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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집권 한 달

57%가 노무현 정부 사람

수치상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권 2기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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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출신 전성시대… 사법 개혁, 경제 개혁의 키 참여연대가 쥐어

많은 국민이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2기’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정부가 돼주기를 원하고 있지만…

⊙ 114명 중 66명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 및 정부 각 산하기관에서 활동
⊙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가까이서 보좌하는 3인방(윤건영, 송인배, 유송화) 모두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
⊙ 장차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파견 경력 인사 다수
⊙ 외교·안보 라인 노무현 정부 출신이 점령
⊙ 청(靑) 사정 라인도 노무현 정부 출신
⊙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서 “국민 모두의 정부 되겠다”고 통합 강조했지만
    ‘문 정부는 노무현 2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듯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권 2기로 평가되는 것을 우려했다. 이호철, 양정철 등 노무현 정부에서 활동했던 문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2선 후퇴를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월간조선》이 문 대통령이 현재까지 임명한 청와대 참모, 내각, 정부 요직 인사 114명을 분석한 결과 66명(57%)이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거나, 정부 각 부처 산하기관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비서실장·민정수석비서관 등을 맡았던 만큼 당시 활동했던 인물을 많이 파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 지근거리 보좌 3인방 모두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3인방 모두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이다. 왼쪽부터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송인배 제1부속실장, 유송화 제2부속실장.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2003년 정무2비서관실 행정관, 기획조정비서관실 행정관, 2006년 정무기획비서관을 지냈다.
 
  송인배 제1부속실장은 1998년 당시 노무현 의원 비서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민정수석실 행정관(2004년 8월), 사회조정비서관실 행정관(2007년 5월), 사회조정2비서관(2007년 5월~2007년 10월)직을 수행했다.
 
  유송화 청와대 제2부속실장은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참여센터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민참여센터는 각료 인선 추천을 받는 곳이었다. 이후 유 실장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실 행정관으로 2007년까지 활동했다. 문 대통령은 2004년 5월부터 2005년 1월까지 시민사회수석이었다.
 
  권혁기 춘추관 관장은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 계보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 청년조직국장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책수석비서관실 행정관(2003년), 홍보수석비서관실 행정관(2004년)을 지냈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노무현 정부 때 장관급인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과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를 역임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밑그림을 그렸다.
 
  홍석현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주미대사를 지냈으며 유엔사무총장 도전에도 뜻을 둔 적이 있다. 홍 특보는 대선 전인 2017년 4월 16일 인터넷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여러 개의 동영상을 올렸다. 그중 하나가 ‘노무현의 선택, 홍석현의 선택’ 제목의 영상이었다. 홍 특보는 영상을 통해 자신이 노무현 정부 시절 받았던 공직 제의에 대해 밝혔다. 2분48초짜리 이 영상에선 홍 특보의 사진 위로 그가 쓴 글이 자막으로 올라갔다. 자막과 육성 인터뷰에서 그는 “어느 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제게 유엔사무총장 한국 후보와 주미대사직을 함께 제안하며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역할 해 줄 것을 요청해 온 적이 있다”며 “저는 하루하루 고뇌의 밤을 보냈다. 저의 태생적 배경, 재벌 관련 이미지, 언론사 사주라는 지위가 오히려 많은 것을 더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됐다. 고뇌의 밤은 매일매일 깊어만 갔다”고 했다. 홍 특보는 이어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왜 나, 홍석현을 선택하셨을까…. 그분 주변에는 능력 좋고 국제 외교무대에서 검증받은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신데. 고뇌의 밤은 한 달이나 갔다”며 “그리고 노무현의 선택을 믿기로 했다. 그분의 선택이 미래였기 때문이다. 그분의 선택이 미래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했다.
 
