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이슈분석

광장 정치, 이대로 좋은가

“지구상에 두 명 남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 직접 민주주의”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경제 위기 이후 全 세계적 현상… 프랑스의 ‘노란 조끼’, 미국의 反월가 시위
⊙ 대의제에 포섭되지 못한 에너지가 광장으로 쏟아져… 소모전이며 지속 가능하지 않아
⊙ 광장의 기저는 ‘분노’… 한국의 광장은 좌파가 선점
⊙ 586의 전유물, 20대는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10월3일, 조국 사퇴를 외치며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
  지난해 대한민국이 둘로 쪼개졌다. 현재도 진행형이다. 한쪽은 ‘조국 퇴진’이라는 피켓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갔고, 다른 쪽은 ‘조국 수호’를 손에 들고 서초동으로 향했다. 지난해 벌어진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작지 않은 충격과 파문을 몰고 왔다. 결과적으로 국민은 분열됐다. 그간 마음속에 잠재해 있던 진영 간의 대립이 수면 위로 확연히 드러난 것일는지 모른다. 분열과 서로를 향한 혐오가 2020년 들어서도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론 전문가들은 “총선 전까지 광장은 극렬하게 대립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대한민국의 광장은 뜨겁다.
 
  광장에서의 극렬한 대립은 지난해 조국 전(前) 법무부 장관과 그의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계기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친문(親文) 네티즌이 주도한 ‘조 장관 지지 및 검찰 개혁 집회’는 지난해 9월 16일에 열렸다. 이에 보수 진영은 개천절인 10월 3일 광화문광장에서 ‘조 전 장관 퇴진 및 구속’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후 양 진영은 경쟁하듯 집회를 이어갔다.
 
 
  광화문 vs 서초동 집회 참석자의 온도 차
 
2019년 8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조국 수호, 사법적폐 청산’ 집회를 여는 모습(사진 왼쪽).
2019년 10월 3일 오후 6시30분경 조국 법무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조국 사퇴’ 구호를 외치는 모습(사진 오른쪽).
  지난해 10월 3일에 광화문 집회에 나간 이정자(60대)씨의 말이다.
 
  “집회라는 곳에 난생처음 나가봤습니다. 예전에도 나라 걱정은 했죠. 그냥 뉴스 보다 ‘나라가 어찌 되려고 그래’ 하면서 혀를 끌끌 차곤 했죠. 이번에는 너무 심하더라고요. 조국이라는 사람이 문제가 너무 많은데 굳이 법무부 장관에 앉히겠다고 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불통(不通)은 나날이 심해져가는 것 같고요. 부녀회에서 친하게 지내는 몇몇이 광화문 집회를 나가자고 하기에 따라 나갔습니다. 젊은 애들이 촛불 들고 나서는데 우리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면서요.”
 
  ― 막상 나가보니 어떻던가요.
 
  “사람에 떠밀려 다니다 집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지하철에서 내리기도 어려웠고 같이 탔던 일행을 잃어버리기도 했죠.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이 연신 고함을 치고 사람들이 ‘옳소!’ 하면서 떠들고 있었고요. 일행을 찾으려고 전화를 했는데 상대방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란했어요. 연단에서 뭐라고 말하는지는 정확히 듣기 어려웠는데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한마음이라는 것은 느껴졌습니다. 다들 비슷한 마음으로 나왔다는 동질감이 느껴지더군요. 대부분의 사람은 화가 나 있었습니다. ‘이게 나라냐, 문재인은 당장 자리에서 내려와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 집회에 나가기를 잘한 것 같은가요.
 
  “한 번쯤은 나가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 묘한 동질감과 자신감을 주더라고요. 집에서 나라 걱정 했던 때보다는 내가 드디어 실천, 행동하는 우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화문에 100만명이, 200만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제가 그중 한 명인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여기저기서 노래 부르는데 은근히 재밌기도 했어요. 월드컵 때 애들이 왜 광화문에서 축구 응원하는지도 좀 알 것 같더라고요. 예전에 (박근혜 탄핵 촉구) 촛불 집회 하면서 자꾸 민심(民心)을 들먹거리던데, 이번에 그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광화문에 모인 인원이 서초동보다 훨씬 많았으니까요.”
 
