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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탐구

지휘부 와해된 軍 중심 잡고 있는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

‘정무적 판단’ 싫어하는 유연한 원칙주의자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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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정부에서 국방비서관 거치면 대장 진급할 수 있었지만, ‘정권이 군 존중 않는다’ 생각해 거절
⊙ “권위의식 없고 자기 주관 뚜렷하며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진 군인”(육사 후배)
⊙ “尹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과정서 차관이 지침 내놔 55경비단장에게 큰 힘”
⊙ 맹호부대 사단장 시절 1월 1일이면 전 장비 동원해 기동훈련
⊙ 尹 대선 캠프 출신 아님에도 능력 인정받아 신원식 장관 추천으로 차관 돼
⊙ 김선호 차관이 차기 장관? 주변에선 “미련 없이 떠날 사람”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이 설날인 1월 29일 오전 9사단 강안경계부대를 방문해 작전 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국방부/뉴시스
  12·3 비상계엄으로 육군 주요 지휘관들이 구속됐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육군 대장·계엄 당시 계엄사령관, 2024년 12월 12일 직무정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이상 중장), 문상호 정보사령관(소장) 등이다. 박 총장을 제외한 사령관 4인은 지난 1월 20일 보직해임됐다.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난 직후인 2024년 12월 5일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사표를 내고 자리를 떴다. 김선호 차관(2023년 10월 19일 임명)이 장관 직무대행으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날 국회에서는 국방위원회 제8차 전체회의가 열렸다. 회의에 출석한 김선호 차관은 한눈에 봐도 현 상황이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평소 무표정인 김 차관이지만 이날 그의 모습을 본 육사 출신 후배 A씨는 “얼굴에서 깊은 분노가 느껴진다. 매우 화가 난 표정”이라고 했다. A씨는 김 차관이 수도기계화보병사단(맹호부대) 사단장을 할 때 그 밑에서 참모를 지냈다.
 
  1964년생인 김 차관(육사 43기)은 포병 병과 출신이다. 맹호부대 포병대대장을 비롯해 육군본부 전략기획과장, 22사단 부사단장, 합동참모본부(합참) 전력기획부장을 거쳐 중장으로 진급한 뒤 수도방위사령관을 지냈다. 전력(戰力·군사력 건설)과 전략(戰略·군사력 운용) 분야를 모두 경험했다. 군 출신 인사들은 김 차관에 대해 “전력통에 가깝지만 전략도 다뤘기에 국방 현안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 했다.
 
  김 차관은 중장 첫 보직이었던 수도방위사령관을 1년만 하고는 전역을 해버렸다. 통상 중장급 장군은 대장 진급을 하지 못하더라도 3~4년은 복무할 수 있다.
 
 
  “본질을 중요시하는 분”
 
  김선호 차관은 계엄 사태가 벌어지기 전만 해도 일부 민주당 의원이 주장하는 ‘비상계엄설(說)’에 대해 “(망상이자) 고도의 정치적 선동”(2024년 9월 10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계엄이 실제 선포되자 “국민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개인적으로 참담하다. 매우 슬프고 괴롭다. 책임을 통감하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12월 5일)고 했다. 이어 “계엄에 군 병력이 동원되는 데 근본적으로 반대해 왔고, 거기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A씨는 “계엄으로 인해 차관이 가장 불편하고 힘든 일을 떠맡게 됐다”며 “김 차관은 군의 정치적 개입에 지나칠 정도로 비판적인 분”이라고 했다.
 
  “제가 함께 복무했던 군인 중, 군인의 ‘정치적 행위’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분이 김선호 차관이었습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모습이나, ‘정무적 판단’을 중시하는 군인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이었죠. 하지만 병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시스템이나 절차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부대에서 환자가 발생하면 군 의료 체계를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최우선으로 헬기를 불러 가장 가까운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이송부터 했습니다. 덕분에 병사 3명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다른 부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아마 그 병사는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김 차관은 본질을 중시하는 분입니다.”
 
