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총력취재

‘의료 대란’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②

‘복지부의 나라’, 의사 출신은 없고 행시 출신 카르텔 성행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열악한 지방 의대, 카데바 1구 두고 20명이 실습하고 교수가 없어 타대학 강의 동영상을 보기도…
⊙ 2032년에 건강보험 누적 적자 61조원 예상(국회예산정책처)
⊙ “인구 1000명당 의사 1명이 늘어나면 1인당 의료비 22% 증가”(2007년 보고서)
⊙ 김대중 때 진료권 폐지로 의료 전달 체계 붕괴… 문재인 케어 이후 상급 종합병원 쏠림 현상 더 심해져
⊙ 상급 종합병원들, 문재인 정권의 ‘보장성 강화’ 과정에서 단가 떨어지자 분원 건설 나서
⊙ 복지부에서 대형 로펌으로 옮겨가는 공무원들… 보험약제과는 대형 로펌 가는 중간 기항지, 글로벌 제약사들의 약가(藥價) 협상 돕기도
⊙ 이제 한국은 초고령화 사회, 방문 진료 수가 올려야
경기도의사회는 10월 12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제47차 사법만행, 의료농단 규탄 집회’를 진행했다. 사진=경기도의사회
  일본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지폐는 1000엔(한화 1만원가량) 지폐다. 여기엔 원래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1876~1928년)가 그려져 있었다. 이번에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郞·1853~1931년)로 바뀌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의사다. 노구치 히데요는 ‘일본의 슈바이처’로, 기타사토는 ‘일본 세균학의 아버지’로 일본 사회에서 존경받는다. 새 화폐는 지난 7월 3일부터 시중에 유통됐다.
 
  같은 날 한국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의사들에게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내렸다. 대한의사협회 지도부에 내린 명령에서 복지부는 “국민의 건강과 환자 안전을 저해하는 진료 거부, 휴진 등 집단행동을 하거나 이를 조장·교사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주기를 바란다”며 “명령에 반해 불법적 집단행동을 하거나 집단행동을 교사·방조하는 경우 관련 법에 따른 행정처분이나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사한 韓日의 의료 체계
 
  한국과 일본의 풍경 차이는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기자는 《월간조선》 10월호에 실린 〈의료 대란,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를 통해 한국의 의료 환경을 소개했다. 여기에 썼듯, 전 세계 의료 시스템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미국식 자유 시장, 둘째 유럽식 의료 시스템이다. 국가가 모든 의료를 공급하고 관리하는 사회주의 의료 제도다. 셋째, 대한민국 의료다. 겉으로는 의료가 자유 시장 경제인 것 같은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정부가 의료 체계를 강력히 통제하고 있다.
 
  한국과 의료 체계가 가장 비슷한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 역시 전 국민 건강보험을 운용하고 정부가 수가를 통해 의료비를 관리한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의료 제도를 상당 부분 참고해왔다. 일본 의료가 한국에는 참고서이자 오답(誤答) 노트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일단 한국 의료계가 현재 마주한 상황을 보자. 정부는 내년도 신입생 1500명 증원을 고집하고 있다. 신입생 4500명은 입학하는 순간 어떤 상황을 맞게 될까. 올해 휴학했던 의대생 3000명이 더해져 의대 1학년생은 총 7500명이 된다. 수업이 제대로 될까. 의대는 윤석열 대통령이 졸업한 법대나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이 졸업한 경제학과와 달리 실습수업이 많다.
 
 
  의대 83학번의 학창 시절
 
지방 의대 강의실. 폭우로 침수됐다.
  실은 이런 일이 1980년대에 일어난 적이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시행했던 ‘졸업정원제’ 때문이다. 서울의대의 2023학년도 정원은 135명이다. 1983년엔 이의 2배인 260명이 동시에 입학했다.
 
  서울의대 83학번인 김미나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이 시절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수업 포기자가 속출했다. 학생 숫자 대비 교육 용량이 부족해서 못 따라오는 학생들이 도태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부학을 비롯한 모든 실습은 조별로 이루어졌는데 실습조당 1~2명만 실습을 하고, 나머지는 항상 참관 또는 방관을 했다. 많은 수가 유급을 거듭하다가 제적당하거나 다시 복학해서 십수 년 걸려서 졸업을 했다. 우리 동기들은 인턴, 전공의, 임상강사, 교수에 임용되는 과정이나 석·박사 대학원 입학과 학위를 취득할 때마다 언제나 역대급 경쟁을 하고, 기약 없이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평생 겪을 피 말리는 경쟁을 피해 미국, 캐나다로 가서 수련을 받고 교수가 되거나 개업한 동기가 여럿 있다. 당시는 졸업 전 상당수가 미국 의사면허시험에 응시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지방 의대에 더 심각하게 나타날 거란 사실이다. 정부는 증원 정원을 지방 대학에 우선적으로 배치한다며, 지금도 시설이 미비한 교육기관에 정원 2배 증원을 안겨줬다. 서울에 있는 의대들은 갑자기 늘어난 정원에 어느 정도는 대처할 수 있다. 지방의 의대, 의전원 중에는 증원되지 않은 현재도 교육 환경이 좋지 않은 곳들이 있다. 심지어 이런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의사 교육을 한다고 할 수 있나 싶은 곳도 있다. 재학생들에게 낙인이 찍힐 것을 우려해 어느 곳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지방의 A학교에서는 증원 전에도 1구의 카데바(의학 교육을 위해 기증된 시신)로 20명이 공부했다. 이러다 보니 한 학기 수업이 끝나도록 신체 전 부위를 살펴보기는 힘들었다. 내년부터는 1구의 카데바로 40명이 공부해야 한다. 이제는 카데바를 슬쩍 구경 정도만 할 수 있겠다. 신체 구조를 맨눈으로 확인 못 한 의대생이 배출되는 거다. 지방의 B의대에서는 카데바 처리를 잘못해 카데바에 이상이 생긴 적도 있다(기증인을 고려해 적나라한 표현은 삼갔다). 당연히 학생들의 공부에도 지장이 간다. 지방 소도시에 있는 의대는 해부학 실습 교육을 도와줄 조교, 기사 등을 구하기 힘들다.
 
