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남은경 국장, “기수급자 급여체계 손보지 않고는 진정한 개혁 불가능”
⊙ 국민연금보다 연금 감액에 관대한 공무원연금, 월 7억 벌면서 연금 받는 퇴직 공무원도 있어
⊙ 국민연금보다 연금 감액에 관대한 공무원연금, 월 7억 벌면서 연금 받는 퇴직 공무원도 있어
- 지난 5월 2일 여야는 공무원연금 개혁 최종 합의안을 내놨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합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시한폭탄’ ‘세대간 도적질’. 공무원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치권이 동원한 표현이다. 각각 박근혜 대통령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입에서 나왔다. 과도한 여론전이라는 비판도 따랐다. 그만큼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중점 과제로 삼아 추진해 왔다는 방증일 테다.
일본 연금법 그대로 베껴 만들어
현행 공무원연금 제도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 걸까.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제도 자체의 문제점과 재정건전성의 문제다.
1960년에 처음 도입한 공무원연금은 일본의 공무원연금 제도를 모델로 삼아 설계했다. 심지어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부 단어가 생략되어, 미비한 제도 그대로 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비공상(非公傷) 장해연금의 부재가 그 예다. 업무 중 사망하거나 장애를 입은 공무원이나 그 유족에는 연금이 지급되지만, 업무가 아닌 일상생활 중 다치거나 숨진 경우, 즉 비공상 장해에는 연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같은 경우 국민연금 가입자는 연금을 받는다.
연금분할이 되지 않는다는 맹점도 있다. 이혼할 경우, 현행 제도에서는 연금분할 청구소송을 해야 배우자가 연금을 나눠 받을 수 있다. 그것도 지난해에야 대법원이 ‘공무원 퇴직연금도 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려 가능해졌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제도를 바꾸지 못한 예다.
시급한 문제는 재정건전성 악화 문제다. 적자 누적은 이미 1990년 초에 예견됐다. 1995년, 2000년, 2007년 크게 3차례 손을 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몇 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적자가 쌓이는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지난 2001년부터 정부가 일반조세로 지출의 일부를 보전하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는 2조9133억원을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이다. 내년에는 3조6575억원의 적자보전금이 발생한다. 문제는 보전액이 시간이 갈수록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시한폭탄’이라는 표현을 쓴 배경이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공무원연금 제도 도입 이후 너무 오랫동안 기여 대비 급여가 높은 채 방치됐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의 수익비는 7급 공무원을 기준으로 2.08이다. 국민연금은 1.5다. 수익비는 연금 수급자가 낸 돈과 받는 돈의 비율을 뜻한다. 수익비가 1.5라면 100만원을 낸 사람이 연금으로 150만원을 받는다는 의미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이에 대해 “정부가 그동안 연금 개혁을 하면서 매번 기득권을 인정해 주고 신규 공무원들만 낮추는 개혁을 한 결과”라고 했다. 그동안의 개혁이 미진했다는 얘기다.
지난 5월 2일 여야가 발표한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은 그 전의 개혁의 폭을 뛰어넘는 수준일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논란 때문에 개정안의 내용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이 됐다. 어떤 점을 고쳤을까. 일단, 불합리했던 제도를 고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비공상 장해연금을 신설하고, 이혼시 배우자와 연금을 나눠 받도록 분할연금 제도도 도입했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최소 납부기간을 20년에서 10년으로 줄인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예전에는 공무원으로 20년 이상 일해야 공무원연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개정안을 시행하면 10년만 일해도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한마디로 ‘공무원에게만 유리하게’ 고친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관계를 좀 더 면밀히 따져 보면 이렇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비교했을 때 최소 가입기간 제한은 불합리한 규정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최소 가입기간이 10년이다. 게다가 가입기간을 20년에서 10년으로 줄인 것은 이미 지난 2007년 개정 당시 사실상 반영했던 부분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번 개정 과정에 처음부터 참여했다.
“2007년에 공무원연금을 개정하면서 공무원연금 가입기간과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합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습니다. 예를 들면 공무원으로 10년 일하고 이후 기업에서 10년 일하면 나중에 양쪽에서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말입니다. 이번에 제한 규정을 10년으로 줄인 이유는, 공무원 시험에 늦게 합격해 공무원 재직기간이 짧은 사람들, 예를 들면 40대나 50대에 공무원이 되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개정해도 충당부채는 여전
이번 개정안은 재정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기여율을 7%에서 9%로 올리고 지급률은 1.9%에서 1.7%로 낮췄다. 기여율은 보험료율, 즉 공무원연금을 위해 월급에서 떼는 비율을 뜻하고 지급률은 퇴직 후 받을 연금액을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 수치를 가리킨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지급률 인하를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하기로 했다는 대목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남은경 국장은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맹점으로 ‘20년간 인하’를 꼽았다. 경실련 사회복지위원회는 공무원연금법 개정 논의 진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 남 국장의 말이다.
