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민심, 무덤덤하고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지만, 대의명분 잘 따져
⊙ “여의도 국회에서 가장 행사 안 하는 게 대전·충남 의원들”
⊙ “R&D 예산 삭감, 보수 정권에 부정적 인식 갖게 만들어”
⊙ “한동훈, 총선 때 대전에 두 번밖에 안 왔다”
⊙ “지역색 뚜렷한 영호남 의원들에 비해 우리(대전·충청)가 손해 보는 게 너무 많아”
⊙ 지난 4월 총선 때 민주당 대전 지역구 7석 싹쓸이… 2022년 지방선거 땐 대전시의회 국민의힘 19석, 민주당 1석(비례)
⊙ ‘성심당’ 여파인지, 대전 곳곳에 있는 숨은 현지인 맛집도 만석(萬席)
⊙ “여의도 국회에서 가장 행사 안 하는 게 대전·충남 의원들”
⊙ “R&D 예산 삭감, 보수 정권에 부정적 인식 갖게 만들어”
⊙ “한동훈, 총선 때 대전에 두 번밖에 안 왔다”
⊙ “지역색 뚜렷한 영호남 의원들에 비해 우리(대전·충청)가 손해 보는 게 너무 많아”
⊙ 지난 4월 총선 때 민주당 대전 지역구 7석 싹쓸이… 2022년 지방선거 땐 대전시의회 국민의힘 19석, 민주당 1석(비례)
⊙ ‘성심당’ 여파인지, 대전 곳곳에 있는 숨은 현지인 맛집도 만석(萬席)
- 3월 14일 이재명(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전 중구 으능정이거리에서 총선 출마자 등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대전 지역구 7석을 모두 가져갔다. 사진=조선DB
대전(大田)이란 지명은 ‘한밭’을 한자로 옮겨 쓴 말이다. 서울의 한강처럼 ‘한’은 ‘크다’는 뜻. 큰 밭, 즉 대전은 예로부터 넓은 들판이었다. 대전 주변을 보면 보문산, 식장산, 계족산, 비파령 같은 고만고만한 산들이다. 주산(主山)이 없는 평야분지가 대전이다.
한가한 농촌이던 대전은 1904년 6월 대전역이 들어서고 이듬해 5월 철도가 개통되면서 근대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경부선을 놓을 때 충청의 대표도시인 청주 대신 조치원-대전 라인이 선택되어 대전이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가면서 도시 발전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대전은 1950년 6·25전쟁 당시 대구·부산보다 먼저 임시수도였다. 인구 12만 명이던 작은 도시에 1주일도 안 돼 100만의 피란민이 쏟아져 들어왔다. 순식간에 여러 지방 사람들이 한데 몰려든 문화의 멜팅팟(melting pot·용광로)이 되었다. 도청은 임시중앙청이 되었고, 도청 회의실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다. 7월 16일 대구로 정부가 이동하기까지 이승만 대통령도 대전에 있는 충남도지사 관사에서 집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89년에 대전직할시, 1995년에는 대전광역시로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대전·세종·청주권’은 ‘대(大)서울’이나 ‘부산·울산·포항·거제권’에 견줄 만한 독립적인 메가시티(megacity)로 간주되고 있다. 충청도를 상징하는 여러 거점도시 중에서도 대전은 중부권 메가시티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사실 충청 인구가 호남 인구를 추월한 지도 오래되었다. 충청권 인구는 556만 명(대전 147만+충남 211만+충북 160만+세종 38만, 2023년 말)으로 호남권 인구 498만 명(광주 142만+전남 181만+전북 176만)을 앞선다.
“대통령도, 국정 방향도 충청 민심이 결정”
‘됐슈’ ‘알았슈’ ‘괜찮아유’ 등의 표현처럼 무덤덤하고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기질이지만,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잘 따지는 것이 대전·충청 민심의 특징으로 요약된다. 흔히 충청도 양반을 ‘아무리 추워도 곁불은 쬐지 않는’ 융통성 없는 이들로 표현하는 이유다.
물론 이익을 전혀 도외시하지는 않지만, 명분과 이익이 부딪칠 때는 주저 없이 ‘명분’을 택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민심을 알기 위해선 ‘명분’의 아이콘이 된 대전 민심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일반화되었다. 심지어 언론에서는 대전의 사전투표율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지난 4월 22대 4·10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대전 지역구 7곳을 싹쓸이했다. 4년 전 21대 총선도 똑같은 양상이었다. 반면 2022년 3·9 대선에서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49.55%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46.44%를 앞섰다. 같은 해 6·1 지방선거도 국민의힘이 석권했다. 대전시의회 구성은 국민의힘 19석, 더불어민주당 1석(비례), 무소속 1석으로 되어 있다.
이는 수도권의 민심 흐름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대통령도, 국정개혁 방향도 모두 충청 민심이 결정하더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이제는 감히 대전·충청 정치권을 ‘멍청도’ ‘핫바지’ 등과 같이 비하하는 톤으로 대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2년 반, 임기 절반을 지난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여론을 듣기 위해 대전을 찾았다. 대전은 들끓는 민심의 용광로이자 리트머스 시험지이기 때문이다.
‘노잼 도시’에서 ‘성심당의 도시’ ‘바람의 도시’로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전 ‘성심당’은 대전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동네 빵집이었다. 옛 도심인 대전 중구 은행동에서 즐겁게 놀다가 집에 귀가할 때 잠깐 들러 빵을 사가는, 흔하디흔한 코스 중 한 곳이었다.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지난 5년 사이 성심당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의 반열에 올랐다. 성심당 본점에서 빵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20분 이상 줄을 서야 하고, 내부에 들어가서도 인파에 치여 정신없이 빵을 골라 담아야 한다. 제한된 시간에 빵의 종류를 가릴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평소에 ‘매의 눈’ 같은 판단력을 키워야 한다. 성심당의 여파인지, 대전 곳곳에 있는 숨은 현지인 맛집들도 만석(萬席)이다. 오랜만에 가족 외식을 위해 동네 칼국숫집을 찾았을 때 대기 번호표가 50번대인 것을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과연 무엇이 ‘노잼 도시’ 대전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 대전역 앞에서 만난 60대 박성호(대전 탄방동)씨 이야기다.
“한때는 노잼, 답답하다는 느림의 미학이 통용되는 도시였죠. 표현을 잘 안 하는 게 대전 스타일? 대전 토박이와 친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고, 확 친해지는 스타일 아닙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지역 방언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사람이 많아서일 겁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도시지만 자존심이 강하죠.”
‘개척자들의 도시’
김우연(金禹鍊·64) 대전테크노파크(TP) 원장을 찾아갔다. 김 원장은 1979년 대전시에서 공직에 입문한 뒤 내무부와 행정안전부 인사기획관 등을 거쳐 대전시 감사관·자치행정국장, 시의회 사무처장, 한국지방재정공제회 공제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한 정통 관료 출신이다.
그에게 “대전은 지역감정의 색깔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충청권 출신이 약 40%, 영호남 출신이 각각 25%, 20%일 것으로 체감하고 있어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만든 대전만의 문화란 게 있습니다. 1970년대 한국표준연구소를 시작으로 대덕연구단지 조성 등 다양한 문화와 인식을 가진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도시가 대전입니다.”
― 그래서 대전을 ‘개척자들의 도시’로 부르는군요.
“맞습니다. 민심 역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정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특성이 있지요. 영호남은 나름의 지역색이 뚜렷하잖아요. 대전의 시선(視線)은 대한민국을 정확히 바라보는 자료(資料)이자 정보(情報)의 중심지라 생각해요.”
― 그래서 대전의 지역색을 두고 중립(中立), 무색(無色)의 성향을 띤다는 말이 나오는군요.
“과거로부터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만든 대전만의 문화가 현세대까지 이어져 지역감정의 색깔을 가지기 어려운 도시라 판단됩니다.”
대전은 1997년 정부대전종합청사(통계청·조달청을 비롯해 10개 정부기관 이전)가 서구 둔산동에 둥지를 틀고, 대전시청을 비롯해 대전고등·지방법원과 검찰청, 특허법원 등 관공서와 각종 은행, 쇼핑센터가 새로운 도심에 몰리면서 부(富)가 축적되었다.
두려운 ‘대전의 변심’
― 대전에서 자수성가한 분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각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새로운 문화는 협력과 존중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이에 따라 기질 자체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이 많은 점이 특징이죠. 대전인은 충청도와 대체적으로 비슷한 기질을 보이나 대전인이 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기질이 청년과 중장년층에 보입니다.”
