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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트럼프의 부활과 포퓰리즘

민족주의 소환하는 유라시아 우익 포퓰리즘

‘서구화된 엘리트’에 맞서는 ‘민족적 가치의 수호자’ 자처

글 :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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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의 멘토 두긴과 트럼프의 책사 배넌, 금권 세력 반대, 기독교적 가치 강조 흡사
⊙ 세속주의 근대화 추진했던 튀르키예와 인도, 1970년대 이후 경제적 자유주의와 종교적 보수주의로 무장한 민족주의 ‘신우익’ 등장
⊙ 푸틴, 우크라이나 문제로 서구와 갈등 빚자 ‘위대한 러시아 문명의 귀환’ 외치며 지방·농촌 세력에 호소
⊙ 헝가리·폴란드, 좌경화된 EU에 맞서 전통적 가치와 종교 강조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시사저널》 칼럼니스트 / 저서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K를 생각한다》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2022년 8월 23일 암살된 딸 다리아 두기나의 영결식장에서 연설하는 러시아 극우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 사진=AP/뉴시스
  바야흐로 ‘글로벌 포퓰리즘’의 시대다. 2016년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브렉시트 선거, 이 시대의 가장 유명한 포퓰리스트인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이루어지면서 가히 글로벌 포퓰리즘의 원년(元年)이 되었다. 세계화의 양대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영국과 미국에서, 세계화를 거부하고 토착민을 위한 정치를 주창하는 포퓰리즘이 거대한 승리를 거둔 것은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 뒤에도 부침(浮沈)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포퓰리즘의 약진은 계속되었다. 남미에서도 포퓰리즘의 물결이 뒤따랐다. 2019년에는 ‘열대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23년에는 ‘자유지상주의 포퓰리스트’인 하비에르 밀레이가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올해는 유럽 의회 선거로 불이 옮아 붙었다. 마린 르 펜이 이끄는 프랑스 국민연합,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이 유럽 의회 선거에서 크게 약진했다. 정도는 다르지만 이탈리아에서도 포퓰리즘 성향을 대거 수용한 조르자 멜로니 정부가 등장했다. 게다가 올해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는 포퓰리즘 현상의 가장 큰 이정표가 될 것이 분명하다. 도널드 트럼프와 ‘힐빌리’ 러닝메이트인 J. D. 밴스가 백악관에 입성할지를 둘러싸고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될 예정이다.
 
  그러나 2016년 이후 불거진 서구권의 포퓰리즘에만 집중하는 것은 포퓰리즘을 갑작스럽게 등장한 현상으로 여기게끔 만든다. 실제로 2016년 직후 잠시 포퓰리즘의 물결이 잠잠해졌을 때, 포퓰리스트들이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곧 제도권 정치가 신속히 복구될 것이라는 여러 지식인의 논평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다시 반등(反騰)했고, 선거에서 당락과 부침을 겪기는 하더라도 그 기세가 단시일 내에 꺾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앞으로도 세계의 주요 화두로 남을 포퓰리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선의 확장이 필요하다. 우선 역사 속에서 포퓰리즘이 어떻게 등장했고, 오늘날 어떤 국가들에서 포퓰리즘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지 살펴보자.
 
 
  ‘엘리트의 가면을 벗겨라’
 
  한국에서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는 대체로 좌익 정당이 제기한 복지국가론을 둘러싸고 논의되었다. 2010년대 초반, 무상(無償)급식 정책을 비롯한 각종 복지 정책이 화두에 오르자, 우익 진영에서는 이를 ‘복지 포퓰리즘’이라 비판하면서 연금(年金)과 사회보장 비용 지출로 국가 경제가 위기에 처한 남유럽 및 남미의 사례와 연결했다.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정권이나 유로존 부채 위기를 불러온 그리스처럼, 국가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돈을 뿌리는 선심성 공약을 포퓰리즘이라 칭한 것이다. 물론 이 또한 포퓰리즘의 주요 사례로 볼 수 있지만, 사실 포퓰리즘 자체는 이것보다 더 넓은 의미의 개념이다.
 