  지난해 10월 5일에 서초동 집회에 참석한 김도형(40대)씨의 말이다.
 
  “자식 일이 걸려 있는데 그 정도 안 하는 부모가 있을까요? 다들 능력이 되지 않아서 못 하는 거지, 조국 정도 되는 위치에 있고 힘이 있으면 그 정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솔직히 한국당 사람들을 전수조사 하면 더하면 더했지 덜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당을 보면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고, 누가 누구한테 뭐라고 하나 싶어요.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고, 그 사람이 해야 할 중책(重責)을 보자면 이 정도 허물은 덮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자꾸 조국을 끌어내리니까 화가 나서 집회에 나왔습니다.”
 
  ― 조국 전 장관 지지를 강력히 표현하기 위해 집회에 나왔다는 거군요.
 
  “물론 지지하고요,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니까 나왔습니다. 우리는 평화적인 촛불 혁명을 통해서 부정한 정권을 끌어내린 경험이 있는 위대한 국민이잖아요. 그때 우리가 촛불을 들지 않았다면 박근혜 정부가 꿈쩍이나 했겠습니까? 조국 지지 세력이 이만큼이라는 것을 알려야 하고, 그 방법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조국을 끌어내리기 위해 애쓰는 적폐 세력들에 대한 우리 분노의 목소리가 서초동에 울려 퍼졌잖습니까.”
 
  ―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한 모양이네요.
 
  “서초동 집회에 나온 분들 대부분은 과거 촛불 집회에도 나간 분들일 겁니다. 평범하게 직장 다니는 일반 시민이란 말이죠. 국회에서 사리사욕이나 정당 간의 이득을 위해 싸우는 정치인과 비교할 때,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순수한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것이 훨씬 값진 일 아닐까 싶습니다. 그게 바로 진정한 의미의 시민 정신이고, 순수한 여론일 테니까요.”
 
 
  ‘2019년은 거리 시위대의 해’(WP)
 
  ‘조국 사태’라는 같은 사안을 두고 정반대의 견해를 갖고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지만 몇 가지 공통분모가 있다. ‘민심’ ‘분노’ ‘동질감’ ‘참여’ ‘반대편에 과시’이다. 이 단어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거리로 뛰쳐나오게 하는 원동력이다.
 
  단순 통계 지표만 보더라도, 우리의 광장 정치는 그 어느 때보다 심해졌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집계된 집회 및 시위 발생 건수는 7만9000여 건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광장 집회가 많이 증가했던 2017년(4만3000여 건)과 비교해 약 2배가 늘었다. 이른바 ‘조국 사태’ 때에는 경찰 경비 인력마저 더 많이 투입됐다. 경찰의 경비배치 집회 건수는 지난해 10월까지 1만1000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45% 늘었다.
 
  나라별로 사안은 다르지만 성난 군중이 거리로 쏟아져나온 것은 지난해 전(全)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019년을 ‘거리 시위대의 해(the year of the street protest)’라고 진단했다. 보도에 따르면, 홍콩·모스크바·수단·이라크·이란·칠레·볼리비아 등 세계 곳곳에서 불평등 타파와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대거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시위 여파로 볼리비아, 이라크, 레바논, 알제리에서는 최고 권력자가 물러났다. 신문은 원인에 대해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한결같이 경제적 불만이 깔렸다”고 지적했다. 지난해에 유독 시민 시위가 많았지만, 이는 하루 이틀 된 얘기는 아니다. 정확하게는 2000년 초반에 이 현상이 예측됐다.
 
  미국외교협회 연구원인 조슈아 컬랜칙이 지난 2015년에 내놓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의 일부분이다.
 
