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우파의 곤경은 87 체제 이후 “허비해온 세월의 복수”… ‘박근혜 탄핵’ 때 이미 파산
⊙ 우파, 트럼프처럼 제도권 정당·언론 금기시해온 의제 적극적으로 공론화하는 충격요법 써야
⊙ 윤석열·한동훈, 국가 미래를 위한 정책도, 지지 계층을 위한 정책도 내놓지 못해
⊙ 우파는 ‘성 밖 사람들’, 20~30대 남성, 50대 여성 지지 얻었어야
⊙ 한국에서 계층 문제는 세대 문제와 겹쳐
⊙ ‘새 보수’ ‘개혁우파’도 비전 제시보다는 좌파 따라 하기, 내부 분탕질로 인지도에만 급급
任建淳
1981년생.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수료 / 저서 《한비자, 법과 정치의 필연성에 대해서》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등
⊙ 우파, 트럼프처럼 제도권 정당·언론 금기시해온 의제 적극적으로 공론화하는 충격요법 써야
⊙ 윤석열·한동훈, 국가 미래를 위한 정책도, 지지 계층을 위한 정책도 내놓지 못해
⊙ 우파는 ‘성 밖 사람들’, 20~30대 남성, 50대 여성 지지 얻었어야
⊙ 한국에서 계층 문제는 세대 문제와 겹쳐
⊙ ‘새 보수’ ‘개혁우파’도 비전 제시보다는 좌파 따라 하기, 내부 분탕질로 인지도에만 급급
任建淳
1981년생.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수료 / 저서 《한비자, 법과 정치의 필연성에 대해서》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등
- 22대 총선 당일인 4월 10일 밤 텅 비어 있는 국민의힘 총선 개표 상황실. 국민의힘, 보수 정치 세력의 파산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조선DB
대통령이 할 일은 두 개 범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국가를 위한 일이 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당장의 고통과 출혈이 요구되고 지지층들이 이반(離反)해도 필요하다 싶으면 추진해야 하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인기 없는 해법일지라도 더욱 용기를 가지고 말이다.
두 번째로 진영(陣營)을 위한 일이 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지지 세력이 원하는 일, 그들을 이롭게 해주는 일도 대통령의 임무이다. 절반만의 국민만을 위한 일이다. 나머지 국민을 비(非)국민화시키는 행위일 수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겠지만, ‘현실로서의 정치’란 것을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국가의 미래를 생각지 않아도 절반의 국민만 챙기고 자신을 지지해주는 이들에게 전리품(戰利品)을 풍성하게 나눠주고 이롭게 해주면 끝까지 인기를 누리고 퇴임 이후에도 자신은 편안히 살 수 있다.
윤 정권, 지난 2년 동안 무엇을 했나?
윤석열 정권 출범 후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분명히 대통령 윤석열은 일들을 했어야 했다. 아무리 거대 야당이 발목을 잡아도 일을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고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 좌초되는 모습이라도 보였어야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연금(年金)개혁을 했는가? 제조업 경쟁력을 위해 주(週) 52시간 제한 철폐를 했는가? 정규직 기득권을 제한하고 고용유연화를 시도했는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한 일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을 위해 한 일도 없어 보인다. 자신을 지지해준 20·30 남성들을 위해 한 일이 있는가? 여성가족부 폐지는 말뿐인 공약 아니었나? 남성들이 겪는 사법적 불공정함을 비롯해 젊은 남성들이 생각하는 기울어지다 못해 뒤집힌 운동장의 현실, 역차별(逆差別)에 신음하는 현실을 고치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한 일이 있기는 하다. 이준석을 몰아냈고 의사 집단과 싸웠다. 심하게 의사들을 겁박했다. 의사와 의사의 가족들이 지난 대선 때도 지지하다 못해 충심도 가득하고 가장 우수한 우파(右派) 지지 세력인데도 거침없이 찍어 눌렀다. 윤석열 정권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한 일이 없고 지지 세력을 챙기는 일도 없었다. 선거 폭망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참으로 이상하게도 윤석열 정권에는 국정(國政) 슬로건도 없었다.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 어떤 대원칙하에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강렬한 메시지가 없었다. 망해가는 집구석도 가훈(家訓)이란 게 있는데 윤석열 정권은 국정 슬로건이 없었다.
역시나 이상한 일이지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총선 승리를 위한 메시지가 없었다, 총선 이후 무슨 일을 해내겠다는 대(對)국민 슬로건이 없었다. 그냥 앞으로도 일을 안 하겠다는 것인데 왜 국민들이 지지를 하고 표를 주었어야 했을까?
한 일도 없고 하겠다는 일도 없고 선거 기간에는 상대방이 나쁘다는 말만 했다. 운동권이 정권을 잡을 경우 만들어질 파국(破局)을 가지고 겁만 주었다. 늘 해왔던 전형적인 인질극이다. 우파 정치는 자신의 지지자를 인질·볼모로 안다. 이번에도 틀림이 없었다.
한동훈에게서는 운동권과 이재명 나쁘다는 소리만 들린 것 같은데 청산할 것들은 분명히 청산해야 한다. 부패한 특권(特權) 세력으로 변해버린 운동권을 청산해야 한다는 데는 분명히 동의한다. 하지만 대안(代案)과 해법들을 생산해낼 의지와 준비, 역량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이 보기에 국민의힘은 그럴 역량과 준비가 없었던 것 같다. 운동권을 청산하자는 말만 할 게 아니라 최악의 저출산, 사실상의 인구대란 그리고 신냉전(新冷戰) 시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재편되는 와중에 국민국가의 틀마저 흔들리는데 어떤 대안들을 생산해낼지 역설했어야 했다.
하지만 한동훈에게는 그런 대안적인 콘텐츠가 없어 보였다. 이러니 어떻게 우파 시민, 더 나아가 국민들이 지지하고 표를 준단 말인가?
성 밖 사람들, 성 안 사람들
어느 나라든 우파 집권의 조건은 1%와 하위(下位) 계급 간의 연대(連帶)다. 중산층(中産層)을 에워싸는 계급 포위의 구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상위 중산층을 스킵하고 하위 계층과 상위 1% 간의 연대로 중산층들을 포위할 수 있어야 우파 집권이 가능하다.
