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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논객 정규재의 보수 비관론

“지금이 보수당의 마지막 피날레”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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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힘당, 87년 이후 민주당 2중대… 이념도, 지도자 만들어내는 능력도 없어”
⊙ “윤석열은 보수 세력에 있어서 저승사자… 박근혜 구속할 때 엉터리 검사라고 느껴”
⊙ “민주당, 마음에 안 들면 탄핵… 형식적 법 절차에는 맞을지 몰라도, 헌법 취지에는 맞지 않아”
⊙ “지금 대한민국에서 대구와 광주이라는 두 도시가 격돌하고 있다”
⊙ “여우가 약을 올려 곰이 주먹 휘두르면, 법원은 곰이 잘못했다고 한다”
⊙ “보수, 동시다발적으로 무한 토론 배틀을 붙여서 정말 박 터지게 싸워 후보 내야”
⊙ “이재명, 기회주의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기본소득 안 할 것”

鄭奎載
1957년생. 고려대 철학과, 同 경영대학원 졸업(경영학 석사) /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편집국 부국장, 에듀한경 대표, 삼성물산 사외이사,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자문위원, 펜앤드마이크(PenN) 대표이사 사장 겸 주필 역임
사진=조준우
  “이상한 시대가 왔죠.”
 
  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대표적인 보수 논객인 정규재(鄭奎載) 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의 첫말이 이랬다. 말이 그렇지 ‘이상’한 게 아니라 맹렬한 눈보라, 혹한의 칼바람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음을 말하려는 게 분명했다. 대통령 관저가 있는 서울 한남동에서 죽고 살기식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말하려는 듯 보였다. 그는 현재 상황이 고대 그리스 시절과 다르지 않다며 “시민 인구 4만~5만 명에 연간 소송건수가 4만 건이었던 아테네에서 ‘전쟁을 할 것인가’ ‘평화를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죽음의 표결(票決)을 벌이곤 했다”고 사실을 상기시켰다. 실제로 매년 전쟁을 벌였고, 토론과 별도로 아테네 밤거리에서는 사적(私的) 테러가 횡행했다고 한다.
 
  “지금 한국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인이여, 전쟁을 그치시라.”
 
  정규재 전 주필은 “국민의힘은 자칫 위헌(違憲)정당이 될 수도 있다” “윤석열은 내란 수괴(首魁)의 피의자”라면서 보수우파와 험악한 정치논변(論辯)의 전쟁을 치열하고도 무겁게 마주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9일 《한겨레》를 처음 찾아가 논설위원과 ‘진보-보수 콜라보’ 특별대담을 할 만큼 외연(外緣)의 폭이 넓어졌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인 색깔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무의미해졌는지 모른다.
 
 
  기독교와 선거부정론
 
2019년 4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훈동 펜앤드마이크 스튜디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정규재 당시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이상한 시대라 말씀하셨는데….
 
  “보수 대통령만 두 번째 탄핵이잖아요. 물론 노무현 탄핵도 있었지만 한 명 걸러 한 명씩 대통령을 탄핵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정상은 아니죠. 미국 같은 경우에는 대통령 탄핵이 긴 역사에 아직 한 명도 없는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이 짧은 역사에 이렇게 탄핵이 되니까….”
 
  그러더니 이런 말을 던졌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법적 단죄가 불가피하죠.”
 
  ― 여야 정치의 복원이 불가능해졌고 비상계엄, 탄핵을 둘러싸고 정치권도, 국민도, 언론도 음모론의 혼돈에 빠져들었습니다.
 
  “선거부정론 이전에 보수가 빠져 있던 음모론이 ‘5·18 광수’였잖아요.”
 
  일각에서 1980년 광주 5·18 항쟁 당시 시위대를, 침투한 북한특수군으로 지목하며 광수 1호, 2호 등으로 이름 붙인 것을 일컫는 말이다.
 