그러나 대전은 밭 전(田)자처럼 다양한 지역민이 용광로처럼 섞인 만큼 ‘고루 모여 의견을 모으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영호남과 같은 뚜렷한 정치색이 없어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큰바람’에 좌우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대전 정무부시장을 지낸 백춘희(白春喜·66) 대전문화재단 대표를 만났다. 백 대표는 이장우(李莊雨) 대전시장의 최측근이다. 2022년 6·1 지방선거 당시 이 시장의 ‘대전미래캠프 선대위’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었다. 백 대표의 말이다.
“저는 역대 대전시장 선거를 3번이나 치렀을 만큼 민심의 민낯을 주목해 왔어요. 놀랍게도 대전 선거는 언제부턴가 전국적인 바람과 같이 가더군요. 특히 바람이 불면 확 넘어져 버립니다. 아무리 밑바닥부터 열심히 닦아도 어떤 ‘바람’이 불면 어렵습니다. 이 바람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선거의 변수, 대전 민심의 변수가 되고 있어요.”
백 대표는 대전의 바람, 더 나아가 대전의 변심(變心)이 두렵다고 했다. 이 바람이 선거철만 되면 어디에서 어디로 어떻게 불지 모르기 때문이다.
“R&D 예산 삭감, 카이스트 학생 반발 거세”
이번에는 MZ세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젊은 그들’ 눈에 비친 대전은 어떤 색깔의 도시일까.
이곳에서 오랫동안 자영업을 해온 소상공인 A씨와 대전 지역 B언론사 기자들,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 이미연(李美妍·27)씨와 만남을 갖고 지난 4월 총선에 영향을 미친 대전의 ‘거친’ 민심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나누었다.
윤석열 정부는 과학기술 R&D(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예산 삭감 대상에는 카이스트를 포함한 4대 과기원도 포함됐다.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미연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착잡한 심정이 든다.
― R&D 예산 삭감이 대전 민심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보수 정권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만들었죠. 특히 카이스트 학생들의 반발이 굉장히 거셌어요. 지난 2월16일 카이스트 졸업식에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해 축사하던 도중 한 졸업생이 ‘R&D 예산을 복원하라’고 소리쳤는데 곧바로 끌려나갔던 것을 기억하시죠? 그 분위기가 어느 정도 대전 총선에서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 졸업생 신분으로 참석한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신민기 대변인이 “생색내지 말고 R&D 예산을 복원하라”고 소리치다 경호원들에게 사지가 들린 채로 끌려나간 사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 예산 삭감이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이공계 대학원생은 교수님 아래 10~15명의 학생이 있는 ‘랩실(Laboratory)’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요. 랩실이 국가 과제나 사기업 과제를 따오면, 그에 따른 지원비를 받아서 월급도 받고 연구도 수행하죠. 그런데 예산이 삭감된 이후 과제를 수행하는 랩실이 현저히 줄어들었어요. 더 큰일은, 자연과학의 경우 결과값을 도출해 내는 데만 최소 5년이 걸리는 실험을 해야 하는데 중간에 예산이 삭감되어 버리니 실험을 이어갈 수 없는 랩실이 생겨난 겁니다. 실험이 중간에 딱 멈춰버리는 것이죠.”
“열심히 공부한 대가가 ‘예산 삭감’이라니……”
― 최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잖아요. R&D 예산이 삭감되면 한국에서 노벨 화학상이나 물리학상 등의 수상 가능성이 없어지는 걸 의미할까요?
“어려울 것 같아요. 특히 노벨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자연과학 계열을 살리지 않는 이상 노벨상 수상은 어렵습니다. 한국은 정말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많아요. 의대에 진학할 수도 있었던 사람들도 다수 있죠. 그런데도 이공계를 선택한 이유는 오로지 과학이 좋아서, 한국의 발전을 위해서예요. 그런데 열심히 공부한 대가가 ‘예산 삭감’이라뇨?”
― 윤석열 대통령은 현재 의과대학 증원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의대 증원이 된다면 이공계 인재들 다수가 의대로 진학하게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의대 쪽으로 빠지는 이공계 인재들이 많아질 겁니다. 사실 의대뿐만 아니라 변호사·변리사 등 여러 다른 전문직종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도 늘어났어요. R&D 예산 삭감을 발표한 이상, 어떤 방식이든 인재 유출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주 출신이라는 이미연씨는 대전 사람들의 성향에 대해 “공무원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정치색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이씨의 고향인 광주에서는 택시기사들이 승객에게 항상 “어디가 고향이냐”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고 묻는다 한다. 하지만 대전에 오고 난 이후, 정치와 관련된 질문을 택시기사는 물론 남에게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다고 한다. 중립국가 스위스에서도 초면에 정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꺼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도 이번 제22대 총선같이 대전에서 한쪽 당으로 치우친 결과가 나온 것은 현 정부를 심판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우연 대전TP 원장은 “예산 삭감에 대한 정부의 설명과 소통이 있었다면…”이라며 아쉬워했다.
“예산 장기 투자분 중 미비한 성과를 냈거나 중복되는 연구들은 우선순위를 조정해 미래 전략 산업에 더 투자하고 R&D 투자의 내실을 기하고자 했음이 충분히 국민에게 설명했어야 했어요.”
물가, 전국 평균보다 많이 올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소상공인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전에서 10년 넘게 요식업을 하고 있는 자영업자 A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A씨는 대전을 “여러 지역 사람들이 모여서 생긴 도시”라고 정의했다.
“차령산맥을 경계로 충청 북부는 기호(畿湖)지방과 가깝고 남부는 호남지방과 가까워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호지방 문화와 호남지방 문화의 중간적인 성격의 문화 특성을 지닙니다. 특히 충남은 영남과 호남을 잇는 삼남(三南)의 관문이었지요. 교통이 좋아 이동이 쉽고,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타지역 사람들보다 많았겠죠.
제 주위만 보더라도 뚜렷한 정치색을 가진 사람이 없어요. 대부분 중도이거나 선거철 공약을 보고 투표하는 정도죠. 그래서 선거 당시의 분위기가 대전을 통해 투영(投影)된다고 생각해요.”
―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대전 지역 소상공인들은 어떤 변화를 맞았다고 보십니까?
“매출 하락이 가장 큰 변화죠. 그전에는 하루에 300만원 정도를 판매했다면, 이후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어요. 여기다 원자재 값은 오르고……. 우크라·러시아 전쟁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윤 대통령 당선 이후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 대전 사람들의 외식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뜻인가요?
“제 생각에는 그런 것 같아요. 비단 저뿐만 아니라 다른 소상공인의 말을 들어봐도 곡(哭)소리뿐입니다. 그나마 배달 앱에서 발행하는 쿠폰으로 장사를 이어가고 있어요.”
충청지방통계청이 지난 4월에 발표한 ‘3월 대전·세종·충청지역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대전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13.66(2020년=100)이다. 전년 동월 대비 3.2%포인트 오른 데다 전국 평균 3.1%보다도 10포인트 이상이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시민의 발’인 택시나 버스·지하철 요금이 크게 올랐다. 교통카드 기준 버스는 일반 1250원에서 1500원으로 20.0%, 도시철도도 일반 1250원에서 1550원으로 24.0%가 올랐다. 민심이 거칠어진 이유가 ‘발’에서 시작됐으리라.
“세종이 커져야 대전도 같이 클 수 있다”
기자는 대전에 본사를 둔 B언론사 기자 C씨와 D씨를 만났다. 1년 차 막내 기자들로 각각 행정부와 사회부 소속이다. 기성(旣成)과 다른 젊은 시각이 알고 싶어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자가 기자를 인터뷰하는 상황을 가끔 마주하기도 한다. 그들도 대전에 보금자리를 잡고 있어서 과연 답변에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할지 무척 궁금해졌다.
― 22대 총선 때 대전을 야당이 ‘올킬(all kill)’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대전시민의 심판론이 강했습니다. R&D 예산 삭감 등 시민들이 실망할 수 있는 요소를 윤 대통령이 골고루 행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대전 국민의힘 후보들끼리 단합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더불어민주당의 경우는 같은 지역구가 아니더라도 서로 응원, 격려해 주는데 국민의힘 후보들은 그런 흥행 요소나 쇼맨십이 없었죠.”(C씨)
― 세종시가 탄생하면서 대전 인구 유출 문제가 대두됐었는데요. 대전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십니까?
