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聖煥의 시각] ‘9월 위기설’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家計 대출 부실 등 위기 요인 잠복 : 월간조선

9월에 들어서자마자 환율과 株價(주가)가 급등락하는 등 국내 금융시장이 패닉상황에 빠져들었다. 5~6월경에 시작된 9월 위기설이 현실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9월 초에 발생한 금융시장의 불안은 말 그대로 우발적으로 발생한 ‘해프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9월 위기설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國債(국채)시장을 들여다보자. 외국인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67억 달러어치의 국채 만기가 9월 9일과 10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때 만약 외국인투자자들이 만기도래 분을 再(재)투자하지 않고 전액을 달러로 바꿔 가지고 나갈 경우 환율과 금리가 급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9월 위기설의 핵심이었다.

67억 달러는 7조원 정도에 불과한 규모다. 게다가 서울 외환시장에서 하루 외환거래규모가 600억 달러 안팎이므로 67억 달러를 바꾸려는 수요가 설사 하루에 집중된다 해도 전체 거래규모의 10% 정도밖에 안 된다. 물론 한계적인 상황에서 10%가 미치는 영향이 증폭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실제로 갑자기 달러수요가 폭증할 경우 외환당국이 20억~30억 달러만 풀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이럴 때 쓰려고 쌓아놓은 외환보유액이 아닌가.

다음으로 외환보유액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부분이다. 1000억 달러가 넘어서면서부터 외환보유액을 너무 많이 쌓아놓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현재 24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이 부족하다니 이 또한 웬말인가. 외환보유액이 8월까지 5개월 연속 줄어들면서 고점 대비 200억 달러 정도가 감소했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보유액이고 필요할 때 쓰려고 쌓아둔 외환보유액 중 일부를 외환시장 개입을 위해 매도하는 것은 어느 나라 외환당국이나 다 하는 일이다. 물론 외환시장 개입의 적절성 여부는 따로 따져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단기외채 걱정 없어

게다가 그간에 短期(단기)외채가 크게 늘어났다고 하지만 늘어난 단기외채를 들여다보면 그다지 걱정스러운 상황은 아니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는 造船(조선)업체들은 선박수주 계약시점에서 換(환)헤지를 위해 미래에 들어올 달러를 미리 내다 파는 것(선물환 매도)이 통상적이다. 이때 선물환을 매입한 은행들이 이를 상쇄하기 위해 해외로부터 단기 차입을 늘리면서 단기외채가 급증한 것이다. 선박 수출대금이 들어와 청산될 때까지 임시적으로 단기외채로 처리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다 투신권의 해외증권투자 시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선물환 거래에 따른 단기외채 증가분이 포함돼있다. 또 외국계 은행의 국내지점들이 환율과 금리격차를 노린 차익거래를 위해 본사로부터 단기로 빌려온 자금도 계정상 외채로 분류될 뿐 실질적으로는 본·지점간 거래인 만큼 채무변제에 대한 위험이 매우 낮은 부분이다.

6월말 현재 단기외채 1757억 달러 중 적어도 1000억 달러 이상은 이 같은 조선업체와 투신권의 선물환 매도와 관련이 있거나 외국계 은행 국내지점의 본·지점간 거래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우리나라의 流動(유동)외채(단기외채 1757억 달러+장기외채 중 1년 이내 만기도래분 466억 달러)는 2223억 달러에서 1200억 달러대로 떨어지고, 이에 따라 유동외채비율(=유동외채/외환보유액)도 86.1%에서 40~50%대로 낮아지게 된다. 유동부채비율이 100% 미만이면 안정적인 수준으로 보는데 그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이 국제통화기금(IMF)이 외환보유액 규모의 안정 기준으로 제시하는 月(월) 경상지급액(=상품 및 서비스 수입액 등 월 달러 소요액)의 3개월 분은 1400억 달러다. 현재의 외환보유액 2432억 달러는 경상지급액 기준 대비 거의 2배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할 수 있다.

黑字경제에서 赤字경제로

지금까지 필자의 주장을 따라오다 보면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로 온 나라가 한바탕 홍역을 치른 셈이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같은 해프닝이 벌어질 정도로 우리 경제가 허약한가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올해 우리 경제를 보면 작년과 비교해 여러 가지 면에서 흐름세가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물가는 오르고 성장은 둔화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빠져들면서 일반국민들의 체감경기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게다가 원유 등 국제원자재 가격의 급등과 미국發(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여파라는 대외적 여건의 악화가 주된 요인이기는 해도,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黑字(흑자)경제에서 赤字(적자)경제로 돌아서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점이다.

