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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항소심 판결문’과 ‘최순실 1심 판결문’ 비교 분석

글 : 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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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종범 수첩의 ‘고○○ 대한항공 지점장’ 기록은 의문으로 남아
⊙ 동일한 사안(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뇌물 혐의 액수) 두고 서로 상이하게 판단
⊙ 뇌물공여자(이재용)는 36억원 줬지만, 뇌물수수자(최순실)는 72억원 받았다?
⊙ 특검이 주장했던 ‘포괄적 현안이란 묵시적 청탁’은 양 재판부 모두 인정 안 해
⊙ 최순실 1심 판결문에서 보이지 않는 국정농단의 ‘스모킹건’인 ‘태블릿PC’
⊙ 특검이 주장한 이른바 ‘○차 독대’도 이재용 부회장 측 손 들어 줘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판결문(좌)과 최순실씨 1심 판결문(우) 표지.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선고의 향방을 가를 두 재판이 지난 2월 열렸다. 바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2월 5일)과 비선실세 최순실(본명 최서원)씨에 대한 1심 재판(2월 13일)이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은 이재용 부회장은 항소심(서울고법 형사13부 심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최순실씨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심리)는 최씨에게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구속 수감 중이던 이 부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구속 중인 최씨는 중형을 면치 못했다.
 
  그동안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매개로 최순실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에게 승마 등 금전적 지원을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두 재판은 오는 4월로 예정된 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를 가늠할 수 있다.
 
  《월간조선》은 이재용 부회장의 2심 판결문과 최순실씨 1심 판결문을 입수해 각각의 재판부가 쟁점별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살펴봤다. 판결문 내용 중 서로 상이한 부분을 비롯해 두 사람의 판결문에서 유의미한 대목들을 추렸다.
 
 
  안종범 수첩이 증거능력을 갖는지 여부
 
  그간 언론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룬 부분이 바로 안종범 수첩이 증거능력을 갖는지 여부였다.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전문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최순실 1심 재판부는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판결문(A)과 최순실 1심 판결문(B)의 관련 내용이다.
 
  〈A: 원심이 안종범의 업무수첩이 그 기재 내용의 진실성과 관계없는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는 그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전제한 다음, 그 업무수첩의 작성 방법에 관하여 박 전 대통령이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었을 뿐 자신의 생각을 가감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안종범의 진술과 결합하여, 박 전 대통령이 안종범에게 지시한 내용, 박 전 대통령과 피고인 이재용 사이에 있었던 대화의 내용 등을 인정할 간접사실에 대한 증거로서는 전문증거가 아닌 본래증거로서의 증거능력과 증거가치를 가진다고 판단한 점은 이를 수긍할 수 없다.
 
  B: 업무수첩은 단독 면담에서 대통령과 개별 면담자 사이에 그 기재와 같은 내용의 대화가 있었다는 점에 관한 진술증거로는 전문법칙에 의해 증거능력이 없다고 할 것이지만, 그러한 내용의 대화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서는 증거능력이 있다.〉
 
  당초 검찰은 안종범 업무수첩을 두고, 최씨의 혐의를 뒷받침할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라고 자신했었다. 이처럼 동일한 사안을 두고 두 재판부의 상이한 판단이 나오자 법조계 안팎에서는 “결국 대법원 판결에서 법률심으로 정리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최씨의 법률대리인 측 관계자는 《월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안종범 수첩과 같이) 동일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대법원 판례를 통해 확인되지 않으면 엇갈린 판단이 나올 수 있다. 하급심에선 이런 일이 자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담당 판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종범 수첩의 고○○ 대한항공 지점장에 관한 기록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답변하는 고영태씨. 《한겨레》는 최순실씨가 고영태씨의 부탁을 받고 고씨의 친척인 대한항공 간부 고○○씨를 요직인 제주지점장으로 발령을 냈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고영태씨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고○○(이)라는 사람을 전혀 모른다. 친척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안종범 수첩과 관련해 또 하나의 쟁점은, 수첩 중 일부가 박 전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작성된 게 아니라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2016년 10월 25일 이후 안종범 전 수석에 의해 가필(加筆)되는 등 사후(事後) 작성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최씨 변호인 측에 따르면, 안종범 수첩에 2015년 7월 24일자와 25일자에 고○○ 대한항공 지점장에 관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2016년 10월 22일자 《한겨레》 는 고○○ 지점장 인사에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이 개입했다는 취지의 보도가 나갔다. 검찰은 양일간의 기록을 바탕으로 안 전 수석을 추궁했으나 나중에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
 
