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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우파

보수 정권에 미움받고 진보 정권에 억압받는 롯데

“정권에 당하고 ‘사드 부지’ 내줬다가 중국에 보복받고… 롯데그룹은 소설 〈노인과 바다〉 속 상어에게 뜯기는 물고기 신세”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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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단신으로 대한해협 건넌 신격호, 1967년부터 모국에 투자
⊙ 창립 50주년 맞은 올해 신격호·신동빈 부자에 검찰 10년 구형
⊙ 비자금 뒤지다 안 나오니 별건(別件)수사… 과거 캐기 수사로 돌변
⊙ 2015년 7월 신동주씨의 경영권 분쟁이 롯데 불행의 시작
⊙ 폭로전 이어지며 면세점 사업권 박탈당해 막대한 손실
⊙ 신동주씨, 일본에서 뜻 못 이루자 한국에 와 효성그룹 경영권 분쟁에 관여한 것과 비슷한 ‘전문조직’ 만들어 계속 저항
⊙ 효성분쟁 (조현문 전 부사장) 변호하던 우병우 변호사가 청와대 민정수석 되자, 검찰 대대적인 ‘롯데 손보기’ 나서
⊙ 비자금 증거 확보 못 하자 ‘별건수사’ 시작… 그 와중에 정부는 사드배치 부지로 롯데 골프장 지정
⊙ 국가안보 위해 사드배치 부지 내주고 중국에 보복당해 2조원 손실… 정부는 돕기는커녕 방관, 중국 눈치 보기만
⊙ 대통령 독대했다가 느닷없는 뇌물 혐의… 12월 22일 ‘운명의 1심 판결’
롯데지주 출범식 모습.
  ‘기업보국’ 기치 창업 50년… 칭찬은커녕 불운만 연속되는 롯데의 고난
 
  1941년 부산항에서 단신(單身)으로 시모노세키(下關)로 가는 연락선을 탄 청년은 일본의 대기업가가 됐다. 지금 한일(韓日) 롯데를 아우르는 신격호(辛格浩·96)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성공담은 신화(神話)가 됐다. 24년 만에 신 총괄회장은 김포공항을 통해 서울에 도착했다. 한국 롯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수준, 평소 조국의 경제사정과 국민생활을 안타깝게 여기던 신격호에게 들려온 ‘한일국교정상화’ 소식은 그에게 남다른 기회로 여겨졌다. 국내 기간(基幹)산업을 일으킬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 것이다. 마침 박정희 대통령도 청와대도 그에게 제철사업을 제안해 왔던 터였다.
 
  신 총괄회장은 종합제철소 건설을 위해 당시로선 거액인 3000만 엔과 전문인력 30여 명을 투입해 종합제철소 사업보고서를 완성했다. 얼마 후 제철사업은 정부 손으로 넘어갔다. 신격호는 섭섭할 만도 했지만 군소리 없이 준비했던 모든 것을 넘겼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대한민국 근대화의 견인차가 된 포항제철이다.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조차 그 포항제철의 제1기 고로(高爐) 건설계획을 처음 작성한 주인공이 신격호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이 일로 박 전 회장은 평생 롯데백화점만을 이용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하던 경제개발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지만 1973년 서울에는 외국 바이어가 머물 변변한 호텔이 없었다.
 
  정부는 옛 반도호텔과 국립도서관 땅에 고층 호텔을 지을 사업자를 찾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데 자신이 없었고 성공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때 신격호 총괄회장이 나서 그 시절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에 버금가는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38층의 최고급 호텔을 지었다.
 
  국빈(國賓)을 맞을 최고급 호텔을 보유하는 순간이었다. 그게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이다. 롯데호텔을 지을 때 일본 롯데는 여러 회사를 설립해 투자했다. 일본 롯데 산하의 L1, L2, L3… L12로 이름 매겨진 ‘페이퍼 컴퍼니’가 그것이다. 일본 롯데에선 한국에 투자한 흔적으로, 한국 롯데에는 지배구조로 남은 것이다.
 
1979년 3월 호텔롯데 전관 개관 행사 테이프커팅 모습.
  서울 롯데호텔을 짓기 전부터 신격호 총괄회장은 “일본에는 돈 벌러 간 것”이라는 초심(初心)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 유학 중 식품업으로 출발해 큰 기업을 일궜지만 염원은 조국경제를 살리는 것이었다. 신 총괄회장은 한일국교정상화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모국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 롯데는 호텔롯데, 롯데쇼핑, 호남석유화학을 잇달아 창립하거나 인수하면서, 식품, 유통, 관광, 석유화학 분야를 고루 갖춘 균형 잡힌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19만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연간 90조 매출에 100조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규모가 된 것이다.
 
