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마사회와 KT가 맺은 MOU에 최순실 그림자 아른거리는 이유 : 월간조선

KT와 한국마사회(마사회)는 2016년 7월 ‘중소기업 상생 및 산업 디지털 비즈니스 생태계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자리에는 황창규 KT 회장, 현명관 마사회 회장(2016년 12월 7일 퇴임) 및 양사 주요 임원들이 참석했다. 양사는 “KT가 보유한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경마, 승마를 비롯한 말 산업 전반에 접목시키고,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한국마사회가 보유한 축적된 말 산업 데이터를 활용한 개방형 비즈니스를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두 회사의 MOU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갑지 않다. 양쪽 다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와 관련이 있어서다. 양측 관계자는 “첨단기술을 활용해 두 회사가 새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기 위해 협력하는 것을 최순실씨와 연관 짓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항변했다. 맞다. 무조건 최순실과 엮는 것은 문제가 있다.

23개의 사업

최순실은 마사회 사업에 영향력을 미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6년 11월 14일 새벽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구속)씨가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치고 청사를 나서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KT, 마사회 내부 문건을 보면 의심을 살 만한 구석이 있었다. KT-한국마사회 TF 활동 결과 문서에 따르면 두 회사는 2016년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간 주 1회 이상 실무 미팅을 통해 23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마사회와 KT가 선정한 23개 사업은 다음과 같다.

〈▲입장객 안내(웰컴메시지, 고객동선 안내, 가이드 서비스) ▲스마트 맞춤형 가이드 서비스(고객정보 기반 맞춤형 서비스 안내) ▲AR(Augmented Reality·증강현실) 길안내(AR 기반 시설정보 표출 및 내비게이션) ▲스마트 말(馬)박물관(말박물관 도슨트[docent·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에게 전시물을 설명] 서비스) ▲AR 시크릿웨이 투어(마방내 말정보 표출, 실감형 콘텐츠 제공) ▲SNS 공유용 포토존(주요 랜드마크 사진 촬영 및 공유 환경 구축) ▲맞춤형 퇴장 안내(고객 퇴장시 고객 유형별 맞춤형 퇴장 메시지) ▲스마트 경마지(빅매치 preview, 인포그래픽 경마정보 표출) ▲AR 예시장(예시장 AR을 통해 경주마 및 기수 정보 제공) ▲유무선 통합서비스(유무선 통신, 메시지, 이메일 통합) ▲스마트 말정보 관리(센서를 통한 말의 바이오 정보 데이터 관리) ▲스마트 말병원(말병원, 재활센터 내 온습도, 환경 관리) ▲스마트 말조교 트레이닝(말 운동량, 식사량 모니터링 및 데이터 분석) ▲스마트 말IoT(Internet of Things·사물인터넷) 건강관리(재활치료 관리, 생애주기 관리, 경주마 상태 수치 이력화) ▲스마트 말 숙소관리(마방 환경관리, 암모니아, 메탄가스 감시) ▲LTE 드론(드론을 새로운 콘텐츠 제작수단으로 활용) ▲콘텐츠 관리시스템(통합콘텐츠 관리시스템 구축) ▲지능형 VOD 서비스(지능형 검색기능을 적용하여 다양한 경마콘텐츠 검색 및 맞춤 추천 기능 제공) ▲미디어 터널(미디어 파사드, 미디어 터널 적용) ▲투명 드시플레이 LIVE 관람대(홀로그램, AR/VR 적용 관람공간 ICT 혁신) ▲증강현실 말 박물관(증강현실 영상콘텐츠, 전시콘텐츠 적용) ▲스마트 온습도 모니터링(IoT 센서를 통한 전산실 온습도 모니터링) ▲스마트 에너지 IoT(실내공간 온습도, 조명, 전력사용량 등 건물의 에너지 종합관리).〉

MOU를 체결했음에도 23개 사업의 사업화 여부 및 사업자 선정은 마사회 소관이다. KT 관계자는 “우리가 직접 사업에 참여할 수도, 외주업체를 끼고 참여할 수도 있다”면서도 “결정은 마사회에서 한다. 우리 또는 우리가 선정한 외주업체 외 다른 업체가 선정될 수 있는 구조”라고 했다.

