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는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성격 탓 …, 사람을 못 믿었다” (박관용)
⊙ “능력부족과 인사실패” (김중권)
⊙ “소통을 전혀 하지 않고, 비선실세들하고만 소통” (문희상)
⊙ “공적(公的) 기구가 비선 실세에 눌려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점과 이를 용인한 대통령의
리더십이 문제” (임태희)
⊙ “능력부족과 인사실패” (김중권)
⊙ “소통을 전혀 하지 않고, 비선실세들하고만 소통” (문희상)
⊙ “공적(公的) 기구가 비선 실세에 눌려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점과 이를 용인한 대통령의
리더십이 문제” (임태희)
최태민·최순실 스캔들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1987년 이후 5년 단임 대통령들이 통상적으로 겪어 왔던 임기말 레임덕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 2선 후퇴를 넘어, 하야(下野)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30년 가까이 잊고 지냈던 ‘헌정(憲政)중단’이라는 말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4년 전 현행 헌법 아래서 직선제(直選制)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 이래 처음으로 투표자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또 임기 후반부를 50%가 넘는 지지율로 시작한 첫 번째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런 대통령이 어쩌다가 이런 궁지에 몰리게 되었을까? 박관용(朴寬用·김영삼 정권), 김중권(金重權·김대중 정권), 문희상(文喜相·노무현 정권), 임태희(任太熙·이명박 정권) 전 비서실장으로부터 ‘박근혜 대통령 실패 이유’를 들어보았다.
“과거 살아온 일생이 오늘의 이러한 결과로 나타난 것” (박관용)
“다른 대통령들이 실수했을 때하고는 달리 이유가 너무 뻔해요.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자신의 성격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설명할 말이 없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영삼 정권의 첫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성격’을 꼽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실패한 것은 자기가 살아온 경험에서 생긴 트라우마 때문이에요. 아버지가 가장 가까운 부하에게 총을 맞아 죽었고,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사람들이 권력이 떨어지니까 외면해 버리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남자들을 보면 배신자 아니면 거짓말만 하는 사람들,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 같았을 겁니다. 거기다가 남편이나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 혼자 살면서 그 속에 갇혀 살아오다 보니, 사람을 못 믿는 거예요. 믿는 사람이라는 게 초기부터 그를 모셨던 정윤회하고 최순실 같은 사람들이에요. 그들이야 자신에게 성심성의껏 잘하니까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겠죠.”
박 전 의장은 “사람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그런 불신(不信)이 인사(人事)로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자기가 눈으로 보고 경험한 사람, ‘아, 이 사람이면 괜찮겠구나’라고 생각한 사람들만 기용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경우, 과거에 같은 상임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사람이 말수가 적고 성실하고 차분한 것을 보고, ‘저 사람은 진실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대통령은 사람을 넓게 써야 하는데, 한정된 사람들만 가지고 통치를 하려 한 게 문제입니다.”
박관용 전 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살아온 일생이 오늘의 이러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대중 정권의 첫 비서실장을 지낸 김중권 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실패원인으로 ‘국정운영 능력 부족’과 ‘인사 실패’를 꼽았다.“대통령은 모든 분야에 걸쳐 최고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전문가에 버금가는 소양과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전문가들의 보고를 판단하고 지적할 수 있는 능력은 있어야지요. 물론 그런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국정을 운영할 사람을 잘 뽑아 써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에서도 실패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실패 원인입니다.”
김중권 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면(對面)보고 기피도 여기서 파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이기 때문에 대면보고를 받으려면 화장도 하고 치장도 해야 하기 때문에 대면보고를 피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대통령을 옹호하기 위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서류보고를 받았다고 하는데, 각 정부 부처, 수석비서관실, 정보기관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보고서들을 언제 다 읽습니까? 전문가들이 올린 보고서는 읽기만 해서는 모릅니다. 빨리 이해할 수도 없고요. 대면보고를 올리는 사람은 그 부서에서는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대면보고가 안 된다는 것은 대통령이 그 전문가와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먼저 비서와 소통하라” (문희상)
김 전 실장은 “수석비서관들은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로, 장관과는 달리 대통령과는 글자 그대로 식구와 같은 사람들”이라면서 “대통령은 그들로부터 지식을 공급받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와이셔츠 바람으로 팔 걷어붙이고 보좌관실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로부터 진솔한 소리를 듣고, 전문지식을 공급받기 위해 그러는 것이죠. 대통령은 평소 수석비서관들을 수시로 불러들여 보고를 받으면서 국정상황에 대해 전문지식을 공급받으면서 무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관들의 보고를 받을 때에도 두렵지 않게 됩니다.”