  포퓰리즘의 어원은 대중(大衆), 혹은 민중(民衆)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populus’에서 나왔다. 일단은 대중을 정치의 근간에 두고자 하는 사조(思潮), 혹은 정서를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간단한 정의를 채택할 경우 민중(demos)의 통치를 뜻하는 민주정(democracy)과 포퓰리즘이 구별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도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민주정의 반대자들은 인민에게 정치적 의사 결정을 완전히 맡기면 중우(衆愚) 정치가 나타나 공동체(共同體)가 파괴된다고 주장하며 오늘날의 포퓰리즘 비판과 몹시 유사한 논의를 전개하기도 했다.
 

  학술적으로 대체로 합의된 포퓰리즘의 정의에는 또 다른 필수적인 요소가 포함된다. 바로 국가 공동체를 ‘인민 대중(people)’과 ‘엘리트’의 이분법(二分法)으로 바라보는 포퓰리즘의 세계관이다. 대의(代議)민주정은 국민이 국가 통치에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엘리트에게 권력을 위임하고, 엘리트는 자신들을 선출한 국민을 위해 통치한다는 합의를 통해 작동한다. 하지만 포퓰리스트는 이런 합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포퓰리즘 세계관에는 선량한 미덕(美德)을 갖추고 있는 대중과 그 대중을 기만하여 자신들의 지배 체제를 영속하고자 하는 부도덕한 엘리트만이 존재한다. 그 엘리트들의 가면을 벗겨내고, 그들로부터 국가 권력을 빼앗아와 대중에게 돌려준다는 분노의 정서는 포퓰리즘의 핵심 기반이다.
 
 
  반유대주의와 포퓰리즘
 
  넓은 의미에서 포퓰리스트 정서는 근대화에 대한 불만과 동시에 성장했다. 19세기 말부터 성장한 유럽의 반유대주의는 포퓰리즘 정서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역사학자 유리 슬료즈킨은 그의 저서 《유대인의 세기》에서 근대 이행기의 인구 집단을 ‘태양인’과 ‘수성인’으로 구분한다. 한 지역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공동체 문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전근대(前近代) 가치에 애착을 갖는 집단이 태양인이다. 수성인은 여러 도시를 자유롭게 오가는 국제적인 상공인 집단으로, 각지의 태양인들 사이의 거래를 매개하며 부(富)를 축적한다. 동유럽의 유대인, 중동의 아르메니아인, 동남아시아의 화교(華僑) 같은 이들은 ‘최초의 수성인’들이었다. 태양인들은 근대화가 진전되면서 자신들 영혼의 근간을 이루는 토지, 노동, 문화가 돈으로 가치가 매겨지고 거래되는 것에 막대한 스트레스를 느꼈고, 자신들의 토착 민족 문화와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배후에서 국가를 조종하는 국제적 상인 집단’을 척결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현대 포퓰리즘의 역사에서 반유대주의가 끊임없이 등장하게 된 이유다. 이런 유럽의 포퓰리즘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혼란을 통해 더욱 성장했으며, 반공주의, 반유대주의, 반자본주의를 결합해 나치즘·파시즘으로 진화했다.
 
 
  남미의 좌익 포퓰리즘
 
대기업들의 손아귀에 잡힌 상원의원들을 풍자하는 19세기 말 미국의 만화. 포퓰리즘은 소수 엘리트의 정치, 금권 정치에 대한 반발을 주된 동력으로 한다.
  포퓰리즘은 ‘타락한 엘리트’에 맞서는 ‘고귀한 인민 대중’이라는 정서와 수사를 핵심으로 하기에 명확한 이념적 지향성을 지니지 않고, 각 사회의 맥락에 맞게 다양한 이념과 결합하고는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남미 포퓰리즘의 경우, 스페인 정복자들과 연계된 지주 계급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좌익 이념과 결합하여 ‘좌익 포퓰리즘’의 형태로 나아갔다. 물론 근래에는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으로 대표되는 남미 포퓰리즘을 단순한 좌익 포퓰리즘보다는 더 복잡한 계보를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많아졌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같은 확연한 좌익 포퓰리즘 사례도 있다. 극도로 불평등한 데다가 미국 패권(覇權)의 영향력이 막강한 라틴아메리카 사회에서는 유럽계 지주와 자본가들이 미국과 연계된 매판(買辦) 자본이고, 인민 대중의 고혈을 착취하여 자신들의 배만 불린다는 포퓰리즘 수사(修辭)가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는 임금 인상과 사회보장 지출 확대 같은 좌파적 재분배 정책, ‘대중’을 위한 자원 수출의 정부 통제 정책이 주로 채택되었다.
 