  신문의 보도 내용을 요약하면, 고○○씨가 국내로 복귀할 때 승진코스인 제주지점장으로 발령이 났는데, 이는 최순실씨가 고영태의 부탁을 받고 고영태의 친척인 고○○씨를 좋은 자리로 보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고영태는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고○○라는 사람은 전혀 모른다. 나하고 친척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서도 최씨가 고○○ 지점장 인사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박 전 대통령이 2015년 7월 25일 이재용 부회장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고○○ 지점장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7월 24일 수첩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변호인 측은 “(상식적으로 고려해 보면) 고○○ 부분은 안종범이 사후에 착오로 인해 적어 넣은 것이고 수첩에 적혀 있는 순서나 구조 등을 볼 때 사후 국정농단이 한창 이슈가 될 때 안종범이 수첩을 사후 대비를 위해 적어 넣으며 실수를 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그러나 최씨의 1심 재판부는 “대통령이 2차례에 걸쳐 대한항공 직원인 고○○의 실명을 언급하며 안종범을 통해 그의 인사에 관여한 것도 피고인으로부터 부탁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최순실씨 변호인 측은 ▲2016년 11월경 압수된 업무수첩 11권은 검사가 압수수색 절차에서 안종범을 기망해 압수했고 ▲2017년 1월경 압수된 업무수첩 39권은 제출자인 김○○(청와대 비서관-주)을 위 수첩의 적법한 소유자 내지 소지자로 볼 수 없어 김○○으로부터 위 수첩을 압수한 것은 위법이고 ▲결국 위 수첩들은 위법수집 증거에 해당해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도 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압수수색 영장 집행 당시 김○○이 피고인 안종범의 업무수첩을 지참하고 검찰에 출석하여 이를 제출한 이상, 김○○을 수첩의 소지자로 볼 수 있다”며 영장에 기재된 압수수색 절차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안종범 업무수첩이 위법수집 증거에 해당한다는 변호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판결문의 관련 대목이다.
 
  〈김○○은 이 법정에서 ‘피고인 안종범이 대통령의 지시사항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데 참고하라면서 업무수첩을 주었고,위 수첩을 활용한 후에는 알아서 처리하라고 이야기하였는데 자신이 혹시 몰라서 보관하고 있었으며, 이후 피고인 안종범으로부터 위 수첩을 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고 진술하였다. 피고인 안종범 또한 이 법정에서 김○○의 위와 같은 진술을 수긍하면서, ‘지시사항 이행상황 보고 등을 다 쓰고 난 뒤에는 폐기하라는 뜻으로 주었다’고 진술하였다. 김○○은 위와 같은 의사로 피고인 안종범으로부터 업무수첩을 받아 보관하다가 ‘수첩을 통해 실체적인 진실이 밝혀져 피고인 안종범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위 업무수첩들을 특검에 임의 제출하였고, 그 제출 과정에서 검사의 부적절한 언행은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위와 같은 진술을 종합하면, 김○○은 위 업무수첩들의 소유자, 소지자 또는 보관자의 지위에 있다고 보기 충분하다.〉
 
 
  뇌물 혐의 인정 액수
 
구속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을 ‘전문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최순실 1심 재판부는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 두 재판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됐다.
  각각의 재판부가 유죄라고 판단한 뇌물 액수도 차이를 보였다.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 측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를 위해 지급한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484만원을 비롯해 가액 불상의 마필·차량 무상 사용이익 부분은 유죄라고 보았다. 반면 최씨 1심 재판부는 최씨가 이 부회장 측으로부터 받은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484만원을 비롯해 마필 및 보험료 등을 포함해 총 72억9427만원이 뇌물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즉 뇌물공여자(이재용 부회장)는 36억원을 줬지만, 뇌물수수자(최순실씨)는 72억원을 받았다는 얘기다.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판결문(A)과 최순실 1심 판결문(B)의 관련 내용이다.
 
  〈A: 피고인들은 승마지원과 관련하여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에게 이 사건 용역대금을 뇌물로 공여하였을 뿐이고 마필들의 소유권은 최서원에게 이전하지 않았으므로 피고인들이 횡령한 재물은 이 사건 용역대금 합계액인 36억3484만원(282만9969유로)일 뿐이고, 비타나와 라우싱의 구입대금 및 보험료 합계 28억2811만원(211만7000유로) 상당은 이를 횡령하였다고 볼 수 없다.
 