김 전 실장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런 일들이 이행되지 않았다”면서 “그러면서 대통령이 고립되고 국정상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에게 “그동안 대통령이 장관은 물론 국가정보원장, 비서실장과도 독대(獨對)를 하지 않았던 것이, 그들을 만나면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날까 봐 그런 것이 아니냐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라며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도 그렇게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TV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하는 걸 보면 프롬프터를 보면서 한다는 게 느껴져요. 수석비서관회의를 할 때에도 메모한 것을 읽고 있다는 게 보이고 ….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수석비서관들이 얘기하는 걸 대통령이 바로 지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 원인을 “소통(疏通)을 전혀 못하는 대통령이었다”는 데서 찾았다. 그는 자신이 야당 대표로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소통’을 역설했었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비서들하고 상의하라, 비서가 소통의 제일 첫 순위다’라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말했어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모두 토론을 많이 했어요.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토론대통령’이라고 할 정도로 수석비서관, 비서관들과 토론을 많이 했어요. ‘이 정부는 토론과 소통이 없다. 그래서 먼저 청와대 내부부터 소통하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여당과 당정(黨政)협의를 통해 소통하고, 그 다음에 야당과 소통하라고 말했습니다. 여당보다 야당과 먼저 소통하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야당과 소통하는 것은 대선 때 반대했던 48.5%의 국민들과 한꺼번에 소통하는 것’이라고도 했어요. 그 다음은 언론과 소통하라, 언론도 국민을 대표한다고 조언했어요.”
문 의원은 “이 정부는 소통은 없이, 비선(秘線) 실세하고만 소통하다가 실패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 사람들마다, ‘소통’ ‘소통’ 하는데, ‘소통’이란 무엇입니까.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얘기했지만 소통은 ‘들어 주는 것’입니다. 소통은 ‘경청(hearing)’과 ’받아들여 주는 것(accepting)’으로 구성됩니다. 만나서 얘기를 들어 주고 그게 일리가 있으면 받아들여 주는 것이 소통이죠.”
“MB는 티타임에 소통” (임태희)
이명박 정부의 비서실장(대통령실장)을 지낸 임태희 전 의원은 “공적(公的) 기구가 비선 실세에 눌려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점과 이를 용인한 대통령의 리더십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비선은 사실 어느 정권에도 있었습니다. 공적 기구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비선에서 얘기하는 것은 공적 기구에 대한 보완기능만 수행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대통령에게 자문을 하는 경우는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노출이 된 분들이었습니다. 공적 결정을 거기서 뒤흔들거나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공적인 기구가 사인(私人)을 위한 일을 하게 하는 경우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임태희 전 실장도 ‘소통’ 문제를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국무회의 하기 전에 티타임이 있었어요. 대통령도 나와서 함께 차를 마시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 신문에 난 얘기, 들은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국무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대통령이 ‘아까 하던 얘기 좀 마저 해 보라’고 하면 다시 차 마시면서 얘기를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늘 소통이 됐습니다. 대통령의 귀를 누군가가 독점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거나 사리에 어긋난 얘길 할 수가 없었어요. 크로스체크가 되니까 …. 요새 얘기 들어보니 티타임에 대통령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 얼마 전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자신이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가 논란이 됐죠.
“조 장관은 나중에 ‘면담 신청해서 독대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꾸었는데, 세상에 정무수석비서관이 무슨 면담 신청을 하고 대통령을 만나요? 그냥 ‘대통령이 계시냐?’고 묻고 문 열고 들어가는 거죠.”