  이처럼 전간기(戰間期·제1차 세계대전 종전에서 2차 세계대전 개전 사이의 시기) 유럽의 우익 포퓰리즘이나 남미의 좌익 포퓰리즘은 좌우라는 틀로 보면 정반대의 정치 세력인 것 같지만, 포퓰리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공통점이 매우 많음을 알 수 있다. 경제적 위기가 심화되고,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적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엘리트를 향한 불신이 깊어지고, 그 분노가 타락한 엘리트와 결탁한 외국 세력이나 국내의 소수자까지 확대될 때 ‘인민 대중’의 의지를 대리한다고 표방하는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부상(浮上)하게 되는 것이다.
 
 
  튀르키예와 인도의 세속주의
 
2023년 9월 9일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만난 모디 인도 총리와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두 사람 모두 종교와 민족주의를 내세운 우익 포퓰리즘을 추구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한편 작금의 세계 정치에서 계속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포퓰리즘의 조류(潮流)가 있다. 바로 유라시아의 우익 포퓰리즘이다. 범위가 ‘유라시아’인 이유는 이들이 유럽과 아시아를 포괄하는 공간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좌파 이념을 구(舊)시대의 유물로 취급하고, 자국의 위대한 역사와 문화 전통을 드높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우익’으로 분류된다. 튀르키예(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 흐름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이다. 각국이 걸어온 역사와 현재 상황은 천차만별이지만, 이들은 세계사적 공통의 흐름 속에서 성장하여 유사한 전술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유라시아의 포퓰리스트들이라고 할 수 있다.
 
  포퓰리즘을 탐구하기 위해서라면 먼저 이들이 공격 대상에 놓는 ‘엘리트’가 누구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튀르키예의 경우 아타튀르크가 정초(定礎)한 서구화 정책인 ‘케말주의’를 따르는 이들이 그 엘리트다. 1923년에 오스만 제국 대신에 신생 튀르키예 공화국을 건국한 아타튀르크는, 유럽식 근대 문명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만이 오스만 제국이 겪었던 굴욕을 피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이 결과 군인, 관료, 지식인을 중심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 및 문화 정책이 도입되었다. 이슬람 신앙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정치 세력은 세속주의(世俗主義)의 옹호자를 자처한 군부(軍部)의 지속적 개입으로 해산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케말주의의 성과는 상당했다. 아타튀르크가 멸망 직전에 있던 튀르키예 민족을 서구 세력으로부터 구해내고, 문맹을 퇴치하고 근대화를 진전시켰다는 공을 누구나 인정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1947년 독립한 이래로 인도를 이끈 엘리트층은 영국 식민지 시기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정치 엘리트 집단인 국민의회당이었다. 국부(國父)이자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와 그의 가문을 중심으로 뭉친 국민의회당은 ‘네루 왕조’라고 불릴 정도로 세대를 이어가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네루 역시 식민 지배의 굴욕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빠른 근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국가 계획을 중시하는 친(親)사회주의 정책이 도입되었다. 문화적 근대화는 물론이고, 다(多)민족, 다종교 사회인 인도를 통합하기 위해 종교의 영향력은 공적(公的) 영역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세속주의적 합의도 더해졌다. 물질과 정신의 근대화를 위한 국가 주도 경제와 세속주의라는 점에서 네루의 인도는 아타튀르크의 튀르키예와 몹시 비슷했다.
 
 
  ‘종교적 신우익’ 등장
 
  케말주의 튀르키예와 네루 왕조 인도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포퓰리스트의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첫 번째 문제는 경제였다. 국가가 주도하는 수입 대체 산업화가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인구가 급증했다. 농촌의 인구가 도시로 밀려들면서 주요 도시에서 빈민가가 빠르게 늘어갔다. 안정적인 도시 일자리를 통해 중산층으로 성장하는 길이 차단된 도시 빈민층은 이슬람과 힌두교 같은 종교 기관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고자 했다.
 
