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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대선(大選)

대권주자 심리분석

“문재인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 떠밀려 대권 도전, 측근정치 위험 많다” “명예욕이 안철수를 정계(政界)로… 과도하면 개인 욕망 위해 정치할 우려”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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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은 ‘진심으로 정치하기 싫은 정치인’ ‘고독과 두려움을 느끼며 홀로 링 위에 선 복서’
⊙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되며 갑자기 팔자 변해
⊙ “어릴 적 문 후보는 부모님한테 사랑받기 위해서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는 것이 습성화된 아이였다”
⊙ “문재인의 대권 도전이 본인에게도 나라에도 좋은 일이 되기 위해서는 그가 하루빨리 어중간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 “안철수가 정치에 나서기로 한 것은 한나라당 오세훈 시장이 국민투표를 실시해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결과가 나오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
⊙ “고등학생 안철수는 부모의 기대가 자신이 원하는 바(공대 진학)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알아서 기는 길(의대 진학)을 선택”
⊙ “안철수의 (부모에 대한) 반항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요인이 바로 그의 아내”
⊙ “안철수가 편안한 얼굴로 사람을 대하면서 정치를 하게 된다면 안철수에게도 국가에도 큰 득이
    될 것”
2017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33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유력 후보들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과연 차기 정권을 담당할 대통령은 건강한 심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문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패로 무시하지 못할 무게를 더하고 있다.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이라는 책이 주목된다.
 
  저자 김태형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이재명 성남시장을 분석했다. 책 발간 당시 홍준표 경상남도 지사는 자유한국당 후보로 선출되기 전이었고 이재명 시장은 경선에서 탈락, 유승민 의원은 지지율이 낮아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김태형씨의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
 
  문재인, ‘착한 아이 콤플렉스’… 대세론 무너지는 순간 위기 맞을 것
 
  김태형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진심으로 정치하기 싫은 정치인’이라고 분석하면서 “시대가 그의 등을 (대권 후보로 출마하라고) 떠밀었다”고 했다. 즉 문재인 후보는 자발적 권력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문 후보를 어린 시절부터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다.
 
  ‘멍석을 깔아주면 (대권에 도전) 해보겠다’→‘(그렇지만) 네거티브를 거부하고 갈등이나 싸움은 싫다’고 분석하면서 문 후보를 ‘고독과 두려움을 느끼며 홀로 링 위에 선 복서’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런 성향의 문 후보는 대세론(大勢論)이 무너지는 순간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김씨가 책에서 논거로 든 부분들이다. 발언은 모두 문 후보 스스로가 책 혹은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 육성(肉聲)들이다.
 
 
  민정수석 사퇴 후 해방감 느껴
 
2003년 10월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문재인 후보는 민정수석비서관 자리에서 물러난 뒤 무척 홀가분해 했다.
  “한 1~2년 눈 딱 감고 ‘죽었다’ 생각하고 일하다 내 자리로 돌아오면 되겠지 하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조건을 말씀드렸다.… 민정수석으로 끝내겠습니다. 정치하라 하지 마십시오.”
 
  - 《문재인의 운명》 201쪽.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자 한 말
 
  “청와대 생활은 힘들고 고달팠다. 업무 자체도 벅찬 데다 매일 언론보도에 신경 쓰고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종일 기자들 전화 받고 응대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내 한계용량을 초과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 같은 책 223쪽
 
  “건강도 많이 상했습니다. 근래 점점 거세지는 출마 압력도 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체력과 정신이 고갈되어 저는 이제 힘에 부치는 무거운 직책을 내려놓고 저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 이 말은 2003년 12월 무렵, 국회의원 총선거가 이듬해 4월로 다가오면서 당에서 문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내보내자는 ‘징발론’이 등장했을 때 그가 한 말이다. 그는 출마하는 대신 아예 청와대 민정수석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는 2004년 2월 12일 민정수석직에서 사퇴했다.
 
