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1956년 서울 출생.
⊙ 보성고·서강대 독문과 졸업, 독일 괴팅겐대 경제학 박사.
⊙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경제실, 現 자원T/F 팀장.
⊙ 1956년 서울 출생.
⊙ 보성고·서강대 독문과 졸업, 독일 괴팅겐대 경제학 박사.
⊙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경제실, 現 자원T/F 팀장.
- BMW 뮌헨 공장에서 자동차를 조립중인 근로자들. 최근 독일은 실업률을 크게 낮추는 데 성공, 경제가 순항하고 있다.
2007년 중반 이후 세계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미국 금융시장 불안,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등에 따른 글로벌 인플레이션, 곡물가격 폭등으로 인한 식량위기 등 닥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앞날 역시 불투명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근본 원인인 미국의 주택시장 침체 현상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세계경기가 둔화 내지 침체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개별국가의 경제정책적 수단도 한계에 봉착해 있다. 개별국가간의 경제환경도 각기 달라 국제공조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유독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국가가 독일이다. 세계경제 불안에 따라 유로권 경제도 그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유로지역의 주식시장이 침체되고 있는 데다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있으며, 미국의 경기 둔화에 따른 수입수요 감소와 유로화 강세로 인해 수출도 위축되고 있다.
미국 부동산 시장에 투자한 유로권의 일부 금융기관이 손실을 기록하는 등 금융시장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8년 3월 말 현재 유럽계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비우량 담보대출 관련 자산은 약 2790억 달러, 이로 인한 손실규모는 123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주요국 대부분이 2008년 1분기에는 부진을 보였다. 프랑스는 0.6%, 이탈리아는 0.1% 성장에 그쳤으며, 포르투갈은 마이너스 0.2% 성장을 보였다. 반면 독일 경제는 2008년 1분기 중 1.5%의 성장률을 기록, 2007년 4분기 0.3%의 성장률을 크게 상회하는 성과를 거둬 주목을 받고 있다.
실업자 수 크게 줄어
2003년 마이너스 성장률(-0.3%)을 보였던 독일은 2004년 1.1%의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된 후 2006년 2.9%, 2007년 2.5%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독일 경제가 1990년대 통일 후유증으로 ‘유럽의 病者(병자)’로 조롱 받던 과거 상황에서 완전히 탈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008년 들어서도 세계경제 불안이라는 대외환경 악화에 악영향을 받아 경제지표가 약화되고는 있지만,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독일의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은 두 자리 수의 실업률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제조업 생산 호조에 따라 실업자 수가 크게 감소하면서 노동시장 환경이 크게 개선됐다.
2005년 486만 명이던 독일의 실업자 수는 2007년 377만 명으로 감소했고, 2008년 4월 현재 341만4000명으로 1년 전에 비해 56만3000명, 2년 전에 비해 130만 명이 감소했다. 2008년 말까지는 실업자 수가 321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10%를 넘던 실업률이 2007년 8.7%로 하락했고, 2008년 중에는 7.4%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또 2000년대 초반 GDP 대비 3%를 넘어섰던 재정수지 적자로 인해 유럽연합(EU)의 ‘안정 및 성장 협약’을 위반하며 고전했던 독일은 건전 재정 운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2006년 재정수지는 GDP 대비 1.6%의 적자, 2007년에는 재정수지 균형을 달성했다. 2008년에는 경기 둔화를 방지하기 위한 재정 지출 확대로 적자를 보이겠지만, 그 비율은 GDP 대비 0.3% 이내로 상당히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5년간 세계 제1위 수출국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004년 1029억 유로에서 2007년 1842억 유로로 꾸준히 늘고 있다.
반면 2% 이내의 안정적이던 소비자 물가는 2007년 말부터 3%대를 초과하며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2007년 소비자물가는 2.3% 상승했으며 2008년 들어서는 3%를 넘어 경제 운용에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2008년 중 1.8% 성장, 2009년에는 1.4%의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연평균 1.5% 성장의 호조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업자 수는 2009년에는 300만 명 이하 수준으로 감소해 노동시장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동안 독일 경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동서독 지역간의 경제성장률 격차도 꾸준히 감소해 2007년 말 기준으로 1%포인트 이내로 줄었다. 물론 동서독 지역간의 경제력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1990년대 초반 統獨(통독) 효과로 舊(구) 동독지역의 경제성장률이 서독지역의 두 배를 넘어섰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그 효과가 서서히 소멸되기 시작했다. 구 동독지역의 경제성장세가 약화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은 구 동독 지역이 서독 수준의 약 70%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으며, 노동생산성도 20% 정도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 따라 2006년 말 서독지역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3595유로, 동독지역은 2679유로 수준이다.
