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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사건으로 본 여론정치

직접민주주의의 逆說

대의민주주의 흔드는 ‘여론정치’의 함정

글 : 신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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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대통령 “국민들, 간접민주주의로 만족 못해”… 현 정권, 댓글·청원·광장·공론화 중시
⊙ 드루킹 “온라인서 지면 오프라인서도 지는 것”… 여론 조작 횡행하는 ‘인터넷 광장’
⊙ ‘靑 국민청원’ 1인당 중복투표 가능성, 여론재판·인기투표로 변질될 위험성 대두
⊙ 원전 건설 여부도, 대입제도 개편도 ‘공론화위원회’… “원칙·방향 없는 위험한 발상”
⊙ 전문가들 “진정한 직접민주주의는 대의제 개선·보완 기능… 무조건 만능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8월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직접민주주의를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직접민주주의를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8월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 정부 출범 100일 기념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평소에는 정치를 구경만 하다가 선거 때 한 표 행사하는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촛불집회처럼 정치가 잘못했을 때는 직접 촛불을 들어서, 댓글을 통해서 정치 의사를 표시하고 정당의 권리 당원으로 참여하고, 그리고 정부의 정책에도 직접 제안하고 그런 직접민주주의를 국민들께서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런 국민들의 집단지성과 함께 나가는 것이 국정을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국민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다짐처럼 현 정부는 출범 1년 동안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작년 7월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켜 울산 울주군의 신고리 원전(原電) 5·6호기 건설 여부를 판단·권고토록 했다. 그해 8월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게시판을 신설했다. 청원글에 20만명 이상이 동참하면 실무자가 답변하도록 했다.
 
  청와대가 올해 3월 발표한 개헌안에도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가진 항목들이 포함됐다. 국민이 국회의원을 임기 중 소환해 투표로 파면할 수 있게 만든 ‘국민소환제’, 국민이 직접 법률안과 헌법개정안을 발안(發案)할 수 있도록 만든 ‘국민발안제’가 대표적이다. 당시 청와대 개헌안을 발표한 조국 민정수석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권력의 감시자로서, 입법자로서 직접 참여하고자 하는 국민 요구에 따라 두 규정을 신설했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정치학사전에 따르면 직접민주주의란 유권자가 직접적으로 정치 결정에 참여하는 정치체계다. 반대 개념은 유권자가 선택한 대표자가 정치 결정을 하는 간접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다. 2016년 촛불집회 이후 국민들의 직접민주주의 선호도는 높아졌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4월 13일 ‘혁신과 자치: 지방분권과 정책선거를 위한 과제’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촛불집회를 계기로 국내 유권자들의 직접민주주의 형태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음이 실증적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드루킹’ 사건과 조작된 여론
 
소설가 이문열씨. 사진=조선DB
  대통령이 국민 목소리를 귀담아듣겠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현 정부가 중시하는 직접민주주의의 핵심인 ‘광장과 인터넷 여론’이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 의견을 직접 수렴해 정치에 반영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달리, 여론의 무분별한 수용은 전체 민심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가령 최근 발생한 일명 ‘드루킹’ 사건은 소통창구라 불리는 인터넷 여론이 인위적으로 조작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줬다. 훈련된 댓글부대가 추천 수를 조작해 실제 민심인 양 가장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드루킹 사건은 확실한 제도적 기반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의 직접민주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보여줬다”면서 “오도된 여론에 기반을 두고 직접민주주의를 하는 것은 정당성 면에서 문제가 있다. 다시는 이런 중대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인터넷 댓글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금 같은 온라인 시대에서 댓글은 여론을 선도하는 동력이기 때문에 조작 가능성을 더욱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댓글부대 총책(總責)으로 알려진 민주당원 김동원씨(드루킹) 또한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여론의 판세가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지난 1월 18일 그의 페이스북 게시물의 일부분이다.
 