  교수가 없어 다른 학교 교수의 동영상 강의를 보며 수업하는 곳도 있다. ‘인강의대’인 셈이다. 지금도 강의실 공간이 모자라 실습수업을 비대면으로 ‘관람’하게 하기도 한다.
 
 
  카데바를 수입?
 
9월 12일 이주호 교육부장관(오른쪽)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의료 개혁에 대한 논란이 길어지자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지난 3월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카데바를 수입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해부학 실습은 단순히 인체를 마네킹처럼 뜯어서 이리저리 살펴보는 교육이 아니다. 교수진과 학생들, 기증인이 함께하는 수업이다. 기증인은 의대생에게 유일하게 ‘실수가 허용되는 환자’다. 어떻게 보면 인문학 수업이기도 하다. 의대생들은 해부학 실습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와 한계를 배운다. 실습이 끝나면 시신 기증자의 가족과 함께 추모식을 하며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박 차관이 의학 현장에 단 한 번이라도 가봤다면 카데바를 가벼이 무역 물품 취급할 수 있었을까. 복지부는 시신 기증자의 동의가 있을 경우 시신 전체 또는 시신의 일부를 대학끼리 공유할 수 있게 하도록 법 개정도 검토 중이다.
 
  ‘의사 수입’도 있다. 복지부는 지난 5월 8일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보건의료위기 ‘심각’ 단계의 위기 경보가 발령된 경우 외국 면허 소지자가 국내에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외국인 의사가 들어와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받는다고 치자. 출산 중 아이에게 이상이 생기면 부모는 당장 소송을 제기한다. 이 결과 의사는 16억원을 배상하게 된다(실제 있었던 재판 결과다). 이 외국인 의사가 이 금액을 배상해줄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현실을 알고도 산부인과 진료를 맡을 외국 의사가 있을까? 지방 의료원에서는 내시경 검사를 하다 장에 천공(穿孔)이라도 발생하면 비상 상황이 된다. 수술을 해줄 외과 의사가 주변에 없어서다. 자칫해 환자가 사망하기라도 하면 또 소송이다. 형사 처벌도 당할 수 있다. 이런데도 외국에서 의사가 올까?
 
 
  수의대는 6년제, 의대는 5년제?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해 의사 집단행동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민수 차관은 지난 9월 4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증 환자의 응급실 진료를 최소화하는 정책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본인이 전화해서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경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중증은 거의 의식이 불명이거나 본인이 스스로 뭘 할 수 없는 마비 상태에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열이 많이 나거나 배가 갑자기 아픈 것은 경증에 해당되고,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많이 나는 것도 사실은 경증이다.”
 
  응급의료 전문가의 말은 다르다. 조석주 부산대 응급의료학과 교수는 “심근경색 환자는 초응급에 해당하는데, 쓰러지기 전까지 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고열은 경증”이라고 했는데 특히 유아나 어린이의 경우 이 말을 믿으면 안 된다. 고열은 위험하다.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9월 6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의과대학 5년제 전환 허용’을 직접 발표했다. 의대생들이 1년을 쉬었으니, 이참에 졸업에 필요한 학년을 1년 줄여주겠다는 발상이다. ‘수의사도 6년 공부하는데 사람이 개보다 못하다는 말이냐’는 반응부터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에는 7년제 의대도 있다. 공부량이 너무 많아 6년으로는 부족해서다. 홍콩의대는 5년제였던 것을 몇 년 전 6년제로 바꿨다. 물론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했다. 이 장관은 무슨 근거로 의대 교육을 5년으로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을까.
 
 
  ‘구덩이에 빠지면 삽질을 멈춰라’
 
  서울에 있는 의대의 A교수의 말이다.
 
