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적 가치를 포기하고 참패한 국민의힘과 팬클럽 보수의 再起는 가능한가?
⊙ 北核이 빠진 기괴한 선거판
⊙ 이준석은 침몰하는 보수의 구명정이 될 수 있나?
⊙ “한국에서 가장 큰 전략은 이념이다. 그런데 이념은 감정이다”
⊙ 北核이 빠진 기괴한 선거판
⊙ 이준석은 침몰하는 보수의 구명정이 될 수 있나?
⊙ “한국에서 가장 큰 전략은 이념이다. 그런데 이념은 감정이다”
- 1월 3일 신년 인사회에서 인사를 나누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번 총선 결과 ‘검사식 정치’의 한계가 드러났다. 사진=연합뉴스
작년 12월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총선을 이렇게 전망했다.
“우리는 민주당이 의석수는 줄겠지만 과반을 유지할 거라고 예상한다. 총선을 앞두고 경제가 살아나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반등할 수 있지만 과반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본다. 내년 한국 총선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대립 정치가 장기화하는 데 대한 불만이 반영돼 제3정당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이코노미스트》 자회사 EIU의 온라인판 ‘Asia elections monitor 2024’)
1843년에 창간된 이 잡지는 2012년 박근혜 승리, 2022년 윤석열 승리를 정확히 예측했었다. 이 잡지가 2021년 11월 1일에 펴낸 2022 연감(年鑑·THE WORLD AHEAD 2022)엔 국가별 예측 코너가 있었다. 한국에 대하여는 이런 요지의 설명이었다.
“올해 GDP 성장률 2.7%, 1인당 GDP 3만6340달러(구매력 기준으론 4만8680달러) 예상. 리버럴 성향의 민주당이 대통령과 입법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으나 오는 3월 선거에서 대통령직을 잃을 것인데 이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 윤석열은 정부의 늦은 백신 접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에서 도움을 받을 것이다. 그 결과 민주당의 재정 지출 확대와 국민의힘의 보수적 재정 정책이 충돌, 정책 수행에 차질을 빚을 것이다. 2021년에 완전한 회복세를 보였던 경제성장률은 더뎌지겠지만 평균 이상엔 머물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2022년 3월 28일 자 기사에선 “한국 대통령 당선인이 인기 없는 사적(私的) 사업으로 출발했다”는 제목으로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을 비판했다. 이 잡지는 “대통령을 그곳에 위치하게 하면 미사일 한 방으로 군사·정치 지도부를 다 쓸어버릴 위험이 있다”면서 선거운동 기간엔 코로나19 피해 대책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하더니 정치적 자산을 개인적 사업을 강행하는 데 허비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역대 최저 지지율로 출발한 윤석열 당선인은 국민들에게 가까이 가려고 시도했지만 국민들을 더 멀리 밀어내는 결과를 빚을 것 같다고도 했다. 소통을 잘하겠다면서 청와대를 버린 그가 용산에 가서 불통으로 변한 점을 정확히 짚은 것이다.
검사식 정치
《이코노미스트》는, 2022년 8월 27일 자에서는 고정 칼럼을 통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독단적 집무 방식을 비판하고 충고도 했다. 칼럼 필자는 국민들 눈에 윤석열 대통령이 오만하고 무능하다는 인상으로 비치게 된 점을 지적하면서 탁현민에게 배우라고까지 했다. 윤 대통령이 쇼를 하지 않는다고만 말할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설명을 잘 해야 한다고 했다. 즉 홍보에 신경을 쓰라는 충고였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공격이 들어오면 “합법적이다”고 변명하는데 그런 태도는 검사의 답변일 뿐이라고도 했다.
이 칼럼은 윤석열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국민 뜻을 존중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비판했다. 대통령은 국민을 이끄는 사람이지 따르는 사람이 아니란 것이다. 칼럼은 대통령의 설명 의무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정책을 선택한 다음엔 그것을 잘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기 있는 정책은 자기 것으로 만들어 설명하고 인기는 없지만 꼭 해야 하는 정책은 정성을 다하여 설명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잡지는 여기서도 청와대 이전을 실패 사례로 꼽았다. 당선 직후 추진한 정책이 사적(私的)인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돈이 많이 드는 이전인데도 국민들에게 잘 설명하지 못하여 지지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칼럼은 취학 연령 인하 정책 같은 것은 다른 사람과 논의해보면 금방 무리라는 것을 알 터인데 졸속으로 추진하다가 철회했다면서 이런 무모함은 경험 부족을 폭로하고 취소하면 무능을 드러내며 경험 부족과 무능이 겹치면 아마추어처럼 보인다고 했다.