실업률의 경우 구 동독지역의 실업률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2007년 말 현재 14.4%로 서독 지역 실업률의 두 배 수준으로 매우 높은 실정이다. 이 때문에 동서독 지역 주민간의 반목과 갈등이 매우 높아 양 지역간의 사회통합 측면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서독간의 경제력 격차가 상당부분 해소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경제가 호조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제조업 분야의 탁월한 수출 경쟁력, 건실한 은행시스템과 주택경기 안정세, 지난 몇 년간에 걸쳐 추진되어 온 적극적인 경제 사회 개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은 5년 연속 세계 1위의 수출국 위상을 지속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2003년 이후 세계 최대 수출국의 위상을 확보한 독일은 2007년 1조3272억 달러 수출을 실현하여 중국의 1조2196억 달러, 미국의 1조1626억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2007년 독일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9.7%로 미국(8.5%), 일본(5.1%)의 시장점유율을 따돌렸다.
독일 기업들 경쟁력 크게 향상
최근에는 미국경기 둔화와 유로화 강세로 對(대) 미국 수출 비중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러시아 등 자원부국과의 교역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흥시장 및 자원부국에 대한 수출 품목이 기계 장비, 자동차 등 자본재 및 투자재에 집중되어 있어 경기변동에 따른 악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EU 域內(역내) 수출 비중이 높은 데다 독일의 물가상승률이 역내 국가에 비해 낮아 독일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유지되고 있다. 즉, 독일 수출의 75%를 유로화로 결제하고 있는 데다, 지난 수년간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억제에 힘입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EU의 동구 확대 이후 독일 제조업체들은 동유럽으로 생산 네트워크를 확대, 동유럽을 아웃소싱 기지로 활용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뮌헨 소재의 IFO 연구소가 매년 정기적으로 조사 발표하는 제조업 분야의 사업 환경도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IFO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독일 기업들은 대부분 ‘현재는 물론 향후 6개월간 국내외 사업 환경이 지속적으로 좋을 것으로 전망하며 고용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2008년 중에 이들 기업 중 68%가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는 응답을 했으며, 26%가 투자 축소, 6%는 현재의 투자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독일의 금융산업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일부 금융기관이 손실을 입는 등 부정적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의 즉각적인 공적 자금 투입 및 금융기관의 자구 노력으로 심각한 위기는 벗어났다. 독일 정부는 모기지 관련 부실채권으로 파산위기에 몰린 독일의 IKB은행과 작센 주립은행에 신속하게 公的(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 이들 금융기관의 회생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금융기관들도 자구 노력을 기울였다. 독일 최대 규모의 은행인 도이체 방크는 부실자산을 축소하기 위해 LBO(Leveraged Buyout: 다른 기업을 인수할 때 대상기업의 전체 주식이나 전체 자산 매입에 소요되는 자금의 대부분을 외부로부터 타인자본을 차입해 인수하는 방식) 관련 채권 등 약 50억 달러 규모의 부실채권을 매각하는 등의 자구책을 강구했다.
독일의 다른 금융기관들 역시 대출규모 축소 등 보수적인 운용을 강화해 부실이 확대되는 것을 차단했다. 이에 따라 가계대출 잔액이 감소하고, 기업대출 비율이 하락했으며 반면에 저축률이 증가하면서 신용경색이 확대될 수 있는 소지를 없앴다.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주택경기 안정
독일경제가 안정적 성장을 구가하는 또 다른 원인은 미국은 물론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주택경기 침체로 경기가 위축되고 있는 반면, 독일의 주택시장은 상당 기간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택경기 둔화 가능성 자체가 낮다는 점이다. 유럽 주요국의 주택가격 추이를 보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아일랜드가 188%, 영국 118%, 스페인 102%, 프랑스가 99% 상승한 반면, 독일의 주택가격은 14% 하락했다.
이런 추세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주택경기 급락이 독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사실상 거의 없다.
메르켈 정부는 집권 후 슈뢰더 정부의 개혁정책 ‘아젠다(Agenda) 2010’을 확대 발전시킨 경제·사회 개혁을 적극 추진했다. 그중에서도 노동시장 개혁, 연금 및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가장 큰 성과를 이루고 있다.