  〈민주주의의 정체는 2000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심해지고 있었다.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자유의 진전은 시작과 함께 정점에 이르렀다’고 돼 있다. 일부 민주주의자들이 ‘아랍의 봄’을 찬양하며 그것이 1989년처럼 세계의 다른 곳에 혁명을 전파시켜주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독일의 베텔스만 재단은 각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정부가 잘 운영되는지, 자유가 잘 지켜지는지 등에 대한 자료를 탐색해 이른바 ‘베텔스만 이행지수’를 제공했다. 가장 최근의 발표에 따르면 ‘(개발도상국 전반에 걸쳐) 민주주의가 질적(質的)으로 부실화되고 있다. 정치적 참여와 시민의 자유 같은, 제 기능을 하는 질과 안정성이 빈 껍데기로 남을지 모른다는 위협을 받게 된다’고 돼 있다. 더 이상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평가될 수 없는 국가의 수가 2006년에서 2010년 사이에는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2010년 128개국 가운데 53개국이 이행지수에 의해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됐다.〉
 
 
  경제 불평등이 全 세계인을 거리로 불러들여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거리의 정치’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2019년 11월 14일 홍콩이공대 캠퍼스에서 시위대가 경찰 진압을 막기 위해 작업하는 모습.
  이황직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의 얘기다.
 
  “거리정치, 분노의 정치는 2008년 미국발(發) 경제 위기 이후에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됐습니다. 각 국가가 세계화를 자기 나라에 유리한 방향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경제 위기로 인해서 다 같이 침체되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위기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고 중산층의 몰락과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의 경제 불평등을 고착화했습니다. 각 나라의 정치가 경제적 불균형 문제를 없애지 못하면서 더는 이것이 경제 문제가 아닌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왔습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에서도 2008년 이후에 바람처럼 부는 거리 시위에 대해, 중산층의 몰락과 미국발 경제 위기, 신흥 민주주의 국가의 성장 정체, 민주주의 외에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 서구의 안이한 태도 등을 이유로 봤다. 책에서는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며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유럽 국가들은 2003년에서 2007년 사이에 4~5%대의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었지만 세계 경제 위기와 함께 반 토막 나고 말았다. 라트비아의 경우 2009년 경제는 전년 대비 10%가량 축소됐고 실업률은 20%를 넘겼다. 싱가포르는 2009년 1분기 20%가량 위축됐고, 세계 금융 위기가 시작되면서 말레이시아, 태국,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필리핀 또한 큰 충격을 받았다. 2000년대 후반과 2010년 초반 유럽을 강타한 경제 위기는 유럽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의 후퇴를 불러왔다. 이들은 조사 결과, 많은 가계 주체들이 시장과 민주주의를 결부시켜 생각하고 있었고, 삶의 질이 하락한 원인이 양쪽 모두에 있다고 비난했다.〉
 
  책의 예견은 현실이 됐다.
 
  미국에서는 2011년 일부 금융업자들의 과도한 이익 추구와 소득 불평등에 항의하는 반(反)월가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넘쳐났으며,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이자 사회운동가인 스테판 에셀은 2010년에 《분노하라》는 책을 펴며 프랑스 사회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다. 세계 35개국에 번역돼 3500만 권이 팔린 책에서 저자는 프랑스가 처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분노하라면서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불과 몇 개월 뒤인 2011년 스페인에서는 좌파정당 ‘포데모스’ 등이 참여한 좌파연합이 주요 도시 의회를 장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2018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 발표에 반대하면서 ‘노란 조끼’ 반정부 시위가 확산했다. 홍콩, 칠레 등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곳에서는 영화 〈조커〉의 주인공 조커 분장을 한 이들이 카메라에 잡혔다. ‘조커’는 사회 불평등과 빈부 격차가 낳은 영화 속 악당이다. 시위에서 조커 분장을 한 이들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분열되고 약자들이 억압받는 영화 속 고담시와 현실의 삶이 다르지 않다”고 토로했다.
 
 
  국회에 대한 실망과 SNS의 발달이 가져온 현상
 
거리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의 실패를 뜻한다. 2019년 12월 23일 밤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12월 11일 시작한 임시국회 회기를 12월 25일에 종료하는 내용의 ‘제372회 국회(임시회) 회기 결정의 건’을 의결하려 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둘러싸고 격렬히 항의하고 있다.
  분명한 점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것이 대의제의 위기를 촉발시킨다는 것이다.
 