“20년간이라는 조항이 막판에 끼어드는 걸 보면서 아, 하고 탄식을 했습니다. 20년 사이에 연금법이 또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겠습니까. 과연 개혁 의지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과거에 개혁 단계에서 이해 당사자가 어떻게 방해해 왔는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새누리당이 핵심 과제로 추진한다길래 기대를 했지요.”
김용하 교수의 말은 다르다. 20년간 단계적 인하 조항이 들어간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공무원노조 쪽에서 막판까지 지급률 1.7%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1.79% 아래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어요. 그러다가 그쪽에서 내놓은 게 20년간 인하한다면 받아들이겠다는 안이었습니다. 그 제안을 들은 위원들은 반발했어요. ‘엄청나게 비판받을 건데, 어쩌려고 그러냐’는 얘기였어요. 그런데 저는 직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두 가지 안을 놓고 계산을 해 보니 즉시 지급률을 내릴 경우 70년간 345조가 절감됩니다. 단계적으로 내릴 경우엔 333조가 절감됩니다. 12조 차이라면, 당장 합의할 수 있는 안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겁니다. 20년간 단계적 인하는 그렇게 들어간 겁니다.”
공무원 한 명당 4억원이 부채
김 교수에게 합의안의 한계에 대해 물었다. 김 교수는 ‘개정안대로 한다 해도 이미 형성된 연금충당부채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들었다. 연금충당부채는 현재 수급자 및 장래의 연금 수혜자들에게 장기간에 걸쳐 지급해야 할 연금액을 기대수명 등 조건에 따라 현재 가치로 산출한 부채를 뜻한다.
“이번 개정안으로 더 이상 부채가 늘지 않도록 하는 효과는 거두지만, 연금충당부채 524조원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는 정부 내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인사혁신처와 기획재정부가 논의해서 처리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합의안에 비판적인 이들의 의견은 다르다. 남 국장의 말이다.
“이번 개정안의 문제점은 철저히 기득권층, 즉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기수급자들과 이제 곧 연금을 받을 공무원들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데 있습니다. 반면에 이제 막 공무원이 됐거나, 앞으로 공무원이 될 사람들에게는 불이익을 주고요. 변화에서 상당 부분 비켜나 있었던 고위공무원에 대해서는 강력한 개혁안이 적용돼야 합니다. 사실 기여금과 급여 조절만으로는 재정문제 해결이 어려우며 본질적으로 기수급자, 고액 수급자에 대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기수급자’. 공무원연금 개혁의 정도를 놓고 양극단에 갈려 있는 세력들의 의견이 가장 크게 갈리는 부분이 바로 이 기수급자의 연금 급여 문제다. 이들의 연금 수급액을 손보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과 연금은 기수급자의 재산권이므로 연금 개혁으로 소급해 이들의 재산권을 국가가 침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과거 3차례의 개혁, 그리고 이번 개정안에서도 기수급자 부분은 ‘언터처블’이었다. 다만 이번 개정안에서는 물가상승률에 맞춰 해마다 연금 급여를 인상해 오던 것을 5년간 동결하기로 했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지난해 공무원연금 기금결산서를 분석해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정부가 공무원연금 수급자 한 명당 지게 될 부채는 평균 5억2700만원이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이마저도 기수급자가 받은 연금액과 유족연금액을 제외한 금액”이라며 “공무원 퇴직연금 수급자가 이미 낸 금액을 고려하더라도 국민이 부채로 부담해야 할 금액은 공무원 한 명당 4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현재 공무원연금의 구조는 1970~1980년대 고도 성장기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현재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잠재부채가 총 600조원에 달해 지속 가능하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1960년 공무원연금을 도입할 당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52세였다. 2013년 기준으로는 82세다. 제도를 도입할 때보다 30년은 더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용헌씨가 쓴 〈방외지사 열전〉에는 전라도 나주에 사는 박태후씨가 등장한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간 인물인데, 여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연금이 (직장 그만두면 먹고살) 대안이었다. 공무원 경력 20년을 채우면 그때부터 연금이 나온다. 내 나이 42세가 되는 1996년까지 근무하면 경력 20년에 해당되었다. 정확하게 20년을 채우는 시점에 사표를 던졌다.〉
문제는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
그리스처럼 나라 경제가 전반적으로 망한 상황이 아니라 정상적인 상황에서 기수급자에게 일정 부분 재정 부담을 나누게 한 예로 오스트리아를 들 수 있다. 오스트리아는 퇴직 공무원들에게 연금급여의 3% 정도를 재정안정화기여금으로 걷는다. 일종의 세금을 매기는 셈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는 반사회주의 국가 아닌가. 왜 그런 나라의 예를 참고하나. 그리스처럼 경제가 망하지 않는 한 기수급자의 권리를 국가가 침해할 수 없다”고 했다.
