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黨論은 박정희 대통령이 국회를 마음대로 움직이려 내각제 요소를 가미해 만든 것
⊙ 미국 의회 의원들은 시장(지역구)에 따를 자유 있고 黨論에 따를 의무 없어
⊙ 국회의원이 당론 뒤에 숨어 일하게 되면 굳이 법안 열심히 따질 이유 없어
全聖喆
⊙ 65세.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美 미네소타주립대 법학 박사.
⊙ 美뉴욕주 변호사, 대통령정책기획비서관, 다국적기업최고경영자협회 회장, 세종대 부총장,
산업자원부 무역위원장 역임. 現 세계경영연구원 회장.
⊙ 저서: 《변화의 코드를 읽어라》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 등.
⊙ 미국 의회 의원들은 시장(지역구)에 따를 자유 있고 黨論에 따를 의무 없어
⊙ 국회의원이 당론 뒤에 숨어 일하게 되면 굳이 법안 열심히 따질 이유 없어
全聖喆
⊙ 65세.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美 미네소타주립대 법학 박사.
⊙ 美뉴욕주 변호사, 대통령정책기획비서관, 다국적기업최고경영자협회 회장, 세종대 부총장,
산업자원부 무역위원장 역임. 現 세계경영연구원 회장.
⊙ 저서: 《변화의 코드를 읽어라》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 등.
-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을 黨論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사진은 지난 4월 2일 열린 새누리당 혁신의원총회.
정치 역시 우리 국민들에게는 영겁의 고통이다. 그 싸움판에 대해 우리 모두가 그렇게 지긋지긋해하면서도 우리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 좌절감에 국민 모두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미국도 우리나라와 같은 대통령 중심제이다. 그러나 나는 14년 동안 미국에서 단 한번도 국회의원들이 싸우거나 고함을 치는 일을 보지 못했다. 왜 그럴까? 같은 대통령 중심제이면서도 왜 한 나라는 이틀이 멀다 하고 싸우고 고함치는데, 다른 나라는 그런 일이 단 한번도 없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미국 의회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시장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란 것이 무엇인가? 시장은 자유라 했다. 바로 그 판에서 일하는 사람, 즉 플레이어(Player)들에게 자유를 주는 곳이 시장이다.
미국의 국회의원들에게는 우리나라 의원들과 달리 자유가 있다. 그들이 생각해서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투표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소위 당론이라는 것에 꽁꽁 묶여 자기가 어떻게 믿든, 자기의 지역구 구민이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없이 당이 시키는 대로 투표해야 하는 그런 의무가 없다. 그들의 가장 큰 의무는 지역구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음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의원들은 매번 특정 입법 사항에 대해 투표를 할 때마다 가능한 한 지역구민 과반수의 뜻을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투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같이 당론의 뒤에 숨을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엉터리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들은 투표하기 전에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또 서로 설득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당론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누가 지시하는 일도 없고 지시받을 일도 없다. 승강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국회 내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들은 자기 지역구민에게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다.
싸움이 잦은 이유는 의원들 자유, 市場을 빼앗았기 때문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무리 국민의 과반수가 특정 법안에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다수당의 보스 몇몇이 찬성하면 그 찬성이 당론이 되고 국회의원들은 그것을 따라야 하니 국민의 뜻과 반대되는 입법 결과가 허다하게 나오는 것이다.
다수당에서 이런 식으로 의원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전체를 하나의 패로 묶어 나오면 소수당도 패가 되어 맞설 수밖에 없다. 결국 국회가 패싸움의 전당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회 내에서 거친 입씨름이 나오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많은 사람이 우리 국회가 편을 갈라 싸우는 이유를 우리 의원들의 자질 부족에서 찾는다. 천만에! 그렇지 않다. 우리 의원들의 자질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언제인가 한 번 통계를 내어 보니 우리 의원들의 근 70%가 지성인이고 전문인이고 사회 각 분야에서 리더로서 인정받았던 사람들이었다. 즉 장차관, 교수, 변호사, 의사, 대기업 CEO 등과 같이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 변호사 수가 많긴 하지만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일찍이 지방 정치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많다. 의원 개개인으로 본다면 우리가 훨씬 수준이 높은데도 싸움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바로 제도 때문이다. 의원들의 자유, 즉 시장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내각제와 대통령제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국회에는 시장이 없어졌을까?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가? 이것은 한마디로 박정희 개발 독재 시대 정치의 유산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를 가장 빠르게 이루기 위해 일사불란한 정치체제를 유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를 장악해야 했다. 그러나 전통적 대통령제, 즉 3권이 확실히 구분된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이 국회를 장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회는 대통령에게서 독립되어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곳이다. 그 국민의 뜻을 반영하여 때로 대통령을 견제하기도 하고 지원하기도 하는 것이다. 바로 미국식이 제대로 운영되는 대통령제하의 국회의 모습이다.
