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保守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 유력후보 不在, 경기침체 등으로 2017년 大選 장담 못해
⊙ 與野, 정당개혁 위해 黨대표직 폐지하고 국회의원 自律性 확보해야
⊙ 새누리당은 保守의 부정적 이미지 불식, 새정연은 系派정치 종식 시급
金亨俊
⊙ 57세.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美아이오와대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 與野, 정당개혁 위해 黨대표직 폐지하고 국회의원 自律性 확보해야
⊙ 새누리당은 保守의 부정적 이미지 불식, 새정연은 系派정치 종식 시급
金亨俊
⊙ 57세.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美아이오와대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 회의 모습. 새누리당의 혁신노력은 2017년 대선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절박감의 반영이다.
여야(與野)의 혁신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김문수(金文洙) 전(前) 경기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보수혁신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여기에는 비박계(非朴系) 개혁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 대거 포진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은 원혜영(元惠榮)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정치혁신실천위원회’를 구성했고, 과반(過半)을 초선 의원으로 채웠다.
새누리당 혁신위는 지난 10월 2일 마라톤 회의를 갖고 향후 6개월간 논의할 주제로 ▲특권(特權) 내려놓기와 민생에 전념할 수 있는 실천방안 등 정치와 국회의 신뢰회복을 위한 노력 ▲당(黨) 차원의 개혁과 공천 문제를 포함한 정당개혁 및 정치개혁의 실천으로 정했다. 첫 번째 혁신 의제로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를 제시했고,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도 제안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도 기득권(旣得權) 내려놓기를 핵심 실천과제로 채택했다. 야당 추천 몫인 국회 도서관장에 외부인을 공모해 임명하고 재·보선에 원인을 제공한 정당의 공천을 금지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정치권에서 수많은 혁신 논의가 있었지만 선거가 없는 해에 이처럼 여야가 혁신 경쟁을 벌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위기의 새누리당
새누리당 김무성(金武星) 대표는 “이대로 가면 다음 대선(大選)에서 100% 진다”며 혁신의 절박함을 피력했다. 이런 발언은 대세론(大勢論)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약속한 보수 혁신을 통해 새누리당 재집권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 대표의 이런 발언은 단순한 엄살이 아니라 상당한 실증적 근거가 있다. 현 시점에서 새누리당의 지지도는 새정연을 압도하고 있다. 이념 성향도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이 새누리당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어 있다. 실제로 한국갤럽의 10월 2주차 여론조사 결과, 새누리당의 지지도는 44%인 반면 새정연은 22%에 불과했다. 한국선거학회가 지난 6·4 지방선거 직후 실시한 국민의식조사 결과, 국민들의 이념 성향은 대략 ‘진보 25%, 중도 30%, 보수 45%’ 형태를 보였다.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유리한 국면에도 불구하고 민심 밑으로 흐르는 기류는 새누리당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실증적 근거로, 첫째, 한국은 ‘48 대(對) 52의 선거구도’가 고착화되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51.6%의 득표로 48.0%를 획득한 문재인 후보에 대해 겨우 3.6%포인트 차이(약 108만 표 차이)로 승리했다. 문 후보가 얻은 1469만 표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가 얻은 것보다 260만 표가 더 많은 수치이다.
이와 같은 선거구도가 만들어진 이유는 20대에서 40대까지는 진보 성향의 새정연 후보를 지지하고, 50대 이상 기성세대는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는 이른바 ‘2040 대 5060의 세대 균열’이 강하게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1>에 나타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의 최근 추이에서도 이런 현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2040세대에서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21~36%에 불과하다. 반면 5060세대에서는 그 비율이 55~84%에 이르고 있다.
제3정당을 자처했던 진보정당의 몰락으로 기존 양당 독과점(獨寡占) 체제가 구축되었고, 영호남을 매개로 한 지역주의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에 ‘48 대 52 구도’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직업별로 화이트칼라층과 학생층에서 일방적으로 야당을 지지하는 것도 이런 구도를 고착화시키는 요인이다. 7월부터 10월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가 화이트칼라층에서 지속적으로 40% 이하이고, 학생층에서는 20~31%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선거는 심판의 기능이 강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년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40대, 화이트칼라, 서울 지역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30%대에 불과하다는 것은 차기 대선에서 새누리당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여하튼 이런 ‘48 대 52 구도’ 때문에 대선 막판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에 의해 결과가 뒤바뀔 수 있다.
與黨 후보들, 야당 후보들보다 인기 낮아
둘째, 권력교체 10년 주기설(ten year’s pendulum)이다. 1988~1998년 보수, 1998~2008년 진보가 집권한 데 이어, 2008년과 2012년 대선에서는 보수 새누리당이 정권을 잡았다. 이 주기에 따르면 2017년에는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이 교체될 수도 있다.
국민은 보수든 진보든 어느 특정 이념 세력이 10년 정도 집권하면 피로감을 느껴 정권을 교체하려 하기 마련이다. 미국 대선에서 어떤 때는 공화당 후보를, 다른 때에는 민주당 후보를 찍는 대표적인 스윙 주(swing state)인 오하이오주(州)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권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피로감(fatigue)을 주면 지지를 바꾼다’는 대답이 높게 나왔다. 2017년에도 이런 ‘피로감 가설(假說)’이 실현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셋째, 야권의 차기 대선후보군(候補群)의 지지도 합(合)이 여당 차기 대선후보군 지지도 합보다 크다.
새정연의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대선후보 지지도 합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표2>에서 보듯이, 김무성, 김문수, 정몽준(鄭夢準) 등 소위 여권(與圈) 빅3의 지지도 합(25%)은 문재인(文在寅), 박원순(朴元淳), 안철수(安哲秀)의 지지도 합(40%)보다 훨씬 적었다.
대선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인 40대, 화이트칼라, 수도권에서 여권 후보들의 지지도 합이 야권보다 적다는 것은 새정연에는 2017년 집권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요소이다. 특히, 한국 대선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충청권에서 차기 야권 후보들의 지지도 합이 40%인 반면, 여권 후보들의 합은 9%에 불과하다는 것은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크게 위협하는 요소이다.