“사실 세종시가 출범하기 전부터 대전시에서 많은 우려를 표했던 것으로 알아요. 그런데 세종으로 인구 유출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유동인구는 오히려 대전으로 유입이 많이 됐어요. 대전에 있는 신세계·롯데 백화점, 전국적으로 유명한 성심당까지 여러 요소가 세종보다는 대전에 갖춰져 있다 보니까 대전으로 돈이 유입되는 거죠. 결론적으로, 저는 세종이 커져야 대전도 같이 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종이 대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거죠.”(D씨)
― 대전 국회의원 중에 오피니언 리더는 누구라고 보나요?
“충청권은 메이저 정치인이 많이 없는 것이 흠인데요. 박범계 의원(대전 서구을)이나 조승래 의원(대전 유성구갑)이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겠네요.”(C씨)
“저는 다선인 조승래 의원이 더욱 큰 목소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 의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대전에서는 일단 알아주는 의원이고, 전국적으로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가 조금 더 자신의 목소리와 소신을 밝혔으면 합니다.”(D씨)
“정작 실리를 챙기지는 못해”
― 대전의 기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해요. 그런데 정작 실리를 챙기지는 못하죠. 정치색이 뚜렷하게 없다보니까 광주나 대구처럼 큰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결론적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경우에는 대전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D씨)
― 이장우 대전시장에 대한 시민들의 마음은 어떤가요?
“과거 동구청장을 할 때부터 원도심 표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어요. 최근 전국적으로 화제가 된 ‘0시 축제’ 기억나시죠? 이장우 시장이 동구청장일 때부터 해왔던 걸 대전 전체로 넓힌 것이거든요. 이런 축제를 계속하는 이유가 원도심 표를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해요. 원도심은 표심이 대부분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형태를 보이고, 투표자 수가 더 많거든요.”(C씨)
― 앞으로 대전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정치색이 없다는 건 긍정적인 요소일 수도 있겠으나, 대전 지역에 도움이 되는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 실리를 챙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나는 중립이야’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투표에 임하다가는 지역 발전이 제대로 될 수 없어요. 과격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대전에 이익을 주는 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D씨)
‘대전식 중립’에 선을 긋는 기자들은 ‘객관적인’ 시각을 지닌 것으로 보였다.
“국힘 시장은 잘하는데 대통령 때문에……’
이번에는 대전 지역 여론을 주도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보았다. 앞서 인터뷰한 김우연 대전TP 원장과 백춘희 대표를 비롯해 대전시의회 송인석(宋寅碩) 산업건설위원장과 정명국(鄭明國) 행정자치위원장, 이동한(李東翰) 대전과학산업진흥원 원장, 그리고 대전 중견언론인 윤희진(尹熙璡) 《중도일보》 편집국 부국장(용산 대통령실 출입) 등을 만나 그룹인터뷰를 가졌다. 이들은 모두 대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대전·충청이 지닌 저력과 기질에 주목하면서 ‘중부권 메가시티’라는 충청의 저력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요동치는 대전의 민심 속살에 대해 질문해 보았다.
백춘희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1월 7일 기자회견에 대해 “더 고개를 숙였어야 옳았다”고 말했다.
“잘못을 했다면 잘못한 팩트에 대해 분명하게 사과를 했어야 해요. 지지율이 그렇게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이 실망했다는 의미거든요. 정말 진정성을 담아, 사과할 것은 정직하게 표현해야 된다고 봐요. 지금 국민의 정치수준이 엄청 높아졌어요.
솔직히 걱정스럽습니다. 대전시민을 많이 만나보면 ‘이장우 시장은 잘하는데 대통령 때문에 더 힘들어질까 봐 걱정’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답답해 죽겠어요.”
김우연 원장은 또 “이런 여론이 있는건 알고 있지만 우주 삼각 클러스터, 방사청 조기 이전과 같이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이장우 대전시장과 함께 일궈내는 부분도 잘 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외교와 안보 부분은 좌고우면 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서 나아가고 있음도 봐야 할 것입니다.
다만, 대통령이 정치적인 부분 보다는 국가를 위한 생각이 더 크다 보니 잘 보여지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은 우려스러워요. 대전과 함께 잘 헤쳐 나아갈 것이라 기대합니다.”
“한동훈 대표는 맨날 경상도만 갔어요”
국민의힘이 지난 10월 28일 공개한 《22대 총선 백서》에서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호주 대사 임명, 의대 증원 정책, 대파 논쟁 등 정권심판론에 당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실기(失機) 요인으로 지목되었다. 대파 논쟁은 선거를 앞둔 3월 18일 윤 대통령이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방문해 4000원이 넘는 대파 한 단 값에 대해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한 발언으로 촉발됐다.
송인석 위원장은 “당시 총선 이슈가 ‘빽(가방)’과 ‘파’였다”며 “여기다 민주당에서 전 국민 25만원 지급을 내건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돈과 빽, 파가 선거를 삼켜버렸습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대전 공천을 막판까지 끄는 바람에 분위기를 잡는 데 실패했지요. 특히 대전 중구는 계속 끌다가 막판에 공천을 줬잖아요. 게다가 한동훈 대표는 맨날 경상도만 갔어요.”
― 한 대표가 대전과 충청에 무척 공을 들인 것으로 압니다만.
그러나 백 대표와 정 위원장은 “대전에 두 번밖에 안 왔다”며 반박했다. 정 위원장은 “저희가 볼 때 중앙에서 대전은 버리는 카드로 여겼다”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백 대표와 송 위원장은 “국민의힘 대전 공천에 문제가 가장 많았다”고 했다.
“주지 말았어야 할 공천을 줬기 때문에 100% 떨어졌다고 봐요. 신선한 사람들로 물갈이를 하든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막판까지 가서 경선을 붙이는 식이 됐어요.”
김우연 원장도 “총선 후보들이 지방선거 후보 경선에 나와서 떨어졌다가 다시 국회의원 나왔던 분들이다. 시민 사이에 인지도는 있었지만, ‘저 사람들 또 왜 저러지?’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바람에 가고, 흐름에 가는 도시”
― 국민의힘에서 대전을 버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서울·경기만 이겨도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어떤 자만감이 있었다고 봐요. 대전은 많아봤자 7석이잖아요.”(백춘희)
“서울에서 볼 때 바람에 흔들리는 데가 충청도고, 특히 대전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굳이 여기에 공들여 봤자 바람에 따라 결론이 나니까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대요. 그게 패착(敗着)이었던 것이죠. 후보들이 중앙당에다 국회의원 지원 유세를 요청해도 잘 안 내려왔다고 해요.”(정명국)
“솔직히 후보자들도 열심히 안 했어요. 공천 문제도 있지만 후보 자질에도 문제가 있어요. 죽어라고 뛰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다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거든요. 잘못된 거죠. ‘우리는 뒤돌아 갈 데 없다’ 생각해야 되는데, 떨어지면 변호사 하면 되니까.”(백춘희)
22대 대전 7개 선거구 중에서 변호사 출신 국민의힘 후보는 조수연(서구갑)·양홍규(서구을)·박경호(대덕구) 3명이었다.
― 한동훈 대표가 민주당에서 중진인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을)을 모셔오지 않았습니까. 그게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그 양반을 영입했다고 여기서 표가 됐느냐? 전혀 없었잖아요. 전혀 없었어요!”(백춘희)
“이상민 의원의 인지도가 그렇게 높은데도, 처음 나온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출신의 민주당 황정아 의원)한테 진 것을 보면 여기는 그냥, 바람에 가고 흐름에 가는 도시가 대전이라는 거죠. 민주당은 진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막판에 공천해서……. 그분(황정아)은 선거운동도 얼마 안 했어요.”(정명국)
“국회의원-시의회 간 대화 없어”
이장우 대전시장을 비롯해 대전시의회 조원휘 의장과 황경아 부의장을 포함, 시의원 21명 중 19명이 국민의힘 소속이다. 야당은 더불어민주당 1명(김민숙·비례대표), 무소속 1명(송활섭·대덕구2)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회의원 지역구는 민주당이 7석 모두를 가져갔다.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분열 양상이 심각한 셈이다.
국회의원은 헌법과 법률의 개정 및 의결과 관련된 일을 하고, 정부 예산안을 심의하고 확정한다. 국비 확보는 국회의원이 정부부처를 상대로 압박과 회유, 읍소로 빼앗아 와야 한다. 비록 국회의원 출신이라도 이 시장 혼자서 중앙정부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7석 모두를 가져갔어요. 국회의원과 대전시의회가 정당은 달라도 대화는 하나요?
정명국 위원장은 “(대화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보탰다.