정통 민주주의로서는, 즉 국회가 사사건건 자신의 발목을 잡아서는 근대화를 제때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기가 막힌 발상을 했다. 바로 정당을 독재적으로 운영하면 국회를 장악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바로, 정당을 내각책임제식으로 운영한다는 발상이었다. 무슨 말인가?
한마디로 대통령 중심제하의 정당과 내각제 책임제하의 정당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왜냐하면 통치 구조, 즉 헌법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각제하에서는 한 개인이 집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당이 집권한다. 그런 제도, 즉 당이 집권하는 제도하에서는 국민이 개인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당을 보고 투표를 한다.
그런 제도 아래서는 당 소속 의원들이 전부 하나가 돼 움직이는 것이 맞다. 즉 당론이 필요하고 모든 의원은 당론을 따라야 한다. 이렇게 하나 되어 움직여도 국민에게는 손해가 없다. 왜냐하면, 그 당이 하는 일이 정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국회를 해산하도록 해서 집권당을 바꿀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각제를 취하고 있는 일본에서 1년이 멀다 하고 수상이 바뀌고 집권당이 바뀔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대통령 중심제는 다르다. 대통령 중심제는 당이 집권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집권하는 것이다. 한 번 선출하면 탄핵 소추가 아닌 한 임기 중에는 바꿀 수가 없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그동안 어떻게 자신들의 뜻을 표출하는가? 그것은 자신들이 선출한 국회의원을 통해서 표출한다. 즉 의원들의 개별 입법 사항 투표에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그래야 민주주의, 즉 국민에 의한 정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중심제하에서는 정당에 당론이라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당은 이념의 틀을 제공하는 곳이지 개별 입법안에 대해 가부를 정하는 곳이 아닌 것이다. 개별 입법에 대한 가부는 각 국회의원이 정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이 개별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 헌법이 그렇게 규정한 의도는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유를 주자는 뜻이다. 다른 말로 국회 내에 ‘시장’을 형성하자는 뜻이다. 물론 당 지도부의 희망사항은 있겠지만 당론이라는 것을 정하고 그것을 위반했다고 해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당에서 징계한다는 것 등은 미국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개발 독재 시대가 낳은 오도된 정치 유산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를 장악하기 위해 희한한 발상을 했다. 즉 당을 독재화하는 것이다. 바로 국회의원들을 ‘당론’이라는 것으로 묶고 자신이 당 총재가 되어 지배하면 국회를 자동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발상을 한 것이었다. 정치체제는 대통령 중심제로 하면서 정당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내각책임제식으로 운영함으로써 국회를 지배하기로 한 것이다. 당의 지도부가 정하면 의원들은 무조건 따라오도록 만든 것이었다. 심지어는 당적을 빼앗기면 국회의원직까지 자동적으로 상실하도록 하는 과격한 구조까지 만들었다. 민주주의 근본 원리의 왜곡이다. 한마디로 위에는 양복을 입고 아래는 한복 바지를 입은 꼴이다.
이 제도는 하루라도 빨리 근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당시의 시대적 소명을 이루는 데 일조를 한 점이 있다. 당시 우리 정치는 무척이나 후진적이었다. 정치인들은 매우 부패해 있었고 합리성보다는 정파적 이해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경향이 다분한 그런 상황이었다. 만일 박 대통령의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들이 개인적 또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됐다면 근대화 작업은 상당한 차질을 빚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일 국교 정상화, 경부고속도로, 중화학 공업 추진 등의 많은 사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었겠는가. 반면, 그런 제도 때문에 3선개헌이 가능했었고 유신독재가 가능했다는 반론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 정치가 미국 같은 정통 대통령 중심제에 비해 이렇게 허구한 날 싸움판인 이유는 정당의 독재적 구조 때문이다. 의원들을 모두 당론이라는 것으로 묶어 패싸움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의원들은 당론, 즉 당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을까?
그 이유는 한마디로 공천권을 지역구민이 아니라 당이 행사하기 때문이다. 정당의 민주화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천권을 무기로 당에서 의원들을 전부 졸개같이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 잘못된 정치적 유산 때문에 국민들은 진절머리가 나면서도 이 싸움판을 매일매일 봐야 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국민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한국 국민은 선거 때 한 번 주인 노릇을 하고는 그 이후 치솟는 화만 삭이고 있어야 한다. 우리 정치가 정치인 그들만의 잔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다.