어느 국가든 고(高)자산 계층은 우파, 고학력-고소득 계층은 좌파, 저(低)학력-저소득 계층은 다시 우파인 경우가 많다. 지난 대선만 해도 그렇다. 실제 지난 대선은 세대 간 포위라는 말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는 계층 포위이기도 했다. 상위 1% 성(城) 밖에 사는 생활인, 서민 간의 연대로 성 안에 사는 상위 중산층을 이겨버린 것이다. 집권을 위해서 늘 성 밖에 사는 생활인과 저학력, 저소득 국민들을 포섭할 생각을 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했던 가장 큰 실책은 어쩌면 담뱃값의 급격한 인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표를 줬고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준 행위였다. 하위 계층,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담뱃값으로 얄팍하게 만들어버렸다. 애초에 서민들 표를 끌어와서 이른바 성 밖 사람들의 표로 대통령이 된 우파의 리더가 자신의 지지자를 배신해버린 것이다.
우파는 성 밖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하고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런 계층의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계층의 문제는 사실 세대의 문제와도 적지 않게 겹쳐지고 포개진다.
성 안에는 40, 50대들이 많이 살고 성 밖에는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많이 산다. 성 안에는 전문직, 정규직, 화이트칼라 등 안정된 소득 기반의 중산층들이 많이 사는데 40, 50대들이 대부분이다시피 한다. 지대의 틀에 안착하고 선점(先占)한 이들이 대부분 좌파들이다. 민주당 핵심 지지 세력이다. 87년 체제가 허락한 지대의 틀을 움켜쥔 이들 중 적잖은 사람들이 1960년대, 1970년대생들이고 이들 대부분이 민주당 핵심 지지 세력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우파 집권을 위해서는 성 밖 사람들의 표를 가져와야만 한다. 부유한 성 안의 노인, 성 밖 가난한 노인들의 표만 가지고는 힘들다. 실제 지난 대선 때 20, 30대 특히 젊은 남성들의 표를 많이 가지고 와서 이기지 않았는가?
윤석열 지지했던 ‘아들 가진 50대 여성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정권 출범 이후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앞으로도 어떤 것을 할 준비가 되었는가’라고 질문하면 생각나는 것이 없다.
이들을 앞으로 자신들의 코어(core)한 지지 세력으로 굳히기를 해야 이번 총선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우파는 선거에서 겨우 해볼 만한 구도가 만들어지는데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전 위원장은 이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했거나 목소리를 냈는가? 자신들 지지 세력이기도 하고 소득과 자산 수준을 생각했을 때 하위 계층이기도 하니 더더욱 20, 30 남성들을 챙기고 우군(友軍)으로 붙들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애초에 우파의 집권 조건에 대해 인식이나 있었는지나 모르겠다. 20, 30 남성들을 붙들어두지 않으면 거대한 인구집단이자 민주당 콘크리트가 많은 40, 50대 유권자들을 상대로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50대 여자들도 살펴야 하는데 사실 젊은 남성들 포섭 문제와 같은 이야기다. 40, 50대는 민주당 지지가 매우 강하지만 해당 범주 안에서 50대 여자들이 유독 민주당 비토가 심했고 적지 않게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줬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우파 정치인들은 그 이유를 알기나 할까 모르겠다.
왜 50대 여자들이 민주당을 싫어했고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줬을까?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민주당과 좌파에 반감이 많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아들을 둔 어머니들이기 때문이다. 좌파들이 계속 득세하면 내 아들이 인간답게 살기 힘들 거라고 생각해서이다. 아들 둔 엄마로서 본능적인 촉이 작동을 한 것이다. 페미니즘에 잡혀 먹힌 민주당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기에 우파를 지지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총선 때도 아들 둔 어머니들에게 공천도 하고, 마이크를 쥐여주고, 공세적 프레임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려는 생각을 해봤어야지 않을까? 페미니즘과 젠더 문제로 공세적 프레임을 전개했다면 꼭 50대 어머니들이 아니어도 아들을 둔 어머니들과 젊은 남자들까지도 지지 세력으로 만드는 데 있어 큰 힘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비동의간음죄를 발의한 나경원,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을 처음으로 재판에 도입한 판사 출신 전주혜, 남자 대학생들을 비하한 김민전을 지역구와 비례로 공천해버렸다. 이런데도 젊은 남자들과 남자들의 어머니가 무슨 이유로 표를 줬어야 했을까?
우파 정치는 퇴물 판검사들의 인생 이모작
우파들 대부분은 늙었다.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진 우파, 소위 한자리하는 우파, 선거 이후에 전리품을 챙기는 우파들은 대부분 나이가 아주 많다. 그리고 고자산가인 경우가 많다. 지지자와 유권자 중 늙은 건물주들이 유독 많다. 그리고 실제 우파 정치를 하는 경우 은퇴한 판검사들이 많다. 일찍부터 정치에 투신해 젊은 시절부터 훈련받는 좌파들과 달리 퇴물 판검사들의 인생 이모작(二毛作)이 우파 정치다. 판검사들이 화려한 자기 스펙의 마지막 공간을 끝까지 빛나게 채우려고 하는 게 겨우 우파 정치란 것이다.
늙은 건물주와 퇴물 판검사가 우파 정치의 현실인데, 이들은 젊은 남성들을 이해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고 또 너무 잘산다. 세대 차이, 계층 차이로 인해 이해 불가다. 그들은 아시려나? 미혼 총각들 최대 70%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짝을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을. 짚신도 짝이 있다고? 아니다. 구두만 짝이 있다. 비싼 구두만. 미혼남 70%는 가정을 꾸릴 수 없고 반려자를 찾을 수 없다. 정치 권력이 좌우 담합하다시피 하면서 남성들 문제를 외면하고 젊은 남자들의 남성성을 모조리 거세해버려 야심과 생활 의지, 강인한 생활력은커녕 많은 젊은 남성이 열패감(劣敗感)을 가지고 ‘체제가 날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페미니즘에 잡아먹힌 민주당이라면 몰라도 노인들 지지만 가지고는 집권이 불가능한 우파는 그들의 편이 되어주려 노력했어야 했다. 성범죄에서 유죄추정(有罪推定)이 관철되는 법 앞의 불평등을 고치려 했어야 했다. 불합리한 결혼 문화와 관습을 고치자고 계몽도 해보고, 저출산 지원의 패러다임을 여성 지원에서 동(銅)수저, 흙수저 남성 지원으로 바꾸는 방향 전환을 했어야 했다. 이민청만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국제결혼도 지원하는 등 국제결혼 관련 기구도 만들겠다면서 젊은 남성들을 살폈어야 했다. 그런 정치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위원장이 하거나 약속했어야 했는데 그들이 젊은 남성들을 위해 한 일은 없었다.
젊은 남성 문제는 체제 수호의 문제
심각한 것은 젊은 남성 문제가 선거와만 상관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체제 수호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대만의 1인당 GDP는 우리나라하고 비슷하다. 그런데 대만에서는 월급 160만원 받는 사람이 중간 이상의 월급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반도체 관련 회사에서 일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박봉을 받으면서 생활한다고 한다. 200만원 이하 월급으로도 많은 사람이 산다고 하는데, 대만처럼 박봉에 시달린다거나 혹은 한국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짝을 절대 만날 수 없다면, 그것이 현실이라면 체제를 지킬 이유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신냉전 시대라지만 싸울 이유가 없다.
