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부, 기재부, 법제처 등 정부부처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며 청탁 개념이 명확지 않다”며
협의 미뤄
⊙ 1년 동안 부처 조율만 하다 대통령 한마디에 한달 만에 정부안… 원안보다 후퇴
⊙ 정무위, 권익위에 10여 차례 ‘다시 만들어 와라’… 권익위 측 “우리 안도, 정부안도 아닌
‘정무위원회안’”
⊙ 법안심사소위 위원들 “법안 완성도가 떨어져 통과시키기 힘들다” 핑계
⊙ 법사위 마지못해 통과… “뻔히 위헌에 反법치주의에 문제 많은데도 여론 때문에 통과…
여야는 이런 건 합의하지도 말라”
협의 미뤄
⊙ 1년 동안 부처 조율만 하다 대통령 한마디에 한달 만에 정부안… 원안보다 후퇴
⊙ 정무위, 권익위에 10여 차례 ‘다시 만들어 와라’… 권익위 측 “우리 안도, 정부안도 아닌
‘정무위원회안’”
⊙ 법안심사소위 위원들 “법안 완성도가 떨어져 통과시키기 힘들다” 핑계
⊙ 법사위 마지못해 통과… “뻔히 위헌에 反법치주의에 문제 많은데도 여론 때문에 통과…
여야는 이런 건 합의하지도 말라”
- 2015년 1월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는 ‘김영란법’을 심사해 통과시켰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2015년 3월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이 법률의 필요성에 대해 제안한 것은 2011년 6월이다. 그동안 대통령 두 명(이명박, 박근혜)이 공직자 부패방지 법안을 신속히 만들어야 한다고 직접 언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이 최초 제안부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약 4년이 걸렸다. 또 최초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원안과 상당히 다르다”고 평했다.
4년간 지지부진하면서 처벌조항은 약해지고 적용범위는 엉뚱한 분야로 넓어진 이 법은 과거 수십 차례에 걸쳐 수정과 유예기간 등을 첨가하며 2010년 1월 국회를 통과한 ‘누더기 노동조합법’을 떠올리게 한다. 4년 동안 ‘김영란법’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영란 국민권익위원회(과거 고충처리위원회·행정심판위원회·부패방지위원회의 통합조직) 위원장(2011년 1월 취임)은 청렴한 이미지로 전 국민의 기대를 모았다. 그는 권익위의 수장으로 취임하며 취임사에서 “부패는 중차대한 사회적 질병으로 폐해가 너무 심각해 국가의 존망을 흔들어 놓으며, 이 만성적 질병에서 우리 사회를 지켜야 할 임무를 지고 있다”고 공직사회의 부패를 뿌리뽑을 것임을 강조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김영란 대법관을 삼고초려 끝에 임명했다고 했는데, 이 인사에 대해 모든 언론이 “강력한 부패 척결 의지를 보여준다”고 칭찬했다. 한 중앙일간지 사설은 이렇게 말했다. “(김영란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전하는 부패 척결 메시지가 매우 분명하다. 더 높은 자리를 도모하지 않을 것이고, 미래에 대한 부담이 없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있게 일할 사람이다. 여성이라는 점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 될 수 있다.”
취임 5개월 만에 입법 필요성 제안
김영란 위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부패방지 방안 및 법률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시작, 5개월 후인 2011년 6월 14일 국무회의에서 ‘공정사회, 국민과 함께하는 청렴 확산 방안’이라는 주제로 업무보고를 했다. 이 보고 내용에는 ▲공직자 청탁금지법 제정과 함께 ▲기관별 부정청탁 개선대책 마련 ▲청탁등록 시스템 구축 ▲반부패교육 의무화 ▲청탁방지 가이드라인 전파 등이 포함돼 있다.
이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청렴문제에 대해서는 공직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의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하며, 부패문제에 대한 국민 모두의 공동노력이 필요하다”며 “관련 법안 마련 등 반부패 제도 마련에 힘써 달라”고 김영란 위원장에게 당부했다.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신속한 법안 마련의 기반이 생긴 것이다.
이후 권익위는 공직자 의견수렴, 청탁수수 근절 대국민토론회,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용역 등을 잇달아 시행하며 법안 초안 마련에 나선다. 2011년 10월, 12월 두 차례에 걸쳐 정부, 정치권, 학계, 언론, 재계, 시민단체 등 관계자들이 500명 이상 모인 자리에서 공개토론회를 가졌다. 또 2012년 4월에는 한국법제연구원 입법정책포럼을 통해 해당 법에 대한 토론이 열렸고 권익위는 호남권과 충청권, 경남권 등에서 대국민 법안설명회도 가졌다. 시민단체 토론회 및 간담회, 한국형사정책학회 학술대회 등 다양한 토론의 자리가 열렸다.