  하승창 사회혁신수석은 2005년 10월부터 교육인적자원부 제2기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이었다.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이자 정치적 스승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인연의 출발점은 노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맡았던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장관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예산 및 세제 협의 등을 위해 당시 재경부 세제실장이던 김 위원장을 만났다. 김 실장의 실력에 반한 노 전 대통령은 “최고의 공무원”이라고 극찬한 뒤 해양수산부 차관으로 영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정통 재무관료 출신인 김 위원장은 재경부 차관이나 관세청장 등 다른 쪽으로 가길 원했다. 이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섰고, 노 전 대통령은 눈여겨본 김 위원장을 요직에 임명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2003년 7월 30일부터 2004년 3월까지 국무조정실 성매매방지기획단 위원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인권위가 가장 꽃피었던 시절은 노무현 정부 때였다. 당시 인권위는 정부의 인권 침해 문제와 개선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인권위는 1997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 인권위는 다양한 논의와 입법을 거쳐 DJ 임기 4년 차인 2001년 11월 25일 출범했다. ‘1세대 인권변호사’인 고 김창국 변호사가 초대위원장을 지냈다. 인권위는 독립된 국가기관으로, 국가권력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자임했다.
 
  조현옥 인사수석은 노무현 정부 초기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인 지난 2006~2007년 청와대 인사수석실 균형인사비서관(2006년 5월~2007년 8월)을 역임했다. 당시 문 대통령과도 처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대를 졸업한 7급 공무원 출신으로 요직인 총무비서관에 발탁돼 화제가 된 이정도 총무비서관도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수석실 경제정책행정관(2006년 6월~2008년 3월)으로 활동했다. 당시 이 비서관은 정책실장이던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의 비서 역할을 했다. 이 비서관은 변 전 장관과 가족같이 지냈다고 한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노무현 정부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2003년 2월~2004년 1월)을 지낸 윤영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의 동생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의 누나는 노무현 정부 시절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장하진 전 장관이다.
 
  김수현 사회수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인 시절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전문위원(2003년 1월)으로 일했고, 2005~2008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사회정책비서관과 제10대 환경부 차관 등을 지냈다.
 
  그는 2005년 국민경제비서관으로 재직할 당시 ‘8·31 부동산종합대책’ 수립을 실무적으로 이끌었다. 또 종합부동산세 도입에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외무고시 5회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때인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을 역임했다.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0년 정당 건설을 내세우며 창당한 당이다.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은 대표적인 남북군사회담 전문가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7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실무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해 12월 12일 판문점에서 열린 회담에서 남북관리구역의 3통(통행, 통신, 통관)을 위한 군사보장합의서 체결과 서해 공동어로구역 설정 문제를 북한과 협의했다. 여기에서 논의한 공동어로구역 문제는 북방한계선(NLL)과 맞물린 민감한 사안으로 앞선 10월에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에서 먼저 논의된 바 있다. 장성급 회담은 정상 간 합의에 대한 실질적인 이행 과정을 협의하는 자리였다. 정상회담의 NLL 논의는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정상회담 회의록이 공개되면서 논란의 중심으로 등장했었다.
 
  연세대 교수 시절 부적절한 처신 문제로 사의를 표명한 김기정 전 국가안보실 2차장도 2004년 대통령 자문기구인 ‘21세기 위원회’ 위원이었다.
 
  주영훈 경호실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가족부장’을 맡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족들의 관저 경호를 담당했다.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에는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가 경호팀장으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까지 경호를 담당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뒤에도 권양숙 여사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이 때문에 ‘봉하마을 실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5월 9일 오후 10시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페이스북에 “벅찬 감동이다. 봉하에 가고 싶다. (권양숙) 여사님 부둥켜안고 목 놓아 울고 싶다”고 적었다.
 
 
  사정 라인 모두 노무현 정부 때 활동
 
청와대 사정 라인도 모두 노무현 정부 출신이다. 왼쪽부터 조국 민정수석, 백원우 민정비서관, 김종호 공직기강비서관.
  나소열 자치분권비서관은 1998년 2월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특보였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 정무보좌역을 맡기도 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문대림 제도개선비서관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연설원이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국회 입법 보좌관으로 일했다.
 
  한병도 정무비서관은 노무현 정권 당시 대통령 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2003년)이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현 대통령 소속 지역발전위원회)는 노무현 정부 때 신설됐다.
 