노동시장 개혁은 실업자의 권리를 축소하고 의무를 강화하는 등 실업자의 자구노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실업수당 기간을 최고 32개월에서 12개월로 축소한 데다, 실업수당의 물가연동제를 폐지했으며, 해고보호면제 적용 대상기업을 5인 기업에서 10인 이하 기업으로 확대했다. 신규 채용자의 경우 해고 보호를 6개월 동안 면제하는 등 슈뢰더 정권에 비해 강도 높은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했다.
연금 및 의료보험 등 사회정책적 분야도 수혜의 폭을 줄이고 수혜자의 의무를 강화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연금수령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상향 조정했고, 연금보험료율을 19.5%에서 19.9%로 인상하고 의약품 자기부담금을 확대했다. 메르켈 정부는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과 이민자들에 대한 노동을 장려하고,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사회보장을 유지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동시에 메르켈 정부는 재정 건전화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석탄보조금 폐지를 비롯해 각종 보조금을 삭감했으며, 2007년에는 부가가치세율을 16%에서 19%로 인상해 재정 수입을 확대함으로써 균형재정을 추구했다.
개혁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주목할 점은 親(친)기업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기존의 사회적 요소도 함께 배려함으로써 개혁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낸 점이다. 우선 법인세를 39%에서 30%로 인하하는 등 기업세법을 개정했다. 이와 동시에 R&D 투자활동을 장려하고 임금 부대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제반 지원책을 제공하는 등 기업의 경영활동을 측면 지원했다.
메르켈 수상은 동시에 지멘스의 뇌물수수 사건, 폴크스바겐의 세금 탈루 등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며 기업의 투명성 제고와 함께 사회적 책임 및 윤리를 강조했다.
개혁적 親기업 정책 추진
기업들도 정부의 개혁정책에 호응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 경영성과를 높였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한 결과 2003년 연평균 3.3% 수준에 불과하던 기업의 이익률이 2004~2007년에는 연평균 8.3%로 확대됐다. 기업경쟁력이 강화된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모두 선진국 시장은 물론 브릭스(BRICs) 시장에서 높은 경영성과를 지속하고 이를 통해 투자 활동을 더욱 확대하여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 고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대외교역 비중이 가장 높은 독일의 수출경쟁력은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 노력에 기인한다. 독일 기업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함과 동시에 R&D 투자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였다. 특히 제품경쟁력을 극대화해 세계화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다.
한국 경제는 대외교역 비중이 매우 높아 대외환경에 경기가 크게 좌우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우리 기업 역시 수출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주력하고는 있지만, R&D 투자 등을 더욱 확대해 제품경쟁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 독일의 금융시스템과 주택시장이 안정돼 있어 국제금융시장 불안의 여파를 최소화한 점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즉 외부환경 변화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을 신속하고도 적극적인 정부 개입을 통해 최소화하는 것이 금융시장 안정을 이루는 첩경이다.
아울러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어야 금융시장도 안정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또 부동산 경기가 호조세를 보이는 것을 넘어 거품이 발생될 경우 금융시장의 부실이 확대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실제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통해 경기를 진작시킬 경우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경기에 독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어 경기가 위축되고 있지만, 부동산 거품이 해소되는 과정을 조정해 그 충격을 최소화시켜야 차후 경기 회복세에 탄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메르켈 정부는 출범 초기 英美(영미)식 경제체제를 지지했으나, 최근 독일식 경제체제인 사회적 시장경제체제의 장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메르켈은 사회적 시장경제체제의 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사회복지 관련 제도를 수정 보완하면서도, 근본이념인 사회결속과 평등을 중시하고 독일 사회 내의 협력 체제, 즉 강자와 약자간의 협의를 통한 국가 운영체제를 중시했다.
메르켈은 기업들의 부정부패를 강도 높게 비판함과 동시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친기업 정책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복지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사회보장보험제도를 개선함으로써 정부의 재정 부담을 완화하고, 근로자의 자기책임, 즉 취업능력 제고를 요구했다.