경실련은 공무원이 다른 곳으로 이직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경우, 수급을 전액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연소득 기준 5193만원이 넘으면, 소득에 따라 연금액의 최고 50%까지 감액한다. 국민연금의 일부 지급정지 기준은 연소득 3415만7292원이다.
공무원연금 납입액의 절반가량을 국가가 부담했으므로, 그만큼은 감액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한달 7억 벌면서 연금받는 퇴직자도 있어
지난해 한국납세자연맹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공무원연금 수급자 중 근로소득자는 1만624명이고, 이들의 평균연봉은 6293만원이다. 같은 해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청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고소득 연금 급여자의 연금 수급액을 일부 알 수 있다. 한달에 7억3000만원 이상을 버는 공무원 퇴직자가 연간 1532만원의 공무원연금 급여를 받거나, 한 달에 2억80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린 퇴직자가 연간 5625만원의 연금 급여를 받은 경우도 있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중 공무원연금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은 연금액으로 한 해 9185만원(월765만원)을 받는데 건강보험 보수월액(건강보험 산정기준이 되는 월 소득)이 349만원으로 연금 수급 일부정지 대상이 안 되어 연금 전액을 다 받았다.
이번 개정안에 이런 지적이 일부 반영됐다. 공무원을 하다 그만두고 공공부문으로 취업한 경우에는 100% 수급을 중단한다. 공무원을 하다 국회의원에 선출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민간부문에 재취업한 경우는 해당이 없다. 연금 납입액 절반은 개인이 부담했으므로 급여 전액을 지급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논리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로 인상’을 패키지로 넣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논란거리로 떠오르면서 주인공인 공무원연금 개정안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은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련 내용은 갑자기 나온 얘기가 아니다. 공무원연금 논의와 공적연금 강화는 처음부터 함께 논의된 것이었고, 최초 대타협기구 구성 때부터 노후소득보장이라는 분과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그동안 130일 동안 정부도 같이 논의해 온 내용이다. 이를 몰랐다면 청와대의 무능”이라고 했다.
경실련의 남 국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과연 적정한 노후보장이 될 수 있는가 생각해 볼 때,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국민연금에 대해 후보장 체계 정비 차원에서 보다 장기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묶어서 시한을 정해 놓고 처리할 문제가 아니에요.”
김 교수는 연금법 개정 논의 자체가 처음부터 애로점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생각해 보세요. 임금 협상의 경우에는 사용자가 칼자루를 쥐고 있습니다. 협상이 지연되어 하루하루 흘러갈수록 근로자에게 불리하거든요. 그런데 연금법 개정은 그 반대입니다. 칼자루를 공무원들이 쥐고 있어요. 협상이 지연될수록 공무원들에게 유리한 겁니다. 그런데 야당은 공무원 단체와 합의해야 한다고 나오지요. 국회선진화법이 있지 않습니까. 야당의 협조 없이 법을 바꿀 수가 없어요. 노후소득보장이라는 분과 자체도 새정연 측에서 만들자고 주장해서 만든 겁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하했던 노무현 정권
아이러니한 것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하가 노무현 정부 시절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새정연 이종걸 현 원내대표가 참여정부 말기인 지난 2007년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추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자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정용천 대변인에게 “연금법 개정안에 대한 전공노의 제안이나 입장이 있나”라고 묻자, “전공노는 개정안에 대한 입장이라는 게 없다. 현 제도를 지지하는 게 입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떻게든 ‘지금 이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는 걸 지지한다는 말이다.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여당 간사를 맡았던 조원진 의원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조항은 새정연이 민주노총의 지시를 받아 넣은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누구의 지시로 넣었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조항을 실무기구 합의문에 넣은 것은 새정연의 입장에서는 ‘신의 한수’일지 몰라도, 공무원연금 개혁이라는 대의에는 악성코드로 작용하고 있다.