  “정부가 몇조를 쏟아붓겠다며 이런저런 조치들을 발표하는데, 어떤 의료 계획을 전제로 그 예산을 어떻게 투입할 건지 면밀한 자료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문제는 따로 있는데 왜 직결되지 않는 이슈들을 자꾸 꺼내는지 모르습니다. 지금 불이 활활 타고 있는데 그런 얘기가 귀에 들어옵니까. 상급 종합병원에 몇조를 쏟아붓겠다고 해도 전공의들이나 학생들 귀에 들어가겠냐고요. 데니스 힐리라는 영국의 정치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구덩이에 빠지면 삽질을 멈춰라.’ 삽질할수록 깊이 빠지니까요.”
 
  최재형 변호사(전 감사원장, 국민의힘 당협위원장)는 “정부가 의대 증원을 ‘이기고 지는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사직 전공의의 공익 변호를 맡고 있다.
 
  “국민의 지지 여론을 얻어 의사들을 이기기 위해, 정부가 이런저런 대책들을 임기응변으로 쏟아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쪽이든 주장에 옳고 그른 부분이 있을 겁니다. 정책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정부에 있는 겁니다.”
 
  이어진 최 변호사의 말이다.
 
  “무엇보다 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 혼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의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일환으로 의대 정원을 논의해야 하는데 전체적인 그림 없이 의대 증원부터 밀어붙이고 있어요. 게다가 2000명을 늘려야 할 합리적 근거를 못 대고 있습니다. 낙수(落水)효과라고 하는데 일단 그런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고, 있다 해도 미용 분야로 다 빠지고 남는 사람들이 필수 의료로 간다는 건데 이건 바른 정책이 아니지요.”
 
  최 변호사는 의대 증원을 대통령실에서 주도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대 증원 문제에 대통령실에서 주도적으로 나서니 부처에서 움직일 수 있는 여유가 없잖아요.”
 
 
  “일본에 답이 있다”
 
우봉식 한국회복기재활연구소 소장. 사진=우봉식
  일본은 전 국민 건강보험과 시장 경제를 유지하면서 의료 체제를 다듬으며 나아가고 있다. 고령화 등 사회 변화를 우리보다 20년 이상 먼저 겪으며 길을 모색해왔다. 우봉식 한국회복기재활연구소 소장(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소장)은 일본 의료를 다년간 연구했다. “일본 의료 현장을 여러 번 돌아보며 일본에 답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우 소장은 말한다.
 
  1983년 일본에서 ‘의료비 망국론’이 제기됐다. 일본의 요시무라 히토시 후생노동성 보험국장은 ‘노인 의료비 급증으로 일본이 망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의대 정원 축소와 병상 수 감축을 선택했다. 도도부현(都道府縣)별로 지역 의료 계획을 세우고, 인구당 병상 수 목표치를 설정해 지키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제도 시행이 유예되는 동안 많은 병원이 병상을 크게 늘려 오히려 병상 수가 크게 늘었다. 설상가상으로 수익을 내기 쉬운 급성기 병상 수만 늘었다. 병상 숫자로만 규제한 탓이다.
 
  후생노동성(한국의 보건복지부)은 방향을 바꿨다. 병원을 기능별로 구분하고, 기능에 따른 병상 수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 결과 병상 수가 줄어들었다. 기능별로 구분한다는 건 병원의 기능을 ‘고도급성기-급성기-회복기-만성기’로 나누는 것을 뜻한다.
 
 
  2028년 건강보험 준비금 고갈
 
  한국 역시 문제는 돈이다. 국민건강보험은 가만히 있어도 적자(赤字)가 예약되어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고령화, 저출생이 진행되며 쓰는 사람은 늘어나고 버는 사람은 줄어드는 탓이다.
 
  건보공단 스스로도 ‘2025년에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총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가운데, 노인 인구 증가로 인한 지속적인 의료비 지출 증가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 인구 감소로 보험료 수입 증가 둔화가 예상된다’고 명시해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건강보험이 현금 흐름 기준 연간 4조1276억원의 당기 수지 흑자(黑字)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흑자라고 볼 수 없다. 정부는 매년 건강보험에 세금 지원을 한다. 매년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 중 20%를 국고에서 공단에 지원하도록 법으로 규정해놨다. 2023년도에는 약 11조원(일반회계 9조1000억원, 건강증진기금 1조8000억원)이 국고에서 지원됐다. 세금 지원이 없으면 만성 적자인 게 건강보험이란 얘기다.
 
  지난 2007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민의료비 지출구조 및 결정요인에 대한 국제비교〉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OECD 국가들을 분석해보니 인구 1000명당 의사 1명이 늘어나면 1인당 의료비는 22% 증가한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는 건강보험 재정을 두고 이렇게 전망했다. ‘현행 보험료율 인상 수준이 유지될 경우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2024년에 적자로 전환되고, 2028년에는 누적 준비금이 소진된다. 2032년 누적 적자액은 61.6조원에 달할 것이다.’ 국가가 매년 10조 이상 지원하는데도 이렇게 된단 얘기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2026년에 적자로 전환되고, 누적 준비금은 2031년에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어떤 공무원도 돈 얘기는 안 한다.
 
 
  의료 전달 체계 不在
 
  해결책은 뭘까. ‘의료 전달 체계’ 확립이 우선이다. 의료 전달 체계(healthcare delivery system)는 ‘제한된 보건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국민이 건강하도록 의료 서비스 제공의 절차와 내용을 체계화하는 제도’다.
 
