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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의 전쟁과 평화

미국 INF 조약 탈퇴의 군사전략적 의미와 한반도에 미칠 영향

러시아보다 중국 겨냥… 동북아 정세 급변의 조짐

글 : 이춘근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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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중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로 유럽 전체가 홍역 앓아… 레이건–고르바초프, INF 조약 체결로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 합의
⊙ 미국이 중·단거리 미사일 개발 중단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신형 중거리 미사일 개발, 중국의 둥펑21 배치 등으로 전략환경 변화
⊙ 미국이 중·단거리 미사일 한국 배치 요청할 경우 우리의 선택은?

李春根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현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저술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1987년 INF조약에 서명, 냉전해체로 가는 길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20일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축(軍縮)조약 중 하나로 간주되는 중거리 핵전략폐기조약(INF Treaty)에서 탈퇴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탈퇴 발표에 대해 러시아는 격한 반응을 보이며 반발했다. 그러나 미국이 INF 조약에서 탈퇴했다는 사실에 대해 진짜 격한 분노를 표출해야 할 나라는 중국과 북한이어야 맞다. 물론 미국은 러시아가 조약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미국의 탈퇴를 정당화시키는 이유로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이 현 시점에서 INF를 탈퇴하기로 결정한 것은 보다 심각한 전략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INF 탈퇴로 직접 타격을 입을 나라도 아니다.
 
  중요한 국제 정치적 사건이 실제 발표한 내용과 그 본질적인 의미가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은데 이번 미국의 INF 탈퇴 결정 역시 그런 사례들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INF 탈퇴 선언은 앞으로 불러올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반도 주변 동북아시아에서 더욱 긴장과 위협이 심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미국의 INF 탈퇴 결정을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없었던 국제 환경이 배경이 되기도 했지만, ‘신(神)의 한 수’에 해당하는 탁월한 전략적 결정이라고 보는 편이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축 조약’
 
  INF 조약의 본래 이름은 ‘미국과 소련 사이의 중거리 및 단거리 미사일 폐기에 관한 조약’으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축 조약의 하나이다. 1987년 12월 8일 미국의 워싱턴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의해 사인되었다. 미국의 상원은 1988년 5월 27일 이 조약을 압도적인 지지로 승인했고 1988년 6월 1일부터 효력을 발했다. INF 조약은 미소 양국은 사정거리가 500~1000km인 단거리 미사일, 사정거리가 1000~5500km인 중거리 미사일을 모두 폐기하라고 지시했다.
 
  미사일에 핵폭탄을 장착할 경우 이를 편의상 핵미사일이라고 부르며 재래식 (즉 핵폭탄이 아닌 모든 종류의) 폭탄을 장착한 미사일을 재래식 미사일이라고 부른다. 이 조약은 핵이나 재래식을 막론하고 모든 종류의 중・단거리 미사일을 다 폐기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만 INF 조약은 바다 및 공중에서 발사할 수 있는 미사일을 예외로 했다. 지상에서 발사하는 미사일만 폐기 대상이 된 것이다. 1991년 5월까지 미국과 소련은 2692기의 해당 미사일을 폐기했다. 이 시설들에 대한 현장 검증이 차후 10년 동안 지속되었다.
 
 
  소련의 SS–20 미사일 배치
 
  이렇게 성공적인 군축조약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배경에 대해 알아야 한다. 1977년 초 소련이 SS-20 세이버라고 불리는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해서 이를 유럽의 소련 위성국 영토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SS-20 미사일은 기동과 은닉이 가능한 중거리 미사일로 한 발의 파괴력이 1만5000톤, 즉 히로시마 급에 이르는 핵폭탄을 여러 발 장착할 수 있는 신형 무기였다. 유럽에서의 핵전략 균형을 일거에 소련에 유리하게 만드는 전략적 무기가 아닐 수 없었다. SS-20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4700~5000km였기 때문에 소련 본토에서도 유럽 전역을 공격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었다.
 
