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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외교전쟁 1년, 다시 생각하는 韓日관계

反日의 정치학

反日캠페인으로 지지율 반등해도 ‘반짝 特需’일 뿐

글 : 김형준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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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
⊙ 노무현, “日이 잘못된 역사 미화하는 한, 韓日 우호관계 바로 설 수 없다”
⊙ 이해찬, MB가 독도 방문하자 “깜짝쇼이자 정말 나쁜 통치행위”라고 비난
⊙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총선 전 “韓日 갈등은 총선 호재” 주장

金亨俊
1957년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졸업, 미국 아이오와대학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3·1절 경축사에서 “빨갱이와 색깔론은 우리가 청산해야 할 일제 잔재”라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최근 한일(韓日)관계는 1965년 수교(修交) 이래 최악에 이르고 있다.
 
  한일관계는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상황과 정권의 성격에 따라 크게 요동쳤다. 김영삼(YS) 정부 시절부터 과거사 문제가 한국과 일본 양국의 본격적인 외교 쟁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YS 정부는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로 대표되는 ‘역사바로세우기’를 추진하면서 대일(對日) 외교에서도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1993년 3월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일본에 요구하지 않고 한국 정부가 직접 하겠다는 이른바 ‘도덕적 우위에 입각한 자구(自求) 조치’를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담화’를 발표했다. 1995년 8월 15일 전후 50년을 맞아 사회당 소속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하는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일본의 가장 적극적인 식민지배 사죄로 평가받았다.
 
  이런 흐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妄言)이 되풀이되면서 역풍(逆風)이 일어났다. 에토 다카미(江藤隆美) 총무청 장관의 1995년 11월 “한일합방으로 일본이 좋은 일도 했다”는 발언에 대해 YS는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며 강경하게 응수했다.
 
  문민정부 후반기에도 대일관계는 악화됐다. 1996년 시작된 한일어업협정 개정 협상은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경계 획정 문제와 독도 영유권 문제가 맞물리면서 양국 간의 공방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급기야 1998년 1월 한일 어업협정 파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YS 정부의 대일 외교는 적지 않은 성과를 냈지만, 감정적인 대응으로 관계 경색을 불러왔다는 비판도 받았다. 일각에선 YS 임기 말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 일본이 한국을 돕지 않은 건 YS의 ‘버르장머리’ 발언 탓이라고 보기도 했다.
 
 
  DJ의 實利主義 외교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10월 8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만나 건설적인 양국 관계 구축에 합의했다. 사진=조선DB
  이와 대조적으로 김대중(DJ) 정부는 출범부터 한일관계의 전환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外換)위기 탈출을 위해서 경제대국 일본과의 협력 강화가 절실했기 때문에 철저하게 ‘실리주의(實利主義)’에 입각해 한일관계를 풀었다. 1998년 10월 8일 일본을 방문한 DJ와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小淵三) 총리는 한일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과거사 인식을 포함한 11개 항의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여기서 일본은 1995년에 발표된 무라야마 전 총리의 담화를 문서화했다.
 
  당시 DJ는 일본 참의원(상원) 연설에서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면서 “일본에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고,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두 나라가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DJ 정부는 화해 협력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국내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일본 문화를 개방했다. 이런 결단이 현재 한류(韓流)의 출발점이 되었다.
 
 
  노무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계기로 강경외교 전환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기에는 DJ 정부와 같이 실리적인 대일관계를 설정했다.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에 새로운 한일관계를 설계하는 ‘신(新) 대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6월 6일부터 9일까지 일본을 국빈 방문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과거사 문제는 대통령 선언에 의해 종결 지을 문제가 아니라 양국 지도자와 국민이 미래를 바라보는 원칙에서 끊임없이 상호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과거사보다 실리 선택”이라며 ‘실리외교’를 강조했다.
 
  그러나 2004년 1월 1일에 고이즈미 총리가 일제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전격 참배하면서 한일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일본 주요 정치인들의 역사 인식 문제점을 비판했고, 고이즈미 전 총리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 국내 사정”이라고 일축하면서 갈등이 심화됐다.
 