  “청와대 들어온 지 거의 1년 만의 해방이었다.… 바깥 공기는 자유로웠다. 모처럼의 꿈 같은 자유였다. 곧바로 아내와 강원도 여행을 떠났다.… 최민식씨가 나왔던 광고처럼 ‘나는 자유인이다!’ 소리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 같은 책 282쪽. 문 후보는 민정수석직에서 사퇴한 것을 ‘해방’ ‘자유’라고 표현했다. 문재인의 자유, 해방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2004년 2월 문 후보는 꿈꾸던 네팔과 티베트, 북인도 지역을 도보 여행하던 중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여행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변호사로 복귀한 문 후보는 탄핵 재판에 임한다. 결국 문 후보는 탄핵 재판 3일 후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했으며, 2005년 1월 다시 민정수석이 되었고 2006년 5월엔 지방선거를 지원하기 위해 민정수석직을 사임했다. 부산에서 지방선거를 지원하다가 문 후보는 지역감정을 조장한다고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을 해 여론의 포화를 맞았다. 그는 이 사건을 겪으며 정치가 더 무서워졌을 뿐 아니라 환멸까지 느꼈다고 했다.
 
 
  “정치를 잘할 자신 없다”
 
  “정치가 더더욱 무섭게 생각되고 환멸을 느끼게 된 일이기도 하다.… 내가 평생 동안 제일 많이 욕먹은 일이어서 그 일은 마음속에 상처로 남아 있다. 정치가 더 싫고 무서워졌다.”
 
  - 같은 책 330~332쪽
 
  “진심으로 맡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이제는 자유롭고 싶고 내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 우짜겠노. 대통령과 마지막을 함께하자.”
 
  - 같은 책 338쪽. 문 후보는 2007년 3월 원치 않는 청와대 비서실장이 된다.
 
  “참여정부가 끝났을 때 나는 ‘드디어 해방이다’라고 외쳤다. 변호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쨌든 이제야 내 자리로 돌아왔다.… 내 마음은 편하다.”
 
  - 같은 책 445쪽
 
  노무현 정부 말기까지 정치 공포증 혹은 정치 기피증에 시달렸던 사람이 문 후보다. 그런 그가 왜 2012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게 된 걸까?
 
  “그동안 정치에 거리를 두어 왔습니다. 그러나 암울한 시대가 저를 정치로 불러냈습니다.”
 
  - 문재인 저 《사람이 먼저다》 27쪽
 
  “저는 정치인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에 정치를 또 잘할 자신이 없다.… 다들 저를 높이 평가해 주시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솔직히 저로서는 곤혹스럽다.”
 
  - 2010년 4월 23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 집중〉에서
 
 
  《문재인의 운명》 성공이 정치로 이끌어
 
2011년 6월 《문재인의 운명》을 낸 후 가진 북 콘서트는 문재인 후보가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분기점이 되었다.
  김태형은 “문재인을 대권 도전으로 떠민 결정적 힘은 국민적 지지였다. 문재인은 2011년 6월에 《문재인의 운명》을 출간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그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대권 도전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분명히 상관이 있고 문재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고 책에 썼다.
 
  “살다 보면 정말 운명 같은 섭리가 있나 봅니다. 출발은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2011년 6월에 펴낸 《문재인의 운명》.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대선 출마까지 간 것도 결국은 그 책 출간에서 시작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이 나오고 나서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수십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 문재인 저 《1219 끝이 시작이다》 83~84쪽
 
  “어쨌든 북 콘서트 형식으로 전국 순회를 한 것이 중요한 분기점이 됐습니다.… 저로서는 마치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처럼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한 일에 대해 뭔가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이 또 다른 책임을 낳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피할 수 없는 선택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습니다.”
 
  - 같은 책 87쪽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내릴 수 없는 양상이었습니다. 그래도 대선 출마는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저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저를 잠재적 대선주자로 분류해 왔습니다.… 정권 교체는 반드시 해야 되는데,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민을 두 가지로 좁혔습니다. 첫째, 피할 수 있는가. 둘째, 나선다면 잘할 수 있는가.… 피할 수 없다고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나선다면 잘할 수 있는가.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 같은 책 136~137쪽
 
  이와 관련해 《문재인, 행동하는 리더》라는 책을 집필한 김성곤은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을 볼 때면 늘 하나의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과연 그가 진흙강과 같은 현실 정치에 참여할까. 나아가 야권주자로 대선전에 뛰어들까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회의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문재인에게서는 권력 의지를 읽을 수 없었다.”
 