젊은 남성 문제는 눈앞의 선거를 떠나 정말로 이 체제를 지켜야겠다면 좌시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미혼 남성의 최대 70%는 아무리 용을 쓰고 열심히 살아도 사랑스러운 자기 짝 만나 가정 꾸리거나 자기를 존중하는 이성(異性)을 만날 수 없다. 이런데도 그들에게 ‘체제를 위해 싸워라’ ‘뭔가를 희생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한국과 대만은 최전선(最前線)이다. 전체주의 공산국가, 전근대(前近代) 대륙 야만 문명과 맞서는 프런티어이다. 사실 그 방패값을 서방 진영에 톡톡히 받아냈기에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이다. 신냉전이 시작되고 격화되면서 이런 프런티어적 성격, 전선의 성격이 다시 매우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중국의 야욕이 흉포해도, 북한이 나쁘다 해도, 대한민국의 젊은 남성들이 무슨 이유로 싸워야 하고 어려운 시간을 인내해야 하나? 중국과 북한이 싫은 것과 그들과 직접 싸워야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말이다.
신냉전 시대라는 국제 정세까지 생각하면 정치 권력은 절대 젊은 남성들이 겪는 소외감과 분노, 차별의 문제를 무시하시거나 못 본 척해서는 안 되지만, 현실은 참으로 난망해 보인다.
영화 〈건국전쟁〉이나 보면서 감읍해하는 일로 자신들 할 일 다 한 것이 아닌데, 정말이지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 늙은 건물주와 퇴물 판검사들에게 젊은 남성들의 이반과 절망이 눈에 들어오기나 할지 모르겠다. 국가 차원의 국제결혼 지원을 해볼 생각, 이민청만이 아니라 국제결혼지원청을 만들어볼 생각, 성매매·성인물을 합법화할 생각, 성인지 감수성·피해자 중심주의를 삭제하며 법 앞에서 남녀가 동등하게 설 수 있도록 해볼 생각…. 이런 것들을 챙기면서 젊은 남성들을 향해 어필해보고, 호명해보고, 그러면서 선거도 이기고 체제도 지켜보자는 구상을 했어야 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열리기로 했던 성인엑스포가 여성단체들 항의와 민주당 소속 지역단체장들의 방해로 취소되었을 때가, 그나마 선거전에서 젊은 남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우파 정치는 젊은 남성들을 안고 가기에는 세대적·계층적으로 너무 거리가 멀다. 인구 구조와 지형까지 생각하면 앞으로 계속 이길 수 없는 선거를 치러야 할 것이다.
‘소 키우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우파 정치의 기본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다. 국민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국민들을 지켜야 한다. 사실 우파와 좌파의 문제를 떠나서 권력이 권력다워지는 전제는 국민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다. 전쟁과 분쟁, 재해로부터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권력이 권력으로서 성립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갈수록 국민들을 지키기 어려워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공계 위기가 심화되고 제조업 분야 최정예 인사들이 국외(國外)로 유출되고 있다. 외화(外貨)라는 생명수를 길어올 사람들이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오 분야나 필수 의료 인력들 역시 이탈하고 있다. 이탈한 사람들을 불러 모을 대안을 조금도 생각지 않고 있다. 의사와 정부 간의 대치에서 보듯이 권력의 힘으로 겁만 주고 있다. 부사관과 장교들 역시 이탈하고 있다, 너도 나도 전역(轉役)하고 있고, 장교와 부사관이 되겠다는 지원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마디로 ‘소 키우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다. 생명수를 길어오고 시스템의 중심부와 최일선에서 싸우고 버틸 사람들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소 키우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는데 한동훈 전 위원장은 뜬금없이 격차 타령을 했다.
한동훈 전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첫날에 격차 사회를 운운하며 뮤지컬 이야기를 했다. 부당한 격차를 없애거나 줄여야 한다면서 난데없이 뮤지컬 이야기를 했다.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이동해 뮤지컬을 보기 불편하다나.
그렇게 한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소 키우는 사람들’이 다 사라지는 마당에 말이다. 어떻게든 ‘소 키웠던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 중 우수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을 어떻게든 축사(畜舍)로 불러와 일하게끔 고민해야 한다. 의사 집단과 벌인 극한의 대치를 보라. 윤석열 대통령은 축사 앞에서 몽둥이 들고 눈 부라린 채 서 있으면 되는 줄 아는데 한동훈 전 위원장도 문제의식과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잘못짚은 ‘격차 타령’
왜 소 키우는 사람들이 도망갔을까? 간단하다. 국가의 인센티브 체계가 왜곡되고 망가졌기 때문이다. 고생하며 소 키워봤자 소고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축사 청소조차 한 번을 안 한 사람들이 소고기 뜯으며 와인 마시고 있다. 이게 이 사회의 실정이다. 열심히 여물을 먹이고 꼴 베어오고 소똥 치우고 하는 것보다 정육점 앞에 가서 나도 피해자고 약자라면서 울면서 떼쓰는 게 소고기 먹는 데 가성비가 훨씬 좋은 인생이라는 것을 너도 나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소 키우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소를 돌보는 사람들이 없으면 국민들을 누가 지킬 것인가? 외화 벌어오지 않아도 괜찮겠는가? 바이오와 필수 의료 종사자들이 다 사라져도 괜찮을까? 부사관 장교의 씨가 말라도 별일 없겠는가?
더 심각한 것은 이렇게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제대로 살피고 대안을 만들겠다는 리더십도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한동훈 전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소 키우는 사람들이 소고기 먹게 하겠다. 충분한 보상과 명예와 존경까지 누리게 할 것이며 소고기 먹고 싶으면 꼴 한 번이라도 베어 와야 한다. 이게 인간으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양심이다!” 이렇게 정치에서 메시지를 주고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 뒤틀려버린 사회 인센티브 구조를 뜯어고치겠다고 하면서 시스템을 복구하고 국민들의 정신도 다잡아야 한다.
사실 늦었다. 많이 늦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와 위기, 그 위기의 중심적 원인이 어디 있는지 파악해보고 국민들에게 대안을 말하면서 설득을 한다고 해도 지금 한참이나 늦은 게 아닌가 싶은데 ‘부당한 격차 해소’라니, ‘함께 가면 길이 된다’느니, ‘지방사람들이 뮤지컬 보지 못해 큰일’이라니 했다. 한동훈 전 위원장으로 대표되는 국민의힘은 국가 운영의 근본과 국가 장래에 대한 준비와 고민이 없음을 처음부터 드러냈다.
