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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시대 - 역대 대통령들에게 배워라

노무현의 탈(脫)권위 리더십

기득권·특권 축소, 국민 참여 과감히 확대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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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탈하고 진솔한 모습으로 국정 수행 … 당선 직후 대중목욕탕 찾기도
⊙ 김대중 정권 시절 ‘ㄷ’자 형태였던 수석비서관 회의장 구조를 토론하기 위해 두 줄로 바꿔
⊙ ‘탈권위’가 대통령 권위 자체 약화로 이어질 수 있어
⊙ 노무현 전 대통령, 거친 발언으로 스스로 자신의 위상 추락시킨 경험
  ■ 2002년 12월 21일
 
  제16대 대통령 선거 직후인 2002년 12월 2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1박2일 휴가를 떠났다. 그가 여장을 푼 곳은 호텔이 아닌 서귀포시 강정동 내 콘도형 민박집(펜션)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제주로 갈 때도 공군전용기 대신에 김포공항에서 일반 민항기를 이용했다. 노 전 대통령은 “특별한 뜻은 없고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는 습관의 문제”라고 했다.
 
 
  ■ 2003년 1월 6일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월 6일 26명의 선대위 본부장단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어른 격인 김원기 정치고문을 ‘김고문님’, 2년 선배인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을 ‘정선배’ 혹은 ‘대철이형’으로 불렀다. 정 위원이 대선주자였던 점을 상기하며 “형, 솔직히 내가 부럽지”라는 말도 했다.
 
  386 비서관들에 대한 호칭도 ‘광재씨(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갑원씨(서갑원 전 의원)’였다. 노 전 대통령은 “새로운 정치를 위해 개혁을 하는 마당에 작은 일부터 바꾸자”며 “약속이 있는 사람은 먼저 나가도 무방하다”고 했다. 실제 김원기·신기남·천정배·추미애·이강래 등은 먼저 자리를 떴다.
 
  만찬 전 노 전 대통령은 일반 대중사우나에서 목욕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직후에도 대중사우나를 찾아 경호팀을 당황케 했다. 경호팀 2명은 알몸으로 탕 안까지 쫓아갔다고 한다.
 
  당시 경호 관계자는 “멀찌감치서 경호했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 못 채게 하려는 것도 있었지만, 대통령 당선인과 알몸으로 마주친다는 게 너무 불경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알몸 경호’란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일일 것”이라고 했다.
 
 
  ■ 2003년 1월 중순
 
  노 전 대통령은 간만에 일찌감치 퇴근길에 올라 명륜동 자택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맞는 한가함이 어색했는지 노 전 대통령은 경호원들에게 물었다. “볼링 칠 줄 아는 사람 있나요?” 대답을 못하자 다시 물었다. “다들 볼링을 싫어하는 모양이죠?” 한 경호원이 “좋아한다”고 답하자, 노 전 대통령은 근처 볼링장으로 갔다. 3게임을 쳤다. 처음에는 주뼛거리던 경호원들도 승부에 몰두했다. 볼링장 손님들이 신기해하며 구경하러 몰려들었고, 경기가 끝난 뒤 노 전 대통령은 사인을 해 주느라 20여 분간 자리를 뜰 수 없었다.
 
 
  ■ 2003년 2월 23일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관들과의 워크숍에서 “꼭 양주를 마셔야 하는가. 소주를 마시면 안 되는가. 또 꼭 고급 음식점에 가야만 하나?”라고 이야기했다. 관행처럼 이어진 접대 문화에 대한 일침이었다. 당시 한 비서관이 “오십세주(백세주와 소주를 합친 술)는 괜찮습니까?”라며 우문을 던지자 노 전 대통령은 “오십세주? 오십세주는 괜찮지 않겠나”고 받아 줬다는 후문이다.
 