  경제를 국가 엘리트가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농촌과 도시의 대항 엘리트가 형성되는 통로는 종교 사원과 민간 자본이었다. 국가 통제의 정도가 덜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민간 자본은 종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삼아 성장했고, 자신들이 후원하는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세속주의 엘리트 노선에 반대하는 독자적인 지식인과 전문직 집단을 육성했다. 튀르키예에서 이들은 이슬람주의자였고, 인도에서는 ‘힌두트바’라 칭해지는 정치적 힌두교도들이었다.
 
  튀르키예와 인도에서 새롭게 뭉친 세력이 요구하는 정책은 경제적 자유화와 종교적 보수주의였다. 이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소련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더욱 빠르게 성장했다. 정도는 달랐지만 소련은 무신론(無神論)을 국시(國是)로 삼은 계획경제 국가였다.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나며 신앙의 자유와 시장경제라는 미국식 모델의 완승이 만천하에 공표되었다. 이 시기만 하더라도 세속주의와 국가의 경제 개입을 여전히 옹호하는 케말주의자나 네루주의자보다는, 신앙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시장 개방을 통한 경제 성장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슬람주의 정당과 힌두트바가 새로운 시대에 더 적극적으로 발을 맞추는 것처럼 보였다.
 
  양국에서는 민주정의 틀 속에서 종교적 신우익들이 계속해서 선거에서 승리하기 시작했다. 튀르키예에서는 1996년에 네지메틴 에르바칸이 이끄는 복지당이 최초의 유의미한 승리를 거두었고, 2002년에는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이 대승을 거두어 지금까지 튀르키예를 이끌고 있다. 인도에서는 1996년 선거에서 힌두트바 정당인 인도인민당이 최다 의석을 차지하며 권력에 성큼 다가갔고, 2014년에는 구자라트 주지사 출신으로 시장 개방과 해외 투자 유치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끈 나렌드라 모디를 총리로 당선시키면서 ‘인도의 힌두화’가 이루어졌다. 실제 에르도안과 모디는 시장 자유화를 통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고 새로운 중산층 그룹의 형성을 독려했는데, 이들은 대체로 이슬람과 힌두교를 깊이 믿는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가족 가치’ 강조하는 동유럽 포퓰리즘
 
  공산당 정권이 무너진 뒤에 포퓰리즘 성향이 강해진 헝가리와 폴란드는 또 다른 사례다. 공산주의가 초래한 경제난과 무신론에 대한 가톨릭 신자들의 불만은 1989년 동구권 혁명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이 두 국가는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상대적으로 원활하게 이루어내고,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빠르게 유럽이라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행기의 혼란이 마무리된 2000년대만 해도 공산 독재를 직접 몰아낸 동유럽 국가에서 자유주의를 향한 진지한 반대가 발생하리라 믿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헝가리에서는 2010년에 재집권하여 지금까지 통치 중인 피데스 당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폴란드에서는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집권한 법과정의당 정권과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주도하는 포퓰리즘이 거세게 약진했다.
 
  이 두 국가의 포퓰리스트는 유럽연합을 주적(主敵)으로 삼았다.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의 교류를 촉진하여 유럽을 하나로 묶고, 세계 무대에서 유럽의 공동 대응을 이루는 초(超)국가 기구로서 등장했다. 자유주의와 사회 연대(連帶)의 조화는 모든 유럽 공동체가 공유하는 ‘유럽적 가치’로서 선전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헝가리와 폴란드의 보수주의자들은 유럽적 가치가 점점 문화적으로 좌경화(左傾化)되고 있다고 비판을 가했다.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인권 문제, 그리고 난민과 다문화 문제에 있어서 양국의 우익들은 일관되게 브뤼셀의 유럽연합 본부와 반대되는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악화되는 동유럽의 인구 문제를 비판의 근거로 삼았다. 인구 이동이 자유로워지자 청년층이 프랑스와 독일 같은 부유한 서유럽으로 떠나고, 사회가 급속히 세속화되면서 출산율이 줄어 동유럽에 인구학적 재난이 찾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주로 무슬림으로 구성된 중동계 난민이 유입된다면, 동유럽 민족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난민과 이주민의 정착을 철저히 막고, 브뤼셀이 요구하는 성평등 정책에 제동을 걸고, 결혼과 출산이라는 가족 가치를 되살려야만 한다는 양국 포퓰리스트의 주장은 지방의 소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국민의 의지’의 대변자들
 
