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민주당 선대위’ 비난 자초했던 선관위의 ‘흑역사’ : 월간조선

1963년 5차 개헌 이후 설립된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60년 만에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장관급)과 사무차장(차관급), 지역 선관위 상임위원 자녀가 소위 ‘아빠 찬스’를 이용해 선관위에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후속 보도들이 계속되고, 부적절한 예산 집행 행태에 대한 고발도 이어지고 있다. 4·19 당시 국민이 흘린 피 덕분에 출범한 선관위가 국민적 관심의 ‘사각지대’에서 그들만의 기득권을 구축하고, 이를 자녀에게 세습하는 ‘신(神)의 직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 직전에는 ‘북한 해킹 공격 사실 은폐·국가정보원 보안 점검 권고 거부’ 의혹 때문에 선관위가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북한 독재 정권이 우리 국민의 주권 행사를 방해하고, 그 결과를 왜곡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간 선관위가 내세웠던 각종 선거의 ‘투·개표 결과’가 우리 국민의 실제 ‘표심’과 일치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존립 기반 허물어진 선관위

선관위는 ‘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서 박찬진(사진) 전 사무총장, 송봉섭 전 사무차장, 신우용 제주선관위 상임위원, 김정규 경남선관위 총무과장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의뢰하고, 5급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했다. 사진=뉴시스

해당 의혹들로 인해 선관위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이 됐다. 선관위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선관위는 존립 여부마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후진국형’ 선거 관리 상설기구 필요성 ▲중앙에서 지방 말단까지 상설화된 비대한 선관위 조직의 효용성 ▲‘공직선거법’ 해석·적용에 대한 선관위의 재량의 적정성 등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를 향한 이 같은 비판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까.

현재 선관위가 직면한 총체적 위기는 ‘자업자득(自業自得)’ 성격이 강하다. 사실 ▲자녀 또는 친인척 특혜 채용 ▲업무 태만 ▲사실 은폐·왜곡 등은 공공기관 어느 곳에서나 늘 있는 일이고, 그 일각이 종종 드러나 논란이 된 사안이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이 유독 선관위에 분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선관위가 그간 ‘편파적 행보’를 일삼았다는 공감대가 우리 국민 사이에서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선관위가 문재인(文在寅) 정권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불공정한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그 근거로 내세우는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이 같은 민심에 힘입어 집권당인 국민의힘은 최근 “선관위와 더불어민주당은 ‘공생적 동업관계’(6월 4일, 김기현 대표)” “선관위와 민주당의 상부상조(6월 4일, 이철규 사무총장)”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그 어떤 기관보다 ‘공명(公明·사사롭지 않고 공정하고 명백함)’해야 할 선관위는 어쩌다가 소위 ‘적폐 기관’ 취급을 받게 됐을까. 대체 무슨 이유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 놓인 것일까. 문재인 정권 시절 내내 회자됐던 ‘선관위 편향 논란’ 사례들을 돌아본다.

‘선관위 편향 논란’은 2019년 1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자신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공명선거특보’로 활동했다는 의혹이 있던 조해주씨(경기도 선관위 상임위원 역임)를 임기 6년의 중앙선관위원으로 임명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 편향 인사가 중앙선관위원이 되면, 정치 중립과 정치 관여 금지란 선관위 근본정신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고, 설령 선거 관리 임무를 공정하게 수행한다고 해도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과 함께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 전 대통령은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씨 임명을 강행했다. 이는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고 규정한 ‘헌법’ 조항(제114조 1항)과 전면 배치되는 인사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중앙선관위원이 된 조씨는 상임위원(장관급)이 됐다. 전국 선관위를 총괄 지휘하는 중앙선관위는 선관위원 9명이 최고의사결정기구를 구성한다. 대통령 임명 3명, 국회 선출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 등의 방식으로 중앙선관위원이 된다. 중앙선관위원 중 ‘상근직’은 ‘상임위원’뿐이다. 선관위원들의 호선으로 통상적으로 대법관이 맡는 ‘중앙선관위원장’은 ‘비상근 명예직’이다. 여타 중앙선관위원 역시 마찬가지다. 상임위원직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중앙선관위원 3명 중 1명이 호선을 통해 맡으며 그 임기는 3년이다. ‘선거관리위원회법’은 “위원장은 위원회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통할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선관위를 이끄는 이는 위원장을 보좌하고 그 명을 받아 소속 사무처의 사무를 감독하는 상임위원이다.

