘사회적 기업 연합’은 내년 4월 15~17일 ‘제10회 사회적 기업 서밋’을 뉴올리언스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구미의 ‘사회적 기업’은 종래 기부를 받아서 운영하던 시민단체들이 스스로 생산 활동에 종사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데 성공한 단체들을 일컫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기업’도 이런 측면을 배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사회적 기업’이 본래의 본질과 달리 납세자의 세금을 손쉽게 받아내는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익’이란 유혹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늘 그런 이익을 자신의 것으로 惡用(악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현재 일자리창출 사업으로 사용하는 예산이나 ‘사회적 기업’을 위해 사용되는 모든 예산에 대해서 엄격한 타당성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에 앞서 이런 사업들이 과연 얼마나 의미를 갖고 있는지, 예산 사용의 효율성이란 면에서 적절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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