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추적] 金武星 새누리당 대표의 ‘상하이 개헌 발언’ 어떻게 나왔나 : 월간조선

지난 10월 28일 김무성(金武星) 새누리당 대표의 ‘상하이 개헌발언’ 배경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많을 때였다. 이날 만난 여권의 핵심관계자는 김 대표의 개헌 발언에 대한 기자의 의견을 물었다. 의도한 발언, 단순 실수, 발언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등 여러 예측이 있는데 이 중 어떤 가능성이 가장 클 것 같으냐는 질문이었다. “본인이 의지를 가지고 의도했다기보다 일반적 정치 스케줄을 예상한 발언인 것 같다”고 답했다. “정기국회 뒤 개헌 논의에 봇물이 터질 것”이라는 발언을 정기국회 이후에 개헌특위를 구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실제 개헌론자들이 각 당 핵심에 고루 포진해 있어 특위 구성 자체가 무산되긴 어렵다. 새누리당 김태호(金台鎬)·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 이군현(李君賢) 사무총장 외에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문희상(文喜相) 비대위원장, 박지원(朴智元) 비대위원, 원혜영(元惠榮) 정치혁신실천위원장, 우윤근(禹潤根) 원내대표가 개헌모임 소속이다.

기자의 답변이 끝나자 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의도한 발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대표와 함께 방중했던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대표가 기자의 질문에 답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계속해 물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죠.”

이유가 무엇일까.

중국 방문에 동행했던 당 인사, 동행했던 기자와 접촉해 이유를 알아보던 중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자단과 방중단 사이에 잡음이 좀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김 대표 개헌 발언도 이 과정에서 나왔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실제 동행했던 한 기자는 “기삿거리 제공 차원에서 개헌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일정 등의 문제로 김 대표 측과 기자단 사이에 마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과연 김 대표의 3박 4일간의 중국 방문 일정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訪中 첫째 날(10월 13일)

지난 10월 13일 오후 1시 베이징행 항공기(OZ 333)가 뜰 때만 해도 1시간 뒤에 벌어질 일을 상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항공기는 현지시각 오후 2시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했다. 첫 번째 일정은 오후 3시 반으로 잡힌 한인 중소기업 KFTC 방문이었다.

이 일정은 서울에서 미리 구성한 풀(pool·공동)단(영상·사진 기자 4~5명)이 동행하기로 했다. 풀단은 중소기업 방문을 위해 김 대표 일행과 마찬가지로 공항 검색을 거치지 않고 프리패스했다. 다른 기자들은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고 중소기업 방문 일정 이후 일정(오후 5시30분 교포 정책간담회) 취재를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기자들이 타고 이동할 버스 이용을 놓고 혼선이 빚어진 것이다.

방중단 실무진은 버스 3대(20인승 2대, 40인승 1대)를 빌렸다. 20인승 1대는 방중단과 풀기자단이, 다른 20인승 1대는 장비가 많은 영상·사진 기자, 40인승 1대는 일반 취재기자가 쓰도록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계획이 꼬이면서 20인승에 타고 있던 영상 기자들이 40인승 버스로 옮겨타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영상기자는 그곳에 있던 방중단 관계자에게 항의했다. 순간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가라앉은 분위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김 대표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 상황이라 수행기자들의 불만도 더욱 커졌다.

이날 저녁 박대출(朴大出) 새누리당 대변인은 호텔(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4성급 호텔인 베이징 만수(万壽)호텔. 방중단과 수행기자단의 숙소) 로비에서 비공개 일정(오후 7시, 대사 주최 만찬)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이때 종합편성채널의 한 기자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취재 거리가 없어서 되겠습니까. 대표 얼굴 한번 보기가 어렵네요.” 또 다른 기자는 “기사를 송고해야 하는데 인터넷이 제대로 안 된다”고 했다. 박 대변인은 “대표가 중국에 온 자체가 기사 아니냐. 대표한테 잘 말해서 기자들과 접촉을 늘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訪中 둘째 날(10월 14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방중 의원단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위해 지난 10월 14일 오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일정 둘째 날인 14일 방중단과 기자단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세 가지 악재가 한번에 터진 탓이다. 오전 8시30분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의 면담 취재부터 문제가 생겼다. 왕자루이 부장의 모두발언이 끝나고 김 대표가 인사말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면담을 비공개로 전환한 것이다. 기자들이 황당해 하며 김 대표의 인사말을 끝까지 취재하려 하자 중국 공산당 측 관계자가 국내 방송사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기도 했다.

