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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亡國病’ 포퓰리즘

在獨학자 李永起 박사가 본 유럽 포퓰리즘

“極右 포퓰리즘 정당, 反이민 주장하지만, 나치와는 달라”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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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포퓰리즘 대두하는 가장 큰 원인은 난민문제”
⊙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의회민주주의에 불안요소가 될 수 있어”
⊙ “헝가리·폴란드, 美·EU와의 관계 때문에 독재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2016년 5월 독일 튀링겐주의 州都 에르푸르트에서 反이슬람 시위를 벌이는 ‘독일을 위한 대안당’ 당원들. 대안당은 反이슬람 정서를 배경으로 이듬해 총선에서 약진했다. 사진=뉴시스/AP
  지난 5월 23~26일 유럽의회 선거가 있었다. 유럽의회는 유럽연합(EU)의 입법부에 해당한다. EU 예산심의권, 부분적인 입법권을 갖고 있지만, 실권(實權)이 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유럽 정치의 풍향계(風向計)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유럽 정치를 주도해오던 기성(旣成)정당들이 퇴조하고, ‘극우(極右)’ 포퓰리즘 정당들이 대두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영국 보수당, 독일 기독교민주당 등과 맥을 같이하는 중도 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 그룹은 217석에서 179석으로, 영국 노동당, 독일 사회민주당 같은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진보동맹(S&D) 그룹은 186석에서 153석으로 줄어들었다. 반면에 이른바 극우세력인 ‘자유와 직접민주주의의 유럽(EFDD)’ 그룹은 41석에서 54석으로, ‘국가와 자유의 유럽(ENF)’ 그룹은 37석에서 58석으로 의석수를 늘렸다. 극우 성향 정당 그룹이 차지한 의석은 모두 176석으로 전체 의석(751석)의 4분의 1에 달한다.
 
  이들 ‘극우세력’ 가운데 프랑스의 ‘국민연합(RN)’,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하 대안당)’, 이탈리아의 ‘동맹’은 지난 6월 13일 ‘정체성(正體性)과 민주주의’라는 유럽의회 내 새로운 정치 그룹을 결성했다. 이에 속한 의원은 모두 73명. ‘정체성과 민주주의’는 유럽의회 내 제5당이 됐다(유럽의회에서는 유사한 성향의 각국 정치인이 ‘그룹’을 결성해 활동한다. 각국의 정당 내지 원내교섭단체와 흡사하다고 보면 된다).
 
 
  일약 원내 제3당이 된 독일 대안당
 
李永起
1935년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獨 함부르크대학 석사, 베를린자유대학 정치학 박사 /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명지대 북한학과 객원교수, 同 독일·유럽연구센터소장 역임. 現 함부르크 韓獨연구소장
사진=조현호
  유럽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국민연합은 그 전신(前身)인 국민전선(FN) 시절부터 대선(大選)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였다. 이탈리아의 동맹은 당수가 부총리 겸 내무장관으로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최근 부패 스캔들로 붕괴한 내각에, 극우 자유당이 당수를 연정(聯政)해 부총리로 진출시켰다. 독일에서는 대안당이 2017년 총선에서 12.6%를 득표해 일약 원내 제3당으로 연방하원에 진출했다. 대안당은 2013년 총선에서는 4.7%를 득표해 5% 이상 표를 얻는 정당만이 연방의회에 의석을 배분받는 규정에 따라 한 석도 차지하지 못했다가, 2017년 총선에서는 94석을 획득했다. 동구(東歐)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향해 전진하던 헝가리와 폴란드에서도 극우 권위주의 성향의 정당이 집권, 자유주의적 요소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아예 ‘비(非)자유・민주주의’를 공언하고 있다.
 
  유럽의 극우 포퓰리스트 세력의 득세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영기(李永起・84) 함부르크 한독(韓獨)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이영기 소장은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한국전쟁에서의 이승만의 외교정책〉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명지대 독일・유럽연구센터 소장을 지냈다. 현재 독일 함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다.
 
 
  “대안당, 트럼프보다 조금 더 세게 말하는 정도”
 
  ― 유럽에서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이 약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장 큰 원인은 난민문제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독일의 경우, 기독교민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15년 시리아 소년 쿠르디의 조난 사고 이후,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난민환영정책’을 폈습니다. 하지만 쿠르디 가족을 비롯해서 많은 난민은 사실 정치난민이 아니라 경제난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이슬람 난민들이 유럽의 기독교 문화와 충돌하면서 포퓰리스트 정당들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죠.”
 
  ― 이슬람 난민 유입으로 인한 갈등이 실제로 그렇게 심각합니까.
 
  “상이한 종교로 인해 발생하는 일종의 문명충돌이죠. 이슬람교도들이 유럽 사회에 동화(同化)되려 노력하기보다는 자기들의 종교와 문화를 간직하면서 다산(多産)을 한다. 그러다가는 유럽의 기독교 문화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 이슬람교에서 교회를 구입해서 모스크로 만드는 일이 있는데, 그런 걸 보면서 위기감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으로 알려져 있는 독일의 대안당은 어떤 정당입니까.
 