이후 2012년 5월부터 8월까지 권익위는 헌법기관, 중앙부처, 지자체 등 관계기관과 협의에 나섰는데, 이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법 적용 대상인 공직자들의 ‘딴지’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법무부, 기재부 등 반대
특히 법무부의 반대가 심했다. 권익위는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J검사, 형사법제과 K검사, 법제처 L사무관, 국조실 K사무관 등 정부 관계자들과 법률에 대한 의견을 수차례에 걸쳐 나눴는데, 법무부 측은 ‘과잉금지 원칙’에 따라 단순한 금품수수를 형사처벌하는 것에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권익위가 입법예고 당시 마련한 보고서에 따르면 법무부의 의견엔 ‘이해관계자나 제3자 등의 용어와 청탁자 형사처벌 규정은 형벌법규의 명확성 및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제시돼 있다.
특히 소액 금품수수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안에 대해 법무부와 권익위의 충돌이 생겼다. 당시 김영란 권익위원장은 기자에게 “원안에는 100만원 이하 금품수수도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는데 이에 대해 법무부에서 ‘지나치다’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저는 100만원이 공직자에게 큰 돈이라고 생각해 그 이하라도 과태료를 부과하고 그 이상 수수하면 무조건 실형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법무부 측이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더군요. 하지만 100만원이 큰 돈이라는 입장은 변하지 않습니다. 청탁 등의 이유 없이 100만원에 가까운 금품을 제공할 사람은 없습니다.”
또 법무부는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 금지 규정에 대해서는 형법 개정을 통해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권익위 초안은 ‘공직자가 직무상의 관련 여부 등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어느 누구로부터도 일체의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권익위 측은 “‘대가성’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는 어느 정도 봐주자’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본다”는 입장이어서 이 같은 법무부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기획재정부는 “(법 마련에 앞서) 부정청탁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는데, 이 역시 권익위 법률 초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초안 마련 때부터 공무원들, ‘언론인, 정당인은 왜 빠지나’
공직자가 아니면서도 ‘김영란법’의 금품수수 대상에 포함이 돼 논란이 된 ‘언론인’도 이미 이때부터 언급됐다. 법무부는 이 법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정당인, 언론인 등 공무원이 아닌 유력 인사들과 달리 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 비합리적으로 차별해 일률적 형사처벌하는 것은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당시 권익위 고위 관계자의 얘기다. “법무부 외에 다른 부처에서도 언론인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애초 권익위는 언론인을 포함시키지 않았고 KBS, EBS 등 공사 직원까지는 포함시킬 수도 있다고 봤지만 그 외의 언론 종사자까지 포함시킨다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죠. 정부 입장은 언론인을 포함시킬 수 없다면 형평성 등의 이유로 원안의 ‘100만원 이상 수수시 벌금, 즉 형사처벌’을 과태료로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문제가 주된 논란이었습니다. 사실상 언론인을 포함시키는 게 주요 논점이 아니라 형평성을 핑계로 처벌수위를 낮추자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런 의견은 권익위 초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그의 얘기다. “언론인의 범주를 이 법안에서 정의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데다 공무원들이 형평성을 핑계로 언론인을 물고늘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잡지와 인터넷매체까지 언론인에 포함시키고 그 가족들까지 관계자가 된다면 법 적용을 받지 않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결국 김영란 위원장은 ‘대가성 유무 등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일체의 금품수수 금지’, ‘100만원 이하 금품을 받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조항을 유지한 채 2012년 8월 입법예고에 나선다.
입법예고 후 1년 동안 잠잠
권익위의 입법예고는 40일 후인 2012년 10월 초 종료됐다. 그러나 정부나 국회의원만 할 수 있는 법률안 제안은 한동안 이어지지 않았다. 법안은 6개월이 지나도록 권익위의 손을 벗어나지 못했다.
법안이 발효되려면 ‘입법예고→정부부처 간 조율→총리실 규제심사→법제처 법령심사→차관회의→국무회의→국회 소관 상임위 심사→국회 법사위 심사→국회 본회의 통과’라는 9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2013년 상반기까지 김영란법은 두 번째 단계인 법무부와의 법안 조율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법무부는 “과잉입법”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고, 권익위는 국민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거쳐 내놓은 법안인 만큼 법무부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김영란 위원장이, 남편 강지원 변호사가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로 하면서 2012년 10월 권익위원장에서 물러났고, 김영란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 주었던 이명박 대통령 역시 2013년 초 임기가 끝나면서 이 법을 추진할 동력이 다소 약해진 것도 한 원인이었다. 당시 최현복 권익위 부위원장이 사직했는데, 김영란법 추진력이 부실해 경질됐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권익위도 지칠 만한 시점이었다. 당시 권익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호소하곤 했다.