 
  ■ 2003년 2월 27일
 
  청와대 본관에서 있었던 임명장 수여식. 신임 각료들과 개별 사진을 찍던 노 전 대통령은 멀찍이 서 있던 당시 고건 국무총리와 눈이 마주치자 “잘못하는 것 같다. 총리하고 찍어야 한다”며 촬영을 중단시켰다. 의아해하는 각료들에게 “이래야 (총리 밑) 장관의 소속이 분명해진다”라고 설명했다. 이미 대통령과 사진을 찍었던 일부 장관들은 고 총리와 함께 다시 포즈를 취했다. 노 전 대통령은 또 고 총리에게 “내가 너무 앞서 나가면 중심을 잡아 달라”는 주문도 했다. 같은 날 노 전 대통령은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으로 이동하면서 신임 장관들과 함께 버스를 탔다. 이동 과정에서 청와대에 견학 온 어린이들에게 사인을 해 주기도 했다. 경호원들은 통상 대통령의 이동 중 정지를 금기시한다. 노 전 대통령은 경호팀의 걱정을 뒤로했다.
 
 
  ■ 2003년 2월 28일
 
  노 전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장 구조를 바꿨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ㄷ’ 자 형태였던 회의장 구조를 두 줄로 배치, 참석자들이 마주 보게 했다. 평등한 관계에서 토론을 통해 국정을 처리하겠다는 뜻이었다. 회의장 구조를 바꾸고 첫 회의를 했던 2003년 2월 28일 정무수석이었던 유인태 전 의원은 12분 정도 지각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회의에 늦는 것은 과거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유 전 의원이 늦은 이유가 ‘교통체증’이었기 때문이다.
 
 
  ■ 2003년 3월 11일
 
  노무현 정부의 두 번째 국무회의가 열렸다. 회의는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그리 지치지 않았다. 회의 도중 대통령이 제안한 휴식 시간 때문이었다. 대통령과 장관들은 회의장 바깥 복도에 마련된 탁자에 둘러서서 커피를 마셨다. 노 전 대통령도, 장관들도 모두 손수 탄 차였다. 경직된 분위기로 진행되던 과거 국무회의에선 휴식도, 커피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가벼운 농담도 오갔다. 이날 회의가 끝난 뒤 한 국무위원은 “그런 자리도 처음이지만, 대통령이 직접 차를 타 마시는 것을 보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께 접근하기가 쉬워졌다”고 했다.
 
 
  노무현, 탈권위주의의 상징
 
청와대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건넨 아이스크림을 받아 먹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탈권위주의와 서민의 상징이었다. ‘상고 출신의 인권변호사’였던 그는 집권 후 우리 사회 주류의 기득권과 특권을 축소했고 국민 참여 정치와 행정을 과감하게 확대했다. 임기 내내 그는 소탈하고 진솔한 모습으로 국정을 수행했으며 우리 사회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대통령 당선 전부터 “퇴근길에 남대문시장에 들러 소주 한잔 나눌 수 있는 서민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과거 대통령들이 틀어쥐었던 ‘절대권력’을 포기하고, 탈권위를 실천한 사실은 그의 측근들도 인정한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 생활을 20년 넘게 한 서갑원 전 의원은 아직도 1992년의 ‘그 사건’을 잊지 못한다. 대학원 졸업 후 노 전 대통령의 수행비서로 일할 때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서 청년특별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첫 출근날 승용차 뒷좌석에 모시고 나는 당연히 앞자리로 가서 탔다. 그랬더니 뒤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이리로 오게’ 하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이 ‘이 사람아, 자네 뒤통수를 보면서 어떻게 얘기를 하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주저주저하고 있자 한마디를 덧붙였다. ‘자네가 비서지만, 다니면서 뭔 얘기도 하고 일 있으면 시키고 의논도 하고 해야지. 뒤로 오게!’ 처음에는 좀 별나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내 옆자리에 동승해 모시다 보니 ‘사람 대접해 주시는 분이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의 회고다. 박 전 총재는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과 건설부장관을 했고, 김대중 정부에서 한국은행 총재에 임명되어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 직을 수행했다. 박 전 총재는 2010년 《한국일보》에 ‘탈권위의 서민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잊히지 않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회의이다. 노 대통령은 주요 경제현안에 대한 정책회의를 자주 저녁에 청와대 관저에서 주재했다. 나는 그동안 이런저런 공직을 겪으면서 많은 청와대 회의를 경험했지만, 대통령 관저에서의 회의는 처음이었으며 또 그렇게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회의를 해 보기도 처음이었다. (중략) 회의는 상의를 벗고(때에 따라서는 넥타이도 풀고) 식사를 하며 농담도 주고받으며 진행했다. 그때 노 대통령은 담배를 태우고 있었는데 담배를 권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과 오랜 세월 일을 함께했던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노 전 대통령은 수평적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며 “어떤 정보를 손에 쥔 채 그것을 일종의 힘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스태프들과 공유해서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노 전 대통령의 논리였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본인의 저서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에서 탈권위 리더십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권위적 리더십은 인간을 게으르고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보고, 권력은 직위에서 나오는 강제력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적 리더십은 인간은 자기 규제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아 자발적인 추종을 중시한다. 나는 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할 때나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할 때나 나와 함께하는 사람을 한결같이 동지로 보았고 그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일을 해 왔다.〉
 