 
  노무현의 ‘新 대일 독트린’
 
  급기야 2005년 2월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독도)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키면서 한일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노 대통령은 이런 일본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질타하는 차원에서 2005년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의 진실을 규명,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2006년 4월 25일에 발표한 ‘특별담화문’으로 한일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노 대통령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천명하고 “어떤 비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다” “일본이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고 그에 근거한 권리를 주장하는 한, 한일 간의 우호관계는 결코 바로 설 수가 없다” 등 단호한 말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을 질타했다. “독도 문제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와 더불어 한일 양국의 과거사 청산과 역사인식, 자주독립의 역사와 주권 수호의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루어나가겠다”고 했다.
 
  노 대통령의 특별 담화문은 집권 초기의 ‘조용한 실용 외교’ 폐기를 천명한 ‘신 대일 독트린’으로 평가되었다. 일본의 ‘도발’에 대한 구체적 대응 의지는 물론 ‘말이 아닌 행동’ 지침을 담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부도덕성을 부각, 독도 문제를 대일본 외교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되었다.
 
  통상 일본 정부와 싸우면 한국 대통령의 지지율은 반짝 상승한다. 당시 20%대의 노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후반으로 상승한 것이 이를 입증해준다. 그러나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이런 초강경 기조는 그동안 일본 정부를 향해 견제·비판의 역할을 해왔던 일본 내 양심적 시민 세력의 입지는 극도로 축소되는 반면, 극우(極右) 세력의 위상은 강화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박근혜, 강경에서 위안부 합의로
 
  이명박(MB) 정부는 집권 초기 노무현 정부 당시 위축돼온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는 수순을 밟았다. 취임 첫날부터 MB는 당시 일본 총리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임기 후반에 한일관계는 냉랭해졌다. 가장 상징적 사건은 현직 대통령 최초로 독도를 방문(2012년 8월 10일)한 것이다. 당시 일본이 《2012 방위백서》에 독도 관할부대를 명기하면서 국민 감정이 들끓고 있었다. 이후 8월 14일에는 “(일왕이 방한하려면)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해 일본 열도가 들썩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한국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을 막는 등 ‘혐한(嫌韓)’ 캠페인이 이어졌다. 일본 정부도 거세게 항의하면서 한일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당시 야당이던 이해찬 민주통합당 의원은 “깜짝쇼이자 정말 나쁜 통치행위”라고 비난했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 독도 방문 직후 MB 지지율은 이전(8월 2주·20%)보다 6%포인트가 오른 26%를 기록했고, 이후로도 2주간 지지율이 지속해서 상승했다. 그러나 이런 한일 갈등에 따른 지지율 효과는 한 달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취임 초 대일 강경 기조를 한동안 유지했다. 취임 첫해이던 2013년 3・1절 기념사에선 “가해자·피해자란 입장은 천 년이 흘러도 변할 수 없다”고 했다. 또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3년 연속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이런 기조는,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인 2015년 11월 2일 첫 한일 정상회담을 열고 그해 말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우호관계로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했다.
 
  핵심 합의 내용은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일본 총리의 사죄와 반성, 일본 정부의 예산 출연(10억 엔)을 통한 화해치유재단 설립, 최종적이고 불가역적(不可逆的)으로 해결’ 등이었다. 일본 정부가 그동안 완강하게 거부해왔던 법적 책임을 사실상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위안부 협상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리더십과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 “이번 합의로 두 나라의 관계가 더욱 개선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다만 피해자 동의 없이 양국 정부끼리 서둘러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 것이 최대 패착이었다. 국제사회 상호 비난 자제, ‘평화의 소녀상’ 이전 약속 등도 여론을 악화시켰다.
 