  통상 장병을 민간 병원으로 후송하려면 의무대, 군병원 등을 거쳐야 한다. 시간이 지체돼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맹호부대에서는 위급한 환자가 생기면 군의관 판단 후 헬기부터 대기시켰다. 참모 시절 A씨도 새벽 1시에 발생한 환자를 1시간 반 만에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 살린 일이 있다. 빠른 대응으로 칭찬을 받으리라 내심 기대했는데 오히려 당시 사단장이던 김 차관에게 혼났다고 했다. 더 빨리 이송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김 차관은 A씨에게 “당신 아들이 그 상황이었다고 생각해 보라. 아들을 살리기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택해야 한다. 무슨 보고나 절차 이런 걸 따지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유연한 원칙주의자’
 
  A씨는 “김선호 차관은 고리타분한 원칙주의자가 아닌 ‘유연한 원칙주의자’”라며 “이번 계엄 사태 당시 군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정무적 판단’이라는 명목으로 대충 덮을 분이 절대로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위중한 시기에 이런 분이 장관 대행을 하고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지금 그 자리에서 가장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 차관 본인일 것”이라고 했다.
 
  김 차관은 군의 정치 개입뿐만 아니라 정치가 군에 개입하는 행태에도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수방사령관을 1년 만에 그만둔 배경이 됐다. 김 차관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5월 중장으로 진급해 수방사령관이 됐으나 2020년 5월 물러났다. 표면상은 ‘건강 상의 이유’였지만 이면은 당시 정부가 군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군 장악력을 높이고자 청와대 국방비서관(국방개혁비서관)에 고위급 장성을 임명했다. 그전까지 국방비서관엔 통상 준장·소장급이 임명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준장급을 국방비서관에 임명하고 소장으로 진급시켜 내보냈다. 박근혜 정부 출신 국방비서관은 모두 소장으로 군 생활을 끝냈다. 반면 문재인 정권 초기에는 소장급 장성을 국방비서관에 임명하고 군단장(중장)으로 진급시켜 내보냈다. 이렇게 5명이 거쳐간 뒤 정권 후반에는 중장급을 국방비서관에 임명했다. 당시 김선호 수방사령관에게 국방비서관 제의가 왔다. 김유근(육사 36기·예비역 중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추천했다. 하지만 김선호 차관은 자신이 청와대 비서관으로 가면 군 위상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국방비서관 자리를 고사하고 ‘건강’을 핑계로 자진 전역을 신청했다. 결국 국방비서관에는 김 차관의 육사 동기인 안준석 5군단장이 임명됐고, 그는 4개월 만에 대장으로 진급했다.
 

  김 차관의 지인 B씨는 “진급 욕심이 있었다면 당연히 청와대로 가지 않았겠나. 그걸 몰랐겠나. 하지만 김선호 차관은 국방비서관은 중장이 갈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 차관은 2020년 5월 수방사령관에서 물러나 정책연구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책연구관은 보직이 없는 고위 장성이 전역을 앞두고 3개월 동안 대기하는 자리다. 전역하자마자 여의도에 사무실을 내고 ‘국방개혁전략포럼(MIRE)’을 만들었다. 포럼을 만든 이유는 “미래 국방 건설을 위한 연구 및 교육, 자문 활동을 하며 우리 군이 발전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차관이 포럼을 만들자,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정치권 인사들이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파를 떠나 한국군의 발전을 중요하게 생각한 김 차관은 실제로 일부 정치인과 교류했다고 전해진다. B씨는 “그렇다고 김 차관이 자리를 얻고자 이곳저곳에 줄을 댄 건 아니다. 국방에 대한 관심과 애정 때문에 실용적인 관점을 가졌을 뿐”이라고 했다. 자신이 구상한 국방 정책이 실현되는 게 중요하지, 그게 어느 정당에 기반을 두는지는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계엄 사태로 국회에 불려온 고위 장성들을 향해 야당 의원들이 고성을 내며 윽박지르면서도 김 차관에 대해서는 별다른 싫은 소리를 하지 않은 데는 이러한 인연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정된다.
 