  19대 대통령 당선인도 노 전 대통령의 이러한 탈권위주의를 되새기고 본받을 필요가 있다.
 
 
  탈권위가 대통령 권위 자체의 약화로 귀결되어서는 안 돼
 
  다만 ‘탈권위주의 리더십’이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마땅히 요구되는 권위 자체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탈권위가 국정수행의 민주적 리더십으로 이어져야지, 국정수행 자체를 위협하는 권위 자체의 약화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탈권위 성공에도 불구, ‘대통령 권위의 실추’로 이어졌다. 거친 발언으로 스스로 자신의 위상을 추락시킨 탓이다.
 
  노 전 대통령은 ‘속어’를 사용했다. 속어 사용이 서민 이미지에 어울린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인권변호사로서 노동자들과 대화할 때 “집회 참석자가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묻는 것보다 “쪽수가 몇이냐”고 하는 것이 친근감 고취에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표현은 국가원수의 격에 걸맞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5월 말 공관장 부부 모임에서 “국외에서 볼 때 한국이 ‘개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도 민주주의 한번 해 보자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개판’ 같은 속어는 소설에서 생동감을 살리는 표현이 될 수 있지만, 대통령이 대사 부부들 앞에서 하는 말로는 영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5월 21일 5·18 행사추진위원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고 ‘못해 먹겠다’는 시정의 언어를 그대로 동원했다.
 
  19일 3부요인 등을 초청한 자리에서는 방미 성과와 관련, “자기 지지기반에 잘 보여야 할 텐데, 내가 여당인지 야당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다. 어버이날에 보낸 이메일에는 잡초 정치인 솎아 내자는 식의 격문(檄文)과도 같은 어구가 포함돼 한동안 논란의 대상이 됐다. 4월 25일 고영구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는 국회 정보위에서 여야가 만장일치로 고 원장에 대해 ‘부적절’ 보고서를 채택한 것과 관련,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국정원이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할 때 행세하던 사람이 나와 (고 원장에게) 색깔을 씌우려 하느냐”고 특정 세력을 비난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역대 대통령은 ‘목이 너무 뻣뻣한’ 존재였기 때문에 탈권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됐다”고 언행에 대해 해명했지만 논란은 임기 내내 계속됐다.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을 청산한다고 해서 국가의 최고 리더가 갖추어야 할 권위마저 청산 대상에 올리면 사회의 기강은 바로서지 않는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의 언행이 도마에 오를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정세현씨는 인공기 소각 사건과 관련해 대북 유감 표명을 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도 미적거리며 버텼다. 김영진 전 농림부 장관은 “새만금 문제에 항의해 사직하겠다”며 청와대와의 긴급전화 연락망마저 끊고 잠적하기도 했다. 장관마저 대통령의 권위를 가볍게 여기기에 일어난 일이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미국, 프랑스 대통령들은 제왕적 권한이 없는데도 그 나름대로 강력하고 유능하며 리더십 있는 정부를 이끌고 있다”며 “탈권위주의는 견지하되 정당한 도덕적 권위를 지키기 위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19대 대통령 당선인은 최 교수의 이야기를 새길 필요가 있다.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했으며 노무현 자서전의 편저자이기도 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부러워했습니다. ‘서민적인 언어를 쓰고 어려운 사람들이 공감하는 말을 하더라도 오바마처럼 절제해서 품격 있게 하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말씀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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