  “대안당은 2013년 창당했는데, 2015년 당시 다른 기성정당과는 달리 난민환영정책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서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독일의 경우 이슬람 난민뿐만 아니라 폴란드에서도 300만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있는 데 대한 우려가 높습니다. 중동 난민을 비롯해, 1950년대부터 들어온 터키계, 그리고 흑인, 동양계 등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8%에 달하다 보니, ‘외국인이 너무 많다’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 결국 대안당은 ‘반(反)난민-반이민’정당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제가 보기엔,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 조금 더 세게 말하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대안당, 나치 같은 극우로 보기는 어려워”
 
  ― 대안당의 지지기반은 어떠합니까.
 
  “옛동독 지역이 주요 지지기반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24%까지 지지율이 나오는 곳도 있습니다. 지금은 옛 서독 지역에서도 지지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독일 전체로는 15% 정도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대안당 지지자 가운데는 전에 기독교민주당(기민당)을 지지하던 사람이 가장 많지만, 사회민주당(사민당)을 지지하던 사람도 꽤 있습니다.”
 
  ― 공산주의 통치를 받았던 옛 동독 지역에서 극우세력이 대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경제적 이유입니다. 통일된 지 30년이 되어가지만, 옛 동독 지역에는 이렇다 할 대기업이 없습니다. 통일 이후 들어온 기업들은 정부 보조금을 바라는 기업들 정도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낙후되다 보니 그에 대한 소외감이 커진 것이지요.
 
  둘째 이유는 문화적 요인입니다. 서독에서는 나치 트라우마가 있어서 인종・종교적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는 것을 조심하는 분위기입니다. 반면에 옛 동독 지역은 그런 정서가 약한 편이죠. 또 동독 지역은 공산정권 시절 외국인과의 접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슬람 난민 유입으로 인한 충격이 옛 서독 지역보다 컸습니다.”
 
  ― 흔히 대안당을 두고 ‘극우정당’이라고 하는데, 나치처럼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독재, 침략전쟁을 대놓고 옹호하는 정당은 아니지 않습니까.
 
  “일부 극단적인 주장이 있기 때문에 나치당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나치 같은 극우정당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안당도 나치 찬양 발언을 하는 등 극우적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을 출당(黜黨)시키는 등 책잡히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서양문명을 구하자’는 보수적(保守的) 정서에 기반을 둔 정당이 아닌가 싶습니다.”
 
  ― 대안당이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나치당처럼 독일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정당이 되지는 않을까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독일에서는 연방 및 각 주(州)에 있는 헌법보호청이 극우・극좌세력을 엄중하게 감시하면서,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철저하게 제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좌파든 우파든 간에,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테두리를 벗어나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적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독일의 자유민주주의는 그렇게 쉽게 파괴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합니다.”
 
 
  차분한 독일의 선거
 
  ―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독일 국민의 정치의식이 안정적입니다. 선거제도나 정당 시스템도 선동이 쉽게 먹혀들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 독일의 선거는 어떻습니까.
 
  “한국인이 보면 ‘선거하는 맛이 안 난다’ 싶을 정도로 심심합니다. 옥외(屋外) 대중집회가 거의 없어요. 정당 행사는 대부분 실내에서 합니다. 한국처럼 선거유세 차량이 확성기 쾅쾅 울리며 돌아다니지도 않아요. 후보자들이 TV토론하고, 플래카드 걸려 있는 걸 보고서야, ‘아, 선거 때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입니다.”
 
  ― 정당은 어떻게 운영됩니까.
 
  “미국에서는 선거 때만 정당을 활용하지만, 독일에서는 정당 조직과 활동이 평소에도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함부르크시(市)의 알트나구(區) 기민당의 경우, 소(小)구역 단위로 한 달에 한 번 당원들이 모여 토론을 벌입니다. 각급 선거의 의원 후보도 당수가 지명하는 게 아니라 당원들이 선출합니다.”
 
  ― 독일도 민주주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된 나라는 아닌데, 민주주의가 그렇게 잘 정착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독일은 히틀러 독재와 스탈린주의 독재를 다 경험해본 유일한 나라입니다. 서독의 경우, 기본법(헌법)을 제정하면서 ‘다시는 히틀러 같은 독재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기본법 제1조는 ‘인간의 존엄’을 선언하고 있고, 기본권 규정이 통치구조에 대한 규정보다 앞에 나옵니다. 독일 통일 역시 이런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서독 시절부터 독일에서는 기본법의 정신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민주시민교육을 해왔습니다. 또 바이마르공화국 시절과는 달리 경제가 튼튼한 것이 자유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아데나워와 이승만
 
콘라트 아데나워 전 독일 총리.
  ― 역시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민주주의도 가능한 것이겠죠.
 