‘격차 타령’만 해도 그렇다. 외려 정당한 격차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국가가 약속하고 보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소 키울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는 판국에 소 키우고 돌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국민들 사이에는 격차가 분명히 있어야 하고 커져야 한다. 그 정당한 격차가 없어 무너져가는 나라에서 그 격차는 정부와 권력이 보증해야 하는 것이고.
근성도 이념도 없는 ‘개혁보수’
우파 정치가 이렇게 망가지고 답이 없는 것을 추적하자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탄핵은 사실 우파 정치의 총체적 파산이었다. 정확히는 탄핵으로 망했다기보다는 망했기에 탄핵을 당한 것이다. 사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를 밀어붙여 대선 승리를 겨우 일궈내기는 했지만, 그때부터 우파 정치는 파산이 확정된 것이다. ‘박근혜’ 말고 그때 우파가 내세운 게 뭐가 있었나?
탄핵 이후 우파는 어떤 거듭남의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는가? ‘새로운보수당(새보수)’이 나와서 개혁보수, 새로운 보수의 기치를 내걸기는 했지만, 그들이 얼마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는지는 미지수다. 그나마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구세력과 살림을 다시 합쳤다. 그저 국회의원 배지에 눈이 멀어 통합이란 미명하에 살림을 합친 것이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신(新)우파와 구(舊)우파가 불가역적(不可逆的)으로 이별한 채 서로 경쟁하며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어야 했다. 통합 운운하며 어설프게 미봉(彌縫)한 채로 동거(同居)하지 말고 영원히 갈라서 서로의 비전과 경쟁력을 가지고 경쟁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야 호남 유권자들도 선거 때 우파를 찍을 수 있는 옵션의 범위로 둘 수 있게 되며 운동권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생겼을 것이다. 그랬으면 무엇보다 우파가 리더십과 대안, 후계자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불임(不姙)의 정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유능한 청년들이 치고 들어와 운신할 공간도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개혁우파, 새로운 보수라는 사람들은 춥고 배고픈 상태에서 1, 2년도 버틸 용기와 근성이 없었다. 그러니 통합의 깃발 아래 다시 군색하게 돌아온 것인데 그들은 근성과 용기만이 없는 게 아니라 이념과 노선도 없었다.
사실 개혁보수, 새보수란 사람들의 생각과 노선은 다 거기서 거기다. 안보와 외교 빼놓고는 다 좌파들을 따라 하자는 것이다. 좌파들 의제 수용하고 내 것으로 삼으면 중도층이 우리 편이 될 것이고, 그래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만 한다. 같은 우파 진영의 경쟁자들을 구태(舊態) 어쩌고 하면서 얼마든지 공격하고, 그들과 자신을 차별화시키면, 내부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게 전부다. 춥고 배고픈 시간을 견딜 인내심과 용기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 확신과 노선도 없다.
기준을 만드는 좌파, 따라가는 우파
87년 체제 성립 이후 우파는 한 번도 자신들이 독자적 어젠다를 가지고 공세적으로 상대를 밀어붙이지 못했다. 기준은 늘 좌파들이 만들었다. 그렇기에 선거 때마다 막말 논란에 시달리고 캔슬 컬처(cancel culture·주로 저명인을 대상으로 과거에 잘못한 행태에 대해 비판이 쇄도함으로써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잃게 만드는 소셜미디어상의 현상이나 운동)에 취약한 것이다. 기준은 늘 좌파들이 만들고 우파들은 만들지 못했기에 수세적으로 검증만 당하고 공격당한다.
우파는 늘 그러했다. 구보수와 다른 새보수라면 개혁우파라면 과거의 우파와는 달라야 했다. 새로운 어젠다, 독자적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상대의 기준에 재단(裁斷)만 당하는 게 아니라 기준을 만들 수 있는 역량과 준비가 있어야 했다. ‘새보수’는 이름만 ‘새보수’고 ‘개혁보수’라는 이름만 내걸었지 기준과 어젠다, 비전을 창출하지 못하는 점에서는 ‘구보수’와 다른 게 없었다.
그냥 억지로 통합하고 봉합해서 눈앞의 선거만 이기자, 안에서 분탕질 가끔 쳐서 인지도나 올리자, 공천만 받아 정치생명 연장하고, 대선만 이겨서 좌파 집권만 막아보자, 심지어는 대선 이기든 말든 정권 되찾든 말든 당권(黨權)만 장악해서 공천권만 휘두르자, 이런 생각만 했던 게 소위 ‘새보수’ 계열 사람들 아니었나?
이러니 우파 정치가 어떻게 살아나고 주류(主流)의 위상을 되찾고 국민들에게 ‘저 사람들 믿고 따라가자’는 신뢰를 줄 수가 있었겠는가? 그저 돈 많은 노인들 사교클럽, 은퇴한 퇴물 판검사들의 인생 이모작, 좌파들 이념 공세와 언어 검증에 그저 겁만 먹고 사과만 하는 것들이란 인식밖에 국민들에게 없는데 말이다.
지금이라도 우파 내부에서 불가역적 분화(分化)가 일어나고 새롭게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 국민들 선택을 받겠다는 결기와 각오를 가진 ‘신 우파’들이 등장해야지 않을까. 국민의힘 외에 새로운 우파 정치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 인내심과 이념적 준비도 모두 갖춘 새 우파 세력이 등장해 영남에 중심을 둔 국민의힘과 불가역적으로 갈라선 상태에서 경쟁해 국민들의 선택을 받고 결국 국민의힘을 무너뜨리고 잡아먹을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처럼 제도권 정당과 언론이 금기시하는 의제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하는 충격요법을 써야만 우파는 국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좌파 흉내 내기는 안 된다
“오늘 나의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報復)이다.”
나폴레옹의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허비해온 세월의 복수(復讐)다. 대한민국 우파는 세월을 허비만 해왔다. 87년 체제 이후 독자적 어젠다, 노선을 가지고 밀어붙이고 국민들을 설득해온 적이 없다. 어떤 이념과 언어와 철학의 기반 위에 서야 할지 고민해보지도 않았다. 사람을 키우고 미래를 대비해 사과나무를 심어온 역사가 없다.
그 결과가 탄핵이라는 총체적 파산이었다. 그 이후에도 세월만 허비해온 과거와 단절하지 못했다. 부지런히 사과나무를 심으며 미래에 대비하지 못했고 당장의 국가·사회의 근본적 문제와 싸우려고 애쓰지 못했다.
이재명 집권을 막아내고 들어선 윤석열 정부도 세월을 허비만 해온 기존의 우파와 다를 게 없었다. 우파는 앞으로도 얼마나 시간과 세월을 허비할까? 얼마나 더 허비해온 세월의 복수의 매질에 당해야 할까.