  김 차관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캠프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차관이 된 건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이 김 차관의 전문성과 역량을 높게 보고 대통령실에 추천했기 때문이다.
 
 
  “장교가 하기 싫은 건 사병도 하기 싫다”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이 지난 1월 23일 혹한기 훈련 현장인 승진훈련장을 방문해 장병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김선호 차관이 중령일 때 그 밑에서 소령으로 근무한 C씨는 김 차관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실력 있는 군인이었고 운동도 좋아했습니다. 또 다정했죠.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고 (사고가) 유연했어요. 권위의식이 없어 편하게 함께 일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 생각은 분명해서, 다른 사람들은 몸을 사릴 때도 본인 의사를 밝혔죠. 김 차관이 육군본부에서 처장을 할 때 전 부서원을 데리고 야유회를 간 게 기억에 남아요. 당시 육군본부에선 다들 일만 했지 물놀이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분입니다.”
 
  김 차관이 맹호부대 사단장 때 일이다. 관내에 군부대가 있는 지자체들은 매년 민군(民軍) 화합을 도모하는 위문공연 행사를 연다. 또 지자체 행사에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군인 동원을 요청하면 장병들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차출되기도 한다. 하루는 위문공연 참석 명목으로 예하 부대별로 인원을 할당해 병사들을 모은다는 사실을 김선호 사단장이 알게 됐다. A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사단장이 ‘요즘 병사들은 이런 거 안 좋아하지 않나. 참가하고 싶은 사람만 가도록 하라. 간부가 하기 싫은 건 사병도 하기 싫고, 간부가 하고 싶은 건 사병도 하고 싶다. 올해는 이왕 참석하기로 했으니 간부는 늘리고 사병은 줄이는 식으로 인원을 재조정하고, 다음부터는 이런 제안 받지 말라. 간부가 할 수 있으면 사병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사병이 할 수 없으면 간부도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30년 군 생활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습니다.”
 
  김선호 사단장 예하 부대 대대장이었던 조상근(육사 56기·예비역 중령) 박사는 ‘소(小)부대 군사 혁신’을 연구하는 모임인 창끝전투학회 학회장이다. 그는 김 차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차관님이 사단장을 할 때 모든 대대장이 벌벌 떨며 사단장님을 무서워했어요. 이전 지휘관은 요식행위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차관님은 군의 기초와 본질을 따졌거든요. 보여주기식, 허례허식을 싫어했죠. 대대별로 시찰하면서 대대 장병들이 부대 작전계획을 숙지하고 있는지, 전시(戰時) 임무와 행동 요령을 파악하고 있는지를 확인했죠. 대대장부터 분대장까지 자신이 맡은 임무를 다 물어봐요. 계급이 높을수록 많이 혼냈고, 낮을수록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하루는 전술 브리핑을 했는데, 저와 사단장님 사이에 전술관(觀)의 차이로 이견이 있었어요. ‘저는 이렇게 싸우겠습니다’라고 대들었죠. 다른 지휘관 같았으면 저를 가만 두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사단장님은 저를 이해하고 받아주셨어요. 사단장 마치고 이임하실 때는 전(全) 대대장과 주요 참모, 지휘관들에게 자필로 편지를 써주셨어요. 각자 개인적 특성까지 분석하고 거기 맞춰 군 생활 방향도 제시해 줬어요.”
 
  조 박사는 사단장 시절 김 차관과 관련해 가장 인상 깊었던 일로, 사단의 비전, 목표, 역할, 임무, 철학 등 핵심 사안을 A3 용지 1쪽 분량으로 구체적으로 정리해 전 부대원이 체화할 수 있도록 한 사례를 들었다. 조 박사는 “전략적 사고가 없는 지휘관은 이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존경하지만 어려운 분… 참모도 ‘감정 격동 작은 사람’ 선호”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이 지난 1월 23일 혹한기 훈련 현장인 승진훈련장을 방문해 장병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군부대도 연말연시가 되면 분위기가 평소보다 이완된다. 그러나 김선호 사단장의 맹호부대는 연말부터 준비해 1월 1일에 기동훈련을 했다. 물론 휴일 훈련에 대한 보상으로 전투 휴무도 했다. 그러나 1월 1일부터 훈련을 하는 게 보통 지휘관으로선 부담스럽다. 상급부대 눈치도 봐야 한다. 새해 첫날 훈련을 했다가 자칫 사고라도 나면 언론이 ‘군 훈련 중 사고’ 소식으로 도배되기 때문이다. 군인 가족들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새해 첫날부터 훈련을 해 불평이 많았다고 한다.
 