  이런 롯데에 악운(惡運)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정점이 올 10월 30일과 11월 1일 검찰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각각 징역 10년을 구형한 것이다. 창립 50년 역사에 기업보국의 기치를 들고 출발한 롯데는 칭찬을 받기는커녕 부자(父子)가 동시에 구속될지 모르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시작은 무엇인가. 검찰은 2016년 10월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를 시작했다. 비자금 수사가 별 소득을 거두지 못하자 검찰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별건(別件)수사를 시작했다. 한번 문 목표물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속시키겠다는 전근대적인 수사기법을 이번에도 꺼내 든 것이다.
 
  검찰은 신동빈 회장에게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근거 없는 급여를 주었다는 혐의, 롯데시네마에서 신격호 총괄회장과 사실혼(事實婚) 관계인 전 미스롯데 출신 서미경씨와 신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전 롯데백화점 사장이 매점 운영을 했던 것에 대한 회사의 손실을 기소 이유라고 밝혔다.
 
  검찰은 또 손실을 보고 있는 롯데피에스넷에 증자를 해 회사에 손실을 끼치고 계열회사가 일을 하도록 끼워 넣기를 했다는 혐의도 신동빈 회장에게 적용했다. 재판을 앞둔 롯데 측은 말을 아끼면서도 “별건수사로 신동빈 회장에게 경영결정권이 넘어오기 10여 년 전 사건을 구형의 잣대로 삼았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96세의 고령(高齡)에 법원에서 정신미약자라는 판결을 받아 현재 ‘법정(한정)후견인’의 관리를 받는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10년을 구형한 것은 너무하다”고 지적했다. 롯데에 왜 불운이 이어지는 것일까. 대한민국 최고인 123층 건물을 세운 데 대한 세상의 시기인가? 역대 정권 비위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일까?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의 서막
 
롯데 경영진의 대국민사과 모습.
  롯데가 겪는 고통의 시작은 2015년 7월 말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다. 2015년 7월 말 일본 도쿄 신주쿠 롯데홀딩스 사무실에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일본 롯데 내 모든 직에서 해임된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장녀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 등 친족 5명이 신격호 총괄회장을 전세기에 태운 뒤 일본 롯데로 쳐들어갔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아버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신 총괄회장을 앞세워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일본 롯데 측 경영진 6명 전원을 해임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경영진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해임했다고 하여 세간에선 ‘손가락 해임’으로 불렸던 사건이다. 하지만 이들의 경영권 탈취 시도는 금세 진압됐다.
 
  신동빈 회장이 정식 이사회를 긴급소집한 뒤 장남(신동주)에게 휘둘려 판단 능력이 없어진 신격호 총괄회장을 앞세운 분란이 계속될 경우 회사가 혼란에 빠진다는 판단하에 그를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에서 해임한 것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아버지의 권위로 경영권 확보를 시도했지만 롯데 측은 상법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후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의 무대는 진화되기는커녕 한국으로 옮아갔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아버지 뜻이라며 임명장, 지시서, 동영상 등을 연이어 언론에 공개하며 본인의 정당성을 여론에 호소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이러한 행보는 신 전 부회장이 스스로 지었다는 평전(評傳)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꼬이게 된다.
 
  한국에선 정식으로 출간되진 않았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이 쓴 책으로 알려진 《나의 아버지 신격호》를 통해 아버지의 정신건강과 관련된 기존의 주장을 스스로 뒤집는 실수를 한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꼴이 된 것이다.
 
  책에 그는 “아버지의 기억 감퇴가 2010년에 시작됐다”면서 “2013년 12월 아버지는 소공동 롯데호텔 집무실에서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받았다. 아흔이 넘는 나이에 전신 마취 수술을 받은 뒤부터 그의 기억의 커튼이 내려가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2015년 당시 신동주 전 부회장의 주장은 모순이었다. 정신이 혼미한 아버지를 이용해 지시서와 임명장 등 가짜 서류를 만들었고 이를 활용했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신동빈 회장 측과 롯데는 이에 맞대응하기보다는 기업문화를 바꾸고 과거 가족 중심 회사의 틀에서 공사 구분이 안 되는 일들을 정리하는 데 주력했다.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동의가 더 시급하다고 본 듯하다.
 