“주민들에게 실생활에 직접 도움을 주는 이가 시의원이고 구의원입니다. 제 관할 동(洞)이 4개동인데 지난 2년간 주차장을 만들고 시비(市費)를 제가 다 확보했어요. 그동안 국회의원은 재선까지 했는데 본인이 이뤄놓은 게 한 개도 없어요. 그러면 국회의원 역할이 뭐냐는 거죠.”
― 서로 도움을 청하고 소통할 일이 없나요?
“그런 건 없죠. 그분(국회의원)한테 도움을 청할 일이 없어요. 오히려 우리가 한 걸 가지고 본인이 했다고 하는 판이니까.”(정명국)
“중앙에서 특별교부금이 내려온 것을 자기가 다 한 것처럼 현수막으로 포장만 하지요.”(송인석)
“능력이 없어서 못 가져오는 거지”
윤희진 부국장은 다른 의견을 냈다.
“국회의원의 주임무는 입법과 함께 정부 예산을 심의하는 겁니다. 어쨌든 국비를 지역에 가져오는 역할을 하거든요. 시의원들도 시에서 조례 만들고 시 예산을 구(區)로 가져오려 하잖아요? 제가 여의도에서 보면, 국회의원회관에서 가장 행사를 안 하는 지역이 대전·충남 국회의원이에요. 그러나 영호남 국회의원은 달라요. 정치색이 단일하니까 단합도 잘해요. 의원회관 행사를 하루는 영남 의원이, 하루는 호남 의원이 합니다. 심지어 영호남은 중앙당과 국회의원이 머리를 맞대 예산협의회도 가집니다. 반면 대전 국회의원은 시장과 예산을 협력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드물어요.
그리고 입법을 할 때도 대전의 현안과 관련한 것도 만들 수 있을 텐데, 안 합니다. 당이 다르다보니 견제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대전·충청이 국회에서, 국가에서 얻어낼 사안들에 대해서 손해를 보는 게 많다고 봅니다. 이 시장이 이런 것을 혁파를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유독 대전에서만 지역 국회의원과 예산협의회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너무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윤 부국장의 계속된 말이다.
“지역색이 뚜렷한 영호남 의원들에 비해 우리(대전·충청)가 손해 보는 게 너무 많아요. 영호남 의원은 단체장과 합심해서 예산을 챙기는데 우리는 서로 싸워가지고 못 가져가거든요. 타지역은 공천 때 그렇게 싸우더라도 어쨌든 (선거가) 끝나면 진짜 정부 예산에 빨대를 꽂아 줄줄이 가져가요.”
여기서 백 대표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지방정부와 국회의원이) 싸우긴 뭘 싸워, 능력이 없어서 못 가져오는 거지. 시장이 가져올 수 있겠어? 그건 국회의원들이 가져와야지. 창피해 죽겠어. 다리 놓는 데 1억원 확보했대. 고작 1억원 따내자고 거기 앉아가지고 국회의원 하나? 대전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말고, 가서 정부 예산이나 따라고 해주세요.”
오죽 답답하면 백 대표가 저런 말을 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시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정치적 중립성이 때로 필요”
― 현 정부 들어 중앙 인사나 국비 지원 면에서 대전·충청권 예산이 대구·경북이나 부산·울산·경남에 비해 소외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우연 원장은 “예전부터 지역민들은 예산 배분이 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고 느꼈을 것”이라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민선 8기에 들어선 대전은 2023년도 기점으로 국비 4조원 시대를 개막했어요. 전년 대비 7.3%가 증가한 수치입니다. 2024년에는 다시 4.1% 증가된 4조4492억 원이 국비로 반영됐습니다. 긴축재정에도 이런 성과를 냈다고요. 이장우 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의 초당적 협력의 성과라고 보입니다. 다만 내년도는 현재보다 세수 등의 여건이 더 좋지 않은 상황이라 걱정이 커요.”
― 국민의힘 대전시장 1명 대 민주당 국회의원 7명의 구도는 시정 활동 및 협치(協治)에 어려움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 원장은 “시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정치적 중립성이 때로 필요하고, 이는 곧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대전시민들의 만족도도 계속 상위권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지난 22대 총선 당시 대전 여야 정치권은 R&D 예산 삭감 책임을 두고 논란을 벌였다. 당시 국민의힘 후보 등은 “이재명표 포퓰리즘 예산을 증액하며 과학기술계 예산을 지키지 못한 것에 (민주당도) 책임이 있는데 발뺌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후보 등은 “R&D 예산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삭감해 연구개발특구가 있는 대전과 대한민국의 미래가 무너지고 있다”고 비난했었다. 결과적으로 R&D 예산 삭감이 대전 표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R&D, 연구원들의 생계 문제”
이동한 원장은 “R&D 예산 삭감이 선거에 끼친 영향이 굉장히 컸지만, R&D 예산이 부족한 게 아니라 너무 방만하게 쓰였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 정부가 방만하게 쓰였다고 판단해 R&D 예산을 줄인다고 했었죠.
“맞습니다. R&D 예산이 방만한 것을 과학인 스스로 반성을 해야 옳아요. 그런데 과학인들은 자기들끼리 싸워요. 그냥 막 놓아먹기 식으로 좀 방만하게 쓰여서 정부가 차단하려고 했는데, 취지는 옳았으나 역효과가 난 것이지요.”
백 대표가 거들었다.
“정확하게 짚었는데, 타이밍이 아닌 시기에 그걸 터뜨려서 문제가 된 거라고 봐요. 왜 선거를 앞두고…….”
이 원장은 “R&D 예산 삭감은 좀 아마추어적인 정책이었다”고 언급했다.
윤희진 부국장은 “저희한테 제보 많이 들어왔던 내용들 중 하나가 이공계 대학원생들 얘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대학원생들이 매달 180만원씩을 받았는데 R&D 예산 삭감으로 40만원이 깎였다는 거예요. 실제로 R&D 예산을 주먹구구식으로 쓰는 이는 그 윗대가리들인데 가장 피해 본 사람들이 젊은 연구원들이에요. 다시 말해, R&D 삭감이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 연구원들의 생계 문제가 선거에 영향을 미쳤어요.”
분명 그들이 사용한 ‘아마추어’와 ‘윗대가리’는 4개의 음절로 이루어진 것 말고 공통점이 없는데, 이번 R&D 상황에서는 호환이 가능한 것일까? 정명국 위원장도 거들었다.
“진짜 연구비는 하나도 깎인 게 없대요. 정부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연구에 꼭 필요한 R&D 예산은 1원도 삭감된 게 없답니다.”
김우연 원장은 “타이밍도 안 좋았다”며 “대통령 말 한마디에 R&D 예산을 그냥 깎아버린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R&D 예산 삭감을 먼저 논리를 세워 설득해야 국민들이 이해할 텐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깎았다’는 식으로 야당이 포장해 이슈화를 해버린 겁니다. 실제로 아무런 영향을 안 받는 상위 연구자들마저 싫어하게 된 거죠.”
정부·여당, 대전에 대한 구애 실패
김태명 한남대 명예교수가 집필한 《대전학총론》을 읽어보았다. 대전 사람의 기질을 설명하며 “여유 있고 끈질기며 잘 나서지 않고 감정과 자기표현이 적은 대전 사람들의 성격이 ‘됐슈’ ‘알았슈’ ‘괜찮아유’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기자가 만나본 대전 사람들은 더는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 했다. 특히 젊은 MZ 대전인들은 충청도 방언을 안 쓰거나 굳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개척자들의 도시’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대전광역시 공식 유튜브 채널 ‘대전TV’에도 ‘개척자들의 도시 대전’이라는 제목 하에 대전을 소개하고 있다. 그만큼 ‘개척자’ DNA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메가시티라 할 수 있다. 잠시, ‘개척자(pioneer)’의 어원을 살펴보자. ‘pioneer’는 라틴어 ‘pedester’에서 유래한 것으로, ‘발로 걷는’을 뜻하며, ‘보병’ 또는 ‘지상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이후 프랑스어 ‘pionnier’가 되어 군대 ‘보병’의 의미와 더불어 ‘기지나 도로를 개척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분야나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라는 넓은 의미로 확장되었다.
지난 총선 때 여당은 공천에 실패했고, 무엇보다 대전에 대한 구애(求愛)도 실패했다.
어쩌면 대전은 ‘바람’에 민감한 게 아니라, 바람이란 도구를 스스로 만들어 자기 목소리를 확장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대통령과 지방정부는 여당에게, 국회의원은 야당에게 전권을 맡긴단 말인가. 이러한 ‘하이브리드’ 사고를 가진 대전시민은 무척 현명해 보인다. 그러나 시너지를 모으지 못하는 피해도 대전·충청 시민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게다가 바람이 ‘변심’으로 체감되기도 한다.