  A씨는 “다른 부대는 12월쯤 되면 여유롭게 연말을 맞지만 우리는 기동훈련을 했다. 새해 첫날 기계화부대가 전 장비를 동원해 도로를 타고 기동하는 게 지휘관들에게 얼마나 큰 심적 부담이겠는가. 일부 군인 가족들이 민원을 내기도 했다”면서, “그럼에도 사단장은 전방 지역으로 병력을 이동시켜 진지사수(陣地死守) 결의대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진지사수 결의대회가 끝나면 혹한기 훈련 준비가 이어졌다. 이렇게 맹호부대는 1년 열두 달이 훈련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A씨는 “김 차관을 육사 생도 시절부터 봤다. 생각이 깊고 공명정대하기에 불평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면서도 “좋아하고 존경은 하는데, 어려운 분”이라고 했다. 그는 “차관이 가끔 언론에 웃는 표정으로 나오는데, 이건 정말 기분이 좋을 때 모습이다. 평소에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고 했다.
 
  A씨는 “차관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은 이른바 ‘정무적 판단’을 앞세우거나 감정의 격동이 큰 사람이다. 한번은 사단장이 ‘참모를 추천하라’고 하길래 조건을 물었더니 ‘감정의 격동이 작은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김선호 차관은 ‘큰소리’도 내지 않는다고 했다. 사건이 터지면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단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부터 생각하고 사태 수습과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A씨는 계엄 이후 어느 날 김 차관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필 국회에서 계엄 사태를 두고 군 장성들을 불러내 질타할 때였는데, A씨는 김 차관이 국회에 출석한 줄도 몰랐다. 문자 메시지 요지는 ‘군을 안정시키는 데 집중하시고 수뇌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후배가 이런 문자를 보내면 건방지다고 여기는 게 보통일 텐데 김 차관은 ‘책임 있게 행동하겠다’는 취지로 답문자를 했다고 한다.
 
  A씨는 “김선호 차관이 직무대행을 하고 있기에 군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면서도 “김 차관은 한 박자씩 늦다. 일부에선 차관에게 ‘계엄에 관여한 이들을 빨리 보직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차관은 적법(適法)절차를 지켜 불필요한 오해, 누구도 불평할 수 없는 상황을 준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도 함부로 문제 삼지 못한다”고 했다.
 
 
  “김용현-김선호는 이질적인 조합”
 
  A씨는 김용현 장관이 취임한 뒤에도 김선호 차관이 직을 이어 나가는 걸 보고 의아했다고 했다. A씨는 “이 둘은 절대 서로 안 맞을 사람”이라고 했다. 정무를 중시하는 장관과 비정치적인 차관이 함께하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김기원(육사 55기) 대경대 군사학과 교수는 소령 시절 김 차관의 맹호부대에서 정보참모(중령) 보좌관을 지냈다. 그는 전투지휘훈련(BCTP) 때 김선호 사단장에게 감탄했다고 했다.
 
  “리더십이나 지휘라는 게 지식으로만 되는 게 아니잖아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고, 부대와 참모단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매우 중요하죠. 당시 사단장님은 장시간 이어지는 훈련으로 피곤한 상태에서도 굉장히 체계적으로 전투지휘를 했습니다. 전투와 관련 없는 불필요한 내용은 모두 생략했습니다.”
 