— 수석비서관이 실장에게 얘기 안 하고 들어가도 됩니까.
“실장실에 있는 사람들은 수석비서관이 실장을 거치지 않고 들어가는 걸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소통에 영향을 주면 안 되기 때문에 수석비서관들에게 ‘실장에게 얘기 안 하고 대통령을 만나도 된다’고 했어요. 하지만 수석비서관이 실장에게 얘기 안 한다고 실장이 모르고 있으면 그 실장은 문제가 있는 것이죠. 직접 얘기하지 않아도 실장에게는 얘기가 다 들어오게 관리를 해야죠. 꼭 실장에게 보고를 해야 알고, 보고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은 실장 자격이 없는 것이죠.”
임 실장은 “대통령 주위에 시민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말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소통이 막히는 것”이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거기서 많은 문제가 나오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주 한정된 사람들만 데리고 통치” (박관용)
박근혜 대통령은 비서실장으로 허태열 전 의원, 김기춘 전 의원, 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 이원종 전 충북지사 등 주로 관료 출신들을 임명했다. 국회의원이나 민선 도지사 등을 지낸 이들도 있지만,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관료’에 가까운 인물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무수석비서관에도 국내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외무공무원이나, 여성정치인을 앉혔다. 이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정무기능을 경시하고 있다느니, 여의도정치를 멀리하는 의중이 드러난 것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와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문희상 의원은 “그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래로 명령하고 지시하는 스타일이에요. 공무원 출신들은 거기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이고요. 박근혜 대통령이 가까이 둔 정치인들도 그런 데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지시를 받으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사람들만 곁에 둔 것이죠. 그게 실패의 원인입니다. 대통령 주변에는 ‘아니오’라고 들이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멀리한 데 대해 임태희 전 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 중심이었어요. 여의도를 인정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간여를 많이 안 하고 거리를 둔 것입니다.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할 때에는 여의도와도 얼마든지 소통했습니다. 나도 여의도와 소통했고, 대통령도 FTA(자유무역협정) 때에는 국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때는 대통령이 수시로 국회의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국회와 소통해서 여의도와의 문제는 크지 않았었어요. 나도 여의도를 향해 귀를 열어 놓고 있었고요. 지금은 여의도를 대통령이 하는 일의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아니었나 싶어요.”
반면에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 임용을 정무형·관료형의 문제라기보다는 친소(親疏)의 문제로 보았다.
“허태열 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할 때 뒷바라지를 하던 사람이고, 김기춘 전 실장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할 때 제일 가까웠던 사람이죠. 그 밖의 실장은 특별히 가까운 사람이 없으니 쓰게 된 것이고 ….
대통령이 그 사람들 얘기를 제대로 들은 것 같지는 않아요. 얘기를 들어보면, 실장은 형식적으로만 앉아 있고, 실질적인 얘기는 문고리들하고 다 했던 거죠. 아주 한정된 몇 사람만 데리고 통치를 했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이건 박근혜게이트” (김중권)
1987년 이후 역대 정권은 늘 임기 말에 불거져 나온 친인척 비리로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이번 최태민·최순실 스캔들은 헌정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과거 비리와 이번 사태는 뭐가 다른 것일까.
김중권 전 실장은 “전혀 다르다”면서 “이전 게이트들은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잘못이지만, 이번에는 대통령 자신의 잘못”이라고 단언했다.
“기밀인 대통령 연설문을 외부로 유출한 것이나, 사인(私人)이 무시로 청와대에 드나든 것 등, 대통령이 원인 제공을 했잖아요? 검찰이나 특검에서 밝혀낼 일이지만,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나 정호성 비서관이 대통령이 지시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이건 최순실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게이트입니다.”
임태희 전 실장은 “제일 큰 차이는 대통령이 알았느냐, 몰랐느냐의 차이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과거 친인척이나 측근 비리는 대통령이 모르고 빚어진 일이 많았어요. 반면에 이번에는 비서실장, 민정수석비서관이 상황을 알 수 있었다는 정황이 많이 보이잖아요? 이명박 정부 때 같으면 대통령에게 가서 ‘이런 일이 있으면 되느냐’고 물었어요.”