  - 김성곤 《문재인, 행동하는 리더》 5쪽
 
  김태형은 “이 책의 저자(김성곤)는 대권 도전을 머뭇거리던 시절의 문재인에게는 권력 의지가 없었지만 대권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이후에는 문재인이 권력 의지를 갖게 되었다고 주장했지만 문재인 본인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적어도 대권 출마 선언을 하는 시점까지도 그에게는 대권에 도전하려는 내적 동기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해서 힘이 못 미치면 언제든지 그만두면 되는 것이니 그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말자고 부탁했습니다.”
 
  - 문재인 저 《1219 끝이 시작이다》 142쪽
 
  그는 대선이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제 해방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문재인 저 《1219 끝이 시작이다》 50쪽
 
 
  동기 不調和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일까. 김태형은 ‘동기(動機) 부조화(不調和)’라는 심리학적 용어를 등장시키면서 “문재인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을 들여다보면 적어도 그가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무렵 부엌칼로 자치기용 자를 만들다가 실수로 왼손 집게손가락을 내려쳐서 손톱의 거의 3분의 1이 잘려나갈 정도로 크게 다쳤는데 그는 이 이야기를 부모에게 하지 않았다. 문 후보는 훗날에도 ‘가장 아팠던 기억’으로 이 사건을 언급했다.
 
  “요즘 같아선 병원에 가서 여러 바늘 꿰매야 할 상처였는데도 야단 안 맞으려고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서 상처를 싸매고 버텼는데 아프기도 하고 피가 엄청 나서 무섭기도 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 같은 책 75쪽
 
  김태형은 “문재인의 부모가 어린 문재인이 곤란을 겪을 때면 그를 안아주고 지지해 주기보다는 무심하게 대하거나 나무랐던 것 같다”며 “어려운 문제가 생기더라도 부모에게 얘기를 하지 않는 행동은 반복적으로 확인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전거를 갖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자전거에 대해 얘기조차 못한 것을 예로 들었다.
 
  “가난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한 일이 많다. 돈이 드는 일은 애당초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 《문재인의 운명》 118쪽
 
  대학생 시절이던 1975년 문재인은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됐다. 비상상황이라 할 수 있는데 이때도 문재인은 부모님께 자신의 구속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나는 집에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언젠가 알게 되겠지만 가능한 한 늦게 알게 되기를 바랐다.”
 
  - 같은 책 139쪽
 
  “부모님은 중고등학교 6년 내내 나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거나 간섭하지 않았다.”
 
  - 같은 책 125쪽
 
 
  부모 기대 부응하려 법대 진학
 
  김태형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 주면서 잔소리나 간섭을 하지 않는다면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식을 사랑해 주지 않으면서 잔소리나 간섭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형적인 방치”라며 “방치당한 채 자란 아이는 스스로를 심리적 고아라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당연히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며 “문재인은 부모님한테 사랑받기 위해서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는 것이 습성화된 아이였다”고 주장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역사를 전공하는 꿈을 접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 법대에 진학한 것이다.
 
  “나는 원래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싶었다.… 처음 변호사 할 때 ‘나중에 돈 버는 일에서 해방되면 아마추어 역사학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래서 대학입시 때에도 역사학과를 가고자 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이 반대했다. 내 성적이 법·상대에 갈 수 있는 등수라는 게 이유였다. 할 수 없이 방향을 틀었는데 입시공부를 등한히 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재수 끝에 당시 후기였던 경희대 법대에 입학했다.”
 