  의료기관은 그 역할과 기능에 따라 1, 2, 3차로 나뉜다. 1차 의료기관은 가볍거나 만성인 질환을 주로 담당한다. 동네의원을 생각하면 된다. 2차 의료기관은 중진료권 단위(인구 15만~50만)에서 응급, 필수 급성기 질환과 중등증 질환, 일부 중증 질환까지 포괄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종합병원이다. 대학병원과 대형 수련병원은 3차 의료기관이다. 중증 희귀 난치 질환의 치료를 담당한다.
 
  의료 전달 체계가 효율적으로 운용되면 이런 의료기관들이 역할별로 적절하게 환자를 맡아 치료할 수 있다. 비교적 잘 운영되던 한국의 의료 전달 체계는 1998년 해체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권 시기 진료권(중진료권-시군 단위, 대진료권-도 단위) 제도가 폐지되면서였다. 이제는 전달 체계 자체가 허물어졌다고 보면 된다. 손톱이 빠졌다며 대학병원에 가고(실제 있었던 경우다), 지방 도시에 사는 사람이 집 옆의 병원을 두고 서울로 올라가 당뇨약을 6개월어치씩 타가는 실정이다.
 
  대형병원에 환자가 몰리니 3분 진료가 기본이 됐다. 대학병원에서 5분 이상 진료를 봐주면 황송할 지경이다. 교수들은 자연히 외래와 수술에 치중하고, 입원 환자들은 전공의들이 돌봤다. 물론 전공의들이 사직한 후 없어진 풍경이다. 1차기관인 의원들은 미용 진료 등 비급여 진료에 뛰어들었다.
 
 
  지역 의료 잘 정착한 일본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지금껏 손을 놓고 있었다. 한국 의료법엔 의료 전달 체계에 관한 규정 자체가 없다. 일본은 어떨까. 우 소장의 말이다.
 
  “일본은 아홉 개 장(章)으로 구성된 의료법 중 두 개 장을 할애해 의료 전달 체계를 규율해놓고 있습니다. 의료 제공 체계와 이용 체계입니다. 의료기관을 기능별로 고도급성기-급성기-회복기-만성기로 나누어 지역별로 기능별로 병상 수를 정해놨습니다. 이보다 부족한 곳은 병상 증설을 승인해주지만 남는 곳은 승인을 안 해줍니다. 개원을 할 수는 있지만,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해주지 않는 식으로 관리합니다. 병상이 여기저기 불필요하게 늘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 일본엔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없나요?
 
  “일본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점이 그겁니다. 일본은 지역마다 병원, 학문 생태계가 잘 정착해 있습니다. 일단 물리적으로 환자가 이동하기 힘들어요. 국토가 긴 형태고 교통비가 비쌉니다. 일본은 홋카이도대학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잖아요.”
 
  아베 전 총리가 피격을 당했을 때도 나라현립의대 부속병원으로 실려갔다. 도쿄대학병원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정당의 대표라는 사람도 부산에서 다쳤음에도 부득부득 서울까지 헬기를 타고 오는데 말이다.
 
  ― 일본엔 지역 의료가 살아 있군요.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도 합니다. 지역 병원에 수가(酬價)를 더 줍니다. 지역 수가 가산 제도입니다. 지방의 경우 인건비 등이 상대적으로 비싸게 드니 의료기관이 생존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돕는 거죠. 우리나라는 전국이 동일 수가예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서울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든 지방의 중소병원에서 치료 받든 환자가 부담하는 병원비가 같은 겁니다. 5성급 호텔과 모텔이 숙박비가 같으면 다들 호텔로 가지 않겠어요?”
 
  ― 그렇죠.
 
  “이 결과 싸고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무한정 향유할 수 있는 국가, ‘의료 중독 국가’가 된 겁니다. 정부는 의료 중독을 치료해야 하는데 부추기는 정책들을 펴왔어요. 중독을 치료하려면 운동시키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결 안 하고 더 퍼주는 겁니다. 의사를 늘려라, 병원을 늘려라 하면서요. 문재인 정부의 ‘문재인 케어’가 대표적입니다.”
 
 
  건보 재정 위협한 문재인 케어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1년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4주년 성과 보고대회에서 ‘문재인 케어’와 관련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7년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성모병원에서 향후 5년간 30조6000억원을 들여 미용·성형 등을 제외한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 바로 문재인 케어다. 미용·성형·라식같이 생명과 크게 상관없는 의료 행위를 제외한 모든 비급여(비보험) 항목의 급여화를 추진했다. 초음파와 MRI(자기공명영상) 검사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문재인 케어 이전엔 종합병원에서 뇌 일반 MRI를 촬영하려면 환자는 평균 48만원을 내야 했다. 문재인 케어 이후엔 검사 가격이 29만원으로 표준화됐다. 환자는 이 중 50%인 14만원 정도만 내면 됐다.
 