2016년 12월 7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차은택씨는 “KT 광고와 인사에 개입했느냐”는 질문에 “부분적으로 인정한다”고 답했다.

그는 “KT에 별다른 이득도 없는 것 같은데 왜 MOU를 체결한 것이냐”는 질문에 “공개입찰 시 사업 내용을 미리 준비한 우리측이 유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틈을 가장 잘 이용한 게 최순실이었다. 최순실은 광고대행사 ‘플레이그라운드’을 세우고 대기업들에 광고 일감을 압박했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설립 6개월 만인 지난 5월 대통령의 아프리카 3개국 순방행사를 따내고 올해 5〜9월 현대기아차에서 62억원, KT에서 55억원의 광고를 수주했다. 당초 플레이그라운드는 차은택씨의 회사로 알려졌지만,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검사장)의 최종 수사 결과 최씨가 실소유주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에 따르면 플레이그라운드의 지분은 표면적으로 최씨 70%, 차씨 20%, 다른 직원 2명이 5%씩 보유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조사 결과 최씨 지분을 제외한 30%의 지분도 모두 최씨의 것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최씨가 돈을 모두 납부하고 실제 회사를 운영하며 의사결정을 전적으로 했다”며 “1인 회사로 만들면 이상할(의심을 받을) 수 있어서 지분 관계만 이렇게 바꿔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가지 가정을 해 보자. 최순실이 구속되지 않고, 계속 비선 실세 역할을 했다면 어땠을까.

통신업계 관계자가 말한 바로는 “AR, VR 사업은 통신사는 물론 관련 업계에서 주목하는 아이템”이라며 “사업을 주도하는 기업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차은택 광고 몰아주기’처럼 신생업체를 통한 편법이 가능한 구조”라고 했다.

대기업 대관 업무 관계자도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저러한 MOU는 특정업체에 일감을 몰아줄 수 있다는 의심받을 만하다”며 “하필, 최순실이 관심 있는 ‘말(馬)’ 사업이니 오죽하겠나”라고 했다. KT 새 노조 관계자는 “KT가 통신 본원적 경쟁이라는 경영 기조와 달리 난데없이 말 관리 사업에 뛰어들었다”며 “최순실의 입김이 있었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최순실이라고 해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사회와 KT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마사회·KT 쥐락펴락 한 최순실

정유라의 독일 승마 연수를 위해 승마협회가 만든 ‘중장기 로드맵’(2015년 10월 작성)의 초안을 작성한 곳은 마사회였다.

최순실은 마사회를 사실상 쥐락펴락했다. 최씨의 딸인 정유라의 독일 승마 연수를 위해 승마협회가 만든 ‘중장기 로드맵’(2015년 10월 작성)의 초안을 작성한 것도 마사회였다. 문건 작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마사회 관계자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승마협회가 승마 유망주를 선발해 독일로 전지훈련을 보낸다는 내용의 로드맵 초안은 지난해 여름 마사회 산하 승마진흥원이 먼저 작성했다”고 밝혔다. 《월간조선》이 확보한 로드맵 원본 파일의 ‘문서 정보’에도 ‘지은이’ 항목에 승마협회(KEF)가 아닌 마사회의 영문 약칭인 ‘KRA’가 나왔다.

박재홍 전 마사회 승마감독은 “두 사람(최순실씨와 현명관 회장)이 전화 통화하는 관계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유라가 훈련 중이었던 독일에 두 달 반 동안 파견을 갔다 오는 등 정씨와 대한승마협회, 마사회 사이의 관계 등을 잘 아는 인물이다. 현 전 회장은 퇴임 전인 2016년 11월 22일 “최순실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했다.