대한민국은 현재 저출산과 시스템의 중심부와 일선을 지키는 이들의 이탈로 국민국가의 틀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 상황이다. 신생아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소 키우는 사람들 또한 죄다 도망가고 있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좌파들 어젠다의 맹목적 수용, 좌파들 흉내 내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눈앞의 선거만 바라봐서도 안 된다. 새로운 국가적 비전을 담아낸 독자적 어젠다를 가지고 공세적으로 나서야 한다. 87년 체제 이후의 체제, ‘제7공화국’ 헌법의 기본틀을 만들어내야 한다.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끌자며 깃발을 드는 우파 정치와 리더십이 등장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늘 그러했듯 앞으로도 시간만 허비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해야 할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그 무모함이 참 대단하다. 늙은 건물주와 퇴물 판검사들은 국가가 무너져도 자신과 자기 가족의 삶이 그저 평안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허비해온 세월의 복수가 배의 맨 위층이라고 못 본 척하고 지나갈까?
배라 가라앉으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허비한 세월의 복수만큼 잔인한 것이 없다는 것을…. 다음 선거 때까지 놀다가 선거 임박해서 또 국민들과 우파 시민들 상대로 인질극이나 벌이면서 협박질이나 할 것인가?⊙
먼저 국가를 위한 일이 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당장의 고통과 출혈이 요구되고 지지층들이 이반(離反)해도 필요하다 싶으면 추진해야 하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인기 없는 해법일지라도 더욱 용기를 가지고 말이다.
두 번째로 진영(陣營)을 위한 일이 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지지 세력이 원하는 일, 그들을 이롭게 해주는 일도 대통령의 임무이다. 절반만의 국민만을 위한 일이다. 나머지 국민을 비(非)국민화시키는 행위일 수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겠지만, ‘현실로서의 정치’란 것을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국가의 미래를 생각지 않아도 절반의 국민만 챙기고 자신을 지지해주는 이들에게 전리품(戰利品)을 풍성하게 나눠주고 이롭게 해주면 끝까지 인기를 누리고 퇴임 이후에도 자신은 편안히 살 수 있다.
윤 정권, 지난 2년 동안 무엇을 했나?
윤석열 정권 출범 후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분명히 대통령 윤석열은 일들을 했어야 했다. 아무리 거대 야당이 발목을 잡아도 일을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고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 좌초되는 모습이라도 보였어야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연금(年金)개혁을 했는가? 제조업 경쟁력을 위해 주(週) 52시간 제한 철폐를 했는가? 정규직 기득권을 제한하고 고용유연화를 시도했는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한 일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을 위해 한 일도 없어 보인다. 자신을 지지해준 20·30 남성들을 위해 한 일이 있는가? 여성가족부 폐지는 말뿐인 공약 아니었나? 남성들이 겪는 사법적 불공정함을 비롯해 젊은 남성들이 생각하는 기울어지다 못해 뒤집힌 운동장의 현실, 역차별(逆差別)에 신음하는 현실을 고치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한 일이 있기는 하다. 이준석을 몰아냈고 의사 집단과 싸웠다. 심하게 의사들을 겁박했다. 의사와 의사의 가족들이 지난 대선 때도 지지하다 못해 충심도 가득하고 가장 우수한 우파(右派) 지지 세력인데도 거침없이 찍어 눌렀다. 윤석열 정권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한 일이 없고 지지 세력을 챙기는 일도 없었다. 선거 폭망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참으로 이상하게도 윤석열 정권에는 국정(國政) 슬로건도 없었다.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 어떤 대원칙하에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강렬한 메시지가 없었다. 망해가는 집구석도 가훈(家訓)이란 게 있는데 윤석열 정권은 국정 슬로건이 없었다.
역시나 이상한 일이지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총선 승리를 위한 메시지가 없었다, 총선 이후 무슨 일을 해내겠다는 대(對)국민 슬로건이 없었다. 그냥 앞으로도 일을 안 하겠다는 것인데 왜 국민들이 지지를 하고 표를 주었어야 했을까?
한 일도 없고 하겠다는 일도 없고 선거 기간에는 상대방이 나쁘다는 말만 했다. 운동권이 정권을 잡을 경우 만들어질 파국(破局)을 가지고 겁만 주었다. 늘 해왔던 전형적인 인질극이다. 우파 정치는 자신의 지지자를 인질·볼모로 안다. 이번에도 틀림이 없었다.
한동훈에게서는 운동권과 이재명 나쁘다는 소리만 들린 것 같은데 청산할 것들은 분명히 청산해야 한다. 부패한 특권(特權) 세력으로 변해버린 운동권을 청산해야 한다는 데는 분명히 동의한다. 하지만 대안(代案)과 해법들을 생산해낼 의지와 준비, 역량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이 보기에 국민의힘은 그럴 역량과 준비가 없었던 것 같다. 운동권을 청산하자는 말만 할 게 아니라 최악의 저출산, 사실상의 인구대란 그리고 신냉전(新冷戰) 시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재편되는 와중에 국민국가의 틀마저 흔들리는데 어떤 대안들을 생산해낼지 역설했어야 했다.
하지만 한동훈에게는 그런 대안적인 콘텐츠가 없어 보였다. 이러니 어떻게 우파 시민, 더 나아가 국민들이 지지하고 표를 준단 말인가?
성 밖 사람들, 성 안 사람들
어느 나라든 우파 집권의 조건은 1%와 하위(下位) 계급 간의 연대(連帶)다. 중산층(中産層)을 에워싸는 계급 포위의 구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상위 중산층을 스킵하고 하위 계층과 상위 1% 간의 연대로 중산층들을 포위할 수 있어야 우파 집권이 가능하다.
어느 국가든 고(高)자산 계층은 우파, 고학력-고소득 계층은 좌파, 저(低)학력-저소득 계층은 다시 우파인 경우가 많다. 지난 대선만 해도 그렇다. 실제 지난 대선은 세대 간 포위라는 말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는 계층 포위이기도 했다. 상위 1% 성(城) 밖에 사는 생활인, 서민 간의 연대로 성 안에 사는 상위 중산층을 이겨버린 것이다. 집권을 위해서 늘 성 밖에 사는 생활인과 저학력, 저소득 국민들을 포섭할 생각을 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했던 가장 큰 실책은 어쩌면 담뱃값의 급격한 인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표를 줬고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준 행위였다. 하위 계층,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담뱃값으로 얄팍하게 만들어버렸다. 애초에 서민들 표를 끌어와서 이른바 성 밖 사람들의 표로 대통령이 된 우파의 리더가 자신의 지지자를 배신해버린 것이다.