  이황직 교수는 “대의제에 포섭되지 못한 에너지들은 전부 광장으로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서 간접 민주주의, 대의제를 국민이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치권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국회가 제 기능을 못 하니 이익집단 혹은 관련 있는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간다. 또 요즘같이 활발한 SNS 활동으로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해진 시대에 언론은 국민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주지 못하니 광장으로 뛰쳐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역시 “지금 나타나는 광장 정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검찰 등을 향해 시민이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 언론, 제도가 시민의 요구를 능숙하게 없애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격차 때문에 분이 안 풀리는 시민이 각자의 요구를 들고나와서 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과 야당에서 가장 강성이라고 하는 두 사람조차 ‘대의제의 위기’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고 있다.
 
  전 국회의원 C씨의 얘기다.
 
  “대의제의 종말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대의제를 수행해야 할 국회가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죠.
 
  모든 국민이 정치에 관여하거나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와 이해관계가 맞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기 때문에 현대 사회의 국가가 간접 민주주의를 선택하는 겁니다. 그런데 정치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국민으로서는 믿고 맡겼는데 일을 했다는 얘기도 안 나오고, 또 했다고 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짜증 나는 겁니다.
 
  과거에는 주위 사람에게 욕하고 말거나, 좀 극성인 사람들은 의원실에 전화해서 ‘일 똑바로 하라’는 식(式)으로 항의를 했습니다. 또 신문에 기고하는 등으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SNS 세상이 되면서 너무 편해진 겁니다.”
 
  ― 자기 의사 표현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됐죠.
 
  “자기가 느끼는 것을 금방 표현하는 데다가 ‘댓글’ ‘좋아요’ 등을 통해서 자기의 의사가 얼마나 일반적인지, 맞는지를 즉시 답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자기가 혼자 생각했던 것이 많은 사람의 지지를 통해서 확인되고, 자기 확신이 커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더 많은 이에게 자기 의견을 인정받고 싶고, 옳다는 것을 증명받고 싶은데 그것이 인터넷 카페, 거리의 장이 된 겁니다.
 
  거리 정치가 뭡니까. 쉽게 말해서 온라인에서 각자 의견을 같이하던 이들이 ‘얼굴 한번 보자’고 오프라인상에서 만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한 번 나갔다가 오면 중독성이 생기고, 저렇게 일도 못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맡기느니 내가 직접 나서겠다, 이런 식으로 직접 민주주의에 대해 환상을 갖는 겁니다.”
 
 
  광장 정치가 위험한 이유
 
  직접 민주주의는 유권자가 직접적으로 정치 결정에 참여하는 정치 체계로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의 민회(民會)에서 기원을 찾는다. 이후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췄던 제도는 근대에 와서는 주민 참여의 형태로 부활했고, 오늘날 각국에서 국민투표, 국민소환 등으로 일부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일부에서는 오늘날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직접 민주주의를 시행하고자 하면 그 길이 다양해졌다는 주장도 있다.
 
  과연 직접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를 대신할 수 있을까. 훨씬 나은 시스템일까. 전문가들은 “대의 민주주의가 부족하다고 해도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이들이 내세운 첫 번째 이유는 직접 민주주의의 ‘불필요한 소모전’이다.
 
  이황직 숙명여대 교수의 얘기다.
 
  “대의제를 직접 민주주의로 대체하려는 욕망이 있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우선 온 국민이 싸우다가 일이 끝날 겁니다. 직접 민주주의와 비슷한 말이 ‘국민투표 민주주의’입니다. 국민의 의사를 매일 확인하고, 건별로 전자 투표를 하는 겁니다. 결론은 온 국민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매일 싸워야 합니다. 흔히 직접 민주주의를 하면 지구상에 인구가 2명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일 것이라고들 합니다. 모든 사안에 대해 매일 매일 싸우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붕괴를 염두에 둬야 합니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의 얘기다.
 
  “직접 민주주의는 당연히 소모 전쟁이고,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청룡열차를 ‘프렌치 레볼루션’이라고 말합니다. 롤러코스터이기 때문입니다. 정치학계에서는 그렇게 봅니다. 왕정이었다가 황제 갔다가, 계속 왔다 갔다 했거든요.
 
