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대구 국회의원들 불화의 원인 : 월간조선

지난 9월 7일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찾았다. 대구시 업무보고와 민생현장 방문을 위해서다. 박 대통령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자신의 옛 지역구인 대구 달성에 있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이었다. 이곳에서 권영진(權泳臻) 대구시장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지역주민들과 오찬간담회를 끝내고 대구의 최대 재래시장인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의 열혈 지지층인 시민과 상인들은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등의 환호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상가를 돌며 현금과 온누리 상품권으로 만두·개량한복 상의·과자·신발 등을 샀다. 여기까지는 일반 지방 일정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 이후 TK(대구·경북)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대구지역 국회의원 전원이 행사에 초청받지 못한 까닭이다.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 민경욱(閔庚旭) 대변인은 9월 8일 이같이 설명했다.

“참석 범위는 대구시와 협의한 것입니다. 어제 대구시 업무보고는 경제 활성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주제를 갖고 토론을 벌이는 자리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국민과 직접적인 소통이 중요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대구지역 방문에서 시민과 접촉을 넓히는 것을 원했고, 업무보고에 지역구 의원이 불참한 것은 청와대의 결정이 아니라 대구시와의 협의에 따른 것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우선 국회의원 ‘눈치’를 봐야 하는 대구시가 독자적으로 불참 요청을 했을 리 없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권 시장 측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의원 불참은 청와대의 뜻”이라는 이야기인 셈이다. 게다가 대통령의 지역 방문 행사에 그곳 출신 국회의원이 동행하는 것이야말로 상식이다.

한편의 잘 짜인 시나리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일 참석한 대구광역시 업무보고에 대구지역 국회의원 12명은 한 명도 초청받지 못했다. 이날 박 대통령이 업무보고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당장 정치권에서는 “한편의 잘 짜인 TK 물갈이 시나리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박 대통령과 맞섰던 유승민(劉承旼) 의원과 당시 유 의원 편에 섰던 다수의 대구지역 의원에게 ‘차기 총선은 꿈도 꾸지 마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대구지역 의원 전원을 초청하지 않는 강수를 뒀다는 것이다. 대구시 업무보고 행사를 유 의원과 ‘유승민계’로 꼽히는 대구지역 의원을 겨냥하기 위해 기획했다는 이야기인데 과연 사실일까.

기자는 대구시 업무보고 계획을 언제부터 추진했는지에 주목했다.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어서다. 만약 ‘유승민 파동’ 이전에 대구시 업무보고 계획을 잡았다면, 이 일정이 유 의원과 그의 측근을 겨냥했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하지만 ‘유승민 파동’ 이후에 잡은 계획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 의원과 그를 지지한 대구지역 의원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대구시 일정을 일부러 짰다는 추론이 가능한 것이다.

당초 박 대통령은 9월 7일이 아니라, 그보다 앞선 8월 21일 대구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당시 청와대가 잡았던 박 대통령의 대구지역 방문일정이다.

‘21일 오전 대구도착→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대구시 업무보고→지역 기관장 오찬→서문시장 방문→2015년 실크로드 대장정 출범식 참석.’ 하지만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은 연기됐다.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도발(8월 20일) 때문이었다.

여권 핵심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박 대통령의 대구시 업무보고 계획은 당초 방문하려던 날(8월 21일)의 한 달 전쯤 잡혔다.

한 관계자는 “대개 아무리 미리 계획을 잡아도 한 달을 넘지 않는다”며 “원래 방문 예정일이 8월 21일이었으니, 7월 중순쯤에 잡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7월 중순에 잡힌 것으로 안다”고 했다. 7월은 박 대통령과 유 전 원내대표의 갈등이 극으로 치달았던 시기다. 시기와 관련해 친박 핵심 관계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의 이야기다.

“대구시 업무보고를 ‘유승민과 그 측근 죽이기’의 목적으로 계획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계획을 처음 접했을 때 17개 시·도 중 왜 하필 대구시 업무보고를 받을까, 혹시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박 대통령은 임기 중 대구시 업무보고를 포함해 총 네 번의 지자체 업무보고를 받았다. 네 번 중 세 번은 취임 첫해인 2013년(7월 강원, 8월 인천, 12월 경북)에 이뤄졌다.

劉承旼 의원에 대한 朴槿惠 대통령의 감정

대구시 업무보고 계획이 유 의원과 ‘유승민계’로 꼽히는 대구지역 의원을 겨냥하기 위한 기획이라는 가설이 맞는다면 이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한 상태일 것이다.

우선 유 전 대표를 향한 박 대통령의 감정 상태는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유 의원을 겨냥해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대통령이 대구시민에게 내년 총선에서 유 의원을 떨어뜨려 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됐다. 이후에도 유 의원에 대한 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확인하는 일이 있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26일 새누리당 소속 의원 전원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의원들의 좌석배치는 국회 상임위별로 같은 테이블에 앉도록 했는데, 유 의원이 소속된 국방위 자리는 박 대통령이 앉은 헤드테이블과 멀리 떨어졌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대화나 악수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당시 휴전선 남북대치가 한풀 꺾인 상태에서 마련된 오찬인데, 해당 상임위인 국방위 소속 의원들이 뒤쪽으로 밀려나 앉은 장면을 두고 뒷말이 나왔다.

