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특집 / 新민족주의 시대가 오는가

이슬람 세계의 민족주의: 터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과 민족주의의 줄다리기

글 :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터키의 에르도안, 아타튀르크의 世俗主義 탈피하면서 오스만튀르크 강조
⊙ 이란, 호메이니 집권 후 민족주의 배격… 최근에는 神政정치체제에 대한 반발로 국민들 사이에서 민족주의 대두
⊙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 와하비 이슬람으로부터의 탈피 추구하면서 사우디 민족주의 구축 나서
⊙ 터키, 이란, 사우디 모두 30대 이하 인구 비율이 50%, 민주주의 평가에서 하위권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학 이슬람학 석사 및 박사(수료), 이란 테헤란대학 이슬람학 박사 / 現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전문위원, 종교평화국제사업단 영문 계간지 《Religion & Peace》 편집장 / 저서 《법으로 보는 이슬람과 중동》 《IS를 말한다》 등 공저 다수
2016년 7월 불발 쿠데타는 에르도만 정권의 독재화와 함께 터키민족주의가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뉴시스/AP
  지난해 10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오스트리아 소설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로버트 메나세(Robert Menasse)는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유럽이 죽어간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으면서 유럽은 민족주의가 가장 큰 위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민족주의가 없는 새로운 유럽질서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에 미국도 참여하였는데, 현재 상황은 전후(戰後) 유럽이 꿈꾼 미래가 아니라고 탄식한다. 민족주의가 다시 살아나면 새로운 세계는 깨지고 유럽은 미국과 다른 열강(列强)의 식탁에 올린 빵부스러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對外)정책,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오늘날 세계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족주의적 기운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메나세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민족주의 바람은 이른바 서구(西歐) 선진국에만 해당하는 현상은 아니다. 중동(中東)의 세 강국 터키·이란·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민족주의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그런데 서구와 달리 이들 국가는 이슬람이라는 민족주의가 쉽게 넘기 어려운 장벽이 있고, 모국어나 종파(宗派)가 다른 사람들을 국민 구성원으로 포함하고 있다.
 
 
  中東 민족주의의 태동
 
  역사적으로 보면 중동에서 민족주의 바람은 강력한 유럽이 다가오면서 매섭게 불기 시작하였다. 유럽문화에 무슬림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노출되었고 거부감이 없었던 소수(少數)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민족주의를 활용하였다. 이러한 계획을 가장 먼저 훌륭하게 성공시킨 이들은 레바논산에 살던 마론파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1860년대에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얻어 독립적인 생존공간을 구축하였고, 결국 프랑스의 도움으로 레바논을 이끌게 되었다. 레바논이 그들만의 나라가 아니라 순니, 시아 무슬림과 공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시작한 나라다 보니, 지금은 어떻게 손을 대기도 어렵게 절망적인 나라가 되었지만 말이다.
 
  세계 최초의 그리스도교 왕국을 세웠다는 자부심 가득한 아르메니아인들 역시 19세기 말에 민족국가를 꿈꾸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인들이 오스만제국과 함께 주변 쿠르드인과 튀르크인들을 따돌리고 아르메니아 국가를 세우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을 위험한 존재로 본 오스만제국은 20세기 초 아르메니아인들을 거주지에서 조직적으로 내쫓고 죽였다. 오늘날까지 터키가 공식적으로 극구 부인하는 ‘아르메니아인 학살’이다. 피해를 당한 아르메니아인은 무려 약 150만명으로 추산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 승전국은 오스만제국을 분할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같은 국가로 묶지 않고 자국(自國)의 이익에 맞게 국경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스스로 독립할 능력이 될 때까지 뒤를 봐주겠다면서 보호령(保護領)으로 삼았다. 중동지역에서 유럽의 지배를 직접 받지 않은 나라는 오늘날 기준으로 터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이렇게 딱 4개국이다.
 
  터키는 오스만제국이 지배령을 다 잃고 간신히 유지하던 제국의 심장부였다. 세브르 조약에서 갈기갈기 찢어질 뻔했던 것을 터키공화국 국부(國父)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가 전력(全力)을 다해 싸워 지켜 오늘날에 이른다.
 
