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취재 最前線〈2〉 오세훈 전 서울시장 : 월간조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만나러 가는 길에 그에 대해 누군가 이런 지적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왜 그리 풀이 죽어 있어?” 4·13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해 낙선한 오 전 시장이 그의 눈에는 의기소침한 것처럼 비쳤던 모양이다. 오 전 시장에게 이 말을 전하자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피가 뜨거웠어요.” ‘피가 뜨겁다’는 말은 자신감이 넘쳤다는 뜻이다. 그 절정은 그가 무상급식 문제로 서울시장직을 건 주민투표까지 벌인 일이었다. 그때 인내했다면 그의 앞날이 바뀌었을지 모른다. 거칠 것 없던 그의 질주가 총선 패배 후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면 그건 행운일지도 모른다.

패배는 쓰나 보약(補藥)이 될 수도 있다. 오 전 시장은 “저는 연말까지 준비를 단단히 하면서 제가 과연 성공한 지도자로 평가받을 정책적 준비와 품성, 마음가짐을 갖추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해 보겠다”고 했다. 그는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대선(大選) 출마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린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경쟁은 많을수록, 할수록 좋은 것이지요.” 언제쯤 대선 출마 여부를 밝힐 것이냐고 묻자 오 전 시장은 이렇게 답을 했다. “빠르면 올 연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뜻을 명확히 밝히겠습니다.” 명시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연말 연초’란 시한은 남 지사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의식한 것처럼 보였다.

그가 8월 《왜 지금 국민을 위한 개헌인가》라는 소책자를 낸 데 이어 《왜 지금 공존(共存)과 상생(相生)인가?》라는 소책자 2탄을 출간했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담은 소책자를 오 전 시장은 다섯 권까지 낸다는 방안이다. 이 책 서두에서 그는 “사회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서 새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썼다.

다음은 그가 쓴 서문(序文)이다.

“우리는 경쟁에 강합니다. 경쟁이 만들어낸 그 억척스러운 경쟁력으로 오늘날의 이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뒤처지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많은 국민이 위대한 성취를 부끄러워하게 되었습니다. 선진국 진입 달성에 자부심을 느끼며 더욱 힘내서 뛰어야 할 젊은이들의 축 처진 어깨를 바라보며, 이들을 다시 신바람나게 해줄 의무와 책임이 우리 세대에게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부(國富)를 증진시키면서도 빈부격차는 줄여서 그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오 전 시장은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이룬 것’과 ‘잃은 것’으로 대비시켰다.

‘얻은 것’은 GDP(국가총생산) 순위 세계 11위, 외환보유고 세계 7위, 군사력 세계 10~11위, 외국인 관광객 방문 수 세계 20위, 학업 성취도 평가 세계 3~5위, 고등교육 이수율 세계 1위, GDP 대비 R&D 비율 세계 1위 등이었다.

그런데도 오 전 시장은 “모든 세대가 우울하다”며 “청년들의 비명소리가 가장 크고 5포 세대, 7포 세대라는 말이 새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취업도, 연애와 결혼도, 내 집 마련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도 모두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10%를 상회하는 청년실업률과 함께 중년・노년의 삶도 우울하다고 진단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숱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이 세계 28위이며 국민행복도는 58위이고 연간 노동시간 2위에 연간 자살자 수는 세계 1위인 이상한 나라로 변모했다. 대한민국은 어떻게 다시 행복해질 것인가. 오 전 시장은 “공존의 정신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해답이 있다고 주장했다.

2016년 4월 13일 저녁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오세훈 후보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성공적 복지 정책의 핵심’을 네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정도에 맞춰 복지를 확대해 간다는 원칙하에 30년 정도의 복지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담세율은 25%이고 북유럽 제국의 담세율은 45% 수준인데 이들 수준의 복지를 원한다면 담세율을 30년 동안 5년 단위로 20% 정도 올릴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6번의 정권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3% 정도씩 증세를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는 엄청난 조세저항을 감당해 낼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책에 썼다.

둘째, 오 전 시장은 취약계층부터 보듬는 복지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냉엄한 현실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하고도 중요한 이 원칙이 크게 흔들리면서 우리의 복지 확충이 시작됐다는 것으로, 그 대표적 사례가 자신이 시장직에서 물러나게 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라는 것이다.

“당시 저는 이런 식의 형식상의 평등은 진정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과 혜택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와 정의에 반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당시 사회 분위기는 동등한 액수의 복지혜택을 계층과 무관하게 똑같이 나누어주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복지’의 정신인 양 호도하는 세력에 의해 주도됐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셋째로 오 전 시장은 근로의욕을 감퇴시키는 현금 복지는 최소화하고 복지 재원을 사회 서비스 복지에 투자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며, 넷째 원칙적으로 복지 재원은 정부가 책임지되 이른바 제3섹터, 즉 민간과의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신뢰도와 투명성을 높이고 배려와 양보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의 양보와 희생’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스웨덴식 발렌베리 기업 모델을 통한 ‘한국형 발렌베리 기업 모델’을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가 쓴 ‘국민의 존경을 받는 발렌베리 기업 문화’를 인용해 본다.

“발렌베리 그룹은 우리에겐 자동차 회사 사브(SAAB), 면도기와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에릭슨 등의 브랜드로 잘 알려진 스웨덴 기업 그룹이다. 그들은 스웨덴 국내 총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 재벌처럼 엄청난 자산 규모의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스웨덴의 국민 경제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발렌베리 가문을 대하는 스웨덴 국민들의 태도나 마음은 우리나라 재벌에 대한 그것과는 완전히 상이하다.…”

사진=뉴시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오늘날 스웨덴 국민 다수로부터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발렌베리 기업 가문의 탄생에는 몇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며 첫째는 1938년 극심한 노사분규를 겪은 끝에 사민당 정부의 중재 아래 노동조합-정부-사용자단체 3자 간에 체결된 ‘살트셰바덴 협약’이라고 강조했다. 이 협약을 통해 발렌베리 등 자본가 가문은 투자와 고용, 그리고 고세율 복지국가 건설에 동참하는 대신 영구적인 기업 소유 지배권을 인정받게 됐다는 것이다.

둘째가 발렌베리 공익재단이다. 발렌베리 가문 구성원들은 거의 전 재산을 출연해 20여 개에 이르는 발렌베리 공익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을 통해 발렌베리 기업의 영구적인 경영권을 확보하는 대신 가문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오 전 시장에 따르면 현재 발렌베리 가문 구성원이 직접 보유한 발렌베리 기업의 주식 비중은 0.5% 남짓이다.

셋째는 발렌베리 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전 재산을 국가와 사회에 환원했을 뿐 아니라 발렌베리 가문 구성원 누구도 탈세나 횡령, 사생활 문제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모범적이고 기품 있는 가문의 권위를 오랜 기간 만들어왔다.

오 전 시장은 ‘고(高) 신뢰사회’를 만들기 위해 4가지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책에 썼다. 첫째, 과도한 규제는 비리와 부정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규제개혁과 강력한 부패방지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공정하고 일관성 있는 법 집행과 적용으로 국민의 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셋째, 재산권과 계약을 보장함으로써 자유시장 경제질서의 근간인 사적재산권을 보호하고 법을 어긴 사람이 불이익과 제재를 받도록 해야 한다. 넷째, 각종 전문가 조직을 대변하는 협회 및 노조 등 이익단체의 보다 개방적인 자세와 과도한 이익추구에 대한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