독재적 정당 구조 때문에 치러야 하는 代價
우리 정치의 문제점은 국회가 단순히 싸움판이 되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비싼 대가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참 잘못된 규제, 잘못된 법들이 많다. 이런 잘못은 누가 만드는가? 행정부다. 대부분의 경우 행정부의 담당 계장, 과장, 국장, 차관보 등 몇 사람이 만든다. 그것이 사실상 끝이다. 대체로 장차관은 너무 바빠서 소소한 내용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
그리고 법안을 여당의 정책위원회라는 데로 보내는데 여기에는 대체로 전문 직업 관료들과 대적하여 문제를 제기할 만한 전문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일손도 턱없이 부족하다. 몇 사람이 수십 개의 법을 검토해야 하니 정책위 검토는 형식적이 되기 십상이다. 더욱이 정당이라는 곳은 청탁에 약하다. 그러니 정책위에서는 대체로 인정에 흔들리며 인력 부족으로 적당히 검토를 마치기 일쑤이다.
여당 정책위만 적당히 통과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상임위를 거쳐 수십, 수백 건의 법안이 한꺼번에 꽝꽝 국회를 통과해 버린다. 심지어는 회의 시작 10분 전에 상임위원들이 법안 초안을 받아보는 일도 있다. 법안 속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아무도 모르면서 일사천리로 통과하는 것, 그것이 우리 입법 과정의 현실이다.
선진국의 立法과정
선진국의 입법 과정은 어떠한가? 미국의 경우에도 행정부 공무원들이 당연히 실수를 한다. 미국에는 그러나 그 실수를 잡아주는 여과 장치가 있다. 바로 국회의원들이다.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수십 명의 보좌관을 데리고 법안 초안을 면밀히 검토하고 문제점을 파헤치고 그에 대한 여론을 수렴한다. 의원들 중에 공무원 뺨치는 전문가들도 많이 있다. 문제점이 있으면 족집게같이 집어낸다. 이들에겐 바로 그런 일, 즉 정책 활동하라고 월급을 받는다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외국인 투자 규제에 관한 법안이 행정부에서 검토되고 있다면, 또는 법안이 제출되었다면 미국 의원들은 수십 명이 이 문제에 달려든다. 즉시 보좌관에게 이 문제를 검토시키고 당장 청문회를 열고 전문가들을 불러 의견을 들을 것이다. 그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와서 세계 각국의 입법 예와 사안의 장단점을 조목조목 자문해 줄 것이다. 이러한 여과 과정을 거치면 사실 어떤 정책이든 그것이 가지는 모든 허와 실이 다 나오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정책이 입법화될 가능성은 매우 적은 것이다.
이들은 우리 국회의원들과 달리 왜 그렇게 조목조목 열심히 따질까? 우리 의원들보다 애국심이 더 많아서인가?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따지는 이유는 한마디로 자신의 투표 행위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같이 당론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당론의 뒤에 숨을 수가 없다. 즉 당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지역구민들에게 변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음 선거에서 상대 후보는 이 의원의 모든 투표 기록을 샅샅이 검토하여 꼬투리를 잡을 것이다. ‘이 사람이 이 중요한 법안에 대해 이렇게 투표했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럴 때 이 현직 국회의원은 그때 자신이 왜 그렇게 투표했는지를 당당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없으면 당선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모든 입법안을 그렇게 열심히 따지는 것이다.
이중의 高비용 정치
우리 국회의원은 어떠한가? 그렇지 않다. 무슨 법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모른 채 당이 찬성하라고 하면 찬성하고 반대하라고 하면 반대해도 다음 선거에서 별 탈이 없다. 왜? 당이 시키는 대로, 즉 당론에 따라 투표했다는 것이 면죄부가 된다.
우리는 어떻게 된 셈인지 국회의원들에게 그 많은 월급을 주면서 그들로부터 이 정책 기능을 모두 다 빼앗아버렸다. 그러고는 엉뚱하게 정당이 정책 기능을 한다고 설쳐왔다. 당에다 정책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놓고는 거기에 몇 사람 의원만 배속시켜 놓고 그 사람들만 정책 활동을 하고 있다. 다른 의원들에게는 정책 활동에 관한 한 ‘쓸데없이 설치지 마라’는 불문율을 내려놓고 있다. 의원들은 정책 활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상갓집이나 찾아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에서 대통령 중심제를 만들어놓고 국회의원들을 이렇게 바지저고리로 만들고 있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월급을 주면서 국회의원들을 빈둥빈둥 놀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에는 정책위원회라는 별도 조직을 만들어놨다. 문자 그대로 이중의 고비용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 없다고 손가락질하고 있다.
