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수 특검과 민주당, 블랙리스트 수사할 수 없다는 점 인지하고 4차례 특검법 개정하려 시도
⊙ “文 대통령 비서실이 특검에 갖다 준 박근혜 청와대 문건, 증거 능력 없다”(조희대 대법원장)
⊙ “정부와 관련 위원회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기금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는 재량 있어”(박상옥 대법관)
⊙ “국정 운영과 집행을 범죄로 처단한다면 정치 보복 길 열어주는 것”(김문희 前 헌법재판관)
⊙ “文 대통령 비서실이 특검에 갖다 준 박근혜 청와대 문건, 증거 능력 없다”(조희대 대법원장)
⊙ “정부와 관련 위원회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기금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는 재량 있어”(박상옥 대법관)
⊙ “국정 운영과 집행을 범죄로 처단한다면 정치 보복 길 열어주는 것”(김문희 前 헌법재판관)
- 2016년 12월 12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특검 고발인 및 참여단체가 서울 강남구 대치빌딩에 마련된 특검 사무실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치공작 규탄과 블랙리스트 사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월 24일, 국정농단 수사와 재판이 모두 끝났다. 2016년 12월 21일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검사’(이하 박영수 특검)가 기소한 사건 중 최장기간이 소요된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이날 종료되었다. 청와대 고위 공직자들이 문화체육계 지원 배제 리스트(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문체부 1급 공무원의 사퇴를 강요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이 사건의 피고인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고위 공직자 7인이었다. 이들 모두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은 장기간에 걸쳐 문화예술계에서 이념적 성향과 정치적 입장 등에 따른 차별적 지원을 했고 이로 인해 문화예술계 종사자 다수는 상당한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이로 인해 문화적 재생산 기능이 저하되고 국민의 신뢰 역시 크게 훼손됐다”고 했다.
이들 공직자들에게 적용된 죄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이하 직권남용죄)다. 형법 제7장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 123조로,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죄를 말한다. 직권남용죄는 수십 년간 사문화(死文化)된 조항이었지만 2017년 국정농단 사태에서 고위 공직자들을 기소하기 위한 핵심 조항으로 떠올랐다. 이후 정치적 사건에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직권남용 남용 시대’라는 말도 나왔다.(《한겨레》 2022년 10월 19일, “기소율 0.1% 직권남용 남용 시대… 권력 감시인가 정치 보복인가”)
블랙리스트는 특검 수사 대상인 ‘최순실 관련 사건’이 아니었다
국정에 참여하는 고위 공직자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는 법조계에서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1월 26일 서울중앙지법은 사법농단 관련 직권남용죄 등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모든 혐의 무죄를 선고했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죄로 기소된 인물들에게 모두 실형이 내려진 것과는 정반대의 판결이다.
《월간조선》은 장장 7년여에 걸쳐 재판이 진행된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각종 자료와 법조인들의 조언을 토대로 해부했다. 애초 ‘국정 운영 행위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취재였지만, 취재 과정에서 더 심각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그 실체를 규명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는 점과 함께 애초 특검법으로는 기소가 불가능한 사건으로 법적,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최순실 관련 언론 보도가 쏟아진 후 더불어민주당과 박영수 특검이 다급하게 사건을 키우고 전국이 국정농단 광풍에 휩쓸린 상태에서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태로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았던 김경종 변호사(사법연수원 9기, 전 서울북부지법 법원장)의 얘기다.