  이란은 외세의 직접 지배는 받지 않았지만, 서로 견제하던 러시아와 영국이 남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32년에 성립한 왕국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영토 다툼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은 험악한 산악지역이었기에 외세에 쉽게 정복되지 않았고, 제대로 된 국가도 이루지 못하였다.
 
 
  아랍 민족주의 실험
 
  영국과 프랑스의 보호령에서 벗어나 독립한 아랍 국가들은 파라오 이래 지속되던 왕정(王政)을 1952년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이집트 공화정을 세운 나세르가 주창한 아랍민족주의 물결에 급격히 휩쓸렸다. 아랍어를 쓰지만 유럽이 여러 나라로 갈라놓은 아랍 국가를 하나로 만들자는 매력적인 구호 아래 1958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아랍연합공화국을 세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시리아의 기대와 달리 이집트가 권력을 독점함에 따라 결국 1961년 시리아가 탈퇴하여 이 국가 실험은 실패하였다. 또 1967년 이른바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아랍 국가들이 무참히 패배하면서 아랍민족주의의 기세는 완전히 꺾이기 시작하였다.
 
  아랍민족주의 실험 이래 아랍 각 국가는 자신의 영토와 관련된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민족국가와 민족주의를 구축하고자 노력하였다. 실례로 이라크는 고대(古代)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집트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거론하면서 애국심을 고양하고 정체성(正體性)을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비단 아랍 국가만 그런 것은 아니다. 터키는 터키인의 조상을 백인으로 보고 터키인 정체성을 만들어 터키 민족국가를 지향하였고, 이란은 찬란한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내세우며 이란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부각하였다.
 
  그런데 세계의 다른 지역과 달리 특별히 중동지역에서는 민족주의 국가가 되려면 높고도 강력한 장벽을 반드시 넘어야만 한다. 바로 이슬람이다. 자칫 잘못하면 보편성을 무기로 하는 이슬람이 민족이라는 특수한 틀에 자신을 가두려는 국가를 공격하여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정권에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모국어와 종교가 다른 소수의 사람들이 국가의 구성원으로 있기에 이들을 포용하지 못하면 이들 소수가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는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가가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
 
 
  ‘인류애 동상’ 파괴를 지시한 에르도안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자고 주장한다. 사진=정의개발당 홈페이지
  이 양날의 칼을 모두 지닌 나라가 터키다. 터키공화국을 세운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는 이슬람을 철저히 개인적인 신앙 형태로 가두어 공적(公的)인 영역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동부지역의 쿠르드인들을 터키인으로 간주하며 쿠르드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였다. 쿠르드인들은 산악지대에 주로 거주한다 해서 ‘산에 사는 터키인’으로 부르고 쿠르드어 교육도 금지하였다.
 
  그렇다고 쿠르드인들이 새로운 터키에 저항한 것은 아니다.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가 터키공화국을 세우는 데 큰 영향을 끼친 ‘터키 민족주의의 아버지’ 괴칼프(1876~1924)가 쿠르드 출신인 데서 보듯, 쿠르드인들 역시 적극적으로 터키 건설에 나섰기 때문이다.
 
  세속주의(世俗主義) 공화국을 지향한 케말주의 노선을 따라 성실히 걸어오던 터키는 에르도안 집권 이후 급격히 전통적인 서구 지향 정책에서 탈피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2016년 불발 쿠데타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의 노선이 민족주의로 급격히 선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에르도안 정부의 신(新)민족주의 성향은 외부 세력이 터키의 국익(國益)을 침해하고 있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증폭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內戰)에서 터키가 테러리스트로 지정한 민중수호대(YPG)를 미국이 계속 후원하면서 함께 작전을 펴는 것을 몹시 불편하게 여겼고, 2016년 7월 15일 쿠데타도 외부 세력이 현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계략으로 보았다. 즉 에르도안 정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외국이 터키를 위협한다는 생각에 외부의 적(敵)을 향해 민족주의라는 대항마를 끄집어낸 것이다.
 