  〈온라인 여론 점유율=대통령 지지율이다. 이 말을 여러 차례 이야기를 해도 정치인은 알아듣지 못하더라. 왜냐면 오프라인 세상이 여론을 좌우한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이 지라시가 된 지 오래됐으며 대중은 대부분의 뉴스를 모바일을 통해서 포털, 특히 네이버 기사를 통해서 본다. 그러니 여론이란 네이버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인 것이다. 이것은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도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이 여론을 보는 창구는 결국 네이버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이다. … 온라인에서 지면, 오프라인에서도 지는 것이다.〉
 
  댓글 공작의 파급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작가 이문열은 지난 4월 3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2003년에 ‘디지털 포퓰리즘’에 대해 썼다. 댓글과 인터넷 조작을 걱정했는데, 그때는 대충 어눌하게 말했다”며 “이제 우리 현실이 됐다. (드루킹 사건으로 불거진) 디지털 포퓰리즘이 가장 불행한 방법으로 우리 사회를 점령해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문열은 산문집 《신들메를 고쳐매며》(문이당·2004)에서 인터넷 광장에서의 여론 조작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인터넷 광장의 군중은 광장의 여러 특성이 동시에 지어내는 착오와 환상에 빠져 조직적이고 전문화된 소수의 대중 조작에 걸려들고 있다. 인터넷 광장에서도 찬성이나 동조의 빈도와 반대의 빈도, 그리고 엄청난 조회 수는 재래 광장에서 나타나는 집단성의 역기능을 그대로 반복한다. 대면성과 쌍방성도 당연하게 인정되며 공개성이나 개방성은 오히려 재래 광장보다 더 강하게 전제된다. 그래서 네티즌은 단순히 그 논의를 지켜보았다는 것만으로 참여의 착각에 빠지고, 어쩌다 몇 줄 리플(댓글)이라도 달았으면 대단한 쌍방적 교신을 한 것으로 착각한다.〉
 
 
  “인터넷, 익명성에 숨은 선동가 많아”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 및 위원들이 작년 10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 5·6호기와 관련한 최종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이문열은 같은 책에서 익명성이 “지금의 인터넷 광장을 더욱 고약하게 뒤틀어” 놓았다고 지적한다. 〈(인터넷) 광장의 공개성 뒤에 숨어 있는 익명성은 재래의 광장에서 가면을 쓰고 나온 군중보다 훨씬 위험하다. 익명성 뒤에 숨어 아이디만의 분신술(分身術)이나 제 글 제가 퍼오기, 그리고 다른 아이디를 단 파렴치한 동어 반복으로 다수를 위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성 뒤에 숨은, 기껏해야 몇십 명의 교묘한 조작에 놀아나면서도 사회 전체의 의분(義奮)과 결의에 참여하고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들도 인터넷 여론 조작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를 지닌 포털사이트의 책임윤리를 강조한다. 댓글 실명제 도입 등 보완장치를 주문하기도 한다. 윤영채 충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인터넷 댓글이) 좋은 점도 있지만 왜곡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직접민주주의가 만능은 아니라는 생각,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종하 한남대 정치언론국방학과 교수는 “저도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전혀 맞지 않는 댓글도 많이 올라오더라”며 “말 그대로 여론의 조작·왜곡의 가능성이 있다. 어떤 주제를 깊게 생각하면서 댓글을 보면 ‘이게 잘못됐다’고 판단할 수 있는데, 생각 없이 보게 되면 ‘아, 이게 여론이구나’ 하고 휩쓸려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말이다. “사실 익명제로 운영하면 누구나 분위기에 휩쓸려 마음에 없는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댓글 기능을 실명제로 해야만 함부로 욕하거나, 자기 의사와 맞지 않은 곳으로 휩쓸려갈 가능성이 많이 떨어지게 될 겁니다. 그러면 각자 본인의 의사를 (댓글에) 정확히 반영할 가능성이 높게 될 겁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인터넷 댓글은) 익명성 뒤에 숨어서 선동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사실 생계에 바빠서 힘든 사람들은 인터넷 쳐다보고 댓글 달 시간이 어디 있겠나. 전문적인 사람들이 (조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부작용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최 교수의 분석이다.
 