국회와 당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당이 설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국회의 기능을 살리고 우리 의원들을 바지저고리 신세로부터 구조해야 한다.
保守와 진보
현 정당 제도 아래서 우리나라 국회는 영원히 패싸움의 판이 될 수밖에 없다. 의원들을 당론으로 묶는 한 패싸움의 정치는 필연적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독재 시대 이래로 한국 국회는 항상 그래 왔다. 만날 싸우고 막말을 예사로 하는 추태를 부리며 때로 온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싸움판 정치에 진절머리가 난 우리 국민의 염증을 달랜다는 명분으로 우리 국회는 ‘국회선진화법’이란 것을 만들었다. 이것은 다수결에 의한 법안의 통과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이다.
그 바람에 싸움판, 몸싸움 정치는 없어졌지만 우리 국민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사실상 모든 법안이 여야가 합의를 해야, 만장일치가 되어야 통과되는 시스템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법은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는 쇠사슬이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항상 가장 큰 과제는 어떻게 떡을 크게 할 것인가, 큰 떡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 이슈들은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에 이를 우리는 ‘이념’이라 불러왔다. 역사적으로 이 이념을 위해 수백, 수천만이 목숨을 바쳤다. 6·25전쟁, 월남 전쟁 등이 다 이념의 문제였다.
이념 집단은 크게 두 갈래다. ‘떡을 키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룹과 ‘떡을 나누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룹이다.
떡을 키우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최대한 많이 줘야 한다.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인류가 불과 몇백 년 만에 이렇게 잘살게 된 것, 즉 떡이 비약적으로 커진 것은 한마디로 이 지구촌에 ‘자유’가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떡이 커지면 그것은 불가피하게 불평등을 낳는다. 떡은 대부분의 경우 이병철, 정주영 같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떡이 커지면 반드시 ‘나누는’ 문제, 즉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룹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그룹이 바로 ‘진보주의자’인 것이다. 떡을 나누기 위해서는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해야 한다.
떡은 우선 키운 다음에 나눠야 한다. 떡을 키우는 동시에 나눠버리면 사람들에게 떡을 키우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금방 남 줘버려야 하는데 누가 키우려고 할 것인가? 공산주의가 망한 것은 키우기와 나누기를 동시에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유’를 확대하여 떡을 키우고 그다음에는 나누고 또 키우고 나누기를 반복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 반복적 과정을 통해 한 국가는 그래도 비교적 ‘평등하면서도 풍요한 사회’를 이룩해 나가는 것이다. 키운 다음 나누고 또 키우고 나누기를 반복하는 것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기본 원리이다.
떡을 키우기 위한 정책과 나누기 위한 정책은 확연히 다르다. 떡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규제완화, 감세 같은 것이 떡을 키우는 전형적인 정책이다. 반면 떡을 나누기 위해서는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규제강화, 증세 같은 것은 진보의 정책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역사발전의 장애물
입법 활동의 대부분은 어떻게 떡을 키울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수당과 진보당은 태생적으로 우선순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누는 것에 집중하는 진보정당은 키우는 것에 집중하는 보수당의 정책에 반대할 수밖에 없고 또 반대를 해야 한다. 보수정당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태생적으로 정체성과 목표, 우선순위, 즉 이념이 다른 정당들에 모든 입법 사항에 대해 합의를 해서 통과를 시키라고 하는 것은 입법 활동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두 정당이 합의를 해야 한다면 합의된 안은 항상 떡을 키우는 것도, 나누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잡탕이 될 수밖에 없다. 떡을 키우지도 나누지도 못한다는 것은 사회가 더 ‘풍요’해지지도 ‘평등’해지지도 못한 채 정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역사의 발전이 중단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국회선진화법은 역사 발전의 장애물이다.
특정 시대가 떡을 키우는 데 더 집중할 시대인가, 아니면 나누는 데 더 집중할 시대인가는 국민이 정한다. 국민이 보수당에 다수 의석을 줄 때는 떡을 키우는 것을 더 중시하라는 명령이고 반대로 진보에 정권을 줄 때는 나누는 것을 더 중시하라는 명령이다. 그래서 다수결의 원칙이 생긴 것이다. 국민 과반수가 원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구체화한 것이 다수결의 원칙이다. 우리는 국회가 싸우는 것을 보기 싫다고 역사의 발전을 중단시킨 것이다.