  2018년 6월 24일 대선(大選)과 총선(總選)을 함께 치른 선거는 터키가 새로운 민족주의 흐름에 올라탔음을 보여주었다. 2016년 불발 쿠데타 당일에 거리로 나와 쿠데타군을 막았던 시민들을 지지자로 둔 집권여당 정의개발당(AKP)은 민족주의운동당(MHP)과 국민동맹을 구성하여 총선에서 600석 중 344석을 가져갔다. 대선에서 에르도안은 반수 이상 득표로 당선되었다.
 
  정의개발당이 민족주의운동당과 연합하였기 때문에 에르도안이 민족주의 노선을 새롭게 취한 것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에르도안은 2011년 6월 선거에서 터키와 아르메니아 국경에 자리한 양국의 화해를 상징하는 ‘인류애 동상’을 부수라고 하면서 이미 민족주의 카드를 쓴 바 있다.
 
 
  전제군주 ‘붉은 술탄’ 따라 배우기
 
  에르도안의 민족주의는 오스만제국과 절연한 세속적 터키공화국 민족주의가 아니다. 현대 터키 이전 오스만제국, 셀주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위대한 튀르크 무슬림 민족주의다.
 
  그는 2018년 1월에 터키 젊은이들에게 오스만제국의 34번째 술탄 압둘 하미드 2세(1842~1918)의 삶을 공부하여 오늘날 터키인이 과거에 어떠했는지 배우라고 요청하였다. 압둘 하미드 2세는 쇠락기로 접어든 오스만제국을 강력하게 이끌었다는 평을 받지만, 약 30만명에 달하는 아르메니아인과 시리아 그리스도인을 무참히 학살하여 ‘붉은 술탄’으로 악명(惡名) 높았다. 오스만제국 최초의 헌법을 1876년 제정하고 국회도 열었으나 2년 후 헌법을 정지하고, 국회도 해산하였다. 제국의 안정을 명목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진압하였다.
 
  ‘붉은 술탄’의 강압정치는 오늘날 에르도안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에르도안의 터키가 언론인을 감옥에 가장 많이 보낸 나라 중 하나이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가혹하게 체포・투옥하고 있는 현실은 마치 ‘붉은 술탄’ 시대를 재현하는 것 같다. 에르도안은 ‘붉은 술탄’ 시대에 오스만제국이 외부의 도전으로 위험에 처했던 것처럼 지금 터키에 외세가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으니 술탄처럼 강하게 헤쳐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2018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84%가 터키에 지나치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제경제와 정치 엘리트들에 저항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이러한 국민적 감정을 업고, 또는 조장하면서 에르도안 정권은 ‘붉은 술탄’ 시대와 같이 강력하게 터키의 주권을 지키는 민족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호메이니, “이슬람은 민족주의를 알지 못한다”
 
  세속주의를 채택한 터키와 달리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세속왕정을 이슬람공화정으로 바꾸었다. 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나기 전 팔레비 왕조의 레자 샤는 고대 이란의 영화(榮華)를 강조하여 1971년 10월 12~14일 고레스(키루스) 대왕의 페르시아제국 건립 2500주년 기념식을 약 2000만 달러를 들여 페르세폴리스에서 성대하게 열었다. 전 세계 지도자들을 초청한 이 행사에 우리나라에서는 김종필(金鍾泌) 당시 국무총리가 참석하였다. 보여주기 위한 과소비 행사를 정치적 반대자들이 곱게 보아줄 리 만무하였다.
 