성심당에서
앞으로 정부·여당이, 또는 야당이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어떤 소용돌이를 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대전을 더욱 주목해야 할 이유다.
그러나 “대전의 총선 민심은 자기 당이 잘했다기보다 상대당의 무능과 잘못으로 어부지리로 승리하더라”는 말이 더는 나오게 해선 안 된다. 이는 대전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괜찮아유’라는 말로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하버드대 데이비드 랜즈(David Landes) 교수는 그의 저서 《국가의 부와 빈곤(The Wealth and Poverty of Nations)》에서 ‘평야 지역은 지리적 이점 덕분에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외부 문화와 접촉이 잦아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유도하는 조건이 된다’고 언급한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특징이 공동체와 사회의 경제적 번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암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중간에 위치한 평야의 도시, 개척자의 도시 대전이 여러 긍정적인 자원을 모아 결집의 허브가 되고, 바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방향을 잡으며, 대한민국의 힘찬 구심력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요새 정치권이 어수선한 탓인지, 마음이 슬퍼져서 사람들이 붐비는 성심당에서 빵을 샀다. 슬퍼서 빵을 많이 샀다.⊙
한가한 농촌이던 대전은 1904년 6월 대전역이 들어서고 이듬해 5월 철도가 개통되면서 근대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경부선을 놓을 때 충청의 대표도시인 청주 대신 조치원-대전 라인이 선택되어 대전이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가면서 도시 발전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대전은 1950년 6·25전쟁 당시 대구·부산보다 먼저 임시수도였다. 인구 12만 명이던 작은 도시에 1주일도 안 돼 100만의 피란민이 쏟아져 들어왔다. 순식간에 여러 지방 사람들이 한데 몰려든 문화의 멜팅팟(melting pot·용광로)이 되었다. 도청은 임시중앙청이 되었고, 도청 회의실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다. 7월 16일 대구로 정부가 이동하기까지 이승만 대통령도 대전에 있는 충남도지사 관사에서 집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89년에 대전직할시, 1995년에는 대전광역시로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대전·세종·청주권’은 ‘대(大)서울’이나 ‘부산·울산·포항·거제권’에 견줄 만한 독립적인 메가시티(megacity)로 간주되고 있다. 충청도를 상징하는 여러 거점도시 중에서도 대전은 중부권 메가시티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사실 충청 인구가 호남 인구를 추월한 지도 오래되었다. 충청권 인구는 556만 명(대전 147만+충남 211만+충북 160만+세종 38만, 2023년 말)으로 호남권 인구 498만 명(광주 142만+전남 181만+전북 176만)을 앞선다.
“대통령도, 국정 방향도 충청 민심이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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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 오전 대전의 한 식당에서 주인과 직원이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생중계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조선DB |
물론 이익을 전혀 도외시하지는 않지만, 명분과 이익이 부딪칠 때는 주저 없이 ‘명분’을 택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민심을 알기 위해선 ‘명분’의 아이콘이 된 대전 민심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일반화되었다. 심지어 언론에서는 대전의 사전투표율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지난 4월 22대 4·10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대전 지역구 7곳을 싹쓸이했다. 4년 전 21대 총선도 똑같은 양상이었다. 반면 2022년 3·9 대선에서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49.55%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46.44%를 앞섰다. 같은 해 6·1 지방선거도 국민의힘이 석권했다. 대전시의회 구성은 국민의힘 19석, 더불어민주당 1석(비례), 무소속 1석으로 되어 있다.
이는 수도권의 민심 흐름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대통령도, 국정개혁 방향도 모두 충청 민심이 결정하더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이제는 감히 대전·충청 정치권을 ‘멍청도’ ‘핫바지’ 등과 같이 비하하는 톤으로 대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2년 반, 임기 절반을 지난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여론을 듣기 위해 대전을 찾았다. 대전은 들끓는 민심의 용광로이자 리트머스 시험지이기 때문이다.
‘노잼 도시’에서 ‘성심당의 도시’ ‘바람의 도시’로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전 ‘성심당’은 대전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동네 빵집이었다. 옛 도심인 대전 중구 은행동에서 즐겁게 놀다가 집에 귀가할 때 잠깐 들러 빵을 사가는, 흔하디흔한 코스 중 한 곳이었다.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지난 5년 사이 성심당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의 반열에 올랐다. 성심당 본점에서 빵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20분 이상 줄을 서야 하고, 내부에 들어가서도 인파에 치여 정신없이 빵을 골라 담아야 한다. 제한된 시간에 빵의 종류를 가릴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평소에 ‘매의 눈’ 같은 판단력을 키워야 한다. 성심당의 여파인지, 대전 곳곳에 있는 숨은 현지인 맛집들도 만석(萬席)이다. 오랜만에 가족 외식을 위해 동네 칼국숫집을 찾았을 때 대기 번호표가 50번대인 것을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과연 무엇이 ‘노잼 도시’ 대전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 대전역 앞에서 만난 60대 박성호(대전 탄방동)씨 이야기다.
“한때는 노잼, 답답하다는 느림의 미학이 통용되는 도시였죠. 표현을 잘 안 하는 게 대전 스타일? 대전 토박이와 친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고, 확 친해지는 스타일 아닙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지역 방언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사람이 많아서일 겁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도시지만 자존심이 강하죠.”
‘개척자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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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옛 모습. 한가한 농촌이던 대전은 1904년 6월 대전역이 들어서고 이듬해 5월 철도가 개통되면서 근대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사진=대전시 |
그에게 “대전은 지역감정의 색깔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충청권 출신이 약 40%, 영호남 출신이 각각 25%, 20%일 것으로 체감하고 있어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만든 대전만의 문화란 게 있습니다. 1970년대 한국표준연구소를 시작으로 대덕연구단지 조성 등 다양한 문화와 인식을 가진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도시가 대전입니다.”
― 그래서 대전을 ‘개척자들의 도시’로 부르는군요.
“맞습니다. 민심 역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정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특성이 있지요. 영호남은 나름의 지역색이 뚜렷하잖아요. 대전의 시선(視線)은 대한민국을 정확히 바라보는 자료(資料)이자 정보(情報)의 중심지라 생각해요.”
― 그래서 대전의 지역색을 두고 중립(中立), 무색(無色)의 성향을 띤다는 말이 나오는군요.
“과거로부터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만든 대전만의 문화가 현세대까지 이어져 지역감정의 색깔을 가지기 어려운 도시라 판단됩니다.”
대전은 1997년 정부대전종합청사(통계청·조달청을 비롯해 10개 정부기관 이전)가 서구 둔산동에 둥지를 틀고, 대전시청을 비롯해 대전고등·지방법원과 검찰청, 특허법원 등 관공서와 각종 은행, 쇼핑센터가 새로운 도심에 몰리면서 부(富)가 축적되었다.
두려운 ‘대전의 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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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을 51일 앞둔 2월 19일 오후, 대전시 선거관리위원회가 건물 외벽에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대형 현수막을 걸고 있다. 사진=조선DB |
“각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새로운 문화는 협력과 존중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이에 따라 기질 자체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이 많은 점이 특징이죠. 대전인은 충청도와 대체적으로 비슷한 기질을 보이나 대전인이 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기질이 청년과 중장년층에 보입니다.”
그러나 대전은 밭 전(田)자처럼 다양한 지역민이 용광로처럼 섞인 만큼 ‘고루 모여 의견을 모으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영호남과 같은 뚜렷한 정치색이 없어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큰바람’에 좌우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대전 정무부시장을 지낸 백춘희(白春喜·66) 대전문화재단 대표를 만났다. 백 대표는 이장우(李莊雨) 대전시장의 최측근이다. 2022년 6·1 지방선거 당시 이 시장의 ‘대전미래캠프 선대위’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었다. 백 대표의 말이다.
“저는 역대 대전시장 선거를 3번이나 치렀을 만큼 민심의 민낯을 주목해 왔어요. 놀랍게도 대전 선거는 언제부턴가 전국적인 바람과 같이 가더군요. 특히 바람이 불면 확 넘어져 버립니다. 아무리 밑바닥부터 열심히 닦아도 어떤 ‘바람’이 불면 어렵습니다. 이 바람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선거의 변수, 대전 민심의 변수가 되고 있어요.”
백 대표는 대전의 바람, 더 나아가 대전의 변심(變心)이 두렵다고 했다. 이 바람이 선거철만 되면 어디에서 어디로 어떻게 불지 모르기 때문이다.
