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에 바란다 - 반드시 처리해야 할 안보(安保) 법안은 무엇인가 : 월간조선

20대 국회의 임기가 5월 30일 시작됐다. 20대 국회에서 손봐야 할 것은 한둘이 아니다. 국가 운영의 양대 축 중 하나인 안보 법안 처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법안을 처리해야 할까. 19대 때 폐기된 법안을 보면 답이 나온다. 여야 대립 속에 법안 처리를 못 해 ‘식물국회’라는 이야기를 들은 19대 국회에서는 총 26개의 안보 법안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정보위원회 계류, 자동 폐기 법안 7개

정보위원회에서는 7개의 안보 관련 법안이 폐기됐다. 대표적인 법안이 ‘사이버테러방지법’(대표발의: 서상기, 제안일: 2013년 4월 9일)이다.

세계 각국이 사이버 공간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우리는 사이버 안보에 관한 기본법률조차 없다. 국내 사이버 안보 관련 법제는 대통령 훈령으로 만든 ‘국가사이버안전관리규정’이 전부다. 정부 관계자는 “정보통신기반보호법 등에 사이버 안전 관련 규정이 산재해 있지만, 이는 일상적인 정보 보호에 중점을 둬, 치명적이고 전문적인 북한 해커들의 공격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사이버테러방지법은 야당이 사생활 침해 우려 등의 이유로 처리에 반대해 통과되지 못했다. 17~18대 국회 때도 비슷한 법안이 제출됐지만 여야, 관련 기관 간 입장이 대립하면서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사이버테러방지법안을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선정했다.

국가정보원(국정원) 직원이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대표발의: 송영근, 제안일: 2014년 8월 28일)도 버려졌다.

국정원 요원 신분을 노출하는 것은 정보전쟁에서의 패배를 자초하며 대한민국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이적(利敵)행위다. 미국은 1982년 ‘정보요원 신원보호법’을 제정했다. 국가 정보기관 요원의 신원을 알게 된 사람이 이를 고의로 누설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만 달러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내용이다.

CIA 퇴직자인 필립 에이지가 CIA의 비밀요원 다수의 신원을 공개해 CIA에 큰 타격을 가한 것이 계기였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정보기관 요원의 신분 노출을 엄격히 제한·금지하고 있다. 이유는 그 노출이 당사자의 생명을 잃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를 비롯한 국익(國益)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가 사이버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안’(대표발의: 하태경, 제안일: 2013년 3월 26일)·‘사이버위협정보 공유에 관한 법률안’(대표발의: 이철우, 제안일: 2015년 5월 19일)·‘사이버테러 방지 및 대응에 관한 법률안’(대표발의: 이노근, 제안일: 2015년 6월 24일)·‘국가 사이버테러 방지 등에 관한 법률안’(대표발의: 서상기, 제안일: 2016년 2월 22일) 등이 정파(政派)의 이해관계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

미방위에서 버려진 법안 4개는?

2016년 5월 30일 국민의당 의원총회에서 당 지도부가 초선 의원들에게 의원 배지를 달아주고서 손을 맞잡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에서 처리하지 못한 중요 안보 관련 법안은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안’(통비법·대표발의: 서상기, 제안일: 2014년 1월 3일)이다.

법안의 핵심내용은 첫째, 합법적 통신제한조치가 집행되도록 전화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통신사업자에게 감청에 필요한 장비 및 설비 구축을 의무화하고 소요되는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둘째, 미래부 장관은 전기통신사업자가 감청협조 설비를 구비하지 않을 경우 구비 의무를 명령할 수 있고 불이행 시 외국처럼 이행 강제금을 부과한다. 셋째, 통신사업자의 감청 설비 및 오·남용 방지에 필요한 의견수렴 및 감독을 위해 여야 추천인, 업계전문가·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통신제한조치 위원회’ 설치 및 운영 등이다.

공안 당국은 사이버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통신사업자에게 감청 장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통비법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과 연결된 국내 대공(對共) 용의자 수사를 위해 합법적 감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원을 신뢰할 수 없다는 논리로 처리를 막았다. 야당의 강경 대응에는 2005년 ‘X파일 사건’에 이어 2012년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국정원의 정보활동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렸었다.