우리의 정치가 이렇게 된 것은 개발 독재 시대의 유산인 독재화된 정당 구조 때문이다. 당론이라는 쇠사슬로 의원들을 꽁꽁 묶어 하나의 패거리로 나아가게 만드는 제도 때문이다.
국회 내에 시장이 형성되도록 해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정당을 민주화시키는 것이다. 의원 개인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이 의미는 그들이 당의 명령보다는 지역구민의 뜻을 반영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론’이라는 것의 뒤에 숨을 수가 없다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한 개개의 투표 행위, 즉 왜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를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다음 선거에서 경쟁자의 신랄한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당론 뒤에 숨을 수 없게 되면 의원들은 법안을 꼼꼼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문제가 있으면 타당한 논거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든 설명과 입장이 모두 다음 선거에서 검증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입법의 질을 엄청나게 올려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회에서 싸울 일이 없다. 의원들이 자신의 양심과 지역구민의 의견을 참고하여 투표 방향을 정하는데 왜 싸우겠는가? 패거리가 아닌데 왜 싸우겠는가?
모든 의원은 각자 헌법이 정한 대로 하나의 ‘헌법기관’이 되어 투표하고 이런 투표 행위는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의견을 비율대로 국회로 수렴되게끔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즉 국민에 의한 통치가 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래서 국회 내에 ‘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미국도 우리나라와 같은 대통령 중심제이다. 그러나 나는 14년 동안 미국에서 단 한번도 국회의원들이 싸우거나 고함을 치는 일을 보지 못했다. 왜 그럴까? 같은 대통령 중심제이면서도 왜 한 나라는 이틀이 멀다 하고 싸우고 고함치는데, 다른 나라는 그런 일이 단 한번도 없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미국 의회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시장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란 것이 무엇인가? 시장은 자유라 했다. 바로 그 판에서 일하는 사람, 즉 플레이어(Player)들에게 자유를 주는 곳이 시장이다.
미국의 국회의원들에게는 우리나라 의원들과 달리 자유가 있다. 그들이 생각해서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투표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소위 당론이라는 것에 꽁꽁 묶여 자기가 어떻게 믿든, 자기의 지역구 구민이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없이 당이 시키는 대로 투표해야 하는 그런 의무가 없다. 그들의 가장 큰 의무는 지역구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음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의원들은 매번 특정 입법 사항에 대해 투표를 할 때마다 가능한 한 지역구민 과반수의 뜻을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투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같이 당론의 뒤에 숨을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엉터리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들은 투표하기 전에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또 서로 설득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당론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누가 지시하는 일도 없고 지시받을 일도 없다. 승강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국회 내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들은 자기 지역구민에게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다.
싸움이 잦은 이유는 의원들 자유, 市場을 빼앗았기 때문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무리 국민의 과반수가 특정 법안에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다수당의 보스 몇몇이 찬성하면 그 찬성이 당론이 되고 국회의원들은 그것을 따라야 하니 국민의 뜻과 반대되는 입법 결과가 허다하게 나오는 것이다.
다수당에서 이런 식으로 의원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전체를 하나의 패로 묶어 나오면 소수당도 패가 되어 맞설 수밖에 없다. 결국 국회가 패싸움의 전당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회 내에서 거친 입씨름이 나오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많은 사람이 우리 국회가 편을 갈라 싸우는 이유를 우리 의원들의 자질 부족에서 찾는다. 천만에! 그렇지 않다. 우리 의원들의 자질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언제인가 한 번 통계를 내어 보니 우리 의원들의 근 70%가 지성인이고 전문인이고 사회 각 분야에서 리더로서 인정받았던 사람들이었다. 즉 장차관, 교수, 변호사, 의사, 대기업 CEO 등과 같이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 변호사 수가 많긴 하지만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일찍이 지방 정치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많다. 의원 개개인으로 본다면 우리가 훨씬 수준이 높은데도 싸움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바로 제도 때문이다. 의원들의 자유, 즉 시장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내각제와 대통령제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국회에는 시장이 없어졌을까?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가? 이것은 한마디로 박정희 개발 독재 시대 정치의 유산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를 가장 빠르게 이루기 위해 일사불란한 정치체제를 유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를 장악해야 했다. 그러나 전통적 대통령제, 즉 3권이 확실히 구분된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이 국회를 장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회는 대통령에게서 독립되어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곳이다. 그 국민의 뜻을 반영하여 때로 대통령을 견제하기도 하고 지원하기도 하는 것이다. 바로 미국식이 제대로 운영되는 대통령제하의 국회의 모습이다.