  “사실은 이 선거부정이 지난 2020년입니까? 4·15 총선 때 선거부정론이 나와서 초기에는 잠잠했어요. 나같이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 따지니까 잦아들었는데 미국에서 트럼프가 뜨면서 소위 미국 내 선거부정론이 힘을 얻었고, 그러자 국내 기독교계에서도 공론장에서 거칠게 주장하기 시작했어요. 선거부정론이 공론장을 지배하는 언어가 돼버린 거예요.
 
  기독교인들에게 이게 먹혀들었어요. 기독교가 원래 망상장애에… 굉장히 약한 심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격신(人格神)의 활동을 전제로 하잖아요. ‘인격적인 누군가가 선거에 개입했다…’ 이런 이야기를 해대니 기독교인들은 쉽게 이해가 되는 거죠. 제가 ‘펜앤드마이크’ 대표 시절, 선거부정론을 놓고 굉장히 싸웠는데 결국엔 졌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구속된 문재인 정권 초반, 인터넷 매체인 ‘펜앤’을 창간해 “나름대로 보수 언론의 기능을 맡았지만”, 현재 그는 ‘펜앤’과의 관계를 모두 정리한 상태다.
 
 
  “선거부정론은 보수를 죽이는 독”
 
  ― 조금 전 ‘졌다’고 했는데 누가 누구에게 졌다는 말인가요.
 
  “내가 진 거죠. 그 선거부정 세력들(과의 싸움에서)….”
 
  문득 며칠 전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부정선거론을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늙은이들로 비이성적이라기보다는 반이성적이어서 부정선거가 절대 없었다는 적극적인 반증 사례가 나오지 않는 동안은 절대 부정선거론을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이들은 부정선거론을 통해 일생에 걸친 좌익들의 공세를 일순간에 통으로 격파하게 되는 신앙 체험과…(하략)〉

 

  ― 비이성적, 반이성적…. 너무 지나치게 말씀한 게 아닌가요.
 
  “일부러 그 부분은 세게 썼어요. 하도 화가 나서. 왜냐하면 선거부정론이 보수를 죽이는 독(毒)입니다. 보수를 죽이는 독이고,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독이거든요.
 
  지금 한남동에 사람들이 결집하는 이유는… 그 사람들이 마약을 먹고 있는 거야.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선한 독재자가 명징하게 아니 확실하게 선언해 주는 그런 직접적 정치 경험을 그리워하는 겁니다. 노인들의 열정일 뿐이에요. 독재자가 그리운 거야. 히틀러보다 더한….”
 
 
  ‘펜앤’을 그만둔 이유
 
2021년 4·7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 정규재씨는 자유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펜앤’ 시절 정규재 전 주필은 선거부정과 관련한 62개 의혹 유형을 일일이 반박하는 영상을 찍기도 했다.
 
  “그렇게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저게… 안 죽고 다시 살아나더라고. 결국엔 ‘펜앤’도 그만두게 됐어요.”
 
  그러더니 다시 “‘펜앤’을 그만둔 것은 선거부정 관련한 이슈도 있고, 내가 정치적으로 약간 외도한 것도 있다”며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정치적으로 뭘 하겠다는 게 아니고 국힘당(그는 줄곧 국민의힘을 이렇게 불렀다)을 무너뜨려야 우리나라 보수당이 뭔가 달라지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근데 국힘당이 무너지기는커녕…. 국힘당에서도 제일 약한 데가 부산이거든.”
 
  정규재씨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임기 도중 사퇴하자 2021년 4·7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다. 보수 논객으로 이름은 높았지만 현실 정치의 벽은 높았다. 신생(新生) 정당인 자유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3위)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양당 제도가 결국에는 대한민국 국민을 두 개로 분열시키고, 내부에 그 구심력(求心力)을 모으면서 말하자면 증오, 적개심, 분노, 적대감 같은 걸로 온 국민이 지금 양대 진영으로 편성돼 있잖아요.
 
  이런 경우에 꽤 알려진 인물조차 (선거 득표율이) 1%입니다, 1%. 그러니까 우리나라 기성정당의 성(城)이 그만큼 강고(强固)하고 높습니다.”
 