  튀르키예, 인도, 헝가리, 폴란드에서 전개된 이 흐름은 모두 종교를 중심으로 가족과 공동체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익 보수주의자들이 주도했다. 경제 정책 면에서도 이들의 입장은 대체로 국가 주도 경제에 반대한다는 차원에서 우익에 더 가깝다.
 
  이들을 서구 세계의 전형적인 우익과 결정적으로 구별 짓는 것이 바로 포퓰리즘이다. 에르도안의 지지자들은 이스탄불과 이즈미르로 대변되는 지중해 해안의 세속주의자들이 민족과 종교의 가치를 저버리고, 서구식 소비 문화라는 향락에 젖어 들어 있다고 비난한다. 대신에 아나톨리아 내륙과 강한 연을 맺고 모스크에 출석하는 자신들을 ‘진정으로 충성스러운 국민’이라고 여긴다. 인도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회당은 영국 식민 지배 시절에 형성된 ‘서구화된 엘리트’로서, 힌두교를 충실히 따르는 ‘진짜 인도인’과 구별되는 존재들이다. 인구의 14%에 달하는 무슬림 또한 이들 입장에서는 의심해야 마땅한 대상이다.
 
  폴란드와 헝가리는 자국 자유주의자들을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브뤼셀의 유럽연합 관료들과 프랑스와 독일 정치인들의 앞잡이라고 비난하고, 그들은 어차피 부다페스트나 바르샤바와 같은 도시에 거주하며 언제든 런던이나 파리로 옮겨 다닐 수 있는 뜨내기에 불과하다고 공격한다.
 
  이처럼 자신들이 ‘국민의 의지’를 대변하고 있다는 선언은 포퓰리스트를 향한 자국 내의 반대파는 물론이고 유럽연합,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비판도 막아낼 수 있는 강력한 수사로 기능한다.
 
 
  ‘위대한 러시아 문명의 귀환’
 
  이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으로 부상하고 있는 국가는 당연히 러시아다. 얼핏 보면 러시아는 포퓰리즘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푸틴 정권은 24년째 국가를 통치 중이고, 소련 시절부터 형성된 군부, 검찰, 정보부 엘리트들이 막대한 자원을 통제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푸틴 집권기 첫 10년만 하더라도, 러시아의 엘리트층과 중산층은 서구와의 연결을 통해 이득을 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전임 보리스 옐친 시기에 국영 기업 민영화로 막대한 부를 쌓은 과두재벌(올리가르히)은 물론이고, 푸틴이 러시아를 안정화시킨 결과, 양대 핵심 도시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형성된 중산층도 있었다.
 
  하지만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비롯하여 인접한 탈(脫)소비에트 국가들을 둘러싸고 서구와 본격적인 대립 구도를 세우자, 푸틴이 의지해야 하는 주요 지지층은 급속히 바뀌었다. 2014년 크림(크름) 병합과 돈바스 전쟁으로 시작된 경제 제재는 서구와 연결된 재벌과 중산층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대신에 다시 서구와 대립하며 ‘위대한 러시아 문명의 귀환’을 외치는 푸틴의 새로운 민족주의적 수사에 동조하는 지방 도시들과 농촌 지역이 푸틴의 가장 큰 지지 세력으로 떠올랐다. 말하자면 푸틴의 포퓰리즘에서 ‘진짜 국민’이 맞서야 할 타락한 엘리트는 이미 푸틴이 제압한 상태였고, 대신에 러시아를 다시 해체시키고, 우크라이나 돈바스의 러시아인 동포를 위협하는 ‘진짜 적’으로 서구가 부상하게 된 것이다.
 