  환자의 비용 부담이 줄자 MRI 찍는 횟수가 급증했다. 단순 두통 환자가 MRI를 찍어보는 식이다. 시행 직후 3년 새 초음파, MRI 진료비가 10배로 뛰었다. 2018년 1891억원(초음파 1378억원, MRI 513억원)이었던 것이, 2021년 1조8476억원(초음파 1조2537억원, MRI 5939억원)으로 늘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거다. 병원비 걱정이 없으려면 건강보험료도 올라야 한다. 내는 돈은 그대로인데 혜택은 대폭 늘어나는 꿈같은 일을 문재인 케어가 해낸 거다. 병원, 그것도 상급 종합병원에 부담 없이 더 자주 가라고 정부가 등 떠민 격이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후 MRI 검사의 환자 부담 비율을 높였다.
 
  문재인 케어 이후 상급 종합병원 쏠림 현상이 더 심해졌다. 그런데 대학병원 입장에서는 보장성 강화 과정에서 단가가 많이 떨어진다. 한마디로 손님은 늘었는데 객단가가 떨어졌다는 얘기다. 양(量)을 늘리는 걸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상급 종합병원들이 분원(分院) 건설에 나선 이유다. 지어만 놓으면 환자가 몰려오는데다, 병원 내의 식당,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나오는 부대(附帶) 수입도 엄청나다.
 
 
  분원 안 짓는 도쿄의대병원
 
  일본은 어떨까. 도쿄대병원은 분원이 없다. 1217병상의 본원 한 군데가 전부다. 국립대학병원들은 본원을 안 짓는다. 우리나라는 서울대병원만 해도, 분당서울대병원, 서울대병원강남센터와 위탁 형태로 운영되는 보라매병원, 국립교통재활병원 등 병원 4곳을 운영 중이다. 2028년 개원을 목표로 시흥배곧서울대병원 건립도 추진 중이다. 우 소장의 말이다.
 
  “대학병원들이 수도권에 분원 짓는 걸 막아야 합니다. 상급 병원들의 기존 병상 수도 30% 이상 줄여야 해요. 대신 정부가 수가를 올려줘서 매출은 약간 줄지만 이익은 약간 늘어나는 구조를 만들어 유도하면 됩니다. 이래야 지역 의료가 살아나지요. 지역에 사는 고혈압 환자가 굳이 서울로 와서 6개월어치씩 약을 타가는 구조는 기형적입니다.”
 
  ― 서울로 오는 환자를 못 오게 할 수 있나요?
 
  “그런 경우는 건강보험 적용을 못 받도록 하면 됩니다. 동네에서 충분히 진료받을 수 있는 만성 질환 환자가, 굳이 유명한 교수 얼굴 한번 보려고 서울까지 오는 경우는 비보험 처리를 하는 식으로요. 물론 중증 희귀 질환 같은 경우는 예외입니다.”
 
  ― 상급 병원들의 병상 수를 어떻게 줄이나요.
 
  “일단 다인실(多人室)을 없애야 해요. 6인실, 8인실… 다인실을 이 정도로 운영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딨습니까. 부끄러운 겁니다. 4인실도 복잡합니다. 2인실 이하로 줄여야 해요. 그러면 병실이 쾌적해지고 상급 병원 병상도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의료 개혁 사태 후 전달 체계 정상화
 
  ― 외국은 다인실이 없나요.
 
  “미국은 거의 1인실이에요. 일본도 전에는 4인실이 기본이었는데 이젠 2인실이 기본입니다. 4인실이었던 병실에서 침상을 빼 병상을 줄였어요.”
 
  ― 그러면 병원 경영하는 입장에선 손해 아닌가요. 안 바꿀 거 같은데요.
 
  “4인실이라고 가정해봅시다. 하루에 병상 하나당 20만원씩 총 80만원을 벌었어요. 지출은 총 70만원입니다. 그럼 10만원이 남아요. 그런데 2인실로 줄이면 병상 하나당 30만원씩 총 60만원을 법니다. 지출은 45만원이에요. 그럼 15만원이 남잖아요. 매출은 줄어도 수익이 늘어나는 거죠. 그렇게 정책적으로 유도하는 겁니다. 일본이 그걸 잘 했어요. 불필요한 진료도 줄이는 쪽으로 유도하고 있죠. 입원이 아닌 재택 진료를 하는 등의 식으로요.”
 
  하시모토 히데키(橋本英樹) 도쿄대학 의학계 연구과 보건행동사회학 교수(일본 의료경제학회장)는 올해 초 한국 의료 전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대학병원 진료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도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싶어 하는 환자는 많다. 대학병원 입장에선 환자가 너무 많으면 대응이 불가능하다. 특히 외래 환자가 많아지면 고도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진 확보가 어려워지고, 경영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병원은 외래 환자를 줄이려 한다. 도쿄대병원의 하루 외래 환자는 3500명 정도다. 5000명을 넘은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의료진이 모두 외래 환자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병동이 돌아가지 않는다. 추천을 받고 온 환자까지 돌려보내면서 외래 환자를 줄였다.〉
 
  현장의 의사들은 의료 개혁 사태 이래 아이러니하게도 의료 전달 체계가 정상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환자들이 대학병원으로 달려가는 걸 자제하고 지역의 2차병원을 찾고 있다. 우 소장의 말이다.
 