  당시 그는 1만6380표, 득표율 1.06%를 얻는 데 그쳤다.
 
  “부산은 변화가 굉장히 빠른 데고, 우리나라 정치 변화는 다 부산에서 시작이 됐어요.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부산으로 내려갔는데, 그때 내 (득표율) 목표가 한 5% 내지 7% 정도 얻으면 민주당이 당선돼 국힘당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계산이 대강 나왔거든요.
 
  근데 민주당이 너무 못했어. 그 바람에 국힘당이 공짜로 먹었죠.”
 
  당시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62.7%로 당선됐고 민주당 김영춘 후보는 34.4%를 얻었다.
 
  ― 자유민주당 공천을 받았지요?
 
  “새로 정당을 만들었죠, 내가. 왜냐하면 정당을 끼지 않으면 선거 자체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 노무현도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고 (부산시장과 국회의원 선거에) 6번 나가서 4번 떨어진 거잖아요. 계속 나가셔야….
 
  “아이고, 저는… 부산시장이 목표였으면 계속 해보겠는데 계몽 운동이 지금 하는 일이잖아요. 사실 정치에 너무 가까이 가는 것은 맞지 않죠. 보수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갔는데, 그것조차 실패했죠.”
 
 
  “전 도시의 광주화 현상”
 
  ― 2021년 4·7 재보궐 선거에 직접 뛰어들어 무엇을 얻었나요.
 
  “양당 제도의 소용돌이…, 몰아가는 구심력이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셌어요. 또 좌익적 세계관이 부산 같은 도시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것….”
 
  ― 네? 좌익적 세계관이라니요?
 
  “그러니까 부산에는 전통적으로 국힘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람들을 당으로 놓지 않고 그냥 펼쳐놓고 이념적으로 보면 3분의 1은 사실 좌경입니다.”
 
  ― 그렇습니까.
 
  “당은 민주당을 싫어하고 국힘당을 지지하는데 그 세계관은, 예를 들어 내가 출마할 때 계몽적 목적의 여러 가지 공약을 걸었는데 ‘서울을 쳐다보지 않는다. (중앙 정부에서 내려보내는) 교부금은 잊고 해보자. 한일(韓日) 해저터널을 놓자’.”
 
  ― 잘 안 들려서 그러는데, 교부금을 뭐 하자고요?
 
  “잊자고요. 부산이 먹고사는 것을 서울에 기대지 말자는 겁니다. 부산은 산지(山地)가 50%거든요. ‘(그린벨트) 산지 10%를 풀어서 스포츠 문화산업 단지로 만들고, 영어를 공용어로 쓰자’ 등 진취적인 우파 개혁을 꿈꾸었죠. 부산이란 도시를 태평양 연안의 도시들보다 더 국제화시키겠다고 외쳤지요. 이런 슬로건을 내걸고 시민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조선 시대 부산포로 거의 돌아가는 거야. 해방 직후 흥성거리던 열기는 싹 사라지고 농촌 공동체적인 ‘우리가 남이가’ ‘나눠 먹자’고 하는 분배주의적…, 말하자면 국가를 자상한 어버이로 생각하고, 부산은 보호받아야 되고, 관리돼야 하는,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부산은 부산에 없어요. 진취적인 도시로서의 부산! 바다로 뻗어나가는 도시! 무역을 하는 해양국가로서의 도시는 없는 겁니다.”
 
  ― 바다로 나가자는 구호 자체는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안 먹혀요. 그러니까 우파 논객 중에 전라도 출신 주동식(朱東植)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 말이 ‘전(全) 도시의 광주화(光州化)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야. 우리나라 도시가 광주처럼, 말하자면 농촌 공동체적 세계관에 물들어 간다는 거야.
 
  부산에 동상이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송상현(宋象賢·1551~1592년)과 정발(鄭撥·1553~1592년) 장군 동상이 있습니다. 패전(敗戰) 장수가 부산의 대표적인 상징물입니다. 그런 도시에서 무슨 태평양이 나오겠어요?”
 