  SS-20의 사정거리는 미국과 소련이 이미 약속했던 SALT-II. 즉 전략무기제한 2차 회의에서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 아니었다. SALT-II에서 제한했던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최소 사정거리가 5500km를 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기왕에 배치되었던 비교적 열등한 미사일들인 SS-4, SS-5를 SS-20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앞의 두 미사일들은 방어적 성격이 강했는 데 비해 SS-20은 공격적인 미사일이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카터는 미국이 보유한 해상 전략무기(대륙간)와 핵폭탄을 장착한 항공기로 소련의 공격 위협을 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1977년 서독 수상 헬무트 슈미트는 NATO 국가들은 SS-20가 야기하는 위협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을 향한 소련의 중거리 미사일 공격을 가장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은 유럽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중거리 미사일일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유럽 지역에 배치하는 것이 차선(次善)의 억제력이 될 것이다. SS-20 미사일이 유럽 국가들을 향해 발사될 경우, 미국은 이를 보복하기 위해서 미국 본토에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소련을 향해 발사해야만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소련이 유럽을 향해 칼을 휘둘렀는데 미국이 소련을 향해 총을 쏠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레이건–고르바초프,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 합의
 
  유럽의 지도자들은 두 가지 방안을 생각했다. 소련에 핵군축을 제시하는 동시에 여의치 못할 경우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을 유럽 영토 내에 배치한다는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채택된 방안은 NATO 국가들이 스스로 중거리 미사일 능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미국의 신형 중거리 미사일인 퍼싱-2 미사일을 유럽 영토 내에 배치한다는 것이었다. 유럽 국가들의 요구에 따라 당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1983년 12월부터 서독 영토 내에 108기의 퍼싱-2 미사일, 지상발사 순항미사일 BGM-109G 464기를 벨기에·이탈리아·네덜란드·영국 영토 내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유럽 국가들과 레이건 대통령의 중거리 핵전략 유럽 영내 배치 계획은 유럽 좌파들의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미국의 미사일이 유럽에 배치되는 것은 결국 유럽인들만 죽이게 하는 것이라며 격렬한 반대 데모를 벌였다. 유럽 전역에서 수백만의 소위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는 좌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소련의 미사일 배치에 대해 격렬한 시위를 벌인 적이 없는 이들은 미국의 미사일만 위험한 것으로 보는 인간들이었는지.
 
  퍼싱 미사일을 배치하기 전에 미국은 소련에 SS-20 미사일을 철수하라고 요구하고 소련이 요구에 응하면 미국도 퍼싱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하지 않겠다고 했다. 물론 소련은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미국은 논리적으로 훨씬 효용이 높은 억제장치인 퍼싱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은 소련의 중거리 미사일 공격을 중거리 미사일로 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소련의 경제는 붕괴 직전에 있었다. ‘개명(開明)군주’ 격인 고르바초프는 더 이상 미국과 군비(軍備) 경쟁을 하는 것은 소련의 몰락을 재촉하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소련의 몰락을 대전략으로 삼고 있던 레이건 미 대통령은 이 기회를 활용, 고르바초프에게 차제에 중거리 미사일, 단거리 미사일을 모두 없애 버리자고 제안했다. 결국 두 정상은 합의에 도달했고 워싱턴에서 INF 조약에 서명했다.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이 INF 조약에 서명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은 냉전의 종식을 상징하는 유명한 사진이 되었다. 1987년 체결된 INF 조약은 21년 동안 그 기능을 성실히 수행했지만 결국 국제정치의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조약은 되지 못했다.
 
 
  전략적 환경 변화
 
  INF 조약 체결 이후 불과 2년 만에 소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소련을 이어 받은 러시아는 INF 조약을 준수했다. 그러다가 2008년 러시아는 조약의 약속을 어기고 중거리 미사일 SSC-8 미사일을 실험했다. 미국은 2013년 이래 러시아의 조약 위반을 지적해 왔다. 러시아는 또한 INF 조약을 직접 위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SS-25, RS-26 등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러시아도 미국이 조약을 파기했다고 비난해 왔다. 즉, 미국은 폴란드와 루마니아의 기지들에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시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활용하고 있는 무인비행기인 MQ-9 등도 INF 조약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아무튼 1987년에 체결된 조약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 되었다. 체결 당시 상상하지도 못했던 무기들이 발명되어 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 아닌 다른 나라들은 INF 조약과 관계없이 단거리·중거리 미사일을 마음 놓고 개발·배치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특히 제2의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중거리 미사일을 마음 놓고 개발·배치하고 있다. 그 결과 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 균형에도 문제가 발생할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이 만약 INF 조약의 체결 당사국이라면 그동안 중국이 만들었던 미사일의 95%는 조약 위반이 될 정도다.
 
  결국 미국은 러시아가 조약을 위반했다는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무제한 개발·배치하고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에 대처하기 위해 INF 조약에서 탈퇴하기로 한 것이다. 2018년 10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위한 유세 중 “러시아가 이 조약을 오랫동안 위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도 탈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는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적도 파멸시킬 것이며, 그런 전쟁에서 죽은 러시아 사람들은 순교자(殉敎者)로서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고 응수했다.
 