  2015년 8월 11일 신 회장은 형제간 분쟁으로 인한 소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호텔롯데 상장을 통한 일본 지분율 축소, 연내 순환출자 80% 이상 해소, 중장기적 지주사 전환, 고용 및 사회공헌 확대 등 총 6대 개혁안을 발표한다. 이후 검찰수사로 지연된 호텔롯데 상장을 제외한 5개 항의 대국민 약속을 실행에 옮겼다.
 
  그룹 임직원과 이사회, 주총 등도 신 회장의 개혁의지에 화답했다. 같은 해 8월 4일 롯데그룹 37개 계열사 사장단이 신 회장 지지를 선언했고 8월 17일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신 회장은 확고한 경영권을 확인했다. 9월 17일 신 회장은 국회에 출석해 형제간 분쟁에 대해 사과하고 추가 다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영권 분쟁 2라운드와 롯데면세점 재승인 실패
 
2016년 6월 26일 1989년 잠실 롯데월드에서 출발해 27년 만에 문을 닫은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하지만 롯데사태는 신동빈 회장이나 롯데 측 희망대로만 굴러가지 않았다. 2015년 10월 8일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2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아버지를 등에 업고 경영권 복귀를 호소하면서 새로운 인물들, 이른바 특정 업무를 목표로 하는 전문조직을 등장시켰다.
 
  이날 신 전 부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친필 서명 위임장을 공개하고 향후 한국과 일본에 걸쳐 소송전을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그 옆에는 금융권 고위직 출신, 2명의 변호사 등이 함께했다. 이들은 얼마 후 SDJ코퍼레이션이라는 경영권 분쟁 거점 회사를 만들고 소송과 폭로를 이어갔다.
 
  분쟁 2라운드는 롯데 계열사의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과 같은 소송전, 언론을 통한 폭로전 등으로 얼룩졌다. 이런 양상은 앞선 효성그룹의 경영권 분쟁과 판박이처럼 닮은 것이었다. 신 전 부회장이 분쟁 거점으로 만든 SDJ코퍼레이션의 주요 구성원이 효성그룹 분쟁 담당자들과 동일 인물로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같은 해 11월 14일 롯데면세점 잠실월드타워점이 면세점 입찰에 탈락하면서 문을 닫았다. 시내 면세점 모델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키며 20년 넘게 운영한 핵심 영업점을 잃게 된 롯데는 충격에 빠졌다. 신 전 부회장과 조력인사들이 신동빈 회장의 경영실패 사례를 만들고자 경영권 분쟁 노이즈를 극심히 일으킨 결과였다.
 
  2017년 7월 11일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롯데의 탈락 이유는 관세청이 점수를 부당하게 산정해 업체 간 순위가 뒤바뀐 결과였다. 이 부당한 탈락으로 인해 롯데는 잠실월드타워점의 영업이 중단되고 당장 4400억원의 피해를 봐야 했다. 1300여 명의 무고한 직원들도 한순간에 일터를 잃고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2015년 11월 당시 업계에서는 롯데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여론 악화로 다른 기업이 어부지리로 사업권을 획득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롯데의 면세점 사업 탈락 사실은 자체 피해에 그치지 않고 롯데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또 다른 악재를 만든다. 사업권 재획득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그것이다.
 
 
  기업 분쟁 전문 인력과 청와대 민정수석
 
  2016년 2월 말, SDJ코퍼레이션이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대표인 동륭실업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했다는 내용의 공시를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착오로 인한 기재’라며 공시를 정정한다. SDJ코퍼레이션은 직원의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전혀 관계없는 두 회사가 금전거래를 했다는 공시는 의문을 낳았다.
 