히든카드 없는 與黨
넷째, 중도층(中道層)에서 여당 후보들에 대한 호감도가 야권 후보들에 대한 호감도보다 훨씬 낮다. 한국 대선에서는 중도를 선점하는 후보가 승리한다는 경험적 법칙이 작동되는 경향이 있다. 위에서 지적한 48 대 52 구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표3>과 <표4>에서 보듯이, 중도층에서 야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들을 ‘좋아한다’는 비율이 모두 50%에 육박한다. 반면 여권 후보들의 경우, 그 비율이 15~30%에 불과했다.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무당파층(無黨派層)에서 여당 후보군 대 야당 후보군 호감도 비율은 11% 대 47%로 나타났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여성층에서의 그 비율은 18% 대 42%로 역시 여당이 절대 열세였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행정가’라는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 국민 2명 중 1명(49%)이 호감을 표시했다. 특히, 보수의 32.4%가 박 시장에게 호감을 갖고 있으며, 이 계층에서 문재인과 안철수보다 ‘싫어한다’는 비율이 훨씬 낮았다. 이것은 비록 박 시장이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야권의 히든카드로 등장할 경우,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재 여권에서는 이런 히든카드가 없다는 것이 약점이다.
다섯째, 한국 경제의 ‘잃어버린 10년’ 위험성이 대두하고 있고, 이에 따른 유권자들의 ‘경제 응징 투표’ 가능성이 상존한다.
정부는 경기 회복이 늦어지는 이유를 세월호 참사로 인한 내수 부진과 국회의 장기 공전(空轉)으로 인한 입법조치 미비 탓으로 돌려 왔다. 그러나 본질적인 이유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회생’을 기치로 내건 최경환(崔炅煥) 경제팀이 출범한 지 세 달이 지났건만 경기가 살아난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자칫하면 다시 침체 상태로 주저앉을지 모른다는 불안한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여기에 급격한 엔저(低)와 대중(對中) 수출의 감소 추세 또한 경제 회복을 가로막는 구조적인 요인이다. 지난 10월 7일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에 매출 47조원, 영업이익은 4조1000억원(잠정실적)을 올렸다고 공시(公示)했다. 그런데 영업이익은 작년에 비해 59.7% 급락했다. 삼성전자의 ‘수퍼 어닝 쇼크’가 한국 경제 추락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의 성과에 대한 성패 여하는 1년이 지나면 판가름이 날 것이다. 과거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신경제 100일 대책’,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IMF 극복 대책’, 노무현 (盧武鉉) 정부의 ‘카드대란 대책’,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금융위기 극복 대책’ 등 역대 정부가 취한 경기 활성화 대책들은 대부분 1년 후에 실패로 판가름났다.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이 아니라 정치적 편의에 따른 반짝 효과만을 노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의 경제 회복 정책이 구조 개혁을 동반하지 않은 채 내년 초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경기 회복의 추진력이 급속히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 여파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유권자의 경제 응징 투표로 나타나 새누리당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여섯째, 박근혜 정부의 각종 정책들이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의 이탈을 유인하고 있다. 가령, 쌀 개방 정책, 공무원 연금(年金) 개혁 및 관(官)피아 척결, 기업 사내(社內) 유보금 과세(課稅), 지상파(地上波) 방송에 유리한 광고총량제(廣告總量制)로 인한 종편(綜編)의 저항 등이 보수 지지층의 이탈을 가져올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고민
물론 현재의 민심과 정치 상황은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혁신을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이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보수혁신위원회를 발족시킨 근본 이유라 할 수 있다.
새누리당에 어둠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빛이 될 수 있다. 반대도 성립한다. 혁신 경쟁의 출발에서 새정연은 새누리당보다 뒤졌다. 더구나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새정연에 유리한 국면이 저절로 조성되는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이 재집권을 위해 혁신위를 띄웠다면 새정연은 우선 당 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영선(朴映宣) 전 비대위원장은 한때 “지도부 흔들기를 부하 직원 다루듯 하는 현재 야당에서는 개혁과 혁신을 할 수 없어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분명 새정연은 계파 간 분열에다 내부 의견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무정부 상태와도 같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2012년 12월 18일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와 “새로운 정치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겠다”면서 새정치 공동 선언문에 합의했다. “과감한 정치혁신으로 새로운 정치를 창조하겠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 앞에 책임을 지는 정치를 해 내겠다”고 약속했다.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회의원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사안의 결정에는 국민의 참여와 통제를 의무화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싸가지 없는 진보’
이런 대국민 약속은 물거품이 되었고 대선 패배 후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3월에 안철수 신당과 통합해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었지만 총선과 7·30 재·보선에서 패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새정치’도 ‘민주’도 ‘연합’도 모두 사라진 그야말로 ‘헌정치 계파 야합’만이 존재하면 새정연은 분명 ‘보장된 2등’에 자위(自慰)하면서 권력을 창출하지 못하는 ‘불임(不姙) 정당’으로 전락할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책에서 ‘새정연이 3가지 고질병을 앓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입만 열면 민심을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도도한 민심의 흐름을 읽지 못하거나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으로 왜곡하는 ‘민심 난독증(難讀症)’ ▲유권자 의식 성향이 달라진 것은 물론이고, 정당의 권력비판 기능과 범위도 변화했는데 과거 관행만 답습하는 ‘무뇌증(無腦症)’ ▲싸가지가 없기 때문에 민심을 읽지 못하고 관성(慣性)의 포로가 되는 ‘싸가지 결핍증’을 지적했다.
강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새정연이 2017년 집권하려면 ‘싸가지 있는 진보’가 돼서 혁신을 실천하는 것 이외는 대안(代案)이 없다.
혁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여야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첫째, 차별적인 혁신안을 제기하기 보다는 그동안 제기되었던 각종 혁신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성찰 없는 혁신은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한마디로 ‘혁신의 역사’라 할 정도로 정치 혁신(또는 개혁)을 거론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런데 혁신이 실패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선거를 앞두고 표만을 얻기 위해 포퓰리즘식으로 개혁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가 끝나면 새 대통령은 예외 없이 자신이 국민에게 약속한 정치 공약은 정치권의 일이라고 발뺌을 했고, 개혁은 실패했다. 또한 당내 권력 교체 시 이전에 논의되었던 개혁 방안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개악(改惡)으로 바뀌는가 하면 당내 계파 갈등으로 개혁이 변질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2010년 새누리당 전신(前身)인 한나라당이 나경원(羅卿瑗) 의원을 위원장으로 했던 공천개혁특위가 8개월간 연구해서 마련한 상향식(上向式) 공천제였다. 이 위원회는 ‘정당 개혁의 알파와 오메가는 공천 개혁’이라는 공감 아래 당 비상대책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여야 동시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 제도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2012년 1월 박근혜 비상대책위가 구성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요약하면 여야는 혁신에 모든 것을 걸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
오만한 혁신은 실패한다
둘째, 여야가 함께 실천하는 개혁이 되어야 한다. 혁신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가 제시한 정치 혁신안 중 80% 이상이 동일하다.