  “예전엔 전공의들 돌려가며 교수가 진료방을 두 방, 세 방을 열었어요.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며 진료를 했어요. 대단히 잘못된 겁니다. 문제가 많다, 안 된다고 얘기해도 고쳐지지 않았어요. 국민들도 즐겼죠. 너도 나도 의료 중독을 즐기고 있었던 겁니다.”
 
  ― 병에 걸렸다고 하면, 대학병원 명의부터 수소문했으니까요.
 
  “명의는 무슨, 그런 식으로 얼마나 제대로 진료가 되겠습니까. 환자를 꼼꼼히 봐야지요. 요즘은 전공의가 빠지니 대학교수들의 수술 건수가 확 줄었어요. 동시에 두 방에서 수술하면서 중요한 부분만 해놓고, ‘뒤는 네가 마무리해’ 이게 안 되니까요.”
 
  대학 병원 교수들도 사정은 있다. 대학병원 B교수의 말이다.
 
  “매달 ‘실적’을 알려주는 메일을 받습니다. 수술과 외래로 얼마를 벌었는지 알려줍니다. 병원 내에서 제가 몇 등인지 순위도 알려줘요.”
 
  전국에 산재한 권역별 응급의료센터, 권역별 외상센터도 문제다. 우 소장은 “권역별 외상센터의 경우 많아도 6곳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의 설명이다.
 
  “외상센터가 전국에 17곳이 있어요. 정치인들과 비전문가들이 주도한 결과예요. 의료 자원이 분산되어 있으니 잘 안 돌아갑니다. 수도권, 중부권, 영남권, 호남권에 한두 개씩 총 6곳가량 배치하면 돼요. 대신 센터를 대형화해야 합니다. 24시간 어떤 상황이 닥쳐도 수술을 할 수 있도록요.”
 
  ― 거기만 가면 반드시 수술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도록 말이군요.
 
  “그렇지요. 지금은 그럴 수가 없어요. 의사들이 모여 있지 않고 전국에 퍼져 있잖아요. 의사 수가 적으니 응급 수술 중에 환자가 오면 대응이 안 돼요. 센터 수를 줄여 의사들을 모아놓고 24시간 잘 돌아갈 수 있게 하면 됩니다.”
 
 
  무너진 응급 의료 전달 체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요로 결석으로 심각한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실려 왔다. 이 환자는 총 두 곳의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거절당했다고 한다. 사진=고기정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은 9월 6일 SBS뉴스에 출연해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의료 개혁의 단초”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부족해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벌어진다는 뜻이겠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충남대 응급의학과 유인술 교수의 말이다.
 
  “응급실 뺑뺑이를 유발한 원인을 들여다보면 의료 전달 체계의 문제가 더 큽니다. 신고가 들어오면 119가 환자를 이송하잖아요.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적절한 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지난해 대구의 건물에서 추락한 10대가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전전하다 사망했어요.”
 
  ― 병원 네 곳을 돌아다녔죠.
 
  “그때 소방에서는 병원에 환자가 3m에서 추락했다고 했어요. 3m에서 추락한 건 경증으로 분류돼요. 게다가 환자가 의식이 있었어요. 그러니 경북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는 경증으로 분류하고 수용을 안 했어요. 그런데 사실은 3m가 아니라 건물 3층에서 떨어진 거였어요. 만약 구급대에서 3층에서 떨어졌다고 말했다면 즉시 중증으로 분류돼서 수용했을 거예요. 병원에 잘못된 정보를 준 겁니다.”
 
  ― 지난해 용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70대 노인이 응급실을 찾지 못해 사망한 사고도 있었지요. 용인에서 의정부 성모병원까지 갔잖아요.
 
  “그때 구급대가 병원 11곳에 연락했는데 안 받아줬다고 했어요. 우리나라는 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중증외상센터를 설치하고 외상과 관련한 의료진을 그곳에 몰아서 배치해놨어요. 그런데 구급대가 정작 중증외상센터에 전화를 안 했어요. 가까운 병원에만 전화를 한 거예요. 외상센터에 인력을 다 몰아놨으니 그 병원들은 외상 환자를 못 받아요. 아주대 외상센터에서 환자를 못 받는다고 하면 그다음은 국립의료원이나 의정부 성모병원으로 연락해야 하는 거예요.”
 
 
  “1339 같은 컨트롤타워 필요”
 
  응급실이 부족한 게 아니라 응급 의료 전달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조석주 부산대 응급의료학과 교수는 “과거 응급의료정보센터(1339센터)가 했던 것처럼 구급대와 수술 가능 의사, 응급 환자를 전담해 조정해주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339센터에서는 응급구조사와 간호사로 구성된 10여 명과 공중보건의 5~6명이 24시간 응급 의료 상담을 했다. 환자나 가족이 전화해 상태를 상담하면, 응급실에 가야 하는지 판단해 구급차를 보내줬다. 그런데 2012년 6월 1339가 119로 통합됐다. 119가 ‘응급 의료 상담’과 ‘구급차 배정’ 기능을 모두 맡게 됐다. 문제는 위의 사례들처럼 환자가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 119 구급대원의 판단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조 교수는 “1339처럼 사전에 경증 환자를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 활성화되면 경증 환자들이 지역의 응급의료기관으로 향하게 되고, 응급실 과밀화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NHS111’이, 일본에서는 ‘#7119’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7119로 전화하면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는지 1차적인 의료 상담을 할 수 있다.
 