이러한 메르켈의 정책은 우리에게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창출해 일자리를 늘리고, 동시에 근로자의 질을 높여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제조업 비중이 높기 때문에 금융시장의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와 동시에 최근의 국제금융시장 불안은 지나친 위험을 감수하는 은행권의 경영행태에 기인한다고 지적하며 영미식 금융시스템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뿐만이 아니다. 유럽 내에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에 대적할 만한 신용평가회사를 출범시키고, 동시에 은행에 대한 투명성과 명확한 제도 구축 등을 촉구했다. 이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유로화의 위상에 걸맞은 대접을 요구한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국내 경제적 업적과 함께 국제 사회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유럽의 주요 정치지도자로 부상했고, 동시에 독일의 위상을 치켜세워 국가경쟁력을 한층 높이는 효과까지 이끌어냈다.●
앞날 역시 불투명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근본 원인인 미국의 주택시장 침체 현상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세계경기가 둔화 내지 침체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개별국가의 경제정책적 수단도 한계에 봉착해 있다. 개별국가간의 경제환경도 각기 달라 국제공조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유독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국가가 독일이다. 세계경제 불안에 따라 유로권 경제도 그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유로지역의 주식시장이 침체되고 있는 데다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있으며, 미국의 경기 둔화에 따른 수입수요 감소와 유로화 강세로 인해 수출도 위축되고 있다.
미국 부동산 시장에 투자한 유로권의 일부 금융기관이 손실을 기록하는 등 금융시장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8년 3월 말 현재 유럽계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비우량 담보대출 관련 자산은 약 2790억 달러, 이로 인한 손실규모는 123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주요국 대부분이 2008년 1분기에는 부진을 보였다. 프랑스는 0.6%, 이탈리아는 0.1% 성장에 그쳤으며, 포르투갈은 마이너스 0.2% 성장을 보였다. 반면 독일 경제는 2008년 1분기 중 1.5%의 성장률을 기록, 2007년 4분기 0.3%의 성장률을 크게 상회하는 성과를 거둬 주목을 받고 있다.
실업자 수 크게 줄어
2003년 마이너스 성장률(-0.3%)을 보였던 독일은 2004년 1.1%의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된 후 2006년 2.9%, 2007년 2.5%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독일 경제가 1990년대 통일 후유증으로 ‘유럽의 病者(병자)’로 조롱 받던 과거 상황에서 완전히 탈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008년 들어서도 세계경제 불안이라는 대외환경 악화에 악영향을 받아 경제지표가 약화되고는 있지만,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독일의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은 두 자리 수의 실업률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제조업 생산 호조에 따라 실업자 수가 크게 감소하면서 노동시장 환경이 크게 개선됐다.
2005년 486만 명이던 독일의 실업자 수는 2007년 377만 명으로 감소했고, 2008년 4월 현재 341만4000명으로 1년 전에 비해 56만3000명, 2년 전에 비해 130만 명이 감소했다. 2008년 말까지는 실업자 수가 321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10%를 넘던 실업률이 2007년 8.7%로 하락했고, 2008년 중에는 7.4%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또 2000년대 초반 GDP 대비 3%를 넘어섰던 재정수지 적자로 인해 유럽연합(EU)의 ‘안정 및 성장 협약’을 위반하며 고전했던 독일은 건전 재정 운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2006년 재정수지는 GDP 대비 1.6%의 적자, 2007년에는 재정수지 균형을 달성했다. 2008년에는 경기 둔화를 방지하기 위한 재정 지출 확대로 적자를 보이겠지만, 그 비율은 GDP 대비 0.3% 이내로 상당히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5년간 세계 제1위 수출국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004년 1029억 유로에서 2007년 1842억 유로로 꾸준히 늘고 있다.
반면 2% 이내의 안정적이던 소비자 물가는 2007년 말부터 3%대를 초과하며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2007년 소비자물가는 2.3% 상승했으며 2008년 들어서는 3%를 넘어 경제 운용에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2008년 중 1.8% 성장, 2009년에는 1.4%의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연평균 1.5% 성장의 호조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업자 수는 2009년에는 300만 명 이하 수준으로 감소해 노동시장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동안 독일 경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동서독 지역간의 경제성장률 격차도 꾸준히 감소해 2007년 말 기준으로 1%포인트 이내로 줄었다. 물론 동서독 지역간의 경제력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1990년대 초반 統獨(통독) 효과로 舊(구) 동독지역의 경제성장률이 서독지역의 두 배를 넘어섰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그 효과가 서서히 소멸되기 시작했다. 구 동독지역의 경제성장세가 약화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은 구 동독 지역이 서독 수준의 약 70%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으며, 노동생산성도 20% 정도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 따라 2006년 말 서독지역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3595유로, 동독지역은 2679유로 수준이다.