가령 당시 박근혜 후보는 여야 동시 국민참여경선, 비례대표 밀실(密室)공천 금지, 후보선출 기한 법제화, 국회윤리 관련 결정을 외부 인사에게 위임, 국회예결위 상설화 및 상시적 예결산 심사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문재인 후보도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를 상시적으로 운영, 여야정(與野政) 국정협의회 상설화, 비대한 중앙당 권한과 기구 축소, 공천권은 국민에게 완전히 돌려주는 것을 공약했다. 따라서 여야가 새로운 혁신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약속한 혁신안을 실천만 하면 국민들의 체감도는 상승할 것이고 개혁의 완성도도 높아질 것이다.
셋째, 혁신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오만을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혁신이 학살이 되고 그럴듯하게 보여주기 위한 데코레이션으로 치달으면 100% 실패한다.
새누리당은 지난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전국 원외(院外) 당원협의회를 대상으로 고강도 당무(黨務)감사를 실시했다. 비리 등이 포착되거나 조직 관리가 태만한 원외 당협위원장이 교체 대상이다. 그런데 친박계에서는 “보복성 표적감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당 대표 경선 때 서청원(徐淸源) 최고위원을 지지했던 당협위원장들이 당무감사에서 ‘물갈이’ 표적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당내 계파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비박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새누리당 혁신위가 당의 주류(主流)인 친박계를 학살하기 위한 의도로 활동을 하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혁신을 추구하는 세력이 자신도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각오로 모든 기득권을 잃어도 후회하지 않아야 혁신이 성공할 수 있다.
넷째, 창조적 파괴를 해야 한다. 정치개혁은 끊임없이 진행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개혁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모두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반드시 해야 할 개혁은 하지 않고 곁가지만 건드리는 개혁에 임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례에서 보듯이 현재 진행 중인 여야 혁신위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낼지 솔직히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 혁신위들이 예외없이 처음에는 요란했지만 결국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났기 때문이다.
여야 혁신위는 많은 것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과거 어떤 혁신위도 손대지 못한 다음 네 가지 과제만 해결하면 된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상향식 공천제도 ▲고비용 저효율(高費用 低效率)의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중앙당과 계파 정치를 쇄신할 정당 개혁 ▲망국적(亡國的)인 지역주의를 잉태하고 있는 선거 제도의 개혁 ▲상습적인 국회 공전과 파행을 막고,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내려놓을 국회 개혁이 그것이다.
上向式 공천제 도입
첫째,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상향식 공천제도 도입과 관련, 여야가 한목소리로 제기하는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 또는 완전국민참여경선제를 방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은 ▲정당의 고유한 정강(政綱)·정책의 강제력 약화로 인한 당 정체성 (正體性) 훼손 ▲정강·정책보다는 일반 국민의 선호에 맞추는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 ▲역(逆)선택으로 인해 선거 결과가 왜곡될 위험성 ▲유능한 후보자 판별이 어렵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후보가 유리하며,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단점(短點)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당 지도부와 거대 정파(政派)가 당을 통제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 ▲일반 국민들의 정치 관심을 고조시켜 정치 참여 확대 ▲무명(無名)의 후보자라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유력 후보로 부상(浮上) 가능 ▲유력 후보라도 검증을 통해 조기(早期)에 퇴출(退出)이 가능하기 때문에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검증에 유리 ▲유력한 외부 후보와 세력을 당내 경선(競選)에 유입시켜 국민적 참여 열기를 고조시킴으로써 본선(本選) 경쟁력 제고 ▲당심(黨心)보다는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해서 국민후보 선출 등의 장점(長點)이 있다.
어느 정당이 어떤 경선 방식을 채택하든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언제나 이득의 상쇄효과(trade-off)가 있기 마련이다. 부정과 긍정의 극단적인 시각에서만 오픈 프라이머리를 바라본다면 이는 합리적인 사고(思考)가 아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다. 오로지 보다 완벽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길만이 존재한다. 미국은 1903년 위스콘신주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를 도입해 고질적인 부패 정치와 보스 정치를 종식시키고 의원들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시켜 생산적인 의회 정치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분명, 공천 개혁 없이 정치 혁신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현역 의원과 원외 및 신인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여야가 동시에 오픈 프라이머리를 실시해야 하며, 선거인단 규모를 대폭 개방해 역선택을 막아야 한다.
독일식 정당명부제 검토 필요
둘째, 이념 중심의 정당 체제라기보다는 인물과 지역 중심의 원외 정당 구조를 가지고 있는 정당을 개혁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 당 대표와 그 지휘하의 직계 조직에 의해 당이 운영되어 왔다. 따라서 당 소속 의원들의 자율성(自律性)은 극히 낮은 수준을 면치 못해 왔다. 한마디로, 한국 정당 구조의 핵심적인 특징은 당원에 의해 선출되는 당 대표가 중심이 되는 원외 정당 체제이다. 이런 원외 정당이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정당 개혁의 핵심은 당원이 직접 투표로 뽑는 당 대표 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당 대표직은 당내 계파(系派) 정치를 강화시키고 당내 정치를 대선을 향한 권력투쟁의 장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 정당의 비대화의 주범(主犯)인 정당국고보조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국민의 동의 없이 무조건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당비(黨費)와 연계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셋째,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특정 지역에 특정 정당이 싹쓸이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비례대표 수를 늘리고 전국을 몇 개의 권역(圈域)으로 나눠 지역구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하는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선거제도가 채택되면 영남에서는 새정연, 호남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기가 용이한 장점이 있다.
국회, 회기 중엔 자동적으로 門 열어야
넷째, 생산성이 떨어지는 국회를 개혁해야 한다.
1988년 제13대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에서 채택된 국회법은 여야 간의 상생(相生)과 합의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았다. 따라서 국회의 모든 의사 일정은 여야 원내 교섭단체 간 협의 또는 동의에 의해 이뤄지도록 했다. 실제로 현행 국회법에 26개 항목에서 이런 규정이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세월호특별법 제정, 정부조직법 등과 같이 민감한 현안을 둘러싸고 정치적 이유 또는 다른 법안과의 연계를 위해 여야 어느 한쪽이 협상을 거부하면 모든 국회 일정이 장기간 올스톱된다는 데 있다.
미국은 매년 12월에 다음 해 의사 일정을 수립한다. 1월부터 12월까지의 의사 일정이 확정되면 의회는 그 일정에 따라 자동으로 열린다. 한국 국회도 이와 같이 캘린더 식으로 여야 합의 없이 정해진 시일에 자동적으로 상시(常時) 운영될 수 있도록 개혁해야 한다.