패착이 된 의료개혁 드라이브
지난 3월 2일,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增員)을 핵심으로 한 의료개혁 드라이브로 윤석열, 한동훈, 국민의힘 지지율은 동반상승하고 국힘이 과반수 제1당이 될 것이란 평론가들의 관측이 나오고 있을 때였다. 나는 조갑제TV에 보수 이념적 관점에서 다른 생각을 올렸다. 사회주의적 의료 논리에 현혹된 윤석열 대통령의 총선용 정책은 곧 함정에 빠질 것이다. 전공의들의 이탈에 수사로 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을 자극, 의료 대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의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으로 지지율을 일시적으로 높인다고 한들 국민들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함정에 빠져 선거를 망치게 될 것이란 예측이었다. 그 일주일 뒤부터 국민 여론은 윤석열 대통령의 무능한 대응을 비판하는 쪽으로 급변했고 나는 국힘 참패를 공언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번에도 선거의 흐름과 결과를 정확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은 상황을 이념적으로 본 덕분이다. 북한노동당 정권과 타협이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에선 이념이 가장 큰 전략이고 선거와 같은 큰 정치적 사안은 이념적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이념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반공자유민주주의”이며 작동 원리는 진실·정의·자유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총선을 결산한다면, 국힘의 패배는 보수적 가치를 포기하는 여러 정책을 쏟아내어 그 대가로 표를 얻으려 한 배신적 계산 착오에서 예정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보수라는 윤석열 대통령이 골수 보수인 의사 집단을 정치적 목적으로 공격한 것은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기려고 민노총을 공격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나는 4월 11일 아침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가진 역동성과 생동감을 실감하면서 총선의 의미를 정리해보았다. 국민의힘이나 보수의 관점이 아닌 대한민국의 관점, 더 나아가 세계시민의 보편적 관점에 서서 내려다보면 한국의 거의 모든 선거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 총선도 역사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국민들의 주권 행사로서 헌법적 정당성을 갖는 선거 결과에 대하여 어리석은 국민들이라고 비평하는 자세가 아닌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면 많이 보인다.
권력자의 오만을 두고 못 보는 한국인
● 선거의 구조를 결정하는 것은 이념이지만 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감정, 특히 권력자의 오만을 두고 보지 않는 한국인 특유의 반골(反骨)정신이다. 이번 선거를 지배한 제1 감정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이었다. 오만과 불통에 의료 대란을 수습 못 한 무능 이미지가 더해진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했듯이 “군주가 절대로 피해야 할 것은 경멸을 받고 원한을 사는 것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원한과 경멸이 섞인 감정은 이재명과 조국에 대한 비호감을 눌렀다. 이재명·조국에 대한 비판은 너무 오래 상투적으로 계속되었고 대중이 싫증을 느낄 만했다. 그 어떤 자극도 싫증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 이번 총선은 결코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한 판사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을 발부했더라면, 세 명의 판사(재판부)가 2심에서 조국에 대하여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더라면 결과는 정반대였을 수 있다. 네 판사가 총선을 결정한 셈이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국회가 이재명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켜주었음에도 판사가 영장을 기각하는 것을 구경만 했다. 판사에 대한 정부의 압력은 있어선 안 되지만 합법적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했느냐는 ‘영장기각’이란 결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재명과 조국 재판을 둘러싼 사법부와 야당의 갈등은 더욱 첨예하게 진행될 것이고 사법부의 독립은 또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행태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자신의 지지 기반을 차례로 잘라내는 습성이다. 황장엽 선생은 “이념은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대한 자각”이라고 했는데 한국에선 적과 동지를 가르는 것을 말한다. 그는 이준석, 안철수, 나경원, 나중엔 의사 집단까지 적으로 돌렸고 그때마다 지지율이 떨어졌다. 이번 총선 구도는 사실 2022년 7월에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이끈 이준석 국힘 대표를 징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부총질러’로 몰아 밀어내는 과정에서 6월 초 50%이던 지지율은 한 달 뒤 30%로 떨어졌고 그 뒤 회복이 되지 않았다. 2년 전 미리 굳어져버린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론 구조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선거를 지휘해야만 했다. 이준석의 세대포위론과 반(反)페미니즘 전략이 끌어온 중도층과 젊은층의 이탈은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었다.
● 한동훈의 종북(從北) 청산은 실패로 돌아갔고 윤석열 심판론은 성공했는데 이는 ‘검사정치 심판론’을 뜻한다. 앞으로 상당기간 검사, 특히 특수부 검사 출신 대통령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불통과 오만의 정치 행태는 특수부 검사들의 악습(惡習)인 별건(別件)수사로 상당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北核은 과연 표가 안 되는 주제인가?
● 국힘은 북핵(北核) 위기와 그 대응책을 선거 쟁점에서 철저히 배제하였다. 표가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핵·미사일 방어망 구축의 절박성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건 과연 표가 안 되는 일일까. 오늘밤에라도 김정은이 발작하여 핵·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르려 할 때 북(北)엔 말릴 사람이 없고 남(南)엔 막을 방법이 없는데, 즉 5000만의 생사가 한 사람 손에 달려 있는데 이게 선거 쟁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집권당이 있다니! 특히 2500만 수도권이 북한군의 핵공격에 무방비 상태인 점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전술핵 재배치나 독자적 핵무장론까지 거론하고, 사사건건 북한 정권 편을 드는 민주당을 공격했다면 수도권에서 표가 늘었을까, 줄었을까? 안보는 표가 안 된다고 하지만 해보기나 한 것인가? 확고한 이념적 논리 체계를 갖추고 국민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노련한 홍보 능력이 부족하니까 표가 안 된다는 변명을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집권당이 하마스의 위협을 빼고 선거를 치르는 것과 같다. 올해 유엔의 행복도 조사를 보면 자주국방하는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행복한 나라, 잘살면서도 국방을 미국에 맡긴 한국은 52등, 일본은 51등이었다(140여 개국 중).