유승민계로 꼽히는 대구지역 의원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직접 드러낸 적이 없어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친박 의원 등 핵심 인사들은 “박 대통령이 대통령 공약 법안 처리, 유승민 파동 등에서 힘을 실어 주지 않은 대구 의원들에게 굉장히 서운해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친박 핵심 의원의 말이다.

“대구 의원이 어떻게 당선됐습니까. ‘박근혜 얼굴’ 하나로 배지 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파동’ 이후 유 전 원내대표가 여권에서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자, 유승민 옹호에만 열중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의 마음에) 앙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실제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을 당시 공천받아 당선된 대구 의원 상당수는 차세대로 꼽힌 유 의원 편에 서 있다.

결정적 이유

지난 8월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국회의원 초청 오찬에 참석한 유승민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취재 중 기자는 친박 핵심 중진 의원에게 박 대통령이 대구지역 의원들에게 결정적으로 실망하게 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구 의원이 오해받을 행동을 했습니다. 저도 들은 이야기인데, 이번 대구시당위원장 선출과정을 보면서 BH(청와대) 쪽에서 많이 화가 났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사실 유승민 파동 이후인 7월 16일 새누리당 충남도당위원장 선거가 있었습니다. 친박계 핵심인 김태흠(金泰欽) 의원과 유승민 의원과 가까운 김제식(金濟植) 의원이 맞붙었는데 김제식 의원이 1표 차이(303표 vs. 302표)로 김태흠 의원을 제치고 당선됐습니다. 결과가 언론이 쓰기에 얼마나 좋습니까. 《조선일보》 등 유력 언론에서 친유승민 김제식이 친박 김태흠을 꺾었다고 보도했는데, BH 입장에서는 박 대통령과 유 의원 대결구도로 몰아 가니까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이 나빴었나 봐요. 그래서 대구시당위원장은 조용히 뽑길 바랐는데, 과정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대로 충남도당위원장 선거에서 승리한 김제식 의원은 ‘국회법 거부권 파동’ 때,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 아래에서 원내부대표로 활동했다. 유승민 파동 때 사퇴 반대를 공개적으로 주장, ‘친유(親劉)’ 의원으로 분류된다. 반면 김태흠 의원은 유 의원 사퇴 논의를 위한 의원총회 소집 서명을 받고 다녔던 친박 핵심 인사다. 선거 이후 언론은 ‘친(親) 유승민 김제식, 친박(親朴) 김태흠 1표 차 이겨’ ‘친유의 작은 복수?…친유 김제식, 친박 김태흠 눌러’ ‘친유승민계 김제식, 반유 김태흠 1표 차로 제쳤다’ 등의 제목으로 김제식 의원의 승리를 보도했다.

—대구시당위원장 선출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니요.

“대구시당위원장이었던 조원진 의원이 원내수석부대표로 임명되면서 대구시당위원장이 공석이 됐습니다(새누리당 당헌 제73조 4항에 따르면 시·도당 위원장은 전국위원회 의장, 부의장 이외에 다른 당직을 겸직할 수 없게 돼 있다). 새로운 시당위원장을 선출해야 하는데 BH 쪽에서는 충남도당 선거와 관련한 뒷말도 있고 하니까, 내심 ‘경선보다는 추대’로 뽑았으면 했나 봐요. 과거 관행에 따르면, 나이가 가장 많은 류성걸 의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김희국 의원이 ‘경선을 하자’고 했다고 합니다. 김희국 의원이 누구입니까. 유 의원의 최측근 아닙니까. 김희국 의원 입장에서는 자신 있었겠죠, 유 의원을 따르는 초선 의원이 많으니까요. 그 표만 받아도 승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승리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통령의 안방에서도 친유가 이겼다고 난리가 나지 않겠어요. 청와대가 이런 점을 우려한 것이죠. 그럼에도 경선을 하자고 하니까 청와대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 있는 것이죠. 김 의원이 이렇게 나서면 다른 의원이라도 나서서 말렸어야 했는데, 유 의원과 가까운 의원들이 다수니까 가만히 지켜만 봤고 이런 모습에 청와대는 더 분노한 것 같더라고요. (김 의원을)겨우겨우 말려서 류성걸 의원을 추대하는 것으로 결론 냈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받은 대통령의 마음은 어땠겠습니까.”

대구지역 의원은 지난 7월 27일 국회에서 티타임을 갖고 새누리당 대구시당위원장에 류성걸 의원을 합의 추대했다. 끝까지 경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김희국 의원은 유승민 파동 초기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할 이유가 없다. 끝까지 간다”고 감싸는 등 유 의원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대구시당위원장 선출에 대해 지역 정치권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를 했다.

“대구시당위원장 선거가 경선까지 가려는 조짐이 보이자 청와대 쪽에서는 친박 핵심을 통해 류성걸 의원 지지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친박 핵심이 유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대구 지역 의원에게 망신을 당했다더군요.”

—어떤 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입니까.

“친박 핵심이 A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경선하게 되면 류성걸 의원을 찍어 달라고 하니까, ‘나는 지역구도 자신 있으니까 이런 전화 하지 마라’고 딱 끊어 버렸다는 겁니다. B 의원도 이런 전화를 받고 ‘앞으로 이런 이야기 할 거면 전화하지 마라’고 강하게 이야기했다더군요. 이런 내용을 (박 대통령이) 다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