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정치에세이] 光州에서 保守 정치하기 : 월간조선

6·1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조배숙 전북지사 후보는 17.88%, 이정현 전남지사 후보는 18.81%, 주기환 광주(光州)광역시장 후보는 15.90%를 득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9 대선에서 전북 14.42%, 전남 11.44%, 광주 12.72%를 득표했던 것과 비교해 더 나은 성적이 나온 것이다. 밖에서 볼 때에는 호남이 여전히 더불어민주당의 철옹성인 것 같아 보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20대 대선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지난 2월 16일. 광주 송정역에서 멀지 않은 송정매일시장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유세를 가졌다. 윤석열 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광주에 복합쇼핑몰이 없어서 광주시민들이 대전까지 쇼핑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민주당이 반대하기 때문 아니냐. 집권하면 광주에 복합쇼핑몰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내놓았다.

나는 이날 윤 후보가 복합쇼핑몰 공약을 발표할 것이라는 것을 사전에 귀띔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유세 현장이 재래시장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복합쇼핑몰 이슈는 자영업자나 영세 상인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재래시장 앞에서 그런 공약을 발표한다는 것은 “유권자들 약 올리느냐”는 반발을 살 수 있겠다는 우려가 생겼다. 유세 차량 앞에 진을 치고 노트북을 타이핑하는 취재진이나 방송사와 유튜버들의 카메라도 부담스러웠다.

윤석열 후보의 복합쇼핑몰 공약에 대한 반응을 두고 노심초사한 것은 내가 이 공약을 구상하고 기획하고 조직화한 당사자였기 때문이었다. 이 공약이 역풍(逆風)을 불러일으켜 대선 승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없을 수 없었다.

복합쇼핑몰 공약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충격과 파문을 불러왔다. 전체 언론이 이 이슈를 놓고 들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논조는 내가 의도했던 방향과 맞아떨어졌다. 이 이슈가 완벽하게 성공했다는 신호였다.

민주당 광주시당조차 복합쇼핑몰 이슈에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았다가 곧 “우리는 복합쇼핑몰을 반대한 적이 없다”며 입장을 바꾸었다. 정의당의 전 대표였다는 분은 “광주에 5일장이 시(세) 개나 있다”며 복합쇼핑몰 유치를 반대하는 발언을 해 조롱을 받기도 했다.

“오히려 눈물이 나온다”

2020년 총선 당시 필자는 광주시의회 기자실에서 두 차례 기자회견을 가졌으나 취재기자는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윤석열 후보의 공약은 광주광역시의 현실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으로 이어졌다. 광주광역시뿐만 아니라 전남과 전북 등 호남 전체를 통틀어 코스트코, 이케아, 이마트트레이더스, 스타필드 등 신개념 쇼핑몰이 하나도 없다는 것, 그 이유가 시민단체와 자영업자들의 반발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럴 수가 있느냐’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호남 젊은이는 인터넷에 올라온 스타필드 내부 사진을 보고 ‘저기에 들어가려면 입장료 내야 하는 거냐?’고 질문을 해 또 다른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복합쇼핑몰 이슈가 파문을 불러일으키자 유튜브 채널 펜앤드마이크가 전화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내가 펜앤드마이크 사이트에 이 이슈에 대해 기고했던 터라 이 매체는 내가 이 이슈를 위해 전부터 노력해온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행자가 처음 꺼낸 질문은 “이 이슈를 공론화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성과가 나타났다. 기뻐서 웃음이 나오실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오히려 눈물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2020년 총선 당시 광주 서구갑에 출마해 “광주는 5·18 제사(祭祀)의 도시”라는 발언을 했다가 당 안팎에서 ‘막말 후보’라며 공격을 받은 기억, 총선 이후 광주에서 어떤 이슈로 좌우(左右) 대립전선을 만들어낼까 고민하던 기억, 우연한 기회에 광주시청 게시판에 들어가 코스트코 유치 청원을 발견하고 광주의 현실에 눈뜨게 된 기억, 이 이슈를 들고 중앙당을 설득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던 기억 등이 한꺼번에 떠올랐던 것이다.

복합쇼핑몰 공약이 불러온 전국적인 관심을 통해 광주시민, 특히 젊은이들이 얼마나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 갇혀 있었는지, 좌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광주와 호남을 얼마나 고립시키고 자신들의 가두리 양식장으로 만들어왔는지가 새삼 뼈저리게 다가오기도 했다.