  김 교수는 “사단장님은 출신(육사·3사·학군·학사 등)을 따지지 않고 공평무사했다. 수기사(맹호부대)는 워낙 인지도가 있는 부대로 특정 출신이 몰리는 현상이 있는데도 주요 참모들이 비(非)육사 출신이었다. 사단장이 마음먹으면 모두 육사 출신으로 채울 수도 있다”며 “당시 간부끼리는 이런 사단장을 보고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긴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수방사령관, 차관까지 할 줄 몰랐다”고 했다. 그는 “혼란스러운 현 상황을 김 차관이 잘 헤쳐 나가리라 믿는다”고 했다.
 
 
  尹 대통령 체포 대치 때 ‘55경비단 지침’엔 찬반 엇갈려
 
2024년 12월 5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처음 열린 국회 국방위 제8차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 사진=뉴시스
  육사 후배들은 김선호 차관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선배들은 다소 비판적이다. 과거에는 민주당 김병주(육사 40기) 의원에게 집중됐던 비판이 이제는 김 차관과 홍장원(육사 43기) 전 국정원 1차장에게로 향하고 있다. 군 선배들은 공수처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과정에서 55경비단이 김 차관의 지시를 받아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바람에 윤 대통령이 구속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55경비단이 대통령실 경호처에 배속된 만큼 경호처장이나 차장의 통제에 따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육사 선배이자 장군 출신 D씨는 “그간 김 차관에 대한 평가가 아주 좋았는데, 이번 55경비단에 대한 지침을 두고 예비역들 사이에선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고 했다.
 
  김 차관과 육사 동기인 예비역 장군 E씨는 같은 포병 병과 출신으로 선의의 라이벌 관계였다. 둘 다 중장까지 진급했다. 통상 포병은 보병에 비해 진급 쿼터가 적다.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E씨는 “김 차관은 아주 좋은 사람이다. 내가 굉장히 존경하는, 훌륭한 동기생”이라면서도, 앞서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당시 55경비단 관련 판단에는 역시 비판적이다.
 
  이에 대한 반박도 있다. 55경비단이 경호처에 배속됐지만 그 임무는 관저 외곽 경계이지 대통령에 대한 근접 경호가 아니라는 것. 영장 집행에 앞서 김 차관이 밝힌 입장은 ‘경호처에 55경비단을 배속한 목적에 맞게끔 활용하라’는 취지였다. 여기에 ‘경호처 소속 인력은 어디서 뭘 하다가 55경비단에게만 책임을 돌리느냐’는 비판도 있다.
 
  이 때문에 보수·진보 양쪽 모두에서 김 차관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한쪽에서는 ‘우리 집 귀한 자식을 대통령 지키는 데 투입했느냐, 빨리 빼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경호처에 갔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지인 B씨와 후배 C씨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김 차관이 영장 집행에 대해 아무 입장도 밝히지 않은 채 상황을 방관했다면, 55경비단장이 어떤 판단을 내리든 정치적 파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에 대한 책임도 경비단장이 고스란히 떠안습니다. 지휘관으로선 엄청난 부담이죠. 김 차관은 ‘55경비단장이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식으로 당시 상황을 외면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명확한 지침을 제시해 줬습니다. 55경비단장이 떠안을 부담은 덜어주고 책임은 차관 자신이 지겠다는 모습이었습니다. 부하 지휘관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상관, 지휘관이 있을까요?”
 
 
  장관·참모총장 압박에도 소신 지켜
 
2024년 12월 9일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최근 국방부는 대형 공격헬기 도입 2차사업(아파치 추가 구매)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결정된 조(兆) 단위 사업을 재검토하는 건 쉽지 않다. 이에 아파치 제조사인 보잉은 지난 2월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파치 헬기의 필요성을 홍보했다. 이 사업은 예산이 최소 3조7500억원 투입될 계획이었으나 환율 상승과 상황 변화로 5조원 이상 소요되리라 전망된다. 사업 재검토 배경에는 김선호 차관이 있다고 한다.
 