  - 같은 책 129쪽
 
  김태형은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은 부모에게 화가 나 있다. 자기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을 지긋지긋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노골적인 반항아 노선’이 아니라 ‘말 잘 듣는 착한 아이 노선’을 선택하더라도 은밀하게 수동적으로 부모에게 반항한다”고 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는 대형사고를 친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다만 고통스러운 건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이었다. 어려운 형편에 무리해서 대학까지 보내주신 건데 내가 그 기대를 저버렸다는 괴로움이었다. 가끔씩 면회 오는 어머니를 뵙는데 영 미안하고 괴로웠다.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하필 네가 왜 그 일을 해야 했느냐?’라고 묻는 것 같았다.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예 면회를 오지 않으셨다.”
 
  - 같은 책 140쪽
 
  김태형은 이것을 “문재인의 어머니가 면회를 통해 문재인의 불효막심함을 일깨워주었다면 문재인의 아버지는 아들의 면회를 가지 않음으로써 노골적으로 문재인을 압박했다”고 해석했다. “문재인이 아버지의 죽음을 자기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사건으로 꼽은 것을 보면 아버지의 죽음이 문재인에게 거대한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나는 아버지의 삶과 죽음이 너무 가슴 아팠다. 돌아가시는 순간의 이야기를 듣고는 나는 아버지가 삶에 너무 생명이 시나브로 꺼져간 것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게 기대를 걸었던 아버지에게 잘되는 모습이나 희망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아버지를 위해서도 그냥 취업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늦게나마 잘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사법시험을 보기로 결심했다.”
 
  - 같은 책 169쪽
 
  김태형은 “문재인이 아버지에게 간절히 보여드리고 싶었던 ‘잘되는 모습’이 출세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경남고등학교 동기들 가운데 나중에 잘된 친구들이 많다. 박맹우 울산시장, 한나라당 서병수 최고위원, 박종웅 전 의원, 최철국 전 의원, 진익철 서초구청장 등이 정치권에 있는 동기들이다. 행정고시를 거쳐 고위관직을 지낸 동기들도 꽤 여럿이고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 같은 책 128쪽
 
 
  ‘착한 사람’ 문재인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문재인 후보는 탄핵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최순실 사태 초기만 해도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동정적인 모습을 보였었다.
  김태형은 “대권 도전 동기가 전혀 없었던 문재인이 마음을 바꾸게 된 결정적 계기는 국민적 지지였다”며 “국민적 지지란 어떤 심리적 의미를 갖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착한 사람’이라는 주제를 파고들 필요가 있다.… 세상 사람들만이 아니라 문재인 또한 자기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 사례로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 헌화를 하려고 온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백원우 의원이 “정치보복 사죄하라”고 고함을 치자 영결식이 끝날 때 문재인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사과한 일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에도 온화한 호소를 한 일을 들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도대체 반성이 없습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의 그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저와 경쟁했던 박근혜 후보와 다른 분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의 초심으로 되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같은 책 9~10쪽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문 후보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과 경쟁했던 사람으로서 지금 상황이 안타깝고 연민의 정도 든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준다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해 자기 지지자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었다. 비판이 일자 그는 말을 여러 번 바꿨다.
 
  김태형은 “문재인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착한 사람일까 아니면 정말로 착한 사람일까”라고 자문하면서 “안타깝게도 문재인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연민을 느끼는 반면 그 누구도 격렬히 증오하지 않는다. 특히 문재인은 욕먹는 걸 아주 싫어하고 두려워한다”고 지적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가장 서글플 때는 악수를 거절당할 때입니다. 수줍거나 바빠서가 아니라 적대감 때문에 그런 분이 간혹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은 다른 당 후보가 내미는 손도 따뜻하게 잡아주면 좋겠습니다.”
 
  - 2014년 3월 29일 문재인의 트위터 글 중에서
 
  김태형은 “문재인은 욕을 안 먹거나 덜 먹어야 어떤 일을 밀어붙일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면서 “대선 패배 후 의지만 있다면 박근혜 정부가 자기보다 대북정책,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 등을 잘할 수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욕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욕이라고 할 수 있는 ‘종북좌파’라는 욕을 (박근혜 정부는) 먹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고 했다.
 