대변인 행정실 관계자도 “우리 측 대표님 모두 말씀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갈 수 없다”고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 관계자가 대변인 행정실 관계자를 밀쳤다. 베이징 주재 문화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중국과 우리는 취재 시스템이 다릅니다. 우리의 경우 민감한 발언이 없는 인사말을 모두 취재하게 하지만, 중국은 인사말도 총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만 공개합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총 5분을 공개한다고 했을 때 왕자루이 부장의 인사말이 4분30초면, 김 대표의 인사말은 30초밖에 공개를 안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자들 사이에서는 “(방중단의) 엉성한 준비와 융통성 없는 대처로 김 대표의 발언을 취재 못 했고, 면담 이후 당에서 제공한 ‘대표 말씀 내용’을 받아볼 수밖에 없었다”면서 도대체 준비를 어떻게 한 것이냐는 등의 비판이 터져나왔다.

현장에서 취재 혼선을 목격한 김 대표가 한 가지 방안을 내놨다. 시진핑 주석 면담 등 중요한 일정 이후에는 본인이 직접 브리핑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날 오후 4시로 예정한 시진핑 주석과의 면담은 풀단 구성부터 애를 먹었다. 서로 풀단에 들어가려 했기 때문이다. 기자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중국을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방중 의원단이 지난 10월 14일 오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환담하고 있는 모습.

시진핑 주석 면담을 풀단이 취재하는 만큼 그 외의 기자들은 여유가 있었다. 김 대표가 시진핑 주석과의 면담을 끝내고 베이징 만수호텔에서 직접 브리핑을 약속한 시각이 오후 5시10분이었다. 방중단은 여유 시간 동안 기자들에게 관광을 제안했다. 일부 기자들이 관광에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일정을 변경했다. 브리핑 장소를 만수호텔에서 주중 특파원 만찬(오후 6시30분) 장소인 애강산(베이징의 대표 한식당)으로 바꾼 것이다. 김 대표가 시진핑 주석과의 면담이 있었던 인민대회당(베이징 톈안먼 광장 서쪽에 위치, 중국 정치 1번지로 불린다)에서 만수호텔까지 오려면 1시간이 넘게 걸려 장소 변경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관광을 떠났던 기자들이 중간에 급하게 돌아오는 등 그야말로 계획했던 일정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기자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호텔에서 애강산까지 가는 시간(1시간30분) 가지고는 기자들의 불평을 불식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김 대표는 도착한 기자들에게 시 주석과의 면담 결과를 직접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고 만찬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기자들은 박 대변인에게 엉성한 조율로 인해 취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박 대변인은 이에 “통신・교통・간담회 장소 등 기자들의 모든 요구를 우리가 해결하기는 어렵다. 벼룩 몰고 다니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이 기자인데, 마흔둘(방중취재단 42명) 아이가”라고 했다.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던 ‘벼룩담’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

“사전 조율의 엉성함과 준비 부족을 지적한 기자들을 ‘벼룩’이라고 지칭하고 오히려 기자들 때문에 방중 일정이 수월하지 않다고 남 탓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박 대변인은 “편한 자리에서 편한 기자들에게 농으로 한 이야기”라며 “개성이 강한 사람들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벼룩에 비유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있었던 일”이라고 해명했다. 박 대변인 말대로 기자를 벼룩에 비유하는 농담은 고참기자들이라면 알고 있는 내용이다. ‘벼룩 세 마리를 부산에서 서울까지 몰고 오는 것보다 기자 세 명을 몰고 오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이 요지다. 박 대변인 역시 《서울신문》 기자를 20년 이상 했다. 문제는 요즘 취재 일선의 기자들은 이런 ‘흘러간 농담’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니 어떻게 기자를 벼룩에 비유하느냐”는 해프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풀기자들도 약 1시간 동안 의자에 앉지도 못한 채 취재를 해야 했고, 막상 회견장에서는 2~3분의 인사말만 듣는 것이 끝이었다. 동행했던 기자 중 한 명은 취재파일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순방 일정 대부분이 비공개로 채워져 있고, 공개되는 내용은 인사말이 전부인 것에 대해 화가 났던 겁니다. 물론, 양국 간 외교현안에 대한 민감한 대화까지 기자들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취재를 위해 순방길에 동행한 기자들에게 단지 회담 시작 5분 또는 10분만 듣고 나가라는 것은 취재하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訪中 셋째 날(10월 15일)

전날 있었던 박 대변인의 벼룩담은 소위 말하는 ‘찌라시’에도 떠돌았다. 찌라시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대변인 자격으로 온 박대출 대변인이 본분을 다하지 못한 채 대표만 쫄쫄 쫓아다녀.” 이 내용에 박 대변인도 상당히 상심한 것으로 알려진다. 갈등의 골이 깊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방중단의 한 중진의원이 근사한 점심을 샀지만, 기자단은 “일정을 잘 조율해 달라고 했지, 이런 걸 바란다고 했느냐”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날 기자들은 김 대표에게 친박 홍문종(洪文鐘) 의원의 발언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었지만 김 대표는 “정치현안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겠다. 방중과 관련한 이야기만 하겠다”고 했다.