통비법은 17대 국회부터 만 10년째 국회에 계류와 자동 폐기를 반복하고 있다. 17대 국회에서는 2005년 11월 정형근 전 의원이 처음 발의했지만, 회기가 종료되며 폐기됐고 18대 국회에서는 이한성 전 의원이 발의했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5년 11월 바른사회시민회의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감청 관련 법안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64.6%에 달했고, 통신업체가 감청 관련 설비를 구축해야 한다는 답변도 64.9%였다.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또 2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절반 이상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태진 사이버폴리싱연구센터장은 “현재 선진국 중 휴대전화 감청을 못 하게 하는 나라는 없는데 우리는 통신사의 감청 장비 설치가 의무화돼 있지 않아 감청하지 못하고 있다”며 “흉악범,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정보기관이 제대로 정보 수집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국가 안보를 위해 통비법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며 “다만 과거 불법행위를 저지른 국정원이 신뢰를 되찾고, 법 규정을 벗어난 감청 등에 대한 엄격한 처벌 조항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대표발의: 서상기, 제안일: 2015년 11월 17일),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안’(대표발의: 서상기, 제안일: 2015년 11월 17일)이 폐기됐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개정안은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이 요청한 통신자료 제공에 관한 사항을 외부에 공개·누설할 수 없도록 규정해 수사기관의 비밀수사를 보장하도록 했고,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정보 요청을 할 수 있는 수사기관에 제한을 두는 내용이었다.

손봐야 할 통합방위법인데…

국방위원회에서는 연평도 포격 도발과 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북한 위협에 적시 대처하고 확전을 막기 위해 평상시 완전편제가 돼 있지 못한 부대에 신속히 예비군과 차량 등 장비를 동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통합방위법 일부개정안’(대표발의: 송영근, 제안일: 2014년 3월 20일)이 폐기됐다.

법안이 처리됐다면 현대 속도전에 적기 대응하기가 수월했다. 현행 통합방위법은 예비군과 물자를 부분 동원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예비군과 민간 차량을 평시에 동원하는 것은 국민 기본권 및 재산권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내용 외에도 통합방위법은 반드시 손을 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법에 군이 ‘영토, 영공, 영해를 수호한다’고 돼 있지만 사이버 공간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주요 기반 시설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에 대비한 ‘사이버안보보호법’, 사이버 전쟁 시 민관 협력을 규정한 ‘사이버안보강화법’ 등 5개 관련 법률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일본도 작년 11월 사이버 전쟁 시 정부·기업·개인 등 주체별 책무를 규정한 ‘사이버시큐리티기본법’을 제정했다.

이 외에도 ‘군인사법 일부개정안’(대표발의: 홍철호, 제안일: 2015년 12월 2일)·‘국군의 해외파견활동 참여에 관한 법률안’(대표발의: 송영근, 제안일: 2013년 6월 4일)이 19대 국회 임기 종료에 따라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국방부는 국군의 해외 파견 활동 참여에 관한 법률안 처리의 당위성을 꾸준히 설명해 왔다. 2010년에 제정된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참여에 관한 법률’(일명 ‘UN PKO법’)은 유엔 주도의 참여에 대해서만 그 내용과 절차를 정하고 있어, 국군의 해외 파견을 제한적으로 규정하는 법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김열수 성신여대 교수는 “UN PKO법은 유엔이 주도하는 평화 유지 활동에 국한돼 있어 유엔 주도가 아니거나 평화 유지 활동이 아닌 국군의 해외 파견 활동에는 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며 “국군의 해외 파견을 법률로써 보장해 줘야 한다. 국군이 다양한 해외 파견 활동을 통해 국위를 선양하고 한국을 요구하는 국가들을 제대로 지원해 주기 위한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김철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군의 해외 파견은 유사시 우리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또 파병된 해당국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하고, 해당국의 우리 동포와 우리 기업에도 도움이 됨은 물론, 우리의 국제적 위상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해외 파병이 우리 헌법상 침략 전쟁을 부인하는 국제평화주의를 훼손하고 법이 제정되면 무분별한 파병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법안 처리를 반대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수사 위한 법도 쓰레기통으로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20대 국회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간담회를 가졌다.

정무위원회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하 특정금융거래정보법 개정안·대표발의: 박민식, 제안일: 2015년 3월 6일)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대표발의: 김도읍, 제안일: 2015년 1월 30일)을 처리하지 못했다.

특정금융거래정보법 개정안은 ‘국가보안법 관련 죄에 대한 수사 및 대테러·방첩 관련 정보 업무’를 위해 국정원이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금융거래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주 내용이다.