— 정말 대통령에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고, 해야죠. 그걸 못하는 보좌관이 나쁜 거죠. 지금 사태를 실장이나 민정수석비서관이 진짜 몰랐다면 무책임한 거죠. 그럼 도대체 무얼 보좌했다는 얘기입니까? 알고 그랬다면 공범(共犯)인 거죠. 몰랐다고 얘기하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얘기입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 브레이크 작동했다” (문희상)
문희상 의원은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브레이크가 작동해서 중간에 다 걸렸다”고 말했다.
— 브레이크가 작동했다면, 왜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 노건평씨 문제가 생겼습니까. 제대로 작동을 안 했으니 그런 문제가 생긴 거 아닙니까.
“아니요! 아니요! 안 그랬어요! 무섭게 보고됐고, 다 알고 있고, 다 브레이크가 걸린 것입니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 아들, 노무현 대통령의 형이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까? 특히 노무현 대통령 때는 브레이크가 확실하게 작용했습니다.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이 노건평씨 문제를 보고하는 자리에 나도 동석해서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내가 실장을 할 때에는 임기 초여서 큰일은 없었지만, 노건평씨가 인사 문제에 간여하는 게 보였어요. 국세청장 임명 건인데, 노무현 대통령이 대로했습니다. 노건평씨의 추천을 받았던 사람은 그것 때문에 밀려났습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브레이크를 걸 공식적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어요.”
김중권 전 실장은 친인척 비리 문제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비서실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내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민정비서관과 법무비서관이 김홍업씨가 정부 부처에 인사청탁을 한다고 보고했어요. 그때는 민정수석비서관이 없었고, 민정과 법무비서관은 실장 직속이었어요. 나는 두 사람에게 ‘김홍업씨에게 절대 정부 부처에 얘기하지 말고, 애로 사항이 있으면 내게 직접 말하면 내가 될 일과 안 될 일을 판단하도록 하겠다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대통령에게 내가 조치한 내용을 보고했더니 ‘현명하게 했다’고 하더군요.”
김중권 전 실장은 “지난 번 정윤회 문건 사건이 있었을 때 비서실장이 끊어 주는 역할을 해 주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정(수석)비서관은 대통령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에 대해 굉장히 몸조심합니다. 대통령의 위엄에 눌려 버려요. 대통령이 보고를 받으면서 ‘그래요?’ 하는 반응을 보이면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지만, ‘그 부분은 내가 다 알고 있어요’ 이러면 말문이 막혀 버려요. 그럴 때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얘기를 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정권의 실장들은 그걸 못한 것 같아요.”
김 전 실장은 “행정관료 출신들은 대통령 비위를 맞출 수는 있어도 비위를 거스르지는 못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많이 썼던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과거 살아온 일생이 오늘의 이러한 결과로 나타난 것” (박관용)
“다른 대통령들이 실수했을 때하고는 달리 이유가 너무 뻔해요.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자신의 성격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설명할 말이 없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영삼 정권의 첫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성격’을 꼽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실패한 것은 자기가 살아온 경험에서 생긴 트라우마 때문이에요. 아버지가 가장 가까운 부하에게 총을 맞아 죽었고,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사람들이 권력이 떨어지니까 외면해 버리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남자들을 보면 배신자 아니면 거짓말만 하는 사람들,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 같았을 겁니다. 거기다가 남편이나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 혼자 살면서 그 속에 갇혀 살아오다 보니, 사람을 못 믿는 거예요. 믿는 사람이라는 게 초기부터 그를 모셨던 정윤회하고 최순실 같은 사람들이에요. 그들이야 자신에게 성심성의껏 잘하니까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겠죠.”
박 전 의장은 “사람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그런 불신(不信)이 인사(人事)로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자기가 눈으로 보고 경험한 사람, ‘아, 이 사람이면 괜찮겠구나’라고 생각한 사람들만 기용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경우, 과거에 같은 상임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사람이 말수가 적고 성실하고 차분한 것을 보고, ‘저 사람은 진실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대통령은 사람을 넓게 써야 하는데, 한정된 사람들만 가지고 통치를 하려 한 게 문제입니다.”