  황태규 균형발전비서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백원우 민정비서관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정무비서를 지냈으며, 이후 청와대에 입성해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일했다. 1994년 고 제정구 의원 비서관으로 일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로 있던 1997년 보좌역으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안희정 충남지사가 백 비서관을 노 전 대통령에게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정무비서를 지낸 그는 이후 청와대에 입성해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실 행정관(2003년 8월~2004년 5월)으로 일했다.
 
  감사원 공공기관 감사국장 출신인 민정수석실 산하 김종호 공직기강비서관은 노무현 정부 때 국정상황실에 행정관으로 파견을 나왔다.
 
  1984년도 대입에서 학력고사(지금의 수능) 전국 수석을 차지한 황덕순 고용노동비서관은 노무현 정부 초(2003년)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행정관으로 일했다.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는 노 전 대통령 때 생긴 것이다. 2005년에는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비서관이 됐다. 당시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비서관이던 현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 국민경제비서관으로 옮겨 가면서 그 자리에 발탁됐다.
 
  김우호 인사비서관도 노무현 정부 때 인사수석실 행정관(2006년 5월) 경험이 있다.
 
  정태호 정책기획비서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팀 행정관(2003~2004년 5월)을 시작으로 정무기획비서관(2004년 5월~2005년 7월), 정책조정비서관(2005년 7월~2005년 10월), 기획조정비서관(2005년 10월~2006년 4월), 대변인(2006년 4~8월), 정무비서관 겸 정무팀 팀장(2006년 8월~2007년 6월)을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 양방 주치의인 송인성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 내과 명예교수는 2003~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치의로도 활동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해 안악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내과 교수로 재직했다. 위암 진단 등 소화기 질환의 권위자로 꼽힌다.
 
  조한기 의전비서관은 노무현 정부 때 국무총리실 의전비서관(2006년)을 역임했다. 당시 국무총리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명숙 전 의원이었다. 한 전 총리는 19대 대선 직후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다시 봄바람이 분다”는 내용의 ‘옥중(獄中) 편지’를 지인에게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기획재정부 출신의 이호승 일자리비서관은 과장일 당시(2006년 8월~2008년 2월)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에 파견 근무를 했다.
 
  김혜애 기후환경비서관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에 반발하는 전국의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탄핵무효 범국민행동’ 공동상황실장으로 활동했다.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7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대통령비서실 사회정책 행정관,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으로 일했다.
 
  채희봉 산업정책비서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부터 2008년 2월까지 산업정책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낸 이력이 있다. 행정관에서 비서관으로 승진한 셈이다.
 
  오종식 정무기획비서관실 선임 행정관은 노무현 정부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실 행정관을 지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대선 초기 캠프인 ‘광흥창팀’에서 활동했다.
 
  유행렬 자치분권비서관실 행정관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국민참여운동 충북본부 사무국장이었다.
 