의원들의 기득권 포기 차원에서 무노동 무임금(無勞動無賃金) 원칙을 적용해 상시 운영 체제 일정을 따르지 않고 회의에 불참하면 의원들의 세비(歲費)를 반납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삭감하도록 해야 한다.
여야 혁신위가 다른 것은 몰라도 위에 제시한 4대 개혁을 함께 추진해 성공시킨다면 그야말로 대한민국 정치에 큰 획을 긋는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나비효과를 기대하며
한국 정치가 시간이 흐를수록 개혁이 개악으로 변질되고, 비정상이 정상을 지배하며, 정치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후진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국회, 정당 등의 정치 토양이 척박하기 때문에 아무리 정치개혁의 씨앗을 뿌리더라도 씨앗은 말라 비틀어 죽고 오로지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가설이다. 또 다른 가설은 한국 정치에는 정치개혁 씨앗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씨앗 부재론(不在論)’이다.
여야 기득권 정당들은 개혁에 대해 진검(眞劍)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편의에 따라 개혁을 기피해 온 경향이 있다. 왜 개혁을 해야 하고 무엇을 개혁할지 근본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에는 어쩌면 두 가설이 다 옳은지 모른다. 정치 토양도 척박하고 개혁 씨앗도 없다. 그렇다면 개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인가.
아니다. 정치 발전은 갑작스럽고 소란스럽게 오는 것이 아니라 새벽처럼 소리 없이 천천히 찾아오는 것이다. 다만 정치 선진화의 여명(黎明)이 조금이라도 빨리 오게 하기 위해서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하고 제대로 된 개혁의 맹아(萌芽)를 찾아야 한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엄청난 해일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나비효과의 핵심이다. 여야 혁신위는 이런 나비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혁신안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새누리당, ‘반성하는 保守’ 되어야
그 밖에 여야가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된 정치 혐오와 불신을 없애기 위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추진해야 할 과제가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보수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개선하고, 결정적인 순간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무기력한 존재에서 벗어나야 하며, 친이(親李)-친박(親朴)의 계파 갈등을 종식해야 한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 ‘민본 21’이 지난 2010년 10월에 ‘대한민국 보수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은 향후 보수의 변화에 대해 가장 많은 30.0%가 ‘부패하지 않는 깨끗한 보수’를 지적했다. 그 다음으로 서민과 중산층을 아우르는 ‘포용적 보수’(28.2%), ‘변화를 주도하는 개혁적 보수’(14.5%), ‘사회가 요구하는 의무를 다하는 책임지는 보수’(11.4%), ‘이념적 경직성을 탈피한 열린 보수’(7.1%) 순이었다.
한국 보수가 부패와 냉전 반공 이미지를 고수하면 진보 세력의 무능과 오만으로 일시적으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국민들의 견고한 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 한국 보수에 진정 필요한 것은 남을 탓하기보다는 부패, 인권탄압, 정경유착(政經癒着) 등 과거 잘못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이런 참회를 통해 도덕적 고지(高地)를 확보할 때 비로소 보수의 상징인 자유주의를 논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될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보수가 부패하고 능력마저 없다고 인식되는 순간 한국 보수의 미래는 어둠 속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더불어, 새누리당이 대통령과 정부에 진정 할 말은 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국민들은 변화를 체감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의 고질적인 인사 참사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당 차원에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또한 과거와 같이 당정 협의를 통해 정부가 원하는 것을 집권당이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옥석을 가려 해 줄 것은 해 주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분명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
최근 김무성 대표가 새누리당 회의에 최경환 부총리, 한민구 국방장관, 신제윤 금융위원장 등을 불러 현안을 논의하고 정부가 잘못 대응한 것에 대해 질책을 한 것은 “당이 국정 운영의 중심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앞으로 이런 수평적 당청(黨靑) 관계를 얼마만큼 지속시킬지가 새누리당 혁신의 성공을 가름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새정연, ‘과거 청산’해야
한편, 새정연은 대선 패배에 대한 처절한 참회를 시작으로, 극단과 배제의 정치에서 벗어나고, 망당적(亡黨的)인 계파 정치를 종식시켜야 하며, 걸핏하면 거리로 뛰쳐나가는 상습적인 장외 투쟁 정치를 포기해야 한다.
지난 2012년 대선 패배 후 새정연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대선평가위원장을 맡았던 한상진(韓相震) 서울대 명예교수는 “새정치연합의 절실한 과제는 지난 대선부터 현재까지 실패 과정을 점검하고 ‘책임자’ 등 과거를 청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친노(親盧) 세력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면서 “당이 깨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당파적으로 꽉 차 있는 당에 공론장이 활성화되도록 토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준만 교수는 “이기고 싶다면서 사실상 패배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바꾸고 싶다면서 바꾸지 않게 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 이들이 진보 진영의 주류로 행세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고 통탄했다.
새정연이 바뀌려면 이런 주문과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 ‘진보 참회록’을 써야 한다. 새정연는 최근 의원총회를 열어 우윤근(禹潤根) 의원을 새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그는 “강하고 품격있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공동 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낸 바 있는 친노 성향의 우 원내대표가 비대위 당연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문희상(文喜相), 정세균(丁世均), 문재인 등이 이미 포진되어 있는 새정연 비대위는 친노 지배구조가 더욱 강화되는 모습을 띠게 되었다.
여기에 문재인 의원은 내년 당권 경쟁에 나설 것을 굳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 의원의 당권 경쟁 참여는 필연적으로 친노 대 비노 간의 극한 갈등이 재연되고 결국 그 과정에서 혁신은 사라지게 될 위험성이 크다.
박영선 의원은 원내대표직을 사퇴하면서 당 소속 의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직업적 당 대표를 위해서라면 그 배의 평형수라도 빼 버릴 것 같은 움직임과 일부 극단적인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새정연이 극단과 배제의 정치를 버리지 못하고 혁신을 부르짖으면 이는 기만이고 파멸이다. 국민들이 새정연에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정당이면 정당답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새정연은 정당인지, 시민단체인지, 이익집단인지 도저히 구별이 가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새정연은 친노 강경파에 의해 질질 끌려 다니고 특권과 차별을 즐기며 걸핏하면 국회를 박차고 나가 장외(場外) 투쟁을 하고, 얼치기 세력과 동조 단식을 하는 하찮은 존재로 전락했다. 이제부터라도 새정연은 국회가 열리면 무조건 참석하고, 특권과 차별을 내려놓고, 계파를 해체하는 대국민 선언을 해야 한다.