이후 3년 동안 ‘조해주 체제’의 선관위는 숱한 ‘편파 시비’를 자초했다. 선관위가 ‘공직선거법’ 규정을 문재인 정권에 유리하도록 함부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심과 문제 제기, 이에 대한 선관위의 반론이 계속 이어졌다.

‘친일 청산’은 되고 ‘민생 파탄’은 안 돼

2020년 4월, 21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선관위는 더불어민주당의 선거 구호는 허용하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문재인 비판’ 구호는 불허했다. 이 결정 내용이 알려지자 ‘이중잣대’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선관위는 서울시 동작구 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미래통합당 후보 측이 “민생 파탄, 투표로 막아주세요”란 문구가 있는 ‘투표 독려’ 팻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민생 파탄’이란 문구가 문재인 정권을 연상시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공직선거법’은 정당이나 후보자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명시한 시설물, 선전물을 이용한 ‘투표 독려’를 금지한다. 이와 달리, 선관위는 2020년 3월, 같은 지역구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내건 “투표로 10년 친일 청산” “투표로 70년 적폐 청산”이란 문구가 있는 현수막은 허용했다. 당시 미래통합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박형준(현 부산광역시장) 당시 미래통합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여당 대표가 통합당을 향해 ‘토착왜구’라는 막말을 쏟아냈고, 민주당은 친일 프레임을 선거에 이용하고 있다”며 “그것은 허용하면서 민생 파탄은 대통령이나 여권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불허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편파성 논란이 일자 선관위는 하루 만에 ‘친일 청산’과 ‘적폐 청산’ 문구도 허락하지 않았다.

‘대선 전초전’부터 본격화한 ‘편향 논란’

2019년 1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캠프 ‘공명선거특보’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조해주씨를 임기 6년의 중앙선관위원으로 임명했다. 사진=뉴시스

선관위가 본격적으로 “‘심판’이 아닌 ‘선수’로 뛴다” “선거 관리가 아니라 민주당 선거 지원을 한다”는 조롱을 듣게 된 시기는 ‘대선 전초전’ 성격을 띤, 2021년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때부터다.

2021년 1월 8일, 선관위는 TBS 교통방송이 유튜브 구독자를 모집한다는 명목으로 실시한 ‘#1합시다’ 캠페인이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당시 TBS는 2020년 11월부터 ‘유튜브 구독자 100만 명 달성’을 목표로 자사 프로그램 진행자(김어준, 주진우, 김규리 등)들이 등장해 “일(1)합시다” “일(1)해야죠” “일(1)해야 돼”라고 외치는 영상으로 ‘#1합시다’ 캠페인을 전개했다. 출연자들의 구호가 각종 선거에서 원내 1당인 민주당의 기호인 ‘1번’을 연상케 하고, 영상에 등장하는 ‘1’의 색깔이 더불어민주당 당색과 유사했다.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지지를 호소하는 사전 선거운동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TBS는 해당 캠페인이 논란이 되자 그해 1월 4일 자체 중단했다. 이에 대해 당시 선관위는 “기호가 1번인 정당을 홍보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면서도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면서 “TBS에서 자체적으로 캠페인을 중지한 점, 현시점에서는 해당 캠페인이 선거법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관권 선거 의혹’에도 ‘면죄부’

2021년 2월 25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당·정·청 주요 인사들을 대동하고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 신공항 예정 부지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부산 지역 최대 현안인 신공항과 관련해서 “가슴이 뛴다” “국토부가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사진=뉴시스

2021년 3월 16일, 선관위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부산시 강서구 소재 가덕도 신공항 예정 부지를 찾아 “묵은 숙원이다. 눈으로 보니 가슴이 뛴다. 조속한 입법을 희망한다”고 한 발언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해 2월 25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41일 앞둔 당시 문 대통령은 ▲이낙연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 등 정부 인사 ▲이호승 경제수석 ▲강민석 대변인 ▲탁현민 의전비서관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과 함께 부산을 누볐다. 부산진구의 부전역, 부산신항 등을 돌아다니고, 가덕도 신공항 부지도 찾았다. 여기서 그는 “신공항 예정지를 눈으로 보고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을 들으니 가슴이 뛴다. 계획에서 그치지 않고 반드시 실현시키자”고 말했다. 또 “2030년 이전에 완공하려면 속도를 내야 한다. 기획재정부 등 여러 부처가 협력해야겠지만 국토부가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산 지역 최대 현안인 ‘가덕도 신공항’을 띄워서 더불어민주당 입후보 희망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했다는 지적을 자초하는 언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도를 넘은 대통령의 선거 개입”이라며 “노골적인 선거 개입은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의당도 ‘문재인 가덕도 방문’과 관련해서 “선거공항, 매표공항”이라고 꼬집었다.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를 놓고 여야 사이에 공방이 발생했다.