“특검법에 따르면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특검의 수사 대상이 아니다. 특검법 2조 11~14호의 최순실 관련 사건도, 15호의 ‘최순실 사건 수사 중 인지한 관련 사건’도 아니다. 따라서 블랙리스트 사건은 특정인을 겨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수사 개시 시점도 문제다. 특검이 출범하자마자 수사를 개시한 사건이다. 특검은 2016년 12월 15일 서초동 사무실에 입주하고 21일 공식 출범했는데, 특검팀은 12월 13일부터 모처에서 문체부 1급 공무원 등을 만나 자료를 건네받고 증언을 청취했다.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적법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 및 판결은 절차적인 문제와 실체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절차적으로는 ▲특검의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이 청와대 캐비닛에서 확보해 특검에 제공한 자료의 증거 능력 문제 ▲박영수 특검의 범죄인지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김기춘·조윤선 등에 대한 고발의 적법 여부 등의 문제가 있으며, 실체적으로는 ▲정부보조금 선별 지원이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 여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신분 보장이 되지 않는 1급 공무원을 해임하는 것이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 여부 ▲대통령과 비서실장, 문체부 실무자들이 순차 공모했다는 혐의에 대한 증거 없음 등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관련 사건’ 삭제하려 4번이나 특검법 개정하려 한 야당
절차적인 문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2017년 2월 박영수 특검이 기소한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애초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을 규명하는 특검의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특검법(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은 2016년 11월 15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박범계 의원 등 209인이 발의했고 이틀 후인 1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특검법은 2조에서 수사 대상을 1~15호로 열거하고 1~14호는 최순실 관련 사건, 15호는 1~14호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특검법 제2조(특별검사의 수사 대상)
1호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등 청와대 관계인이 민간인 최순실 등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하거나 외교안보상 국가기밀 등을 누설했다는 의혹 사건
(중략)
14호 대통령 해외순방에 동행한 성형외과 원장에 청와대와 비서실의 개입과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 사건
15호 제1호부터 제14호까지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애초 최순실과 관련이 없었던 사건이었고, 최종 수사 결과에서도 최순실과 관련성은 없었다. 그럼에도 특검은 문체부 블랙리스트를 15호 사건으로 분류해 수사에 착수했고, 따라서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특검의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논란이 계속됐다.
특검법 2조 15호가 명시한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이란 무엇일까. 형사소송법 제11조는 관련 사건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11조 (관련 사건의 정의) 관련 사건은 다음과 같다.
1. 1인이 범한 수죄
2. 수인이 공동으로 범한 죄
3. 수인이 동시에 동일 장소에서 범한 죄
4. 범인은닉죄, 증거인멸죄, 위증죄, 허위감정통역죄 또는 장물에 관한 죄와 그 본범의 죄〉
따라서 특검법 2조 15호의 수사 대상이 되려면 최순실 관련 사건(1~14항)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이어야 한다. 블랙리스트 사건을 특검이 수사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 점을 뒤늦게 인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이 발의한 특검법을 수차례 개정하려 시도했다. 개정의 핵심은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2016년 1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더불어민주당과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은 총 4차례에 걸쳐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 명기된 제안 이유는 4건 모두 특검법 2조 15호의 ‘인지된 관련 사건’을 ‘인지된 사건’으로 바꾸는 것이었다.(아래 박스 참조)
박영수, 국조특위에 “(관련 사건 아닌 사건으로) 특검법 개정 필요하다” 요구
박영수 특검도 특검법 개정에 발벗고 나섰다. 박 특검은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을 만나 특검법 2조 15항을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에서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사건’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래는 2017년 1월 3일 국회 국정조사특위 제13차 회의록 일부다.
〈위원장 김성태 : 지난해 12월 30일 박영수 특검을 만났을 당시에 특검이 우리 국회에 요청한 사항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특검의 수사 대상 문제입니다. 이게 특검법 제2조에 관련한 부분인데 지난 12월 22일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에 이런 혐의 사실에 대해 법원이 관련 사건의 명확성 문제로 보정 요구를 특검이 받은 바가 있지요. 특검 입장에서도 현재의 법 규정을 유지한다면 국회에서 고발 또는 수사 의뢰하는 사건 또한 특검의 수사 대상 여부에 대한 시비가 있을 수 있다는 그 문제도 건의하면서 첨언을 했어요. 그래서 특별검사 수사 대상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사건’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건의가 특검으로부터 요청이 있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였던 박범계 의원은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가 난항을 겪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특검법의 한계 때문에 인지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15호에서 ‘관련’이라는 단어만 들어내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다. 또 특검은 “조윤선 등의 청문회 위증 혐의와 관련해 특검법상 논란의 여지가 있어 이 부분을 명확히 정리하고자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내일신문》 2017년 1월 2일 ‘청문회 위증수사 특검법 개정 필요’)
따라서 4차례에 걸친 특검법 개정 시도는 민주당과 특검이 반드시 수사하려 한 인물이 애초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인물이 아니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에 대한 수사, 국정농단 관련 사건 수사는 문제없이 진행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을 고쳐서라도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 등을 수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의 혼란 속에 특검법은 개정되지 못했다.
김경종 변호사의 얘기다.