  김태형은 이런 문 후보가 대선 재수(再修)에 나선 이유가 자신의 권력 의지보다는 ‘국민적 지지’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문재인은 대선 날 패배가 확정된 직후 자원봉사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받은 사랑만으로도 행복합니다.”
 
  - 《문재인의 운명》 56쪽
 
  그랬던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를 맞아 이렇게 말한다.
 
  “제가 그분들에게 도리어 위로와 격려를 받는 게 더욱 미안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새로운 희망을 봤습니다. 국민들에게서 도리어 위로와 힘과 희망을 얻다 보니 제가 그분들에게 ‘빚’을 져도 크게 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이제 국민들에게 단단히 빚쟁이가 돼버렸습니다. 그 빚을 평생 떠안게 됐습니다.”
 
  - 문재인 저 《1219 끝이 시작이다》 79쪽
 
 
  감동 半 빚쟁이 심리 半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발인식에서의 문재인 후보.
이후 그는 “암울한 시대가 나를 불러냈다”며 정치에 투신하게 된다.
  김태형은 “문재인의 말을 요약하자면 국민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아 빚쟁이가 되었다는 말이 억지로 등 떠밀려 대권에 도전했던 문재인이 2017년에 또다시 대권에 도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며 “2017년 대권 도전은 ‘사랑=빚’이라고 생각하는 문재인이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효이자 배은망덕이다. 사랑은 갚을 필요가 없지만 빚은 갚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문재인의 2017년 대권 도전은 ‘감동 반, 빚쟁이 심리 반’이 합쳐져서 만들어낸 결과”라고 분석했다.
 
  문재인은 2012년 대선 출마 당시 집으로 찾아간 기자들에게 “지지율이 높으니까 의무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태형은 이 말을 “지지율이 떨어지면 (대선 출마 뜻을) 접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며 “문재인의 심리가 (2017년) 지금까지도 본질적으로(지지율이 급락하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태형은 “(이순신 장군처럼)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장수의 저력은 백성의 힘에 대한 신뢰에 기초한다”면서 “문재인은 강제로 올라타게 된 호랑이 등에서 언제 떨어질지 몰라 근심걱정이 가득한 특이한 대선주자”라고 했다.
 
  즉 “문재인은 스스로를 국민과 하나가 되어 혹은 국민의 일원으로서 기득권 세력과 맞선다고 느끼기보다는 관객의 환호를 등에 업은 채 홀로 링에 올라가 강적과 맞서는 고독한 권투선수라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은 지지율 변동과 사회적 압력에 취약하다. 지지율이 높으면 비교적 안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겠지만 지지율이 떨어지거나 심하게 변동하면 심리적 안정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측근정치의 폐해도 우려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문재인은 측근 혹은 참모들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질 위험이 있다. 그는 대권 도전 동기가 타 대선주자들에 비해 약한 데다 정치를 수동적이고 피동적으로 해온 습관을 가지고 있다. 맨 앞에 서서 측근들을 이끌어가거나 부하들을 강하게 휘어잡는 스타일도 아니다. 따라서 문재인 캠프에서 측근이나 참모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만약 제반 환경이 나빠지는데도 문재인이 계속 대권주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조성되면 측근에 대한 의존도는 한층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의 대권 도전이 본인에게도 나라에도 좋은 일이 되기 위해서는 그가 하루빨리 어중간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안철수,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반항 한번 해본 적이 없는 아이”
 
  문재인의 대항마로 급부상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는 지식인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최고 위치에 도달한 인물이다. 그 역시 문 후보만큼이나 권력 의지가 약하다.
 
  “역대 대통령 중 단 한 사람도 비극적 결말을 피하지 못한 나라에서, 모략과 음해가 난무하는 정치판에 나서 싸우기엔 그의 권력 의지가 약해 보이고 그가 잘할 수 있는 다른 가치 있는 일이 더 많아 보인다.”
 