  B: 삼성전자가 코어스포츠에 송금한 이 사건 용역대금은 합계 36억3484만원(282만 9969유로)에 이르는데, 위 용역대금은 코어스포츠를 사실상 1인 회사로서 개인 기업과 같이 운영하며 지배하던 피고인(최순실-주)에게 귀속되었고, 정유라의 승마훈련 지원 등 피고인의 사적 이익을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 외에도 피고인은 이재용 등으로부터 말 3필과 그에 대한 부대비용 합계 36억5943만원(276만 2830유로) 상당을 수수하고 차량들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익도 제공받았다. … 피고인의 딸인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과 관련하여 삼성그룹으로부터 수수한 합계 약 72억원 상당은 실질적으로 피고인에게 그 이익이 귀속되었다.〉
 
  최씨의 1심 형량을 좌우한 핵심 혐의는 바로 이 뇌물 수수였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최씨에게 36억원을 뇌물로 건넸고, 최씨는 이 부회장에게서 72억원을 뇌물로 받았다는 상반된 결과가 나옴으로써 동일한 사안을 두고 양 재판부가 서로 다른 판단을 내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가 36억원 상당을 뇌물공여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마필에 대한 소유권이 삼성에 남아 있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최씨의 1심 재판부는 “마필을 삼성이 아닌 최씨 측의 소유로 한다는 의사가 합치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마필에 대한 소유권이 삼성이 아닌 최씨에게로 넘어갔다고 봤다.
 
  당초 박영수 특검팀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등에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최씨에게 제공하고, 제공을 약속한 뇌물의 액수가 433억원이라고 보았다.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와 최씨의 1심 재판부가 인정한 뇌물의 액수는 박영수 특검팀이 주장한 금액보다 현저히 적다. 이는 박영수 특검팀이 기소 단계에서 무리하게 뇌물 액수를 산정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양 재판부가 판단한 뇌물액은, 향후 박 전 대통령 1심 선고 형량을 가늠할 수 있는 근거다. 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 중 가장 무거운 게 뇌물죄다. 뇌물수수 액수에 따라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형법은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의 형을 선고하도록 하고 있다. 1억원 이상이 되더라도 뇌물로 받은 금액이 늘어날수록 형량이 커진다.
 
  박 전 대통령 1심을 맡은 재판부는 13일 최씨의 1심 재판부와 같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에 1심 선고에서도 최씨에게 인정된 것과 같은 수뢰액 72억여 원으로 판단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와 공범관계로 이들의 뇌물액수를 다르게 판단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이재용 2심 판결문은 “승마지원을 통한 뇌물수수에 있어서 박 전 대통령은 피고인 이재용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최서원은 뇌물을 수령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승마지원을 통한 뇌물수수 범행에 이르는 핵심적 경과를 조종하거나 저지·촉진했다”며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은 뇌물수수죄의 공동정범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최씨의 판결문에도 삼성의 승마 지원과 관련해 “피고인과 대통령 사이의 공모관계 및 이 부분 범행에 대한 본질적 기여를 통한 피고인의 기능적 행위지배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특히 최씨의 판결문에는 ‘기능적 행위지배’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쉽게 말해 범죄에 있어 역할을 기능적으로 분담해 범행을 이루려는 공동정범(共同正犯) 간의 의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공동정범이란 2명 이상이 공동으로 죄를 범한 경우를 말한다. 더 쉽게 말하면 서로를 이용해 공동의 목적을 이루려는 의사를 갖고, 역할을 분담해 범죄를 같이 실행한 정황이 인정된다는 의미다. 사실상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공동정범으로 판단한 것이다.
 
 
  경영권 승계 현안 존재 여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 측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최씨와 정유라씨를 지원했고, 그 대가로 이 부회장은 삼성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보다 원활히 진행할 수 있었다는 요지의 시각을 보였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된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 여부를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할지도 관심거리였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들도 이 부분을 법리적으로 가장 문제 삼았었다.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이 부회장 측 변호인 A씨는 《월간조선》에 “포괄적 현안이란 표현을 두고 변호인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했다”고 전했다. A씨는 통상 형사재판에서는 모호한 개념을 놓고 법리 다툼을 벌이는 게 아닌데 특검이 주장하는 ‘포괄적 현안’ 표현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는 취지였다.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을 해석한다면, 이재용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명시적으로 청탁하진 않았지만, 두 사람이 암묵적으로 청탁임을 서로 인지했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 측이 박 전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최씨와 정유라씨를 지원했고, 그 대가로 이 부회장은 삼성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보다 원활히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게 특검 측의 시각이었다.
 