 
  장관 후보자 다수 노무현 정부 청와대 경력
 
이낙연 국무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인 시절(2002년 12월 21일~2003년 3월) 대변인을 맡았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인 시절(2002년 12월 21일~2003년 3월) 대변인을 맡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역대 모든 정권에서 요직에 기용돼 왔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김대중 정부 때는 대통령비서실장 보좌관(국장급)으로 일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으로 근무하며 ‘비전 2030’ 계획 설계를 주도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김 부총리는 경제 관료로서 꽃을 피웠다.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국정과제비서관을 지내며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의 중심에 있었고, 이어 기획재정부 예산실장과 2차관을 지냈다. 그는 기재부 2차관 시절 “재벌가 손자까지 정부가 보육비를 대주는 것은 문제 있다”며 무상 보육에 반대해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초대 국무조정실장(장관급)에 기용됐다. 국무조정실장으로 재임 중이던 2013년 10월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장남이 사망했을 때 주변에 알리지 않고 발인한 바로 다음날 원전(原電) 비리 종합대책을 직접 발표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는 장남 사망 이후 “이제 가족을 돌보겠다”며 2014년 국무조정실장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때 국가인권위원장(2006~2009년)을 했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인권위원(2007~2010년)을 지냈다. 안 후보자는 2009년 인권위원장 임기(3년)를 4개월 남기고 이명박 정부의 인권위원 축소 방침 등에 반발해 사퇴했다. 그는 퇴임사에서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며 “제각기 가슴에 작은 칼을 벼리면서 창천을 향해 맘껏 검무를 펼칠 대명천지 그날을 기다리자”고 했다. 2004년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장 시절엔 검찰청법에서 상명하복(上命下服) 조항을 삭제하는 데 역할을 했다. 안 후보자는 서울대에서 ‘법과 문학’을 오랫동안 강의했고, 저술가로도 유명하다. 미국 사법 체계와 문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글러스 미 연방대법관 평전》 《법과 문학 사이》 등 저서를 냈다. 지난해 양성 평등 문제 등을 다룬 책 《남자란 무엇인가》를 낸 뒤 “남자로 태어나 엄청난 특권을 누린 세대에 속하지만, 동시에 남자답게 사는 게 힘들었던 세대”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대리인이던 2004년 서울대 법대학장인 안 후보자를 찾아가 ‘비중 있는 헌법 교수 중 대통령 편을 들어주려는 사람이 없다’며 도움을 청했다. 처음엔 거절했던 안 후보자는 다른 교수들이 모두 요청을 거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도움이 되면 내 이름을 써도 좋고, 필요하면 직접 헌재에 나가겠다”고 했다. 이 같은 인연으로 안 후보자는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선대위의 ‘새로운 정치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부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중장)을 지내며 ‘국방 개혁 2020’ 수립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계획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송 후보자는 2008년 전역한 지 4년 만인 2012년 문 대통령 지지 단체인 ‘담쟁이포럼’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이번 대선에선 문재인 캠프 국방안보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방·안보 분야 공약을 주도했다. 송 후보자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해군 2함대 제2전투전단장으로 있을 때 남북한 함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에서 충돌한 제1연평해전을 완승으로 이끌었던 주역으로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새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회분과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열린우리당 환경특위 위원장(2004년 7월)을 거쳐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 등을 거친 뒤 노무현 정부 청와대 민원제안비서관(2005년 1월~2006년 3월)과 지속가능발전비서관(2006년 3월~2008년) 등을 지냈다. 올해 대선에선 민주당 경선 후보로 출마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캠프에서 활동했다. 1956년 서울 출신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 석사, 고려대 디지털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 후보자에겐 ‘꼼꼼하고 심지가 굳은 원칙론자’라는 평과 함께 ‘타협, 소통이 부족하다’는 말이 동시에 나온다. 최근 국정기획자문위 환경부 업무보고 자리에서는 “가습기 살균제와 미세먼지 사태 등은 환경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해 생긴 일” “국민들 시선이 차갑다”는 등 날 선 비판을 하기도 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문 대통령은 물론, 노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지난 1987년 평민련 당보 기자로 정치권에 발을 들인 그는 1998년 2월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 부대변인을 시작으로 2002년 노무현 후보 부대변인을 맡으며 노무현 정부와 인연을 맺었다. 2003년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과 정무2비서관을 지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진보 성향 문화예술인단체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회장을 역임했다.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때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원장,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센터 이사장을 역임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안보정책비서관이었다. 조 후보자는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 시절이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단독 회담에 배석해 회담 내용을 정리했다. 당초 그는 지인들에게 “청와대에서 연락이 오지도 않았지만 오더라도 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현재 2차 남북정상회담의 후유증을 앓고 있어서다. 그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공개됐을 때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는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1·2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현재 대법원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마음을 비운 데는 남북관계가 현실정치에 이용되는 모습을 보고 실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전환점으로 판단했던 남북정상회담이 선거전의 소재로 이용되는 걸 보고 회의를 느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임명되면서 명예회복의 기회를 얻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당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2004년 11월 취임, 임기 3년) 이사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 동력이었던 민주화운동 정신을 국가적으로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2001년 7월 24일 제정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법률 제6495호)’에 의해 설립된 행정안전부 산하 특수법인이다.
 