‘헌법’ 제7조 2항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한다. ‘공직선거법’ 제9조 1항 역시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직무수행 활동 일환으로 지역을 방문한 것”이라며 “선거 관련 발언, 특정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나 반대 없이 해당 지역 현안사업에 대한 계획을 청취하고 지원을 약속하는 행위만으로는 선거법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파란색은 허용, 분홍색은 ‘흑백 처리’

2021년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선관위가 서울 택시 일부에 부착한 ‘서울시장 선거 투표 독려’ 홍보물이 더불어민주당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뉴시스

2021년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선관위가 서울 택시 일부에 부착한 ‘서울시장 선거 투표 독려’ 홍보물이 더불어민주당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관위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2150만원을 들여 서울 택시 150대에 부착한 홍보물의 글씨 색깔이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계열이라는 이유에서다. 국민의힘은 “특정 정당이 연상되는 홍보물에 대해 수정 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선관위는 “빛·각도 등에 따른 인식 차이가 생길 수 있다. 해당 색상은 특정 정당과 관계없고 선관위는 이를 방지하고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며 수정 불가 입장을 밝혔다. 이는 선관위가 불과 그 1년 전에 했던 조처와는 상반된 것이다.

선관위는 2020년 3월 13일, 연예인들이 분홍색 장미를 든 ‘21대 총선 투표 독려 영상’을 공개했다가 4일 만에 영상 속 장미꽃을 ‘흑백’으로 처리했다. 그 사유에 대해 선관위는 “영상 속 모델들이 분홍색 장미를 들고 있고, 배경이 분홍색이므로 특정 정당을 홍보·연상시킨다는 일부 민원이 있었다”는 식으로 밝혔다. 전례가 있는데도 선관위는 불과 1년 뒤 더불어민주당을 연상케 할 가능성이 있는 홍보물에 대해서는 ‘빛·각도’를 운운하며 수정 불가 입장을 내세웠다는 얘기다.

국민의힘이 이에 반발하고, 논란이 지속되자 선관위는 2021년 3월 22일 ‘택시 부착물 홍보’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홍보물의 주 색상은 보라색 계열이고, 특정 정당 색상과 전혀 무관하다”면서도 “다만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불필요한 논란이 지속하는 걸 방지하고자 택시 부착물 홍보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보궐선거 왜 하죠?”가 선거법 위반?

국민의힘 의원들은 2021년 4월 5일 중앙선관위를 방문해 ‘내로남불’ 등 표현 사용을 불허한 조처에 공정하지 않다며 항의했다. 사진=뉴시스

이른바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은 2021년 3월 23일 선관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단체는 “4·7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다시 뽑아야 하는 이유는 두 광역자치단체장이 성폭력 가해자이기 때문”이라며 “이 당연한 사실을 알리는 일조차 선거법 위반이라는 건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 참여를 막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애초 이 단체는 일주일 동안 서울시 종로구 소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보궐선거 왜 하죠?”란 문구 등을 내걸고 캠페인을 할 예정이었다. 선관위는 선거 18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거나 정당·후보자를 유추할 수 있게 하는 시설물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제90조를 근거로 이를 제지했다. 선관위는 보궐선거 원인을 묻는 “보궐선거 왜 하죠?”란 문구에 대해 “임기 만료 선거와 달리 유권자가 선거 실시 사유를 잘 알고 있다는 점 등을 토대로 현수막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안내했다”고 밝혔다. 이는 과도한 해석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보궐선거의 원인조차 공론화하지 못하게 하는 선관위의 행태에 대해서는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시기, 선관위는 “권력형 성추행 범죄로 실시하는 4·7 재·보궐선거 비용 국민 혈세 824억원 누가 보상하나”란 문구를 쓴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할 경우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 역시 앞서 언급한 ‘공직선거법’ 제90조가 그 근거였다. 당시 선관위는 “해당 문구는 누구든지 특정 정당의 명칭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했다. 선관위는 누구나 다 ‘권력형 성추행 범죄’란 문구를 통해 쉽게 ‘더불어민주당’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므로 이를 금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2021년 4월 3일, 4·7 재·보선을 목전에 둔 국민의힘은 “투표가 위선을 이깁니다” “투표가 무능을 이깁니다” “투표가 내로남불을 이깁니다” 사용 여부를 선관위에 물었다. 선관위는 “그 표현을 통해 특정 정당을 반대하거나 그 정당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며 ‘사용 불가’ 통보를 했다. ▲위선 ▲무능 ▲내로남불과 같은 표현이 더불어민주당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인 셈이다. 이에 따라 한동안 “더불어민주당은 선관위가 인증한 내로남불 정당”이란 조롱이 확산되기도 했다.