우파는 성 밖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하고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런 계층의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계층의 문제는 사실 세대의 문제와도 적지 않게 겹쳐지고 포개진다.
성 안에는 40, 50대들이 많이 살고 성 밖에는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많이 산다. 성 안에는 전문직, 정규직, 화이트칼라 등 안정된 소득 기반의 중산층들이 많이 사는데 40, 50대들이 대부분이다시피 한다. 지대의 틀에 안착하고 선점(先占)한 이들이 대부분 좌파들이다. 민주당 핵심 지지 세력이다. 87년 체제가 허락한 지대의 틀을 움켜쥔 이들 중 적잖은 사람들이 1960년대, 1970년대생들이고 이들 대부분이 민주당 핵심 지지 세력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우파 집권을 위해서는 성 밖 사람들의 표를 가져와야만 한다. 부유한 성 안의 노인, 성 밖 가난한 노인들의 표만 가지고는 힘들다. 실제 지난 대선 때 20, 30대 특히 젊은 남성들의 표를 많이 가지고 와서 이기지 않았는가?
윤석열 지지했던 ‘아들 가진 50대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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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청년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집권 후 그들이 원하는 정책들을 실천하지 못했다. 사진=조선DB |
이들을 앞으로 자신들의 코어(core)한 지지 세력으로 굳히기를 해야 이번 총선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우파는 선거에서 겨우 해볼 만한 구도가 만들어지는데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전 위원장은 이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했거나 목소리를 냈는가? 자신들 지지 세력이기도 하고 소득과 자산 수준을 생각했을 때 하위 계층이기도 하니 더더욱 20, 30 남성들을 챙기고 우군(友軍)으로 붙들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애초에 우파의 집권 조건에 대해 인식이나 있었는지나 모르겠다. 20, 30 남성들을 붙들어두지 않으면 거대한 인구집단이자 민주당 콘크리트가 많은 40, 50대 유권자들을 상대로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50대 여자들도 살펴야 하는데 사실 젊은 남성들 포섭 문제와 같은 이야기다. 40, 50대는 민주당 지지가 매우 강하지만 해당 범주 안에서 50대 여자들이 유독 민주당 비토가 심했고 적지 않게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줬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우파 정치인들은 그 이유를 알기나 할까 모르겠다.
왜 50대 여자들이 민주당을 싫어했고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줬을까?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민주당과 좌파에 반감이 많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아들을 둔 어머니들이기 때문이다. 좌파들이 계속 득세하면 내 아들이 인간답게 살기 힘들 거라고 생각해서이다. 아들 둔 엄마로서 본능적인 촉이 작동을 한 것이다. 페미니즘에 잡혀 먹힌 민주당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기에 우파를 지지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총선 때도 아들 둔 어머니들에게 공천도 하고, 마이크를 쥐여주고, 공세적 프레임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려는 생각을 해봤어야지 않을까? 페미니즘과 젠더 문제로 공세적 프레임을 전개했다면 꼭 50대 어머니들이 아니어도 아들을 둔 어머니들과 젊은 남자들까지도 지지 세력으로 만드는 데 있어 큰 힘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비동의간음죄를 발의한 나경원,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을 처음으로 재판에 도입한 판사 출신 전주혜, 남자 대학생들을 비하한 김민전을 지역구와 비례로 공천해버렸다. 이런데도 젊은 남자들과 남자들의 어머니가 무슨 이유로 표를 줬어야 했을까?
우파 정치는 퇴물 판검사들의 인생 이모작
우파들 대부분은 늙었다.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진 우파, 소위 한자리하는 우파, 선거 이후에 전리품을 챙기는 우파들은 대부분 나이가 아주 많다. 그리고 고자산가인 경우가 많다. 지지자와 유권자 중 늙은 건물주들이 유독 많다. 그리고 실제 우파 정치를 하는 경우 은퇴한 판검사들이 많다. 일찍부터 정치에 투신해 젊은 시절부터 훈련받는 좌파들과 달리 퇴물 판검사들의 인생 이모작(二毛作)이 우파 정치다. 판검사들이 화려한 자기 스펙의 마지막 공간을 끝까지 빛나게 채우려고 하는 게 겨우 우파 정치란 것이다.
늙은 건물주와 퇴물 판검사가 우파 정치의 현실인데, 이들은 젊은 남성들을 이해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고 또 너무 잘산다. 세대 차이, 계층 차이로 인해 이해 불가다. 그들은 아시려나? 미혼 총각들 최대 70%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짝을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을. 짚신도 짝이 있다고? 아니다. 구두만 짝이 있다. 비싼 구두만. 미혼남 70%는 가정을 꾸릴 수 없고 반려자를 찾을 수 없다. 정치 권력이 좌우 담합하다시피 하면서 남성들 문제를 외면하고 젊은 남자들의 남성성을 모조리 거세해버려 야심과 생활 의지, 강인한 생활력은커녕 많은 젊은 남성이 열패감(劣敗感)을 가지고 ‘체제가 날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페미니즘에 잡아먹힌 민주당이라면 몰라도 노인들 지지만 가지고는 집권이 불가능한 우파는 그들의 편이 되어주려 노력했어야 했다. 성범죄에서 유죄추정(有罪推定)이 관철되는 법 앞의 불평등을 고치려 했어야 했다. 불합리한 결혼 문화와 관습을 고치자고 계몽도 해보고, 저출산 지원의 패러다임을 여성 지원에서 동(銅)수저, 흙수저 남성 지원으로 바꾸는 방향 전환을 했어야 했다. 이민청만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국제결혼도 지원하는 등 국제결혼 관련 기구도 만들겠다면서 젊은 남성들을 살폈어야 했다. 그런 정치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위원장이 하거나 약속했어야 했는데 그들이 젊은 남성들을 위해 한 일은 없었다.
젊은 남성 문제는 체제 수호의 문제
심각한 것은 젊은 남성 문제가 선거와만 상관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체제 수호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대만의 1인당 GDP는 우리나라하고 비슷하다. 그런데 대만에서는 월급 160만원 받는 사람이 중간 이상의 월급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반도체 관련 회사에서 일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박봉을 받으면서 생활한다고 한다. 200만원 이하 월급으로도 많은 사람이 산다고 하는데, 대만처럼 박봉에 시달린다거나 혹은 한국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짝을 절대 만날 수 없다면, 그것이 현실이라면 체제를 지킬 이유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신냉전 시대라지만 싸울 이유가 없다.