연금법 개정 합의안 원문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여야는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 방식’이 우리 사회 갈등 해결의 모범적 사례가 되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며, 공무원단체가 국가재정을 위해 고통분담의 결단을 내려준 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
잠재적 차기 대선주자들의 정치적 지분 쌓기의 장으로 전락한 공무원연금 개정안 합의를 사회 갈등 해결의 모범적 사례로 볼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공무원연금 부채는 늘어나고 있다.⊙
일본 연금법 그대로 베껴 만들어
현행 공무원연금 제도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 걸까.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제도 자체의 문제점과 재정건전성의 문제다.
1960년에 처음 도입한 공무원연금은 일본의 공무원연금 제도를 모델로 삼아 설계했다. 심지어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부 단어가 생략되어, 미비한 제도 그대로 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비공상(非公傷) 장해연금의 부재가 그 예다. 업무 중 사망하거나 장애를 입은 공무원이나 그 유족에는 연금이 지급되지만, 업무가 아닌 일상생활 중 다치거나 숨진 경우, 즉 비공상 장해에는 연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같은 경우 국민연금 가입자는 연금을 받는다.
연금분할이 되지 않는다는 맹점도 있다. 이혼할 경우, 현행 제도에서는 연금분할 청구소송을 해야 배우자가 연금을 나눠 받을 수 있다. 그것도 지난해에야 대법원이 ‘공무원 퇴직연금도 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려 가능해졌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제도를 바꾸지 못한 예다.
시급한 문제는 재정건전성 악화 문제다. 적자 누적은 이미 1990년 초에 예견됐다. 1995년, 2000년, 2007년 크게 3차례 손을 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몇 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적자가 쌓이는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지난 2001년부터 정부가 일반조세로 지출의 일부를 보전하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는 2조9133억원을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이다. 내년에는 3조6575억원의 적자보전금이 발생한다. 문제는 보전액이 시간이 갈수록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시한폭탄’이라는 표현을 쓴 배경이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공무원연금 제도 도입 이후 너무 오랫동안 기여 대비 급여가 높은 채 방치됐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의 수익비는 7급 공무원을 기준으로 2.08이다. 국민연금은 1.5다. 수익비는 연금 수급자가 낸 돈과 받는 돈의 비율을 뜻한다. 수익비가 1.5라면 100만원을 낸 사람이 연금으로 150만원을 받는다는 의미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이에 대해 “정부가 그동안 연금 개혁을 하면서 매번 기득권을 인정해 주고 신규 공무원들만 낮추는 개혁을 한 결과”라고 했다. 그동안의 개혁이 미진했다는 얘기다.
지난 5월 2일 여야가 발표한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은 그 전의 개혁의 폭을 뛰어넘는 수준일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논란 때문에 개정안의 내용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이 됐다. 어떤 점을 고쳤을까. 일단, 불합리했던 제도를 고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비공상 장해연금을 신설하고, 이혼시 배우자와 연금을 나눠 받도록 분할연금 제도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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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에 여당 추천으로 참여했다. |
사실관계를 좀 더 면밀히 따져 보면 이렇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비교했을 때 최소 가입기간 제한은 불합리한 규정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최소 가입기간이 10년이다. 게다가 가입기간을 20년에서 10년으로 줄인 것은 이미 지난 2007년 개정 당시 사실상 반영했던 부분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번 개정 과정에 처음부터 참여했다.
“2007년에 공무원연금을 개정하면서 공무원연금 가입기간과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합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습니다. 예를 들면 공무원으로 10년 일하고 이후 기업에서 10년 일하면 나중에 양쪽에서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말입니다. 이번에 제한 규정을 10년으로 줄인 이유는, 공무원 시험에 늦게 합격해 공무원 재직기간이 짧은 사람들, 예를 들면 40대나 50대에 공무원이 되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개정해도 충당부채는 여전
이번 개정안은 재정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기여율을 7%에서 9%로 올리고 지급률은 1.9%에서 1.7%로 낮췄다. 기여율은 보험료율, 즉 공무원연금을 위해 월급에서 떼는 비율을 뜻하고 지급률은 퇴직 후 받을 연금액을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 수치를 가리킨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지급률 인하를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하기로 했다는 대목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남은경 국장은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맹점으로 ‘20년간 인하’를 꼽았다. 경실련 사회복지위원회는 공무원연금법 개정 논의 진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 남 국장의 말이다.