  “언젠가부터 인터넷이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인 제안을 하는 곳이 아니라 자기감정을 배설하는 도구가 돼버렸어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사람을 매도하고 곤란하게 하잖아요. 그렇다고 모든 언로(言路)를 다 막는 것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인터넷 댓글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일단 철저한 실명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컴퓨터든 휴대폰이든 같은 기사에 한 번 댓글을 달면 그다음에 달 수 없게 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포털, 조작과 범죄 못 가려내면 댓글 접어야”
 
  전문가들은 특히 드루킹 사건의 파문이 커지던 지난 4월 23일 동시에 발표한 신문 칼럼에서 온라인상 댓글 공작과 현 정부의 여론정치를 비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데일리》 칼럼에서 “(댓글을 다는) 이들 0.9%의 영향력은 (소수지만) 막강하다”며 “댓글을 통해 뉴스를 읽은 이들의 이성적·개별적 판단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경남도민일보》 칼럼에서 “제2의 드루킹은 또 다른 디지털 기술력으로 여론조작 바통을 이어받게 될 것”이라며 “여론 조작과 범죄를 가려낼 수 없다면 포털은 더 이상 댓글장사를 접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장수 정치평론가는 《매일신문》 칼럼에서 “대중의 정열과 헌신을 악용해 여론을 조작하고 선거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사이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한 점을 주시해야 된다”며 “문 대통령이 찬양한 직접민주주의의 부정적인 폐해가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간의 우려와 전문가들의 지적에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지난 4월 25일 댓글 정책 개편안을 발표했다. 사용자가 댓글에 누를 수 있는 ‘공감·비공감’ 수를 계정 1개당 24시간 기준 50개로 제한시켰다. 연속 댓글 작성 시, 시간 간격을 10초에서 60초로 늘렸다. 공감·비공감 클릭도 10초 간격을 두게 했다. 하나의 계정으로 동일 기사에 작성할 수 있는 댓글 수는 최대 3개로 줄였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논란이 이어지자 네이버는 지난 5월 9일 이보다 더 강화된 뉴스 및 댓글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모바일 첫 화면에서 뉴스를 없애고, 댓글 정책과 운영도 각 언론사에 맡긴다는 게 핵심이다.
 
 
  청와대도 고심하는 ‘국민청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2월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비서실 업무보고에서 국민청원 운영과 관련 “고충을 말씀드리자면 답변하기 부적절한 성격의 문제가 많이 올라온다”며 난색을 표했다. 사진=조선DB
  현 정부의 직접민주주의 추구에 있어서 댓글 여론의 함정과 함께 문제시되는 것은 바로 청와대 국민청원이다. ‘온라인 신문고’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와 ‘20만명 동의’라는 나름의 답변 기준을 내세운 것은 좋았지만 부작용을 다 막을 수는 없었다. 우선 청원 게시물당 하나의 동의를 ‘1명의 의사’로 규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 당초 청와대 청원 사이트는 한 사람당 네이버·카카오·트위터·페이스북 등 총 4개의 SNS 계정으로 접속해 동참할 수 있었다. 한 사람당 4번 동의가 가능한 구조였다. 청와대는 지난 2월 일부 이용자가 카카오톡을 이용해 무제한 중복 동의를 한 정황을 파악하고 현재 카카오톡 연결을 잠정 중단한 상황이다.
 
  청원 주제의 기준도, 횟수의 제한도 없어 너무 많은 청원이 올라오는 것도 문제다. 작년 8월 19일 신설 이후 지난 4월 24일까지 올라온 청원 게시물만 17만340건에 달한다. 대략 하루에 700건꼴로 한 달 평균 2만 건이 올라온 셈이다. 사안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직접적인 문제 해결도 어렵고 여론재판·인기투표로의 변질 위험성도 있다.
 
  심지어 청와대 측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판사의 파면을 요구했던 국민청원 내용을 대법원에 전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5월 4일 성명서를 통해 “청와대가 국민청원 사실 자체만 전달하고 직접적 외압을 행사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개별 사건마다 국민청원이 있다고 해 이를 모두 법원에 전달하면 법관은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반발했다.
 