“R&D 예산 삭감, 카이스트 학생 반발 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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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에서 정부의 R&D 예산 삭감 논란이 대전 선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민의힘 대전시당은 R&D 예산 복원을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말 한마디에 R&D 예산이 삭감됐다고 비난했다. 사진=대전MBC 유튜브 캡처 |
이곳에서 오랫동안 자영업을 해온 소상공인 A씨와 대전 지역 B언론사 기자들,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 이미연(李美妍·27)씨와 만남을 갖고 지난 4월 총선에 영향을 미친 대전의 ‘거친’ 민심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나누었다.
윤석열 정부는 과학기술 R&D(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예산 삭감 대상에는 카이스트를 포함한 4대 과기원도 포함됐다.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미연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착잡한 심정이 든다.
― R&D 예산 삭감이 대전 민심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보수 정권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만들었죠. 특히 카이스트 학생들의 반발이 굉장히 거셌어요. 지난 2월16일 카이스트 졸업식에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해 축사하던 도중 한 졸업생이 ‘R&D 예산을 복원하라’고 소리쳤는데 곧바로 끌려나갔던 것을 기억하시죠? 그 분위기가 어느 정도 대전 총선에서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 졸업생 신분으로 참석한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신민기 대변인이 “생색내지 말고 R&D 예산을 복원하라”고 소리치다 경호원들에게 사지가 들린 채로 끌려나간 사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 예산 삭감이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이공계 대학원생은 교수님 아래 10~15명의 학생이 있는 ‘랩실(Laboratory)’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요. 랩실이 국가 과제나 사기업 과제를 따오면, 그에 따른 지원비를 받아서 월급도 받고 연구도 수행하죠. 그런데 예산이 삭감된 이후 과제를 수행하는 랩실이 현저히 줄어들었어요. 더 큰일은, 자연과학의 경우 결과값을 도출해 내는 데만 최소 5년이 걸리는 실험을 해야 하는데 중간에 예산이 삭감되어 버리니 실험을 이어갈 수 없는 랩실이 생겨난 겁니다. 실험이 중간에 딱 멈춰버리는 것이죠.”
“열심히 공부한 대가가 ‘예산 삭감’이라니……”
― 최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잖아요. R&D 예산이 삭감되면 한국에서 노벨 화학상이나 물리학상 등의 수상 가능성이 없어지는 걸 의미할까요?
“어려울 것 같아요. 특히 노벨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자연과학 계열을 살리지 않는 이상 노벨상 수상은 어렵습니다. 한국은 정말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많아요. 의대에 진학할 수도 있었던 사람들도 다수 있죠. 그런데도 이공계를 선택한 이유는 오로지 과학이 좋아서, 한국의 발전을 위해서예요. 그런데 열심히 공부한 대가가 ‘예산 삭감’이라뇨?”
― 윤석열 대통령은 현재 의과대학 증원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의대 증원이 된다면 이공계 인재들 다수가 의대로 진학하게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의대 쪽으로 빠지는 이공계 인재들이 많아질 겁니다. 사실 의대뿐만 아니라 변호사·변리사 등 여러 다른 전문직종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도 늘어났어요. R&D 예산 삭감을 발표한 이상, 어떤 방식이든 인재 유출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주 출신이라는 이미연씨는 대전 사람들의 성향에 대해 “공무원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정치색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이씨의 고향인 광주에서는 택시기사들이 승객에게 항상 “어디가 고향이냐”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고 묻는다 한다. 하지만 대전에 오고 난 이후, 정치와 관련된 질문을 택시기사는 물론 남에게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다고 한다. 중립국가 스위스에서도 초면에 정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꺼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도 이번 제22대 총선같이 대전에서 한쪽 당으로 치우친 결과가 나온 것은 현 정부를 심판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우연 대전TP 원장은 “예산 삭감에 대한 정부의 설명과 소통이 있었다면…”이라며 아쉬워했다.
“예산 장기 투자분 중 미비한 성과를 냈거나 중복되는 연구들은 우선순위를 조정해 미래 전략 산업에 더 투자하고 R&D 투자의 내실을 기하고자 했음이 충분히 국민에게 설명했어야 했어요.”
물가, 전국 평균보다 많이 올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소상공인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전에서 10년 넘게 요식업을 하고 있는 자영업자 A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A씨는 대전을 “여러 지역 사람들이 모여서 생긴 도시”라고 정의했다.
“차령산맥을 경계로 충청 북부는 기호(畿湖)지방과 가깝고 남부는 호남지방과 가까워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호지방 문화와 호남지방 문화의 중간적인 성격의 문화 특성을 지닙니다. 특히 충남은 영남과 호남을 잇는 삼남(三南)의 관문이었지요. 교통이 좋아 이동이 쉽고,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타지역 사람들보다 많았겠죠.
제 주위만 보더라도 뚜렷한 정치색을 가진 사람이 없어요. 대부분 중도이거나 선거철 공약을 보고 투표하는 정도죠. 그래서 선거 당시의 분위기가 대전을 통해 투영(投影)된다고 생각해요.”
―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대전 지역 소상공인들은 어떤 변화를 맞았다고 보십니까?
“매출 하락이 가장 큰 변화죠. 그전에는 하루에 300만원 정도를 판매했다면, 이후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어요. 여기다 원자재 값은 오르고……. 우크라·러시아 전쟁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윤 대통령 당선 이후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 대전 사람들의 외식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뜻인가요?
“제 생각에는 그런 것 같아요. 비단 저뿐만 아니라 다른 소상공인의 말을 들어봐도 곡(哭)소리뿐입니다. 그나마 배달 앱에서 발행하는 쿠폰으로 장사를 이어가고 있어요.”
충청지방통계청이 지난 4월에 발표한 ‘3월 대전·세종·충청지역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대전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13.66(2020년=100)이다. 전년 동월 대비 3.2%포인트 오른 데다 전국 평균 3.1%보다도 10포인트 이상이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시민의 발’인 택시나 버스·지하철 요금이 크게 올랐다. 교통카드 기준 버스는 일반 1250원에서 1500원으로 20.0%, 도시철도도 일반 1250원에서 1550원으로 24.0%가 올랐다. 민심이 거칠어진 이유가 ‘발’에서 시작됐으리라.
“세종이 커져야 대전도 같이 클 수 있다”
기자는 대전에 본사를 둔 B언론사 기자 C씨와 D씨를 만났다. 1년 차 막내 기자들로 각각 행정부와 사회부 소속이다. 기성(旣成)과 다른 젊은 시각이 알고 싶어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자가 기자를 인터뷰하는 상황을 가끔 마주하기도 한다. 그들도 대전에 보금자리를 잡고 있어서 과연 답변에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할지 무척 궁금해졌다.
― 22대 총선 때 대전을 야당이 ‘올킬(all kill)’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대전시민의 심판론이 강했습니다. R&D 예산 삭감 등 시민들이 실망할 수 있는 요소를 윤 대통령이 골고루 행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대전 국민의힘 후보들끼리 단합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더불어민주당의 경우는 같은 지역구가 아니더라도 서로 응원, 격려해 주는데 국민의힘 후보들은 그런 흥행 요소나 쇼맨십이 없었죠.”(C씨)
― 세종시가 탄생하면서 대전 인구 유출 문제가 대두됐었는데요. 대전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십니까?
“사실 세종시가 출범하기 전부터 대전시에서 많은 우려를 표했던 것으로 알아요. 그런데 세종으로 인구 유출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유동인구는 오히려 대전으로 유입이 많이 됐어요. 대전에 있는 신세계·롯데 백화점, 전국적으로 유명한 성심당까지 여러 요소가 세종보다는 대전에 갖춰져 있다 보니까 대전으로 돈이 유입되는 거죠. 결론적으로, 저는 세종이 커져야 대전도 같이 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종이 대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거죠.”(D씨)
― 대전 국회의원 중에 오피니언 리더는 누구라고 보나요?
“충청권은 메이저 정치인이 많이 없는 것이 흠인데요. 박범계 의원(대전 서구을)이나 조승래 의원(대전 유성구갑)이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겠네요.”(C씨)
“저는 다선인 조승래 의원이 더욱 큰 목소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 의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대전에서는 일단 알아주는 의원이고, 전국적으로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가 조금 더 자신의 목소리와 소신을 밝혔으면 합니다.”(D씨)
“정작 실리를 챙기지는 못해”
― 대전의 기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해요. 그런데 정작 실리를 챙기지는 못하죠. 정치색이 뚜렷하게 없다보니까 광주나 대구처럼 큰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결론적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경우에는 대전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D씨)
― 이장우 대전시장에 대한 시민들의 마음은 어떤가요?