● 한동훈 위원장이 여의도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하고 이를 계기로 세종시를 정치수도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은 세종시를 포함한 충청권 표를 노린 것이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이 공약을 총선이 끝난 뒤에도 밀어붙이면 2027년 대통령 선거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국가 정통성에 치명적 상처를 줄 것이다. 민족사의 정통성을 놓고 김정은 정권과 타협이 불가능한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정통성의 중심인 서울을 수도로서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아무런 공론화 과정도 없이 불쑥 내던진 경박함은 노무현을 뺨친다.
정부는 여기에 호응하여 대통령 제2 집무실을 세종시에 건설하겠다고 했는데 다음 대통령 선거 때는 국민의힘이 대통령실의 세종시 완전 이전을 공약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상의 천도(遷都)인데 이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헌법개정 사안이다. 보수 집권당이 ‘수도 서울’ 포기를 공약한 셈이니 이번 패배는 이에 대한 응징의 성격도 띤다.
오만해진 세력을 기다리는 2027년의 응징
● 한동훈 위원장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억지를 받아들여 사전투표용지 직접 날인을 주장, 선관위를 압박하는가 하면 음모론자들에 대한 공천 배제 지침을 정하지 않아 대표적 음모론자가 대구에서 공천되도록 했다가 나중에 다른 음모론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지자 공천을 취소했다. 투표일이 다가오자 전후 설명도 없이 사전투표 독려에 나섰지만 어색하기만 했다. 이번 참패는 국힘과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에 대한 동시 심판의 성격이 있다.
● 국힘이 입법불비(立法不備)를 악용, 한국-미국 2중 국적자인 인요한씨를 위성정당의 비례후보로 공천, 당선시킨 것은 전형적인 반(反)보수 행태였다. 러시아나 중국 국적을 보유한 상태에서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인요한이 미국인이란 이유로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국회의원이 돼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면 친미사대주의 정당이 맞다.
● 한동훈 위원장은 한국 보수가 가야 할 대동단결·분진합격(分進合擊)·백의종군(白衣從軍)의 반대로 갔다. 팬클럽 회장처럼 끼리끼리 모이기만 했고 중도나 좌파를 향한 외연(外延) 확대 전략도 없었다. 보수 대단결에 성공해도 30%다. 이준석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자객공천은 이준석으로부터 자객공천 대응을 불렀다. 의료 대란에 방관자적 태도를 취했다가 그 부작용의 덤터기를 썼다.
반면 이재명과 조국은 라이벌일 수도 있는데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식 분진합격 전략에 합의, 선거판을 반(反)윤석열 통일전선으로 만들고, 좌파 진영을 활성화시키면서 투표율을 높이는 한편 이재명-문재인 갈등마저 통합 에너지로 전환시켰다.
● 이런 윤석열과 한동훈의 반(反)보수 노선에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무조건 응원했던 팬클럽 보수와 음모론 보수, 그리고 보수 언론과 다수 보수 지식인들도 이번에 국민의힘과 함께 힘을 잃게 되었다. 그 일부는 또 부정선거론을 들고 나오겠지만.
총선 이후 과제는 대한민국 주류(主流) 세력이 치열한 노선 투쟁으로 한국 보수의 정체성(正體性)을 재정립하여 재생의 길을 찾는 저력(底力)을 발휘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 당당하게 진다면 재기(再起)가 가능하지만 자아(自我) 상실 상태로 지면 회생(回生)이 어렵다. 보수당이 보수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앞장선 선거였다.
● 이번 총선은 대통령 중심제의 위험성을 극적으로 노출시켰다. 국군통수권자이고 검찰과 경찰을 장악한 대통령이, 불통과 오만의 성격으로 민주적 국정 운영을 할 수 없을 때 이를 내부적으로 견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산엑스포 해프닝에서 보듯이 대통령이 정보 판단을 잘못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3년째 공식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데 이는 세계 민주국가 중 유일한 경우일 것이다. ‘성격이 운명’이란 말이 대통령에게 적용된다면 대통령의 성격은 그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가 있다. 대통령의 안보 분야 정보 실패는 의료 대란을 넘는 안보 대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번 총선은 대통령의 성격에 대한 채찍질이었는데 과연 불통과 오만의 성격을 고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리스 신화의 기본 틀은 인간의 오만(hubris)에 대한 신의 응징(nemesis)인데 한국의 정치판은 인간의 심연(深淵)을 드러내는 그런 신화적 요소도 갖고 있다. 2027년 대선은 2024년 선거로 오만해진 세력에 대한 응징으로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20년 총선으로 오만해진 민주당이 2022년에 응징을 당하여 정권을 내어준 것처럼 말이다.
화성乙의 역전 드라마
22대 총선의 최대 이변이자 최고의 역전극은 경기도 화성을에서 개혁신당 이준석(李俊錫) 후보가 30%포인트나 뒤진 상태에서 시작, 당일 출구조사의 예측을 뒤집고 당선된 사건일 것이다. 연고가 없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표밭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보낸 자객공천의 칼을 맞고, 그리하여 보수 표가 분열된 상태에서, 1대 2로 싸워 민주당 공영운 후보를 이긴 것이다.
4월 11일 새벽 0시35분, 이준석 캠프에서 보낸 “역전승할 것 같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동탄에 있는 이준석 후보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쉰 목소리로 “이겼습니다. 사전투표에서도 이기고 저에게 유리한 당일 투표가 개함되니 확실히 이깁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한 시간 후 그는 개표가 진행 중인데도 기자들 앞에서 승리를 선언했다.