복합쇼핑몰이 대선에 미친 효과에 대해서는 많은 분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우파 대선 후보가 광주와 전남, 전북에서 처음으로 10%대를 돌파한 것에는 복합쇼핑몰 이슈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는 분들도 꽤 있다. 광주에서 윤석열 후보가 두드러지게 높은 득표율을 올린 곳이 봉선동 등 고급 아파트 밀집 지역이라는 사실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복합쇼핑몰은 아무래도 아파트 거주민의 라이프스타일과 매칭되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대선 전에 윤석열 후보의 득표가 30%대도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왔기 때문에, 실제 호남의 선거 결과에 실망하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이번 대선 득표는 혁명적인 변화가 맞다. 앞으로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호남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 결정적인 계기가 복합쇼핑몰 이슈였다고 나는 판단한다.

소상인들도 복합쇼핑몰 유치에 긍정적

지난해 연말에 광주 구도심(舊都心)에 자리 잡은 대인시장 상인들이 내게 만나자고 연락해왔다. 이들은 내가 펜앤드마이크 등에 기고한 글을 읽었다면서 대인시장 재개발에 대해 상의해왔다.

원래 광주 구도심의 중심 상권이었던 대인시장은 광주의 중심이 신도시 쪽으로 이동해가면서 심각하게 쇠락한 상태였다. 상인들은 2만 평에 이르는 대인시장에 복합쇼핑몰을 유치하되 일부 대지에는 품목이 겹치지 않는 지역 특화 상품 센터를 개설, 상호 윈윈(win-win)하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내가 그들의 요청을 직접 실현해줄 방법은 없었지만, 이 사안도 시당과 중앙당에 보고했고 이후 그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자문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대인시장에 나가서 지원 유세도 했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대인시장이 위치한 동구 쪽 국민의힘 후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대인시장에 복합쇼핑몰 유치’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복합쇼핑몰 이슈에 부정적이라고 알려진 자영업자나 소상인들도 점차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인시장 상인들은 “전국의 모든 재래시장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며 “우리 모델이 성공하면 전국의 재래시장이 되살아날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걸고 있다.

‘死地’에서 保守 정당 후보로 출마

나는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후보로 광주 서구갑에 출마했다. 광주가 고향이었지만, 40여 년이나 광주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광주는 객지(客地)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민주화의 성지(聖地)’라 불리며 좌파 세력의 아성(牙城) 역할을 하는 광주에서 보수(保守) 정당 후보로 출마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광주는 험지(險地)도 아닌 사지(死地)인데, 왜 굳이 그곳에 가려고 하느냐”고 만류하는 분들도 많았다.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하라고 권유하는 분들도 있었다. 광주 현지에서도 “무소속으로 나온다면 표를 훨씬 많이 받을 것”이라고 충고하는 분들도 계셨다. 내가 호남 혐오에 항의하는 활동을 꽤 오랫동안 해온 사실을 알고 나름 그 가치를 평가하는 분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지로 불리는 광주광역시에서 보수 정당 후보로 나섰다. 그것은 광주 현지에서 반드시 보수 정당 후보로서 말해야 하는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국 사태 당시에도 우파 시민단체들과 함께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활동을 해왔지만, 항상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현실 참여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결국 정치적 실천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현실 속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이슈와 갈등은 최종적으로 정치적인 대립전선으로 승화(昇華)될 수밖에 없다. 부문별로 제기되는 수많은 이슈가 점차 고도화되고 융합되는 귀착점이 정치 투쟁의 어젠다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실 정치에 뛰어들게 됐다. 특히 정치적 대립전선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선거에서 지역구 후보로 나섰다. 지역구를 고집했던 것은 비례대표의 경우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거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아무리 보수 정당의 존재감이 약한 광주 지역이라 해도 최소한 제1야당 후보는 방송토론에 참가시킬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계산도 작용했다.

선거운동을 위해 광주에 내려갔을 때 안면이 있던 광주의 지식인 한 분을 만나 조언을 들었다. 이분은 “광주에서 다른 얘기는 다 해도 좋은데 5·18만은 건드리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분이 나를 위해서 하신 말씀인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 조언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애초에 광주 출마를 결심한 계기 자체가 5·18을 중심으로 한 광주의 좌파 패권(覇權)에 균열을 내보겠다는 의도였기 때문이었다.