 
  ‘해양 세력’ vs ‘대륙 세력’
 
  이 결과 2014년 이후 크렘린에서는 새로운 세계관을 구상하여 자국은 물론이고 해외에서까지 지지자를 모으는 홍보에 주력했다. 세계는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는 문명 세력과 그것을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해체시키는 서구의 금권(金權) 세력으로 나뉜다는 것이 새로운 세계관의 핵심이었다.
 
  성(性)과 가족은 여기서 핵심 전장(戰場)으로 부상했다. 미국 주도의 서구 국가들은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페미니즘, 성소수자 이데올로기를 전파하여 가족을 해체시키고 동성애를 조장하니, 전통 문명의 가치를 보전하는 세계, 특히 유라시아의 전통주의자들이 연합을 해 맞서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에서 서구화를 지향하는 유로마이단 혁명이 일어나자 “서구는 기독교적 뿌리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러시아는 기독교에 뿌리를 둔 전통 가치로 돌아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단극(單極) 세계’에 맞서는, 지역 강국들이 주도하는 ‘다극(多極) 세계’를 만들겠다는 러시아의 비전에서 유라시아 각지의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잠재적인 주요 협력자로 부상했다. 특히 푸틴의 정책을 설명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사상가인 알렉산드르 두긴은 이런 아이디어를 더욱 적극적으로 주창했다. 두긴은 세계사 자체를 이성의 이름으로 모든 관계를 화폐로 환산하는 ‘해양 세력’과 해양 세력에 맞서 숭고함을 지키는 ‘대륙 세력’의 대립이라고 하며, 해양 세력의 패권에 맞서는 전 세계적인 대륙 세력 동맹의 필요함을 역설했다. 두긴이 주목한 대륙 세력은 오스만 제국을 이은 튀르키예, 이슬람 성직자들이 통치하는 이란,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중국, 새로운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헝가리, 힌두교에 따라 국가를 재조직하는 인도였다.
 

  당연히 이 국가들이 러시아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러시아와 대립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화적 자유주의와 세속주의를 요구하는 국내의 반발과 서구의 압박이 가해질 때, 이들은 종종 러시아와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국민의 의지’를 근거로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위대했던’ 역사를 낭만화하는 경향도 빼놓을 수 없다. 푸틴은 러시아 제국과 소련을, 모디는 이슬람을 믿는 무굴 제국에 맞선 마라타 연합을, 에르도안은 오스만 제국을 내세우며, 강력한 지도자하에 단결된 제국의 영광을 스펙터클하게 연출해 오늘날에도 전설적 역사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신호를 발신하며 지지자를 규합한다.
 
 
  두긴과 배넌
 
2018년 9월 22일 로마에서 열린 반EU 행사에서 연설하는 스티브 배넌. 이 자리에서 그는 “이 포퓰리즘 운동의 새로운 엘리트는 사회의 애국자들”이라고 주장했다. 사진=AP/뉴시스
  유라시아 우익 포퓰리즘은 대양 건너편, 유라시아 바깥의 미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 포퓰리즘의 전통 위에 있는 인물로, 전통과 문명을 얘기하는 유라시아 경향과는 구분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 트럼프의 숨겨진 책사로 명성을 떨친 스티브 배넌 같은 인물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기독교에 근거한 미국의 가치가 거대한 북미 대륙의 중소 도시와 농촌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이 고귀한 평민 대중을 착취하는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타락한’ 금권 세력과 문화 엘리트를 축출하고, 미국만의 전통적 가치를 되살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의 두긴과 놀랍도록 흡사한 세계관인데, 실제 배넌은 두긴의 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두긴과 사적으로 만나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을 정도다.
 
  최근 전통주의를 치켜세우는 패트릭 드닌을 비롯한 신우익 지식인들이 헝가리의 오르반을 고평가하는 경향도 매우 뚜렷하다. 지정학적인 이해관계가 때때로 다를 수 있어도, 일종의 문명주의라고 할 수 있는 신흥 우익 포퓰리즘 공통의 세계관은 국가 간 영향을 주고받으며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여전히 ‘좌익 포퓰리즘’ 득세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이때는 기본적으로 유라시아의 우익 포퓰리즘은 탈냉전의 산물이었음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냉전은 이성을 통한 인류의 진보를 믿은 우익과 좌익 계몽주의자들 간의 경쟁이었다. 그 한 축인 사회주의가 무너지며 우익 계몽주의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좌익 계몽주의가 차지하고 있던 빈자리를 다양한 종류의 전통주의가 채워가며 이성과 계몽에 대한 반발을 결집하게 된 것이다.
 