  초고령화에 대비한 의료 정책도 시급하다. 기자가 ‘커뮤니티 케어(communuty care)’를 주목하는 이유다. 돌봄(care)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이 자택이나 그룹홈 등 본인이 사는 곳에서 의료 등 복지 서비스를 이용하는 걸 뜻한다. 전주시는 커뮤니티 케어 진료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전주시 의사회가 지자체와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구 전(前) 전주시 의사회장에게 들어봤다.
 
  “2019년부터 방문 진료를 해오고 있습니다. 지역 의사회와 시가 함께 센터를 만들어 방문 진료 사업을 진행 중이에요. 대부분 거동이 힘든 80대 후반의 환자들입니다. 조금만 걸어도 통증이 심해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에요. 특히 혼자 사는 환자들은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정서적으로도 그렇고 약 복용도 힘들고요. 그러니 동사무소와 센터의 직원이 방문해서 어디가 불편한지 관심을 가져주는 것 자체가 든든한 거죠. 어려운 점이 있으면 의사와 직접 연결해주거든요.”
 

  ― 직접 환자와 상담하나요.
 
  “그렇지요. 변비가 생겼다든가, 잠을 못 잔다든가, 소변이 잦다든가 이런 작은 것들이라도 개선시켜드릴 수 있어요. 무엇보다 누가 나를 돌봐준다는 점에서 마음의 위로를 크게 받으십니다. 작년에 제 환자 중 세 분이 돌아가셨어요. 다 댁에서 돌아가실 수 있도록 돌봐드렸어요.”
 
  ― 어떤 환자였나요
 
  “한 분은 당뇨와 고혈압이 심했는데 콩팥까지 나빠진 분이었어요. 그런데 중풍까지 와버렸어요. ‘병원 가서 죽고 싶지 않다. 그냥 집에 있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방문 진료를 갔지요. 위독하시기 전날에도 갔어요. 가족에게 ‘얼마 못 가시겠다’ 말씀드려서 준비하실 수 있는 시간 여유를 드렸죠. 본인이 인생의 마지막 날들을 원하는 곳에서 보내실 수 있게 파수꾼 역할을 해드리는 겁니다.”
 
  ― 죽고 싶은 곳이 집이었군요.
 
  “다른 한 분도 집에 있고 싶다며 치료를 거부하셨어요. 불편한 부분이 없으신지 돌아가실 때까지 상담해드렸어요. 가족들도 위안을 받으셨지요. 만약 이런 제도가 없다면 결국 요양병원에 가게 되거든요. 생명연장 며칠 하자고 별 의미 없는 치료하고, 의료비 쓰고, 가족들에게도 부담되고요. 저희의 진료가 환자들의 선택권을 지켜드릴 수 있는 겁니다.”
 
  ― 환자들은 대부분 집에서 돌아가시길 원하나요?
 
  “그럼요. 거의 100% 그렇습니다. 병원에서 의미 없는 치료받는 걸 싫어해요.”
 
 
  방문 진료
 
  오동호 서울시 중랑구 의사회장 역시 방문 진료를 하고 있다.
 
  “4년 전부터 1차의료 방문 진료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재택의료 시범사업에도 참여 중입니다. 중랑구에서는 10곳의 의원이 함께하고 있어요. 재택의료에는 방문 진료와 비대면 진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어떤 환자가 많이 신청하나요.
 
  “뇌졸중, 치매 환자가 가장 많습니다. 관절염, 디스크 등 통증이 심해 거동이 어려운 노년층도 많고요. 집에서 돌아가시길 원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 절대 병원에 안 가시겠다면서요. 일단 동네 의원이 1차 진료를 맡습니다. 환자와 거리가 가까워야 되니까요. 의원급에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은 동네 병원에서 담당합니다.”
 
  ― 어려운 점이 있나요.
 
  “지역 의사회와 구청이 함께 지역에서 의료 전달을 담당하는 센터를 만들고 싶은데 잘 안 되더라고요. 구의회 통과가 싶지 않은 듯합니다. 방문 진료를 두고 동네 의원 좋은 일이지 주민들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수가 구조도 개선되어야 합니다. 의사가 혼자 가는 경우,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가는 경우로 나뉘어 있어요. 그런데 동네 의원엔 간호사가 아닌 간호조무사가 많이 일합니다. 간호조무사와 같이 가는 경우는 수가 지정이 안 되어 있어요.”
 