국내에 머물던 홍 의원은 14일 오후 김 대표가 조직강화특위를 통해 추진 중인 당협위원장 교체 작업에 대해 “(김 대표가) 당을 처음 맡아서 조직강화특위의 역할과 기능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제가 있을 때 한 40여 명을 모셨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당협위원장을) 그만둔 자리에 모신 것이지, 있던 분의 목을 쳐낸 게 아니다. 만약 인위적으로 무엇을 개편한다든지, 위원장을 끌어내린다면 상당히 큰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訪中 마지막 날(10월 16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014년 10월 16일 중국 상하이의 미래에셋 빌딩에서 교민,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직선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을 담당하고 국회에서 뽑힌 총리가 내치(內治)를 담당하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검토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개헌 논의를 시작할 뜻을 밝혔다.

방중 일정이 끝나 귀국하는 날인 16일 오전 7시30분 김 대표는 상하이 홍교영빈관(虹橋迎賓館)에서 조찬 간담회를 열었다. “내가 직접 브리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방중단의 한 의원은 “대표가 해외출장 와서 이렇게 여러 번 간담회를 여는 경우가 없다. 모두 언론을 위한 배려”라고 했다.

김 대표가 모두발언을 했다. 원론적인 내용이었다. 취재진의 일문일답이 이어졌다. 이때까진 개헌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 방중 성과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일문일답을 마치고 아침식사를 겸한 가벼운 환담이 이어졌다. 김 대표와 한 테이블에 앉은 기자는 9명. 이 중 한 명이 조직강화특위의 당협위원장 교체를 놓고 친박계와 비박(非朴)계의 신경전이 한창인 상황에 대해 물었다. 김 대표는 입을 굳게 닫았다. 기자들은 빙빙 돌려가며 끈질기게 질문을 했다. 그러다가 “야당이 세월호특별법 이후에 개헌을 요구하는데?”라는 질문에 김 대표는 “정기국회가 끝난 뒤 개헌론의 봇물이 터질 것.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김 대표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기자는 “거리낌없이 말해 우리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김 대표의 발언에 김 대표와 같은 테이블에 앉은 기자들은 일제히 숟가락을 내려놓고 수첩과 노트북을 꺼내 그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또 다른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친박계에선 총선(2016년 4월) 이후를 얘기하던데요?”

김 대표는 “개헌론이 시작되면 경제활성화에 방해된다는 (박 대통령의) 지적은 맞는 부분이 있다”면서 “다음 대선(2017년 12월) 가까이 가면 안 되는 거지…”라고 답했다.

국내 정치현안에 굳게 입을 다물었던 김 대표가 개헌에 대한 질문에 시원스럽게 답변을 이어가자 기자들은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개헌 방식은 무엇입니까?

“(의원들) 3분의 2가 4년 중임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이후에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많이 구상하고 있습니다.”

—개헌의 당위성이 있다고 봅니까?

“우리 사회가 철저한 진영 논리에 빠져 지금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는데 그것은 ‘올 오어 너싱(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의 권력 쟁취 전 게임 때문이에요. 권력을 분점하고, 중립 지대를 허용해 다른 선진국처럼 연정(聯政)으로 가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개헌 이슈를 꺼낸 건 결국 정치적 목적, 다시 말해 청와대를 겨냥하는 목적이 있는 것 아닙니까?

“답은 있지만 말하면 파문이 일걸?”

그렇게 1시간가량 25개의 질의응답이 오갔다. 수행기자들이 말한 바로는 그중 절반인 12개가 개헌과 관련한 질문과 답이었다.

개헌 관련 발언을 하던 김 대표의 모습을 바라보던 방중단의 한 의원이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평범하게 가기로 했는데 기자들의 불평불만이 많으니까 한번에 뒤집으려고 하셨나?”

기자들도 “김 대표가 마지막 날 기자들에게 확실한 서비스를 했다”고 했다.

개헌 발언의 파장은 컸다. 김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논의는) 경제를 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발언에도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것”이라며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고 보도된 것이다. 청와대는 김 대표 발언에 대해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이탈리아 밀라노를 순방 중이었다. 다만 청와대 내부적으로는 김 대표 발언에 불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오스트리아는 1929년 헌법 개정 이후 외치(外治)를 담당하는 대통령은 직접선거로, 내치(內治)를 담당하는 총리는 국회에서 뽑고 있다. 대통령 임기는 6년으로 연임이 가능하다. 다수당의 당수가 총리가 되며 야당과의 연정 등을 통해 내각을 구성한다.