  이 말인즉슨, 세계적으로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북한과 대치를 이어가며 한반도에서 냉전을 계속한 대한민국의 상황은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여전히 ‘포퓰리즘’ 하면 ‘선심성 복지 공약’을 핵심으로 하는 좌익 포퓰리즘을 연상하는 것이 그 대표적 증거다.
 
  이런 면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세계적으로는 오히려 약세(弱勢) 국면에 접어든 좌익 포퓰리즘을 꾸준히 흡수하며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독특한 사례다. 2010년대 이래로 복지 지출의 지속적인 확대를 주창하고, ‘친일파에서 시작되는 한국의 타락한 엘리트’를 대한민국이 처한 곤경의 모든 원인이라고 비난하는 수사를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문화와 전통을 강조하는 유라시아의 우익 포퓰리즘은 한국에서 그 세(勢)가 없다시피 하다. 물론 보수 지식인 일각에서 민주당 계열을 유교(儒敎) 성리학의 렌즈를 통해 분석하는 의미 있는 시도가 있었으나, 그렇다고 민주당이 그 내용적인 면에서 성리학 전통의 복원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민주당은 여성운동계를 비롯한 여타 문화적 진보주의를 추구하는 시민단체와 연계하고 있고, 이런 연유로 미국과 서유럽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에 더 우호적인 경향도 분명히 존재한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경우에는 북한의 위협에 맞서고 중국을 경계하고자 강력한 친미 노선을 견지하기에 미국과 대립하는 유라시아의 우익 포퓰리즘을 지지하기는커녕 반대로 적대적인 게 보통이다. 향후에도 포퓰리즘을 둘러싼 한국의 독특한 지형에 딱히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밑바닥 대중 정서와 유리된 국민의힘
 
  그러나 포퓰리즘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과격해 보이는 이미지와 다르게 포퓰리즘이 그 자체로 악(惡)한 정치도 아니며, 모든 문제의 근원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이다.
 
  포퓰리즘은 정치가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하고 엘리트와 대중 사이의 신뢰가 깨졌을 때 나타나는 일종의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포퓰리즘이 좌익부터 우익까지, 각 국가의 상황과 맥락에 맞게 천태만상으로 나타나곤 하는 것이다. 예컨대 튀르키예의 케말주의가 국가 발전에 성공했다면 그 뒤의 에르도안 정권은 나타나지 못했거나 장기 집권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이 문화적 합의를 이루고 불평등을 잘 다루어냈다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도 없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포퓰리즘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포퓰리스트가 선풍적 인기를 끌게 만든 사회의 위기 상황과 합의의 부재(不在)를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인 일일 수 있다. 때로는 포퓰리즘이 그 강력한 정서적 힘을 바탕으로 후대(後代)에도 계속 이어질 정치적 성과를 달성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박정희 대통령도, 기존의 자유당과 민주당의 정쟁(政爭)을 ‘타락한 엘리트’의 탁상공론이라 비판하며, ‘지금 국민이 원하는 일을 해내는 정부’를 표방하며 국가 발전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을 적당히 활용한 인물이었다.
 
  이런 차원에서, 포퓰리즘을 통해 대중과의 연결고리라도 계속 유지하고 있는 민주당보다, 원칙을 지키는 정치를 해내지도 못하고, 대중의 밑바닥 정서와도 유리된 국민의힘이 더욱 위기에 몰린 정치 세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보수 세력 또한 전통, 공동체의 가치와 개인, 시민 권리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져가고, 이에 따라 대중과 엘리트의 대립이 심해지고 있는 지금의 세계 상황에 촉각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 인식 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합의가 위기에 처해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이를 재건할지에 대한 나름의 답을 도출해야만 자신의 생존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생존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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