 
  문재인, 위안부 합의 파기
 
박근혜 정부 시절 韓日 위안부 합의를 파기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 29일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씨의 빈소를 직접 찾아 조문했다. 사진=뉴시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대일 초(超)강경 기조를 유지하면서 한일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8년 10월 30일 여운택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주)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신일철주금의 재상고를 기각해 ‘여씨 등 원고들에게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전원합의체 다수 의견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어서 한일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수 의견은 “따라서 한일협정으로 피해자들의 개인적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로 한일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정부는 2018년 11월 21일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2016년 7월에 출범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를 두고 “피해자의 동의 없는 정부 간의 합의는 2차 가해”라는 기조로 비난하며 사실상 파기했다. 당시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 아래 다양한 의견수렴 결과 등을 바탕으로 재단 해산을 추진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존엄 회복을 위한 정책 추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순신’ ‘죽창가’ 소환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적 차원에서 2019년 7월 1일에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 3가지(고순도 불화수소,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해 한국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2019년 8월에는 한국에 대해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 목록)에서 제외하는 조치까지 취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도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개정해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맞대응에 나섰다. 8월 22일에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국 수출 규제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 내 전방위 일본산 불매 운동도 시작되면서 양국 분쟁 상황은 장기화되고 있다.
 
  평행선을 그리던 양국 관계는 지난해 청와대의 11월 22일 지소미아 종료 유예 발표 이후 전환점을 맞았다. 한일은 양국 간 수출통제제도를 논의하기 위한 고위급(국장급) 정책대화를 3년 만에 재개하기로 했고, 같은 해 12월 16일 일본 도쿄에서 만났지만 성과는 없었다.
 
  지난해 한일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던 때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7월 12일 전남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남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아왔다”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이 서린 곳”이라고 말했다. “3·1 독립운동의 주역”이라고도 했다. 이어 “전남 주민들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고 강조했다.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7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노래인 ‘죽창가’를 소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이순신 12척 배’, 조국 수석의 ‘죽창가 소개’ 등은 반일 프레임을 강화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보수와 진보 의견 엇갈려
 
  그런데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반일 프레임을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반일 프레임은 국정 운용 지지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 7월 2주 조사에서 ‘긍정 평가’ 대 ‘부정 평가’가 각각 45%로 같았지만 그 이후 긍정 평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그런 추세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한국갤럽의 2019년 8월 4주(27~ 29일) 조사에 따르면, ‘부정’(49%)이 ‘긍정’(45%)보다 앞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8월 5주 조사에서는 국민의 55%는 한일 간 분쟁에 대해 우리 정부가 ‘잘 대응하고 있다’고 응답한 반면, 34%는 ‘잘못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잘 대응하고 있다’는 의견은 30·40대(60% 중후반), 진보층(82%),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자(89%) 등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반면, ‘잘못 대응하고 있다’는 보수층(55%), 대통령 직무 부정 평가자(63%)에서 두드러졌다.
 
  8월 22일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서도 53%가 ‘잘한 일’, 28%가 ‘잘못한 일’로 평가했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응답자 특성별 의견은 정부의 한일 분쟁 대응 평가와 대체로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진보층은 80%가 ‘잘한 일’이라고 한 반면, 보수층은 그 비율이 30%에 불과했다.
 
  이런 조사 결과들이 함의하는 것은 한일 분쟁이 진보와 보수 간 진영의 논리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8월 14일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했다. 보수 일각에서는 장관 임명을 위해 조국 전 수석비서관이 반일 프레임의 최전선에 나선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을 보냈다.
 
 
  對日 호감도 악화에도 협력 필요성 인정
 
  한일관계 악화로 우리 국민의 대일 인식과 일본 총리에 대한 호감도는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한일관계에 대한 우려가 심화된 2019년 8월(19~21일) 한국인의 대일(對日) 인식 변화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0=전혀 호감이 없다, 10=매우 호감이 있다)는 주변국 중 가장 낮았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2017년 이래 최저치(2.30점)를 기록했고, 아베 총리에 대한 호감도 역시 1.10점으로 매우 낮았다. 특히 한일 갈등이 본격화된 7~8월 일본과 아베 총리에 대한 호감도는 각각 3.06 → 2.30점, 1.56 → 1.10점으로 크게 하락했다.
 