정통 민주주의로서는, 즉 국회가 사사건건 자신의 발목을 잡아서는 근대화를 제때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기가 막힌 발상을 했다. 바로 정당을 독재적으로 운영하면 국회를 장악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바로, 정당을 내각책임제식으로 운영한다는 발상이었다. 무슨 말인가?
한마디로 대통령 중심제하의 정당과 내각제 책임제하의 정당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왜냐하면 통치 구조, 즉 헌법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각제하에서는 한 개인이 집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당이 집권한다. 그런 제도, 즉 당이 집권하는 제도하에서는 국민이 개인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당을 보고 투표를 한다.
그런 제도 아래서는 당 소속 의원들이 전부 하나가 돼 움직이는 것이 맞다. 즉 당론이 필요하고 모든 의원은 당론을 따라야 한다. 이렇게 하나 되어 움직여도 국민에게는 손해가 없다. 왜냐하면, 그 당이 하는 일이 정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국회를 해산하도록 해서 집권당을 바꿀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각제를 취하고 있는 일본에서 1년이 멀다 하고 수상이 바뀌고 집권당이 바뀔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대통령 중심제는 다르다. 대통령 중심제는 당이 집권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집권하는 것이다. 한 번 선출하면 탄핵 소추가 아닌 한 임기 중에는 바꿀 수가 없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그동안 어떻게 자신들의 뜻을 표출하는가? 그것은 자신들이 선출한 국회의원을 통해서 표출한다. 즉 의원들의 개별 입법 사항 투표에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그래야 민주주의, 즉 국민에 의한 정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중심제하에서는 정당에 당론이라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당은 이념의 틀을 제공하는 곳이지 개별 입법안에 대해 가부를 정하는 곳이 아닌 것이다. 개별 입법에 대한 가부는 각 국회의원이 정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이 개별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 헌법이 그렇게 규정한 의도는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유를 주자는 뜻이다. 다른 말로 국회 내에 ‘시장’을 형성하자는 뜻이다. 물론 당 지도부의 희망사항은 있겠지만 당론이라는 것을 정하고 그것을 위반했다고 해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당에서 징계한다는 것 등은 미국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개발 독재 시대가 낳은 오도된 정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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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12월 공화당-유정회 의원 합동세미나를 돌아보는 박정희 대통령. 박 대통령은 당 총재 자격으로 공화당을 통해 국회를 통제했다. |
이 제도는 하루라도 빨리 근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당시의 시대적 소명을 이루는 데 일조를 한 점이 있다. 당시 우리 정치는 무척이나 후진적이었다. 정치인들은 매우 부패해 있었고 합리성보다는 정파적 이해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경향이 다분한 그런 상황이었다. 만일 박 대통령의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들이 개인적 또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됐다면 근대화 작업은 상당한 차질을 빚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일 국교 정상화, 경부고속도로, 중화학 공업 추진 등의 많은 사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었겠는가. 반면, 그런 제도 때문에 3선개헌이 가능했었고 유신독재가 가능했다는 반론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 정치가 미국 같은 정통 대통령 중심제에 비해 이렇게 허구한 날 싸움판인 이유는 정당의 독재적 구조 때문이다. 의원들을 모두 당론이라는 것으로 묶어 패싸움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의원들은 당론, 즉 당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을까?
그 이유는 한마디로 공천권을 지역구민이 아니라 당이 행사하기 때문이다. 정당의 민주화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천권을 무기로 당에서 의원들을 전부 졸개같이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 잘못된 정치적 유산 때문에 국민들은 진절머리가 나면서도 이 싸움판을 매일매일 봐야 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국민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한국 국민은 선거 때 한 번 주인 노릇을 하고는 그 이후 치솟는 화만 삭이고 있어야 한다. 우리 정치가 정치인 그들만의 잔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다.
독재적 정당 구조 때문에 치러야 하는 代價
우리 정치의 문제점은 국회가 단순히 싸움판이 되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비싼 대가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참 잘못된 규제, 잘못된 법들이 많다. 이런 잘못은 누가 만드는가? 행정부다. 대부분의 경우 행정부의 담당 계장, 과장, 국장, 차관보 등 몇 사람이 만든다. 그것이 사실상 끝이다. 대체로 장차관은 너무 바빠서 소소한 내용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
그리고 법안을 여당의 정책위원회라는 데로 보내는데 여기에는 대체로 전문 직업 관료들과 대적하여 문제를 제기할 만한 전문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일손도 턱없이 부족하다. 몇 사람이 수십 개의 법을 검토해야 하니 정책위 검토는 형식적이 되기 십상이다. 더욱이 정당이라는 곳은 청탁에 약하다. 그러니 정책위에서는 대체로 인정에 흔들리며 인력 부족으로 적당히 검토를 마치기 일쑤이다.