  전력통인 김 차관은 한국군 전력 건설의 방향성에 비판적인 의식이 있다. 한국군이 명확한 전략 개념이 없다 보니 비싸고 좋은 무기를 도입하는 데만 치중한다고 본다. 전력 건설(무기 도입)의 방향을 결정하는 합참이 ‘합동성’에 기초해 무기 체계를 들여와야 함에도 각군이 자군(自軍) 이기주의를 앞세운다는 것이다. 각군은 자기들대로 원대한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육·해·공군에서 합참으로 파견을 나온 장교들은 진급 때문에 소속 군 참모총장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차관은 달랐다고 한다. 육군본부 전력 담당 부서에서 함께 근무한 C씨의 설명이다.
 
  “김선호 차관이 합참 전력기획부장(소장)일 때, 계룡대 육군본부로 여러 번 불려갔어요. 육군에선 당시 드론, 로봇과 같은 전투 체계를 빨리 도입하고 싶었거든요. 당시 육군 기획참모부장 Y 장군이 합참에 전력 소요를 요청했는데, 김 부장은 합동성 차원에서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Y 장군이 육군참모총장 K 장군에게 이를 알렸고, 총장이 김 부장을 두 번이나 따로 불렀어요. 총장이 호출하면 왜 호출하는지 다 알아요. 진급을 생각해야 하니 엄청난 부담이죠. 총장실에 들어가면 대부분 위축이 돼요. 대부분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하죠. 그런데 김 부장은 오히려 참모총장을 논리적으로 설득했어요. 자기만의 확고한 기준, 가치관, 한국군의 전력 건설 방향, 군사 전략에 대한 개념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일 때문에 당시 합참에서 김 부장 밑에 있던 장교들이 진급이 안 됐어요. 김 부장이 부하들에게 엄청나게 미안해 했죠.”
 
  실무자로서의 한계도 있었다. 당시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지시는 쉽게 막을 수만은 없었다고 한다. 소장 계급인 전력기획부장 처지에서는 정치권력에까지 대항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당시 해군 출신 S 장관이 국방개혁 2.0과 관련해 추진하는 역점 사업이 있었는데, 김선호 전력기획부장이 이를 반대했다. 김 부장이 말을 안 듣자 S 장관은 김 부장의 직속 상관인 전략기획본부장 P 해군 중장을 불러 질책하며 심한 욕설까지 했다. 김 부장으로선 자기 때문에 상관이 곤란한 상황에 처한 셈이다. 그럼에도 P 중장은 김 부장에게 장관 요구 사항을 이행하라는 지시는커녕 ‘고생한다’며 격려만 했다고 한다.
 

  B씨는 “김 차관이 좋은 상관(P 중장)을 둔 거다. P 장군도 성품이 훌륭하다”고 했다. P 장군은 이후 해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김선호 차관은 전시작전권을 한국군이 단독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2004년 쓴 석사 논문 〈동맹의 비대칭성과 한미 관계〉에서 “기존의 한미 연합지휘 체제를 협동작전 체제로 전환하고,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은 환수하되 그 시기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김 차관은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 미군에만 의존하는 기존 한국군 수뇌부에 대한 실망 때문으로 보인다. 전작권이 한미연합사(사령관 미군 대장)에 있기에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우리 군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권한은 미군에 넘기고 책임은 회피하는 무책임한 한국군에 실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차기 국방장관? 사태 수습되면 직 던질 사람”
 
  일부 언론은 김선호 차관이 차기 국방부 장관 1순위라고 보도한다. 그러나 김 차관을 잘 아는 이들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김 차관은 이번 계엄 사태를 수습하고 군 안정화만 끝내면 미련 없이 직을 던질 사람이다. 자리에 연연할 인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늘 무뚝뚝한 표정의 김 차관을 주변에선 “마음이 따뜻하다”고들 한다. 김 차관은 전역하자마자 에세이집 《잠시 멈추고 싶다. 가슴이 따뜻해질 때까지》(2020년)를 냈다. 그의 마음과 생각이 담긴 단편 글들을 엮은 책이다. 읽다 보면 상당한 독서량을 말해 주는 내공도 느껴진다.
 
  김 차관은 아들을 둘 뒀고 그중 한 명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 포병 장교로 복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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