박관용 전 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살아온 일생이 오늘의 이러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대중 정권의 첫 비서실장을 지낸 김중권 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실패원인으로 ‘국정운영 능력 부족’과 ‘인사 실패’를 꼽았다.“대통령은 모든 분야에 걸쳐 최고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전문가에 버금가는 소양과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전문가들의 보고를 판단하고 지적할 수 있는 능력은 있어야지요. 물론 그런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국정을 운영할 사람을 잘 뽑아 써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에서도 실패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실패 원인입니다.”
김중권 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면(對面)보고 기피도 여기서 파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이기 때문에 대면보고를 받으려면 화장도 하고 치장도 해야 하기 때문에 대면보고를 피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대통령을 옹호하기 위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서류보고를 받았다고 하는데, 각 정부 부처, 수석비서관실, 정보기관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보고서들을 언제 다 읽습니까? 전문가들이 올린 보고서는 읽기만 해서는 모릅니다. 빨리 이해할 수도 없고요. 대면보고를 올리는 사람은 그 부서에서는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대면보고가 안 된다는 것은 대통령이 그 전문가와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먼저 비서와 소통하라” (문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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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3월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지도부 및 상임위원장 만찬에서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와이셔츠 바람으로 팔 걷어붙이고 보좌관실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로부터 진솔한 소리를 듣고, 전문지식을 공급받기 위해 그러는 것이죠. 대통령은 평소 수석비서관들을 수시로 불러들여 보고를 받으면서 국정상황에 대해 전문지식을 공급받으면서 무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관들의 보고를 받을 때에도 두렵지 않게 됩니다.”
김 전 실장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런 일들이 이행되지 않았다”면서 “그러면서 대통령이 고립되고 국정상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에게 “그동안 대통령이 장관은 물론 국가정보원장, 비서실장과도 독대(獨對)를 하지 않았던 것이, 그들을 만나면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날까 봐 그런 것이 아니냐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라며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도 그렇게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TV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하는 걸 보면 프롬프터를 보면서 한다는 게 느껴져요. 수석비서관회의를 할 때에도 메모한 것을 읽고 있다는 게 보이고 ….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수석비서관들이 얘기하는 걸 대통령이 바로 지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 원인을 “소통(疏通)을 전혀 못하는 대통령이었다”는 데서 찾았다. 그는 자신이 야당 대표로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소통’을 역설했었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비서들하고 상의하라, 비서가 소통의 제일 첫 순위다’라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말했어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모두 토론을 많이 했어요.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토론대통령’이라고 할 정도로 수석비서관, 비서관들과 토론을 많이 했어요. ‘이 정부는 토론과 소통이 없다. 그래서 먼저 청와대 내부부터 소통하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여당과 당정(黨政)협의를 통해 소통하고, 그 다음에 야당과 소통하라고 말했습니다. 여당보다 야당과 먼저 소통하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야당과 소통하는 것은 대선 때 반대했던 48.5%의 국민들과 한꺼번에 소통하는 것’이라고도 했어요. 그 다음은 언론과 소통하라, 언론도 국민을 대표한다고 조언했어요.”
문 의원은 “이 정부는 소통은 없이, 비선(秘線) 실세하고만 소통하다가 실패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 사람들마다, ‘소통’ ‘소통’ 하는데, ‘소통’이란 무엇입니까.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얘기했지만 소통은 ‘들어 주는 것’입니다. 소통은 ‘경청(hearing)’과 ’받아들여 주는 것(accepting)’으로 구성됩니다. 만나서 얘기를 들어 주고 그게 일리가 있으면 받아들여 주는 것이 소통이죠.”