  당초 박영수 특검팀은 ▲중간금융지주제 도입 ▲삼성물산 합병 ▲신규순환출자고리 주식처분 최소화 ▲삼성생명 금융지주 전환 금융위원회 승인 등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한 ‘개별적 현안’이라고 봤다. 포괄적 승계 작업에 대해선 “이 부회장이 최소한의 개인자금을 사용해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해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이라고 규정했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 작업은 부정한 청탁의 대상으로서 범행 성립 여부에 관련해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며 “그에 대한 당사자들의 인식도 뚜렷하고 명확해야 하고 개괄적이거나 광범위한 내용의 인식만으로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부회장이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기 위한 실질적인 승계 작업이 없었다는 취지다.
 
  최씨 1심 재판부도 비슷한 판단을 했다. 재판부는 “특검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특검이 포괄적 현안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는 개별 현안들의 진행 자체가 이 부분 공소사실과 같은 ‘승계작업’을 위하여 이루어졌다거나, 이재용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라는 목표를 위하여 특검이 주장하는 순서대로 개별 현안들이 추진되었음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결국 이 부회장 2심 재판부에 이어 최씨 1심 재판부까지 승계작업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특검 공소사실의 주된 뼈대가 흔들리게 된 셈이다. 더욱이 최씨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 사건도 심리 중이어서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올 것이 거의 확정적이라고 법조계 안팎은 내다보고 있다.
 
 
  최순실 1심 판결문에서 유의미한 부분
 
  jtbc 태블릿PC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jtbc 태블릿PC는 판결문 ‘범죄사실’ 목록에 세 번 기록된 게 전부였다. ▲최서원의 범죄사실: “태블릿PC에서 추출한 주요 이메일”(I 책 순번 644) ▲최서원·신동빈의 범죄사실: 태블릿PC 청와대 문건유출 목록(순번 1890) ▲최서원의 범죄사실: 태블릿PC 청와대 문건유출 목록(순번 1890)이 그것이다.
 
  그동안 태블릿PC는 최순실 국정농단의 ‘스모킹건’으로 불렸다. 1심 재판부가 최순실씨에 대한 선고를 통해 이 태블릿PC의 진위 여하와 증거 능력에 대해 판단을 내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그에 관한 내용은 판결문에 사실상 전무했다. 안종범 수첩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태블릿PC에 무게중심을 둬 왔던 검찰 측의 주장을 사실상 배척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최순실씨 측은 최씨가 태블릿PC의 주인이 아니라는 근거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으로 확인한 결과 태블릿PC와 최씨의 모든 동선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 점 ▲드레스덴 연설문을 이 기기에 다운로드한 사용자 아이디는 제3자의 것으로 보이는 ‘송파랑’이라는 점 ▲태블릿PC의 다른 사용자로 ‘철수’ ‘가온’ ‘유연’ 등 여러 아이디가 저장돼 있어 복수의 인물이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은 점 등을 강조했다. 최씨 측은 태블릿PC는 조작·오염됐으므로 유죄의 증거로 쓰여선 안 된다는 주장도 폈다. jtbc가 밝힌 태블릿PC 입수 경위와 기기에 기록된 사용내역이 서로 어긋난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왔었다. 이에 대해서도 1심 재판부는 별다른 판단을 하지 않은 셈이다.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
 
  최씨의 1심 재판부는 정유라씨 승마 지원의 배경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승마 지원을 통한 뇌물수수에 있어 대통령은 이재용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피고인은 단순히 뇌물을 수령하는 지위를 넘어 승마 지원을 통한 뇌물수수 범행에 이르는 핵심적 경과를 조종하거나 저지·촉진하는 등 피고인과 대통령의 의사를 실행에 옮기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과 대통령 사이의 공모관계 및 이 부분 범행에 대한 본질적 기여를 통한 피고인의 기능적 행위지배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승마 지원에 개입한 근거로 ▲2014년 9월 15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삼성이 대한승마협회를 맡아 달라. 올림픽에 대비하여 승마 선수들에게 좋은 말도 사주고 전지훈련도 도와달라”고 요구한 점 ▲2015년 1월 9일 문체부 장관 김종덕과 문체부 2차관 김종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정유연(정유라의 개명 전 이름)과 같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학생을 정책적으로 잘 키워야 한다. 왜 이런 선수를 자꾸 기 죽이냐?”라고 말한 점 ▲대통령이 2015년 7월 25일 안가에서의 단독 면담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삼성이 승마협회 운영을 잘 못하고 있다. 한화보다 못한 것 같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해외 전지훈련도 보내고 좋은 말도 사주어야 하는데 그걸 안 하고 있다. 승마협회 지원 제대로 해라”고 질책한 점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최순실-주)은 이재용 등으로부터 정유라의 승마훈련을 지원받는 방안을 기획하고, 대한승마협회에 파견된 삼성그룹 임원들이 올림픽 출전 준비를 소홀히 하여 정유라의 승마훈련 지원에 차질이 생긴다고 생각하여 임원 교체까지 계획했다”고 적시했다. 이어 “대통령은 피고인으로부터 위와 같은 계획을 전해 듣고 이재용에게 그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질책하고, 올림픽 출전 준비와 승마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도 했다.
 