 
  차관도 마찬가지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라인은 ‘노무현 정부 시즌2’로 봐도 무방하다. 대부분 노무현 정부 출신 인사들이다. 왼쪽부터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 서훈 국정원장, 서주석 국방부 차관,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 임성남 외교부 1차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2003년 6월~2004년 5월까지 공정거래위원장 자문기구인 정쟁정책자문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이용섭 일자리 위원장은 세무 관료로 공직 생활을 시작, 관세청장으로 있던 2003년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14대 국세청장(2003년 3월~2005년 3월)으로 발탁된 뒤 청와대 혁신관리수석(2005년 4월~2006년 3월), 행자부(2006년 3월~2006년 12월)·제14대 건교부(현 국토교통부 2006년 12월~2008년 2월) 장관 등을 거쳤다.
 
  김외숙 법제처장은 법무법인 부산 출신이다. 법무법인 부산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몸담았던 곳이다. 1982년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함께 운영했던 합동법률사무소가 모체로 당시 인권·시국·노동 사건을 주로 맡았다. 김 신임 법제처장은 이 합동법률사무소에 1992년부터 영입돼 함께 활동한 인물로 1995년 7월 ‘법무법인 부산’ 설립 당시부터 초창기 멤버 중 하나다.
 
  현재 법무법인 부산 대표 변호사인 정재성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 2명을 배출한 법무법인’으로 법무법인 부산이 주목받자 정 변호사는 “우리 법무법인으로서는 무한한 영광이지만 법인의 외연을 확장할 뜻은 없다”며 “공익 의무와 시민 봉사에 더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황인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2004년 5월~2005년 9월)과 시민사회수석(2005년 11월~2006년 5월)을 역임했다. 이후에는 외교통상부 평화협력대사와 2007년 통일부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 민간위원을 지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당시 통신위원회(이명박 정부 때 폐지된 정보통신부 산하기관) 비상임위원이었다. 통신위원회는 통신사업의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과 이용자의 권익보호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조사할 목적으로 설립됐었다.
 
  노무현 정부 핵심 인사 중 가장 먼저 기용된 이는 서훈 국정원장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과 국정원 대북전략실장을 역임하고 2006년 11월 북한 업무를 총괄하는 3차장에 기용됐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총괄하고 정상회담문 작성을 주도했다. 서 원장은 김정일을 가장 많이 만나본 국내 인사로 꼽힌다. 김정일뿐 아니라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2013년 사망),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2015년 사망) 등과도 회담했다.
 
  조남관 국가정보원 감찰실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사정비서관실 행정관(2006년 4월~2008년 2월)으로 일했다. 그에 앞서 2000년 김대중 정부 때는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1과장으로 재직하며 1973년 중앙정보부 조사 중 사망한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 의문사 사건의 조사를 맡기도 했다.
 
  노영민 주중대사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선대위 충북본부장이었다. 2003년에는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 추진기획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실(행정관·2004년 4월~2005년 1월), 정책기획수석실(선임행정관·2005년 1월~2006년 6월), 정책실(정책 보좌관·2006년 7월~2007년 7월)에서 정책과 예산을 조율했다. 수치 등 ‘디테일’에 강해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평가와 함께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격려금을 받기도 했다. 그는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 있는 인사라도 노무현 정부 출신이면 기용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통일외교안보정책 수석비서관(2006년 2~12월)을 지낸 안보 전문가다. 노무현 정부의 국방 개혁을 주도한 경험이 있어 일찌감치 문재인 정부에서도 중용이 예상됐다. 국방연구원에서 북한 군사전략을 포함한 안보 분야 연구 활동을 하다가 2002년 대선 당시 발탁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외교·안보 핵심 브레인으로 자리 잡았다. 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으로 활약한 그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기획실 실장(1급)을 거쳐, 통일외교안보수석으로 일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라인으로 ‘자주파’로 분류됐다. 서 차관은 2007년 8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영해선이라고 하면 위헌적인 주장’이라는 글을 언론에 기고해 논란이 됐다. 그는 기고문에서 “휴전 직후 유엔군 사령관이 북방한계선을 설정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는데, 이제 그것이 영해선이라면 우리 영토를 유엔군 사령관이 지정한 셈이 된다”며 “또 이 선이 영해선이라면 육상의 군사분계선도 국경선이라고 해야 할 텐데 정작 그런 주장은 없다”고 했다. 그의 주장은 당시 NLL이 50여 년간 실질적 해상 경계선 역할을 해온 이상 ‘영토적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기존의 시각과 충돌했다.
 