투표 당일 ‘오세훈 체납’ 오해 소지 공고문

2021년 4월 7일, 선관위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에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신고한 납세액과 관련해서 “일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정정 공고문을 서울시 관내 모든 투표소에 게시했다. 최근 5년간 오 후보 배우자의 납세액은 1억1997만9000원이지만, 선관위에 신고한 액수는 1억1967만7000원으로, 실제 납부액보다 30만2000원 적게 신고했다는 게 공고문의 요지다.

공직선거 후보자의 납세 내역 공개는 후보자의 ▲준법정신 ▲도덕성 ▲성실성 등을 확인하고 유권자가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 같은 취지를 고려하면 세금 체납 사실을 은폐했거나, 실제보다 많은 금액을 세금으로 냈다고 허위 사실을 공표한 게 아니라 실제 납부액보다 30만원가량 적게 신고한 사항은 후보자를 판단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정보라고 할 수 없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측은 “민주당과 선관위가 마치 2인 3각 경기를 하듯 한 몸이 되어 뛰고 있다”며 “선관위가 앞장서서 오 후보 망신주기에 나선 것이며 사실상 오 후보 낙선운동을 하는 셈”이라고 했다. 배준영 당시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오 후보의 배우자가 30만2000원 세금을 더 낸 것을 밝히지 않았다고 민주당은 등록 무효를 주장하고 선관위는 모든 투표장 앞에 이에 대한 공고를 붙였다”며 “3월 31일에 제출된 재산신고사항에 대해 선거를 하루 앞둔 어제서야 사실과 다르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이해할 수 없거니와 부랴부랴 공고문을 붙여 유권자들은 자칫 오 후보가 세금을 체납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비판했다.

‘내로남불’은 불허… 주술·굿당은 허용

선관위는 지난 대선 때도 ‘편파적’이라는 비판을 자초할 수 있는 구실을 수차례 제공했다. 선관위는 2021년 10월 13일, 소위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한 국민의힘 현수막 문구에 대해 사용 불가 통보를 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진짜 몸통은 설계한 이다”란 현수막을 게시하려고 했다. 해당 문구 중 ‘이’ 글자만 빨간색이고, 나머지는 파란색이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특정 문자를 부각시켜 특정 입후보 예정자를 반대하는 것으로 일반 선거인이 쉽게 인식할 수 있다”고 했다. ‘이’란 글자가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한 셈이다.

2021년 11월 16일, 선관위는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비판하는 ‘좌파 논객’ 진중권씨 페이스북 글을 인용·보도한 11개 언론 매체에 ‘주의’와 ‘공정보도 협조 요청’ 등의 조처를 내렸다. 이는 이재명 당시 후보 측이 선관위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에 제기한 이의신청에 따른 것이다. 심의위는 “진 전 교수 글을 그대로 인용했다고 하나 제목과 내용에서 ‘그렇게 잔머리 굴리시면’ ‘이재명 대장동 몰랐으면 박근혜, 알았으면 이명박’ 등으로 신청인(이재명 후보)에 대한 일방적 비판을 여과 없이 보도한 건 특정 후보자에 유불리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유명인사들의 사회적 관계망 게시물을 무분별하게 인용·보도하는 온라인 매체들의 관행은 비판받아야 하지만, 과연 선관위가 관여해야 할 사안인지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언론 매체가 ‘공직선거법’상 금지하는 ▲여론조사 결과 왜곡 공표·보도 ▲특정 후보자를 당선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한 선거 관련 허위 사실 보도 또는 왜곡 보도·논평 ▲여론조사 결과 등 객관적 자료 없이 선거 결과 예측 보도 등을 하지 않았는데도, 특정 후보가 이의를 제기하자 ‘주의’ 운운하는 행태는 국민적 공감을 얻기 쉽지 않다.