젊은 남성 문제는 눈앞의 선거를 떠나 정말로 이 체제를 지켜야겠다면 좌시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미혼 남성의 최대 70%는 아무리 용을 쓰고 열심히 살아도 사랑스러운 자기 짝 만나 가정 꾸리거나 자기를 존중하는 이성(異性)을 만날 수 없다. 이런데도 그들에게 ‘체제를 위해 싸워라’ ‘뭔가를 희생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한국과 대만은 최전선(最前線)이다. 전체주의 공산국가, 전근대(前近代) 대륙 야만 문명과 맞서는 프런티어이다. 사실 그 방패값을 서방 진영에 톡톡히 받아냈기에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이다. 신냉전이 시작되고 격화되면서 이런 프런티어적 성격, 전선의 성격이 다시 매우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중국의 야욕이 흉포해도, 북한이 나쁘다 해도, 대한민국의 젊은 남성들이 무슨 이유로 싸워야 하고 어려운 시간을 인내해야 하나? 중국과 북한이 싫은 것과 그들과 직접 싸워야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말이다.
신냉전 시대라는 국제 정세까지 생각하면 정치 권력은 절대 젊은 남성들이 겪는 소외감과 분노, 차별의 문제를 무시하시거나 못 본 척해서는 안 되지만, 현실은 참으로 난망해 보인다.
영화 〈건국전쟁〉이나 보면서 감읍해하는 일로 자신들 할 일 다 한 것이 아닌데, 정말이지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 늙은 건물주와 퇴물 판검사들에게 젊은 남성들의 이반과 절망이 눈에 들어오기나 할지 모르겠다. 국가 차원의 국제결혼 지원을 해볼 생각, 이민청만이 아니라 국제결혼지원청을 만들어볼 생각, 성매매·성인물을 합법화할 생각, 성인지 감수성·피해자 중심주의를 삭제하며 법 앞에서 남녀가 동등하게 설 수 있도록 해볼 생각…. 이런 것들을 챙기면서 젊은 남성들을 향해 어필해보고, 호명해보고, 그러면서 선거도 이기고 체제도 지켜보자는 구상을 했어야 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열리기로 했던 성인엑스포가 여성단체들 항의와 민주당 소속 지역단체장들의 방해로 취소되었을 때가, 그나마 선거전에서 젊은 남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우파 정치는 젊은 남성들을 안고 가기에는 세대적·계층적으로 너무 거리가 멀다. 인구 구조와 지형까지 생각하면 앞으로 계속 이길 수 없는 선거를 치러야 할 것이다.
‘소 키우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우파 정치의 기본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다. 국민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국민들을 지켜야 한다. 사실 우파와 좌파의 문제를 떠나서 권력이 권력다워지는 전제는 국민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다. 전쟁과 분쟁, 재해로부터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권력이 권력으로서 성립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갈수록 국민들을 지키기 어려워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공계 위기가 심화되고 제조업 분야 최정예 인사들이 국외(國外)로 유출되고 있다. 외화(外貨)라는 생명수를 길어올 사람들이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오 분야나 필수 의료 인력들 역시 이탈하고 있다. 이탈한 사람들을 불러 모을 대안을 조금도 생각지 않고 있다. 의사와 정부 간의 대치에서 보듯이 권력의 힘으로 겁만 주고 있다. 부사관과 장교들 역시 이탈하고 있다, 너도 나도 전역(轉役)하고 있고, 장교와 부사관이 되겠다는 지원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마디로 ‘소 키우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다. 생명수를 길어오고 시스템의 중심부와 최일선에서 싸우고 버틸 사람들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소 키우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는데 한동훈 전 위원장은 뜬금없이 격차 타령을 했다.
한동훈 전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첫날에 격차 사회를 운운하며 뮤지컬 이야기를 했다. 부당한 격차를 없애거나 줄여야 한다면서 난데없이 뮤지컬 이야기를 했다.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이동해 뮤지컬을 보기 불편하다나.
그렇게 한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소 키우는 사람들’이 다 사라지는 마당에 말이다. 어떻게든 ‘소 키웠던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 중 우수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을 어떻게든 축사(畜舍)로 불러와 일하게끔 고민해야 한다. 의사 집단과 벌인 극한의 대치를 보라. 윤석열 대통령은 축사 앞에서 몽둥이 들고 눈 부라린 채 서 있으면 되는 줄 아는데 한동훈 전 위원장도 문제의식과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잘못짚은 ‘격차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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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면 길이 된다’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구호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담아내지 못했다. |
소 키우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소를 돌보는 사람들이 없으면 국민들을 누가 지킬 것인가? 외화 벌어오지 않아도 괜찮겠는가? 바이오와 필수 의료 종사자들이 다 사라져도 괜찮을까? 부사관 장교의 씨가 말라도 별일 없겠는가?
더 심각한 것은 이렇게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제대로 살피고 대안을 만들겠다는 리더십도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한동훈 전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소 키우는 사람들이 소고기 먹게 하겠다. 충분한 보상과 명예와 존경까지 누리게 할 것이며 소고기 먹고 싶으면 꼴 한 번이라도 베어 와야 한다. 이게 인간으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양심이다!” 이렇게 정치에서 메시지를 주고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 뒤틀려버린 사회 인센티브 구조를 뜯어고치겠다고 하면서 시스템을 복구하고 국민들의 정신도 다잡아야 한다.
사실 늦었다. 많이 늦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와 위기, 그 위기의 중심적 원인이 어디 있는지 파악해보고 국민들에게 대안을 말하면서 설득을 한다고 해도 지금 한참이나 늦은 게 아닌가 싶은데 ‘부당한 격차 해소’라니, ‘함께 가면 길이 된다’느니, ‘지방사람들이 뮤지컬 보지 못해 큰일’이라니 했다. 한동훈 전 위원장으로 대표되는 국민의힘은 국가 운영의 근본과 국가 장래에 대한 준비와 고민이 없음을 처음부터 드러냈다.
‘격차 타령’만 해도 그렇다. 외려 정당한 격차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국가가 약속하고 보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소 키울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는 판국에 소 키우고 돌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국민들 사이에는 격차가 분명히 있어야 하고 커져야 한다. 그 정당한 격차가 없어 무너져가는 나라에서 그 격차는 정부와 권력이 보증해야 하는 것이고.