 
  “대구, 판검사만 국회의원으로 뽑으려 해”
 
  ― 그 말씀을 부산시민들이 들으면 오해할 것도 같은데…. 제 고향은 대구입니다.
 
  “지금 대구의 정치 지형이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대구는 판검사만 국회의원으로 뽑으려고 해요. 왜 그러냐?”
 
  ― 왜 그런가요.
 
  “대구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질서가 부활한 ‘나라’입니다. 대구는 보수의 도시라고는 얘기할 수 있는데 자유의 도시냐? 아닙니다. 보수의 도시는 맞는 것 같은데 자유의 도시는 아닙니다.”
 
  ― 과거에는 안 그랬잖아요. 대구를 둘러싼 경북이 유교적인 분위기가 드세죠. 대구는 서문시장 같은 신(新)문물의 집산지이자 교육열이 높아 자유로운 분위기가 물씬했어요. 일제 시대 서양 선교사를 통해 피아노가 국내 처음으로 도입됐고 이인성(李仁星·1912~1950년) 같은 근대 화가들이 출연할 수 있는 공간이 대구였죠.
 
  “대구는 아시아의 모스크바라 할 정도였으니까요. 좌익도 많았고 진취적이며 (그런 사회) 변화를 이루려 했죠. 그런데 박정희 정권 이후 쭉 보수화가 진행이 되어서 사농공상 세계관으로 회귀했다고 할까, 그런 세계관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보이거든.”
 
  이어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대구와 광주라는 두 도시가 격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도시는 농사짓는, 소위 민중 레벨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광주와, 양반 세계관을 아직도 고수하려는 대구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격돌하고 있어요.”
 
  ― 아….
 
  “진짜입니다. 제 눈에는 그게 보여요. 말하자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원천(源泉)인 두 도시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격돌하고 있죠.
 
  답답하죠. 이론적인 투쟁이라도 (두 도시가) 열심히 하면 되는데 그냥 생활 습속이 완전히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화해 불가능이죠.”
 
 
  “윤석열, 국회 찾아갔어야”
 
정규재 전 펜앤드마이크 대표는 2020년 6월 펜앤 스튜디오에서 ‘선거의혹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특집 방송을 진행하며 각종 선거부정론의 실체를 규명하려 했다. 사진=펜앤
  ― 나훈아씨가 ‘왼쪽, 니는 잘했나?’라고 해 논란이 됐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주 상식적인 말이죠. 그런데 예를 들어 미련한 곰하고 약삭빠른 여우가 싸웠어요. 여우가 곰을 매일 약을 올리는 거예요. 근데 곰이 주먹을 휘둘렀어. 그럼 누구 잘못이냐? 법원에 가면 일단 곰이 잘못했다고 한다니까. 윤석열이 주먹을 휘두른 겁니다.”
 
  ―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이유를 정부 관료에 대한 잇따른 탄핵소추, 예산안 삭감에 대한 야당의 횡포 때문이라고 주장했죠. 그러나 그 횡포가 비열하고 부당해도 냉정히 따지면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의 범위 안에서’ 이뤄진 거 아닙니까.
 
  “물론 야당도 그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탄핵은, 말하자면 어떤 극단적 상황에 예비한 예비적 조항이에요. 말하자면 어떤 특이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예비적 조항이지, 지금 민주당이 하는 일은, 이것(탄핵)은 뭐 일상적이잖아요.
 
  마음에 안 들면 탄핵했으니까, 형식적 법 절차에는 맞을지 몰라도, 헌법 취지에는 맞지 않는 짓을 계속한 겁니다. 그러나 대통령도 국회에 찾아갔어야 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주먹을 휘두를 게 아니라….”
 
  ― 어쨌든 국회 의석수는 선거 민의(民意)를 반영한 것이니 아무리 미워도 야당의 존재를 부정할 순 없지요.
 