 
  각 재단의 설립주체
 
  재판부는 “각 재단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피고인 안종범의 지시에 의하여 설립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결국 위 각 재단의 설립 주체는 청와대라고 판단된다”고 적시했다. 안종범 전 수석이 대통령으로부터 ‘전경련 산하 기업체들로부터 금원을 갹출하여 각 300억원 규모의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을 설립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게 핵심 근거다.
 
  이후 안 전 수석은 전경련 부회장 이○○에게 재단 설립을 추진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이○○이 별다른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자 안 전 수석은 재단 설립과 관련한 대통령의 별다른 지시를 받지 않아 이○○에게 재단 설립 경과를 확인하지도 않았고, 재단 설립을 위한 모금 절차 등을 진행하라고 지시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2015년 10월 19일경 대통령으로부터 ‘2015년 10월 하순경으로 예정된 리커창 중국 총리의 방한 때 양국 문화재단 간에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여야 하니 재단 설립을 서두르라’는 지시를 받고 최○○에게 ‘300억원 규모의 문화재단을 즉시 설립하라’는 취지로 지시하고, 이○○에게도 ‘급하게 재단을 설립하여야 하니 전경련 직원을 청와대 회의에 참석시키라’고 지시했다는 게 판결문의 내용이다.
 
  이후 미르재단은 설립을 위한 출연금 모집에서부터 서류 준비, 법인설립 허가 등에 이르기까지 불과 일주일 만에 마칠 정도로 그 설립 과정이 매우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케이스포츠재단도 미르재단 설립 당시 안 전 수석이 이○○에게 ‘향후 체육 관련 재단도 설립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지시해 미르재단 설립 때와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 설립되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케이디코퍼레이션 관련 대통령과의 공모 관계
 
  최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 문○○의 남편 회사인 ‘케이디코퍼레이션’에 대한 자료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통해 대통령에게 건넸다고 한다. 판결문에 따르면, 최씨는 자료를 정 전 비서관에게 건네주면서 ‘기술이 좋은 회사인 것 같으니 한번 살펴봐 달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최씨는 자료를 정 전 비서관에게 건넨 사실은 있으나, 정 전 비서관을 통해 위 사업소개서를 대통령에게 전달한 사실은 없다는 주장을 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케이디코퍼레이션은 피고인 최서원으로부터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다. 로얄더치쉘 회장이 청와대를 방문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피고인 최서원이 전화하여 ‘케이디코퍼레이션이라는 기술력이 아주 뛰어난 유망 중소기업이 있다. 네덜란드 로얄더치쉘 회사에 제품을 납품하려고 하는데, 네덜란드 쪽 테스트 기간이 너무 길어서 제때 납품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님께 말씀드려서 그쪽에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법정에서 밝혔다는 게 판결문의 내용이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안종범 전 수석에게 ‘케이디코퍼레이션은 흡착제 관련 기술을 갖고 있는 훌륭한 회사인데 외국 기업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니 현대자동차에서 그 기술을 채택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현대자동차는 케이디코퍼레이션의 흡착제 기술을 납품 받았다는 게 재판부의 입장이다. 최씨는 그 대가로 문○○으로부터 샤넬백 1개(시가 1162만원 상당) 및 2회에 걸쳐 각 현금 2000만원씩을 받는 등 합계 5000만원이 넘는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재용 2심 판결문에서 유의미한 부분
 
  이른바 ‘○차 독대’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의 이른바 ‘○차 독대’가 있었는지 여부도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재판의 쟁점 중 하나였다. 이재용 부회장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처음 만난 시점이 2014년 9월 15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이었다고 적시했다. 이후 2015년 7월 25일(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요구), 2016년 2월 15일(영재센터 추가 지원 요구)까지 총 3차례 만남을 가졌다고 1심 재판부는 판단했다. 그러나 특검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이 대구에서의 만남 사흘 전인 2014년 9월 12일, 서울 삼청동 안가에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소장 변경을 항소심 재판부에 요구했다. 특검의 주장은 2014년 9월 15일 대구에서 두 사람이 만나기 전, 이미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는 데 교감이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부회장 2심 판결문의 관련 대목이다.
 