  프랑스가 역사적으로 광장 정치가 가장 심했습니다. 절대 왕권이 강하다고 그것을 무너뜨리면 또 다른 것이 나오고, 또다시 반동이 나타나고, 극심한 학살 피해가 나타나고, 그렇게 해서 나폴레옹이 집권했더니 독재가 되고, 다시 왕정으로 가고…. 프렌치 레볼루션을 보면, 정말 민주주의가 가서는 안 되는 길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민주주의의 또 다른 위험스런 요소 중 하나는 ‘심사숙고의 과정’이 빠진 것이다.
 
  김광동 원장의 얘기다.
 
  “국회는 대표자를 뽑아서 의견을 수렴하는데 오히려 의회를 패스해서, 의회 정치를 부정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토론을 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전문가 의견을 듣고, 예산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지속 가능한지,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서 결정을 합니다. 세계가 가진 각종 경험, 지적 자산, 전문적 판단, 의견을 거쳐서 최종 결론으로 이뤄지는 것이 대의 민주주의의 성격입니다.
 
  그런데 광장에 나온 사람이 전체를 대변하고, 이것을 ‘국민의 뜻’이라고 하면 그때그때 감정적이고 지지받는 사람들이 달라질 것 아닙니까. 원전(原電)만 해도 그렇습니다. 매우 전문적인 얘기입니다. 40~50년 앞을 내다보고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상적인, 법치적인, 의회적인 방식으로 토론해서 해야 하는데, 어떤 특정 세력이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절차적 민주주의, 제도적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전문가 의견, 국회 심의, 정부의 의견과 국회의 의견이 서로 교환되고, 오랜 기간 숙성이 돼서 숙의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하는 겁니다.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그 사안에 대해 다양하고 광범위한 의견, 전문가적 의견이 보태져서 각각 주체적 집단이 수렴해서 최종 의견 끝에 나와야 하는데, 현재는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이나 반대 세력을 진압할 목적으로 집회를 부추기고, 서로 적이라고 보는 겁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또 다른 의견은 광장 정치의 목표 중 하나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무조건 배척한다는 것이다.
 
  이황직 숙명여대 교수는 “광장 정치라는 말은 없다. 형용 모순이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과정인데, 광장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누르려는 경향이 강하다. 광장에서 정치할 수 없고, 광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광동 원장은 “오늘날 광장에서 펼쳐지는 것은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똑같다. 광장을 통해 혁명적 열기가 모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부의 실패를 호도하고, 권력을 지속하고 선거에 활용할 목적일 뿐”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광장은 극단적 세력에 의해 이끌려와
 
우리의 광장은 지난 20년간 좌파 세력에 의해 점령돼왔다. 2012년 6월 12일 저녁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효순·미선이 10주기 추모제 모습.
  광장의 기저에 깔린 것은 ‘분노’다. 앞서 말한 광화문 집회 참석자도 “조국 사태 때문에 화가 나서 나왔다”고 했고, 서초동 집회 참석자도 “조국만 트집 잡는 것이 화가 나서 나왔다”고 했다. 각자 화가 난 이유는 다르지만, 화가 난 사람들이 광장으로 뛰어나온 것은 분명하다.
 
  이황직 교수는 “광장 정치의 표면적인 이유는 분노다. 적이 있어야 쉽다. 과거 촛불 집회 때 나왔던 사람, 광우병 집회 때 나왔던 사람들도 모두 기저에 깔린 것은 분노”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화가 나서 광장으로 나왔고, 광장으로 나와서 내 의사를 표시했기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정치인들 스스로 이를 부추기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꽤 오랫동안 ‘광장’이라는 공간이 좌파에 의해 선점된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10월 3일과 10월 9일의 집회가 참신하게 느껴졌던 것도 우파들이 그토록 많이 모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의 얘기다.
 
  “광장 정치는 본인의 정치적 뜻이든, 사회적 뜻이든, 주어진 상황에서 본인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출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한 요인을 구성하는 내용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것은 원론적인 얘기이고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광장 정치로 접했던 경험은 정치적 선동의 방식으로, 좌파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2008년 11월 27일 오후 서울 이마트 용산점 앞에서 광우병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미국산 쇠고기 판매를 시작한 대형마트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태극기 부대, 지난해 조국 사태 때 빼고는 우파가 광장에 나온 적이 없죠.
 