현행안에는 FIU의 정보 제공기관에 국정원이 없다. 검찰, 경찰, 국민안전처, 국세청, 관세청,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금융위원회만이 FIU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정보기관이 테러 자금 관련 정보에 대해 접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사이버 테러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안을 예방·수사하는 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국제사회는 1989년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합의에 따라 자금 세탁 방지 관련 법을 제정하여 자국의 정보기관에 무한한 접근권을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미국은 ‘은행비밀법’, 캐나다는 ‘범죄 및 테러 자금 방지법’, 프랑스는 ‘재정화폐법’, 중국은 ‘반간첩법’, 호주는 ‘자금세탁 방지 및 대테러자금법’, 러시아는 ‘범죄행위에 의한 자금 세탁 및 테러 자금에 관한 연방법’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대성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IS를 비롯한 세계적 테러 위협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고 북한의 도발 위협도 항상 잠재된 만큼 FIU 정보 제공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며 “국정원이 FIU의 정보를 활용한다면 대북 금융정보 추적을 통한 자금세탁, 테러리즘 지원 행위 감시, 차단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야권은 “영장주의를 통한 국정원의 테러계좌 추적 권한조차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마저도 허물겠다는 것”이라며 “국정원은 과거 정보력을 활용해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등 권한 남용 사례가 있다. 개인의 금융거래 정보가 제공될 경우 통제 우려가 있다”고 법안 통과를 저지했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은 안보위해사범 수사의 경우 보안 유지를 위해 사건 처분 후 계좌추적 사실을 통보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이었다.

법안을 대표발의 한 김도읍 의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통상 수년 이상 장기간의 내사 및 수사가 필요해 현행대로 하면 피의자가 수사 진행 사실을 알고 증거를 없앨 우려가 크다”면서 “이는 수사 실패라는 결과로 이어져 국가 안보 및 국민의 생명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했다.

간첩을 간첩이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 발생

19대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북한의 사이버 테러 위협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사이버테러방지법안을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선정했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보호법 적용 대상 범죄에 국가보안법 등 중대 안보 위해 범죄를 추가토록 하는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 일부개정안’(대표발의: 김도읍, 제안일: 2015년 1월 30일), 현역 복무 중인 군인이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에 군사상 기밀을 누설하거나 그들을 위해 간첩행위를 한 경우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군형법 일부개정안’(대표발의: 송영근, 제안일: 2015년 10월 12일), 법원에 국가 안보 위해 사범 사건을 전담하는 재판부를 설치하도록 한 ‘법원조직법 일부개정안’(대표발의: 김진태, 제안일: 2015년 5월 18일)을 포함, 총 10개의 안보 관련 법안이 빛을 보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됐다.

이 중 ‘군형법 일부개정안’의 경우 기존 법안의 개정이 시급했다. 현행 군형법에 간첩죄와 이적죄는 ‘적을 위해 간첩행위를 한 사람’과 ‘적에게 군사상 이익을 제공한 사람’으로 규정돼 있고 법률상 ‘적’은 ‘북한’으로 한정했다. ‘적’이 아닌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를 위한 간첩행위나 이적행위를 한 경우 간첩죄나 이적죄 적용을 할 수 없다.

국방부 관계자의 이야기다.

“최근 들어 외국이나 외국업체 등에 군사자료를 건네주는 등의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2015년 7월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A 소령은 2013년 6월부터 지난 2월까지 해군 함정과 관련된 3급 군사비밀 1건과 군사자료 26건 등 총 27건을 수차례에 걸쳐 중국인 남성에게 건넨 혐의로 군검찰에 구속기소됐는데, 군사기밀보호법과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혐의만으로 기소됐습니다. 법안이 폐기됐으니 이런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간첩을 간첩이라 부르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1996년 해군 정보국 소속 한국계 로버트 김에 대해 ‘북한 잠수함 정보를 동맹국인 한국 무관에게 알려준 혐의’로 체포해 징역 9년, 보호관찰 3년을 선고했다. 동맹국이든 적국이든 기밀을 넘기면 간첩죄로 간주한다.

법제사법위원회는 법안 통과 마지막 관문이다. 이곳까지 법안이 올라왔다는 것은 해당 상임위에서는 여야 합의로 법안을 처리했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19대 국회에서의 ‘입법 파행’이 20대 국회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이옥남 정치실장은 “차기 원내지도부 간 회동에 빈손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 여야가 여전히 19대 국회의 문제점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면서 “20대 국회 역시 결국 협치보다는 교착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