  “원래 독일은 잠재력이 있었어요. 국민들이 머리가 좋고 검약(儉約)하는데다가, 이미 19세기 말부터 세계 유수의 공업국이자 과학기술 선진국이었잖아요? 비록 패전으로 잿더미가 됐다고는 하지만, 마셜플랜, 한국전쟁 특수(特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전 서독 경제장관·총리)의 시장경제정책에 힘입어, 1950년대에는 터키 등에서 외국인 노동력을 데려다 써야 할 정도로 경제가 부흥했지요. 그걸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하지만, 진짜 기적은 ‘한강의 기적’이에요. 우리는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이루었으니까요.”
 
  이영기 교수는 “독일과 한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첫 지도자인 콘라트 아데나워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길을 잘 닦아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데나워와 이승만 대통령은 비슷한 점이 참 많아요. 고령(高齡)의 나이에 국가지도자가 된 점,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투철한 확신을 가졌던 점 등….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뛰어났던 것은, 냉전(冷戰)이라는 국제정세를 냉정하게 직시하고, 좌우합작에 의한 즉각적인 통일을 요구하는 압력을 뿌리치면서, 미국 등 서방 자유세계와의 동맹을 통한 통일을 추구했다는 점이겠지요.”
 
 
  브란트와 슈미트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
  ― 오늘날 우리는 국가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68사태 때에는 기성세대와 국가정체성에 대한 도전이 심했던 걸로 아는데, 혹시 그때 상황을 직접 보았습니까.
 
  “‘늙은 대학생’으로 지켜보았죠. 학생들이 강의실에 들어와 교수의 강의를 중단시키고 ‘이제는 당신이 우리에게 배워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호찌민・마오쩌둥(毛澤東)의 얼굴을 그린 피켓과 ‘죽는 것보다는 붉은 게 낫다’(‘핵전쟁으로 죽는 것보다는 공산화가 낫다’는 의미)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시위를 벌이던 게 기억납니다. 미국의 키신저가 그걸 보고 ‘앞으로 20년 후에는 유럽이 벌겋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그와는 거꾸로 됐죠.”
 
  ― 독일은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68사태는 국가적 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독일은 기민당-사민당의 연립정권이 집권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충격을 체제 내로 흡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빌리 브란트 총리의 사민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진적 주장들은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브란트도 브란트지만, 그 뒤를 이은 헬무트 슈미트 총리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빌리 브란트가 사민당 내 좌파였다면, 슈미트는 우파였죠. 슈미트는 국내 사회정책 등에서는 진보적인 정책을 펴면서도, 중거리미사일의 유럽 배치 문제 등에서는 국내외의 반전(反戰)평화시위에도 굴하지 않고 미국의 입장을 확고하게 지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미·독(美獨) 간에 신뢰가 쌓였기 때문에 독일 통일도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브란트를 높이 치는데, 저는 오히려 슈미트가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역사 얘기가 길어졌다. 다시 현실 문제로 돌아왔다.
 
  ― 한국과 달리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전통적인 정당 외에 신생 정당들이 단시일 내에 약진하는 것이 신기합니다.
 
  “대통령제는 기본적으로 양당제(兩黨制)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당이 나오기 힘든 구조입니다. 반면에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의원내각제 국가이고, 국민도 다당제(多黨制)를 선호합니다. 비례대표제 등 작은 정당들에 기회를 주는 제도들도 잘 되어 있고요. 그 때문에 기존 정치세력에 실망한 국민을 대변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는 데 유리합니다.”
 
  ― 한국에서도 독일과 같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한국은 아직 분단 상황이기 때문에 안정된 정부가 필요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포퓰리즘 정당의 의회 진출을 용이하게 하고, 의회민주주의에 불안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도 6개의 정당(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 사회민주당, 대안당, 자유민주당, 좌파당, 녹색당)이 연방의회에 진출해 있는데, 전통적인 국민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의 의석이 줄어들면서 연립정부를 구성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헝가리·폴란드, 독재 회귀하지는 않을 것”
 
  ― 옛 공산권 붕괴 후 착실하게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오던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최근 극우 포퓰리스트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회귀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과거 공산주의 체제를 체험했던 헝가리·폴란드 등은 서유럽과 달리 민주주의 경험이 일천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헝가리·폴란드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버린 것이라기보다는 난민문제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역시 관건은 난민문제군요.
 
  “유럽통합이라고는 하지만 EU는 미(美)합중국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난민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나라 간에 이견(異見)이 엇갈려 당장 해결하기는 쉽지 않죠. 또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외국인과 어울려 살아본 경험도 적다 보니, 일부 옛 동구권 국가에서 민족주의 정서에 기댄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과거 같은 독재정권으로 회귀(回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게 낙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경제나 안보 면에서 미국·EU 등과 멀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헝가리도 그렇지만 특히 폴란드는 러시아 때문에 수난을 많이 겪은 나라입니다. 그 때문에 동구 사회주의 붕괴 이후 NATO(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고 미국의 이라크 파병에도 적극 동참했습니다. 미국으로부터 이탈해서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EU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한, 독재체제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헝가리나 폴란드보다는 오히려 한국이 걱정입니다. 한미동맹, 안보가 흔들리는데 평화와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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