  - 《안철수의 생각》 18쪽
 
  김태형은 “그런 그가 왜 자신의 체질에 맞지 않는 정치를 굳이 하려고 하는 걸까”라고 반문하면서 “안철수는 30대 후반부터 정치권이나 정부로부터 계속 정치 입문을 권유받았지만 거절했다. 정치가 자기한테 어울리는 일이 아니라서 잘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어서였다”라고 했다.
 
  “진로를 결정할 때 저는 항상 세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의미가 있는 일인가, 열정을 지속하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 정치 쪽도 의미가 있는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열정을 갖고 몰입하거나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 같은 책 28쪽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성공
 
2017년 4월 4일 국민의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안철수 후보.
김태형씨는 안철수 후보가 명예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랬던 그가 정치에 나서기로 한 것은 한나라당 오세훈 시장이 국민투표를 실시해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결과가 나오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였다. 김태형은 “그 당시 안철수는 무상급식을 격렬히 반대하는 한나라당의 행태를 아주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그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진단했다.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행정 혼란, 세금 낭비 등 잘못에 대해 제대로 대가를 치르지 않고 한나라당에서 다시 시장직을 차지하게 된다면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서울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원래 문항에 없던 제 이름이 거론된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나라도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한 10퍼센트 정도 들었다고 할까요.”
 
  - 같은 책 29쪽
 
  그는 안철수가 대권에까지 도전하게 된 계기를 그의 인생관에서 찾았다. 안철수의 인생관은 무엇일까.
 
  “제 인생에서 성공의 정의는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난 후에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와 다른 긍정적인 무언가를 이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거나 좋은 제도, 좋은 책, 바람직한 조직 등을 통해 세상에 흔적이 남기를 바랍니다.”
 
  - 같은 책 257쪽
 
  김태형은 “인생관은 크게 개인주의적 인생관과 집단주의적 인생관으로 구분된다. 집단보다 개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개인주의적 인생관을, 개인보다 집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집단주의적 인생관을 갖게 된다. 이완용, 최순실이 전자(前者)를 대표한다면 안중근, 전태일은 후자(後者)를 대표한다. 인류는 개인주의적 인생관을 가진 사람을 경멸해 온 반면 집단주의적 인생관을 가진 사람은 존경해 왔다. 안철수의 (집단주의적) 건전한 인생관에 비춰볼 때 시대적 요구가 강력하면 그가 정치에 입문할 것이라고 예측해도 무방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안철수에게는 정치를 하려는 내적 동기는 없었지만 시대적 요구로 인해 정치를 시작했고 그의 인생관이 그것을 뒷받침해 줬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집단주의적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거나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안철수처럼 ‘흔적을 남긴다’는 표현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언어습관일까, 다른 심리적인 원인이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부모님 기쁘게 하려 의대 진학
 
   어린 시절 안철수는 발명가 에디슨과 비슷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공대가 아닌 의대(醫大)에 진학했다.
 
  “네, 제가 스스로 (의대를) 선택한 것은 맞아요. 저는 원래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았고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이 되고 싶었죠.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서 보니 장남이 가업(아버지가 의사)을 잇는다고 하면 부모님이 기뻐하실 것 같았어요.”
 
  - 같은 책 57쪽
 
  김태형은 이 상황을 이렇게 해석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반항할 수 있다는 것은 최소한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부모의 사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자유롭다. 부모에게 사랑받은 자식에게는 그런 두려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자식일수록 반항을 더 잘하는 것이다. 둘째, 자식에게 상당한 에너지나 힘이 있다. 반항은 힘이 있을 때 가능한 법이다. 장기간 애정결핍에 시달리거나 권위에 순종해 온 아이는 자신감이 없거나 무기력해지기 쉽다. 설사 반항하고 싶더라도 힘이나 에너지가 부족해 그러기가 매우 어렵다. 고등학생 안철수는 부모의 기대가 자신이 원하는 바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알아서 기는 길을 선택했다. 반항하기는커녕 부모를 설득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사랑받지 못한 아이, 즉 사랑을 잃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아이였고 에너지가 약한 무력한 아이였음을 의미한다. 안철수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반항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내성적인 나는 반항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다. 공부하기 싫은 때에라도 어머니께서 공부하라고 타이르시면 억지로라도 공부하는 체를 했다. 심지어 흔히 사춘기라고 말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런 일은 없었다.”
 