  〈대통령 경호처는 2014. 9. 12. 박 전 대통령이 안가에 온 사실은 확인하면서도 피고인 이재용이 안가에 방문하였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하였고, 안봉근은 “피고인 이재용으로부터 연락처가 기재되어 있는 명함을 받아 자신의 휴대전화에 전화번호를 저장해 둔 것 같다”라고 진술하였으나, 정작 피고인 이재용의 명함에는 휴대전화 번호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나아가 박 전 대통령과 피고인 이재용이 위 단독 면담에서 뇌물수수의 합의를 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특검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피고인 이재용이 2014. 9. 12. 박 전 대통령과 단독 면담을 하였다거나, 그 자리에서 승마지원에 의한 뇌물공여의 약속을 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월간조선》(2018년 2월호)은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재판에 앞서 이 부회장 변호인 A씨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A씨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청와대 경호실에 차적 조회한 사실까지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이재용 부회장이 2014년 9월 12일 삼청동 안가에 간 적이 있는지 청와대 경호실에 출입 기록을 확인하니까 ‘사람이 온 기록은 없다’는 답이 왔다”고 했다. 그러자 특검에선 ‘사람은 안 와도 차를 보내기 때문에 차량 기록이 있을 것이란 취지의 주장을 했다고 한다. 결국 차적 조회를 통해 ‘차량이 들어온 흔적도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었다.
 
 
  영재센터 관련 제3자 뇌물혐의
  (16억2800만원) 유죄 → 무죄

 
이규철 특검보와 함께 서 있는 박영수 특검(오른쪽).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박영수 특검팀이 기소한 몇 가지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이로 인해 박영수 특검팀이 ‘무리하게 기소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당초 이 부회장의 1심 재판부는 삼성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된 16억2800만원을 횡령으로 보아 유죄로 판단했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영재센터 지원행위는 ‘부정한 청탁’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이를 전제로 한 뇌물공여죄가 성립되지 않고, 피고인 이재용, 피고인 최○○, 피고인 장○○가 영재센터지원과 관련하여 지급한 16억2800만원은 영재센터와 체결한 후원계약에 따라 지급된 돈으로 봄이 상당하므로 위 금원 역시 위 피고인들이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횡령한 돈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 관련 뇌물공여
  (제3자 뇌물수수에서 뇌물공여로 변경)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는 두 재단 설립에 삼성이 지원한 204억원 규모의 지원을 뇌물공여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1심에서도 무죄로 판단된 부분이다.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이 성립하지 않으므로 이 부분 역시 무죄라고 본 것이다. 판결문의 관련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없으므로,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이 존재하고, 이러한 승계작업에 관하여 박 전 대통령이 이를 인식하였음을 전제로 한 원심의 판단은 부당하다 할 것이나, 박 전 대통령의 직무집행과 피고인 이재용, 피고인 최○○, 피고인 장○○의 재단지원 사이에 대가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원심의 판단은 결론에 있어서 정당하다.
 
  재단의 설립을 정부가 주도하고 전경련에서 주관한다는 사정 등을 전달받고, 각 계열사별로 출연이 가능한지 여부, 출연금액에 따라 경영위원회 등의 결정이 필요한지 아니면 담당 임원의 전결사항인지 여부 등을 검토한 후 내부 품의서나 기안서의 작성 및 결재과정을 거쳐 정상적인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서 출연을 결정하게 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므로,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다. 특검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초미의 관심사’ 박 전 대통령 1심 선고
 
  서울구치소에서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침묵에 빠져 있다. 재판 출석을 보이콧하며 결심공판 때 최후진술도 거부했다. 박 전 대통령은 선고공판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은 법원이 새로 지정해 준 국선변호인과의 접견도 거부하고 있다. 재판부는 지난 2월 단 한 차례의 일정만을 잡으며 진행 속도를 늦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박 전 대통령의 구형량(징역 30년)으로 미뤄 보아 1심에서 중형 선고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법조인은 “이와 별개로 진행될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와 불법 공천개입 사건 재판도 걸려 있어 박 전 대통령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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