정치 혁신은 결국 유권자의 몫
한국 정치는 ‘선천성 상생 결핍증’이라는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 혁신은 이러한 바이러스를 치유해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선진 정치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단순히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내려놓고 의원 정수를 줄이며 정치 관계법 조항을 몇 개 고친다고 혁신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때다.
혁신은 경쟁과 창조적 파괴를 먹고 살며, 실천은 없고 허황된 담론만 있으면 물 건너간다는 것을 여야 혁신위가 깊이 명심해야 한다. 여야 모두 살기 위해 혁신해야 한다. 이런 기조를 바탕으로 여야 혁신위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혁신안을 내놓고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국민들도 묵묵히 혁신을 실천하는 정당에 표를 몰아주고, 혁신한다면서 저질 막장 정치에 앞장서는 정당은 반드시 응징하는 지혜를 보여야 할 것이다. 냉정하고 현명한 유권자가 좋은 혁신을 만드는 법이다.⊙
새누리당 혁신위는 지난 10월 2일 마라톤 회의를 갖고 향후 6개월간 논의할 주제로 ▲특권(特權) 내려놓기와 민생에 전념할 수 있는 실천방안 등 정치와 국회의 신뢰회복을 위한 노력 ▲당(黨) 차원의 개혁과 공천 문제를 포함한 정당개혁 및 정치개혁의 실천으로 정했다. 첫 번째 혁신 의제로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를 제시했고,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도 제안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도 기득권(旣得權) 내려놓기를 핵심 실천과제로 채택했다. 야당 추천 몫인 국회 도서관장에 외부인을 공모해 임명하고 재·보선에 원인을 제공한 정당의 공천을 금지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정치권에서 수많은 혁신 논의가 있었지만 선거가 없는 해에 이처럼 여야가 혁신 경쟁을 벌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위기의 새누리당
새누리당 김무성(金武星) 대표는 “이대로 가면 다음 대선(大選)에서 100% 진다”며 혁신의 절박함을 피력했다. 이런 발언은 대세론(大勢論)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약속한 보수 혁신을 통해 새누리당 재집권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 대표의 이런 발언은 단순한 엄살이 아니라 상당한 실증적 근거가 있다. 현 시점에서 새누리당의 지지도는 새정연을 압도하고 있다. 이념 성향도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이 새누리당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어 있다. 실제로 한국갤럽의 10월 2주차 여론조사 결과, 새누리당의 지지도는 44%인 반면 새정연은 22%에 불과했다. 한국선거학회가 지난 6·4 지방선거 직후 실시한 국민의식조사 결과, 국민들의 이념 성향은 대략 ‘진보 25%, 중도 30%, 보수 45%’ 형태를 보였다.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유리한 국면에도 불구하고 민심 밑으로 흐르는 기류는 새누리당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실증적 근거로, 첫째, 한국은 ‘48 대(對) 52의 선거구도’가 고착화되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51.6%의 득표로 48.0%를 획득한 문재인 후보에 대해 겨우 3.6%포인트 차이(약 108만 표 차이)로 승리했다. 문 후보가 얻은 1469만 표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가 얻은 것보다 260만 표가 더 많은 수치이다.
이와 같은 선거구도가 만들어진 이유는 20대에서 40대까지는 진보 성향의 새정연 후보를 지지하고, 50대 이상 기성세대는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는 이른바 ‘2040 대 5060의 세대 균열’이 강하게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1>에 나타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의 최근 추이에서도 이런 현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2040세대에서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21~36%에 불과하다. 반면 5060세대에서는 그 비율이 55~84%에 이르고 있다.
제3정당을 자처했던 진보정당의 몰락으로 기존 양당 독과점(獨寡占) 체제가 구축되었고, 영호남을 매개로 한 지역주의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에 ‘48 대 52 구도’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직업별로 화이트칼라층과 학생층에서 일방적으로 야당을 지지하는 것도 이런 구도를 고착화시키는 요인이다. 7월부터 10월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가 화이트칼라층에서 지속적으로 40% 이하이고, 학생층에서는 20~31%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선거는 심판의 기능이 강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년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40대, 화이트칼라, 서울 지역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30%대에 불과하다는 것은 차기 대선에서 새누리당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여하튼 이런 ‘48 대 52 구도’ 때문에 대선 막판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에 의해 결과가 뒤바뀔 수 있다.
與黨 후보들, 야당 후보들보다 인기 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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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정치연합의 대권 후보군에 대한 지지도는 여당 후보군에 대한 지지도보다 훨씬 높다. 왼쪽부터 문재인 의원, 박원순 시장, 안철수 의원. |
국민은 보수든 진보든 어느 특정 이념 세력이 10년 정도 집권하면 피로감을 느껴 정권을 교체하려 하기 마련이다. 미국 대선에서 어떤 때는 공화당 후보를, 다른 때에는 민주당 후보를 찍는 대표적인 스윙 주(swing state)인 오하이오주(州)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권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피로감(fatigue)을 주면 지지를 바꾼다’는 대답이 높게 나왔다. 2017년에도 이런 ‘피로감 가설(假說)’이 실현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셋째, 야권의 차기 대선후보군(候補群)의 지지도 합(合)이 여당 차기 대선후보군 지지도 합보다 크다.
새정연의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대선후보 지지도 합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표2>에서 보듯이, 김무성, 김문수, 정몽준(鄭夢準) 등 소위 여권(與圈) 빅3의 지지도 합(25%)은 문재인(文在寅), 박원순(朴元淳), 안철수(安哲秀)의 지지도 합(40%)보다 훨씬 적었다.
대선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인 40대, 화이트칼라, 수도권에서 여권 후보들의 지지도 합이 야권보다 적다는 것은 새정연에는 2017년 집권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요소이다. 특히, 한국 대선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충청권에서 차기 야권 후보들의 지지도 합이 40%인 반면, 여권 후보들의 합은 9%에 불과하다는 것은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크게 위협하는 요소이다.
히든카드 없는 與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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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의 대권 후보들인 김무성 대표, 김문수 전 지사, 정몽준 전 의원(왼쪽부터). 이들 외에 다른 히든 카드가 없다는 것이 새누리당의 고민이다. |
<표3>과 <표4>에서 보듯이, 중도층에서 야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들을 ‘좋아한다’는 비율이 모두 50%에 육박한다. 반면 여권 후보들의 경우, 그 비율이 15~30%에 불과했다.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무당파층(無黨派層)에서 여당 후보군 대 야당 후보군 호감도 비율은 11% 대 47%로 나타났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여성층에서의 그 비율은 18% 대 42%로 역시 여당이 절대 열세였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행정가’라는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 국민 2명 중 1명(49%)이 호감을 표시했다. 특히, 보수의 32.4%가 박 시장에게 호감을 갖고 있으며, 이 계층에서 문재인과 안철수보다 ‘싫어한다’는 비율이 훨씬 낮았다. 이것은 비록 박 시장이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야권의 히든카드로 등장할 경우,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재 여권에서는 이런 히든카드가 없다는 것이 약점이다.