“MB는 티타임에 소통” (임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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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8일 국무회의에 앞서 김황식 당시 총리,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명박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 전 티타임을 소통의 시간으로 이용했다. |
“비선은 사실 어느 정권에도 있었습니다. 공적 기구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비선에서 얘기하는 것은 공적 기구에 대한 보완기능만 수행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대통령에게 자문을 하는 경우는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노출이 된 분들이었습니다. 공적 결정을 거기서 뒤흔들거나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공적인 기구가 사인(私人)을 위한 일을 하게 하는 경우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임태희 전 실장도 ‘소통’ 문제를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국무회의 하기 전에 티타임이 있었어요. 대통령도 나와서 함께 차를 마시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 신문에 난 얘기, 들은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국무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대통령이 ‘아까 하던 얘기 좀 마저 해 보라’고 하면 다시 차 마시면서 얘기를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늘 소통이 됐습니다. 대통령의 귀를 누군가가 독점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거나 사리에 어긋난 얘길 할 수가 없었어요. 크로스체크가 되니까 …. 요새 얘기 들어보니 티타임에 대통령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 얼마 전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자신이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가 논란이 됐죠.
“조 장관은 나중에 ‘면담 신청해서 독대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꾸었는데, 세상에 정무수석비서관이 무슨 면담 신청을 하고 대통령을 만나요? 그냥 ‘대통령이 계시냐?’고 묻고 문 열고 들어가는 거죠.”
— 수석비서관이 실장에게 얘기 안 하고 들어가도 됩니까.
“실장실에 있는 사람들은 수석비서관이 실장을 거치지 않고 들어가는 걸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소통에 영향을 주면 안 되기 때문에 수석비서관들에게 ‘실장에게 얘기 안 하고 대통령을 만나도 된다’고 했어요. 하지만 수석비서관이 실장에게 얘기 안 한다고 실장이 모르고 있으면 그 실장은 문제가 있는 것이죠. 직접 얘기하지 않아도 실장에게는 얘기가 다 들어오게 관리를 해야죠. 꼭 실장에게 보고를 해야 알고, 보고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은 실장 자격이 없는 것이죠.”
임 실장은 “대통령 주위에 시민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말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소통이 막히는 것”이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거기서 많은 문제가 나오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주 한정된 사람들만 데리고 통치” (박관용)
박근혜 대통령은 비서실장으로 허태열 전 의원, 김기춘 전 의원, 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 이원종 전 충북지사 등 주로 관료 출신들을 임명했다. 국회의원이나 민선 도지사 등을 지낸 이들도 있지만,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관료’에 가까운 인물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무수석비서관에도 국내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외무공무원이나, 여성정치인을 앉혔다. 이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정무기능을 경시하고 있다느니, 여의도정치를 멀리하는 의중이 드러난 것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와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문희상 의원은 “그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래로 명령하고 지시하는 스타일이에요. 공무원 출신들은 거기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이고요. 박근혜 대통령이 가까이 둔 정치인들도 그런 데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지시를 받으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사람들만 곁에 둔 것이죠. 그게 실패의 원인입니다. 대통령 주변에는 ‘아니오’라고 들이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멀리한 데 대해 임태희 전 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 중심이었어요. 여의도를 인정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간여를 많이 안 하고 거리를 둔 것입니다.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할 때에는 여의도와도 얼마든지 소통했습니다. 나도 여의도와 소통했고, 대통령도 FTA(자유무역협정) 때에는 국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때는 대통령이 수시로 국회의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국회와 소통해서 여의도와의 문제는 크지 않았었어요. 나도 여의도를 향해 귀를 열어 놓고 있었고요. 지금은 여의도를 대통령이 하는 일의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아니었나 싶어요.”
반면에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 임용을 정무형·관료형의 문제라기보다는 친소(親疏)의 문제로 보았다.
“허태열 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할 때 뒷바라지를 하던 사람이고, 김기춘 전 실장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할 때 제일 가까웠던 사람이죠. 그 밖의 실장은 특별히 가까운 사람이 없으니 쓰게 된 것이고 ….