  “대통령은 민의를 따를 의무가 당연히 있죠.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이 된 게 첫째,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이나 채상병 특검 등 숱한 비리에 무감(無感)했고, 둘째 모든 종류의 개혁에 실패했잖아요. 노동개혁이니 의정(醫政)개혁이니 연금개혁이니 다 실패했잖아. 그러니까 여론으로부터 싸늘한 대접을 받았죠. 말하자면 되는 일이 없었거든.
 
  그걸 만회하기 위해 국회를 찾아가거나, 말하자면 야당 지도부하고 술이라도 마신다거나, 이런 노력을 했어야지, 야당이 대통령한테 가서 머리를 숙이지는 않거든요.
 
  근데 ‘네가 와서 머리 숙이라’고 자꾸 요구하니 안 되는 길로 가는 거지.”
 
  ― 언제 윤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겁니까.
 
  “대선 후보가 될 때 버렸어요. 왜냐하면 윤 대통령은 법치(法治)의 파괴자거든요. 그러니 내가 대통령에게 동의하기 어려워요.”
 
  ― 뭐랄까, 윤 대통령에 대해 ‘법조 주변의 건달’이란 표현도 썼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할 때부터 윤 대통령이 수사를 했기 때문인 거죠?
 
  “박근혜 대통령을 구속할 때 엉터리 검사라고 느꼈어요. 우리나라 검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우리가 다 잊어먹고 있는데 묵시적 청탁과 경제 공동체를 앞뒤 원인과 결과로 엮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그걸 엮어가지고 결국 30년형(刑)을 때린 거 아닙니까? 사법부가….
 
  검찰 권력뿐만 아니고 사법부 전체가 사실은 썩어 있는 거예요. 그런 터무니없는, 돈 한 푼 받은 적 없고, 자산의 증가를 기록한 적 없는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때린다는 게 말이 안 되거든요. 근데 그걸 엮어서 뇌물죄를 성립시켰다는 게…. 우리 국민도 문제가 많아요. 양심적이지 않아요. 아무도, 아무도 그 문제를 문제로 인식 안 하고 진실에 관심을 쏟지 않아요.
 
  지금에 와서야 또 다른 탄핵을 보면서 그때 탄핵이 얼마나 엉터리로, 속전속결로 해치운 건가 하는 걸 느끼지 않습니까?”
 
 
  “보수 세력에 있어서 윤석열은 저승사자였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내민 손을 어쨌거나 잡았죠.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은 ‘박근혜 구속은 윤석열이 아닌 서울중앙지검장과 1차장 등이 검찰총장과 상의해서 결정했다’고 하였지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오늘의 자기 정치를 위해 둘러대는 거짓말이죠. 물론 형식논리적으로는 그럴지 몰라요. 하지만 소위 수사 내용의 실체를 구성했고, 그걸 재판으로 끌고 가서 재판을 완료한 사람은 저 한동훈과 윤석열입니다. 그거를 부정하면 말이 되나요?
 
  그리고 윤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 외에도 사법부 파괴, 예를 들어 양승태 대법원장을 구속 기소한다든가 해서 법원 최고위직에 있던 14명을 사법 농단이라는 이름으로 법정에 세웠거든요.
 
  용서할 수 없는 사법부 파괴 행위입니다. 보수 인사를 1000명이나 조사해 그중 200명을 감옥에 집어넣은 사람입니다. 전직 국정원장 4명을 모조리 구속시킨 사람이거든요. 보수 세력에 있어서 윤석열은 저승사자였습니다. 그리고 윤석열은 범인을 다룰 때 범죄로써 다루지 않고 인생을 털어요. 그러니까 저승사자처럼 터는 거죠.”
 
  ― 윤석열 검사에게 조사를 직접 받은 적이 있나요? 아니면 간접 경험이라도….
 