“과잉입법 및 과잉처벌이 법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법무부 주장인데, 초안을 만든 김영란 위원장이 대법관 출신이잖아요. 설마 법적으로 문제될 법안을 만들었겠습니까. 법무부와 조율만 6개월이 넘어가고 있는데 국회로 넘어가도 법률가에 공직자 출신이 즐비한 정무위와 법사위를 통과하는 데 또 얼마나 걸릴지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또 통과되더라도 청탁과 로비 때문에 법안이 누더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박 대통령 한마디에 정부안 나와
입법예고 이후 1년 가까이 부처 조율만 하고 있던 ‘김영란법’의 실마리는 의외로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나왔다. 2013년 7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직자 부정부패 해소대책 마련을 당부했고, 부정청탁 금지 및 사익추구와 관련된 법 제정을 독려한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논의돼 왔던 권익위의 법안을 일부 수정하고 최종 확정, 순식간에 총리실과 법제처, 차관회의 등을 거쳐 7월 30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또 8월 5일 정홍원 국무총리를 제안자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그러나 이는 김영란 위원장이 애초 제안한 안에서 크게 후퇴했다. 2012년 권익위 안은 대가성, 직무관련성 등 ‘모든 상황과 상관없이’ 무조건 공직자가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수수금품 5배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도록 한 것이다.
반면 ‘정홍원안’ 은 “대가성이 없더라도 직무 관련 금품을 받은 공직자에게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며, 직무관련성이 없는 경우에는 받은 돈의 2~5배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이 골자다. 금품수수의 배경에 반드시 직무관련성이 있어야만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 측은 “대가성이 없는 금품에 징역과 벌금 등 실형을 부과하는 것은 지나치며, 공직사회의 위축이 우려된다”는 입장이었다. 법무부가 끊임없이 제기한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언론을 통해 격렬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언론과 시민단체는 “공직자에게 금품을 줄 때 당장은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미래를 예상하고 제공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으냐”며 “(정부안은)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언론은 연일 ‘누더기’ ‘반토막’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공격했다.
최초 제안자인 권익위 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일었다. 원안 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가성 없이 공직자를 후원한 사람도 언젠가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이런 생각을 법이 판단할 수 없고 대가성 여부를 최종 판단하기 어려우니 아예 금전거래 자체를 불법화하자는 것이 원래 취지”라며 “정부안이 ‘직무관련’을 끼워 넣은 것은 원안의 상징성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양보하더라도 신속하게 부정청탁금지 및 부패방지법을 제정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팽팽했다.
정부案 나온 지 6개월 동안 국회에선 한마디도 언급 없어
결국 이 ‘정홍원안’은 2013년 8월 국회로 간 후 이 법안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주체가 존재하지 않은 상태로 2013년 말까지 국회에서 해당(정무) 위원회로 상정되지 못한 채 떠돌아 다녔다. 2013년 5월 야당의 김영주 의원과 이상민 의원이 각각 발의한 부정청탁금지법도 국회에서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그 사이 새로운 야당 법안도 탄생했다. 같은 해 10월 28일 김기식 의원 등 야당의원 13인은 이전에 제안했던 유사 법안들을 보완해 ‘공직수행의 투명성 보장과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법안’을 제안했다. 기존의 정부안에 ‘공직사회의 투명성 보장’을 강화하고, 처벌수위는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없어도 처벌을 할 수 있도록 원래의 ‘김영란안’에 가깝게 만든 안이다. 이전 야당안까지 비슷한 법안 4개가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였다.
정부안과 야당안은 12월 6일 열린 320회 임시국회 정무위원회 제10차 회의에서 정무위에 상정됐다. 이후 12월 10일 열린 제11차 회의에서 두 안은 소위원회로 회부됐다. 법안심사소위원회가 가진 두 번의 회의에서 상정된 법률안은 총 145건. 법률안을 제안한 의원들은 회의석상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새 법안에 대한 설명에 나섰지만, 부정청탁금지법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두 번의 회의에 배석한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2013년 말 당시 정무위 간사인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기자들의 이에 대한 질문에 “정무위원회 전문위원 검토의견에 따르면 여야 안의 핵심 내용이 다르고 규율범위와 제재방식 등에 대해 이해관계자들 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여 이해관계자들 및 전문가들로부터 종합적인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조속히 처리할 의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임시국회 때마다 여야 ‘슬쩍 언급’하고 흐지부지
‘김영란법’이 다시 언급된 것은 해를 넘어 2014년 2월 임시국회를 앞둔 시점이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정치혁신안을 내놓으며 김영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언급한 것. 새누리당도 이에 동조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결국 흐지부지됐다.
두 달 후인 4월 임시국회에서도 김영란법이 언급되기는 했다. 야당은 직무관련성이 없는 금품수수에도 과태료 아닌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김영란식 원안’을 주장했지만 여당은 직무관련성이 있을 때만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정부안을 주장했다.
이후 4월 세월호 참사와 ‘관(官)피아 논쟁’이 이어지면서 일부 언론이 김영란법 추진을 종용하기도 했지만, 세월호특별법 등 현안에 밀려 정치권에서 김영란법은 멀어지는 듯 보였다.