  파문이 이어지자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청원 전달 내용은) 이미 투명하게 밝혔던 내용”이라고 선을 그었다. 당시 관계자는 문자에서 “국민청원 책임자인 정혜승 뉴미디어비서관이 당시 청원에 답하며 ‘사법부가 독립적 권한을 가진 만큼 이번 청원 내용을 법원행정처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했다.
 
  이어 “정 비서관은 당시 문서나 우편, 이메일 등으로 전달할 경우 서로 부담이 될 수 있어 통화만 했고, ‘알려드리는 것이 전부이며, 어찌하라는 내용은 절대 아니다’라고 잘라서 전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측도 일면 고심하는 모양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2월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비서실 업무보고에서 국민청원 운영과 관련 “고충을 말씀드리자면 답변하기 부적절한 성격의 문제가 많이 올라온다”며 난색을 표했다. 특히 “국회 관련된 청원이 올라오면 답변하기는 곤란해서 일단 20만 건이 넘으면 답변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할지 (고민)”라고 밝혔다.
 
  정혜승 청와대 비서관도 지난 4월 21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원이 이렇게 많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 일각에서는 ‘이상한 청원이 적지 않다’고 하지만 집단지성으로 걸러진다고 생각한다”며 “익명 인증으로 출발할 때부터 어뷰징(abusing·악용) 가능성은 인지하고 있었다. 중복 서명이 없는지 모니터링하면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김종하 한남대 교수의 지적이다.
 
  “국회를 통해서 여론을 수집해 정책에 반영하거나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게 맞는 것이죠. 저는 지금처럼 청와대 청원에 몰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을 새로 만든다든지 정책을 통해서 해야 되는데 그저 ‘여론이 그렇다더라’ 해버리면 포퓰리즘에 빠지기가 쉽죠.”
 
 
  대의제 불신이 여론정치 불렀나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조선DB
  반면 대의민주주의 체제, 즉 국회가 여론 수렴 기능을 못했기 때문에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터져 나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다시 말해 의회정치가 작동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촛불광장·국민청원·댓글여론 같은 새로운 직접민주주의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는 것이다.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국회에도 청원 사이트가 있는데 (청와대 사이트만큼의 효과가 없어서) 거기에는 안 올린다더라. 아무리 (여론) 조작이 가능하다고 해도 (지금) 대통령은 신임을 받고 국회의원에 대한 신임은 없지 않나”라며 “지금 대의민주주의가 크게 불신을 받고 있다. 대의제 실현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엄청 낮다. (견제할 수 있는) 국민들의 통제장치가 없기 때문”이라며 “스위스는 국민의 66%가 국회를 믿을 정도로 신뢰도가 높다. 국회가 잘못 결정하면 국민이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의 말이다.
 
  “스위스 국회는 국민들에게 거부 안 당하기 위해서 국민 의사를 반영하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반면 요즘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만나 보면 ‘국민들이 (우리를) 믿어줘야 말이지’ 하고 거의 포기상태예요. 그럴 때마다 나는 ‘당신들이 신뢰 회복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라, 정면승부를 해라, 통제권한을 줘라’ 이런 얘기들을 많이 했죠.”
 
  논문 〈‘직접, 대의, 심의’ 민주주의 제도의 통합〉도 대의민주주의 위기가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불러왔다고 설명한다. 논문의 일부분이다. 〈현대 대의민주주의는 심각한 불신을 받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결핍’으로 지적되는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의 실체는 유권자의 선거참여 쇠퇴뿐 아니라 이익집단 정치에 연루된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정부의 정책실패 등으로 인한 국가 대의기관에 대한 심각한 ‘신뢰의 위기’에서 찾는다. 이런 대의기관의 위기에 대한 혁신적 처방으로 직접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진행되어 왔다.〉
 
 
  “직접민주주의 추구, 사안별로 구분해야”
 