“민주당과 특검이 특검법 개정을 수차례 언급하고 시도한 것은 특정 사건, 즉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특검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애초 수사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김 변호사는 또 다른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고소·고발에 의하지 않고 검사가 스스로 범죄를 인지하고 수사를 개시할 때는 검사가 범죄인지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수사기록에는 박영수 특별검사가 작성한 범죄인지서가 없었다. 수사 개시 절차가 적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 특검 압수수색 영장에 제동
실제로 특검의 블랙리스트 수사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특검은 2016년 12월 23일 문체부와 김기춘 전 실장의 집 등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지 않고 “영장을 신청하는 이유를 보완하라”고 보정명령을 내렸다.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이 특검의 수사 대상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하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블랙리스트 작성에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라도 있어야 수사가 가능하다고 봤다.(《중앙일보》 2016년 12월 29일 ‘암초 만난 특검’)
국정농단 사태로 궁지에 몰려 있던 새누리당도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냈다. 아래는 2017년 1월 3일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회의록 중 관련 내용이다.
〈새누리당 정유섭 의원 : 특검이라고 무소불위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검찰 위에 군림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블랙리스트 수사는 일반 검찰에서 하는 게 맞고 특검법에 해당되지 않는 (특검의) 블랙리스트 수사는 월권이며, 이런 선례가 만들어지면 법치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지금 특검은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서 무리한 수사 범위 확장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블랙리스트 수사는 일반 검찰에 맡기고 특검은 최순실 게이트에 집중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새누리당 이채익 의원 : 특검의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 개시를 위한 영장을 법원이 기각했습니다. 특검의 조사 대상을 규정한 특검법 제2조 15호에 위반되기 때문입니다. 특검법 제2조를 보면 특검은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이 대상이지 블랙리스트라는 말은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특검법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박영수 특검팀 대변인을 맡은 이규철 특검보도 조윤선 장관의 위증 혐의에 대해 특검법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이 부분을 명확히 하고자 국회에 의견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특검이 국회 국정조사특위에 위증 증인 고발 사건을 제출한 부분은 자가당착이 아닌가 봅니다. 국정조사특위가 철저히 조사하되 입법부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고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국정농단 관련 고소·고발이 적법한 절차가 아니라 박영수 특검의 편의대로 이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조특위는 공식적인 활동 종료 예정일(2017년 1월 15일) 이후 특검의 요구에 따라 김기춘 전 실장을 위증혐의로 추가 고발하려 나섰다. 국조특위는 1월 12일 제15차 회의에서 이재용 위증고발을 의결하고 활동결과 보고서를 채택한 후 김성태 위원장이 산회를 선포하며 활동을 종료했다. 김 전 실장을 위증혐의로 고발한 것은 그 이후다. 다음은 관련 기사다.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은 2017년 1월 17일 국회에서 특위 종료 기자간담회를 열고 “박영수 특검으로부터 김기춘 증인의 위증혐의 고발 요청이 있었다”며 “국조특위 활동이 만료된 관게로 특위위원 전원의 연서를 받아 고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와함께 국조특위는 특위 위원들이 요청한 16개 사안을 별도로 특검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뉴스1》 2017년 1월 18일)
김경종 변호사는 “국회 국조특위가 활동 종료일 이후 박영수 특검의 별도 요청으로 김기춘 전 실장만 따로 고발에 나섰고, 특위위원 전원 18명의 연서를 받아 고발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10명만 참여했다. 이는 국조특위에서 심의도 의결도 없었던 건이며, 따라서 일부 국회의원의 고발일 뿐 국조특위의 고발이 아니다. 그동안 국조특위에서 김 전 실장 위증고발에 대한 논의가 없었는데 특검법 2조 15호 논란이 커지자 (특검이) 위증으로라도 김 전 실장을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위증고발을 요청한 것이며 이는 적법한 고발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청와대 회의록의 증거 능력은
한편 이 재판에서 나타난 또 다른 절차적 문제점은 중요 증거로 채택된 문건이 사실은 증거 능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법관 시절 이 사건에서 무죄 취지의 소수의견을 냈다. 이 사건의 핵심 증거로 채택된 문건, 즉 특검이 제출하고 법원이 증거로 채택한 청와대 문건에 증거 능력이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특검은 청와대 회의자료 등 문건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실장 등이 대통령 주재 비서관 회의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고 파악했다. 이 문건들은 특검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대통령 비서실이 청와대 캐비닛과 전(前) 정권 직원들의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자료들을 특검에 제공한 것이다. 특검은 이를 기초로 수사를 진행했고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조희대 대법관은 이를 적법하지 않은 행위로 판단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소지도 있다.