  “누가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해가지고, 수사를 받은 적이 있죠. 그 사건은 김홍일씨(전 부산고검장)가 나를 소송한 사건인데 당연히 무죄(無罪)였습니다. 근데 윤석열이가 기각을 안 해주더라고. 윤석열이 그때 지검장이었거든요. 그런데 보수가 그런 인물을 데려와 세탁까지 하고, 명태균이를 동원해 대통령으로 만들어낸 거잖아. 그 보수는 양심불량 조직입니다.”
 
  ― 박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내민 손을 잡아주었잖아요.
 
  “어떻게 보면, 감방에 몇 년씩이나 있다가 나온 늙은 여자가 뭘 평가할 수 있겠어요. 불쌍한 여인이죠.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누가 지켜줬어요? 아무도 안 지켜줬어!”
 
 
  “보수 복원, 안 된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겹쳐 보이는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탄핵이 아니라 체제에 대한 탄핵처럼 보이는 지점이죠.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와 달리 여당 의원들이 한남동 관저로 밀려가 집단행동을 하고 있어요. 일각에선 보수 복원(復元)의 징조로 보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보수 복원, 안 된다고 봅니다.
 
  보수는 자기 손으로 지도자를 못 만들어냅니다. 윤석열도 말하자면 (명태균 같은) 브로커들을 끼고 투표를 조작해 후보로 만든 거거든요.
 
  국힘당은 87체제 이후 단 한 번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려 애를 쓴 적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현행 노조법이라든가 52시간 법, 최저임금법이라든가 어느 하나 국힘당의 지지를 받지 않은 법이 없습니다.
 
  87체제 이후 민주당의 2중대 노릇을 보수가 해왔다 이거야. 그러니까 모든 악법, 심지어 민주당이 만든 입법이라고 해도 다 여야 합의예요, 대부분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된 법이 없습니다. 국힘당은 이념의 깃발이 없는 당! 거기다가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없어요. 저는 지금 상황이 보수당의 마지막 피날레라고 봅니다.”
 
  ― 경제전문가시니 이대로 조기(早期)대선이 치러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될까요.
 
  “기회주의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기본소득, 이런 것은 안 할 겁니다. 지금 대통령이 되려고 눈이 멀어 있기에 지역화폐니 뭐니 떠드는데 막상 정권을 잡게 되면…, 성남시장 시절 잘했고, 평가들이 좋거든요. 그런 식의 실용주의 비슷한 노선으로 갈 거라고 난 봐요.
 
  윤석열이가 털어먹은 것보다 더 털어먹을 것이라 보지는 않아요. 다만 이 87체제로 가면, 이 체제는 전라도가 지배하고 있는 체제입니다.
 
  전라도가 지배하고 있는 체제이기에 우리 경제에 좋을 게 없지. 반(反)경제 반자본주의 아무래도 마르크시즘에 가깝고 소셜리즘(사회주의)에 가까운, 그런 정치체제이기 때문에 경제에 좋을 게 없죠. 근데 그렇다고 해서 국힘이 어떤 분명한 세계관이 있냐 하면은 저는 그것도 없다고 봅니다.”
 
한국 보수와 87체제
 
  정규재 전 주필은 인터뷰 도중 ‘87체제’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했다. 87체제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등장한 헌정(憲政) 질서와 그것에 수반하는 정치 질서를 말한다. 단순히 대통령직선제 개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 보수는 아직도 87체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 87체제는 독재의 종식이요 군부(軍部)체제의 종식이다. 당초에는 자유민주주의적 동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유를 중심에 놓고 정치를 생각하는 주체는 비조직화된 넥타이 부대에 불과했다. 그것과 전략적 동맹 상태였던 좌익 민중주의로 조직화된 세력들이 그 속에서 자라났다. 그들 속에서 민족해방론적 주장이 주류가 되었고, 다시 종북(從北) 주사파로 성장해 나갔다.
 