다섯째, 한국 경제의 ‘잃어버린 10년’ 위험성이 대두하고 있고, 이에 따른 유권자들의 ‘경제 응징 투표’ 가능성이 상존한다.
정부는 경기 회복이 늦어지는 이유를 세월호 참사로 인한 내수 부진과 국회의 장기 공전(空轉)으로 인한 입법조치 미비 탓으로 돌려 왔다. 그러나 본질적인 이유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회생’을 기치로 내건 최경환(崔炅煥) 경제팀이 출범한 지 세 달이 지났건만 경기가 살아난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자칫하면 다시 침체 상태로 주저앉을지 모른다는 불안한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여기에 급격한 엔저(低)와 대중(對中) 수출의 감소 추세 또한 경제 회복을 가로막는 구조적인 요인이다. 지난 10월 7일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에 매출 47조원, 영업이익은 4조1000억원(잠정실적)을 올렸다고 공시(公示)했다. 그런데 영업이익은 작년에 비해 59.7% 급락했다. 삼성전자의 ‘수퍼 어닝 쇼크’가 한국 경제 추락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의 성과에 대한 성패 여하는 1년이 지나면 판가름이 날 것이다. 과거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신경제 100일 대책’,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IMF 극복 대책’, 노무현 (盧武鉉) 정부의 ‘카드대란 대책’,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금융위기 극복 대책’ 등 역대 정부가 취한 경기 활성화 대책들은 대부분 1년 후에 실패로 판가름났다.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이 아니라 정치적 편의에 따른 반짝 효과만을 노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의 경제 회복 정책이 구조 개혁을 동반하지 않은 채 내년 초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경기 회복의 추진력이 급속히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 여파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유권자의 경제 응징 투표로 나타나 새누리당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여섯째, 박근혜 정부의 각종 정책들이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의 이탈을 유인하고 있다. 가령, 쌀 개방 정책, 공무원 연금(年金) 개혁 및 관(官)피아 척결, 기업 사내(社內) 유보금 과세(課稅), 지상파(地上波) 방송에 유리한 광고총량제(廣告總量制)로 인한 종편(綜編)의 저항 등이 보수 지지층의 이탈을 가져올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고민
물론 현재의 민심과 정치 상황은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혁신을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이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보수혁신위원회를 발족시킨 근본 이유라 할 수 있다.
새누리당에 어둠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빛이 될 수 있다. 반대도 성립한다. 혁신 경쟁의 출발에서 새정연은 새누리당보다 뒤졌다. 더구나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새정연에 유리한 국면이 저절로 조성되는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이 재집권을 위해 혁신위를 띄웠다면 새정연은 우선 당 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영선(朴映宣) 전 비대위원장은 한때 “지도부 흔들기를 부하 직원 다루듯 하는 현재 야당에서는 개혁과 혁신을 할 수 없어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분명 새정연은 계파 간 분열에다 내부 의견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무정부 상태와도 같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2012년 12월 18일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와 “새로운 정치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겠다”면서 새정치 공동 선언문에 합의했다. “과감한 정치혁신으로 새로운 정치를 창조하겠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 앞에 책임을 지는 정치를 해 내겠다”고 약속했다.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회의원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사안의 결정에는 국민의 참여와 통제를 의무화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싸가지 없는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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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30일 새정치민주연합 정치혁신실천위원회 첫 회의. 왼쪽부터 조정식 사무총장, 진선미 의원, 문희상 비대위원장,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 김기식·전정희 의원. |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책에서 ‘새정연이 3가지 고질병을 앓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입만 열면 민심을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도도한 민심의 흐름을 읽지 못하거나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으로 왜곡하는 ‘민심 난독증(難讀症)’ ▲유권자 의식 성향이 달라진 것은 물론이고, 정당의 권력비판 기능과 범위도 변화했는데 과거 관행만 답습하는 ‘무뇌증(無腦症)’ ▲싸가지가 없기 때문에 민심을 읽지 못하고 관성(慣性)의 포로가 되는 ‘싸가지 결핍증’을 지적했다.
강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새정연이 2017년 집권하려면 ‘싸가지 있는 진보’가 돼서 혁신을 실천하는 것 이외는 대안(代案)이 없다.
혁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여야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첫째, 차별적인 혁신안을 제기하기 보다는 그동안 제기되었던 각종 혁신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성찰 없는 혁신은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한마디로 ‘혁신의 역사’라 할 정도로 정치 혁신(또는 개혁)을 거론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런데 혁신이 실패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선거를 앞두고 표만을 얻기 위해 포퓰리즘식으로 개혁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가 끝나면 새 대통령은 예외 없이 자신이 국민에게 약속한 정치 공약은 정치권의 일이라고 발뺌을 했고, 개혁은 실패했다. 또한 당내 권력 교체 시 이전에 논의되었던 개혁 방안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개악(改惡)으로 바뀌는가 하면 당내 계파 갈등으로 개혁이 변질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2010년 새누리당 전신(前身)인 한나라당이 나경원(羅卿瑗) 의원을 위원장으로 했던 공천개혁특위가 8개월간 연구해서 마련한 상향식(上向式) 공천제였다. 이 위원회는 ‘정당 개혁의 알파와 오메가는 공천 개혁’이라는 공감 아래 당 비상대책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여야 동시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 제도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2012년 1월 박근혜 비상대책위가 구성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요약하면 여야는 혁신에 모든 것을 걸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
오만한 혁신은 실패한다
둘째, 여야가 함께 실천하는 개혁이 되어야 한다. 혁신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가 제시한 정치 혁신안 중 80% 이상이 동일하다.
가령 당시 박근혜 후보는 여야 동시 국민참여경선, 비례대표 밀실(密室)공천 금지, 후보선출 기한 법제화, 국회윤리 관련 결정을 외부 인사에게 위임, 국회예결위 상설화 및 상시적 예결산 심사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문재인 후보도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를 상시적으로 운영, 여야정(與野政) 국정협의회 상설화, 비대한 중앙당 권한과 기구 축소, 공천권은 국민에게 완전히 돌려주는 것을 공약했다. 따라서 여야가 새로운 혁신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약속한 혁신안을 실천만 하면 국민들의 체감도는 상승할 것이고 개혁의 완성도도 높아질 것이다.