  “효순이·미선이 사건, 한미 FTA 반대, 광우병 사건, 박근혜 탄핵이 가장 대표적이죠. 여러 의견을 수렴하는 곳이 아니라 특정한 사안이나 정책을 저지·반대하는 목적으로 선동했습니다. 결론을 이미 지어놓고 나왔죠. 따라서 우리나라에서의 광장 정치는 토론의 장이라기보다는 결론 난 사안으로 끌고 가려는 선동의 성격이 강합니다.
 
  선동은 다수의 의견은 본인들이 대변하는 양 말하면서 이것을 ‘국민의 뜻’이라고 합니다. 본인들이 나와서 ‘이것이 국민의 명령’이라고 호통칩니다. 남의 의견을 자기가 독점하고 타인의 의견을 배제하는 겁니다. 따라서 반민주적이며, 사회를 끌고 가는 하나의 정치적 수단으로 작용해왔다는 차원에서 특히 우리나라의 광장 정치는 매우 위험하고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봅니다.”
 
  ― 10월 3일 집회는 굉장히 예외였죠.
 
  “그것은 굉장히 예외였죠. 하지만 여태 집회들은 한국 사회를 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극단적 세력에 의해 이끌려왔습니다. 그 세력은 전체주의, 파시즘식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고, 굳이 논리나 토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일례로 중국이 사드 배치를 문제로 한국 기업을 압박했을 때 이들 세력이 광화문에서 촛불 집회를 벌였나요?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인권을 짓밟을 때 광장으로 뛰어나와서 이를 규탄했나요? 아닙니다.
 
  이들은 반미(反美)냐 아니냐, 반일(反日)이냐 아니냐는 등 이미 그들만의 이슈를 선점하고, 그 일이 있을 때만 광장으로 몰려나옵니다. 결정된 방향을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선동이냐 아니냐를 보는 겁니다. 따라서 광장 정치를 민주주의의 한 방법으로 일부 인정을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나라에서의 광장 정치는 민주주의 방식의 하나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광장 정치 부추기는 좌파들
 
2017년 3월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 문재인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광우병 시위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2009년 6월 12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남북공동선언 8돌 기념식에서였다. 이희호 평전에 나온 대목이다.
 
  〈2000년 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된 직접 민주주의 이래 처음으로 한국에서 다시 그 직접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민주주의는 인터넷과 문자 메시지를 통한 온라인과 촛불 문화제의 오프라인의 연대 속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평화적인 대중들이 직접 민주주의의 중요한 정치 주체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민 요구를 수렴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오늘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에 이어 2016년 12월 9일 ‘국민명예혁명’의 빛나는 역사를 새로이 썼다. 정의로운 평화항쟁의 승리, 국민의 뜻을 대변한 국회에도 찬사를 보내자. (중략) 99대 1의 불평등 사회, 청와대 재벌 등 1% 낡은 기득권 체제를 혁파하고 국민권력시대, 새로운 대한민국을 여는 출발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국민명예혁명의 완전한 승리의 날이 올 때까지, 국민권력시대를 향해 우리 다 함께 지혜와 힘을 모아나가자.”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지난해 1월에 도내에 ‘민관(民官) 협치’ 자문 기구를 출범시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권한을 행사하는 대리인들이 권한을 행사할 때 마치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최대한 확대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촛불을 든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대한민국의 미래인 만큼 경기도는 ‘촛불민심’이자 ‘민주주의의 기본 논리’를 최대한 반영해보고자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9일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의견이 나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이를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깊은 대립의 골로 빠져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한 의견 속에서도 하나로 모이는 국민의 뜻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 못지않게 검찰개혁이 시급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광장 정치는 파시즘인가?
 