  87체제는 이제 극좌(極左)들이 온전히 그 성과를 독차지한 판도라의 상자가 되었다. 군부도 사라졌고 구(舊)체제의 주류들도 종적을 감추었지만 넥타이 부대들은 아직도 파편화된 비조직 대중으로 남아 그들의 정치 지향을 이리저리 팔아넘기고 있다. 그들은 이미 60대 중후반에 들어선 사람들이다. 지금도 우왕좌왕하면서 혹시 여기인가 혹시 저쪽인가 정파들을 기웃거린다. ‘5·18 광수’에 쏠렸다가 트럼프에 열광했다가 선거조작론에 온통 귀를 빌려주면서 가슴만 끓이고 있는 자들이다.
 
  박근혜는 ‘87민주화 헌법’의 첫 희생자다. 이 헌정체제는 국회와 대통령의 충돌을 구조적으로 만들어냈다. 대통령의 권력은 무겁고 컸지만 국회가 점차 몸집을 키우며 도전해 왔고 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국회와의 정면충돌에 걸려들었다. 언론은 처절하게 유신(維新)의 딸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87체제의 결과로 전교조와 민노총이 지배하는 시간이 40년간 이어졌다. 한 번쯤 점검할 때가 되었다. 그러니까 87체제가 지금 어그러지고 있다. 최근의 정세라는 것도 갑자기 돌출(突出)한 게 아니고 쭉 내재(內在)해 오던 문제가 스스로 해결을 못 찾고 붕괴(崩壞)한 것이다.”
 
  ‘지도자를 못 만들어내는 이유’
 
  ― 보수우파들이 정 주필에게 묻지 않습니까? ‘이재명이가 돼도 좋단 말이냐?’고요.
 
  “아니, 그거는 선거 결과로 말해야지. 그게 걱정되면 이재명이가 안 되게끔, 좋은 후보를 내세워야지.”
 
  ― 지금 보수 후보 중에 마음에 드는 후보가 있나요.
 
  “그 질문이 보수가 하는 질문 중에 가장 잘못된 질문이에요. 어떤 방법으로 지도자를 뽑는 게 국민이 보기에 가장 멋있고 스마트하게 보일까, 이런 걸 걱정해야 해요.
 
  보수는 단순하게 ‘나는 홍준표를 지지하니까 홍준표가 좋겠어’ ‘나는 오세훈을 지지하니까 오세훈을 밀어야지’라고 생각 한다니까.
 
  이런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동시다발적으로 무한(無限) 토론 배틀을 붙여서 정말 박 터지게 싸우는 거야. ‘마산에서 온 그 녀석 말이야. 걔 잘하더라. 토론으로 권성동이를 박살 냈잖아.’ ‘걔가 누군데? 홍길동이라고 몇 번 출마했다가 떨어진 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겼냐 하면….’
 
  이런 식으로 하면 ‘스타 이즈 본(Star is born)’… 스타가 탄생하는 거예요. 국민이 볼 때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후보를 만들어보는 겁니다.”
 

  ― 좋은 말씀 같은데 보수당이 그런 방식으로 후보를 뽑을지 의문이네요.
 
  “우리가 뻔히 아는 도토리들이 나와서 ‘니는 어디 출신이고?’ ‘니는 무슨 대학 나왔노?’ 하며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지도자를 못 만들어내는 거예요. ‘야, 정말 쟤는 비전이 있네’라고 하는 사람을 지금부터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 보수우파의 마음속에 ‘이준석 포비아’라는 게 존재한다고 보나요.
 
  “포비아(Phobia·공포증)까지는 아니고 이 보수들은 꼰대 기질이 있어서 개혁신당 이준석 같은 사람을 안 좋아하죠.”
 
 
  “지금 한남동은 보수의 혼을 빼는 축제장”
 
  ― 더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보수가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려면 이준석은 이미 늙어 죽어. 보수는 사람을 만들어낼 줄 모르고, ‘버르장머리 없이 어린 새끼’가 빡빡 대들어 대통령을 상처 나게 하고, ‘그 새끼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런 식으로 잘라내면 절대로 젊은 사람이 정치에 도전할 수 없어요. 세계적으로 가장 음험한, 판검사 출신 사람들밖에 보수의 손에 남지 않습니다.”
 