지난 3월 22일 여론조사에서 이준석 후보 지지율은 23%로서 공영운 후보의 47%에 크게 뒤졌고 21%의 한정민 후보로부터도 추격을 당하고 있었다. 공 후보 아들에 대한 부동산 증여 논란이 터졌지만 4월 3일 여론조사에서도 47대 27%였다. 마지막 여론조사에선 41대 30%.
이틀 전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고도 긴가민가 했다.
〈구체적인 디테일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정말 초접전입니다. 모든 조간신문이 가장 젊은 지역구에서 정치를 바꾸기 위해 가장 강력한 무기인 투표로 정치권에 경고를 줬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나올 수 있게 해주십시오. 동탄이 이번에 변화와 개혁을 선택하면 동탄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정치 1번지가 될 것입니다. 함께 달려봅시다. 이제 30시간 남았습니다.〉
그의 선거운동 방식은 정치 교재로 삼을 만하다. 그는 동탄 지역의 문제와 과제를 철저히 연구하여 지역별로 맞춤형 공약을 개발, 이를 정성 들여 설명했다. 그의 유세장은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구경하는 축제장 비슷하게 되었다. 연설이 재미있어 아이들이 부모들을 끌고 유세장에 나온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인요한으로부터 아들을 잘못 가르쳤다는 비방을 들었던 이준석 후보 부모까지 마이크를 잡았다. 그에게 비판적이었던 《조선일보》가 공영운의 부동산 증여 논란을 집중적으로 보도한 것도 당선에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한정민 후보를 사퇴시켜 단일화를 하도록 국민의힘에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말하는 말들도 있었지만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면 돌파했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표를 구걸하지 않았다. “이준석 덕분에 이곳이 유명해졌으니 저를 뽑아주시면 이곳의 문제를 잘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식이었다. 아이들에 대한 공약까지 했다. 늘 웃음을 몰고 다니는 그의 유세 영상을 보면 아이들이 웃고 박수 치는 소리가 들린다. 39세의 젊은 정치인을 응원하는 80대 김종인 개혁신당 공관위원장의 찬조연설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정치 천재이니 지난 대선 때 윤석열을 당선시켰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경기도 화성을: 이준석 42.49%(5만1759), 공영운 39.65%(4만8294), 3.84%포인트 차(3465표)〉.
이준석이 침몰하는 보수의 구명정?
선거의 좋은 점은 많은 사람의 생각을 극적으로 바꾼다는 점이다. 법률가들이 즐겨 쓰는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에서 천(天)은 민심, 특히 선거를 통하여 드러난 여론일 것이다. 1985년 2·12 총선에서 민의(民意)의 대폭발이 없었더라면 2년 뒤의 6·29 선언도, 평화적 민주화도, 아마도 서울올림픽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번 총선의 진정한 승자는 나중에 이준석의 개혁신당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나는 작년 12월 초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이준석은 한국 보수를 재해석하여 활기를 주는, 침몰하는 보수의 구명정 역할을 할지 모른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가 욕을 많이 먹었다. 이 기사 댓글창엔 2000개 이상의 글이 달렸는데 90% 이상이 나와 이준석에 대한 비방이었다. 그런데 4월 11일 이준석 역전승을 전하는 《조선일보》 기사에 붙은 댓글 성향은 반대로 흐르고 있었다.
나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던 비난도 총선 직후엔 사라졌다. “왜 잘하려고 하는 윤석열, 한동훈과 부정선거론자만 비판하고 싸가지 없는 이준석을 편드나”는 공격에 시달리지 않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그를 “싸가지 없다”고 욕하는 이들보다 더 반공적이란 점,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였고 흡수통일을 주장하는 유일한 정치인이란 점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에서 보여준 이준석 대표의 정치적 천재성이 계속 커간다면 2027년에는 한국 역사상 세 번째의 40대 대통령을 보게 될지 누가 아는가?
이준석 칭찬으로 돌아선 조선닷컴 댓글창
● 이준석 내쳐서 젊은 세대 등 돌리게 하고 안철수, 나경원 주저앉히고 과학계와 의료계도 적으로 돌리고 윤석열은 자기 지지 기반을 무너뜨려서 결국 자기 무덤을 판 바보임.
(찬성 154 / 반대 76)
● 이준석 잘 썼으면 국힘이 과반은 했겠지. 유튜브에 취한 꼰대들은 정신 차려라. 너희가 나라를 좌파에게 바친 거다.
(찬성 133 / 반대 114)
● 아직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 많다. 준석이는 한 번도 우익을 배반한 적이 없다. 오히려 좌익에 부역한 자는 석열이다. 누가 아군인지 적군이지 다시 살펴봐라.
● 10~20년 제멋대로 살다 갈 늙은이들이 나라를 좌파에 다 팔아먹고 보수를 붕괴시켰다. 40~50년 살아가야 할 우리는 어쩌라고. 맨날 틀튜브나 보면서 망상에 빠져 누구든 씹고 뜯으면 세상이 나아질 줄 알았나? 진짜 그런 철없는 생각들을 한 거야? 지금 나라가 진짜 위기야. 경제활동 인구 줄고 있고, 인구도 줄어. 지금 시스템에서는 아무리 효심이 있어도 아랫세대들이 당신들 부양 못 한다고. 이제 진짜, 젊은 보수한테 맡겨. 뭐 하겠다고 자꾸 피곤하게 나서지 말고.