실업률의 경우 구 동독지역의 실업률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2007년 말 현재 14.4%로 서독 지역 실업률의 두 배 수준으로 매우 높은 실정이다. 이 때문에 동서독 지역 주민간의 반목과 갈등이 매우 높아 양 지역간의 사회통합 측면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서독간의 경제력 격차가 상당부분 해소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경제가 호조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제조업 분야의 탁월한 수출 경쟁력, 건실한 은행시스템과 주택경기 안정세, 지난 몇 년간에 걸쳐 추진되어 온 적극적인 경제 사회 개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은 5년 연속 세계 1위의 수출국 위상을 지속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2003년 이후 세계 최대 수출국의 위상을 확보한 독일은 2007년 1조3272억 달러 수출을 실현하여 중국의 1조2196억 달러, 미국의 1조1626억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2007년 독일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9.7%로 미국(8.5%), 일본(5.1%)의 시장점유율을 따돌렸다.
독일 기업들 경쟁력 크게 향상
최근에는 미국경기 둔화와 유로화 강세로 對(대) 미국 수출 비중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러시아 등 자원부국과의 교역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흥시장 및 자원부국에 대한 수출 품목이 기계 장비, 자동차 등 자본재 및 투자재에 집중되어 있어 경기변동에 따른 악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EU 域內(역내) 수출 비중이 높은 데다 독일의 물가상승률이 역내 국가에 비해 낮아 독일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유지되고 있다. 즉, 독일 수출의 75%를 유로화로 결제하고 있는 데다, 지난 수년간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억제에 힘입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EU의 동구 확대 이후 독일 제조업체들은 동유럽으로 생산 네트워크를 확대, 동유럽을 아웃소싱 기지로 활용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뮌헨 소재의 IFO 연구소가 매년 정기적으로 조사 발표하는 제조업 분야의 사업 환경도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IFO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독일 기업들은 대부분 ‘현재는 물론 향후 6개월간 국내외 사업 환경이 지속적으로 좋을 것으로 전망하며 고용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2008년 중에 이들 기업 중 68%가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는 응답을 했으며, 26%가 투자 축소, 6%는 현재의 투자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독일의 금융산업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일부 금융기관이 손실을 입는 등 부정적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의 즉각적인 공적 자금 투입 및 금융기관의 자구 노력으로 심각한 위기는 벗어났다. 독일 정부는 모기지 관련 부실채권으로 파산위기에 몰린 독일의 IKB은행과 작센 주립은행에 신속하게 公的(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 이들 금융기관의 회생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금융기관들도 자구 노력을 기울였다. 독일 최대 규모의 은행인 도이체 방크는 부실자산을 축소하기 위해 LBO(Leveraged Buyout: 다른 기업을 인수할 때 대상기업의 전체 주식이나 전체 자산 매입에 소요되는 자금의 대부분을 외부로부터 타인자본을 차입해 인수하는 방식) 관련 채권 등 약 50억 달러 규모의 부실채권을 매각하는 등의 자구책을 강구했다.
독일의 다른 금융기관들 역시 대출규모 축소 등 보수적인 운용을 강화해 부실이 확대되는 것을 차단했다. 이에 따라 가계대출 잔액이 감소하고, 기업대출 비율이 하락했으며 반면에 저축률이 증가하면서 신용경색이 확대될 수 있는 소지를 없앴다.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주택경기 안정
독일경제가 안정적 성장을 구가하는 또 다른 원인은 미국은 물론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주택경기 침체로 경기가 위축되고 있는 반면, 독일의 주택시장은 상당 기간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택경기 둔화 가능성 자체가 낮다는 점이다. 유럽 주요국의 주택가격 추이를 보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아일랜드가 188%, 영국 118%, 스페인 102%, 프랑스가 99% 상승한 반면, 독일의 주택가격은 14% 하락했다.
이런 추세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주택경기 급락이 독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사실상 거의 없다.
메르켈 정부는 집권 후 슈뢰더 정부의 개혁정책 ‘아젠다(Agenda) 2010’을 확대 발전시킨 경제·사회 개혁을 적극 추진했다. 그중에서도 노동시장 개혁, 연금 및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가장 큰 성과를 이루고 있다.
노동시장 개혁은 실업자의 권리를 축소하고 의무를 강화하는 등 실업자의 자구노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실업수당 기간을 최고 32개월에서 12개월로 축소한 데다, 실업수당의 물가연동제를 폐지했으며, 해고보호면제 적용 대상기업을 5인 기업에서 10인 이하 기업으로 확대했다. 신규 채용자의 경우 해고 보호를 6개월 동안 면제하는 등 슈뢰더 정권에 비해 강도 높은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했다.
