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한나라당은 왜 2007년 경선에서 최태민-최순실을 검증하지 못했나 : 월간조선

‘최태민-최순실 스캔들’은 9년 전인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제기된 바 있다. 이명박 후보 캠프의 정두언 전 의원은 당시 “최태민-박근혜 관계를 전부 낱낱이 밝히면 박근혜 의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밥도 못 먹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당시 친이-친박 간 치열한 다툼과 설전이 오갔고 맹렬한 검증절차가 있었는데 왜 최태민-최순실 관련 의혹은 끝까지 검증하지 못했을까. 한나라당 후보검증위원회는 수십 일에 걸쳐 각종 제보를 받아 검증작업을 벌였고 2007년 7월 공개청문회를 열기도 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당시 박근혜캠프 법률자문위원으로 참석해 최순실의 이름을 수차례 들었다는 그 청문회다.

한나라당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적지 않다. 그때 최태민-최순실 의혹만 제대로 알려졌어도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가 나왔을지는 의문이다. 일각의 주장처럼 이명박캠프는 작금의 사태를 예측하고도 일부러 덮어 둔 것일까 아니면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당시 양 캠프 관계자들을 통해 한나라당이 이 스캔들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취재했다.

구체적인 의혹을 제기한 김해호씨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진행된 2007년 6월 김해호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당시 경선 후보의 사학 비리, 자매간 재산 분쟁, 최태민과의 관계 등을 언급했다. 사진=조선일보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최태민 의혹을 구체적으로 제기했던 사람은 김해호씨다. 한나라당 당원이며 1997년,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전 총재의 조직인 ‘부국팀’ 자문위원이었다고 밝힌 김해호씨는 2007년 6월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후보의 사학비리, 자매 간 재산분쟁, 최태민과의 관계 등을 거론했다.

당시 그의 얘기다. “박근혜 후보는1984년 6월 좋은 환경을 버리고 성북동 집을 판 후 삼성동 최태민씨 집 앞으로 이사했고, 박근혜 최태민씨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최태민씨의 딸인 최순실씨 집이 있으며, 이 주변은 그들의 부동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치원 원장이었던 최순실씨가 현재 반포, 강남 등 부동산을 소유한 몇 백억대 자산가이며 최순실과 그 자매들의 재산은 과거 행적으로 추적하건대 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재산들일 가능성이 있으니 철저히 추적해야 한다.” 9년 전 제기한 의혹은 현재 드러난 사실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현재 베트남에 거주 중인 김해호씨는 자료입수 경위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권에는 다 알려져 있던 얘기였지만 검증하기 위해 등기부등본을 떼고 주변사람들을 만나는 등 발로 뛰어 조사했다”고 밝혔다. 김해호씨는 이 자료를 한나라당 검증위원회에 전달했고 자료는 곧 이명박 후보 캠프로도 흘러갔다.

2007년 7월 19일, 안강민 당시 한나라당국민검증위원회 위원장과 강재섭 대표가 대선 후보 검증회장에 들어가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한나라당 국민검증위원회(위원장 안강민)는 각종 제보를 받아 2007년 7월 19일 검증청문회를 연다. 그중 작금의 최순실 스캔들과 관련된 내용이 적지 않다. (박스 참조) 그러나 검증위원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박근혜 후보의 답변을 받아치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는 “육영재단을 통한 재산취득은 불가능하며 그들의 재산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다”, “최태민이 나쁜 짓 한 사실은 모른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검증위원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당시 각 후보에 대한 질문이 날카롭지 못하고 답변도 변명에 불과해 ‘맹탕 청문회’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청문회 후 박근혜캠프의 김재원 대변인은 김해호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발했고, 최순실은 사자(死者)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김씨에게 2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김씨는 사전 선거운동 및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20억원 손해배상을 청구한 최씨에게 1000만원의 합의금을 지급했다. 6개월간 복역했던 김해호씨는 “명백한 사실을 적시했음에도 실형을 내린 것은 외압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태민과 남녀관계 입증 어려워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캠프의 정두언 전 의원은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의 관계 등이 담긴 ‘조순제녹취록’을 입수했지만, 공개하지 않았다. 사진=조선일보

경선 검증 당시 자료 중 최태민-최순실 스캔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정보는 김해호파일 외에 ‘조순제녹취록’이 있다. 최태민의 아들이며 최순실의 배다른 오빠인 조순제씨의 육성녹음을 정리한 이 자료는 최근 JTBC의 시사프로그램 〈스포트라이트〉에서 보도된 바 있다. 조순제녹취록은 이명박캠프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작성자는 박정희-육영수 숭모회 전 회장인 이영도씨다. 이영도씨는 최태민의 전횡에 불만을 품고 숭모회를 만든 인물이다.