“20년간이라는 조항이 막판에 끼어드는 걸 보면서 아, 하고 탄식을 했습니다. 20년 사이에 연금법이 또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겠습니까. 과연 개혁 의지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과거에 개혁 단계에서 이해 당사자가 어떻게 방해해 왔는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새누리당이 핵심 과제로 추진한다길래 기대를 했지요.”
김용하 교수의 말은 다르다. 20년간 단계적 인하 조항이 들어간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공무원노조 쪽에서 막판까지 지급률 1.7%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1.79% 아래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어요. 그러다가 그쪽에서 내놓은 게 20년간 인하한다면 받아들이겠다는 안이었습니다. 그 제안을 들은 위원들은 반발했어요. ‘엄청나게 비판받을 건데, 어쩌려고 그러냐’는 얘기였어요. 그런데 저는 직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두 가지 안을 놓고 계산을 해 보니 즉시 지급률을 내릴 경우 70년간 345조가 절감됩니다. 단계적으로 내릴 경우엔 333조가 절감됩니다. 12조 차이라면, 당장 합의할 수 있는 안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겁니다. 20년간 단계적 인하는 그렇게 들어간 겁니다.”
공무원 한 명당 4억원이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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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은 “공무원연금의 구조가 평균 수명 변화를 반영 못하고있다”고 말했다. |
“이번 개정안으로 더 이상 부채가 늘지 않도록 하는 효과는 거두지만, 연금충당부채 524조원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는 정부 내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인사혁신처와 기획재정부가 논의해서 처리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합의안에 비판적인 이들의 의견은 다르다. 남 국장의 말이다.
“이번 개정안의 문제점은 철저히 기득권층, 즉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기수급자들과 이제 곧 연금을 받을 공무원들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데 있습니다. 반면에 이제 막 공무원이 됐거나, 앞으로 공무원이 될 사람들에게는 불이익을 주고요. 변화에서 상당 부분 비켜나 있었던 고위공무원에 대해서는 강력한 개혁안이 적용돼야 합니다. 사실 기여금과 급여 조절만으로는 재정문제 해결이 어려우며 본질적으로 기수급자, 고액 수급자에 대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기수급자’. 공무원연금 개혁의 정도를 놓고 양극단에 갈려 있는 세력들의 의견이 가장 크게 갈리는 부분이 바로 이 기수급자의 연금 급여 문제다. 이들의 연금 수급액을 손보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과 연금은 기수급자의 재산권이므로 연금 개혁으로 소급해 이들의 재산권을 국가가 침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과거 3차례의 개혁, 그리고 이번 개정안에서도 기수급자 부분은 ‘언터처블’이었다. 다만 이번 개정안에서는 물가상승률에 맞춰 해마다 연금 급여를 인상해 오던 것을 5년간 동결하기로 했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지난해 공무원연금 기금결산서를 분석해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정부가 공무원연금 수급자 한 명당 지게 될 부채는 평균 5억2700만원이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이마저도 기수급자가 받은 연금액과 유족연금액을 제외한 금액”이라며 “공무원 퇴직연금 수급자가 이미 낸 금액을 고려하더라도 국민이 부채로 부담해야 할 금액은 공무원 한 명당 4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현재 공무원연금의 구조는 1970~1980년대 고도 성장기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현재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잠재부채가 총 600조원에 달해 지속 가능하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1960년 공무원연금을 도입할 당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52세였다. 2013년 기준으로는 82세다. 제도를 도입할 때보다 30년은 더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용헌씨가 쓴 〈방외지사 열전〉에는 전라도 나주에 사는 박태후씨가 등장한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간 인물인데, 여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연금이 (직장 그만두면 먹고살) 대안이었다. 공무원 경력 20년을 채우면 그때부터 연금이 나온다. 내 나이 42세가 되는 1996년까지 근무하면 경력 20년에 해당되었다. 정확하게 20년을 채우는 시점에 사표를 던졌다.〉
문제는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
그리스처럼 나라 경제가 전반적으로 망한 상황이 아니라 정상적인 상황에서 기수급자에게 일정 부분 재정 부담을 나누게 한 예로 오스트리아를 들 수 있다. 오스트리아는 퇴직 공무원들에게 연금급여의 3% 정도를 재정안정화기여금으로 걷는다. 일종의 세금을 매기는 셈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는 반사회주의 국가 아닌가. 왜 그런 나라의 예를 참고하나. 그리스처럼 경제가 망하지 않는 한 기수급자의 권리를 국가가 침해할 수 없다”고 했다.