셋째, 혁신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오만을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혁신이 학살이 되고 그럴듯하게 보여주기 위한 데코레이션으로 치달으면 100% 실패한다.
새누리당은 지난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전국 원외(院外) 당원협의회를 대상으로 고강도 당무(黨務)감사를 실시했다. 비리 등이 포착되거나 조직 관리가 태만한 원외 당협위원장이 교체 대상이다. 그런데 친박계에서는 “보복성 표적감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당 대표 경선 때 서청원(徐淸源) 최고위원을 지지했던 당협위원장들이 당무감사에서 ‘물갈이’ 표적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당내 계파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비박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새누리당 혁신위가 당의 주류(主流)인 친박계를 학살하기 위한 의도로 활동을 하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혁신을 추구하는 세력이 자신도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각오로 모든 기득권을 잃어도 후회하지 않아야 혁신이 성공할 수 있다.
넷째, 창조적 파괴를 해야 한다. 정치개혁은 끊임없이 진행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개혁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모두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반드시 해야 할 개혁은 하지 않고 곁가지만 건드리는 개혁에 임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례에서 보듯이 현재 진행 중인 여야 혁신위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낼지 솔직히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 혁신위들이 예외없이 처음에는 요란했지만 결국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났기 때문이다.
여야 혁신위는 많은 것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과거 어떤 혁신위도 손대지 못한 다음 네 가지 과제만 해결하면 된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상향식 공천제도 ▲고비용 저효율(高費用 低效率)의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중앙당과 계파 정치를 쇄신할 정당 개혁 ▲망국적(亡國的)인 지역주의를 잉태하고 있는 선거 제도의 개혁 ▲상습적인 국회 공전과 파행을 막고,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내려놓을 국회 개혁이 그것이다.
上向式 공천제 도입
첫째,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상향식 공천제도 도입과 관련, 여야가 한목소리로 제기하는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 또는 완전국민참여경선제를 방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은 ▲정당의 고유한 정강(政綱)·정책의 강제력 약화로 인한 당 정체성 (正體性) 훼손 ▲정강·정책보다는 일반 국민의 선호에 맞추는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 ▲역(逆)선택으로 인해 선거 결과가 왜곡될 위험성 ▲유능한 후보자 판별이 어렵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후보가 유리하며,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단점(短點)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당 지도부와 거대 정파(政派)가 당을 통제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 ▲일반 국민들의 정치 관심을 고조시켜 정치 참여 확대 ▲무명(無名)의 후보자라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유력 후보로 부상(浮上) 가능 ▲유력 후보라도 검증을 통해 조기(早期)에 퇴출(退出)이 가능하기 때문에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검증에 유리 ▲유력한 외부 후보와 세력을 당내 경선(競選)에 유입시켜 국민적 참여 열기를 고조시킴으로써 본선(本選) 경쟁력 제고 ▲당심(黨心)보다는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해서 국민후보 선출 등의 장점(長點)이 있다.
어느 정당이 어떤 경선 방식을 채택하든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언제나 이득의 상쇄효과(trade-off)가 있기 마련이다. 부정과 긍정의 극단적인 시각에서만 오픈 프라이머리를 바라본다면 이는 합리적인 사고(思考)가 아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다. 오로지 보다 완벽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길만이 존재한다. 미국은 1903년 위스콘신주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를 도입해 고질적인 부패 정치와 보스 정치를 종식시키고 의원들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시켜 생산적인 의회 정치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분명, 공천 개혁 없이 정치 혁신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현역 의원과 원외 및 신인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여야가 동시에 오픈 프라이머리를 실시해야 하며, 선거인단 규모를 대폭 개방해 역선택을 막아야 한다.
독일식 정당명부제 검토 필요
둘째, 이념 중심의 정당 체제라기보다는 인물과 지역 중심의 원외 정당 구조를 가지고 있는 정당을 개혁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 당 대표와 그 지휘하의 직계 조직에 의해 당이 운영되어 왔다. 따라서 당 소속 의원들의 자율성(自律性)은 극히 낮은 수준을 면치 못해 왔다. 한마디로, 한국 정당 구조의 핵심적인 특징은 당원에 의해 선출되는 당 대표가 중심이 되는 원외 정당 체제이다. 이런 원외 정당이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정당 개혁의 핵심은 당원이 직접 투표로 뽑는 당 대표 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당 대표직은 당내 계파(系派) 정치를 강화시키고 당내 정치를 대선을 향한 권력투쟁의 장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 정당의 비대화의 주범(主犯)인 정당국고보조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국민의 동의 없이 무조건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당비(黨費)와 연계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셋째,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특정 지역에 특정 정당이 싹쓸이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비례대표 수를 늘리고 전국을 몇 개의 권역(圈域)으로 나눠 지역구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하는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선거제도가 채택되면 영남에서는 새정연, 호남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기가 용이한 장점이 있다.
국회, 회기 중엔 자동적으로 門 열어야
넷째, 생산성이 떨어지는 국회를 개혁해야 한다.
1988년 제13대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에서 채택된 국회법은 여야 간의 상생(相生)과 합의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았다. 따라서 국회의 모든 의사 일정은 여야 원내 교섭단체 간 협의 또는 동의에 의해 이뤄지도록 했다. 실제로 현행 국회법에 26개 항목에서 이런 규정이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세월호특별법 제정, 정부조직법 등과 같이 민감한 현안을 둘러싸고 정치적 이유 또는 다른 법안과의 연계를 위해 여야 어느 한쪽이 협상을 거부하면 모든 국회 일정이 장기간 올스톱된다는 데 있다.
미국은 매년 12월에 다음 해 의사 일정을 수립한다. 1월부터 12월까지의 의사 일정이 확정되면 의회는 그 일정에 따라 자동으로 열린다. 한국 국회도 이와 같이 캘린더 식으로 여야 합의 없이 정해진 시일에 자동적으로 상시(常時) 운영될 수 있도록 개혁해야 한다.
의원들의 기득권 포기 차원에서 무노동 무임금(無勞動無賃金) 원칙을 적용해 상시 운영 체제 일정을 따르지 않고 회의에 불참하면 의원들의 세비(歲費)를 반납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삭감하도록 해야 한다.