관피아 논란이 심화하던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회에 김영란법 입법을 다시 한 번 촉구했다. 대통령이 “전현직 관료들의 유착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정부가 제출한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어 조속한 통과를 부탁 드린다”고 한 것. 여야도 이에 동의하는 분위기였고, 따라서 6월 국회에서 처리될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도 5월 23일과 27일, 두 차례의 소위원회를 열어 김영란법을 본격 심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두 번째 회의가 열린 5월 27일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는 “(김영란법) 여야 합의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회의에서 무슨 논의가 오갔을까.
지난해 여야 논의 거듭하며 언론인까지 추가
2014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열린 김영란법 관련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사는 격렬한 토론의 장이 됐다. 이 자리에서 사립학교 교직원과 유치원 교사, 언론인을 포함시키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은 “사립학교 교직원은 공립학교와 함께 당연히 포함돼야 하고, 영유아보호법이 적용되는 유치원 교사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강기정, 민병두, 이상직 의원은 “가장 힘있는 기관인 언론도 뺄 수 없으며, 종편이니 인터넷언론이니 다 포함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반면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은 “5000 여 개 언론사 종사자와 사립학교, 유치원 종사자에 그 가족들까지 합치면 국내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이 아니냐”고 반대입장을 보였고 김용태 위원장 역시 “적용대상은 축소하고 처벌은 더 세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이 “대상자는 이 정도면 이미 다 논의된 것 아니냐”며 반발해 김용태 위원장이 “(적용대상 축소는)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한발 물러섰고, 적용대상은 사립학교와 유치원, 언론인으로 결정됐다.
이날 소위원회는 ▲법안 완결성이 떨어지고 ▲직무관련성 여부와 처벌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하고 ▲이해충돌 방지 관련 내용이 엉성하다며 권익위에 수정안을 가져올 것을 지시했다.
4일 후인 27일, 권익위는 일부 수정된 안을 소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날 역시 23일과 마찬가지로 적용대상과 직무관련성과 처벌의 연관관계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몇 시간에 걸친 격렬한 토론 끝에 김용태 위원장은 “여야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2015년 1월 법안소위 우여곡절 끝 통과
이후 2014년 말까지 약 6개월간 김영란법은 다시 논의되지 못했고 2014년 정기국회 처리가 불발됐다. 그러나 2015년 1월 12일 국정감사보고서 채택 및 4개 법률안 심사를 위해 열린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김영란법은 돌연 통과된다. 2014년 5월 위원회가 논의한 대로 적용범위가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직유관단체, 공공기관, 각급 학교 및 언론사로 결론난 것이다.
소위를 통과한 법안을 받아 든 법제사법위원회는 3월 3일 위원회를 열어 이 법안에 대해 집중 토론했다. 위원들은 이 법의 내용을 질타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여야 할 것 없이 모든 의원이 법안의 문제점만을 지적했다.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통과시킨다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법사위원장인 이상민 의원은 “(여야대표는) 왜 이런 법에 합의했느냐, 다음부터 이런 합의 가져오지도 말라”고 호통치기도 했다.
이상민 위원장은 “2월 국회 처리를 약속하긴 했지만 (이 법은) 문제투성이이고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 있으며 법사위 타결직전까지 와 있는 것이 매우 유감”이라며 “뻔히 위헌성이 있고 법치주의에 반하고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론 때문에 통과시킬 수밖에 없다”고 회의에서 토로하기도 했다.
최종 내용을 보면 현재 통과된 법은 김영란안(案)도, 권익위원회안도, 정부안도 아닌 정무위원회안에 법사위가 다소 수정한 안이다. 김영란 전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원래의 안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품수수 무조건 처벌 등 김영란 위원장이 강력하게 주장한 내용 중 살아남은 것이 별로 없다.
물론 4년 전 ‘김영란 원안’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문제는 권익위가 정부부처와 협의를 거쳐 내놓은 안, 정부가 발제했던 안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권익위 측은 “적용범위는 물론 처벌수위 등이 원래 권익위나 정부가 내놓은 안과는 상당부분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다. 권익위 이성보 위원장은 본회의 통과 전 최후 법안 설명의 자리인 법사위에서 이 같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성보 위원장은 법사위에서 “적용부분 확장은 우리의 원래 의견은 아니었다”며 “논의과정에서 계속 확대되는 것에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계속 내놓았지만 이렇게 됐고, 더 확장시키는 것은 지금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위원들의 계속되는 추궁에 “권익위의 입장과 견해는 원래 정부안에 모두 담겨 있다”고 강조하며 현재 최종안이 권익위의 뜻은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또 서울지방법원장 출신인 이성보 위원장은 “(위원들이) 모두 위헌을 얘기하는데, 저도 법률을 공부했지만 어떤 사안이 위헌이냐 아니냐는 바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으냐”고 반발하기도 했다.