조 대법관의 의견이다.
“수사권 없는 특정인이 특정한 의도를 갖고 수사 절차에 개입한 것이다. 이는 특검의 권한을 침해하고 특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해당 증거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된 것으로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위법수집증거의 배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에 따라 증거 능력이 없다. 이를 기초로 작성된 피고인들과 참고인들의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조서, 법정 진술도 2차적 증거로서 증거 능력이 없다.”
이 같은 절차상의 문제 외에도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그 실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박상옥 대법관은 청와대의 지시, 즉 권한 행사로 국가재정법에 반하는 지출이 이뤄졌는지 증명돼야 하는데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를 판단할 증거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판결에 적시된 ‘공모’의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보조금 지원이 직권남용?
박 대법관의 의견이다.
“비록 피고인들이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기금의 배분 대상에서 제외하는 정책을 예술위 영진위 출판진흥원 직원에게 지시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권한의 행사로 말미암아 각 법인의 심의 과정이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국가재정법에 반하는 지출이 이뤄졌다는 점이 구체적으로 증명돼야 한다. 그러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를 판단할 증거도 부족하다. 공소사실 범죄일람표는 예술위 등 직원들이 피고인들의 지시에 따라 행했다고 나열된 일련의 행위들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구성요건 해당성 충족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핵심적인 사항인 각각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고 이로 인해 각 법인의 지원 배제 심의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해서는 각 행위들이 준별되지 않은 채 망라돼 있을 뿐이다. 이 사건에서 이뤄진 지원 배제는 예술위 영진위 출판진흥원의 각 법인의 심의에 따른 것이지만 각 법인에서 위원들의 역할, 심의 과정 등을 알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그럼에도 마치 각 법인의 직원들이 수행한 의무 없는 일을 통해서 지원 배제 행위가 이뤄진 것처럼 구성한 이 부분 공소 사실은 그 증명이 없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상옥 대법관은 또 정부가 지원대상단체 중 문제단체 명단을 작성하고 체계적으로 선별 지원에 나섰다고 해도 이것이 범죄의 영역은 아니라는 의견도 냈다. 계속된 그의 의견이다.
“법령상 개인이나 단체는 국가에 대해 기금 수령을 청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가 없어 관련 행정부처 등은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기금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고, 관련 위원회도 재량을 갖고 있다. 이 실행 과정을 사후에 평가해 직권남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모든 문화적 활동을 기계적으로 균등하게 지원해야 할 국가의 의무나 개인의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연방대법원 역시 정부의 가치 판단에 따른 기금의 선별적 지원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지원이 배제된 단체나 개인은 국가기금을 지원받지 못할 뿐이지 그들의 문화예술행위 자체를 국가가 제한하는 것이 아닌 이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 볼 수 없다. 사후적으로 평등의 원칙에 위반됐다는 이유로 공무원을 직권남용으로 형사처벌한다면 급부행정 정책 공무원은 본질적으로 차별적 집행일 수밖에 없어 언제든지 형사처벌 가능성이 생긴다.”
진실은 역사의 법정으로
헌법재판관을 역임한 김문희 변호사(고등고시 사법과 10회,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관한 정책적 판단과 집행을 범죄로 처단하는 것은 선거제도와 민주주의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고위 공무원의 모든 정책 결정과 집행이 형벌권의 위험하에 놓이게 돼 정권교체 때마다 보복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은 국정농단 사건은 뉴스의 영역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도, 잘못 알려진 사실도 많다. 진실은 역사의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은 장기간에 걸쳐 문화예술계에서 이념적 성향과 정치적 입장 등에 따른 차별적 지원을 했고 이로 인해 문화예술계 종사자 다수는 상당한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이로 인해 문화적 재생산 기능이 저하되고 국민의 신뢰 역시 크게 훼손됐다”고 했다.