조순제녹취록에는 “최태민과 박근혜가 같이 살다시피했다”는 등 검증이 힘든 민감한 내용이 다수 담겨 있고, 당시 정두언 의원이 이를 입수했지만 녹취록의 존재와 그 내용은 발표하지 않았다.

당시 이명박캠프 관계자의 얘기다. “조순제씨의 주장대로라면 최태민과 박근혜 후보가 남녀관계라는 건데, 그렇다면 최태민의 딸들과 박근혜 후보가 잘 지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 부분이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니 최태민은 결혼도 여러 번 했고 여자관계가 비상식적으로 복잡한 데다 최태민-최순실 관련해서는 종교 문제나 약물 문제 등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사연이 많았던 건데 그땐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었죠. 그래서 논리적으로 공격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이명박캠프의 한 핵심인사는 “왜 최태민-최순실 문제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당시에는 최태민과 남녀관계라는 가설이 입증돼야 나머지 의혹이 다 성립한다고 판단했고, 그 입증이 힘들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후보의 자식이 일본에 살고 있다는 제보도 있었고, 찾아내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단서가 하나도 잡히지 않더군요. 결국 자식을 찾아내는 데 실패하니 근거 없는 의혹만 제기한다고 역공당할 우려가 있어 그 부분은 사실상 어느 정도 포기했었습니다.”

후보검증 청문회 당시 검증위원의 질문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대답

— 정보부 조사에 의하면 최태민 목사는 공사 수주, 장군 승진, 국회의원 공천 명목으로 돈을 받는 등 비리 건수가 40여 건이 됐다고 한다.

“아버지가 저와 중정부장, 최 목사, 관계되는 사람들을 불러 직접 조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떻게 횡령하고 사기를 쳤는지 답하라고 했는데 확실한 답이 없었고, (비리) 내용이 막연했다. 실체가 없는 얘기로 끝나서 아버지가 대검에서 조사해 보라고 했다. 아버지는 친척도 엄격하게 관리했다. 만약 이런 일이 있었다면 아버지는 용서가 없었을 것이다. 근데 별다른 일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 최 목사의 자녀들이 강남에 수백억대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데 육영재단과 관련해 취득한 재산이 아닌가.

“천부당 만부당하다. 말이 안된다. 육영재단은 개인사업체가 아니라 공익재단이다. 매년 감사를 받고 감독청의 감사를 받는다. 단 한푼도 마음대로 쓸 수 없다.”

— 최태민 딸 최순실이 압구정동에서 학원을 운영하는데 어린이회관과 자매결연한 게 사실인가.

“자매결연 맺을 수 있다. 어린이회관은 다른 곳과도 맺은 것으로 기억한다.”

— 육영재단의 1987년 농성은 육영재단 잡지 《꿈나라》 편집에 최순실 연구팀 협조 과정에서 의사를 지나치게 반영하려는 것으로 이야기 나오는데. 박 후보가 최순실 관여하게 지지했나.

“자매결연이기 때문에 협조한 것뿐이고 잡지 잘 만들려 한 것이다.”

— 최태민 목사 관련 의혹을 제기하면 박 후보는 ‘천벌을 받을 짓’이라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최 목사와 저를 연결해 주변 사람이 나쁘니, 제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식으로 공격해 왔다. 나중에는 ‘애가 있다’는 등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얘기까지 나왔다. 아무리 네거티브를 해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정말 천벌 받을 일 아닌가. 애가 있다면 애를 데리고 와도 좋다. DNA 검사도 해 주겠다. 멀쩡한 애를 데리고 와서 맞느니 아니니 하면 그 아이나 어머니는 어떻게 되나. 천륜을 끊는 일인데. 옛말에 천벌 받으려면 무슨 짓을 못해 라는 말이 있는데 남을 음해하기 위해 이런 얘기까지 지어내는가. 정말 한탄스런 일이다.”

이명박 후보, “남녀관계 공격하지 말라” 지시

친이계 한 전직 의원은 “상대후보의 남녀관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었다”고 전했다. 그의 얘기다.