“살다 살다 처음 보는 널뛰기 법안”
권익위 김영란 전 위원장이 마련한 초안은 법무부, 법제처, 국조실 등의 수정을 거쳐 정부안이 됐고, 정부안은 정무위에서 수차례 수정을 거쳐 ‘정무위안’이 됐다. 이는 법사위에서 또 한 차례 대거 수정돼 ‘법사위안’이 됐다. 물론 많은 법안이 이 같은 수정을 거쳐 최종안이 되곤 하지만 이처럼 ‘널뛰기’ ‘누더기’라는 불명예스러운 대접을 받은 법안은 흔치 않다.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은 법사위 회의에서 “하나의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이렇게 근본적 내용이 오고갈 정도로 널뛰기를 하는 경우를 살아 오면서 본 적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본인도 이런 일은 처음 본다는 것이다. 홍일표 의원은 “이 법의 처리과정에 관해서는 반성문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도 말했다.
문제는 본회의를 통과한 이 법이 통과된지 며칠 만에 위헌 여부 논란과 개정논의가 뜨겁다는 점이다. 4년 동안 계속 수정해 겨우 통과된 법을 얼마나 더 고쳐야 공직자 부정부패를 뿌리뽑을 수 있을까.⊙
4년간 지지부진하면서 처벌조항은 약해지고 적용범위는 엉뚱한 분야로 넓어진 이 법은 과거 수십 차례에 걸쳐 수정과 유예기간 등을 첨가하며 2010년 1월 국회를 통과한 ‘누더기 노동조합법’을 떠올리게 한다. 4년 동안 ‘김영란법’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영란 국민권익위원회(과거 고충처리위원회·행정심판위원회·부패방지위원회의 통합조직) 위원장(2011년 1월 취임)은 청렴한 이미지로 전 국민의 기대를 모았다. 그는 권익위의 수장으로 취임하며 취임사에서 “부패는 중차대한 사회적 질병으로 폐해가 너무 심각해 국가의 존망을 흔들어 놓으며, 이 만성적 질병에서 우리 사회를 지켜야 할 임무를 지고 있다”고 공직사회의 부패를 뿌리뽑을 것임을 강조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김영란 대법관을 삼고초려 끝에 임명했다고 했는데, 이 인사에 대해 모든 언론이 “강력한 부패 척결 의지를 보여준다”고 칭찬했다. 한 중앙일간지 사설은 이렇게 말했다. “(김영란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전하는 부패 척결 메시지가 매우 분명하다. 더 높은 자리를 도모하지 않을 것이고, 미래에 대한 부담이 없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있게 일할 사람이다. 여성이라는 점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 될 수 있다.”
취임 5개월 만에 입법 필요성 제안
김영란 위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부패방지 방안 및 법률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시작, 5개월 후인 2011년 6월 14일 국무회의에서 ‘공정사회, 국민과 함께하는 청렴 확산 방안’이라는 주제로 업무보고를 했다. 이 보고 내용에는 ▲공직자 청탁금지법 제정과 함께 ▲기관별 부정청탁 개선대책 마련 ▲청탁등록 시스템 구축 ▲반부패교육 의무화 ▲청탁방지 가이드라인 전파 등이 포함돼 있다.
이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청렴문제에 대해서는 공직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의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하며, 부패문제에 대한 국민 모두의 공동노력이 필요하다”며 “관련 법안 마련 등 반부패 제도 마련에 힘써 달라”고 김영란 위원장에게 당부했다.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신속한 법안 마련의 기반이 생긴 것이다.
이후 권익위는 공직자 의견수렴, 청탁수수 근절 대국민토론회,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용역 등을 잇달아 시행하며 법안 초안 마련에 나선다. 2011년 10월, 12월 두 차례에 걸쳐 정부, 정치권, 학계, 언론, 재계, 시민단체 등 관계자들이 500명 이상 모인 자리에서 공개토론회를 가졌다. 또 2012년 4월에는 한국법제연구원 입법정책포럼을 통해 해당 법에 대한 토론이 열렸고 권익위는 호남권과 충청권, 경남권 등에서 대국민 법안설명회도 가졌다. 시민단체 토론회 및 간담회, 한국형사정책학회 학술대회 등 다양한 토론의 자리가 열렸다.
이후 2012년 5월부터 8월까지 권익위는 헌법기관, 중앙부처, 지자체 등 관계기관과 협의에 나섰는데, 이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법 적용 대상인 공직자들의 ‘딴지’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법무부, 기재부 등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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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일명 김영란법에 대한 질의에 답하고 있는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 |
권익위가 입법예고 당시 마련한 보고서에 따르면 법무부의 의견엔 ‘이해관계자나 제3자 등의 용어와 청탁자 형사처벌 규정은 형벌법규의 명확성 및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제시돼 있다.