이들 공직자들에게 적용된 죄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이하 직권남용죄)다. 형법 제7장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 123조로,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죄를 말한다. 직권남용죄는 수십 년간 사문화(死文化)된 조항이었지만 2017년 국정농단 사태에서 고위 공직자들을 기소하기 위한 핵심 조항으로 떠올랐다. 이후 정치적 사건에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직권남용 남용 시대’라는 말도 나왔다.(《한겨레》 2022년 10월 19일, “기소율 0.1% 직권남용 남용 시대… 권력 감시인가 정치 보복인가”)
블랙리스트는 특검 수사 대상인 ‘최순실 관련 사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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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4일 김기춘(왼쪽)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과 1년 2개월을 각각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
《월간조선》은 장장 7년여에 걸쳐 재판이 진행된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각종 자료와 법조인들의 조언을 토대로 해부했다. 애초 ‘국정 운영 행위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취재였지만, 취재 과정에서 더 심각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그 실체를 규명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는 점과 함께 애초 특검법으로는 기소가 불가능한 사건으로 법적,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최순실 관련 언론 보도가 쏟아진 후 더불어민주당과 박영수 특검이 다급하게 사건을 키우고 전국이 국정농단 광풍에 휩쓸린 상태에서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태로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았던 김경종 변호사(사법연수원 9기, 전 서울북부지법 법원장)의 얘기다.
“특검법에 따르면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특검의 수사 대상이 아니다. 특검법 2조 11~14호의 최순실 관련 사건도, 15호의 ‘최순실 사건 수사 중 인지한 관련 사건’도 아니다. 따라서 블랙리스트 사건은 특정인을 겨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수사 개시 시점도 문제다. 특검이 출범하자마자 수사를 개시한 사건이다. 특검은 2016년 12월 15일 서초동 사무실에 입주하고 21일 공식 출범했는데, 특검팀은 12월 13일부터 모처에서 문체부 1급 공무원 등을 만나 자료를 건네받고 증언을 청취했다.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적법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 및 판결은 절차적인 문제와 실체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절차적으로는 ▲특검의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이 청와대 캐비닛에서 확보해 특검에 제공한 자료의 증거 능력 문제 ▲박영수 특검의 범죄인지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김기춘·조윤선 등에 대한 고발의 적법 여부 등의 문제가 있으며, 실체적으로는 ▲정부보조금 선별 지원이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 여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신분 보장이 되지 않는 1급 공무원을 해임하는 것이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 여부 ▲대통령과 비서실장, 문체부 실무자들이 순차 공모했다는 혐의에 대한 증거 없음 등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 개요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문화예술보조금이 편중 집행되고 있으며 정치 성향을 가진 문화단체들이 문화예술계의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는 판단하에 보조금 지원 기준을 점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 서울시 등은 비영리단체 보조금 지원 대상을 선정할 때 해당 단체나 기관이 불법집회나 시위에 가담했는지, 헌법질서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 처벌을 받았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는 지침을 마련했다.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2014년 3월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를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개선하라고 조윤선 정무수석에게 지시했다. 이후 민간보조금TF가 구성됐고, TF는 두 달간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문건을 작성한 후 활동을 마쳤다. 이 문건에는 정부 보조금으로 정치적인 활동을 한 단체, 불법집회에 참석한 경력이 있는 단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한 단체 등이 기록돼 있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1만 명 규모의 블랙리스트’는 TF 문건과 별개로 2016년 문체부 사무관이 검색을 통해 9000여 명의 명단을 작성한 것이다. 해당 명단은 청와대에 보고한 적도, 적용된 적도 없는 것으로 수사 결과 나타났다. 2016년 11월 출범한 특검은 문체부가 각종 단체와 기관에 지원하는 정부보조금을 선별 지원했다며 2017년 2월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수석,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등 7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2017년 7월 1심, 2018년 1월 2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왔지만 대법원은 2020년 1월 파기환송했다. 이후 박영수 전 특검이 구속되면서 재판은 사실상 중단됐고, 2023년 7월 서울고등법원이 다시 재판을 시작했다. 최종 선고는 2024년 1월 24일이었으며 7명 모두 유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
‘관련 사건’ 삭제하려 4번이나 특검법 개정하려 한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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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9일 대장동 로비 의혹으로 구속기소됐던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석방되고 있다. 박 전 특검은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특별검사로 활동했다. 사진=뉴시스 |
〈특검법 제2조(특별검사의 수사 대상)
1호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등 청와대 관계인이 민간인 최순실 등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하거나 외교안보상 국가기밀 등을 누설했다는 의혹 사건
(중략)
14호 대통령 해외순방에 동행한 성형외과 원장에 청와대와 비서실의 개입과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 사건
15호 제1호부터 제14호까지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애초 최순실과 관련이 없었던 사건이었고, 최종 수사 결과에서도 최순실과 관련성은 없었다. 그럼에도 특검은 문체부 블랙리스트를 15호 사건으로 분류해 수사에 착수했고, 따라서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특검의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논란이 계속됐다.