  일부에서는 오늘날 우리의 광장에서 벌어지는 것은 민주주의의 방식이 아닐뿐더러, 묘하게 얽히고 꼬여 파시즘적 요소가 강하다는 우려를 한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는 지난해 집회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두고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조국 일가의 불법(不法)·부정·비리·반칙·위선을 두둔하는 홍위병들의 집회를 대통령이 나서서 선동한 것”이라며 “서초동 광장의 파시즘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헌법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국민일보》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
 
  〈광장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거대한 권력에 맞설 때 신성한 민주주의의 공간이 된다. 그렇지만 기득권 세력이 자신의 권력을 전시하고 확대하기 위해 광장을 이용하면 광장은 항상 파시즘의 무대가 되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권력을 연출하기 위해 수많은 군중을 동원한 곳이 광장이었다. 이렇게 국민적 합의와 통합보다는 오로지 권력과 파당적 이익을 위해 군중이 동원되는 곳이 광장이다. 이처럼 광장은 한편으로는 파시즘적 광장 정치와 다른 한편으로는 공적(公的) 문제에 직접 참여하는 광장 민주주의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
 
  미 국무부 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파시스트에 대해 “자신을 국가 전체, 혹은 집단 전체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자이다. 타인의 권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기꺼이 폭력을 동원하고 가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그의 책 《파시즘》의 일부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파시스트들이 선거를 통해 고위 공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고위 공직에 올랐을 때 그들이 첫 번째로 시도하는 것은 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주요 기관들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회도 포함된다. 파시즘은 사회적·경제적 불만을 먹고 자란다. 이 불만에는 ‘저쪽에 있는 사람들은 분에 넘치게 좋은 대우를 받고 있고, 반면 나는 받아야 할 대우를 못 받고 있다’는 믿음도 포함된다. (중략)
 
  우리는 어려운 문제들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대신 위의 불만을 증폭시키는 언론과 정보의 거품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비판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신념과 관점이 나의 것과 충돌되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비웃으라고 독려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경멸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하고, 어떤 경우에는 그들이 말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게 한다. 이런 태도는 배움을 경직시키고 선동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청중을 만든다. 선동가들은 각자 불만을 품은 다양한 부류의 무리를 하나로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다.〉
 
  선전·선동과 관련해서 독일의 괴벨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치 정권에서 선전부 장관을 지낸 괴벨스는 군중 선동을 치밀하게 이용한 선구자로 악명을 남겼다. 1922년 나치스에 들어간 그는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베를린 지방의 당 지도자가 됐다. 괴벨스는 이런 주장을 했다.
 
  “거리를 정복할 수 있다면 대중을 정복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을 정복하는 자는 국가를 정복한다.”
 
 
  원래 광장은 少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해 젊은 층들은 광장이 아닌 인터넷상에서 각종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우리의 광장은 유독 ‘숫자 대결’을 한다.
 
  검찰개혁 촛불집회 주최 측이 지난해 9월 28일 서초동 촛불 집회 인원이 200만명 이상이라고 밝히자, ‘장소, 면적 등을 고려할 때 최대 참가 인원은 8만명이 최대치다’라는 반박이 있었다. 보수 진영은 개천절 광화문 집회에 대해 ‘200만명’ ‘100만명’ 등을 내세우며 자신이 ‘민심’이라고 주장했다.
 
  이황직 숙명여대 교수는 “민주주의는 숫자로 이겨야 하기 때문에 광장을 가상으로라도 활용하는 것이다. ‘국민의 의지’라는 것이 한 번도 모아본 적은 없지만, 가상으로 모아서 ‘몇만명이다, 따라서 우리의 민심이 다른 쪽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며 “광장은 원래 소수(少數)를 위한 공간이다. 대의 민주주의를 하다 보면 어떤 작은 목소리는 대변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를 위해서 광장이 있었다. 가령 미국이 과거 소수였던 흑인에 대한 정치적 대표성을 높이고, 좌파가 강했던 유럽에서 우파가 조금씩 소리를 내는 등의 장소가 광장이었다. 노조, 재벌을 위해서 광장이 있을 필요가 없다. 광장은 기득권 세력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광동 원장의 얘기다.
 