‘생산 대신 제사에 매달리는 도시’

2020년 총선 당시 필자는 ‘문재인이냐 대한민국이냐’를 내걸고 선거운동을 했다.

나는 선거의 메인 슬로건을 ‘문재인이냐 대한민국이냐’로 잡았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이 반(反)대한민국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대한민국과 문재인, 대한민국과 민주당 좌파 세력은 도저히 공존 불가능한 적대적 대립 관계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TV토론에서 나는 “광주는 80년대 유산(遺産)에 사로잡힌 도시, 생산 대신 제사에 매달리는 도시, 과거 비극의 기념비가 젊은이들의 취업과 출산을 가로막는 도시로 추락시켰다”고 지적했다. 문재인이 방중(訪中) 당시 “중국은 큰 산맥 같은 나라고 한국은 작은 나라, 중국몽(中國夢)에 함께하겠다”고 했던 발언을 지적하며 “대한민국의 대통령인지 시진핑의 지시를 받는 남한 총독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내 발언은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 광주는 말할 것도 없고, 중앙 언론들까지 벌떼처럼 일어나 ‘막말 후보’라며 공격해왔다. 이건 내가 예상했고 또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파장을 예상 못 한 실언(失言)이 아니었다.

언론의 논조는 비판적이었지만, 기사들에 달린 댓글은 호의적이었다. 기사에서 내 발언을 공격하려니 결국 내 발언의 내용을 소개할 수밖에 없었고 독자들은 ‘틀린 말이 없는데 이게 왜 막말이라는 거냐’는 댓글을 달아주곤 했다.

나는 광주 서구갑에서 4.2%의 득표를 했다. 다른 지역에서 보자면 하품이 나오는 성적이지만, 광주와 전남에서는 단 한 곳을 빼고는 가장 높은 득표율이었다. 그 한 곳은 순천·광양·곡성·구례을 선거구로 4.3%였다. 외지인의 비율이 비교적 높은 데다 전통적으로 전남은 광주보다는 보수 표가 조금이라도 더 나오는 곳이었다.

내가 제기한 복합쇼핑몰 이슈는 바로 총선에서 제기했던 이슈의 연장선이었다. 두 가지 문제의식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이게 광역시냐?”

2020년 11월 27일 ‘상식과 정의를 찾는 호남대안포럼’ 창립식. 광주의 심각한 민주당 편향 현상에 맞서 조직한 중도-보수 연합체 성격의 조직으로 필자는 현재 이 단체의 공동대표 중 한 명이다.

나는 2020년 총선 기간에 우파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선거가 끝나도 광주를 떠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선거운동을 하고 광주의 실상을 점차 알게 되면서 내가 던진 메시지가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당협위원장 활동을 시작했지만, 현실은 거대한 벽과도 같았다. 선거운동 당시의 어려움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책임당원들조차 전화를 하면 무관심하거나 냉담했다. 언론들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광주에 와서 아무 성과도 남기지 못하고 그냥 흐지부지 사라지는 것 아닐까? 광주를 틀어쥐고 있는 좌파의 거대한 벽에 균열을 내보겠다는 내 도전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FM코리아 사이트에 올라온 포스팅이었다. 포스팅도 아니고 거기에 달린 댓글이었다. 그 댓글에 광주광역시 내 코스트코 유치 청원에 대한 링크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링크를 타고 광주광역시청이 운영하는 바로소통광주 게시판에 들어가 보았다.

그 게시판에는 코스트코 유치 청원이 여러 건 올라와 있었다. 거기에 달린 댓글도 압도적으로 찬성 의견이 많았고 그 내용이 생생하고 구체적이었다. 가끔씩 올라오는 반대 의견은 구체적인 내용도 없고 단순 붙여 넣기 한다는 느낌이었다.

이 게시판을 통해 나는 광주시민들이 팀을 꾸려 대전까지 원정쇼핑을 간다는 것, 코스트코뿐만이 아니라 이케아, 이마트트레이더스, 스타필드도 광주에 없다는 것, 심지어 전남과 전북까지 통틀어 이런 쇼핑몰 브랜드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시민은 “이게 광역시냐? 차라리 광주군(郡)으로 돌아가자”는 처절한 분노를 토하고 있었다.