특검법 2조 15호가 명시한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이란 무엇일까. 형사소송법 제11조는 관련 사건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11조 (관련 사건의 정의) 관련 사건은 다음과 같다.
1. 1인이 범한 수죄
2. 수인이 공동으로 범한 죄
3. 수인이 동시에 동일 장소에서 범한 죄
4. 범인은닉죄, 증거인멸죄, 위증죄, 허위감정통역죄 또는 장물에 관한 죄와 그 본범의 죄〉
따라서 특검법 2조 15호의 수사 대상이 되려면 최순실 관련 사건(1~14항)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이어야 한다. 블랙리스트 사건을 특검이 수사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 점을 뒤늦게 인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이 발의한 특검법을 수차례 개정하려 시도했다. 개정의 핵심은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2016년 1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더불어민주당과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은 총 4차례에 걸쳐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 명기된 제안 이유는 4건 모두 특검법 2조 15호의 ‘인지된 관련 사건’을 ‘인지된 사건’으로 바꾸는 것이었다.(아래 박스 참조)
특검법 제정 및 개정안 발의 일지 특검법 최초 발의 2016. 11. 15 대표발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제안 이유) 민간인 최순실과 그 친척, 주변인 등과 관련한 의혹들이 지속 제기되고 확산되면서 국정 동력이 떨어지고 의혹 해소 없이는 정상적인 국가 운영이 어려움. 이에 독립적 지위를 갖는 특별검사를 임명해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에 엄정한 수사와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도록 함. 특검법 개정안 발의 2016. 12. 30 대표발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제안 이유) 법률 제2조 15호의 ‘관련 사건’이 입법 의도와 달리 형사소송법 제11조의 관련 사건으로 해석될 여지를 방지하고자 ‘인지된 사건’이라고 명확히 규정하고자 함. 특검법 개정안 발의 2016. 12. 30 대표발의 국민의당 김관영 (제안 이유) 법률 제2조 15호 중 ‘인지된 관련 사건’ 부분을 ‘인지된 사건’으로 수정해 수사 대상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자 함. 특검법 개정안 발의 2017. 2. 6 대표발의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제안 이유) 국정조사특위에서 제기된 의혹과 밝혀진 사실도 포함될 수 있도록 하며, 제2조 15호의 ‘관련 사건’이 입법 의도와 달리 형사소송법 제11조의 관련 사건으로 해석될 여지를 방지하고자 ‘인지된 사건’이라고 명확히 규정하고자 함. 특검법 개정안 발의 2017. 2. 28 대표발의 국민의당 주승용 (제안 이유) 현행 법률 제2조 15호의 ‘제1호부터 제14호까지의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에서의 ‘관련 사건’이 입법 의도와 달리 형사소송법 제11조의 관련 사건으로 해석될 여지를 방지하고자 ‘인지된 사건’이라고 명확히 규정하고자 함. |
박영수, 국조특위에 “(관련 사건 아닌 사건으로) 특검법 개정 필요하다” 요구
박영수 특검도 특검법 개정에 발벗고 나섰다. 박 특검은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을 만나 특검법 2조 15항을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에서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사건’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래는 2017년 1월 3일 국회 국정조사특위 제13차 회의록 일부다.
〈위원장 김성태 : 지난해 12월 30일 박영수 특검을 만났을 당시에 특검이 우리 국회에 요청한 사항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특검의 수사 대상 문제입니다. 이게 특검법 제2조에 관련한 부분인데 지난 12월 22일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에 이런 혐의 사실에 대해 법원이 관련 사건의 명확성 문제로 보정 요구를 특검이 받은 바가 있지요. 특검 입장에서도 현재의 법 규정을 유지한다면 국회에서 고발 또는 수사 의뢰하는 사건 또한 특검의 수사 대상 여부에 대한 시비가 있을 수 있다는 그 문제도 건의하면서 첨언을 했어요. 그래서 특별검사 수사 대상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사건’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건의가 특검으로부터 요청이 있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였던 박범계 의원은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가 난항을 겪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특검법의 한계 때문에 인지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15호에서 ‘관련’이라는 단어만 들어내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다. 또 특검은 “조윤선 등의 청문회 위증 혐의와 관련해 특검법상 논란의 여지가 있어 이 부분을 명확히 정리하고자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내일신문》 2017년 1월 2일 ‘청문회 위증수사 특검법 개정 필요’)
따라서 4차례에 걸친 특검법 개정 시도는 민주당과 특검이 반드시 수사하려 한 인물이 애초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인물이 아니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에 대한 수사, 국정농단 관련 사건 수사는 문제없이 진행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을 고쳐서라도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 등을 수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의 혼란 속에 특검법은 개정되지 못했다.