  권덕철 복지부 차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청와대 선임 행정관으로 당시 사회정책비서관이던 김수현 현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과 함께 일했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정책 수립 업무를 맡았고, 노무현 정부 때는 국가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예산처 재정총괄과장을 지냈다.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의 비서관으로 일한 적이 있어 ‘변양균 사단’의 일원으로 불린다.
 
  조현 외교부 2차관은 외교부에서 통상기구과장, 다자통상국심의관 등 통상 위주의 경력을 쌓던 중 노무현 정부 첫해인 2003년 청와대에 파견돼 정책상황실 외무이사관으로 일했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담당관으로 일했다. 통일부 정책통으로 남북회담 경험도 풍부하다.
 
  심보균 행정자치부 차관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인사제도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2006년 행정자치부 인사혁신팀장으로서 총액인건비제를 도입해 지자체에 인사운영 자율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김용수 미래부 2차관은 노무현 정부 때 정보통신부 통신기획과장, 이명박 정부 때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진흥기획관 등을 거쳤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는 초대 청와대 정보방송통신비서관과 미래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을 지냈다. 지난 4월에는 임기 3년의 방통위 상임위원(정부 몫)에 임명되기도 했다.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북핵외교기획단장으로 북핵 협상을 실무적으로 이끌었다.
 
  류희인 안전처 차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위기관리 체계를 기획·구축·운영한 경험을 가진 안전 분야 전문가다. 경기 파주 출신으로 휘문고·공군사관학교(27기)를 졸업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 위기관리센터장·사무차장, 대통령비서실 위기관리비서관을 거쳤다.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은 광주 출신으로 광주 중앙여고와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왔다. 노무현 청와대에서 양극화민생대책비서관(2007년 2월~2008년 2월)을 지냈으며,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젠더사회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대통령 지명 몫 상임위원에 임명된 고삼석 전 방통위 상임위원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으며, 2012년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일했다.
 
 
  시민단체 인사 다수 임명
 
문재인 정부 내각 및 청와대의 시민단체 출신 인사. 김상곤 교육장관, 안경환 법무장관, 김은경 환경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안병옥 환경부 차관, 장하성 정책실장, 조국 민정수석, 조현옥 인사수석, 하승창 사회혁신 수석, 김수현 사회수석, 김금옥 시민사회비서관,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 김혜애 기후환경비서관. 그래픽=조선일보
  《월간조선》 분석 결과 문재인 정부 1기 청와대와 내각에 임명된 인사 다수가 시민단체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내각에서는 김상곤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의장, 전국교수노조 위원장을 지냈다.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활동했고, 당시 센터 부소장은 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에서 일했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도 장 정책실장과 함께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에서 ‘경제 민주화 운동’을 했다. 사법 개혁, 경제 개혁의 키를 참여연대가 쥔 셈이다.
 
  환경 분야는 환경단체 출신이 장악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대구 페놀 사태 때부터 환경운동에 참여했고, 안병옥 환경부 차관은 시민환경연구소·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출신이다. 이들과 환경 분야 정책을 조율하는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에는 녹색연합 공동대표를 지낸 김혜애씨가 내정됐다.
 
  청와대에는 시민단체 출신이 더 많다. 시민단체와의 소통을 담당하는 하승창 사회혁신수석은 경실련 정책실장,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을 지냈다. 그 밑의 김금옥 시민사회비서관은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활동가였다. 이미경 전 의원 보좌관이면서 정대협(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활동했던 신미숙씨는 이번에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 내정됐다. 인사가 성(性), 지역, 학력 등에 치우침이 있는지 체크하고 시정하는 자리다. 그의 상관인 조현옥 인사수석은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를 지냈다.
 
  황인성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재야 운동(전국연합)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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