근성도 이념도 없는 ‘개혁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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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보수당은 ‘개혁보수’를 내걸고 출발했지만, 2년여 후 다시 ‘구보수’인 미래통합당과 합쳤다. 사진=연합뉴스 |
탄핵 이후 우파는 어떤 거듭남의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는가? ‘새로운보수당(새보수)’이 나와서 개혁보수, 새로운 보수의 기치를 내걸기는 했지만, 그들이 얼마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는지는 미지수다. 그나마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구세력과 살림을 다시 합쳤다. 그저 국회의원 배지에 눈이 멀어 통합이란 미명하에 살림을 합친 것이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신(新)우파와 구(舊)우파가 불가역적(不可逆的)으로 이별한 채 서로 경쟁하며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어야 했다. 통합 운운하며 어설프게 미봉(彌縫)한 채로 동거(同居)하지 말고 영원히 갈라서 서로의 비전과 경쟁력을 가지고 경쟁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야 호남 유권자들도 선거 때 우파를 찍을 수 있는 옵션의 범위로 둘 수 있게 되며 운동권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생겼을 것이다. 그랬으면 무엇보다 우파가 리더십과 대안, 후계자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불임(不姙)의 정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유능한 청년들이 치고 들어와 운신할 공간도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개혁우파, 새로운 보수라는 사람들은 춥고 배고픈 상태에서 1, 2년도 버틸 용기와 근성이 없었다. 그러니 통합의 깃발 아래 다시 군색하게 돌아온 것인데 그들은 근성과 용기만이 없는 게 아니라 이념과 노선도 없었다.
사실 개혁보수, 새보수란 사람들의 생각과 노선은 다 거기서 거기다. 안보와 외교 빼놓고는 다 좌파들을 따라 하자는 것이다. 좌파들 의제 수용하고 내 것으로 삼으면 중도층이 우리 편이 될 것이고, 그래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만 한다. 같은 우파 진영의 경쟁자들을 구태(舊態) 어쩌고 하면서 얼마든지 공격하고, 그들과 자신을 차별화시키면, 내부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게 전부다. 춥고 배고픈 시간을 견딜 인내심과 용기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 확신과 노선도 없다.
기준을 만드는 좌파, 따라가는 우파
87년 체제 성립 이후 우파는 한 번도 자신들이 독자적 어젠다를 가지고 공세적으로 상대를 밀어붙이지 못했다. 기준은 늘 좌파들이 만들었다. 그렇기에 선거 때마다 막말 논란에 시달리고 캔슬 컬처(cancel culture·주로 저명인을 대상으로 과거에 잘못한 행태에 대해 비판이 쇄도함으로써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잃게 만드는 소셜미디어상의 현상이나 운동)에 취약한 것이다. 기준은 늘 좌파들이 만들고 우파들은 만들지 못했기에 수세적으로 검증만 당하고 공격당한다.
우파는 늘 그러했다. 구보수와 다른 새보수라면 개혁우파라면 과거의 우파와는 달라야 했다. 새로운 어젠다, 독자적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상대의 기준에 재단(裁斷)만 당하는 게 아니라 기준을 만들 수 있는 역량과 준비가 있어야 했다. ‘새보수’는 이름만 ‘새보수’고 ‘개혁보수’라는 이름만 내걸었지 기준과 어젠다, 비전을 창출하지 못하는 점에서는 ‘구보수’와 다른 게 없었다.
그냥 억지로 통합하고 봉합해서 눈앞의 선거만 이기자, 안에서 분탕질 가끔 쳐서 인지도나 올리자, 공천만 받아 정치생명 연장하고, 대선만 이겨서 좌파 집권만 막아보자, 심지어는 대선 이기든 말든 정권 되찾든 말든 당권(黨權)만 장악해서 공천권만 휘두르자, 이런 생각만 했던 게 소위 ‘새보수’ 계열 사람들 아니었나?
이러니 우파 정치가 어떻게 살아나고 주류(主流)의 위상을 되찾고 국민들에게 ‘저 사람들 믿고 따라가자’는 신뢰를 줄 수가 있었겠는가? 그저 돈 많은 노인들 사교클럽, 은퇴한 퇴물 판검사들의 인생 이모작, 좌파들 이념 공세와 언어 검증에 그저 겁만 먹고 사과만 하는 것들이란 인식밖에 국민들에게 없는데 말이다.
지금이라도 우파 내부에서 불가역적 분화(分化)가 일어나고 새롭게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 국민들 선택을 받겠다는 결기와 각오를 가진 ‘신 우파’들이 등장해야지 않을까. 국민의힘 외에 새로운 우파 정치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 인내심과 이념적 준비도 모두 갖춘 새 우파 세력이 등장해 영남에 중심을 둔 국민의힘과 불가역적으로 갈라선 상태에서 경쟁해 국민들의 선택을 받고 결국 국민의힘을 무너뜨리고 잡아먹을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처럼 제도권 정당과 언론이 금기시하는 의제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하는 충격요법을 써야만 우파는 국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좌파 흉내 내기는 안 된다
“오늘 나의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報復)이다.”
나폴레옹의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허비해온 세월의 복수(復讐)다. 대한민국 우파는 세월을 허비만 해왔다. 87년 체제 이후 독자적 어젠다, 노선을 가지고 밀어붙이고 국민들을 설득해온 적이 없다. 어떤 이념과 언어와 철학의 기반 위에 서야 할지 고민해보지도 않았다. 사람을 키우고 미래를 대비해 사과나무를 심어온 역사가 없다.
그 결과가 탄핵이라는 총체적 파산이었다. 그 이후에도 세월만 허비해온 과거와 단절하지 못했다. 부지런히 사과나무를 심으며 미래에 대비하지 못했고 당장의 국가·사회의 근본적 문제와 싸우려고 애쓰지 못했다.
이재명 집권을 막아내고 들어선 윤석열 정부도 세월을 허비만 해온 기존의 우파와 다를 게 없었다. 우파는 앞으로도 얼마나 시간과 세월을 허비할까? 얼마나 더 허비해온 세월의 복수의 매질에 당해야 할까.
대한민국은 현재 저출산과 시스템의 중심부와 일선을 지키는 이들의 이탈로 국민국가의 틀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 상황이다. 신생아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소 키우는 사람들 또한 죄다 도망가고 있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좌파들 어젠다의 맹목적 수용, 좌파들 흉내 내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눈앞의 선거만 바라봐서도 안 된다. 새로운 국가적 비전을 담아낸 독자적 어젠다를 가지고 공세적으로 나서야 한다. 87년 체제 이후의 체제, ‘제7공화국’ 헌법의 기본틀을 만들어내야 한다.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끌자며 깃발을 드는 우파 정치와 리더십이 등장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늘 그러했듯 앞으로도 시간만 허비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해야 할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그 무모함이 참 대단하다. 늙은 건물주와 퇴물 판검사들은 국가가 무너져도 자신과 자기 가족의 삶이 그저 평안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허비해온 세월의 복수가 배의 맨 위층이라고 못 본 척하고 지나갈까?
배라 가라앉으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허비한 세월의 복수만큼 잔인한 것이 없다는 것을…. 다음 선거 때까지 놀다가 선거 임박해서 또 국민들과 우파 시민들 상대로 인질극이나 벌이면서 협박질이나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