(찬성 54 / 반대 29)
● 양당에 속하지 않고 혼자 당선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줄 모르는 인간들아, 윤석열은 이준석 덕분에 대통령 된 거다. 아직도 헛소리하는 당신들이 윤석열 저 꼴로 만든 거야! 윤석열과 함께 나락 간 줄 아직도 모르겠나!
(찬성 17 / 반대 2)
● (조갑제TV 동영상 댓글) 한마디로 이준석 대표는 동탄의 남녀노소를 사로잡은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여타 후보들의 유세 현장은 썰렁한 반면에 이준석 대표 유세 현장은 신기할 정도로 삽시간에 모여드는 인파들로 인해 이준석의 매직이라고들 했다. 진심이 담긴 연설은 동탄 주민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유세 현장에 모여드는 인파들은 점점 늘기 시작했으며 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어린 아이들까지도 깔깔 키득키득 거리며 팔을 치켜들어 올려 이준석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가고 싶은 유세 현장이 되었다. 그런 자연스러운 광경이 더 큰 신뢰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며 항상 유세 현장은 흐뭇한 미소를 선사했고 사랑스럽고 고맙고 감사한 축제를 방불케 했다. 매번 연설을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오면 이준석 후보와 함께 사진 촬영을 하겠다고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가히 스타급 인기였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큰 인물이 되길 기대할 것이며 응원하겠다.⊙
“우리는 민주당이 의석수는 줄겠지만 과반을 유지할 거라고 예상한다. 총선을 앞두고 경제가 살아나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반등할 수 있지만 과반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본다. 내년 한국 총선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대립 정치가 장기화하는 데 대한 불만이 반영돼 제3정당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이코노미스트》 자회사 EIU의 온라인판 ‘Asia elections monitor 2024’)
1843년에 창간된 이 잡지는 2012년 박근혜 승리, 2022년 윤석열 승리를 정확히 예측했었다. 이 잡지가 2021년 11월 1일에 펴낸 2022 연감(年鑑·THE WORLD AHEAD 2022)엔 국가별 예측 코너가 있었다. 한국에 대하여는 이런 요지의 설명이었다.
“올해 GDP 성장률 2.7%, 1인당 GDP 3만6340달러(구매력 기준으론 4만8680달러) 예상. 리버럴 성향의 민주당이 대통령과 입법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으나 오는 3월 선거에서 대통령직을 잃을 것인데 이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 윤석열은 정부의 늦은 백신 접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에서 도움을 받을 것이다. 그 결과 민주당의 재정 지출 확대와 국민의힘의 보수적 재정 정책이 충돌, 정책 수행에 차질을 빚을 것이다. 2021년에 완전한 회복세를 보였던 경제성장률은 더뎌지겠지만 평균 이상엔 머물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2022년 3월 28일 자 기사에선 “한국 대통령 당선인이 인기 없는 사적(私的) 사업으로 출발했다”는 제목으로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을 비판했다. 이 잡지는 “대통령을 그곳에 위치하게 하면 미사일 한 방으로 군사·정치 지도부를 다 쓸어버릴 위험이 있다”면서 선거운동 기간엔 코로나19 피해 대책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하더니 정치적 자산을 개인적 사업을 강행하는 데 허비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역대 최저 지지율로 출발한 윤석열 당선인은 국민들에게 가까이 가려고 시도했지만 국민들을 더 멀리 밀어내는 결과를 빚을 것 같다고도 했다. 소통을 잘하겠다면서 청와대를 버린 그가 용산에 가서 불통으로 변한 점을 정확히 짚은 것이다.
검사식 정치
《이코노미스트》는, 2022년 8월 27일 자에서는 고정 칼럼을 통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독단적 집무 방식을 비판하고 충고도 했다. 칼럼 필자는 국민들 눈에 윤석열 대통령이 오만하고 무능하다는 인상으로 비치게 된 점을 지적하면서 탁현민에게 배우라고까지 했다. 윤 대통령이 쇼를 하지 않는다고만 말할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설명을 잘 해야 한다고 했다. 즉 홍보에 신경을 쓰라는 충고였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공격이 들어오면 “합법적이다”고 변명하는데 그런 태도는 검사의 답변일 뿐이라고도 했다.
이 칼럼은 윤석열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국민 뜻을 존중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비판했다. 대통령은 국민을 이끄는 사람이지 따르는 사람이 아니란 것이다. 칼럼은 대통령의 설명 의무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정책을 선택한 다음엔 그것을 잘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기 있는 정책은 자기 것으로 만들어 설명하고 인기는 없지만 꼭 해야 하는 정책은 정성을 다하여 설명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잡지는 여기서도 청와대 이전을 실패 사례로 꼽았다. 당선 직후 추진한 정책이 사적(私的)인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돈이 많이 드는 이전인데도 국민들에게 잘 설명하지 못하여 지지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칼럼은 취학 연령 인하 정책 같은 것은 다른 사람과 논의해보면 금방 무리라는 것을 알 터인데 졸속으로 추진하다가 철회했다면서 이런 무모함은 경험 부족을 폭로하고 취소하면 무능을 드러내며 경험 부족과 무능이 겹치면 아마추어처럼 보인다고 했다.