최순실의 영향력은 KT 내에서도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6년 2~9월 공개된 KT 광고 영상 24편 중 6편을 최순실의 최측근인 차은택이 만들었다. 6편은 차씨의 제작사 ‘아프리카픽쳐스’가 맡았고, 5편은 최순실이 실소유주인 ‘플레이그라운드’가 수주했다. 최씨와 차씨는 KT가 창조경제 일선에 나서는 과정에서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2016년 3월 경기도 판교에서 열린 스타트업 캠퍼스 개소식에 박근혜 대통령과 황창규 KT 회장이 나란히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고든미디어’라는 신생 업체가 VR 관련 시연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고든미디어 대표를 맡은 마해왕씨는 최순실·차은택씨가 절반씩 지분을 소유한 ‘존앤룩C&C’의 등기이사로 한때 등재돼 있었다. 박 대통령은 2016년 7월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면서 VR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둘은 인사에도 개입했다. KT는 차씨의 지인인 이동수씨를 2015년 2월 KT 브랜드지원센터장 자리에 앉혔다. 그는 9개월 뒤 회사 전체 광고업무를 총괄하는 IMC본부장(전무)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씨는 과거 1993년 차은택씨가 보조감독으로 몸담았던 CF 제작사 ‘영상인’에서 몇 개월간 함께 근무한 사이다. 그때 이 회사 대표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다.

당시 이 전무 채용과 관련 KT는 “이동수 전무가 30년 경력의 검증된 광고 전문가로서 인재 경영 방침에 따라 영입했다”고 했지만, 2016년 12월 7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차씨는 “KT 광고와 인사에 개입했느냐”는 질문에 “부분적으로 인정한다”고 답했다.

이 전 전무는 2016년 11월 15일 사임했다. KT 측은 이날 “이 전무가 최근 (자신과 관련된) 지속적인 언론 보도로 KT의 기업 이미지가 실추된 데 대해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사임 의사를 전해 왔다”며 “이 전무의 의사를 존중해 곧바로 사임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평창올림픽

정식 사업으로 선정되진 않았지만 마사회와 KT는 MOU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평창올림픽에 적용하는 AR Replay 사업도 추진 사업에 포함하려 했다.

정식 사업으로 선정되진 않았지만 두 기업은 MOU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평창올림픽에 적용하는 AR Replay도 추진 사업에 포함하려 했다. 최순실 사단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이권을 싹쓸이하려 했다. 체육인들 사이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최순실 올림픽’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개·폐회식부터 경기장 활용까지 최순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얘기다.

언론이 보도한 의혹만 해도 다수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과 디자이너 임명 ▲개·폐회식장의 설계 변경 ▲차은택과 제일기획의 관계 ▲빙상장 LED 프로젝트 업체 선정(차은택씨가 연루된 ‘빛샘전자컨소시엄’ 선정) ▲장시호(최순실 조카)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설립과 국가 재정 지원 ▲강원도 평창군 정유라 명의의 땅(마장마술 승마장 예정 부지) ▲평창 주변의 최순실-정윤회 부부가 사놓은 수만 평의 땅 ▲진돗개 마스코트 출장 사건 ▲혹평 받은 아라리요 평창(평창동계올림픽 홍보동영상-최순실 차은택과 친분이 있는 뮤직비디오 제작사 제작) ▲조양호 조직위 활동 관련 각종 압력 및 조직위원장 교체 ▲김종 전 문체부 제2차관의 예산 빌미로 갑질 ▲더스포츠엠(실소유주 장시호)을 통한 평창올림픽 기념품 사업 및 각종 부대사업 이권 개입 등〉

마사회는 KT와의 MOU를 통해 선정한 23 과제 중 사업 추진이 가능한 사안에 대해서는 내년도 예산을 반영해 추진할 예정이었지만 ‘정유라 특혜 의혹’ 등으로 인해 사업 추진이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