연금 및 의료보험 등 사회정책적 분야도 수혜의 폭을 줄이고 수혜자의 의무를 강화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연금수령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상향 조정했고, 연금보험료율을 19.5%에서 19.9%로 인상하고 의약품 자기부담금을 확대했다. 메르켈 정부는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과 이민자들에 대한 노동을 장려하고,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사회보장을 유지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동시에 메르켈 정부는 재정 건전화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석탄보조금 폐지를 비롯해 각종 보조금을 삭감했으며, 2007년에는 부가가치세율을 16%에서 19%로 인상해 재정 수입을 확대함으로써 균형재정을 추구했다.
개혁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주목할 점은 親(친)기업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기존의 사회적 요소도 함께 배려함으로써 개혁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낸 점이다. 우선 법인세를 39%에서 30%로 인하하는 등 기업세법을 개정했다. 이와 동시에 R&D 투자활동을 장려하고 임금 부대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제반 지원책을 제공하는 등 기업의 경영활동을 측면 지원했다.
메르켈 수상은 동시에 지멘스의 뇌물수수 사건, 폴크스바겐의 세금 탈루 등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며 기업의 투명성 제고와 함께 사회적 책임 및 윤리를 강조했다.
개혁적 親기업 정책 추진
기업들도 정부의 개혁정책에 호응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 경영성과를 높였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한 결과 2003년 연평균 3.3% 수준에 불과하던 기업의 이익률이 2004~2007년에는 연평균 8.3%로 확대됐다. 기업경쟁력이 강화된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모두 선진국 시장은 물론 브릭스(BRICs) 시장에서 높은 경영성과를 지속하고 이를 통해 투자 활동을 더욱 확대하여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 고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대외교역 비중이 가장 높은 독일의 수출경쟁력은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 노력에 기인한다. 독일 기업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함과 동시에 R&D 투자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였다. 특히 제품경쟁력을 극대화해 세계화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다.
한국 경제는 대외교역 비중이 매우 높아 대외환경에 경기가 크게 좌우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우리 기업 역시 수출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주력하고는 있지만, R&D 투자 등을 더욱 확대해 제품경쟁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 독일의 금융시스템과 주택시장이 안정돼 있어 국제금융시장 불안의 여파를 최소화한 점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즉 외부환경 변화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을 신속하고도 적극적인 정부 개입을 통해 최소화하는 것이 금융시장 안정을 이루는 첩경이다.
아울러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어야 금융시장도 안정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또 부동산 경기가 호조세를 보이는 것을 넘어 거품이 발생될 경우 금융시장의 부실이 확대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실제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통해 경기를 진작시킬 경우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경기에 독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어 경기가 위축되고 있지만, 부동산 거품이 해소되는 과정을 조정해 그 충격을 최소화시켜야 차후 경기 회복세에 탄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메르켈 정부는 출범 초기 英美(영미)식 경제체제를 지지했으나, 최근 독일식 경제체제인 사회적 시장경제체제의 장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메르켈은 사회적 시장경제체제의 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사회복지 관련 제도를 수정 보완하면서도, 근본이념인 사회결속과 평등을 중시하고 독일 사회 내의 협력 체제, 즉 강자와 약자간의 협의를 통한 국가 운영체제를 중시했다.
메르켈은 기업들의 부정부패를 강도 높게 비판함과 동시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친기업 정책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복지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사회보장보험제도를 개선함으로써 정부의 재정 부담을 완화하고, 근로자의 자기책임, 즉 취업능력 제고를 요구했다.
이러한 메르켈의 정책은 우리에게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창출해 일자리를 늘리고, 동시에 근로자의 질을 높여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제조업 비중이 높기 때문에 금융시장의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와 동시에 최근의 국제금융시장 불안은 지나친 위험을 감수하는 은행권의 경영행태에 기인한다고 지적하며 영미식 금융시스템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뿐만이 아니다. 유럽 내에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에 대적할 만한 신용평가회사를 출범시키고, 동시에 은행에 대한 투명성과 명확한 제도 구축 등을 촉구했다. 이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유로화의 위상에 걸맞은 대접을 요구한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국내 경제적 업적과 함께 국제 사회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유럽의 주요 정치지도자로 부상했고, 동시에 독일의 위상을 치켜세워 국가경쟁력을 한층 높이는 효과까지 이끌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