패착이 된 의료개혁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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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의 의대 증원 반대 집회. 윤석열 정부는 보수 성향이 강한 의사집단을 적으로 돌렸다. 사진=조선DB |
내가 이번에도 선거의 흐름과 결과를 정확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은 상황을 이념적으로 본 덕분이다. 북한노동당 정권과 타협이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에선 이념이 가장 큰 전략이고 선거와 같은 큰 정치적 사안은 이념적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이념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반공자유민주주의”이며 작동 원리는 진실·정의·자유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총선을 결산한다면, 국힘의 패배는 보수적 가치를 포기하는 여러 정책을 쏟아내어 그 대가로 표를 얻으려 한 배신적 계산 착오에서 예정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보수라는 윤석열 대통령이 골수 보수인 의사 집단을 정치적 목적으로 공격한 것은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기려고 민노총을 공격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나는 4월 11일 아침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가진 역동성과 생동감을 실감하면서 총선의 의미를 정리해보았다. 국민의힘이나 보수의 관점이 아닌 대한민국의 관점, 더 나아가 세계시민의 보편적 관점에 서서 내려다보면 한국의 거의 모든 선거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 총선도 역사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국민들의 주권 행사로서 헌법적 정당성을 갖는 선거 결과에 대하여 어리석은 국민들이라고 비평하는 자세가 아닌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면 많이 보인다.
권력자의 오만을 두고 못 보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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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안철수, 나경원, 이준석 등을 차례로 적으로 돌렸다. 사진=조선DB |
● 이번 총선은 결코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한 판사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을 발부했더라면, 세 명의 판사(재판부)가 2심에서 조국에 대하여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더라면 결과는 정반대였을 수 있다. 네 판사가 총선을 결정한 셈이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국회가 이재명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켜주었음에도 판사가 영장을 기각하는 것을 구경만 했다. 판사에 대한 정부의 압력은 있어선 안 되지만 합법적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했느냐는 ‘영장기각’이란 결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재명과 조국 재판을 둘러싼 사법부와 야당의 갈등은 더욱 첨예하게 진행될 것이고 사법부의 독립은 또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행태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자신의 지지 기반을 차례로 잘라내는 습성이다. 황장엽 선생은 “이념은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대한 자각”이라고 했는데 한국에선 적과 동지를 가르는 것을 말한다. 그는 이준석, 안철수, 나경원, 나중엔 의사 집단까지 적으로 돌렸고 그때마다 지지율이 떨어졌다. 이번 총선 구도는 사실 2022년 7월에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이끈 이준석 국힘 대표를 징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부총질러’로 몰아 밀어내는 과정에서 6월 초 50%이던 지지율은 한 달 뒤 30%로 떨어졌고 그 뒤 회복이 되지 않았다. 2년 전 미리 굳어져버린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론 구조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선거를 지휘해야만 했다. 이준석의 세대포위론과 반(反)페미니즘 전략이 끌어온 중도층과 젊은층의 이탈은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었다.
● 한동훈의 종북(從北) 청산은 실패로 돌아갔고 윤석열 심판론은 성공했는데 이는 ‘검사정치 심판론’을 뜻한다. 앞으로 상당기간 검사, 특히 특수부 검사 출신 대통령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불통과 오만의 정치 행태는 특수부 검사들의 악습(惡習)인 별건(別件)수사로 상당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北核은 과연 표가 안 되는 주제인가?
● 국힘은 북핵(北核) 위기와 그 대응책을 선거 쟁점에서 철저히 배제하였다. 표가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핵·미사일 방어망 구축의 절박성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건 과연 표가 안 되는 일일까. 오늘밤에라도 김정은이 발작하여 핵·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르려 할 때 북(北)엔 말릴 사람이 없고 남(南)엔 막을 방법이 없는데, 즉 5000만의 생사가 한 사람 손에 달려 있는데 이게 선거 쟁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집권당이 있다니! 특히 2500만 수도권이 북한군의 핵공격에 무방비 상태인 점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전술핵 재배치나 독자적 핵무장론까지 거론하고, 사사건건 북한 정권 편을 드는 민주당을 공격했다면 수도권에서 표가 늘었을까, 줄었을까? 안보는 표가 안 된다고 하지만 해보기나 한 것인가? 확고한 이념적 논리 체계를 갖추고 국민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노련한 홍보 능력이 부족하니까 표가 안 된다는 변명을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집권당이 하마스의 위협을 빼고 선거를 치르는 것과 같다. 올해 유엔의 행복도 조사를 보면 자주국방하는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행복한 나라, 잘살면서도 국방을 미국에 맡긴 한국은 52등, 일본은 51등이었다(140여 개국 중).
● 한동훈 위원장이 여의도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하고 이를 계기로 세종시를 정치수도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은 세종시를 포함한 충청권 표를 노린 것이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이 공약을 총선이 끝난 뒤에도 밀어붙이면 2027년 대통령 선거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국가 정통성에 치명적 상처를 줄 것이다. 민족사의 정통성을 놓고 김정은 정권과 타협이 불가능한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정통성의 중심인 서울을 수도로서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아무런 공론화 과정도 없이 불쑥 내던진 경박함은 노무현을 뺨친다.