  SDJ코퍼레이션과 동륭실업을 살펴보면 이 두 회사 사이엔 두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경영권 분쟁을 적극적으로 벌인 조직’ ‘특정 변호사’라는 점이다. 동륭실업은 효성그룹 계열사지만 조 전 부사장이 경영권 분쟁 이후에 경영해 왔다. ‘주차장 관리업’으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 무슨 사업을 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동륭실업은 2013년 7월 1일부터 2016년 7월 1일까지 조 전 부사장으로부터 운영자금 용도로 41억5000만원을 차입했다. 재계에선 동륭실업이 조 전 부사장의 분쟁을 위한 조직으로 운영되었다고 보는 시선이 우세하다. 우연의 일치인 듯 이런 점은 SDJ코퍼레이션도 다르지 않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롯데 경영일선에서 해임된 후 만든 SDJ코퍼레이션은 업태가 ‘무역 및 도매업’으로 등록돼 있다. 그런데 SDJ코퍼레이션 역시 매출 없이 지금까지 신 전 부회장 개인으로부터 약 270억원가량을 무이자로 차입했다. 사업을 위한 조직이라기보다는 특별한 목적이 있어 보이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특정 변호사가 양사(兩社) 모두의 법무대리인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변호사는 동륭실업의 비상임 이사, SDJ코퍼레이션의 감사로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벌어진 SDJ코퍼레이션의 황당한 공시는 실수였다는 해명이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분쟁 양상도 시작부터 끝까지 유사하다. 효성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조 전 부사장은 ‘회계장부열람등사가처분신청(4개 계열사 상대로 각각 제기)’을 중심으로 아버지와 장남을 상대로 10여 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SDJ코퍼레이션도 롯데쇼핑의 회계장부열람등사가처분신청 소송을 중심으로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 등 8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중 국내에서 진행 중인 소송은 모두 특정 변호사가 관여돼 있다.
 
  이러한 점들을 바탕으로 재계에서는 효성그룹과 롯데그룹의 분쟁 전문 인력은 ‘한 몸’과 같다는 말도 나왔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SDJ코퍼레이션의 브레인이자 핵심 인물로 여겨지는 금융권 출신 고위인사가 가세해 더 강화됐고, 효성그룹의 경영권 분쟁에서 조 전 부사장 측의 변호를 맡았던 사람이 우병우 당시 변호사였다.
 
  이들 ‘분쟁인력’들이 그토록 롯데에 대한 전면 수사를 원하던 시절, 우병우 변호사는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을 총지휘할 수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자리에 있었다. 잇단 우연의 일치인지 결국 롯데는 우병우 변호사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위세를 떨치던 2016년 6월 태풍처럼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휘몰아친 롯데그룹 검찰수사
 
2016년 6월 10일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집무실과 롯데그룹 정책본부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했다.
  롯데그룹 검찰수사의 배경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되는 사건은 법조계 비리와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의 수사 제보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지난해 4월 22일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구치소에서 착수금 문제로 다투다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사장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법조 브로커 수사로까지 확대되면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까지 연루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정운호 전 사장으로부터 검찰 직원이 금품을 받은 일까지 알려지게 됐다. 또한 자영업자인 친구로부터 룸살롱 스폰을 받은 김형준 부장 검사 사건이 이어진다.
 
  당시 여권의 총선 참패로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정권 말 레임덕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확대일로에 있었던 법조계 비리는 당시 집권층 입장에선 가중된 부담이었을 것이다. 검찰 브리핑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3월까지 롯데그룹에 대한 수사 제보가 이어졌다.
 
  그 제보란 ‘롯데 검찰수사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의 열정적인 제보’, 소송 과정을 통해 확보한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회계장부 등을 검찰에 제공했다는 의심이 그것이다. 지난해 6월 10일부터 시작된 롯데그룹 검찰수사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압수수색에 투입된 인원만 320여 명, 서울중앙지검 3개 부서 20여 명의 검사가 수사에 참여했다. 롯데가 압수수색 당한 곳만 17곳이며, 112일 동안 진행된 수사에 소환된 임직원이 500여 명 이상에 이른다. 검찰은 기업수사의 ‘정석’대로 거액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하며 롯데그룹을 전방위 압박했다.
 
  이에 따라 신동빈 회장의 개혁작업의 상징이었던 호텔롯데 상장은 해외 로드쇼가 중단됐고 미국 대형 PVC업체 액시올 인수 무산은 물론, 북남미 및 유럽 업체들과 추진 중이던 인수합병 작업도 중단되거나 무기한 연기됐다. 검찰수사로 인해 전산 등 내부 커뮤니케이션 루트가 마비되고 신규사업에 대한 검토나 계획이 잠정 중단되는 등 롯데그룹은 경영 뇌사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에 비해 롯데그룹 수사결과는 검찰 입장에선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그룹 이인원 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억울함을 전했듯, 신동빈 회장의 구속영장은 기각됐으며 그룹 차원의 비자금도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군사작전 하듯 요란하게 전개했지만 실적을 내지 못하자 검찰 주변에서는 또 하나의 무리한 정치 하명(下命)수사라는 의구심이 일었다.
 