나는 이 사안을 이슈화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참여해 조직한 중도-보수 연대체인 호남대안포럼 지도부를 만나 설명하고, 시민단체를 만들고 지도부 구성을 위해 지인들을 설득했다. 국민의힘 광주시당을 통해 이 이슈를 중앙에 보고했고 심지어 다른 정당인 국민의당 광주시당 관계자를 만나 협력을 제안하기도 했다. 광주에서 국민의힘만으로는 이 이슈를 쟁점화하기는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호남 내부의 성찰과 자기 혁신

하지만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국민의힘 중앙당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개인적으로 만난 중앙당 지도부는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광주뿐만이 아니라 전국의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국민의당 측에서도 이 사안을 다루지 않겠다고 연락해왔다. 코스트코 유치에 관심이 있는 지역 인사들도 만났지만 이들은 말 그대로 특정 유통업체를 유치해 사업화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내가 이 이슈를 바라보는 관점은 이것이 광주 내부에서 좌우 대립전선을 만들어내는 데 최적의 소재라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호남과 좌파의 결탁으로 만들어졌다. 도덕성이나 역량 모두 수준 이하인 좌파가 정치적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호남이라는 숙주(宿主) 덕분이다. 하지만 그 좌파의 정체성(正體性)은 반대한민국이며, 그들의 정치적 목표는 대한민국의 약화(弱化)와 해체라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대한민국을 약화시키고 해체시키는 세력을 평범한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 시민들이 용납할 수 있을까? 호남 혐오와 고립, 소외(疏外)를 극복하는 가장 근본적인 처방은 바로 호남이 좌파와 절연하는 것 아닐까? 현재의 호남을 옹호하고 좋아하는 자들은 대한민국을 가장 저주하고 증오하는 자들이라는 것, 이것은 호남의 비극이 아닐까?

내 어머니는 ‘예쁨도 미움도 자기한테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좌파 시절에 배웠던 변증법적 유물론도 외부 환경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적 모순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영남패권이 호남 혐오와 고립 소외를 부추긴다고 해도 그것을 극복하는 힘은 호남 내부의 자기 성찰과 혁신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

이것이 내가 오래 고민해왔던 호남의 고립, 호남 소외, 호남 혐오의 근본 원인이라는 판단이 섰다. 과거 우파가 호남의 고립과 소외를 무기 삼아 선거 승리와 정권 창출을 이뤄냈고, 지금도 그 영향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호남과 좌파를 분리시켜야 한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대중적인 차원의 이념투쟁, 사상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것은 호남 문제에 대한 내 나름의 고찰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복합쇼핑몰 이슈의 含意

호남에서도 민주당과 좌파에 불만을 갖는 세력이 40%는 된다. 문제는 이들이 결정적인 순간, 즉 투표장에 가게 되면 결국 민주당을 선택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호남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건국(建國)과 산업화(産業化), 이승만(李承晩)과 박정희(朴正熙)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대한민국을 부정한다는 얘기이다. 호남에서 특히 주사파(主思派) 세력이 강고하게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호남의 문제는 지역감정의 차원에서 벗어나 이념적·사상적 정체성이라는 점에서 주사파에게 동조하는 것이다.

건국과 산업화를 인정하지 못하는 한 호남과 대한민국이 화해할 방법은 없고, 호남 소외와 고립, 혐오 문제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호남의 이런 비(非)민주당-반보수 성향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시도는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보여준 호남 정치의 실패야말로 우파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샘플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호남에서 대중적인 이념투쟁 또는 사상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호남 시민들 대다수에게 자리 잡고 있는 반대한민국·친북종중(親北從中) 정서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것은 필연적인 요구이다. 하지만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이념투쟁을 지식인들처럼 이론적인 내용으로 구성할 수는 없다.

대중적인 이념투쟁은 직관적이어야 한다. 복잡한 이론적 설명 없이도 대중이 한눈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좌파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이고, 우파가 주장하는 내용은 무엇이며 그 차이는 무엇인지 그리고 누구의 주장이 자기들에게 유리한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복합쇼핑몰은 이런 요구에 최적화된 조건을 갖춘 이슈였다. 우선 광주시민들의 실제 생활의 요구와 밀접하게 연결된 이슈이며, 특히 여성 그중에서도 젊은 주부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이슈이며, 나아가 광주의 발전과 대한민국과의 일체화를 가로막아온 좌파 시민단체에 대한 분노를 조직할 수 있는 이슈라고 본 것이다.