“그때 박근혜캠프에서 BBK사건과 관련해 이명박 후보를 공격하면서 ‘이명박 후보와 에리카김(BBK 김경준의 친누나)이 내연관계다’라는 소문을 내기 시작한 겁니다. 혼외자가 있다는 소문까지요. 사실 그 일이 없었으면 오히려 최태민-최순실에 대해 공격을 펼칠 수 있었을 겁니다. 후보 입장에선 스캔들에 스캔들로 대응한다는 것처럼 보이기가 싫은 겁니다. 이명박 후보가 ‘남녀관계 공격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어요. 근데 최태민과 그런 관계라는 이야기를 빼고 나면 최태민-최순실을 공격할 근거가 약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네거티브는 하지 말고 다른 전략으로 가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후 이명박캠프는 박근혜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은 정수장학회와 영남대를 주요 이슈로 삼았다. 캠프 내에서는 “최태민 의혹을 계속 제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선정적이며 치졸해 보인다”며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가재는 게 편이라고 같은 당이고 차기 대권주자라고 일부러 덮어 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펄쩍 뛰며 “서로 범죄집단이라느니 지은 죄가 많아 옥중 출마하겠다느니 하는 막말이 오가고 물어뜯기 바빠 누굴 봐주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용도 치졸하고 증거가 없다 보니 논리적으로 밀릴 것 같아서 그랬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캠프는 어디까지 알았나

2007년 8월 7일 박근혜 경선 후보 캠프의 의원들이 이명박캠프와 국정원연루설과 관련하여 대책회의 후 국정원을 항의방문했다. (오른쪽부터 송영선, 최경환, 서병수, 유정복, 엄호성, 박종근, 김무성, 이혜훈) 사진=조선일보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 관계자들은 대부분 말을 아꼈지만 최태민-최순실 검증절차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근거 없이 오랫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얘기고 상대방의 무조건적 비방이라고 믿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박근혜캠프 관계자들의 최태민-최순실 관련 발언을 돌아봤다.

2007년 6월 17일 이명박캠프 장광근 대변인이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의 관계를 다룬 《월간조선》 최신호 내용을 언급하며 “정수장학회, 영남대, 육영재단 등 박 후보 관련 의혹의 중심엔 늘 최 목사가 있었다.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최씨 일가에 의해 국정이 농단될 개연성은 없겠냐”고 주장했다. 그러자 박 후보 측 홍사덕 선대위원장과 이혜훈 대변인은 이날 오전 긴급 회견을 자청, 이 후보의 인터뷰 내용에 대한 공개 사과를 요구하며 “(이 후보가) 다시 한 번 이런 얘기를 하면 박 후보가 아무리 만류해도 할 말을 하겠다. 이 후보 본인이 직접 허위사실을 얘기하고 경쟁 후보를 정치공작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말한 것 자체가 정치공작이고 구태정치의 전형”이라고 경고했다.

박근혜캠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언론 인터뷰에서 “최태민 의혹은 실체 없이 반복되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홍사덕 공동선대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최태민) 횡령 등 의혹은 전혀 실체가 없는 얘기”라고 했고, 이혜훈 대변인도 인터뷰에서 “그 부분은 십수 년째 고장난 레코드판 돌리듯이 기회 있을 때마다 똑같은 얘기”라고 밝혔다. 종합상황실장이었던 최경환 의원은 당시 기자들의 최태민 의혹 관련 질문에 “재탕, 3탕, 5탕, 10탕까지 가는데, 한약도 10탕까지 가면 약효가 다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일축했다.

캠프 정책메시지총괄단장이었던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정리한 최태민 보고서 배후에는 이명박 후보가 있다”며 “이 (최태민 보고서 유출) 사건은 한나라당 경선 역사상 가장 추악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며 이게 캠프인지 범죄집단인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박근혜캠프의 한 핵심 관계자의 얘기다. “최태민을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 이명박 후보 측이 국정원과 내통해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를 공유하는 정치공작을 벌인 게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최태민 보고서의 내용이라는 게 증거 없이 정치권에서 몇십 년을 돌아다닌 내용이죠. 저희는 그게 진짜라면 왜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겠느냐 믿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이명박 후보 측 인물들이 국정원과 연계해 비선조직을 만들고 박근혜 음해공작을 벌였던 데 대해 분노했던 겁니다. 이미 최태민 관련 의혹은 박근혜 후보가 사실이 아니라고 여러 번 밝혔던 내용인데 그걸 갖고 정보기관과 정보공유를 하며 상대후보를 압박했다는 데 강력하게 대응하려고 나선 거죠.”

경선 직후 박근혜캠프 관계자들은 “최태민 보고서는 날조됐다”며 국정원을 항의 방문했는데, 이 방문에는 김무성 박종근 엄호성 서병수 최경환 유정복 송영선 이혜훈 의원 등 8명이 참여했다. 이 중 현재 친박 국회의원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최경환 의원뿐이다. 그들은 경선과정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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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왜 2007년 경선에서 최태민-최순실을 검증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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