어느 기업이 10년간 계속 흑자를 보이다가 외부여건의 악화로 적자로 돌아서게 되면 임직원들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물론 제3자도 불안한 눈초리를 그 기업을 쳐다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경제도 경상수지와 자본수지가 동시에 적자로 돌아서고 純(순)채권국에서 순채무국으로 돌아서는 전환점에서 위기설이 먹혀 들었다고 할 수 있다. 상품과 서비스의 수출·입 차이인 경상수지는 작년 60억 달러의 흑자에서 올해 7월까지 78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연말까지 적자규모가 1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나가는 투자자금의 유출·입 차이인 자본수지 또한 작년 62억 달러의 흑자에서 올해 7월까지 11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다 2000년 이후 유지해온 순채권국 지위에서 3분기(7~9월) 중에는 순채무국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6월 말 현재 순채권이 27억 달러로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대외채권보다 대외채무가 더 빨리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불안한 눈초리로 쳐다보던 투자자들이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발화점 또는 방아쇠를 뒤지다가 찾아낸 것이 앞서 언급한 외국인 보유 국채의 만기가 일정시기에 대거 집중돼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다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액 중 400억 달러 정도가 도산위기에 처해있는 미국의 양대 모기지 업체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의 채권에 투자돼 있어서 이 또한 외환보유액의 유동성을 크게 깎아먹고 있다는 국내외 언론의 보도도 불안감을 고조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 바람에 주가와 환율의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주가는 급락하고 환율은 급등하면서 외환위기 직후와 비슷한 상황이 재연됐다. 동시에 금호와 두산 등 일부 그룹의 유동성 위기설까지 가세한 것도 외환위기와 대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행히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통한 양대 모기지 업체의 국유화라는 호재가 날아온 데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탈출도 없으면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을 되찾는 수순을 밟고 있다.

家計부채 부실 등 위기 요인 잠복

그렇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주가와 환율의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주가는 下向(하향)압력을, 환율은 上向(상향)압력을 받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주가의 경우 작년에 급등한 데다 미국 등 주요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기의 부진 및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여진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매도가 이어질 뿐 아니라, 특히 그간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저조해지면서 우리 경제는 물론 주식시장을 끌어내리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환율은 국내적으로는 경상수지와 자본수지가 동시 적자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은 데다 달러의 글로벌 강세현상까지 가세하고 있어 상승세를 이어갈 확률이 높은 상황이다. 주가는 1200선으로 떨어지고 환율은 달러당 1200원선으로 오르는 이른바 ‘더블 1200’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위기다, 위기다”하는 부분은 조심도 하고 또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내 처방도 하게 되므로 정작 위기는 생각지 못한 엉뚱한 곳에서 터지기 시작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그렇다면 어떤 곳이 ‘엉뚱한 곳’이 되면서 위기의 방아쇠 역할을 하게 될까. 가장 먼저 도마에 올려놓을 수 있는 부분으로는 과도한 家計(가계)부채의 부실, 부동산 시장의 급락, 급속한 경기침체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가계부채의 경우 소득대비 비율이 70%를 넘어서는 등 사상최대 수준을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자부담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이자에 더해 원금 상환이 돌아오는 주택담보대출도 늘어나고 있어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 2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이 前(전)분기 대비 마이너스(-0.2%)로 돌아선 것도 가계의 채무상환 부담 증가와 밀접한 관계에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출금리가 올라가는 가운데 주택가격까지 급락세를 보일 경우 2003~2004년에 버금가는 신용위기를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소비가 급락하면서 성장률 또한 최근의 4%대에서 2~3%대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경우 가계부채와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최근 미분양아파트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주택가격까지 급락할 경우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미분양 아파트의 급증으로 인한 중소 건설회사의 경영난이 중대형 건설회사로까지 확대되고, 아파트 건설과 관련해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제공한 저축은행의 부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도 있다. 이 경우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로 확대되면서 금융시장 불안은 물론 소비 등 실물경제까지도 가라앉게 될 것이다.

정책에 신뢰가 실려야 위기 극복 가능

급속한 경기침체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등 전 세계 경제가 둔화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국내적으로는 물가가 오르는 가운데 경기가 둔화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하에서 정부와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 경우, 또는 현 정부처럼 우선순위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경기침체 속도가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물가를 안정시키겠다고 금리를 인상하는 반면 정부는 물가보다는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減稅案(감세안)을 내놓는 엇박자도 일반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리는 단초를 만들게 될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정책에 신뢰가 실려야 그 어려움을 상대적으로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점도 정책입안자들이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다. 위기가 아니라는 말에 무게와 신뢰가 실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신뢰 받을 만한 좋은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 위기의 경고를 미리미리 귀담아 듣고 그에 대비하는 노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