  미국에서는 의회에서 압도적인 비준을 거쳐서 확정된 조약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폐기 혹은 탈퇴할 수 있느냐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다수(多數)의 전략이론가들은 INF 조약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트럼프의 탈퇴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존 볼튼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몇 년 전부터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만의 INF 조약은 무의미하며 중·단거리 미사일을 만드는 모든 국가들을 다 조약에 가입시키든지 혹은 미국이 탈퇴하든지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중국의 위협
 
중국의 항공모함 타격용 중거리 미사일 둥펑21. 트럼프 대통령의 INF 파기 선언은 중국의 군사력을 견제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사진=뉴시스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담당하던 사람들은 이미 오랫동안 INF 조약이 중국에는 해당 사항이 없기 때문에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골치 아픈 문젯거리 중 하나라고 말해 왔다. 특히 중국이 개발·배치하고 있는 미국 항공모함 공격용 미사일들은 미국 해군의 전개 능력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하고 있었다. 중국이 아예 미국의 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한 둥펑(東風)21 미사일은 그 사정거리가 1500~1770km에 이르는 미사일로서 INF 조약이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동식 미사일로 지상에서 발사하게 되어 있는 둥펑21은 미국의 항공모함들이 중국 해역에 접근하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의 중·단거리 미사일 위협에 INF 조약이 예외로 하고 있는 해·공군용 미사일로 대처하고 있었다. 그러나 육상 배치 미사일과 해·공군용 미사일은 그 기능적인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육상 미사일은 상시 배치 혹은 영구 배치가 가능하지만 항공 혹은 해상 미사일은 임시 배치에 불과하다. 미국이 서태평양 지역에서 군사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파견하는 폭격기와 항공모함, 각종 미사일 구축함 등은 전개되었다가는 반드시 철수해야만 한다는 한계가 있다. 항공모함·구축함·폭격기가 영구히 서태평양 수역에 배치되어 중국의 미사일 위협에 항상 대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상 발사 미사일은 개발한 후 필요한 지역에 배치하면 영구적·항상적인 공격력 혹은 방어력이 될 수 있다. 중국의 미사일 위협이 점차 더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당연히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된 방안이 바로 INF에서 탈퇴, 중·단거리 미사일을 개발해서 위험 지역에 배치하는 일일 것이다.
 
 
  미국이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 요청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도가 있다는 발언만으로도 한반도에 평화가 왔다고 믿고 있다. 평화의 도래를 믿고 있을 정도를 넘어 평화에 취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를 규정한 것은 언제라도 한반도 주변의 외세(外勢)였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급속하게 대결 모드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INF 조약 탈퇴 선언이 나왔다는 사실은 향후 한반도의 안보 환경을 대폭 변화시킬 수 있는 전조(前兆)다. 미국이 앞으로 만들 중·단거리 미사일들은 미국이 중국 주변 지역의 육지 혹은 도서(島嶼) 지역의 지상에 배치하려는 지상 주둔 미사일들이다.
 
  이미 일본은 미국의 중·장거리 미사일 배치를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중국의 미사일 공격 위협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또한 동아시아 지역에 있는 미국의 영토인 괌, 미국의 기지가 있는 오키나와에 중·단거리 지상 발사 미사일들을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위협을 각오해야 하지만 만약 미국이 한국·대만·베트남 등에 중·단거리 지상 발사 미사일을 배치할 경우, 중국에 대해 결정적인 전략적 우위 상황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대만과 베트남은 중국의 미사일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장치로 미국의 미사일 배치를 받아들일지 모른다.
 
  만약 미국이 주한미군 기지에 중거리 혹은 단거리 지상 발사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요청한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은 솔직히 중국의 미사일 공격에 거의 무방비한 상태에 있는 나라다. ‘전혀’ 무방비 상태라고 말하는 대신 ‘거의’ 무방비 상태라고 말한 이유는 만약 중국이 한반도를 공격할 경우 기왕에 배치된 미국의 사드(THAAD) 미사일이 중국의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드 미사일을 배치할 때 중국이 우리에게 보인 행태를 기억할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을 막기 위한 방어 미사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온갖 패악적인 행동을 보였다.
 
  미국과 중국은 제2의 냉전(冷戰)을 시작했다. 한국은 그 한복판에 놓여 있다. 지정학적(地政學的) 운명이기에 피할 도리도 없다. 서서히 그러나 닥쳐올 것이 분명한 상황에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만고(萬古)의 격언이 우리 행동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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