정부는 여기에 호응하여 대통령 제2 집무실을 세종시에 건설하겠다고 했는데 다음 대통령 선거 때는 국민의힘이 대통령실의 세종시 완전 이전을 공약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상의 천도(遷都)인데 이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헌법개정 사안이다. 보수 집권당이 ‘수도 서울’ 포기를 공약한 셈이니 이번 패배는 이에 대한 응징의 성격도 띤다.
오만해진 세력을 기다리는 2027년의 응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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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반윤석열 통일전선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사진=조선DB |
● 국힘이 입법불비(立法不備)를 악용, 한국-미국 2중 국적자인 인요한씨를 위성정당의 비례후보로 공천, 당선시킨 것은 전형적인 반(反)보수 행태였다. 러시아나 중국 국적을 보유한 상태에서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인요한이 미국인이란 이유로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국회의원이 돼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면 친미사대주의 정당이 맞다.
● 한동훈 위원장은 한국 보수가 가야 할 대동단결·분진합격(分進合擊)·백의종군(白衣從軍)의 반대로 갔다. 팬클럽 회장처럼 끼리끼리 모이기만 했고 중도나 좌파를 향한 외연(外延) 확대 전략도 없었다. 보수 대단결에 성공해도 30%다. 이준석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자객공천은 이준석으로부터 자객공천 대응을 불렀다. 의료 대란에 방관자적 태도를 취했다가 그 부작용의 덤터기를 썼다.
반면 이재명과 조국은 라이벌일 수도 있는데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식 분진합격 전략에 합의, 선거판을 반(反)윤석열 통일전선으로 만들고, 좌파 진영을 활성화시키면서 투표율을 높이는 한편 이재명-문재인 갈등마저 통합 에너지로 전환시켰다.
● 이런 윤석열과 한동훈의 반(反)보수 노선에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무조건 응원했던 팬클럽 보수와 음모론 보수, 그리고 보수 언론과 다수 보수 지식인들도 이번에 국민의힘과 함께 힘을 잃게 되었다. 그 일부는 또 부정선거론을 들고 나오겠지만.
총선 이후 과제는 대한민국 주류(主流) 세력이 치열한 노선 투쟁으로 한국 보수의 정체성(正體性)을 재정립하여 재생의 길을 찾는 저력(底力)을 발휘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 당당하게 진다면 재기(再起)가 가능하지만 자아(自我) 상실 상태로 지면 회생(回生)이 어렵다. 보수당이 보수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앞장선 선거였다.
● 이번 총선은 대통령 중심제의 위험성을 극적으로 노출시켰다. 국군통수권자이고 검찰과 경찰을 장악한 대통령이, 불통과 오만의 성격으로 민주적 국정 운영을 할 수 없을 때 이를 내부적으로 견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산엑스포 해프닝에서 보듯이 대통령이 정보 판단을 잘못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3년째 공식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데 이는 세계 민주국가 중 유일한 경우일 것이다. ‘성격이 운명’이란 말이 대통령에게 적용된다면 대통령의 성격은 그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가 있다. 대통령의 안보 분야 정보 실패는 의료 대란을 넘는 안보 대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번 총선은 대통령의 성격에 대한 채찍질이었는데 과연 불통과 오만의 성격을 고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리스 신화의 기본 틀은 인간의 오만(hubris)에 대한 신의 응징(nemesis)인데 한국의 정치판은 인간의 심연(深淵)을 드러내는 그런 신화적 요소도 갖고 있다. 2027년 대선은 2024년 선거로 오만해진 세력에 대한 응징으로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20년 총선으로 오만해진 민주당이 2022년에 응징을 당하여 정권을 내어준 것처럼 말이다.
화성乙의 역전 드라마
22대 총선의 최대 이변이자 최고의 역전극은 경기도 화성을에서 개혁신당 이준석(李俊錫) 후보가 30%포인트나 뒤진 상태에서 시작, 당일 출구조사의 예측을 뒤집고 당선된 사건일 것이다. 연고가 없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표밭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보낸 자객공천의 칼을 맞고, 그리하여 보수 표가 분열된 상태에서, 1대 2로 싸워 민주당 공영운 후보를 이긴 것이다.
4월 11일 새벽 0시35분, 이준석 캠프에서 보낸 “역전승할 것 같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동탄에 있는 이준석 후보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쉰 목소리로 “이겼습니다. 사전투표에서도 이기고 저에게 유리한 당일 투표가 개함되니 확실히 이깁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한 시간 후 그는 개표가 진행 중인데도 기자들 앞에서 승리를 선언했다.
지난 3월 22일 여론조사에서 이준석 후보 지지율은 23%로서 공영운 후보의 47%에 크게 뒤졌고 21%의 한정민 후보로부터도 추격을 당하고 있었다. 공 후보 아들에 대한 부동산 증여 논란이 터졌지만 4월 3일 여론조사에서도 47대 27%였다. 마지막 여론조사에선 41대 30%.
이틀 전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고도 긴가민가 했다.