  물론 대의제를 추구하는 나라마다 직접민주주의 기능의 제도들을 채택한 경우가 많다. 대의제의 미비점을 보완·개선하기 위함이다. 최진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모든 정치체제에 (직접민주주의 요소가) 조금씩 다 가미가 돼 있다”며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딱 나눌 수는 없고 정도의 문제일 텐데, 우리나라도 좀 섞여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 정부의 여론정치 노선, 직접민주주의 추구가 대의제를 흔들 수 있을 정도까지 진행돼 왔다는 점이다. 전문성과 대표성이 결여된 불특정 다수의 여론이 의회정치를 대체할 수 있을까.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의 입법적·입헌적 과정을 무시하고 부분적인 수단으로만 대의제를 이용하는 듯 보인다”며 “대의제를 거쳐서 집행권을 행사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대 민주주의는 서구 선진국을 포함해 대의제를 중심으로 한다. 직접민주주의가 이를 보완하는 것이지 과도해선 안 된다”며 “직접민주제도를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확장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어떤 기준으로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지 기준 없이 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의 조언이다.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의 의사를 수렴한다는 것에 원칙적으로는 찬성해야 되겠죠. 그러나 예를 들어 우리가 암 수술하는 데 환자들 얘기를 들어서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문성을 요하는 경우는 전문가들이 판단하는 건데 그런 사안들까지도 국민들에게 묻겠다,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사안별로 성격에 맞게끔 해야죠. 지금 세계 모든 나라가 대의제를 근간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뭡니까. (직접민주주의 도입에 있어) 옛날처럼 인구·지리 문제는 이제 인터넷을 통해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바로 전문성 때문입니다. 경제나 외교 같은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이 결정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안별로 구분을 해야지 (어떤 사안이든) 무조건 국민 의견만 들으면 다 좋다, 그건 아니라는 것이죠.”
 
 
  진보 성향 정치학자도 우려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사진=조선DB
  현 정권과 같은 ‘진보 성향’인 정치학자도 문재인 정부의 직접민주주의 노선을 우려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역임한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대의제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정치를 의회·정당 중심의 제도 안으로 수렴하는 대신 광장에서 운동의 정치를 확대하는 직접민주주의 추구는 커다란 방향 착오”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작년 11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한국의 민주화 30년-세계 보편적 의미와 전망’의 둘째 날 기조발제에서 이같이 말했다.
 
  당시 최 교수는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민주주의가 도약할 수 있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면서 “대표성이 없는 직접민주주의 방식이 갈등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청원에서는 어떤 이해집단은 과다대표되고, 어떤 집단은 과소대표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대의제의) 선거만큼 비용이 싼 참여방식은 없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과거 책 《양손잡이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17)에서 직접민주주의의 함정과 대의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은 시민 주권과 정치적 평등을 완벽하게 실현하는 직접민주주의가, 선출된 대표라는 매개자나 대행자에 의해서만 간접적으로 시민 주권을 실현해야 하는 대의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직접민주주의가 더 우월하지만, 현실에서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의민주주의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처럼 극히 동질적인 작은 정치 공동체에 살고 있지 않다. 현대인들은 사회 발전과 노동 분업의 수준에서 엄청나게 다르고, 가치·종교·사상도 제각각이다. 생업을 위해 시간에 쫓기는 바쁜 생활을 살며, 사회적 문제의 복잡함으로 인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모두 알 수는 없으며 정치 참여에 전념할 시간적·경제적·정신적 여유도 없다. 그리고 정치 문제를 직접 다룰 수 있는 지식도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는 전문적으로 정치에 전념해 통치의 역할을 하는 새로운 종류의 직업인이 필요하게 되었다. … 민주주의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보더라도 직접민주주의 때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참여의 폭도 넓었고 잘못된 통치자를 폭력 없이 퇴출시키는 데 있어서도 더 우월한 효과를 가졌다. 그러니 대의민주주의가 더 우월한 체제 아니겠나.〉
 
