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의전관 이강래(李康來) 박사가 이야기하는 역대 대통령의 의전 스타일 : 월간조선

이명박 정부 5년간 대통령 의전관과 홍보기획 팀장으로 근무한 이강래 박사(연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가 2016년 12월 19일 《대통령을 완성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이 박사는 책에 취임식을 통해 본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의 의전스타일을 담았는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해당 부분을 요약해 소개한다.

초대 이승만, 윤보선·최규하 대통령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7월 24일 오전 10시,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정면 광장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실외 행사로 제헌국회의원, 미군정 인사, 일반국민 등 다수가 참석했다. 취임 식순은 개회식을 시작으로 주악, 애국가 제창, 국기에 대한 경례, 묵념, 개회사, 선서, 취임사, 대통령 찬가의 노래, 주악, 만세삼창, 폐회의 순서로 진행됐다. 식순에서 ‘대통령 찬가’가 포함된 것이 특징이다. 1960년 8월 13일 10시 제4대 윤보선 대통령 취임식이 국회의사당(현재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거행됐다. 야외가 아닌 실내 행사였다. 국회 양원(민의원, 참의원) 합동회의로 소규모 인사들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취임행사도 이승만 대통령 때보다 훨씬 간소화됐다. 1979년 12월 21일, 최규하 대통령 취임식은 장충체육관 실내에서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당시의 정국 상황에 따라 검소하고 엄숙하게 진행됐다.

군사정권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의전 스타일로 봤을 때 가장 권위적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각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사용했다.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은 모두 다섯 차례나 거행되었다. 제5, 6, 7대 취임식은 실외 행사였고 나머지 제8, 9대는 장충체육관 실내에서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1963년 12월 17일에 열린 제5대 취임식 장소인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 정면에는 ‘제5대 대통령 취임’ 경축을 알리는 플래카드(placard)와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휘장이 새겨진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그리고 아직 임기가 시작되기 전인 취임식에서 박 대통령은 국회의장으로부터 당시 최고 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을 직접 받았다. 취임사에서 “나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라고 연설했다. 여기서 ‘나’라는 표현은 자신의 권위를 좀 더 높이고 자신이 중심이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1980년 9월 1일, 제11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은 서울의 잠실체육관에서 거행됐다. 의전 스타일로 본다면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권위적인 대통령이 바로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무대배경, 연설대, 테이블과 의자 등 곳곳에 금색 봉황휘장을 넣었고, 무대 상단의 현수막에는 ‘제11대 전두환 대통령 각하 취임’이라고 표기했다. 각하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때도 현수막에 ‘각하’라고 적지는 않았다. 무대의 높이도 5m 정도로 굉장히 높게 설치해서 자신의 권위를 과시했다. 단상 바로 아래 앉은 참석자들은 목을 뒤로 젖히고 무대를 쳐다봐야 할 정도였다.

1988년 2월 25일 오전 10시, 제13대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은 처음으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대규모 옥외 행사로 거행됐다. 취임선서와 취임사 사이에 처음으로 예포 발사와 합창이 추가되었고, 이것은 그 뒤의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하나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전의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주로 서양음악을 사용했지만 이때 처음으로 국악이 국가의식에 도입되기도 했다. 최초로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점을 고려해서 취임식 장소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정했지만 초청한 참석자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기존 취임식장에서 써 왔던 ‘경축’이라는 직접적인 용어의 사용을 자제했다. 실제 무대 상단에 설치된 현수막에도 ‘제14대 대통령 취임’으로 대통령 이름도 넣지 않고 심플하게 만들었다. 친환경적인 취임식을 추구하기 위해 초청장을 재생용지로 제작했다. 또한 과거에 실행했던 풍선 날리기와 꽃가루 뿌리기도 하지 않았다.

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은 당시 50년 만에 여·야간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져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전의 대통령 취임식과 비교하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단상의 지붕을 없애 국민과 함께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나타내려고 했다. 또 기존 사각형 무대가 아닌 그리스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를 상징한 둥근 원형에 착안해 원형무대로 꾸몄다. 과거 레드카펫을 파란색과 회색으로 색깔을 바꿔 탈권위적 모습을 보이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식전행사로 진행된 ‘합토(合土), 합수(合水)제’를 통해 전 국민의 화합을 내세운 정부의 이미지 구현을 시도했다. 사전행사로 국악 연주와 공연 등으로 참석자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18대 대통령이 2013년 2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답게 권위적인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취임식 준비과정에서 일반국민의 아이디어를 접수하여 ‘참여정부’ 취지를 살렸다. 또한 민간인 자원봉사자 200여 명도 행사장에 배치해서 국민 참여 이미지를 높이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단상과 단 아래의 의자를 모두 똑같은 종류로 배치했다. 이처럼 권위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일반국민을 참여시켜 국민이 주인공이 되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는 정부’의 콘셉트에 맞게 취임식에서도 국민을 배려하는 여러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섬기는 정부’ 이미지 구현을 위해 무대 단상에는 국민과 국민대표, 외빈을 먼저 배치했다. 대신 그동안 관례로 단상 위에 앉았던 장관 내정자, 청와대 수석 내정자 등은 모두 단상 아래에 앉게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식 때 장관 내정자, 청와대 수석 내정자 등을 모두 단상 아래에 앉게 했다.

특히 ‘국민을 섬기겠습니다’라는 대통령의 다짐을 구현하기 위해 추운 겨울임을 고려해서 행사시간을 단축하고 참석자들에게 머플러를 제공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선서 후 단 아래로 내려와 일반 참석자들과 좀 더 가까운 위치에서 취임사를 했다. 참석인원이 너무 많아 행사진행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참석자들을 위해서 대형 LED 전광판을 여섯 곳에 설치했다. 또한 추운 겨울에 야외에 앉아 있는 참석자들을 위해 온수와 손난로 등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은 축제 같았다. 가수 싸이가 ‘말춤’을 추는 대중적인 퍼포먼스까지 마련해서 국민축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다만, 단상 위 맨 앞줄에 배치한 황금색 의자는 과거 권위적인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또한 참석인원이 너무 많아서 경찰의 통제와 엄격한 신분확인 절차를 거쳐야 했던 참석자들이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