경실련은 공무원이 다른 곳으로 이직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경우, 수급을 전액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연소득 기준 5193만원이 넘으면, 소득에 따라 연금액의 최고 50%까지 감액한다. 국민연금의 일부 지급정지 기준은 연소득 3415만7292원이다.
공무원연금 납입액의 절반가량을 국가가 부담했으므로, 그만큼은 감액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한달 7억 벌면서 연금받는 퇴직자도 있어
지난해 한국납세자연맹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공무원연금 수급자 중 근로소득자는 1만624명이고, 이들의 평균연봉은 6293만원이다. 같은 해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청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고소득 연금 급여자의 연금 수급액을 일부 알 수 있다. 한달에 7억3000만원 이상을 버는 공무원 퇴직자가 연간 1532만원의 공무원연금 급여를 받거나, 한 달에 2억80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린 퇴직자가 연간 5625만원의 연금 급여를 받은 경우도 있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중 공무원연금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은 연금액으로 한 해 9185만원(월765만원)을 받는데 건강보험 보수월액(건강보험 산정기준이 되는 월 소득)이 349만원으로 연금 수급 일부정지 대상이 안 되어 연금 전액을 다 받았다.
이번 개정안에 이런 지적이 일부 반영됐다. 공무원을 하다 그만두고 공공부문으로 취업한 경우에는 100% 수급을 중단한다. 공무원을 하다 국회의원에 선출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민간부문에 재취업한 경우는 해당이 없다. 연금 납입액 절반은 개인이 부담했으므로 급여 전액을 지급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논리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로 인상’을 패키지로 넣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논란거리로 떠오르면서 주인공인 공무원연금 개정안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은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련 내용은 갑자기 나온 얘기가 아니다. 공무원연금 논의와 공적연금 강화는 처음부터 함께 논의된 것이었고, 최초 대타협기구 구성 때부터 노후소득보장이라는 분과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그동안 130일 동안 정부도 같이 논의해 온 내용이다. 이를 몰랐다면 청와대의 무능”이라고 했다.
경실련의 남 국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과연 적정한 노후보장이 될 수 있는가 생각해 볼 때,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국민연금에 대해 후보장 체계 정비 차원에서 보다 장기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묶어서 시한을 정해 놓고 처리할 문제가 아니에요.”
김 교수는 연금법 개정 논의 자체가 처음부터 애로점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생각해 보세요. 임금 협상의 경우에는 사용자가 칼자루를 쥐고 있습니다. 협상이 지연되어 하루하루 흘러갈수록 근로자에게 불리하거든요. 그런데 연금법 개정은 그 반대입니다. 칼자루를 공무원들이 쥐고 있어요. 협상이 지연될수록 공무원들에게 유리한 겁니다. 그런데 야당은 공무원 단체와 합의해야 한다고 나오지요. 국회선진화법이 있지 않습니까. 야당의 협조 없이 법을 바꿀 수가 없어요. 노후소득보장이라는 분과 자체도 새정연 측에서 만들자고 주장해서 만든 겁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하했던 노무현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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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국회 본관 앞에서 공무원연금 개정에 반대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
기자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정용천 대변인에게 “연금법 개정안에 대한 전공노의 제안이나 입장이 있나”라고 묻자, “전공노는 개정안에 대한 입장이라는 게 없다. 현 제도를 지지하는 게 입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떻게든 ‘지금 이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는 걸 지지한다는 말이다.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여당 간사를 맡았던 조원진 의원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조항은 새정연이 민주노총의 지시를 받아 넣은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누구의 지시로 넣었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조항을 실무기구 합의문에 넣은 것은 새정연의 입장에서는 ‘신의 한수’일지 몰라도, 공무원연금 개혁이라는 대의에는 악성코드로 작용하고 있다.
연금법 개정 합의안 원문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여야는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 방식’이 우리 사회 갈등 해결의 모범적 사례가 되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며, 공무원단체가 국가재정을 위해 고통분담의 결단을 내려준 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
잠재적 차기 대선주자들의 정치적 지분 쌓기의 장으로 전락한 공무원연금 개정안 합의를 사회 갈등 해결의 모범적 사례로 볼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공무원연금 부채는 늘어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