김경종 변호사의 얘기다.
“민주당과 특검이 특검법 개정을 수차례 언급하고 시도한 것은 특정 사건, 즉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특검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애초 수사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김 변호사는 또 다른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고소·고발에 의하지 않고 검사가 스스로 범죄를 인지하고 수사를 개시할 때는 검사가 범죄인지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수사기록에는 박영수 특별검사가 작성한 범죄인지서가 없었다. 수사 개시 절차가 적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 특검 압수수색 영장에 제동
실제로 특검의 블랙리스트 수사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특검은 2016년 12월 23일 문체부와 김기춘 전 실장의 집 등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지 않고 “영장을 신청하는 이유를 보완하라”고 보정명령을 내렸다.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이 특검의 수사 대상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하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블랙리스트 작성에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라도 있어야 수사가 가능하다고 봤다.(《중앙일보》 2016년 12월 29일 ‘암초 만난 특검’)
국정농단 사태로 궁지에 몰려 있던 새누리당도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냈다. 아래는 2017년 1월 3일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회의록 중 관련 내용이다.
〈새누리당 정유섭 의원 : 특검이라고 무소불위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검찰 위에 군림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블랙리스트 수사는 일반 검찰에서 하는 게 맞고 특검법에 해당되지 않는 (특검의) 블랙리스트 수사는 월권이며, 이런 선례가 만들어지면 법치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지금 특검은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서 무리한 수사 범위 확장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블랙리스트 수사는 일반 검찰에 맡기고 특검은 최순실 게이트에 집중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새누리당 이채익 의원 : 특검의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 개시를 위한 영장을 법원이 기각했습니다. 특검의 조사 대상을 규정한 특검법 제2조 15호에 위반되기 때문입니다. 특검법 제2조를 보면 특검은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이 대상이지 블랙리스트라는 말은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특검법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박영수 특검팀 대변인을 맡은 이규철 특검보도 조윤선 장관의 위증 혐의에 대해 특검법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이 부분을 명확히 하고자 국회에 의견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특검이 국회 국정조사특위에 위증 증인 고발 사건을 제출한 부분은 자가당착이 아닌가 봅니다. 국정조사특위가 철저히 조사하되 입법부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고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국정농단 관련 고소·고발이 적법한 절차가 아니라 박영수 특검의 편의대로 이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조특위는 공식적인 활동 종료 예정일(2017년 1월 15일) 이후 특검의 요구에 따라 김기춘 전 실장을 위증혐의로 추가 고발하려 나섰다. 국조특위는 1월 12일 제15차 회의에서 이재용 위증고발을 의결하고 활동결과 보고서를 채택한 후 김성태 위원장이 산회를 선포하며 활동을 종료했다. 김 전 실장을 위증혐의로 고발한 것은 그 이후다. 다음은 관련 기사다.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은 2017년 1월 17일 국회에서 특위 종료 기자간담회를 열고 “박영수 특검으로부터 김기춘 증인의 위증혐의 고발 요청이 있었다”며 “국조특위 활동이 만료된 관게로 특위위원 전원의 연서를 받아 고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와함께 국조특위는 특위 위원들이 요청한 16개 사안을 별도로 특검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뉴스1》 2017년 1월 18일)
김경종 변호사는 “국회 국조특위가 활동 종료일 이후 박영수 특검의 별도 요청으로 김기춘 전 실장만 따로 고발에 나섰고, 특위위원 전원 18명의 연서를 받아 고발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10명만 참여했다. 이는 국조특위에서 심의도 의결도 없었던 건이며, 따라서 일부 국회의원의 고발일 뿐 국조특위의 고발이 아니다. 그동안 국조특위에서 김 전 실장 위증고발에 대한 논의가 없었는데 특검법 2조 15호 논란이 커지자 (특검이) 위증으로라도 김 전 실장을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위증고발을 요청한 것이며 이는 적법한 고발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청와대 회의록의 증거 능력은
한편 이 재판에서 나타난 또 다른 절차적 문제점은 중요 증거로 채택된 문건이 사실은 증거 능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법관 시절 이 사건에서 무죄 취지의 소수의견을 냈다. 이 사건의 핵심 증거로 채택된 문건, 즉 특검이 제출하고 법원이 증거로 채택한 청와대 문건에 증거 능력이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특검은 청와대 회의자료 등 문건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실장 등이 대통령 주재 비서관 회의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고 파악했다. 이 문건들은 특검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대통령 비서실이 청와대 캐비닛과 전(前) 정권 직원들의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자료들을 특검에 제공한 것이다. 특검은 이를 기초로 수사를 진행했고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조희대 대법관은 이를 적법하지 않은 행위로 판단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소지도 있다.