〈구체적인 디테일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정말 초접전입니다. 모든 조간신문이 가장 젊은 지역구에서 정치를 바꾸기 위해 가장 강력한 무기인 투표로 정치권에 경고를 줬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나올 수 있게 해주십시오. 동탄이 이번에 변화와 개혁을 선택하면 동탄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정치 1번지가 될 것입니다. 함께 달려봅시다. 이제 30시간 남았습니다.〉
그의 선거운동 방식은 정치 교재로 삼을 만하다. 그는 동탄 지역의 문제와 과제를 철저히 연구하여 지역별로 맞춤형 공약을 개발, 이를 정성 들여 설명했다. 그의 유세장은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구경하는 축제장 비슷하게 되었다. 연설이 재미있어 아이들이 부모들을 끌고 유세장에 나온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인요한으로부터 아들을 잘못 가르쳤다는 비방을 들었던 이준석 후보 부모까지 마이크를 잡았다. 그에게 비판적이었던 《조선일보》가 공영운의 부동산 증여 논란을 집중적으로 보도한 것도 당선에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한정민 후보를 사퇴시켜 단일화를 하도록 국민의힘에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말하는 말들도 있었지만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면 돌파했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표를 구걸하지 않았다. “이준석 덕분에 이곳이 유명해졌으니 저를 뽑아주시면 이곳의 문제를 잘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식이었다. 아이들에 대한 공약까지 했다. 늘 웃음을 몰고 다니는 그의 유세 영상을 보면 아이들이 웃고 박수 치는 소리가 들린다. 39세의 젊은 정치인을 응원하는 80대 김종인 개혁신당 공관위원장의 찬조연설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정치 천재이니 지난 대선 때 윤석열을 당선시켰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경기도 화성을: 이준석 42.49%(5만1759), 공영운 39.65%(4만8294), 3.84%포인트 차(3465표)〉.
이준석이 침몰하는 보수의 구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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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선거 포스터. 그는 ‘보수의 구명정’이 될 수 있을까? |
나는 작년 12월 초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이준석은 한국 보수를 재해석하여 활기를 주는, 침몰하는 보수의 구명정 역할을 할지 모른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가 욕을 많이 먹었다. 이 기사 댓글창엔 2000개 이상의 글이 달렸는데 90% 이상이 나와 이준석에 대한 비방이었다. 그런데 4월 11일 이준석 역전승을 전하는 《조선일보》 기사에 붙은 댓글 성향은 반대로 흐르고 있었다.
나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던 비난도 총선 직후엔 사라졌다. “왜 잘하려고 하는 윤석열, 한동훈과 부정선거론자만 비판하고 싸가지 없는 이준석을 편드나”는 공격에 시달리지 않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그를 “싸가지 없다”고 욕하는 이들보다 더 반공적이란 점,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였고 흡수통일을 주장하는 유일한 정치인이란 점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에서 보여준 이준석 대표의 정치적 천재성이 계속 커간다면 2027년에는 한국 역사상 세 번째의 40대 대통령을 보게 될지 누가 아는가?
이준석 칭찬으로 돌아선 조선닷컴 댓글창
● 이준석 내쳐서 젊은 세대 등 돌리게 하고 안철수, 나경원 주저앉히고 과학계와 의료계도 적으로 돌리고 윤석열은 자기 지지 기반을 무너뜨려서 결국 자기 무덤을 판 바보임.
(찬성 154 / 반대 76)
● 이준석 잘 썼으면 국힘이 과반은 했겠지. 유튜브에 취한 꼰대들은 정신 차려라. 너희가 나라를 좌파에게 바친 거다.
(찬성 133 / 반대 114)
● 아직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 많다. 준석이는 한 번도 우익을 배반한 적이 없다. 오히려 좌익에 부역한 자는 석열이다. 누가 아군인지 적군이지 다시 살펴봐라.
● 10~20년 제멋대로 살다 갈 늙은이들이 나라를 좌파에 다 팔아먹고 보수를 붕괴시켰다. 40~50년 살아가야 할 우리는 어쩌라고. 맨날 틀튜브나 보면서 망상에 빠져 누구든 씹고 뜯으면 세상이 나아질 줄 알았나? 진짜 그런 철없는 생각들을 한 거야? 지금 나라가 진짜 위기야. 경제활동 인구 줄고 있고, 인구도 줄어. 지금 시스템에서는 아무리 효심이 있어도 아랫세대들이 당신들 부양 못 한다고. 이제 진짜, 젊은 보수한테 맡겨. 뭐 하겠다고 자꾸 피곤하게 나서지 말고.
(찬성 54 / 반대 29)
● 양당에 속하지 않고 혼자 당선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줄 모르는 인간들아, 윤석열은 이준석 덕분에 대통령 된 거다. 아직도 헛소리하는 당신들이 윤석열 저 꼴로 만든 거야! 윤석열과 함께 나락 간 줄 아직도 모르겠나!
(찬성 17 / 반대 2)
● (조갑제TV 동영상 댓글) 한마디로 이준석 대표는 동탄의 남녀노소를 사로잡은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여타 후보들의 유세 현장은 썰렁한 반면에 이준석 대표 유세 현장은 신기할 정도로 삽시간에 모여드는 인파들로 인해 이준석의 매직이라고들 했다. 진심이 담긴 연설은 동탄 주민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유세 현장에 모여드는 인파들은 점점 늘기 시작했으며 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어린 아이들까지도 깔깔 키득키득 거리며 팔을 치켜들어 올려 이준석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가고 싶은 유세 현장이 되었다. 그런 자연스러운 광경이 더 큰 신뢰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며 항상 유세 현장은 흐뭇한 미소를 선사했고 사랑스럽고 고맙고 감사한 축제를 방불케 했다. 매번 연설을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오면 이준석 후보와 함께 사진 촬영을 하겠다고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가히 스타급 인기였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큰 인물이 되길 기대할 것이며 응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