 
  롯데 검찰수사 후유증과 사드 부지 제공의 늪
 
  검찰수사로 한창 휘청이던 롯데그룹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핵폭탄급 국방 공문이 도착했다. 제3 사드 부지를 찾던 미군과 국방부가 롯데의 경상북도 성주 골프장을 낙점했다고 9월 30일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이후 협상에서 국방부는 국회 비준을 피하려 국가의 토지 수용이 아닌 맞교환 방식을 선택하며 롯데에 수용을 요구했다.
 
  롯데는 유통, 식품, 화학, 개발 사업 등 다양한 영역의 대(對) 중국 사업을 하고 있어 사드를 반대하는 중국의 보복을 우려했다. 국가에 토지수용 방식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롯데 측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정부의 부실한 사후관리로 입은 막대한 대 중국 손실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눈치다.
 
  이후 롯데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무차별적이었고 한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했다. 중국 롯데마트 사업장 112개 중 87곳은 소방점검 등으로 인해 영업이 중단됐고 그나마 영업을 이어가는 점포들의 매출은 80% 이상 급감했다. 두 차례 총 6000억원가량의 자금을 긴급 수혈했지만 결국 롯데마트는 매각을 결정했다.
 
  롯데가 총 3조원을 투자해 온 선양 롯데타운 프로젝트 역시 소방점검 등 이유로 공사가 중단됐고 1조원을 투입한 청두 복합상업단지도 최근 상업시설 착공 인허가가 나오기 전까지 손을 놓고 있어야 했다. 업계에서는 이 두 사업의 건설 중단으로 인한 피해 규모만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의 다른 사업장과 공장시설도 당국의 안전점검, 소방점검 등에 시달려야 했고 중국 인민들의 반 롯데 시위, 불매운동 등은 극에 달했다. 중국 당국의 금한령으로 인한 롯데 관광 서비스 관련 계열사들의 피해도 컸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금한령으로 입은 피해액만 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지난 2분기 29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롯데호텔도 중국인 투숙객이 감소해 피해액이 수백억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드 부지 제공으로 인한 중국의 보복 피해 규모를 롯데가 직접 밝히진 않지만 재계에선 매출 하락 외에 유무형의 피해까지 합치면 규모가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중국인은 롯데가 능동적으로 사드 부지를 제공했고 그런 이유로 중국에 위협이 되는 행동을 했다고 믿는다. 이 같은 인식이 중국 관민이 롯데를 보복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국가안보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타국에서 무차별적으로 보복당하는 기업을 당시 정부는 도움을 주긴커녕 방치했다.
 
  신동빈 회장까지 나서 중국에 우호 메시지를 보내고 상황 타개에 노력했지만 더욱 커져만 가는 직간접적인 보복 수위를 낮추기엔 역부족이었다. 최근 한중 외교부 합의문 발표에 따른 양국 ‘해빙’ 국면이 조성되었지만 롯데는 여전히 중국 사업에서 막대한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면세점 피해자에서 뇌물 공여자로 뒤바뀐 롯데
 
  2015년 면세점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지난 7월 11일 발표된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객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은 일부 업체가 승리하면서 특혜설과 내정설이 나도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면세점 대전’을 둘러싼 의혹들이 베일을 벗은 것이다.
 
  1차 ‘면세점 대전’으로 불린 2015년 7월 심사 당시 관세청은 서울 시내 대기업 면세점 2곳으로 HDC신라면세점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점을 선정했다. 감사결과 관세청이 평가점수를 부당하게 산정해,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정당한 점수보다 많은 점수를 받았고 롯데면세점은 고배를 마셨다. 국내 1위 사업자인 롯데면세점을 제치고 신규 사업자인 한화면세점이 선정된 것을 두고 당시에도 사전 내정설이 언급되기도 했다. 결국 감사원은 롯데의 부당한 탈락 원인을 밝혀낸 것이다.
 
  2015년 11월 2차 ‘면세점 대전’에서도 롯데가 쓴맛을 봤다. 특허 만료 사업장에 대한 심사결과 롯데월드타워점 특허를 두산이 가져가게 된 것이다. 유통사업 경험이 적은 두산이 롯데를 꺾은 것에 대해 당시 업계 일각에서는 말이 많았다. 역시 부당한 심사결과로 인한 롯데의 두 번째 탈락이었다.
 