  -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 《안철수의 얼굴》 86쪽
 
 
  안철수의 어머니
 
안철수연구소(현 안랩) 대표 시절인 1999년 6월 국내 벤처기업가들에게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 ‘V3프로’를 선보이는 안철수 후보. 안 후보는 원래 공학도를 꿈꾸었다.
  김태형은 안철수의 부모를 ‘필요한 순간에 안철수를 지지해 주지 않는 부모’라고 규정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평소에 존댓말을 쓰고 심지어는 꾸중할 때에도 존댓말을 사용했던 어머니로 유명하다. 비록 안철수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존댓말을 쓰기는 했지만 아들을 방치했던 것 같다. (안철수) 스스로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이불을 한번도 개 본 적이 없다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안철수의 어머니는 아들을 들판에 풀어놓고는 별 간섭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도 썼다.
 
  “오늘날 상당수 한국 부모가 자식이 공부를 잘하면 사랑해 주고 공부를 못하면 사랑해 주지 않는다. 부모가 이런 식으로 자식을 건강하게 사랑하지 않을 경우 자식은 공부를 못하면 부모의 사랑을 잃게 된다는 두려움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된다.… 부모의 사랑을 잃을까 봐 공대가 아닌 의대에 진학해서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해야만 했던 안철수 역시 즐겁지 않았을 테니 공부가 잘될 리가 없었다.
 
  결국 안철수는 의대 본과 1학년 겨울방학 때, 시쳇말로 ‘멘탈붕괴’ 상황에 직면한다. 고향집에 갔다가 다음 학기 공부가 걱정되어 예정보다 일주일 일찍 서울로 올라가 하숙방에 들어선 안철수에게 불현듯 지독한 외로움과 공부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는 견디다 못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 공부가 너무 힘듭니다’라고 말하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안철수의 어머니는 깜짝 놀라 바로 서울로 올라가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내려왔다. 안철수의 아버지의 소개로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은 후 학업에 복귀했다. 훗날 안철수는 그때 받았던 상담이 도움이 되지 않아서 결국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일화는 안철수의 어머니가 비록 아들을 방치하는 경향이 있는 어머니였지만 위기상황에서까지 나 몰라라 하는 어머니는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안철수는 여러 저서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했던 좋았던 기억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역시 그의 어머니가 아들을 아주 건강하게 양육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의 역할은 해주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안철수는 어머니에게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랑을 아버지를 통해서 보충할 수 있었을까?… 안철수는 어머니와는 달리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좋았던 기억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안철수는 부모님, 특히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공대 진학을 포기하고 의대에 진학했는데 이는 안철수의 아버지가 폭력이나 폭언으로 아들을 통제하는 폭군은 아니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아들을 알아서 순종하게 만든 아버지였음을 의미한다.”
 
  “괜찮겠니? 넌 공부만 하던 사람인데 어떻게 사업을 할 수 있겠어?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더라.”
 
  - 《안철수를 알고 싶다》 67쪽
 
  “1994년 4월 군복무를 마친 안철수는 의대 교수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컴퓨터 바이러스를 막는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창업하기로 했다. 그가 부모님에게 자기의 결심을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당황하면서도 부드러운 말로 반대의사를 표명하여 아들의 기를 꺾으려 했다. 위의 일화다.
 