특히 소액 금품수수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안에 대해 법무부와 권익위의 충돌이 생겼다. 당시 김영란 권익위원장은 기자에게 “원안에는 100만원 이하 금품수수도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는데 이에 대해 법무부에서 ‘지나치다’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저는 100만원이 공직자에게 큰 돈이라고 생각해 그 이하라도 과태료를 부과하고 그 이상 수수하면 무조건 실형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법무부 측이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더군요. 하지만 100만원이 큰 돈이라는 입장은 변하지 않습니다. 청탁 등의 이유 없이 100만원에 가까운 금품을 제공할 사람은 없습니다.”
또 법무부는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 금지 규정에 대해서는 형법 개정을 통해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권익위 초안은 ‘공직자가 직무상의 관련 여부 등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어느 누구로부터도 일체의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권익위 측은 “‘대가성’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는 어느 정도 봐주자’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본다”는 입장이어서 이 같은 법무부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기획재정부는 “(법 마련에 앞서) 부정청탁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는데, 이 역시 권익위 법률 초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초안 마련 때부터 공무원들, ‘언론인, 정당인은 왜 빠지나’
공직자가 아니면서도 ‘김영란법’의 금품수수 대상에 포함이 돼 논란이 된 ‘언론인’도 이미 이때부터 언급됐다. 법무부는 이 법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정당인, 언론인 등 공무원이 아닌 유력 인사들과 달리 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 비합리적으로 차별해 일률적 형사처벌하는 것은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당시 권익위 고위 관계자의 얘기다. “법무부 외에 다른 부처에서도 언론인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애초 권익위는 언론인을 포함시키지 않았고 KBS, EBS 등 공사 직원까지는 포함시킬 수도 있다고 봤지만 그 외의 언론 종사자까지 포함시킨다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죠. 정부 입장은 언론인을 포함시킬 수 없다면 형평성 등의 이유로 원안의 ‘100만원 이상 수수시 벌금, 즉 형사처벌’을 과태료로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문제가 주된 논란이었습니다. 사실상 언론인을 포함시키는 게 주요 논점이 아니라 형평성을 핑계로 처벌수위를 낮추자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런 의견은 권익위 초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그의 얘기다. “언론인의 범주를 이 법안에서 정의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데다 공무원들이 형평성을 핑계로 언론인을 물고늘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잡지와 인터넷매체까지 언론인에 포함시키고 그 가족들까지 관계자가 된다면 법 적용을 받지 않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결국 김영란 위원장은 ‘대가성 유무 등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일체의 금품수수 금지’, ‘100만원 이하 금품을 받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조항을 유지한 채 2012년 8월 입법예고에 나선다.
(김영란법 원안, 2012.8.22)의 처벌조항 나. 금품 등 수수 금지 1)(전략) -금품 등의 가액이 100만원 초과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위반행위와 관련된 금품 등 가액의 5배에 상당하는 금액 이하의 벌금에 처함. -금품 등의 가액이 100만원 이하인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
입법예고 후 1년 동안 잠잠
권익위의 입법예고는 40일 후인 2012년 10월 초 종료됐다. 그러나 정부나 국회의원만 할 수 있는 법률안 제안은 한동안 이어지지 않았다. 법안은 6개월이 지나도록 권익위의 손을 벗어나지 못했다.
법안이 발효되려면 ‘입법예고→정부부처 간 조율→총리실 규제심사→법제처 법령심사→차관회의→국무회의→국회 소관 상임위 심사→국회 법사위 심사→국회 본회의 통과’라는 9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2013년 상반기까지 김영란법은 두 번째 단계인 법무부와의 법안 조율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법무부는 “과잉입법”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고, 권익위는 국민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거쳐 내놓은 법안인 만큼 법무부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김영란 위원장이, 남편 강지원 변호사가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로 하면서 2012년 10월 권익위원장에서 물러났고, 김영란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 주었던 이명박 대통령 역시 2013년 초 임기가 끝나면서 이 법을 추진할 동력이 다소 약해진 것도 한 원인이었다. 당시 최현복 권익위 부위원장이 사직했는데, 김영란법 추진력이 부실해 경질됐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권익위도 지칠 만한 시점이었다. 당시 권익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호소하곤 했다.
“과잉입법 및 과잉처벌이 법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법무부 주장인데, 초안을 만든 김영란 위원장이 대법관 출신이잖아요. 설마 법적으로 문제될 법안을 만들었겠습니까. 법무부와 조율만 6개월이 넘어가고 있는데 국회로 넘어가도 법률가에 공직자 출신이 즐비한 정무위와 법사위를 통과하는 데 또 얼마나 걸릴지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또 통과되더라도 청탁과 로비 때문에 법안이 누더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박 대통령 한마디에 정부안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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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1월 11일 서경석 목사, 도법 스님, 이수호 전 민노총 위원장 등 좌우파 시민운동가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김영란 법’ 통과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
정부는 그동안 논의돼 왔던 권익위의 법안을 일부 수정하고 최종 확정, 순식간에 총리실과 법제처, 차관회의 등을 거쳐 7월 30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또 8월 5일 정홍원 국무총리를 제안자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그러나 이는 김영란 위원장이 애초 제안한 안에서 크게 후퇴했다. 2012년 권익위 안은 대가성, 직무관련성 등 ‘모든 상황과 상관없이’ 무조건 공직자가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수수금품 5배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도록 한 것이다.