  1차 면세점 대전에서의 탈락은 롯데 입장에서 새로운 영업점 진출에 대한 실패였기 때문에 큰 손실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해 11월 14일 2차 대전의 부당한 탈락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3000억원이 넘는 투자와 함께 1300명의 직원들이 20년 넘게 공들여 운영해 온 잠실월드타워점의 폐점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언론은 집중보도했다. 업계 고용불안과 면세점 글로벌 경쟁력 약화 등을 지적하며 면세점 특허 관련 법안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국회의원들도 면세점 업계 혼란을 진화하고자 발 벗고 나섰다. 10년 특허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영업권을 갱신할 수 있도록 한 기존 법안을 5년 단축 및 원점 재심사로 개정되도록 주도한 홍종학 전 의원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이렇게 끝날 것처럼 보였던 롯데의 고난은 이어졌다. 3월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신동빈 롯데 회장 간 독대가 문제였다. 독대 후 K스포츠재단 정현식 전 사무총장 등이 롯데로 찾아와 경기도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을 명목으로 75억원을 요구했다. 롯데는 두 달여 후인 5월 말 결국 70억원을 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으로 보낸다.
 
  이를 두고 검찰은 잠실월드타워면세점 사업자 선정에 탈락한 롯데가 회생을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K스포츠재단 기부금 70억원)을 주고 면세점 사업자 관련 청탁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서의 최대 피해자인 롯데가 뇌물 공여자가 된 것이다. 신동빈 회장은 현재 이 일로 재판까지 받고 있다.
 
  롯데 입장으로선 연이은 악재의 연속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인다. 먼저 독대가 있었던 3월 14일 이전 관세청의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특허 입찰계획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사안이므로 박 전 대통령에게 굳이 청탁까지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을 하고 뇌물을 준 것이라면 시간을 끌며 금액을 깎아보려는 시도가 있었겠느냐는 주장이다. 실제 롯데는 기부금 대신 하남 체육시설을 직접 지어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하고 또 제시받은 기부금액을 절반 이하로 낮춰보려는 시도를 하며 두 달여 동안 시간을 끌었다.
 
 
  롯데는 어떤 기업인가
 
롯데는 지난해 10월 신동빈 회장이 발표한 경영혁신안에 따라 기업문화 개선과 사회공헌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재계 5위 롯데는 국내만 13만명이 일하고 있는 일터다. 롯데는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유통·관광 서비스 산업에 투자하는 등 국내 고용시장 안정화에 큰 역할을 해왔다. 식품, 유통 등 내수에 국한된 기업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화학(전체 매출 25%)과 관광 서비스 산업(전체 매출 10%)에도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러시아 등에 호텔과 화학공장을 짓고 유통업을 중심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등 20여 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이기도 하다.
 
  특히 롯데는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에 200여 곳의 대형 유통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국내 최고층이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건물인 롯데월드타워를 30년 만에 완성했고 이 역사는 최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이 된 롯데는 개혁에 버금가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 4월 새로운 비전 ‘라이프타임 밸류 크리에이터(Lifetime Value Creator)’를 선포하고 질적성장으로 경영 패러다임을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10월에는 지주사인 ‘롯데지주’를 설립하고 새로운 CI도 발표했다. 롯데그룹에는 생소한 기업 이미지 광고도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신동빈 회장이 발표한 경영혁신안에 따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준법경영위원회를 만들고 기업문화 개선과 사회공헌 확대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5년간 40조원 투자와 7만명 고용을 약속하며 국가경제 기여를 약속했다. 구태를 벗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경영으로 탈바꿈하겠다는 롯데의 혁신 행보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4월 3일 개장한 롯데월드타워는 세계 5위의 초고층빌딩으로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도 산적해 있다. 향후 호텔롯데 상장 과정에서 일본 지분율을 낮추고 이어 롯데지주로 편입시켜야 한다. 기업공개 여력이 있는 계열사들에 대한 상장도 서둘러야 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도 고삐를 늦출 수 없다. 투자와 고용 확대에 대한 국민과의 약속도 지켜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제 롯데가 고난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때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스스로 화를 자초한 측면이 있지만 이후 벌어진 검찰수사와 재판, 사드 부지 제공으로 인한 전방위 보복 피해, 부당한 면세점 탈락에 이은 뇌물 의혹 등은 하나의 사건이 아닌 연관된 사건으로 보인다.
 
  안보라는 정부 정책에 협조했다고 어마어마한 대 중국 피해를 당하고, 정부 측 기부금에 참여했다고 뇌물공여 의혹으로 혹독한 수사와 재판을 받는 기업, 돈 벌러 일본에 간 초심에 충실하기 위해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재원으로 국가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롯데, 그 고통이 언제 끝날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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