  ―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도 있고, 젊은 사람들의 성장을 응원하는 분위기도 당내 존재합니다.
 
  “그것은 (청년을) 간판으로 써먹을 수 있을 때 국한된, 이번 22대 총선에서도 젊은이들을 많이 영입했지만 실제 출마한 이는 김재섭 의원하고 몇 명밖에 안 되잖아요. 실제로는 다 죽어버렸잖아. 보수는, 꼰대들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까분다’고 싫어한다니까. 이제라도 청년들에게 기회를 줘야 합니다.”
 
  국민의힘이 청년 정치를 이벤트성 ‘트로피 공천’으로 기성 정치인의 병풍(屛風) 노릇을 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었다.
 
  ― 계엄 사태를 계기로 제도권에서 소화하지 못했던 청년 세대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탄핵 반대 진영의 ‘이대남’이라고 할까요? 이들이 청년 정치의 구심점 역할을 할까요.
 
  “한때의 해프닝에 불과합니다. 거기에 이론의 근거를 세울 게 없어요. 그냥 역사의 잔물결이지 큰 흐름을 타는 것은 아니죠. 지금 한남동에서 보이는 모습은 보수의 뭐랄까 일종의 혼(魂)을 빼는 축제장 같은 거거든요.
 
  극도로 고통을 견디면서 동시에 정치적 희열을 느끼는…. 그 정치적 희열을 통해 결집되고 있음을 느끼는 일종의 파시즘의 온상입니다. 저 한남동의 지도자로 과연 누가 등장할지 저는 의심스러운데, 그러니까 괴벨스나 히틀러 같은 이가 등장해 한남동을 다 먹을 수도 있죠.
 
  근데 모르지, 젊은 애들 중에 연설의 천재가 있을지도…. 그러나 기본적으로 한남동으로 결집시키는 어떤 이념이 있느냐? 나는 거기에 대해 조금 회의적이야. 물론 한남동이 지금 그런 열정을, 열기를 뿜고 있는 거는 틀림없어요.”
 
  ― 윤 대통령 체포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을 ‘보수 복원’으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거든요.
 
  “보수가 열정적으로 지금 재구축(再構築)되는 것처럼 보이죠. 그러나 나는 오래 안 갈 거라고 보는 것이고, 만일에 에너지가 된다 해도, 국힘당이 소화할 수 없어요.”
 
  ― 보수는 전광훈 목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합니까.
 
  “전 목사가 정치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게 제일 좋지. 만약에 물러나지 않으면 외과 수술을 당하게 될 겁니다.”
 
 
  “‘시장보수’는 보이지 않고, ‘안보보수’만이 재조직된 느낌”
 

  ― 한국 보수 운동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그래도 희망을 가져도 되나요.
 
  “보수 집단은 오로지 ‘시장보수’는 보이지 않고, ‘안보보수’만이 재조직화된 느낌입니다. 최근의 보수 유튜브나 운동이랄 것도 없는 대중운동의 주제는 오로지 부정선거와 광주 5·18 광수론, 그리고 작금의 주제인 계엄 정당화론이 전부죠. 이들 가치는 시장자유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도 많아요.”
 
  정규재 전 주필은 낙담하듯 말을 이었다.
 
  “시장자유론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당연히 정치적 자유론도 사라지고 없어요. 살아 있는 것은 오로지 권위주의를 정당화하고, 독재를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누구라도 좋다. 우리 편 이겨라’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 노인들의 목소리밖에 없어요.”
 
  그는 시장자유 이념 운동이 아예 종적을 감추고 말았고, 정치적 자유 운동도 사라졌다고 개탄했다.
 
  “지금 존재하는 것은 권력 대(對) 권력의 격돌, 즉 안보보수의 한 전통을 잇는 뒤틀린 흐름일 뿐입니다. 엄밀하게는 이것은 보수도 자유도 아닙니다. 보수 운동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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