  “선동정치는 다수의 의견을 본인들이 대변한다고 프레임을 씌워 독점으로 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사람을 배제하고 이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숫자 대결을 펼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광장은 선동의 장(場)으로 볼 때, 이는 마치 일부 기득권이 국민을 대변하는 것처럼 속이고, 그 의견을 본인들이 독점하고, 그 독점된 것을 권력을 쥐고 정부 기관을 장악하는 데 쓰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10월에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양분된 ‘광장 집회’가 열리자, 더불어민주당은 광화문 집회가 동원된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해식 당시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한국당이 전국적으로 총동원령을 내려 만든 집회, 우리공화당의 태극기 집회, 수구적 종교정치 세력의 창당준비 집회가 뒤섞여 혼돈만 가득했다”고 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광화문 집회는 한국당 집회였고, 서초동 집회는 국민의 집회”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여당인 민주당이 지난해 ‘서초동 촛불 집회에 참여해달라’는 독려 문자를 발송하면서 ‘당명을 사용하지 말아 줄 것’을 당부한 사실이 밝혀졌다. ‘서초동 집회는 자발, 광화문 집회는 동원됐다’는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사실이다.
 
 
  광장은 ‘586세대’의 전유물
 
  광화문 집회의 성별, 나이별 참여인원 분포가 한 언론을 통해 배포됐다. 광화문에 가장 많이 모인 연령대는 70대(22만명 이하 추산), 60대(16만), 50대(8만) 순(順)이었다. 20~30대, 특히 20대 참가자는 거의 집계되지 않았다.
 
  이황직 숙명여대 교수는 “청년이 실종된 광장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좌우 모두 청년이 실종됐습니다. 인터뷰를 할 때 보이는 청년 몇 명이 다입니다. 광장이 비록 민주주의적 의사 표현의 공간은 아니지만, 소수의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순기능은 있었는데, 이마저 없어졌습니다. 세대 정치에서 소외된 청년들이 광장을 채운다면 그나마 일부 광장 정치로의 기능으로 향할 수 있지만, 전혀 청년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0대 때부터 선전·선동에 익숙한 586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역시 “광장이 추구하는 것은 권력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목소리만 내기 위해 나오는 곳은 아니다”며 “광장은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수세 싸움의 공간이자 586의 전유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대학교 기독교 보수 단체 회원으로 활동하는 장모씨의 얘기다.
 
  “조국 사태에 대해 친구들이 많이 화가 났던 것은 사실인데 광화문 집회에 나간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대학에 오느라고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누구는 아빠 기회 써서 쉽게 살고 있다는 것이 황당하고 화나고 어이없죠. 그렇다고 해서 광화문으로 뛰어간 친구들은 별로 없어요.”
 
  ―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문제여서인가요.
 
  “아니요. 그보다는 우선 바빠요. 스펙 쌓느라 바쁘고 아르바이트하느라 바쁘고…. 차비 쓰면서 광화문까지 나가서 어른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거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광장과 20대는 잘 맞지 않아요.”
 
  ― 어떤 차원에서 안 맞는다는 건가요.
 
  “20대는 한 공간에서도 휴대전화로 각자 게임을 하면서 게임 채팅 창에서 대화를 합니다. 서로 모여서 얼굴 보고 구호 외치고 피켓 드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그보다는 SNS, 인스타, 유튜브에 얼마든지 내 뜻을 피력할 수 있고,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지지할 수 있어요. 굳이 직접 광장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내 뜻을 전달할 수 있고 그 방법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믿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 거죠.”
 
 
  현재진행형
 
  광장 정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모두 수적인 우위를 앞세우며 갈등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모양새다.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을 둘러싼 극한 대립은 이제 윤석열 검찰총장의 거취로 옮아갔다.
 
  광화문광장에서는 지난 1월 11일 검찰 인사를 두고 상반되는 주장을 펴는 대형 집회 두 건이 열렸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법무부의 검사장급 인사를 보복으로 규정하면서 이날 “윤석열 총장을 지키자. 문재인 정권은 퇴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여권에서는 “적폐 세력의 첨병 역할을 해온 것이 정치 검찰과 그 수장 윤석열”이라며 반박했다.
 
  하지만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광장 정치는 소모전이며,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제를 대신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취재한 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렇다.
 
  “거리의 정치가 우리 현실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한국 정치 발전에 이바지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어쩌다 극단적인 일이 일어났을 경우에 한 번쯤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것이 궁극적인 목표 혹은 방법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소수가 아닌 여당이 거리 정치를 부추기는 것은 광장이 존재하는 최소한의 존재 이유와도 정면 배치된다.”⊙
조회 : 3819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003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도서출간 배너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