반면 ‘정홍원안’ 은 “대가성이 없더라도 직무 관련 금품을 받은 공직자에게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며, 직무관련성이 없는 경우에는 받은 돈의 2~5배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이 골자다. 금품수수의 배경에 반드시 직무관련성이 있어야만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 측은 “대가성이 없는 금품에 징역과 벌금 등 실형을 부과하는 것은 지나치며, 공직사회의 위축이 우려된다”는 입장이었다. 법무부가 끊임없이 제기한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언론을 통해 격렬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언론과 시민단체는 “공직자에게 금품을 줄 때 당장은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미래를 예상하고 제공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으냐”며 “(정부안은)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언론은 연일 ‘누더기’ ‘반토막’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공격했다.
최초 제안자인 권익위 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일었다. 원안 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가성 없이 공직자를 후원한 사람도 언젠가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이런 생각을 법이 판단할 수 없고 대가성 여부를 최종 판단하기 어려우니 아예 금전거래 자체를 불법화하자는 것이 원래 취지”라며 “정부안이 ‘직무관련’을 끼워 넣은 것은 원안의 상징성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양보하더라도 신속하게 부정청탁금지 및 부패방지법을 제정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팽팽했다.
정부案 나온 지 6개월 동안 국회에선 한마디도 언급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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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법사위에서 이상민 위원장과 홍일표, 전해철 여야 법사위 간사가 논의하고 있다. |
그 사이 새로운 야당 법안도 탄생했다. 같은 해 10월 28일 김기식 의원 등 야당의원 13인은 이전에 제안했던 유사 법안들을 보완해 ‘공직수행의 투명성 보장과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법안’을 제안했다. 기존의 정부안에 ‘공직사회의 투명성 보장’을 강화하고, 처벌수위는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없어도 처벌을 할 수 있도록 원래의 ‘김영란안’에 가깝게 만든 안이다. 이전 야당안까지 비슷한 법안 4개가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였다.
정부안과 야당안은 12월 6일 열린 320회 임시국회 정무위원회 제10차 회의에서 정무위에 상정됐다. 이후 12월 10일 열린 제11차 회의에서 두 안은 소위원회로 회부됐다. 법안심사소위원회가 가진 두 번의 회의에서 상정된 법률안은 총 145건. 법률안을 제안한 의원들은 회의석상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새 법안에 대한 설명에 나섰지만, 부정청탁금지법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두 번의 회의에 배석한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2013년 말 당시 정무위 간사인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기자들의 이에 대한 질문에 “정무위원회 전문위원 검토의견에 따르면 여야 안의 핵심 내용이 다르고 규율범위와 제재방식 등에 대해 이해관계자들 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여 이해관계자들 및 전문가들로부터 종합적인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조속히 처리할 의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임시국회 때마다 여야 ‘슬쩍 언급’하고 흐지부지
‘김영란법’이 다시 언급된 것은 해를 넘어 2014년 2월 임시국회를 앞둔 시점이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정치혁신안을 내놓으며 김영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언급한 것. 새누리당도 이에 동조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결국 흐지부지됐다.
두 달 후인 4월 임시국회에서도 김영란법이 언급되기는 했다. 야당은 직무관련성이 없는 금품수수에도 과태료 아닌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김영란식 원안’을 주장했지만 여당은 직무관련성이 있을 때만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정부안을 주장했다.
이후 4월 세월호 참사와 ‘관(官)피아 논쟁’이 이어지면서 일부 언론이 김영란법 추진을 종용하기도 했지만, 세월호특별법 등 현안에 밀려 정치권에서 김영란법은 멀어지는 듯 보였다.
관피아 논란이 심화하던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회에 김영란법 입법을 다시 한 번 촉구했다. 대통령이 “전현직 관료들의 유착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정부가 제출한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어 조속한 통과를 부탁 드린다”고 한 것. 여야도 이에 동의하는 분위기였고, 따라서 6월 국회에서 처리될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도 5월 23일과 27일, 두 차례의 소위원회를 열어 김영란법을 본격 심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두 번째 회의가 열린 5월 27일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는 “(김영란법) 여야 합의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회의에서 무슨 논의가 오갔을까.