광주의 반대한민국 좌파 정서는 반기업·반시장·반미반일(反美反日)·친북종중 등의 요소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비교적 약한 고리가 반기업·반시장 정서이다. 광주는 삼성 등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심하지만, 그렇다고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머릿속 반기업 관념과 생활 속 친기업적 요소가 모순인 것이다.

이런 모순 구조를 깨트리는 것이 광주에서 좌파에 대항하는 이념투쟁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것이 바로 복합쇼핑몰 이슈였던 것이다. 복합쇼핑몰 이슈는 이런 배경을 업고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설계한 이슈였다.

복합쇼핑몰 이슈가 주목을 받으면서 단순하게 어떤 쇼핑몰 브랜드를 어느 위치에 유치할 것인지의 문제로 이해하는 경향이 생겼다. 반면 나는 복합쇼핑몰을 광주의 반기업·반시장 정서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설계했다. 최근에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비슷한 개발 프로젝트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경쟁도 벌어지는 느낌이다.

光州는 左派의 가두리 양식장

복합쇼핑몰 이슈를 제안하고 단체를 만들고 언론에 기고도 하면서 단체의 대표를 누가 맡을까의 문제가 제기됐다. 그때 나의 ‘5·18 제사 도시’ 발언과 광주에서 배척의 대상인 국민의힘 위원장이라는 점을 들어서 나는 대표를 맡으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내가 구상하고 제안하고 조직까지 만들었지만 정작 나는 이 이슈의 성공을 위해 뒤로 물러나야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광주를 찾아 이 이슈로 간담회를 가졌을 때도 나는 참석자 명단에서 배제됐다. 기차에서 내리는 이준석 대표에게 “우리 당이 만들지 않은 이슈에도 우리가 끼어들어야 할 텐데, 우리 당이 만든 이슈에조차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면 앞으로 누가 이 험지에서 이슈를 발굴하고 발로 뛰겠느냐? 모두들 다른 사람이 한 작업에 숟가락만 얹으려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지만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나는 스스로 ‘복합쇼핑몰 이슈 제안자’라는 식으로 말해본 적이 없다. 그냥 내가 복합쇼핑몰에 대해 생각하는 것, 해왔던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해왔을 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공약을 누가 제안했느냐를 두고 이런저런 잡음이 들려와서 안타까운 심정이다.

이제 이 이슈는 내 손을 떠났다. 하지만 이 공약의 가치를 발견하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실현하는 데까지 해낸 역할에 대해 나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혹자는 원래부터 광주시민들이 알고 있던 이슈였다며 이 공약을 기획 제안하고 실체화했던 역할을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론이 존재하는 것과 그것을 정치 이슈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광주는 일종의 고립된 섬,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좌파의 가두리 양식장이다.

광주에서 널리 알려진 이슈라고 해도 전국적으로는 아무 파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복합쇼핑몰도 그런 경우다. 광주의 언론들도 복합쇼핑몰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이것을 정치 어젠다로 만들지는 못했다. 그걸 정치 어젠다로 만들어낸 것은 누가 뭐래도 나의 양보할 수 없는 자부심이다.

변형된 호남 혐오

대한민국 우파는 그동안 계속해서 호남 문제 해결에 실패해왔다. 그 이유는 호남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떨 때는 철저한 고립과 소외, 무시로 일관하다가 그게 먹혀들지 않고 정권까지 뺏기게 되면 호남에 무릎을 꿇거나 다 양보하는 식으로 180도 전환하곤 한다.

나는 두 가지 다 옳은 접근이 아니라고 본다. 호남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혐오가 아닌 건강한 비판이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나 이준석 대표 등이 호남에 무릎을 꿇고 달래기에 나서는 것은 솔직하게 말해 변형된 호남 혐오일 뿐이다. 호남을 대한민국의 건강한 일원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애정도 의지도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감히 자부하지만, 나는 복합쇼핑몰 이슈가 최초로 호남을 변화시킨 사례라고 본다. 아직 변화는 미미해 보이지만 그 변화는 불가역적(不可逆的)이다. 남은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호남은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것은 ‘광주는 5·18 제사의 도시’라는 무모한 도발에서 출발해 복합쇼핑몰 이슈로 일단락됐다. 물론 아직 완성은 아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완성을 바라보면서 나는 지워질 수 없는 희망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