한편, 선관위는 대선 과정에서 ‘반(反)윤석열’ 현수막에 대해서는 ‘사용 가능’ 통보를 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살아 있는 소의 가죽을 벗기는 세력” “신천지 비호 세력” “술과 주술에 빠졌다” “청와대를 굿당으로 만들 순 없습니다”는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제작했다. 선관위는 “특정 후보에 대한 반대 입장이 명시적이지 않다”면서 이 같은 더불어민주당 현수막 문구를 허용했다. 신천지·술·주술·굿 등은 더불어민주당의 윤석열(尹錫悅)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향한 ‘악의적 프레임’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때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이와 유사한 선전을 지속한다. 이 같은 더불어민주당 현수막 문구가 누구를 겨냥하는지, 그 문구의 의도가 무엇인지 너무나 명백한데도 선관위는 이를 허용했다. 2021년 4·7 재·보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국민의힘 현수막에는 ▲위선 ▲무능 ▲내로남불과 같은 단순한 표현마저 허락하지 않았던 선관위의 입장과 전면 배치되는 결정이란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선관위도 국민 심판받아야”

선관위는 2022년 3월 3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 공보물에 실린 일명 ‘검사 사칭’ 전과기록 소명 내용에 대해 “허위 사실 게재로 볼 수 없다”고 결정했다. 사진=뉴시스

선관위는 2022년 3월 3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 공보물에 실린 일명 ‘검사 사칭’ 전과기록 소명 내용에 대해 “허위 사실 게재로 볼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또 ‘불공정 논란’이 일었다. 국민의힘은 “편향된 결정”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지금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변호사 시절이던 2002년 당시 최모 KBS PD와 함께 김병량 성남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하며 검사를 사칭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벌금 150만원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이재명)이 PD와 공모해 검사의 자격을 사칭하여 그 직권을 행사한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와 관련해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는 선거 공보물에 “담당 검사 이름과 사건 중요 사항을 물어 알려줬는데 법정 다툼 끝에 결국 검사 사칭을 도운 것으로 판결됨”이라고 기재했다.

국민의힘은 해당 내용이 대법원 판결과 다르다고 지적하며 2022년 2월 23일 선관위에 이의를 제기했다. 전과는 후보자의 준법정신 등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 정보이므로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을 경우 유권자의 공정한 판단을 저해할 수 있다. 참고로, ‘공직선거법’ 제205조 1항은 “당선되거나 되게 할 목적으로 선전문서 등을 통해 경력에 관한 허위 사실을 공표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국민의힘 이의 제기에 선관위는 3월 3일 “기재된 내용은 후보자 본인의 전과기록에 기재된 죄명·형량·확정일자의 객관적 내용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범죄 사실이 있게 된 배경·경위 및 행위에 대한 설명에 해당한다”며 “후보자의 경력 등이나 후보자 정보 공개 자료에 관한 객관적인 사실을 게재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이의제기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검사 사칭’으로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받았고, 법원이 “그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는데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선관위가 명백한 허위사실, 선거법 위반 사항을 놓고서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으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위원회’가 된 것 아닌가”라며 “편파적인 결정을 반복해왔던 선관위도 함께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건 당사자로 이 후보와 함께 벌금형을 받았던 최모 PD는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1심·2심·대법원 판결과 담당 PD, 카메라맨 및 오디오맨 진술들을 종합하면 이 후보가 검사 사칭을 적극적으로 사주한 것”이라며 “판결문에는 ‘이재명 변호사가 나로 하여금 검사 자격을 사칭해 김병량 시장과 통화하여 조사하는 것처럼 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기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관위가 언급한 심의 대상이 경력학위·상벌인데, 형법에 따라 형벌받은 게 어떻게 상벌이 아니라는 것이냐”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