김 대표 귀국 첫날(10월 17일)

김 대표는 귀국 다음날인 17일 자신의 개헌 발언에 대해 “불찰(不察)이었다”며 “대통령께서 이탈리아의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 참석하고 계신데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국감 대책 회의에 참석, “중국에서 제가 예민한 개헌 논의를 촉발한 것으로 확대 보도된 데에 해명 말씀을 드린다”며 이렇게 말했다. ‘상하이 거사(擧事)’가 ‘삼일천하(三日天下)’도 아닌 ‘일일(一日) 해프닝’으로 끝난 셈이다.

김 대표가 회군한 배경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러 분석이 나왔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과 갈등을 빚는 형국이 된 게 부담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개헌 발언 이후) 청와대로부터 연락받은 것은 전혀 없다”고 했지만, 청와대의 불편한 심기가 여러 경로로 전달돼 결국 사과하고 회군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30년 정치를 해온 김 대표가 이 정도 상황을 예상 못 했을까다. 하루 만에 사과할 것이었으면 왜 개헌에 대한 질문에 답변했을까.

김학용 대표 비서실장, 박대출 대변인, 장성철 김무성 대표 보좌관에게 물었다. 한결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세 사람의 답변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미리 개헌 이야기를 준비한 것은 전혀 아니다. 대표가 평소 자신이 가진 생각을 치적 고려 없이 불쑥 내놓은 것이다. 기자들이 안 쓸 줄 알고…. 그만큼 대표가 순수하다. 기자들 불평불만 잠재우기 위해 기삿거리 줬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전혀 아니다. ‘오프더레코드’를 걸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다. 다만 개헌 논의가 일 것이라는 당내 분위기를 말했는데 마치 개헌을 (김 대표가) 추진할 것처럼 보도된 점은 아쉽다. 개헌 발언 하나로 방중 성과들이 가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기자들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김 대표는 쏟아지는 기자들의 개헌 관련 질문에 일일이 답하고 나서 “그만하자. 이거 톱(기사) 나가겠다” “‘봇물이 터질 것’이 아니라 ‘터질 가능성이 있다’로 하자”는 말로 간담회를 마무리했다는 이유에서다. 김 대표가 이후 파장까지는 계산 못 했는지 모르지만, 개헌 애드벌룬을 띄워야겠다는 의도는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의 상황

그래서였을까. 10월 21일 윤두현(尹斗鉉) 홍보수석은 김 대표의 최근 ‘이원집정부제 개헌 검토’ 주장에 이은 사과 발언에 대해 “우리는 당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언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수석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자가 노트북을 펴놓고 말하는 것을 받아치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김 대표가) 개헌 관련 언급을 한 것은 기사화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라며 이같이 밝혔다. 윤 수석이 기자들에게 브리핑한 것은 취임 이후 이때가 처음이었다.

김 대표의 사과에도 청와대가 김 대표 ‘개헌 발언’을 다시 꺼낸 것은 지난 19일 있었던 당·정·청(黨政靑) 회동과 관련이 있다는 관측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논의된 이 회의에서 김 대표 등 여당 측 참석자들은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연내(年內) 처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관계자는 “개헌 문제는 그동안 박 대통령이 직접 챙겨온 사안으로 윤 수석의 발언은 박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이라고 했다.

어찌됐건 간에 윤 수석의 발언 직후인 10월 22일부터 김 대표는 매우 적극적으로 청와대와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는 이날 당 회의에서 “우리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못 하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 심정으로 (당과 청와대가) 의기투합하겠다”고 말한 데 이어, 23일 당 회의에선 ‘시급히 추진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와 함께 당 지도부 전원 명의(28일에는 당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확대)로 관련 법안을 발의한다는 방침도 정했다. 3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선 “공무원연금 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정치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용기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며 야당의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정치학자인 신율(申律) 명지대 교수는 “김 대표가 의도적으로 개헌 도발을 했다가 오히려 제압을 당한 뒤 박 대통령을 위해 공무원연금 개혁에 나선 것처럼 보인다”며 “앞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국회에서 처리되든 안 되든, 김 대표는 이제 개헌 얘기를 함부로 꺼내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0월 28일 김기춘(金淇春) 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국정감사를 마친 뒤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이 어려운 일(공무원연금 개혁 법안에 소속 의원 전원 서명을 받은 것)을 어떻게 하셨나. 너무 고생하셨다”며 “대통령께 (경과를) 보고 드렸더니 정말 좋아하셨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11월 6일에는 김 대표의 ‘상하이 개헌 발언’을 청와대가 비판한 데 대해 “홍보수석의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무마했다.

영남권의 한 중진의원은 “김 대표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 선두를 달리지만, 박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3년이나 넘게 남았지 않느냐”며 “김 대표가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인데, 살아 있는 현재 권력에 맞서는 게 정치적 자살행위라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대통령이 안 되게는 할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정말 청와대를 치받을 생각이 있었다면 곧바로 ‘꼬리를 내리는 수준’의 사과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개헌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말해버린 실언(失言)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