 
  의료 현장의 진짜 풍경
 
  이게 우리 의료 현장의 진짜 풍경들이다. 우리나라는 국가 예산만 보면 복지부의 나라다. 모든 부처를 통틀어 가장 많은 예산을 쓴다. 2023년 기준 122조3779억원이다. 이 돈을 쓰면서도 생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고 싶은 곳에서 보내기 힘든 나라다. 정책을 세밀하게 짜려면 현장을 아는 의사들이 직접 정책 구상에 참여하는 편이 좋을 거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핵심 부서는 의정국과 건강생활위생국이다. 두 곳 모두 의사가 국장이다. 보험국은 도쿄대 경제학과 출신 전문가가 맡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 관련 부처에 의사 출신 공무원들은 별로 안 보인다. 이유가 뭘까. C 교수에게 물었다.
 
  ― 의사들이 6급으로는 들어가기 싫어서 정부 부처에 안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아뇨. 6급이든 몇급이든 공무원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의사들 많을 겁니다. 미래가 안 보여서 안 들어가는 거예요. 몇십 년을 일해도 승진을 안 시켜줘요. 행시(行試) 출신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잖아요. 고위 관료로 은퇴한 다음 복지부 산하단체나 병원으로 옮겨가지요. 이 카르텔에 의사를 안 껴줍니다. 공무원 조직에 들어가 봤자 평생 승진도 안 되는데 뭐 하러 들어갑니까. 병원에 있지요.”
 
  지난달 기사에서 보건복지부 고위 관료들과 대학병원, 제약회사가 얽힌 카르텔을 언급했다. 여기에 대형로펌도 추가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김앤장 같은 곳이다.
 
 
  복지부-로펌 카르텔
 
  김앤장은 복지부와 복지부 산하기관 출신 관료들을 블랙홀처럼 영입해왔다. 복지부 관료들의 인생 2모작 터전으로 보일 정도다. 이경호 고문(전 복지부 차관, 전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전만복 고문(전 복지부 기획관리실장), 박용현 고문(전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 최수영 고문(전 독성연구원장), 김성태 변호사(전 복지부 사무관), 김인범 전문위원(전 식약청 과장), 양준호 전문위원(전 식약처 과장), 장영욱 전문위원(전 식약청 과장), 편웅범 전문위원(전 식약청 연구관), 구자중 전문위원(전 식약청 의료기술주사), 노양래 전문위원(전 식약청 의료기술주사), 이동하 전문위원(전 식약청 식품연구관), 이병일(전 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 고수경(전 노바티스 전무, 심평원 출신). 김앤장에 근무했거나 하고 있는 복지부(산하기관) 출신 인사들이다.
 
  특히 복지부 보험약제과는 대형로펌으로 가는 중간 기항지로 보인다. 2011년엔 보험약제과 사무관이던 김성태 변호사가 복지부에서 김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9년엔 류양지 전 보험약제과장이 율촌으로 들어갔다. 문재인 정권에서 2017년부터 보험약제과장을 맡아 ‘문재인 케어’에 참여했던 곽명섭 전 보험약제과장 역시 김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앤장은 왜 복지부 관료들을 영입할까. 일단 김앤장은 보건복지 분야에서 정부와 소송전을 자주 벌인다. 지난 2009년엔 노바티스의 ‘글리벡’ 관련 약가인하처분 취소소송에서 승소했다. 이후 소송 업무를 담당했던 복지부 사무관을 영입했다고 한다. 2018년엔 노바티스 리베이트 소송을 하면서 심평원의 이병일 약제관리실장을 영입했다. 두 번째는 컨설팅이다. 제약사는 건보와 약가 협상을 하며 약가(藥價)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김앤장에 컨설팅을 맡긴다. 복지부의 전 공무원들은 로펌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제약사에 약값을 올려 받을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는 셈이다.
 
  공직자윤리법도 이들의 재취업을 막지 못한다.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공직자 재취업 승인율은 보통 90%를 넘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취업을 허용한다. 마지막 제어 장치는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이들의 윤리의식과 양심 정도다.
 
 
  복지부-로펌 출신 노연홍 위원장
 
4월 25일 노연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의료개혁특위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이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노연홍 위원장의 이력을 보자. 한국외대 노어학과를 졸업한 후 1983년 제27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보건복지부 사무관을 시작으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국장, 보건의료정책본부장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다. 2013년엔 가천대 메디컬캠퍼스 부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8년까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이런 후 김앤장 고문으로 취업했다. 식약청장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위원장까지 역임한 이력 덕에 상당한 연봉을 받았다는 얘기가 들린다. 2022년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코로나특별위원으로 참여했다. 2023년부터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을 맡고 있다. 복지부와 대통령실이 어떤 기준으로 이런 이력이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는지 궁금해진다.
 
  서울에 있는 의대의 D교수는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내년에 전공의가 돌아온다 해도 남자들은 대부분 바로 군대를 가게 될 겁니다. 수련법에 1년 이상 수련을 받지 않으면 언제든지 군에서 데려갈 수 있게 되어 있거든요. 후유증이 장기화될 거라는 거죠. 정부가 플랜 B를 만들어놓지 않은 게 큰 실수입니다. 의사들도 마찬가지예요. 협회 차원에서라도 플랜 B를 내놔야 할 텐데 의사들 안에서도 그런 말을 못 꺼내니까요.”⊙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