  1979년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은 과거 왕정을 미화(美化)하는 민족주의를 철저하게 억눌렀다. “이슬람은 민족주의를 알지 못한다”는 호메이니의 말마따나 이란의 새로운 이슬람 정부는 페르시아 왕정을 금기시하였다. 쿠르드족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슬람 체제 아래에서는 쿠르드족이라는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무슬림일 뿐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이란의 이슬람 체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과거 페르시아 왕정의 영광을 기린다. 이들은 페르시아제국을 연 고레스 대왕을 존경하여 기원전 539년 그가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날을 이란력으로 여덟 번째 달인 아반(Aban)월 7일로 삼아 무덤이 있는 파사르가대(Pasargadae)에 모여 ‘고레스 대왕의 날’로 기념한다. 2016년에는 이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이후 이란 정부는 기념일 전부터 파사르가대를 봉쇄하여 행사를 막고 있다. 이처럼 페르시아제국이나 왕정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것은 현 이란의 이슬람 체제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페르시아 민족주의를 반체제 시위대가 내세우기 때문이다. 또 이들의 배후에 현 이란 체제를 전복하려는 외국 세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란은 단일 민족국가가 아니다. 이란의 국어인 페르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은 전 국민 중 60%다. 아제르바이잔, 쿠르드, 루르, 튀르크, 발루치, 아랍 등 다양한 언어를 쓰는 민족들이 함께 모여 이란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란의 비(非)페르시아어 계통 사람들에게 민족주의를 불어넣어 이란을 분열시키려는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특히 약 15%를 차지하는 아제르바이잔어 사용자들을 선동하면 이란에서 분리되어 이웃한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제르바이잔이라는 독립국가에 참여하지 않고 이란에 아제르바이잔 주민으로 남은 사람들은 이란이라는 국가의 창업주주(株主)로 소속감이 강하다.
 
 
  이란 민족주의의 부활
 
미국에 의해 암살된 솔레이마니의 장례식은 이란 민족주의의 발현이기도 했다. 사진=뉴시스/AP
  그런데 최근 정부의 실정(失政)과 부패를 비판하면서 이란의 젊은이들이 이슬람보다는 이란의 정체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란 민족주의가 부상(浮上)하고 있다. 이란을 사랑하여 이란 대표팀이 경기를 하면 얼굴에 이란 국기를 그리고 국기를 열심히 흔들며 이란을 외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굳이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영화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슬람보다 이란을 우선하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민항기 오격(誤擊)으로 급격히 분위기가 가라앉긴 했지만, 솔레이마니 폭살(爆殺) 직후 이란 국민이 보여준 애도의 물결은 굳이 명명하자면 이란 민족주의, 애국심의 표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최근 솔레이마니와 시민들이 함께 있는 벽화에는 여성이 히잡을 쓴 것 외에는 종교적 색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 2월 총선 거부 움직임이 보이자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 자신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국가의 명예와 안전을 위해 투표할 것을 독려하는 것 또한 미묘한 흐름의 변화를 보여준다. 체제나 종교보다 국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페르시아, 이란, 이슬람이라는 용어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웃 국가들이 이란을 바라보는 눈은 사뭇 다르다. 왕정시대와 다른 체제를 지녔지만 이란이 왕정시대나 지금이나 이슬람 이전 사산제국을 거명하면서 아랍지역으로 영토를 팽창하려고 하는 극렬 민족주의 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이란이 영향력을 넓히려고 하는 과거 페르시아의 땅에 페르시아나 이란의 정체성을 가진 주민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란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계속 이웃 아랍 국가들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이라크로 팽창하는 이란을 두고 16세기 사파비(Safavi)제국 시대의 영화를 재현하려는 시도로 규정한다.
 