  하지만 다수의 한국인은 한일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2019년 8월, 지소미아 등의 한일 안보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52.1%로,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28.5%)보다 더 높았다. 2013년 이후 세 차례 조사(2013년 50.7%, 2016년 52.3%, 2018년 52.1%)에서 모두, 절반 이상이 한일 안보협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과거사와 별개로 한일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59.3%가 동의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한일관계 정기 여론조사를 통해 정부의 한일관계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제시했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 국내 일본 제품 불매운동 확산, 지소미아 논란 등으로 한일 갈등이 증폭되고 있지만 ‘강 대 강(强對强)’ 대결이 아니라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한일 양국의 대화를 통한 정상 간 상호신뢰 회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기획’
 
  ‘반일 프레임’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지금 한국에선 정부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 ‘친일파’란 꼬리표가 붙는다. 나아가 ‘토착왜구’라는 신조어까지 동원된다. 문재인 정부는 ‘친일=보수=토착왜구, 반일=진보=개혁세력’이라는 정치적 프레임 속에서 국민들의 반일정서를 최대한 자극해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보수우파 세력을 ‘적폐’라는 이름으로 척결하려는 의도를 보여왔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빨갱이와 색깔론은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 잔재”라며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진보 성향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런 반일 선동을 ‘관제(官制) 민족주의’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 “친일 잔재와 보수세력을 은연중에 결부시키며, 이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역사를 굉장히 정치적인 좁은 각도로 해석하는 것으로 사려 깊지 못한 표현이자 발상”이라면서 “정부가 일제 청산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거나 행동한다면 그건 위선(僞善)이며, 가능하지도 않은 걸 옳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건 정치적 목적을 위한 기획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2019년 7월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일본의 수출 규제로 불거진 한일 갈등이 2020년 총선에 호재(好材)’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이 크게 요동쳤다. 보고서는 야당인 자유한국당에 대한 ‘친일 비판’ 효과도 분석했다. “지지층 결집 효과는 있지만 확대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친일’ 비판 공감도는 공감 49.9%, 비공감 43.9%이며, 상대적으로 공감이 적은 것은 정책적 문제가 아니라 ‘정쟁’ 프레임에 대한 반감으로 판단된다”고 적시했다.
 
  이에 대해 야권에서는 “우리 경제가 입을 타격과 기업, 하청업체, 근로자의 삶에 닥칠 위기 앞에서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걱정을 하는 시국”이라며 “그런데 정작 집권여당은 총선에 유불리를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고 분개했다.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이러한 반일 적개심을 부채질하는 것이 민족주의적 성향을 자극해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강제징용 문제 등 아직도 ‘아물지 않은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국론을 결집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역대 정부의 사례에서 보듯이 한일 갈등기의 대통령 지지율 반등 효과는 ‘반짝 특수(特需)’에 그치곤 했다.
 
 
  일본도 ‘전략적 오류’ 범해
 
  외교를 국내 정치 다루듯이 하면 안 된다. 이제는 반일의 덫에서 벗어나 절제된 대응으로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일본 아베 내각은 한국의 대법원 판결로 압류된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매각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일본 정부는 즉각 보복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조치가 지지율이 20~30%대까지 떨어진 아베 총리를 다시 회생시키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 정부도 한일관계를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려는 나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대니얼 슈나이더 교수의 경고를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일본의 수출 규제를 일본 정부의 ‘전략적 오류’ 또는 ‘실수’라고 평가했다. 특히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강제노역 배상 판결 등 역사 문제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은 명백하며, 안보를 핑계로 한 무역 규제는 국제사회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경고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도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처럼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한일관계를 미래 지향적 관계로 반전(反轉)시키기 위해선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모두 혜안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29일 트위터에 올린 ‘오사카를 떠나며’라는 글에서 “콜 총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0개월 동안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8번, 미테랑 대통령을 10번,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4번 만나 신뢰를 쌓았다”며 “한국도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순신 12척 배”를 외치는 것보다 지금은 실리외교를 행동으로 보일 때다. 일본 정부도 무라야마 전 총리가 보여준 사죄와 반성의 리더십을 펼쳐야 할 때다. 다가오는 광복절에 새로운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의 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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