 
  “공론화위원회 난립, ‘무책임 행정’ 될 수도”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8월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진정한 의미로서의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사진=조선DB
  한편 현 정부가 진정한 의미로서의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직접민주주의라고 하는 건 정당도 없고 직업공직자, 직업정치인이 없는 것을 말한다. 시민들이 번갈아서 공직을 맡는 체제”라며 “(현 정부가) 국민투표·국민청원 이런 걸 하겠다는 것일 뿐, 냉정하게 보면 직접민주주의와 관련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기우 인하대 교수도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다.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며 “진정한 직접민주주의는 대의제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완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의 분석이다. “직접민주주의는 국민들이 국가 의사를 결정하는 거예요. 대의제를 실시하는 이유가 국민의 의사에 따라서 결정하겠다는 건데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래서 보조적인 견제장치를 두는 겁니다. 그런데 공론화위원회 같은 경우는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에요. 공적기관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거죠. (국가가) 어느 정도 결정을 해놓고 국민들에게 (동의 여부를) 묻는 게 직접민주주의인데, 공론화 과정은 자칫 ‘무책임 행정’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현 정부는 작년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에 이어 올해 대입제도 개편에 있어서도 공론화위원회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4월 29일 출범했지만 현장교원과 대입전문가 등이 빠진 인적구성으로 논란이 일었다. 대입제도의 방향과 내용을 논의하는 조직인데도 교육인사들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원장인 김영란 전 대법관을 포함해 총 7명의 위원은 교육과는 거리가 먼 소통·갈등관리·조사통계 분야 종사자들이었다.
 
  이에 진보 성향의 교육단체까지 지적에 나섰다.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사회적 교육위원회’는 지난 5월 3일 기자회견에서 “최소한의 원칙과 방향도 없이 복잡한 교육문제를 국민 여론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며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가 교육적이고 개혁적인 대입제도 개편안을 내놓는 대신 여론 수렴만 강조하고 있다. 자신들이 감당할 일을 여론에 떠넘겨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인터넷 댓글, 참여민주주의를 중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말 한미 FTA 같은 주요 정책을 추진할 때는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지 않았다”며 “직접민주주의는 ‘선동가’ 민주주의로 바뀔 수 있다. 진정한 집단지성은 투표를 통해 간접민주주의 방식으로 구현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론 아닌 선택이 民心”
 
  현 정부 인사들은 자신들의 직접민주주의 노선에 대해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문재인 정부의 여론정치는 대의제를 개선·보완하는 수준으로만 진행된다는 뜻이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작년 8월 22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무시하겠다는 게 아니고, 대의민주주의에 약점이 있으니 직접민주주의가 있으므로 해서 그것의 보완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장도 지난 3월 19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소환·발안제 등 청와대 개헌안에 반영된 직접민주주의 요소에 대해 “직접민주주의로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건 아니다”라며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대의민주주의 발전을 촉진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명구 성신여대 정치학 박사는 “참여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론(論)이라는 건 (정권에서) 자체적으로 세울 수 있는 것”이라면서도 “(직접민주주의라는 명목으로) 검증되지 않고 위험할 수 있는 제도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서 박사의 분석이다.
 
  “대의제라고 해서 100% 진선진미(盡善盡美)한 게 아니죠. 나름대로의 결함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직접민주주의를 보완 차원에서 사용하는 건 가능한 일이죠. 그러나 대의제를 무력화시키거나 침투해 들어오는 제도들은 경계해야 합니다. 가령 청와대 국민청원도 20만명이 답변 기준이라지만, (특정 세력이) 자신들의 조직을 통해서라면 수십만 명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국민여론보다 국민선택이 더 중요합니다. 여론은 아침과 저녁이 다를 수 있잖아요. 기준이 없는 거죠. 민심은 선거 같은 계기를 통해서 결정하는 것이지, 수시로 가서 책임 없이 (인터넷상의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죠. 국민선택을 제외한 나머지는 국민정서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흘러가는 분위기 있지 않습니까. 정치인들의 참고 대상은 될 수 있겠지만 결정 그 자체는 아니죠. 모든 결정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결정은 (민심이 담긴) 진정한 결정이 아니죠.”
 
  한 네티즌은 지난 4월 17일 ‘조선닷컴’ 토론마당 게시판에 청와대 국민청원 등 직접민주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인터넷 여론을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가 곱씹어볼 말이다. “어느 한 세력의 일방적 요구를 직접민주주의라 한다면, 나머지 국민은 국민 취급 못 받는 것이죠.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집단 이기주의라 해야 맞는 겁니다. 헌법을 바꿔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넣는다면 무엇이든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국민합의 없는 집단적 요구가 권력에 전달되는 것이 대관절 언제부터 민주주의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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