“과거 동구청장을 할 때부터 원도심 표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어요. 최근 전국적으로 화제가 된 ‘0시 축제’ 기억나시죠? 이장우 시장이 동구청장일 때부터 해왔던 걸 대전 전체로 넓힌 것이거든요. 이런 축제를 계속하는 이유가 원도심 표를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해요. 원도심은 표심이 대부분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형태를 보이고, 투표자 수가 더 많거든요.”(C씨)
― 앞으로 대전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정치색이 없다는 건 긍정적인 요소일 수도 있겠으나, 대전 지역에 도움이 되는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 실리를 챙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나는 중립이야’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투표에 임하다가는 지역 발전이 제대로 될 수 없어요. 과격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대전에 이익을 주는 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D씨)
‘대전식 중립’에 선을 긋는 기자들은 ‘객관적인’ 시각을 지닌 것으로 보였다.
“국힘 시장은 잘하는데 대통령 때문에……’
이번에는 대전 지역 여론을 주도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보았다. 앞서 인터뷰한 김우연 대전TP 원장과 백춘희 대표를 비롯해 대전시의회 송인석(宋寅碩) 산업건설위원장과 정명국(鄭明國) 행정자치위원장, 이동한(李東翰) 대전과학산업진흥원 원장, 그리고 대전 중견언론인 윤희진(尹熙璡) 《중도일보》 편집국 부국장(용산 대통령실 출입) 등을 만나 그룹인터뷰를 가졌다. 이들은 모두 대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대전·충청이 지닌 저력과 기질에 주목하면서 ‘중부권 메가시티’라는 충청의 저력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요동치는 대전의 민심 속살에 대해 질문해 보았다.
백춘희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1월 7일 기자회견에 대해 “더 고개를 숙였어야 옳았다”고 말했다.
“잘못을 했다면 잘못한 팩트에 대해 분명하게 사과를 했어야 해요. 지지율이 그렇게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이 실망했다는 의미거든요. 정말 진정성을 담아, 사과할 것은 정직하게 표현해야 된다고 봐요. 지금 국민의 정치수준이 엄청 높아졌어요.
솔직히 걱정스럽습니다. 대전시민을 많이 만나보면 ‘이장우 시장은 잘하는데 대통령 때문에 더 힘들어질까 봐 걱정’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답답해 죽겠어요.”
김우연 원장은 또 “이런 여론이 있는건 알고 있지만 우주 삼각 클러스터, 방사청 조기 이전과 같이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이장우 대전시장과 함께 일궈내는 부분도 잘 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외교와 안보 부분은 좌고우면 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서 나아가고 있음도 봐야 할 것입니다.
다만, 대통령이 정치적인 부분 보다는 국가를 위한 생각이 더 크다 보니 잘 보여지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은 우려스러워요. 대전과 함께 잘 헤쳐 나아갈 것이라 기대합니다.”
“한동훈 대표는 맨날 경상도만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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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일 오전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전시당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총선 승리를 다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조선DB |
송인석 위원장은 “당시 총선 이슈가 ‘빽(가방)’과 ‘파’였다”며 “여기다 민주당에서 전 국민 25만원 지급을 내건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돈과 빽, 파가 선거를 삼켜버렸습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대전 공천을 막판까지 끄는 바람에 분위기를 잡는 데 실패했지요. 특히 대전 중구는 계속 끌다가 막판에 공천을 줬잖아요. 게다가 한동훈 대표는 맨날 경상도만 갔어요.”
― 한 대표가 대전과 충청에 무척 공을 들인 것으로 압니다만.
그러나 백 대표와 정 위원장은 “대전에 두 번밖에 안 왔다”며 반박했다. 정 위원장은 “저희가 볼 때 중앙에서 대전은 버리는 카드로 여겼다”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백 대표와 송 위원장은 “국민의힘 대전 공천에 문제가 가장 많았다”고 했다.
“주지 말았어야 할 공천을 줬기 때문에 100% 떨어졌다고 봐요. 신선한 사람들로 물갈이를 하든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막판까지 가서 경선을 붙이는 식이 됐어요.”
김우연 원장도 “총선 후보들이 지방선거 후보 경선에 나와서 떨어졌다가 다시 국회의원 나왔던 분들이다. 시민 사이에 인지도는 있었지만, ‘저 사람들 또 왜 저러지?’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바람에 가고, 흐름에 가는 도시”
― 국민의힘에서 대전을 버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서울·경기만 이겨도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어떤 자만감이 있었다고 봐요. 대전은 많아봤자 7석이잖아요.”(백춘희)
“서울에서 볼 때 바람에 흔들리는 데가 충청도고, 특히 대전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굳이 여기에 공들여 봤자 바람에 따라 결론이 나니까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대요. 그게 패착(敗着)이었던 것이죠. 후보들이 중앙당에다 국회의원 지원 유세를 요청해도 잘 안 내려왔다고 해요.”(정명국)
“솔직히 후보자들도 열심히 안 했어요. 공천 문제도 있지만 후보 자질에도 문제가 있어요. 죽어라고 뛰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다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거든요. 잘못된 거죠. ‘우리는 뒤돌아 갈 데 없다’ 생각해야 되는데, 떨어지면 변호사 하면 되니까.”(백춘희)
22대 대전 7개 선거구 중에서 변호사 출신 국민의힘 후보는 조수연(서구갑)·양홍규(서구을)·박경호(대덕구) 3명이었다.
― 한동훈 대표가 민주당에서 중진인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을)을 모셔오지 않았습니까. 그게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그 양반을 영입했다고 여기서 표가 됐느냐? 전혀 없었잖아요. 전혀 없었어요!”(백춘희)
“이상민 의원의 인지도가 그렇게 높은데도, 처음 나온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출신의 민주당 황정아 의원)한테 진 것을 보면 여기는 그냥, 바람에 가고 흐름에 가는 도시가 대전이라는 거죠. 민주당은 진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막판에 공천해서……. 그분(황정아)은 선거운동도 얼마 안 했어요.”(정명국)
“국회의원-시의회 간 대화 없어”
이장우 대전시장을 비롯해 대전시의회 조원휘 의장과 황경아 부의장을 포함, 시의원 21명 중 19명이 국민의힘 소속이다. 야당은 더불어민주당 1명(김민숙·비례대표), 무소속 1명(송활섭·대덕구2)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회의원 지역구는 민주당이 7석 모두를 가져갔다.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분열 양상이 심각한 셈이다.
국회의원은 헌법과 법률의 개정 및 의결과 관련된 일을 하고, 정부 예산안을 심의하고 확정한다. 국비 확보는 국회의원이 정부부처를 상대로 압박과 회유, 읍소로 빼앗아 와야 한다. 비록 국회의원 출신이라도 이 시장 혼자서 중앙정부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7석 모두를 가져갔어요. 국회의원과 대전시의회가 정당은 달라도 대화는 하나요?
정명국 위원장은 “(대화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보탰다.
“주민들에게 실생활에 직접 도움을 주는 이가 시의원이고 구의원입니다. 제 관할 동(洞)이 4개동인데 지난 2년간 주차장을 만들고 시비(市費)를 제가 다 확보했어요. 그동안 국회의원은 재선까지 했는데 본인이 이뤄놓은 게 한 개도 없어요. 그러면 국회의원 역할이 뭐냐는 거죠.”
― 서로 도움을 청하고 소통할 일이 없나요?
“그런 건 없죠. 그분(국회의원)한테 도움을 청할 일이 없어요. 오히려 우리가 한 걸 가지고 본인이 했다고 하는 판이니까.”(정명국)
“중앙에서 특별교부금이 내려온 것을 자기가 다 한 것처럼 현수막으로 포장만 하지요.”(송인석)
“능력이 없어서 못 가져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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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만난 오피니언 리더들. 왼쪽부터 윤희진 《중도일보》 편집국 부국장, 김우연 대전TP 원장, 대전시의회 송인석 산업건설위원장, 정명국 행정자치위원장, 백춘희 대전문화재단 대표, 이동한 대전과학산업진흥원 원장. |
“국회의원의 주임무는 입법과 함께 정부 예산을 심의하는 겁니다. 어쨌든 국비를 지역에 가져오는 역할을 하거든요. 시의원들도 시에서 조례 만들고 시 예산을 구(區)로 가져오려 하잖아요? 제가 여의도에서 보면, 국회의원회관에서 가장 행사를 안 하는 지역이 대전·충남 국회의원이에요. 그러나 영호남 국회의원은 달라요. 정치색이 단일하니까 단합도 잘해요. 의원회관 행사를 하루는 영남 의원이, 하루는 호남 의원이 합니다. 심지어 영호남은 중앙당과 국회의원이 머리를 맞대 예산협의회도 가집니다. 반면 대전 국회의원은 시장과 예산을 협력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드물어요.