여당 정책위만 적당히 통과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상임위를 거쳐 수십, 수백 건의 법안이 한꺼번에 꽝꽝 국회를 통과해 버린다. 심지어는 회의 시작 10분 전에 상임위원들이 법안 초안을 받아보는 일도 있다. 법안 속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아무도 모르면서 일사천리로 통과하는 것, 그것이 우리 입법 과정의 현실이다.
선진국의 立法과정
선진국의 입법 과정은 어떠한가? 미국의 경우에도 행정부 공무원들이 당연히 실수를 한다. 미국에는 그러나 그 실수를 잡아주는 여과 장치가 있다. 바로 국회의원들이다.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수십 명의 보좌관을 데리고 법안 초안을 면밀히 검토하고 문제점을 파헤치고 그에 대한 여론을 수렴한다. 의원들 중에 공무원 뺨치는 전문가들도 많이 있다. 문제점이 있으면 족집게같이 집어낸다. 이들에겐 바로 그런 일, 즉 정책 활동하라고 월급을 받는다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외국인 투자 규제에 관한 법안이 행정부에서 검토되고 있다면, 또는 법안이 제출되었다면 미국 의원들은 수십 명이 이 문제에 달려든다. 즉시 보좌관에게 이 문제를 검토시키고 당장 청문회를 열고 전문가들을 불러 의견을 들을 것이다. 그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와서 세계 각국의 입법 예와 사안의 장단점을 조목조목 자문해 줄 것이다. 이러한 여과 과정을 거치면 사실 어떤 정책이든 그것이 가지는 모든 허와 실이 다 나오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정책이 입법화될 가능성은 매우 적은 것이다.
이들은 우리 국회의원들과 달리 왜 그렇게 조목조목 열심히 따질까? 우리 의원들보다 애국심이 더 많아서인가?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따지는 이유는 한마디로 자신의 투표 행위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같이 당론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당론의 뒤에 숨을 수가 없다. 즉 당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지역구민들에게 변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음 선거에서 상대 후보는 이 의원의 모든 투표 기록을 샅샅이 검토하여 꼬투리를 잡을 것이다. ‘이 사람이 이 중요한 법안에 대해 이렇게 투표했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럴 때 이 현직 국회의원은 그때 자신이 왜 그렇게 투표했는지를 당당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없으면 당선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모든 입법안을 그렇게 열심히 따지는 것이다.
이중의 高비용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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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5월 2일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 기능과 역사의 발전을 정지시켰다. |
우리는 어떻게 된 셈인지 국회의원들에게 그 많은 월급을 주면서 그들로부터 이 정책 기능을 모두 다 빼앗아버렸다. 그러고는 엉뚱하게 정당이 정책 기능을 한다고 설쳐왔다. 당에다 정책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놓고는 거기에 몇 사람 의원만 배속시켜 놓고 그 사람들만 정책 활동을 하고 있다. 다른 의원들에게는 정책 활동에 관한 한 ‘쓸데없이 설치지 마라’는 불문율을 내려놓고 있다. 의원들은 정책 활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상갓집이나 찾아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에서 대통령 중심제를 만들어놓고 국회의원들을 이렇게 바지저고리로 만들고 있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월급을 주면서 국회의원들을 빈둥빈둥 놀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에는 정책위원회라는 별도 조직을 만들어놨다. 문자 그대로 이중의 고비용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 없다고 손가락질하고 있다.
국회와 당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당이 설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국회의 기능을 살리고 우리 의원들을 바지저고리 신세로부터 구조해야 한다.
保守와 진보
현 정당 제도 아래서 우리나라 국회는 영원히 패싸움의 판이 될 수밖에 없다. 의원들을 당론으로 묶는 한 패싸움의 정치는 필연적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독재 시대 이래로 한국 국회는 항상 그래 왔다. 만날 싸우고 막말을 예사로 하는 추태를 부리며 때로 온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싸움판 정치에 진절머리가 난 우리 국민의 염증을 달랜다는 명분으로 우리 국회는 ‘국회선진화법’이란 것을 만들었다. 이것은 다수결에 의한 법안의 통과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이다.
그 바람에 싸움판, 몸싸움 정치는 없어졌지만 우리 국민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사실상 모든 법안이 여야가 합의를 해야, 만장일치가 되어야 통과되는 시스템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법은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는 쇠사슬이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항상 가장 큰 과제는 어떻게 떡을 크게 할 것인가, 큰 떡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 이슈들은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에 이를 우리는 ‘이념’이라 불러왔다. 역사적으로 이 이념을 위해 수백, 수천만이 목숨을 바쳤다. 6·25전쟁, 월남 전쟁 등이 다 이념의 문제였다.