지난해 여야 논의 거듭하며 언론인까지 추가
2014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열린 김영란법 관련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사는 격렬한 토론의 장이 됐다. 이 자리에서 사립학교 교직원과 유치원 교사, 언론인을 포함시키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은 “사립학교 교직원은 공립학교와 함께 당연히 포함돼야 하고, 영유아보호법이 적용되는 유치원 교사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강기정, 민병두, 이상직 의원은 “가장 힘있는 기관인 언론도 뺄 수 없으며, 종편이니 인터넷언론이니 다 포함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반면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은 “5000 여 개 언론사 종사자와 사립학교, 유치원 종사자에 그 가족들까지 합치면 국내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이 아니냐”고 반대입장을 보였고 김용태 위원장 역시 “적용대상은 축소하고 처벌은 더 세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이 “대상자는 이 정도면 이미 다 논의된 것 아니냐”며 반발해 김용태 위원장이 “(적용대상 축소는)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한발 물러섰고, 적용대상은 사립학교와 유치원, 언론인으로 결정됐다.
이날 소위원회는 ▲법안 완결성이 떨어지고 ▲직무관련성 여부와 처벌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하고 ▲이해충돌 방지 관련 내용이 엉성하다며 권익위에 수정안을 가져올 것을 지시했다.
4일 후인 27일, 권익위는 일부 수정된 안을 소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날 역시 23일과 마찬가지로 적용대상과 직무관련성과 처벌의 연관관계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몇 시간에 걸친 격렬한 토론 끝에 김용태 위원장은 “여야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2015년 1월 법안소위 우여곡절 끝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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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란법’ 제정의 계기가 된 2011년 ‘벤츠여검사’ 사건의 이모 전 검사(오른쪽). 그는 김영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며칠 후 무죄판결을 받았다. |
소위를 통과한 법안을 받아 든 법제사법위원회는 3월 3일 위원회를 열어 이 법안에 대해 집중 토론했다. 위원들은 이 법의 내용을 질타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여야 할 것 없이 모든 의원이 법안의 문제점만을 지적했다.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통과시킨다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법사위원장인 이상민 의원은 “(여야대표는) 왜 이런 법에 합의했느냐, 다음부터 이런 합의 가져오지도 말라”고 호통치기도 했다.
이상민 위원장은 “2월 국회 처리를 약속하긴 했지만 (이 법은) 문제투성이이고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 있으며 법사위 타결직전까지 와 있는 것이 매우 유감”이라며 “뻔히 위헌성이 있고 법치주의에 반하고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론 때문에 통과시킬 수밖에 없다”고 회의에서 토로하기도 했다.
최종 내용을 보면 현재 통과된 법은 김영란안(案)도, 권익위원회안도, 정부안도 아닌 정무위원회안에 법사위가 다소 수정한 안이다. 김영란 전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원래의 안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품수수 무조건 처벌 등 김영란 위원장이 강력하게 주장한 내용 중 살아남은 것이 별로 없다.
물론 4년 전 ‘김영란 원안’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문제는 권익위가 정부부처와 협의를 거쳐 내놓은 안, 정부가 발제했던 안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권익위 측은 “적용범위는 물론 처벌수위 등이 원래 권익위나 정부가 내놓은 안과는 상당부분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다. 권익위 이성보 위원장은 본회의 통과 전 최후 법안 설명의 자리인 법사위에서 이 같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성보 위원장은 법사위에서 “적용부분 확장은 우리의 원래 의견은 아니었다”며 “논의과정에서 계속 확대되는 것에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계속 내놓았지만 이렇게 됐고, 더 확장시키는 것은 지금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위원들의 계속되는 추궁에 “권익위의 입장과 견해는 원래 정부안에 모두 담겨 있다”고 강조하며 현재 최종안이 권익위의 뜻은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또 서울지방법원장 출신인 이성보 위원장은 “(위원들이) 모두 위헌을 얘기하는데, 저도 법률을 공부했지만 어떤 사안이 위헌이냐 아니냐는 바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으냐”고 반발하기도 했다.
“살다 살다 처음 보는 널뛰기 법안”
권익위 김영란 전 위원장이 마련한 초안은 법무부, 법제처, 국조실 등의 수정을 거쳐 정부안이 됐고, 정부안은 정무위에서 수차례 수정을 거쳐 ‘정무위안’이 됐다. 이는 법사위에서 또 한 차례 대거 수정돼 ‘법사위안’이 됐다. 물론 많은 법안이 이 같은 수정을 거쳐 최종안이 되곤 하지만 이처럼 ‘널뛰기’ ‘누더기’라는 불명예스러운 대접을 받은 법안은 흔치 않다.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은 법사위 회의에서 “하나의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이렇게 근본적 내용이 오고갈 정도로 널뛰기를 하는 경우를 살아 오면서 본 적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본인도 이런 일은 처음 본다는 것이다. 홍일표 의원은 “이 법의 처리과정에 관해서는 반성문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도 말했다.
문제는 본회의를 통과한 이 법이 통과된지 며칠 만에 위헌 여부 논란과 개정논의가 뜨겁다는 점이다. 4년 동안 계속 수정해 겨우 통과된 법을 얼마나 더 고쳐야 공직자 부정부패를 뿌리뽑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