여야 혁신위가 다른 것은 몰라도 위에 제시한 4대 개혁을 함께 추진해 성공시킨다면 그야말로 대한민국 정치에 큰 획을 긋는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나비효과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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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오른쪽)과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정치혁신실천위원장이 지난 10월 5일 《조선일보》 대담을 마친 뒤 국회 앞길을 함께 걸어가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여야 기득권 정당들은 개혁에 대해 진검(眞劍)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편의에 따라 개혁을 기피해 온 경향이 있다. 왜 개혁을 해야 하고 무엇을 개혁할지 근본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에는 어쩌면 두 가설이 다 옳은지 모른다. 정치 토양도 척박하고 개혁 씨앗도 없다. 그렇다면 개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인가.
아니다. 정치 발전은 갑작스럽고 소란스럽게 오는 것이 아니라 새벽처럼 소리 없이 천천히 찾아오는 것이다. 다만 정치 선진화의 여명(黎明)이 조금이라도 빨리 오게 하기 위해서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하고 제대로 된 개혁의 맹아(萌芽)를 찾아야 한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엄청난 해일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나비효과의 핵심이다. 여야 혁신위는 이런 나비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혁신안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새누리당, ‘반성하는 保守’ 되어야
그 밖에 여야가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된 정치 혐오와 불신을 없애기 위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추진해야 할 과제가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보수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개선하고, 결정적인 순간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무기력한 존재에서 벗어나야 하며, 친이(親李)-친박(親朴)의 계파 갈등을 종식해야 한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 ‘민본 21’이 지난 2010년 10월에 ‘대한민국 보수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은 향후 보수의 변화에 대해 가장 많은 30.0%가 ‘부패하지 않는 깨끗한 보수’를 지적했다. 그 다음으로 서민과 중산층을 아우르는 ‘포용적 보수’(28.2%), ‘변화를 주도하는 개혁적 보수’(14.5%), ‘사회가 요구하는 의무를 다하는 책임지는 보수’(11.4%), ‘이념적 경직성을 탈피한 열린 보수’(7.1%) 순이었다.
한국 보수가 부패와 냉전 반공 이미지를 고수하면 진보 세력의 무능과 오만으로 일시적으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국민들의 견고한 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 한국 보수에 진정 필요한 것은 남을 탓하기보다는 부패, 인권탄압, 정경유착(政經癒着) 등 과거 잘못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이런 참회를 통해 도덕적 고지(高地)를 확보할 때 비로소 보수의 상징인 자유주의를 논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될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보수가 부패하고 능력마저 없다고 인식되는 순간 한국 보수의 미래는 어둠 속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더불어, 새누리당이 대통령과 정부에 진정 할 말은 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국민들은 변화를 체감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의 고질적인 인사 참사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당 차원에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또한 과거와 같이 당정 협의를 통해 정부가 원하는 것을 집권당이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옥석을 가려 해 줄 것은 해 주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분명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
최근 김무성 대표가 새누리당 회의에 최경환 부총리, 한민구 국방장관, 신제윤 금융위원장 등을 불러 현안을 논의하고 정부가 잘못 대응한 것에 대해 질책을 한 것은 “당이 국정 운영의 중심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앞으로 이런 수평적 당청(黨靑) 관계를 얼마만큼 지속시킬지가 새누리당 혁신의 성공을 가름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새정연, ‘과거 청산’해야
한편, 새정연은 대선 패배에 대한 처절한 참회를 시작으로, 극단과 배제의 정치에서 벗어나고, 망당적(亡黨的)인 계파 정치를 종식시켜야 하며, 걸핏하면 거리로 뛰쳐나가는 상습적인 장외 투쟁 정치를 포기해야 한다.
지난 2012년 대선 패배 후 새정연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대선평가위원장을 맡았던 한상진(韓相震) 서울대 명예교수는 “새정치연합의 절실한 과제는 지난 대선부터 현재까지 실패 과정을 점검하고 ‘책임자’ 등 과거를 청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친노(親盧) 세력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면서 “당이 깨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당파적으로 꽉 차 있는 당에 공론장이 활성화되도록 토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준만 교수는 “이기고 싶다면서 사실상 패배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바꾸고 싶다면서 바꾸지 않게 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 이들이 진보 진영의 주류로 행세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고 통탄했다.
새정연이 바뀌려면 이런 주문과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 ‘진보 참회록’을 써야 한다. 새정연는 최근 의원총회를 열어 우윤근(禹潤根) 의원을 새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그는 “강하고 품격있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공동 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낸 바 있는 친노 성향의 우 원내대표가 비대위 당연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문희상(文喜相), 정세균(丁世均), 문재인 등이 이미 포진되어 있는 새정연 비대위는 친노 지배구조가 더욱 강화되는 모습을 띠게 되었다.
여기에 문재인 의원은 내년 당권 경쟁에 나설 것을 굳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 의원의 당권 경쟁 참여는 필연적으로 친노 대 비노 간의 극한 갈등이 재연되고 결국 그 과정에서 혁신은 사라지게 될 위험성이 크다.
박영선 의원은 원내대표직을 사퇴하면서 당 소속 의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직업적 당 대표를 위해서라면 그 배의 평형수라도 빼 버릴 것 같은 움직임과 일부 극단적인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새정연이 극단과 배제의 정치를 버리지 못하고 혁신을 부르짖으면 이는 기만이고 파멸이다. 국민들이 새정연에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정당이면 정당답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새정연은 정당인지, 시민단체인지, 이익집단인지 도저히 구별이 가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새정연은 친노 강경파에 의해 질질 끌려 다니고 특권과 차별을 즐기며 걸핏하면 국회를 박차고 나가 장외(場外) 투쟁을 하고, 얼치기 세력과 동조 단식을 하는 하찮은 존재로 전락했다. 이제부터라도 새정연은 국회가 열리면 무조건 참석하고, 특권과 차별을 내려놓고, 계파를 해체하는 대국민 선언을 해야 한다.
정치 혁신은 결국 유권자의 몫
한국 정치는 ‘선천성 상생 결핍증’이라는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 혁신은 이러한 바이러스를 치유해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선진 정치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단순히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내려놓고 의원 정수를 줄이며 정치 관계법 조항을 몇 개 고친다고 혁신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때다.
혁신은 경쟁과 창조적 파괴를 먹고 살며, 실천은 없고 허황된 담론만 있으면 물 건너간다는 것을 여야 혁신위가 깊이 명심해야 한다. 여야 모두 살기 위해 혁신해야 한다. 이런 기조를 바탕으로 여야 혁신위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혁신안을 내놓고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국민들도 묵묵히 혁신을 실천하는 정당에 표를 몰아주고, 혁신한다면서 저질 막장 정치에 앞장서는 정당은 반드시 응징하는 지혜를 보여야 할 것이다. 냉정하고 현명한 유권자가 좋은 혁신을 만드는 법이다.⊙