대통령이 그 사람들 얘기를 제대로 들은 것 같지는 않아요. 얘기를 들어보면, 실장은 형식적으로만 앉아 있고, 실질적인 얘기는 문고리들하고 다 했던 거죠. 아주 한정된 몇 사람만 데리고 통치를 했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이건 박근혜게이트” (김중권)
1987년 이후 역대 정권은 늘 임기 말에 불거져 나온 친인척 비리로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이번 최태민·최순실 스캔들은 헌정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과거 비리와 이번 사태는 뭐가 다른 것일까.
김중권 전 실장은 “전혀 다르다”면서 “이전 게이트들은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잘못이지만, 이번에는 대통령 자신의 잘못”이라고 단언했다.
“기밀인 대통령 연설문을 외부로 유출한 것이나, 사인(私人)이 무시로 청와대에 드나든 것 등, 대통령이 원인 제공을 했잖아요? 검찰이나 특검에서 밝혀낼 일이지만,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나 정호성 비서관이 대통령이 지시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이건 최순실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게이트입니다.”
임태희 전 실장은 “제일 큰 차이는 대통령이 알았느냐, 몰랐느냐의 차이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과거 친인척이나 측근 비리는 대통령이 모르고 빚어진 일이 많았어요. 반면에 이번에는 비서실장, 민정수석비서관이 상황을 알 수 있었다는 정황이 많이 보이잖아요? 이명박 정부 때 같으면 대통령에게 가서 ‘이런 일이 있으면 되느냐’고 물었어요.”
— 정말 대통령에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고, 해야죠. 그걸 못하는 보좌관이 나쁜 거죠. 지금 사태를 실장이나 민정수석비서관이 진짜 몰랐다면 무책임한 거죠. 그럼 도대체 무얼 보좌했다는 얘기입니까? 알고 그랬다면 공범(共犯)인 거죠. 몰랐다고 얘기하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얘기입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 브레이크 작동했다” (문희상)
문희상 의원은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브레이크가 작동해서 중간에 다 걸렸다”고 말했다.
— 브레이크가 작동했다면, 왜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 노건평씨 문제가 생겼습니까. 제대로 작동을 안 했으니 그런 문제가 생긴 거 아닙니까.
“아니요! 아니요! 안 그랬어요! 무섭게 보고됐고, 다 알고 있고, 다 브레이크가 걸린 것입니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 아들, 노무현 대통령의 형이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까? 특히 노무현 대통령 때는 브레이크가 확실하게 작용했습니다.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이 노건평씨 문제를 보고하는 자리에 나도 동석해서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내가 실장을 할 때에는 임기 초여서 큰일은 없었지만, 노건평씨가 인사 문제에 간여하는 게 보였어요. 국세청장 임명 건인데, 노무현 대통령이 대로했습니다. 노건평씨의 추천을 받았던 사람은 그것 때문에 밀려났습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브레이크를 걸 공식적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어요.”
김중권 전 실장은 친인척 비리 문제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비서실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내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민정비서관과 법무비서관이 김홍업씨가 정부 부처에 인사청탁을 한다고 보고했어요. 그때는 민정수석비서관이 없었고, 민정과 법무비서관은 실장 직속이었어요. 나는 두 사람에게 ‘김홍업씨에게 절대 정부 부처에 얘기하지 말고, 애로 사항이 있으면 내게 직접 말하면 내가 될 일과 안 될 일을 판단하도록 하겠다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대통령에게 내가 조치한 내용을 보고했더니 ‘현명하게 했다’고 하더군요.”
김중권 전 실장은 “지난 번 정윤회 문건 사건이 있었을 때 비서실장이 끊어 주는 역할을 해 주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정(수석)비서관은 대통령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에 대해 굉장히 몸조심합니다. 대통령의 위엄에 눌려 버려요. 대통령이 보고를 받으면서 ‘그래요?’ 하는 반응을 보이면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지만, ‘그 부분은 내가 다 알고 있어요’ 이러면 말문이 막혀 버려요. 그럴 때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얘기를 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정권의 실장들은 그걸 못한 것 같아요.”
김 전 실장은 “행정관료 출신들은 대통령 비위를 맞출 수는 있어도 비위를 거스르지는 못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많이 썼던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