조 대법관의 의견이다.
“수사권 없는 특정인이 특정한 의도를 갖고 수사 절차에 개입한 것이다. 이는 특검의 권한을 침해하고 특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해당 증거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된 것으로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위법수집증거의 배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에 따라 증거 능력이 없다. 이를 기초로 작성된 피고인들과 참고인들의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조서, 법정 진술도 2차적 증거로서 증거 능력이 없다.”
이 같은 절차상의 문제 외에도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그 실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박상옥 대법관은 청와대의 지시, 즉 권한 행사로 국가재정법에 반하는 지출이 이뤄졌는지 증명돼야 하는데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를 판단할 증거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판결에 적시된 ‘공모’의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보조금 지원이 직권남용?
박 대법관의 의견이다.
“비록 피고인들이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기금의 배분 대상에서 제외하는 정책을 예술위 영진위 출판진흥원 직원에게 지시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권한의 행사로 말미암아 각 법인의 심의 과정이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국가재정법에 반하는 지출이 이뤄졌다는 점이 구체적으로 증명돼야 한다. 그러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를 판단할 증거도 부족하다. 공소사실 범죄일람표는 예술위 등 직원들이 피고인들의 지시에 따라 행했다고 나열된 일련의 행위들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구성요건 해당성 충족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핵심적인 사항인 각각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고 이로 인해 각 법인의 지원 배제 심의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해서는 각 행위들이 준별되지 않은 채 망라돼 있을 뿐이다. 이 사건에서 이뤄진 지원 배제는 예술위 영진위 출판진흥원의 각 법인의 심의에 따른 것이지만 각 법인에서 위원들의 역할, 심의 과정 등을 알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그럼에도 마치 각 법인의 직원들이 수행한 의무 없는 일을 통해서 지원 배제 행위가 이뤄진 것처럼 구성한 이 부분 공소 사실은 그 증명이 없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상옥 대법관은 또 정부가 지원대상단체 중 문제단체 명단을 작성하고 체계적으로 선별 지원에 나섰다고 해도 이것이 범죄의 영역은 아니라는 의견도 냈다. 계속된 그의 의견이다.
“법령상 개인이나 단체는 국가에 대해 기금 수령을 청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가 없어 관련 행정부처 등은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기금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고, 관련 위원회도 재량을 갖고 있다. 이 실행 과정을 사후에 평가해 직권남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모든 문화적 활동을 기계적으로 균등하게 지원해야 할 국가의 의무나 개인의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연방대법원 역시 정부의 가치 판단에 따른 기금의 선별적 지원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지원이 배제된 단체나 개인은 국가기금을 지원받지 못할 뿐이지 그들의 문화예술행위 자체를 국가가 제한하는 것이 아닌 이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 볼 수 없다. 사후적으로 평등의 원칙에 위반됐다는 이유로 공무원을 직권남용으로 형사처벌한다면 급부행정 정책 공무원은 본질적으로 차별적 집행일 수밖에 없어 언제든지 형사처벌 가능성이 생긴다.”
진실은 역사의 법정으로
헌법재판관을 역임한 김문희 변호사(고등고시 사법과 10회,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관한 정책적 판단과 집행을 범죄로 처단하는 것은 선거제도와 민주주의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고위 공무원의 모든 정책 결정과 집행이 형벌권의 위험하에 놓이게 돼 정권교체 때마다 보복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은 국정농단 사건은 뉴스의 영역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도, 잘못 알려진 사실도 많다. 진실은 역사의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