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격동하는 세계 경제 비상구는 어디인가? - 불황시대 중산층의 생존법 : 월간조선

‘좋았던 시절은 가고….’ 이 땅의 보통 사람에게 이런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우리에게 언제 좋았던 시절이 있었던가’라고 되묻고 싶을 것이다. 상대적인 의미에서 보면 2000년 이후 세계 경제는 高(고)성장-低(저)물가 시대의 과실을 한껏 누렸으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한국인 역시 낮은 物價(물가)에다 저렴한 기름 값, 原資材(원자재) 가격 등 혜택을 크게 입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저성장-고물가’로 대표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당분간’이다. 얼마나 계속될지 현재로선 아무도 정확하게 집어낼 수는 없다.

경기 상황을 바라보는 전문가에 따라 다소 다른 시각을 내놓고 있지만, 이 같은 현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그리고 그 정도는 얼마나 심할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高油價(고유가), 高(고)원자재 가격의 배후에 글로벌 과잉 유동성 문제가 버티고 있음을 고려하면, 궁극적으로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의 진화는 글로벌 유동성의 회수에 대한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걸출한 경제학자인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불황은 상처 난 시장의 치유 과정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의 문제가 인위적인 통화량 팽창에 의해 촉발된 것임을 고려하면 처방 역시 통화량 팽창을 정상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올바르다. 통화량을 회수해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근본 원인을 제쳐두고 대증요법을 사용하면 상처를 오히려 덧나게 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2년 간은 불황 예상해야

이제 인플레이션의 위험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경쟁적으로 정책금리 인상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한국은행도 성장률 둔화를 다소 감수하고서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8월 7일에는 기준금리를 5%에서 5.25%까지 0.25% 인상했다.

기준금리 인상은 거의 1년 만의 일이지만 2000년 통화정책 대상이 통화량에서 금리로 바뀐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금리인상을 접한 경제주체들 사이에는 가뜩이나 불황 때문에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기업이나 가계에 이자부담을 증가시키는 조치이자, 기업들의 투자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기도 한다.

이번 금리 인상은 유동성 회수를 위한 초기 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물가 상승의 지속 여부에 따라 추가적인 이자 상승 가능성의 문은 열려있지만, 추가적인 금리 인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성장률 둔화나 경제주체들의 고통 부담에 대한 반발이나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사정을 배제하고 나면 과잉유동성 해소에 대한 논리적인 根據(근거)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이 2003년부터 시중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은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연말을 기준으로 여전히 과잉유동성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에 대해 한 보고서는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한국경제 전체로 총량 면에서 투기적 유동성이 여전히 과잉 상태에 있다. 따라서 총량 면에서는 과잉유동성을 흡수해야 한다. 그러나 과잉유동성을 계속 흡수해가면 시장금리는 당연히 상승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07년 한국 예금은행의 총 대출액이 777조 원에 달하는 반면, 총 예금액은 580조 원에 그치고 있다. 그 결과 199조 원의 과잉 대출이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 위기발생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는 우선 무엇보다 부풀대로 부푼 풍선의 바람을 빼야 한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을 왔다갔다 하는 버블의 악순환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도 버블 붕괴를 비켜간 나라는 없다.>(김광수 경제연구소, ‘최근의 시장금리 급등과 금융시장 동향 분석’, 2007년 12월 4일)

가계 부채부터 줄여야

하지만 금리 인상은 이미 하강 국면에 들어간 경기를 더욱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중소기업인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대부분이 빚을 안고 사업을 하는데 유가, 원자재 가격, 인건비, 게다가 금리까지 오르면 수천만 원의 추가 금리부담을 안고 어떻게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참고로 7월 말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395조 원이다.

세계 경제라는 시각에서 보면 다수의 전문가들은 최소 2년 정도는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불황이 계속되고, 후에도 완만한 불황이 일정 기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년 전후의 단기적인 시간 내에 경기 회복을 예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의 진행이란 과제를 앞에 두고 가계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주체들 가운데 가계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제한적이다. 기업은 불황이 오면 방어적 조치뿐만 아니라 공세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가계의 경우엔 공세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제한적이다. 가계가 불황기의 소비자를 공략할 수 있는 新(신)제품을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가계에 불황이란 주어진 하나의 외생변수일 뿐이다.

예를 들어, 40대 家長(가장)인 A씨 가족을 보자. 그는 현재와 같은 불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선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현재의 불황이 어느 정도 장기화될 것인지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가져야 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는 하되 최종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 장기화될 것인지, 아니면 단기에 그칠 것인지에 따라 불황을 극복하는 가계의 선택은 달라진다. 1년 정도 지속되는 불황이라면 응급조치로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최소 2년 이상 지속되는 현상이라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가계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수입과 지출의 균형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수입과 지출의 불일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면 재무적인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가계 부채는 그동안 꾸준히 증가해 왔다. 2002년에 439조 원이던 가계 부채는 2004년 474조7000억 원, 2006년 582조 원, 2007년 말 630조7000억 원으로, 올해 1분기 말 가계부채 총액은 640조5000억 원에 달하게 됐다. 매년 50조 원 정도씩 늘어난 셈이다.

1999년부터 2005년 사이 가계부채 증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스페인, 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을 정도로 빠르게 증가했다. 그 결과 전체 은행 가계대출의 61%가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추가적인 집값 상승을 예상하고 무리해서 아파트를 장만한 사람들이 많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투자 적기를 놓친 선택으로 인해 두고두고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계의 가처분 소득에서 가계 금융부채 비율은 2002년의 128%에서 148%까지 증가했다. 금리상승과 집값 하락이 맞물릴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이자 지급은 물론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가계가 속출할 수 있다. 당장 이번에 0.25% 금리 인상으로 가계가 추가 지급해야 할 금리 부담분이 1조5000억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지출을 줄여라

특히 2005년과 2006년 사이에 집값이 급등하는 동안 무리해서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들의 경우 원금상환 유예기간이 2008년과 2009년 사이 끝나게 되면 이자부담과 원금상환 부담이 동시에 겹치게 된다.

결국 가계 차원의 적극적인 ‘부채조정’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파트나 부동산 같은 資産(자산)의 매각을 통해 부채를 조정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불황이 장기화되고, 고금리 추세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다면, 적극적으로 부채 조정 문제를 추진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 대안은 지출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존의 소비 수준을 계속 유지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 한번 익숙해진 소비 수준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각각의 형편에 맞춰 과감하게 손을 대야 한다.

불황이 닥칠 때마다 무엇이든 아끼자는 캠페인이 벌어진다. 그러나 개인에게는 지출을 절약해서 좋을지 모르지만 국가경제 시각에서 바라보면, 적정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내수 경기를 필요 이상으로 침체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것이 이른바 ‘절약의 역설’이다.

가장 공격적인 불황 대책은 소득을 늘리는 일과 소득원 자체를 다양화하는 일이다. 그러나 보통의 직장인에게 이는 그다지 가능성이 높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작은 규모라도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좀 더 위기의식을 갖고 본업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