그리고 입법을 할 때도 대전의 현안과 관련한 것도 만들 수 있을 텐데, 안 합니다. 당이 다르다보니 견제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대전·충청이 국회에서, 국가에서 얻어낼 사안들에 대해서 손해를 보는 게 많다고 봅니다. 이 시장이 이런 것을 혁파를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유독 대전에서만 지역 국회의원과 예산협의회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너무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윤 부국장의 계속된 말이다.
“지역색이 뚜렷한 영호남 의원들에 비해 우리(대전·충청)가 손해 보는 게 너무 많아요. 영호남 의원은 단체장과 합심해서 예산을 챙기는데 우리는 서로 싸워가지고 못 가져가거든요. 타지역은 공천 때 그렇게 싸우더라도 어쨌든 (선거가) 끝나면 진짜 정부 예산에 빨대를 꽂아 줄줄이 가져가요.”
여기서 백 대표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지방정부와 국회의원이) 싸우긴 뭘 싸워, 능력이 없어서 못 가져오는 거지. 시장이 가져올 수 있겠어? 그건 국회의원들이 가져와야지. 창피해 죽겠어. 다리 놓는 데 1억원 확보했대. 고작 1억원 따내자고 거기 앉아가지고 국회의원 하나? 대전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말고, 가서 정부 예산이나 따라고 해주세요.”
오죽 답답하면 백 대표가 저런 말을 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시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정치적 중립성이 때로 필요”
― 현 정부 들어 중앙 인사나 국비 지원 면에서 대전·충청권 예산이 대구·경북이나 부산·울산·경남에 비해 소외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우연 원장은 “예전부터 지역민들은 예산 배분이 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고 느꼈을 것”이라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민선 8기에 들어선 대전은 2023년도 기점으로 국비 4조원 시대를 개막했어요. 전년 대비 7.3%가 증가한 수치입니다. 2024년에는 다시 4.1% 증가된 4조4492억 원이 국비로 반영됐습니다. 긴축재정에도 이런 성과를 냈다고요. 이장우 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의 초당적 협력의 성과라고 보입니다. 다만 내년도는 현재보다 세수 등의 여건이 더 좋지 않은 상황이라 걱정이 커요.”
― 국민의힘 대전시장 1명 대 민주당 국회의원 7명의 구도는 시정 활동 및 협치(協治)에 어려움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 원장은 “시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정치적 중립성이 때로 필요하고, 이는 곧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대전시민들의 만족도도 계속 상위권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지난 22대 총선 당시 대전 여야 정치권은 R&D 예산 삭감 책임을 두고 논란을 벌였다. 당시 국민의힘 후보 등은 “이재명표 포퓰리즘 예산을 증액하며 과학기술계 예산을 지키지 못한 것에 (민주당도) 책임이 있는데 발뺌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후보 등은 “R&D 예산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삭감해 연구개발특구가 있는 대전과 대한민국의 미래가 무너지고 있다”고 비난했었다. 결과적으로 R&D 예산 삭감이 대전 표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R&D, 연구원들의 생계 문제”
이동한 원장은 “R&D 예산 삭감이 선거에 끼친 영향이 굉장히 컸지만, R&D 예산이 부족한 게 아니라 너무 방만하게 쓰였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 정부가 방만하게 쓰였다고 판단해 R&D 예산을 줄인다고 했었죠.
“맞습니다. R&D 예산이 방만한 것을 과학인 스스로 반성을 해야 옳아요. 그런데 과학인들은 자기들끼리 싸워요. 그냥 막 놓아먹기 식으로 좀 방만하게 쓰여서 정부가 차단하려고 했는데, 취지는 옳았으나 역효과가 난 것이지요.”
백 대표가 거들었다.
“정확하게 짚었는데, 타이밍이 아닌 시기에 그걸 터뜨려서 문제가 된 거라고 봐요. 왜 선거를 앞두고…….”
이 원장은 “R&D 예산 삭감은 좀 아마추어적인 정책이었다”고 언급했다.
윤희진 부국장은 “저희한테 제보 많이 들어왔던 내용들 중 하나가 이공계 대학원생들 얘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대학원생들이 매달 180만원씩을 받았는데 R&D 예산 삭감으로 40만원이 깎였다는 거예요. 실제로 R&D 예산을 주먹구구식으로 쓰는 이는 그 윗대가리들인데 가장 피해 본 사람들이 젊은 연구원들이에요. 다시 말해, R&D 삭감이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 연구원들의 생계 문제가 선거에 영향을 미쳤어요.”
분명 그들이 사용한 ‘아마추어’와 ‘윗대가리’는 4개의 음절로 이루어진 것 말고 공통점이 없는데, 이번 R&D 상황에서는 호환이 가능한 것일까? 정명국 위원장도 거들었다.
“진짜 연구비는 하나도 깎인 게 없대요. 정부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연구에 꼭 필요한 R&D 예산은 1원도 삭감된 게 없답니다.”
김우연 원장은 “타이밍도 안 좋았다”며 “대통령 말 한마디에 R&D 예산을 그냥 깎아버린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R&D 예산 삭감을 먼저 논리를 세워 설득해야 국민들이 이해할 텐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깎았다’는 식으로 야당이 포장해 이슈화를 해버린 겁니다. 실제로 아무런 영향을 안 받는 상위 연구자들마저 싫어하게 된 거죠.”
정부·여당, 대전에 대한 구애 실패
김태명 한남대 명예교수가 집필한 《대전학총론》을 읽어보았다. 대전 사람의 기질을 설명하며 “여유 있고 끈질기며 잘 나서지 않고 감정과 자기표현이 적은 대전 사람들의 성격이 ‘됐슈’ ‘알았슈’ ‘괜찮아유’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기자가 만나본 대전 사람들은 더는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 했다. 특히 젊은 MZ 대전인들은 충청도 방언을 안 쓰거나 굳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개척자들의 도시’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대전광역시 공식 유튜브 채널 ‘대전TV’에도 ‘개척자들의 도시 대전’이라는 제목 하에 대전을 소개하고 있다. 그만큼 ‘개척자’ DNA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메가시티라 할 수 있다. 잠시, ‘개척자(pioneer)’의 어원을 살펴보자. ‘pioneer’는 라틴어 ‘pedester’에서 유래한 것으로, ‘발로 걷는’을 뜻하며, ‘보병’ 또는 ‘지상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이후 프랑스어 ‘pionnier’가 되어 군대 ‘보병’의 의미와 더불어 ‘기지나 도로를 개척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분야나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라는 넓은 의미로 확장되었다.
지난 총선 때 여당은 공천에 실패했고, 무엇보다 대전에 대한 구애(求愛)도 실패했다.
어쩌면 대전은 ‘바람’에 민감한 게 아니라, 바람이란 도구를 스스로 만들어 자기 목소리를 확장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대통령과 지방정부는 여당에게, 국회의원은 야당에게 전권을 맡긴단 말인가. 이러한 ‘하이브리드’ 사고를 가진 대전시민은 무척 현명해 보인다. 그러나 시너지를 모으지 못하는 피해도 대전·충청 시민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게다가 바람이 ‘변심’으로 체감되기도 한다.
성심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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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에 위치한 성심당 빵집. 대전을 찾는 방문객들은 으례 이 역사(驛舍) 빵집에 들러 성심당 빵을 사간다. |
그러나 “대전의 총선 민심은 자기 당이 잘했다기보다 상대당의 무능과 잘못으로 어부지리로 승리하더라”는 말이 더는 나오게 해선 안 된다. 이는 대전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괜찮아유’라는 말로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하버드대 데이비드 랜즈(David Landes) 교수는 그의 저서 《국가의 부와 빈곤(The Wealth and Poverty of Nations)》에서 ‘평야 지역은 지리적 이점 덕분에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외부 문화와 접촉이 잦아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유도하는 조건이 된다’고 언급한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특징이 공동체와 사회의 경제적 번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암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중간에 위치한 평야의 도시, 개척자의 도시 대전이 여러 긍정적인 자원을 모아 결집의 허브가 되고, 바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방향을 잡으며, 대한민국의 힘찬 구심력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요새 정치권이 어수선한 탓인지, 마음이 슬퍼져서 사람들이 붐비는 성심당에서 빵을 샀다. 슬퍼서 빵을 많이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