 
  와하비 이슬람에서 벗어나려는 사우디
 
  이란의 위협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다. 특히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종교적으로 더욱 보수적(保守的)인 길을 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말로만 이슬람을 따를 뿐 제대로 된 신앙인이 아니라고 직접적으로 비난을 가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말처럼 이란의 공세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40년간을 끌려다니며 수세적(守勢的)인 입장을 취하고 보다 보수화된 길을 선택하였다. 그 결과 사우디아라비아는 건국 시 종교적 바탕이 된 와하비 이슬람 사상이 국민을 통제하고 왕정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와하비 이슬람이 지나치게 보수적이기에 국가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와하비 사상으로 국민을 통제하고 풍부한 석유 판매대금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 복지를 책임지면서 안정된 왕정을 이끌어왔지만, 갈수록 더 보수화되어가는 종교지도자들 때문에 국가의 발전을 이룰 사회변화를 이끌어내기가 어려워졌고, 유가(油價)가 하락하면서 국민 복지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종교 외에 세속적인 가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제1차 걸프전 때부터다. 미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영토로 들어오면서 강경보수 이슬람 지도자들의 저항에 직면하면서 파드(1982~2005) 국왕은 왕가가 시작한 지역인 네지드 지방의 문화유산을 부각하기 시작하였다. 압둘라(2005~2015) 국왕은 리야드 인근 자나드리아에서 2주간 열리는 문화행사인 알자나드리아(Al Janadriyah) 축제를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젊은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젊은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더 나아가 역동적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만들 새로운 기제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부족적 전통과 와하비 이슬람이 손을 잡은 사우디아라비아 사회를 초월하기 위해 그는 새로운 국가발전 계획인 ‘사우디비전 2030’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밑그림을 종교를 넘어 민족주의적인 색채로 고안하려 한다. 그는 이슬람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슬람 담론을 와하비 이슬람 지도자들이 독점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온건한 이슬람을 표방하면서 사회변화에 거추장스러운 강경보수 이슬람 해석을 막아선다.
 
  이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조치다. 엄격한 보수 이슬람의 이름으로 금지해온 여성 운전, 공연장 남녀 동석, 여성 복장 완화, 여성의 축구경기장 출입 등 기존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이슬람 지도자들의 해석에 이끌리지 않고, 오히려 온건 이슬람이라는 이름으로 강경보수주의자들을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 민족주의 정립하려는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개혁과 민족주의를 선도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사진=뉴시스/AP
  여기에 더해 빈 살만 왕세자는 과감하게 사우디 민족주의를 끌어들였다. 2018년 9월 국경일 행사는 전례 없이 킹파드 경기장에서 남녀가 섞인 가운데 국가를 강조하며 애국심을 고취하는 자리로 열렸다. 이렇게 국가라는 틀을 세우면 사우디아라비아라는 공간 안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표(標) 온건 이슬람이 자리 잡아 이전과 달리 비사우디아라비아인 과격 이슬람 지도자나 사상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이집트 출신이면서 카타르에 머물며 전 세계 무슬림형제단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유수프 알카라다위(94) 같은 인물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은 무슬림형제단을 극단주의 이슬람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 내에서 무슬림형제단은 당연히 불법일 뿐만 아니라 이에 조금이라도 동조하는 사람은 반역죄로 체포한다. 카타르와 국교(國交) 단절도 단행하였다. 아울러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 역시 사법 처리를 피할 길이 없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크지 역시 이러한 희생양이다.
 
  이렇게 권력을 장악한 무함마드 빈 살만은 ‘사우디비전 2030’ 계획을 시행하여 새로운 사우디아라비아를 창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좀 더 강력한 민족주의다. 무슬림형제단, 보수 강경이슬람, 이란이라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사우디아라비아를 지키기 위해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요구한다. 이제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의 요람을 넘어 이전의 종교적인 틀을 깨고 좀 더 세속적인 자세로 이슬람 이전 역사까지 포용하는, 보다 좀 더 확장된 역사를 서술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정체성을 국민들에게 심을 것이다. 그리고 외부의 위협요소인 카타르, 이란에 맞서는 외교정책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위험한 민족주의
 
  터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모두 30대 이하 젊은 세대가 국민의 50%를 차지하는 젊은 나라로, 민족주의가 폭발적으로 심화하여 확산될 수 있는 토양이 든든하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가 부족한 나라일수록 민족주의는 마치 어린아이들의 손에 쥔 횃불처럼 위험하다. 전 세계 국가의 자유지수를 해마다 집계하는 프리덤하우스의 2019년 보고서를 보면, 터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모두 ‘자유롭지 못한 국가’로 분류되었다. 100점 만점에 터키는 전년 32점보다 낮은 31점, 이란은 전년과 변함없이 18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년과 같이 7점으로, 소말리아・수단과 함께 가장 자유롭지 못한 나라 7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통치자가 권력을 강화하고자 민족주의를 오용(誤用)하다 오히려 민족주의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010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신협중앙회 여성조선 공동 주최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