이념 집단은 크게 두 갈래다. ‘떡을 키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룹과 ‘떡을 나누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룹이다.
떡을 키우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최대한 많이 줘야 한다.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인류가 불과 몇백 년 만에 이렇게 잘살게 된 것, 즉 떡이 비약적으로 커진 것은 한마디로 이 지구촌에 ‘자유’가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떡이 커지면 그것은 불가피하게 불평등을 낳는다. 떡은 대부분의 경우 이병철, 정주영 같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떡이 커지면 반드시 ‘나누는’ 문제, 즉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룹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그룹이 바로 ‘진보주의자’인 것이다. 떡을 나누기 위해서는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해야 한다.
떡은 우선 키운 다음에 나눠야 한다. 떡을 키우는 동시에 나눠버리면 사람들에게 떡을 키우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금방 남 줘버려야 하는데 누가 키우려고 할 것인가? 공산주의가 망한 것은 키우기와 나누기를 동시에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유’를 확대하여 떡을 키우고 그다음에는 나누고 또 키우고 나누기를 반복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 반복적 과정을 통해 한 국가는 그래도 비교적 ‘평등하면서도 풍요한 사회’를 이룩해 나가는 것이다. 키운 다음 나누고 또 키우고 나누기를 반복하는 것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기본 원리이다.
떡을 키우기 위한 정책과 나누기 위한 정책은 확연히 다르다. 떡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규제완화, 감세 같은 것이 떡을 키우는 전형적인 정책이다. 반면 떡을 나누기 위해서는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규제강화, 증세 같은 것은 진보의 정책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역사발전의 장애물
입법 활동의 대부분은 어떻게 떡을 키울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수당과 진보당은 태생적으로 우선순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누는 것에 집중하는 진보정당은 키우는 것에 집중하는 보수당의 정책에 반대할 수밖에 없고 또 반대를 해야 한다. 보수정당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태생적으로 정체성과 목표, 우선순위, 즉 이념이 다른 정당들에 모든 입법 사항에 대해 합의를 해서 통과를 시키라고 하는 것은 입법 활동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두 정당이 합의를 해야 한다면 합의된 안은 항상 떡을 키우는 것도, 나누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잡탕이 될 수밖에 없다. 떡을 키우지도 나누지도 못한다는 것은 사회가 더 ‘풍요’해지지도 ‘평등’해지지도 못한 채 정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역사의 발전이 중단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국회선진화법은 역사 발전의 장애물이다.
특정 시대가 떡을 키우는 데 더 집중할 시대인가, 아니면 나누는 데 더 집중할 시대인가는 국민이 정한다. 국민이 보수당에 다수 의석을 줄 때는 떡을 키우는 것을 더 중시하라는 명령이고 반대로 진보에 정권을 줄 때는 나누는 것을 더 중시하라는 명령이다. 그래서 다수결의 원칙이 생긴 것이다. 국민 과반수가 원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구체화한 것이 다수결의 원칙이다. 우리는 국회가 싸우는 것을 보기 싫다고 역사의 발전을 중단시킨 것이다.
우리의 정치가 이렇게 된 것은 개발 독재 시대의 유산인 독재화된 정당 구조 때문이다. 당론이라는 쇠사슬로 의원들을 꽁꽁 묶어 하나의 패거리로 나아가게 만드는 제도 때문이다.
국회 내에 시장이 형성되도록 해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정당을 민주화시키는 것이다. 의원 개인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이 의미는 그들이 당의 명령보다는 지역구민의 뜻을 반영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론’이라는 것의 뒤에 숨을 수가 없다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한 개개의 투표 행위, 즉 왜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를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다음 선거에서 경쟁자의 신랄한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당론 뒤에 숨을 수 없게 되면 의원들은 법안을 꼼꼼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문제가 있으면 타당한 논거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든 설명과 입장이 모두 다음 선거에서 검증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입법의 질을 엄청나게 올려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회에서 싸울 일이 없다. 의원들이 자신의 양심과 지역구민의 의견을 참고하여 투표 방향을 정하는데 왜 싸우겠는가? 패거리가 아닌데 왜 싸우겠는가?
모든 의원은 각자 헌법이 정한 대로 하나의 ‘헌법기관’이 되어 투표하고 이런 투표 행위는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의견을 비율대로 국회로 수렴되게끔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즉 국민에 의한 통치가 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래서 국회 내에 ‘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