  그런가 하면 안철수의 어머니 역시 “다시 한 번 생각하세요. 사업은 힘든 일이라고 들었어요. 딸자식도 생각해야죠”라는 말로 안철수를 타일렀다. 평소에 자식에게 다소 거친 말을 하거나 욕을 하더라도 필요한 순간에 지지를 해주는 부모와 평소에 자식에게 품위 있는 말을 하지만 필요한 순간에 지지를 해주지 않는 부모 중에서 어느 쪽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일까? 이럴 경우 자식은 한동안은 부모 말에 복종하면서 모범생으로 살지만 때가 되면 아버지에게 반항할 가능성이 크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안철수 후보는 2011년 9월 6일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했지만, 바로 대선 후보로 부각됐다.
  김태형은 “안철수에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다면 정치인 안철수는 국민적 지지에 매우 민감할 것이다. 안철수의 대권 도전은 그에 대한 높은 국민적 지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려고 했던 안철수는 자기보다 지지율이 훨씬 낮았던 박원순 변호사에게 출마를 양보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날 언론은 안철수를 비판하기보다 유력한 대권 후보로 거론했다”고 썼다. 이때 안철수가 한 말이 있다.
 
  “충격도 받았고 강한 책임감도 느꼈어요.”
 
  - 《안철수의 생각》 29쪽
 
  김태형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왜 충격을 받았을까? 자신의 지지자나 언론이 사랑을 철회하기는커녕 더 열렬한 사랑을 보내주어서다. 왜 강한 책임감을 느꼈을까? 사랑을 받았으니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겨서다.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사람은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는데도 상대방이 사랑을 철회하지 않으면 크게 감동받는다.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제가 생각을 밝혔는데 기대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저는 자격이 없는 것이고 제 생각에 동의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겠지요’라는 안철수의 말이 보여주듯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정치인인 안철수의 대권 도전 동기는 국민의 지지율과 정비례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김태형은 안철수가 부모에 대한 반항을 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안철수가 아버지에게 반항할 수 있게 된 것은 단순히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거나 머리통이 단단한 대학생이 되어서가 아니었다. 안철수의 반항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요인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아내이다. 그의 아내는 그가 ‘난 사실 의대교수를 그만두고 컴퓨터 일을 하고 싶어.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던 게 아니거든’이라고 말하자 다음과 같이 말하며 남편을 지지해 주었다.”
 
  “그래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거네, 부럽네. 좋은 일이야. 괜찮아.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 난 당신이 만족하는 걸 보고 싶어.”
 
  - 《안철수의 생각》 73쪽
 
 
  안철수의 명예욕
 
  김태형은 안철수가 일단 반항은 하되 크게 성공해서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답은 ‘명예’일 것이라고 봤다. 안철수 집안은 원래 돈을 밝히는 집안이 아니라 명예를 중시하는 집안이기 때문이다. 기업가 안철수는 기업가로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의 경제구조에서 정직하게 사업을 하더라도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고자 노력했다. 투명경영, 윤리경영이 장기적으로 더 큰 힘이 되는 사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 《안철수를 알고 싶다》 78쪽
 
  “안철수는 권력욕에 비해 ‘인정’이나 ‘평가’와 같은 개인적 명예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 《안철수의 두 얼굴》 168쪽
 
  김태형은 이런 명예욕이 다음과 같이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안철수의 명예욕은 복잡하다. 아동기적 인정 욕구에 더해 반항욕구 혹은 동기까지 섞여 있다. 서로 모순적인 동기가 한데 합쳐져 요동치며 움직이면 그 위력은 더 커진다. 안철수는 승부욕 혹은 승벽이 강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것 역시 명예욕과 관련이 있다.
 
  안철수의 반항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안철수가 의사의 길에서 벗어나 사업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표명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가 기업가의 길에서 벗어나 정치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도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안철수는 정치인으로서 성공해 명예를 획득해야만 비로소 아버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정치인 안철수가 하루라도 빨리 명예욕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에게 명예욕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명예욕이 과도하면 절대로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 없다. 명예욕이 과도한 정치인은 본질적으로 대의가 아니라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대체로 입을 꾹 다문 긴장된 표정을 하고 있다. 그가 편안한 얼굴로 사람을 대하면서 정치를 하게 된다면 안철수에게도 국가에도 큰 득이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오면 안철수는 세상에다 자신의 삶의 흔적을 남겨야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바로 안철수가 진짜 새 정치를 시작할 수 있는 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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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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